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강력해진 자국 중심주의와 대중 강경 기조로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부담이 커지고, 수출 축소로 인한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6일 반도체 업계의 반응을 종합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에 따른 최대 쟁점은 강경한 보호무역주의다. 핵심 공약인 미국 산업 기반 강화와 10%~20%에 달하는 보편 관세 부과, 자국 기업 우대 정책 등이 우리 기업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보편관세 20%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액은 최대 42조원, 실질 경제성장률 감소폭은 0.67%로 전망된다.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을 건립할 경우 보조금을 주는 이른바 '칩스법' 의 폐지를 우려한다. 삼성전자(텍사스)와 SK하이닉스(인디애나)는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조 단위 투자를 집행중인데, 보조금이 축소·폐지될 경우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공장 건설이 상당 부분 진행됐기 때문에 취소하거나 규모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칩스법의 폐지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보조금·세액공제 등 혜택 축소는 사실상 상수다. 트럼프 후보는 지속적으로 "칩스법은 정말 나쁜 거래로, 한국·대만 기업이 아무 대가 없이 미국에서 공장을 짓게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왔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공장에 최대 8조 9000억원의 보조금을, SK하이닉스는 62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을 예정이다.
대중 강경 기조가 반도체 수출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메모리·파운드리 기업은 중국 IT 고객사의 매출 의존도가 높고, 국산 제조 장비의 최대 수출국도 중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대중 고율 관세(최대 60%)가 현실화되면 중국 세트(완성품)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의 매출 감소도 불가피하다.
중국에 거점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생산시설이 '셧다운'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국내 기업의 공장에 예외적으로 첨단 장비 반입을 허용하고 있으나, 트럼프 당선 후 강력한 수출 규제로 장비 반입이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40%를 생산중이며,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의 40%와 낸드 20%를 만든다.
공급망 재편이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중국산 스마트폰이나 레거시(구형) 메모리, 디스플레이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면서 국내 제품의 점유율과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목소리다. 중국 반도체 기업인 YMTC와 CXMT는 수십조원의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레거시 메모리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렸으며, D램·메모리의 평균거래가는 지난 8월부터 10~30% 수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첨단 기술에 대해 지원을 축소하거나 우리 기업의 해외 수출에 제동을 걸 우려가 있다"며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것에 대비해 기술 확보와 생산 거점 다양화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