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에서 최근 수백억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AI(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
AI’로, 지난 1일 네이버
D2SF·DSC인베스트먼트
·KDB산업은행
·IMM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8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 중 역대 최대 규모다.
AI반도체는 전 세계 테크(기술) 기업들이 선점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시장이다. 백 대표는 “초거대 규모의 연산을 수행하는 구글·MS 등의 데이터센터 뿐 아니라 아마존·쿠팡의 커머스, 테슬라의 자율주행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AI 연산이 필수가 되면서 AI 반도체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9년 123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서 2024년 439억달러(약 48조 9000억원)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퓨리오사AI는 삼성전자·AMD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인 백 대표가 2017년 창업한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이다. 백 대표는 “사람 뇌의 신경망을 모방한 NPU(신경망 처리 장치)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센터와 기업용 서버에서 AI 연산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도체 설계 분야는 ‘자본과 인력이 곧 능력’인 대표적인 산업 분야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하이닉스 정도가
수십조원 단위 대규모 투자를 하고 글로벌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돈먹는 하마’라며
투자를 기피한다.
미국 조지아텍 전자공학부 학·석사 출신에 국내외 반도체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잘 나가던 그가 이런 리스크(위험)을 안고 AI반도체라는 개념도 생소하던 2017년에 창업에 뛰어든 계기가 뭘까? 백 대표는 “2014년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 축구를 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재활을 하던 중 AI에 꽂혀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다”며 “좋은 인재만 모으면 AI반도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 2016년 회사를 나와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서 그록(Groq)같은 팹리스 스타트업이 창업과 동시에 수백억원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것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퓨리오사AI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2년 전이다. 백 대표는 “2019년 글로벌 AI 반도체 테스트 대회인 ‘엠엘퍼프’ 참석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퓨리오사AI는 이 테스트에서 아시아 스타트업 가운데 유일하게 AI반도체 성능 지표를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이미지처리, 사물 인식 같은 일부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인텔을 앞서 이때부터 업계서 기술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백 대표는 “AI반도체를
잘 하려면 실리콘 칩(반도체)과 시스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모두 잘해야 한다”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엔지니어들뿐 아니라 구글·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까지 고루 확보했다”고 했다. 2017년 퓨리오사AI에 5억원 규모로 첫 투자를 한 네이버도 “그때만 해도 AI반도체가 워낙 생소했으나, 백 대표와 멤버들의 잠재력을 보고 투자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퓨리오사AI는 이번에 유치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올 하반기 내에 AI반도체 시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백 대표는 “이번에 받은 800억원 투자는 불씨”라며 “연말까지 시제품이 나오면 이를 원동력 삼아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반도체 양산과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퓨리오사
AI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고성능·고효율 서버용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스타트업이다. 오는 7월 국내 최초로 삼성전자 파운드리
14나노 공정을 사용한
AI칩을 생산할 계획이며, 내년엔 차세대 5나노
AI칩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 회사에 총
100억원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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