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고의 배터리를 가졌지만 (다른 회사의) 제품과 차이가 거의 없었고 비용도 너무 많이 들었다.”
디터 제체 다임러 최고경영자(CEO)는 다임러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자체 생산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탄탄한 고객 기반을 확보한 전문 제조사가 아닌 기업의 경우 사업에 어려움이 많다는 의미다.
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등 한국 기업이 국내외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해외에선 배터리 사업 철수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다임러, 일본 닛산에 이어 한때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 파트너였던 독일 보쉬도 최근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자동차부품 회사들이 앞다퉈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곳은 거의 없다”면서 “한·중·일 배터리 제조사들이 향후 시장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이 NEC와 세운 배터리 합작사 ASEC의 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 ‘리프’./닛산 제공
◇ 보쉬, 배터리 사업 투자해도 성과는 불확실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는 올 2월 자체 배터리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보쉬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SDI와 배터리 합작사 관계를 맺었다가 독자 사업을 이유로 결별했다.
유럽 정치인이나 자동차 회사들은 삼성SDI나 일본 파나소닉 같은 아시아 배터리 제조사를 견제하기 위해 보쉬가 계속 배터리 사업을 유지하길 원했다. 보쉬 역시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20%를 차지한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보쉬는 “역동적인 외부 시장요인을 감안할 때 (배터리 사업) 투자가 성과를 낼지는 불확실하다”면서 “신규 진입자에게 시장(배터리) 상황은 도전 그 이상이다”라고 설명했다. 보쉬는 배터리 제조사들과 사업적인 협력은 계속하지만 더이상 자체 생산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보쉬는 연간 5억유로(6600억원)를 투자했던 배터리 기술 연구를 중단하기로 했다. 2015년에 인수한 미국 전고체 배터리(배터리 발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차세대 전지) 스타트업(신생 벤처) 시오(Seeo)도 매각할 예정이다.
강동진 현대차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배터리 단가를 낮추면서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은 ‘규모의 경제’”라며 “LG화학처럼 수주 물량을 확보하고 검증된 회사는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 닛산·다임러, 배터리 시장 개척 실패
닛산은 지난해 8월 NEC와 세운 배터리 합작사 ASEC를 중국 사모펀드인 GSR캐피털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매각 대상에는 AESC와 미국·영국의 배터리 생산 시설, 일본 내 기술·개발 부문 일부가 포함됐다. 구체적인 매각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닛산은 “AESC는 닛산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데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AESC가 닛산 리프에 배터리를 공급했지만, 납품처가 한정적이라 더이상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임러는 2014년 말 자체 배터리 생산을 중단했다. 다임러는 2008년 배터리 제조회사인 에보닉과 합작사 리텍(Li-Tec)을 설립했다. 리텍은 독일 동부 드레스덴 인근 카멘츠에 공장을 두고 380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했었다. 다임러의 스마트 포투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생산했지만 사업 확장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다임러는 현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