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무렵 엔론은 매출 기준 미국 랭킹 7위, 글로벌 랭킹 16위를 차지하는 거대 기업이 였다. 에너지라는 구(舊)경제의 기반 위에 첨단 금융공학이라는 신(新)경제적 요소를 결합시킨 엔론은 특히 인도에 주목했다.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에 비해 에너지 산업 여건이 취약했던 인도는 엔론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인도 사상 최대의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 다브홀, 1992년 엔론은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Mahara shtra)주의 다브홀(Dabhol)이라는 해안 마을에 인도 최대의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총투자 규모는 무려 29억 달러에 달했다. 당시 인도 집권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경제자유화 정책의 상징이라 했을 정도로 사상 최대의 외국인 투자였다.
1997년부터 가동될 발전소 건립을 위해 DPC(Dabhol Power Co.)라는 합작사가 설립됐다. 지분 65%의 엔론 외에도 GE(10%)·벡텔(10%)·마하라슈트라 전력청(MSEB, Maharashtra State Electricity Board) (15%)이 여기에 참여했다. 엔론 등 선진 기업들의 축적 된 경험과 마하라슈트라 주정부의 시장 노하우가 잘 결합된다면 성공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였다.
엔론은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약 조항에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들을 다수 포함시켰다. 우선 MSEB는 실제 전력 수요량에 상관없이 DPC가 생산한 전기를 전량 구입하기로 했다. 인도 연방 정부는 주정부의 대금 지급을 보증했고 결제 통화는 환 위험을 피해 미국 달러로 정했다.
※ [악마는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 여기에서 인천공항, 9호선 전철, 4대강, 자원개발 등을 추진하며 돈을 빨아들인 분의 생각이 난다.
발전소 완공 후에는 20년간의 운영권과 16%의 세후 수익률도 보장받았다. 또한 발전소 운영에 필요한 천연가스는 중동의 카타르에서 수입하기로 했는데, 엔론은 인도 정부 로비를 통해 수입관세를 105%에서 15%로 낮추는 수완을 발휘했다.다브홀, 리스크 관리의 총체적 실패작 에너지 업계의 황태자 엔론은 인도에서의 비상을 꿈꿨고 모든 조건이 호의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엔론은 끔찍한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여러 리스크 요인들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환경, 인권 리스크
우선 발전소 인근에 거주하던 9만여 명의 주민들은 DPC가 주변 농지를 무단 점유했고 용수 부족과 수질오염을 초래했다며 반발했다. 인근 어부들도 발전소로 인해 연안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어획량이 감소했다며 탄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DPC는 적절한 대응 없이 주민들의 주장을 묵살해 버렸다. 주민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엔론을 비난했고 환경운동가·사회운동가·지역 정치인 등이 대거 동조했다. 인도 언론들도 나서 “엔론의 행태는 과거 인도를 착취했던 동인도회사와 다를 바 없다”
“인도는 미국이 쥐락펴락해도 되는 바나나 공화국이 아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1997년 무렵에는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지방 경찰의 물리적 폭력과 불법 체포·구금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권침해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국제인권단체(Human Rights Watch)와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까지 나서 엔론과 공모한 지역 경찰을 이례적으로 비난했다. 엔론에 대한 인도인들의 감정은 최악으로 떨어졌고 반대 시위는 인도 전역으로 확산됐다.
▶정치 리스크
엔론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목말랐던 인도 정부로부터 받아낸 각종 혜택은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 엔론은 클린턴 정권 시절 인도 대사를 지냈던 프랭크 위스너(Frank Wisner)를 고문으로 채용해 인도 정부 관계자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계약 내용도 공개 입찰이 아니라 엔론과 인도 정치권 사이에서 수의계약 형태로 은밀하게 결정됐다. 이러한 특혜는 정권 변화 시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2002년 4월 미국 CBS 뉴스의 유명 프로그램‘60분(60 minutes)’은 다브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2000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로비 자금이 뿌려졌다고 폭로했다. DPC에 비판적이었던 인도 최대 TV방송국 지(Zee)TV의 경제담당 편집자를 엔론이 연봉 100만 달러에 영입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 부시정부, '발전소 허가 안하면 인도 외환보유고 바닥날 것' 협박**
*** 엔론, 인도정부에 수십억달러 구제금융 요구하기도**
▶상업적 리스크
인도는 석탄 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 값비싼 천연가스를 들여와 가스 발전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에 대해 많은 이가 처음 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1993년 4월 세계은행(World Bank)은 천연가스 수입비용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의심된다며 다브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거부하기도 했다.
1993년 12월에 체결된 전력구매 협약에 따르면 MSEB는 DPC가 생산한 전력을 전량 구매하거나 DPC 설비용량의 90%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take-or-pay deal). 문제는 그 가격이 너무 과도했다는 데 있다. 1999~2000년에 MSEB가 DPC로부터 구매한 전력 가격은 약 4.12루피/kwh였는데, 이는 DPC 외 다른 발전소에서 구매한 가격인 1.41루피/kwh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엔론으로서는 높은 가격에 전력을 판매할 수 있어 좋았을지 모르지만 재정 여력이 부족한 MSEB가 디폴트를 선언할 위험이 잠복하고 있었다.
헤어날 길 없는 수렁 속으로
1995년 8월 지방 선거에서 승리한 힌두계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쉬브세나(Shiv Sena) 연합은 수의계약에 따른 부정부패와 과도한 특혜를 빌미로 DPC 공사 중단을 명령했다. 엔론은 공사비용과 전력 요금을 약간 낮추는 조건으로 공사 재개 허가를 받았고, 1999년에 1단계 발전소를 완공할 수 있었다(9억2000만 달러 투자, 695㎿ 규모).
그러나 1단계 공사 완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하라슈트라 주정부는 발전소 설계 사양이 계약 조항과 다르다며 벌금을 부과했고 2001년 6월에는 전력 단가가 너무 높다며 구매 계약을 파기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엔론은 2001년 10월 자사의 DPC 지분을 10억 달러에 인도 정부에 팔겠다고 제안했지만 인도 정부는 거절했다.
- 인도 정부의 인수 거절은 거저 먹겠다 하는 말의 다른 표현
미국 속담에 “비가 오면 몰아친다(When it rains, it pours)”는 말이 있는데 2001년 말 엔론의 상황이 딱 그랬다. 3분기 저조한 실적 발표와 함께 엔론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경영진의 모럴해저드와 조직적인 회계 부정이 드러나면서 미국 대중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 내 최고 CEO 25인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던 엔론 설립자 케네스 레이(Kenneth Lay)는 구속 수감되고 만다.
다브홀 프로젝트는 엔론의 추악한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얻으려는 욕심으로 정도(正道) 대신 정치적 지름길을 택했다는 것이 엔론 몰락의 본질이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 착취에 본능적 반감이 있는 인도인의 반발을 무시함으로써 다브홀을 전세계 에너지 업계 최악의 투자 실패 사례로 만든 것이다. 엔론은 아무리 큰 정치적 파워도 시장의 원칙과 시민의 정서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2005년 인도 국영 RGPPL(Ratnagiri Gas and Power Private Limited)에 인수된 다브홀 발전소는 2006년 5월 다시 운영을 재개했다. 하지만 10억 달러라는 수업료는 이미 공중으로 증발돼버린 후였다.
이 투자의 실수는 ;
- 미국의 투자 판단 실수와 운영 미숙으로 시작.
- 인도의 정상적이지 않은 정치 상황. 전문 용어로 개판.
- 대중이 반대하면 국책과제의 계약도 파기할 수 있다.
- 정권을 잡으면 괫심죄 벌금도 물릴 수 있다.
인도에게 물리면 헤어날 방법은 없다. 정부와 국민과 짜고치는 고스돕.
포스코라고 다를 리는 없다. 대우 조선의 잠수함이라고 다를 리는 없다. 그래도 장사의 신(神)은 K-9을 백여대나 성공리에 판매하신 북창동 아저씨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