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논쟁이 벌어진 걸 보고, ‘특정 몇몇 분’의 현실적 이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글 남깁니다. 회원 번역글에서 일어난 논쟁과 연관된 글이므로, 연예 게시판과 잡담 게시판 두 곳에 동시에 올립니다. 글 솜씨가 좋지 못 하고, 긴 글입니다. 바쁘신 분은 살포시 ‘뒤로 가기’를...
지상파 방송국의 일본어 곡 제한, 참 민감한 문제입니다. 지금이 군사 독재 시절도 아니고 말이죠. 현재 대한민국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전파 매체는 모든 일본 대중문화 관련 콘텐츠에 대해, 그의 활용 주체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황에 따른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대한민국과 국민 다수를 ‘전체주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등에 결부시켜 표현하는 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정부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일본 대중문화 수입과 유통에 대한 법적 금지조항을 폐지했습니다. 즉,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53년 전부터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 및 유통에 관련된 그 어떠한 형태의 제재도 가할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형법이든 상법이든 공정거래법이든 이를 제재 시, 제재 행위자는 관련 법규에 따라 처벌받습니다. 이 문제가 단순히 지상파에서 ‘일본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없다’처럼 1차원적인 것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소니뮤직코리아 같은 음반유통사에게 가장 주요한 홍보 수단이자 사업 수단은 TV방송입니다. 인기 많은 일본 가수가 앨범을 냈습니다. 그 앨범을 수입, 활용해 사업을 하고 싶은데 지상파 방송이 막혀있으니 당연히 앨범의 시장성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홍보가 어렵다’, ‘음악방송 출연은 가능하다’, '케이블에선 된다' 등의 것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TV, 라디오를 포함한 각종 전파 활용 프로그램, 광고 등의 삽입 및 가공 모두가 직, 간접적으로 제한되는 것이죠. 즉, 그것들로 생산할 수 있는 상당수의 사업 콘텐츠가 애초에 사라지는, 사실상 ‘일본노래로는 장사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제재의 근거는 법률도 아니고, 방송사의 내부규정이 다죠.
게다가 이 ‘규정’이라는 것이 또 아주 재밌습니다. 일본곡이라도 가사가 없으면 그건 또 됩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곡과 같은 연주곡은 지상파를 통한 방송 컨텐츠 활용이 가능하죠.
여기까지만 봤을 때, 제가 만약 음반유통사 사장이면 가만히 안 있습니다. 영업방해든 공정거래법위반이든 뭐든 법률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건 다 걸고넘어질 겁니다. 심지어는 기본권침해로 헌법소원도 낼 수 있습니다. 명백히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헌법위반이거든요. 저만 그럴까요? 아마 같은 입장이면 다들 이렇게 하겠죠.
그러나, 거기까지만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뒤에 뭔가가 더 있다는 거겠죠. 그리고 그 무엇 때문에 현재까지 아무도 법적으로 문제를 삼는다거나, 헌법소원을 낸다거나 하지 않는 거구요. 법치국가에서 헌법 위에 또 뭐가 있냐고 하시겠지만 맞습니다, 명문화된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명문화되지 않은 헌법 위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제 생각이 아닌, 대다수 ‘법률가’들의 견해입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든 하나의 집단체가 또 다른 집단에 가할 수 있는 가장 저급하고 잔혹한 행위가 뭔지 아시나요? 폭력을 사용해 ‘상대를 말살하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죽인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 집단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강제로 없애버리는 겁니다. 역사, 글자, 언어, 관습, 문화, 심지어는 사상과 종교까지. 네, 나치가 유태인에 저지른,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 ‘민족말살정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일제의 폭력은 우리 민족과 역사에 수많은 희생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때문에 일본에 대한 우리 대다수의 정서, 즉 ‘국민정서’는 매우 ‘적대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운 나라와 그의 제 1가치인 헌법은 자연히 그 바탕에 ‘반일’에 대한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식민 통치와 전쟁의 여러 피해국이 가해국과 전범국에 갖는, 그리고 유럽인이 과거 나치에 갖는 기본적인 정서와 유사한 것이죠.
그래서 김대중 정권시절, 일본 대중문화개방정책을 진행할 때도 총 4회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거부감이 워낙에 컸기 때문에요. 그리고 2004년 4차 논의 때 당시 문화관광부(現 문체부)에서 일본 영화, 음반, 게임 등 총 6개 분야의 유통과 수입을 대부분 개방한다는 기준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의 지상파 방영과 극장 애니메이션 상영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은 정하지 않은 상태로 논의가 끝납니다.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서 세부적인 개방 범위를 정한다는 입장이었던 거죠. 그 세부적인 개방 범위에 바로 ‘일본어의 지상파 송출’ 가능 여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와 관련된 더 이상의 논의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말이죠. 여기서부터는 정치, 외교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양국 간 분위기가 좋으면 논의를 다시 시작해도 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에 어떤 정권도 그에 따르는 부담을 지기가 어려운 것이죠. 이는 現 ‘국민정서’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고,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자연히 방통위의 통제를 받는 지상파 3사는 단계적 개방논의가 확정된 시점의 관례를 내부 방침으로 정한 것이죠. 3차 논의 시점에서의 확정 결과를 바탕으로 말입니다. 확정되지 않은 사항을 기준으로 적용해 괜히 ‘국민정서’에 반하는 정치적 부담을 방송사가 떠안을 이유와 필요가 없죠. 말 그대로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일본 방송사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쪽 방송사들도 내부 규정에 따라 상황에 맞게 적용합니다. 어떤 분 말씀처럼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이 국수주의 같은 것에 허우적거리는 소위 ‘쿨’하지 못한 ‘꼰대’여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어 그들의 문화를 이해, 포용하는 임계점에 아직은 우리의 ‘정서’를 도달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죠. 그렇게 하기엔 ‘그들’의 정치적 행위가 여전히 파렴치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화와 정치는 별개이며, 저 역시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이 뜨거운 논쟁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듯 보입니다. ‘정치와 문화를 분리해서 봐야지’라는 그 관점. ‘정치’의 관점에 우리의 ‘現 정서’가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서’ 안에 정치든 문화든 이런 것들이 생겨나고 포함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정 외부 문화를 수용하는 데에는 다수의 공감이 있어야 하고, ‘반대적 정서’를 갖는 일본의 문화라면 더욱 더 크고 긴 ‘이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수 세대에 걸친다 할지라도 아니, 그 이상이 걸린다 할지라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그 문화가 또 하나의 ‘정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굳이 당장 우리 지상파에서 한국 가수가 ‘일본어 곡’을 부르는 모습이 보고 싶고, 이제는 충분히 그럴 시기가 되었으며, 그 이유로 문화와 정치 분리의 당위성을 근거로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대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 개인의 행복추구, 사상과 자유, 물론 중요하고 존중받아야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그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 다수가 공감하는 가치 위에서만 그 존재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국수주의, 전체주의 등의 저급한 것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 일제의 만행에 고통과 상처를 받으신 많은 분들 혹은 그 후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끌어안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그들 또한 우리와 공감하는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화의 부분적 제한은 시시콜콜하게 과거에 얽매여 현재와 미래의 새로운 가치를 보지 못하는 소위 ‘수구 꼴통’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들의 것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 아니죠. 보다 여유롭게 천천히 수용하고 융화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몇몇 분들’이 마치 개화기 대한제국의 국수적 정치 행태와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화와 정치를 분리해 판단하고 있는 상황에 되레 정치를 끌어들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Scripts.
최근 더욱 심해지는 일본의 우경화로, 보다 또렷이 그들만의 ‘제국주의’가 다시 연상되는 바, 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반일 정서’를 ‘항일 정서’로 수정합니다.
그리고 저는 무턱대고 일본인, 일본 연예인 싫어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문제있는 사람도 아닌데, 괜히 그럴 이유가 없죠. 요즘 보니 아이즈원 꾸라, 북희, 다희 다 우리 아이돌과 다를바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노력하는 친구들이요. 트와이스 미사모도 마찬가지구요. 전 우리나라 포함해, 소위 표를 위해 정서, 이념 이런 것들로 장난질하는 ‘뺏지’들과, 그보다 더 설치는 ‘특정 집단’에 거부감을 갖습니다.
아래는 최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 보여서 추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