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이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일단 청자 입장에선, 더 정확하게는 크레딧 표기상 해당 뮤지션의 순수 창작곡으로 알고 들었던 입장에선 원곡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낄 배신감이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단 샘플링 = 표절’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는데,
첫째, 무단 샘플링과 표절은 각각 그걸 행하는 창작자의 의도가 엄연히 다르다.
표절은 작정하고 남의 것을 베껴서 자신의 것인양 둔갑시키는 게 목적이지만, 샘플링은 힙합음악을 완성하는 하나의 작법으로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표절엔 악의적인 변형이 가해진다.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베끼는 대상이 된 곡의 일부를 비틀기 마련이니까. 국내 가요계에 널린 표절 의혹 곡들이 증명하듯이 4마디의 멜로디 라인 중 한 마디 정도를 살짝 다르게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샘플링에선 원곡의 변형을 불허한다. 그 일부를 삽입하거나 다른 샘플과 조합하여 전혀 다른 곡으로 만들어내긴 할지언정, 따온 원곡의 부분 자체를 악의적으로 바꾸진 않는다. 이는 해당 곡이 샘플링 작법으로 완성한 곡임을 일부러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한국 힙합 곡에서도 들을 수 있는 (피치를 조절하거나 원본 그대로 인용된) 옛 소울, 펑크 넘버의 보컬 샘플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특히, 무단 샘플링 논쟁의 대부분은 해당 아티스트 측이 비용 문제 탓에 정식 클리어 절차를 밟지 못했거나 애초에 미처 체크하지 못하여 발생한다. 표절의 경우처럼 원저작자의 음악을 교묘하게 베껴서 자기 것인양 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소리다. 부디 곡해는 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해서 무단 샘플링은 아무 문제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저작물 일부를 허락 없이 따다 썼다’는 결과적 측면에서는 모두 같다고 생각해버릴 수 있겠으나 둘 다 창작자의 양심, 즉, 어떤 의도로 접근했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걸 고려하면, 무단 샘플링과 표절은 다른 영역에서 논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국외에서도 표절과 무단 샘플링은 법적으로 그 손해배상 규모에서는 비슷할지언정 엄연히 구분되어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무단 샘플링 = 표절’이라는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다음 사항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샘플링의 범위는 매우 넓다.
대개 주 멜로디 라인이 비슷하여 의혹이 불거지는 표절은 누가 들어도 원곡을 베꼈다는 게 드러난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샘플링을 인정하는 범위와 대상이 되는 부분은 매우 넓고 다양하며, 원곡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원곡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어느 부분이 샘플링되었는가에 따라 원곡이 영향을 끼친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표절에선 원곡의 영향력을 따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므로 단지 ‘무단’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절과 같다라고 얘기하는 건 샘플링 작법 자체를 매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혹자는 그렇다면, 무단으로 통샘플링된 곡만큼은 표절이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라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여기에 대한 답은 첫째 항목에서 설명으로 대신해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