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걸그룹 아이즈원의 미니앨범 4집 ‘One-reeler/Act IV’ 음반판매 초동결과가 나왔다. 35만5200여장. 이로써 아이즈원은 2020년 한 해 동안 낸 국내앨범 3장 모두 초동 35만장 이상을 기록, 역대 걸그룹 초동기록에서 1위 블랙핑크 뒤로 2, 3, 4위 모두를 차지하게 됐다. 물론 이번 앨범은 지난 6월 미니앨범 3집 ‘Oneiric Diary’ 38만9300여장에 비해선 약간 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1년간 국내 3컴백 피로감을 고려해보면 여러모로 대단한 선방이고, 저 판매량 뒤 ‘숨은 사연’까지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숨은 사연’은 사실 간명하다. 이번 미니4집은 중국 팬들의 공동구매 물량이 ‘급격히’ 줄어든 결과란 것이다. 지난 앨범에 비해 대략 7~9만장 줄어든 것으로 관찰된다. 기존의 절반 정도가 휘발됐단 얘기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중국 내 반한(反韓) 무드 심화를 들 수 있다. 지난 10월 중국서 방탄소년단의 밴플리트상 수상소감을 트집 잡으며 아예 정부 차원에서 반(反)한류 분위기를 조성한 후, K팝 음반구매에 대한 중국 팬들 열기는 한순간에 푹 꺼졌다. 이에 팬덤 내에서 대놓고 음반구매를 독려하며 경쟁시키는 ‘컴백축제’ 분위기도 크게 저하된 상태다. 눈치도 보이고 매국노(?) 취급받을 위험도 생겼기 때문. 그 탓에 10월 이후 중국 측 음반 공동구매량은 팀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분위기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배출 기한 한정 그룹’의 한계점이 온 정황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배출 팀들은 특성상 소위 ‘악개(악성 개인 팬)’들을 기본전제로 깔고 간다. 이에 아이즈원 국내 팬덤은 애초 이 점을 가장 피해야 할 위험요소로 보고 팀 결성 당시부터 매우 강압적 수준의 ‘올팬’ 기조를 못 박고 통제해온 바 있다. 그러나 중국 팬덤은 늘 분위기가 달랐다. 굳이 오디션 프로그램발(發)이 아니더라도 애초 팀 멤버들 개인 팬 기조가 강하고, 심지어 멤버들을 인기순으로 줄 세우기도 좋아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한국 팬덤 분위기에 영향받아 기본적 올팬 기조는 성립됐지만, 내년 4월로 예정된 아이즈원 활동기한이 가까워져 오면서 그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무너지고 있다. 기한연장 불가를 기본전제 삼으며 ‘악개’들이 판치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개인 팬들끼리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룹 전체 활동에 사사건건 트러블이 일어나고, 이번 음반 역시 곧 사라질 팀 음반 사주느니 각자 ‘최애’ 멤버 생일선물 서포트에 돈 쓰겠단 분위기로 흘렀다.
전반적으로 위 두 요소가 이번 아이즈원 앨범의 중국 측 음반구매량 저하 주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비춰 생각해봐야 할 논점은 또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아이즈원은 중국서 7~9만장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이전과 ‘비슷한’ 초동을 보여줬단 점이다. 그럼 일본판매량까지 빼고 봤을 때, 아이즈원 국내 팬덤 물량은 25~27만장가량 된다. 국내에 이런 걸그룹 자체가 없다. 무려 68만9000여장으로 걸그룹 최고 초동기록을 보유한 블랙핑크조차 중국 등 해외각국 구매량을 빼고 나면 이에 크게 못 미친다. 그만큼 아이즈원 국내 팬덤 화력은 걸그룹으로서 따로 연구와 관찰이 필요한 정도란 얘기다. 대체 아이즈원의 ‘무엇’이 유독 ‘국내’ 소비층을 이토록 고조시키고 결집했느냔 것.
일단 ‘프로듀스 48’은 당시 이전 시즌들보다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는 시즌이었으니 딱히 ‘방송그룹’ 효과를 거론하긴 힘들다. 특히 ‘방송그룹’ 화제성 차원으론 데뷔 당시보다 4배 이상 성장한 현 음반 초동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데뷔 후 일정 기간이 흐른 뒤부터 팬 유입이 급격히 늘었고, 이번 컴백만 해도 국내만 따지면 데뷔 2년을 넘어선 현시점까지도 계속 유입이 확인되는 실정.
이에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많다. 팀 멤버들 개개인 매력이나 노래와 뮤직비디오 포함 전반적 활동 퀄리티 등 기본요소들을 제외하고 봐도 그렇다. 먼저 소속사 측 유튜브 기반 자체 콘텐츠 ‘물량 공세’도 생각해볼 만하고, 프라이빗 메일 등 커뮤니케이션 상품으로 팬덤의 애착과 결속을 다지는 전략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쩌면 아이즈원의 독특한 콘셉트 탓일 수도 있다. 걸그룹 시장이 걸크러쉬와 큐트로 콘셉트가 양분된 현시점, 대인원이 칼군무로 표현하는 ‘우아함’이란 독특한 지점을 잡아내 데뷔 초부터 꾸준히 같은 길을 걸어온 점 말이다. 동일노선에선 아직도 경쟁 주자가 따로 없을 정도 희소성이 존재한다. 물론 이 밖에도 짚어볼 만한 지점들은 많을 것이다. 연구 가치가 있다.
한편, 중국 K팝 팬덤에 대한 입장 역시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 지난해부터 시작된 K팝 음반판매 ‘커리어 하이’ 열풍은 근본적으로 해외 팬덤, 그중에서도 중국 팬덤 지분이 절대적이었다. 그 덕에 많은 팀이 오프라인 활동이 막힌 2020년 한 해를 나름대로 방어할 수 있었다. 특히 한한령(限韓令) 이후 생겨난 흐름이기에 또 다른 돌파구로 인식되곤 했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문화산업에 대한 정치·외교적 리스크가 사실상 일본 이상으로 크고, 팬덤 분위기 역시 어떤 식으로든 통제될 수 없는 분위기란 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글로벌 SNS마저 정상적으로 접속 불가능한 통제국가란 점이 치명적이다. 나아가 지금과 같은 중국의 한류 탄압은 현재 국제정세대로라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소한도 중국시장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짠다는 발상은 여러모로 위험해진 시점이다. 중국 팬덤 ‘입맛’에 맞춰 활동방향을 재편하는 발상 역시 그렇다.
어찌 됐건 아이돌 산업은 궁극적으로 ‘팬덤 사업’이다. 아이돌이란 용어가 대중음악계에서 쓰이기 시작한 1940~50년대 프랭크 시내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시절부터도 그랬다. 어디까지나 ‘특정 계층’에만 열광적 반응을 얻어내는 아티스트들을 가리켰다. 거기다 코로나19 판데믹이 최소 내년 한 해, 상당 부분 후년까지도 영향을 줄 것이라 예측되는 현 상황이라면 더더욱 팬덤 역할은 중차대해진다. 음반을 사고, 굿즈를 사고, 온라인 콘서트를 결제해줄 팬덤만이 아이돌 시장을 방어해준다. 결국 모든 팀이 ‘팬덤형 전략’으로 재편돼야 할 지금, 그를 뒷받침해줄 여러 정보나 현상들을 연구해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