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지프로젝트, 프듀재팬 등을 비판할 때마다 '케이팝에 무슨 엄청난 노하우라도 있는 줄 아냐'라며 오버하지 말라는 분들 계신데.. 사실 맞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녜요. 물론 노하우야 있죠. 다만 제 말은 이 노하우가 무슨 유출이 되면 안 될 엄청난 것이라거나 영원히 꽁꽁 숨길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거죠. 애초에 문화산업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그렇게 별 거 아니면 왜 못 따라한대?' 그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생태.. 일본의 특촬물을 예로 들면, 일본에선 자국 SF영화의 퀄리티가 한심하면 '무슨 가면라이더냐?'소리가 나옵니다. 비록 특촬물 대국이지만 업신여기는 건 저기도 똑같아요.
근데 그러한 특촬물을 우리는 잘 만들지 못합니다. 그나마 나오는 것들 보면 아시겠지만 전투씬이라든지, 거대전(로봇)이라든지, 기타 앵글 등.. 차이가 많이 나요.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정도 수준이면 이런 거 당연히 일본보다 잘 만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결국 생태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가면라이더, 슈퍼전대(파워레인저), 울트라맨 등 수많은 특촬물들이 있고 이것들은 반 세기동안 시리즈로 군림했습니다. 즉 해마다 새로운 작품들이 나오고 완구, DVD, 피규어 등의 파생상품이 나오며, 이를 커버할 엄청난 구매시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작사가 큰 이득을 취하고 다음해에 또 다른 작품을 만들죠.
반면 우리나라는 시리즈는 커녕 단발성 작품도 가뭄에 콩나듯 나오고 이 마저도 수익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제작을 하려해도 협찬받을 곳이 없어서 중국에 기웃대는 상황이고요. 즉 저들의 노하우가 엄청나거나 우리의 기술이 너무 떨어져서가 아니라 시장의 생태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안 좋은 사이클이 계속 도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동남아든 중국이든 아무리 케이팝을 모방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거예요. 왜? 걔네 나라는 시스템이 받쳐주질 않으니까.. 일본 특촬물 산업이 반세기동안 만들어져왔듯이, 우리의 케이팝도 멀게는 80년대, 가까이는 90년대부터 온갖 시행착오와 위기들을 겪으며 지금에 이른겁니다. 이런 생태는 단순히 돈ㅈㄹ이나 모방만으로 되는 게 아니죠.
문제는 니지, JO1등 요즘 화제가 되는 것들은 일본이라는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은 이미 오랜기간 아시아 팝문화를 주도했던 적이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메인스트림이 빙구가 되어서 그렇지 언더 뮤지션 팜이라든가, 장르 저변이라든가, 음향산업의 노하우라든가, 유통 시스템 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경계를 하는 겁니다. 왜? 이런 나라가 체질을 다시 바꾸면 우리의 위협이 될 게 뻔하니까요.
안타깝게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저들은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당장에 그 폐쇄적이던 쟈니즈가 세계를 목표로 아이돌들을 데뷔시키고 있고요. 심지어는 유튜브와 SNS채널까지 만들었습니다. 이거 일본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의외의 사건입니다.
실제 쟤네 대중들 반응을 봐도 '쟈니즈 요즘 퍼포먼스가 많이 좋아졌다', '요즘 쟈니즈는 노래를 제대로 하네' 등 호의적인 반응 투성이입니다. 물론 우리 기준에선 웃기게 보이겠죠. 근데 어쨌거나 쟤들이 저렇게 느낄 정도로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는 건 분명합니다.
자 그럼 수준이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돈이 모입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확신이 현실이 되면? 체질은 바뀌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점은 니지프로젝트, 프듀재팬 등을 합작한 일본회사가 다름 아닌 소니뮤직, 요시모토흥업 등 저 나라 엔터산업의 거물들이라는 겁니다. 거물들이 움직였다? 이건 뒤에서 계산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BBQ가 치킨값 올리고 배달비를 받자 타 업체들도 그대로 따라갔듯이, 저들도 거물들이 움직이고 이득을 취하면 다른 것들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산업이라는 건 그런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당장에 쟤들이 체질을 바꿀 순 없을 겁니다. 아무리 연착륙 한다고해도 이 또한 오랜 세월이 걸릴테고, 무엇보다 쟤들도 저렇게 굳어진 게 십 수년에 인구 감소, 오타쿠화, 저변 정체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 틈을 이용해서 오히려 우리가 빨대꽂고 꿀빨 수 있다는 거죠.(이부분은 매번 다음에 기회되면 말해보겠다고 해놓고 미루네요 ㅠㅠ)
하지만 그렇다해도 후자보단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은 건 사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라지만 이는 분명 경계해야 함이 옳습니다. 저 자신도 매번 '케이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 엔터산업을 믿어보자'라고 긍정적으로 보자고 하지만, 사실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