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오면서 일부수정함
권헌익 교수도 1995년 하미라는 마을의 전쟁 당시 이장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장의 말로는 전쟁당시 하미에는 베트콩들은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조사를 해보니 공산주의자들이 아주 많았고 베트콩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증오비
파월 한국군이 초창기 주둔했던 베트남 동해안의 최남단 지역에서는 현지 주민들이 한국군을 칭송하고 이동하자 이동반대 시위를 할 정도였는데,[11] 이후 이동한 중동부 베트남 지역에서는 한국군 증오비가 설치되었던 기이한 현상의 원인이 이것이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한국군이 만행을 저질러 증오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북베트남에 충성했기 때문에 북베트남의 적인 한국군을 증오한 것이다.
한국군 위장
한국군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 역시 부족하다. 베트남의 전장은 남베트남군, 북베트남군, 미군, 한국군을 비롯한 연합군, 소수민족군, 민병대들이 얽히고설킨 전장이었으며 서로의 군복으로 위장하는 일이 잦았다. 부락인으로 가장하여 VC를 생포하는 한국군[12] 특히 당시 베트남에서 유행한 타이거 스트라이프위장복은 미군 특수부대부터 남베트남군, 한국군 까지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심지어 시장에서도 굴러다닐 정도였다. 누구든지 돈만내면 입고다닐 수 있었던 것으로 심지어 북베트남군도 애용하여 2010년대인 현재 북베트남 특수부대도 여전히 그 위장복 색상과 패턴을 사용중이다. 이런 판국에 학살한 주체가 누군지 식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13] 이러한 상황에서, 월맹과 베트콩들도 양민이나 포로학살에 대해 깨끗하지 못했다. 베트콩 경우는 "공포 정책"을 실행하며 친미/친정부 마을에서 인민재판이나 학살을 벌인적도 있으며 구정공세 당시 월남 고위간부나 군경의 가족들을 몰살하고 다녔다.관련 사진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진[14] 후에(Hue)도시 경우는 베트콩들과 월맹군에게 장악당한후 수천명의 포로들, 민간인들이 고문이나 강/간당한후 학살당했고 또 수천명이 강제 월북당했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이 사건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숫자를 축소시키고 있어 해외 망명한 베트남인들에게서 진실규명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한국군 군복만으로 한국군 학살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퐁니-퐁넛 학살관련 미군 조사 문서를 보면 베트남군 민병대와 남베트남군 증언으로 베트콩들이 한국군 얼룩무늬 군복이나 월남군의 군복을 입고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http://vietnamvoices.org/wp-content/uploads/2015/10/US-Army-IG_ROK-Marines_Report_1969.pdf [15]
지금도 한국어 위키백과를 살펴보면 십수 개에 달하는 한국군의 베트남인 '학살'사건에 대해 적혀 있으며 총합 학살 카운트가 무려 수천 명 단위에 이른다. 이 문서들을 다 믿기 힘든 이유는 일단 영문 위키백과등에 올라와 있는 한국군의 학살 관련 항목과 숫자의 근거가 베트남이나 미국 측 자료도 아니고 한국군이 학살을 했다고 주장하는 꾸준글을 쓰는 한국인들 출처다. 그것도 원문 출처 상당수가 구수정과 한겨레 신문이고, 아닌 것들도 대부분 베트남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한인 단체 사람들이 쓴 책이거나, 마을에 조성된 증오비뿐이다.
참고로 월남전 기간 동안 최고로 유명한 학살 사건인 미라이 사건 당시 사망자 수가 300~500명 추산인데, 학살을 실제로 한국군이 수도 없이 벌였다면 선전거리 수집과 심리전에 필사적이던 당시 베트콩이나 북베트남 그리고 현 베트남 정부가 자초지종과 학살 규모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대형 사건이 여럿 터졌다면 베트남전쟁 당시에 남베트남 전역에서 한국군 몰아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도 남을 대 사건이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반전여론을 지지하며 베트남 전역을 들쑤시고 다니던 미국 언론부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미라이 학살을 예로 들자면 미라이 학살 이후로 베트남전에서 미군의 이미지는 완벽히 쓰레기로 전락해서 전쟁 지속의 의지와 여론마저 바닥으로 끌고 갔다. 학살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으면 기밀로 남기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이미 예전에 다 알려져서 이제와서 발견될 것도 없다.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투입한 한국군이 그런 악행을 베트남 전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이고 다녔다면 이미 진작에 미라이 학살 사건의 여파 뺨치는 대특종이 되었을 것이란 말.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몇 명의 생존자들과 기념비 혹은 추모비 이외에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학살의 흔적은 하다 못해 유골과 전투 흔적 하나 존재하지도 않는다.
당연하지만 이와같은 부분에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는 바가 많습니다. 애초에 확인수치가 수백명인데 수천명으로 뻥튀기된것 조차 우리나라가 얼마나 과민반응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바죠.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대해서 자세하게 논의하게되면 위와 같은 항목도 빠질 수 없게됩니다.
우리가 한짓이야 사과하면 그만이지만 안한짓마저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당연하지만 기껏 자세하게 쓴다고 해놓고 간략하게 쓴것만 못한 상황이 나오는겁니다.
베트남 반응만 봐도 우리나라가 un 군이나 중국군에게 학살에대한 책임을 묻지않은것과 비슷한 반응인데 유독 한국인만 난리치는것 뿐입니다.
굳이 베트남전쟁 이야기 꺼내는 사람들은 정치적의도가 있거나 아니면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여 일본용서하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싶은거겠죠.
그냥 베트남전쟁 이야기는 꺼내지않는게 좋고 상대방이 이야기했을때에나 의도치않게 발생한부분 미안하다 이한마디정도면 끝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