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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07 23:22
성경 교리의 오류들이 다 해결되었다면 이것 좀 설명해주세요.
 글쓴이 : 띠로리
조회 : 2,626  

지난 번에도 올렸던 글입니다. 이 게시판에만 세 번째 올리는군요. 지난번보다 버전업 되어 41번 문항이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 해봤냐고요? 지난 번에 말했잖아요. 초등부 시절부터 시도 성경퀴즈 대회도 나가고, 교회 목사님들은 물론 CCC 간사님들도 혼 빼놓고 다녔다고요.
제가 유년부였을 때, 담당 전도사님께 했던 질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식은 가인과 아벨, 셋이 전부였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었고, 가인은 누구를 무서워해서 하나님에게 생명을 구걸하였나요?' 라고...
그 때 전도사님 왈, '구약이 쓰여질 당시엔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분명 딸을 낳았겠지만, 그냥 아들들만 기록한 거야. 그리고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전도사님이 성경 다시 읽고 알려줄께~.'
그 다음에 전도사님이 알려줬는지 안 알려줬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중요한 건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저 정도 질문을 할 정도로 성경을 관심있게 읽었단 거지요. 같은 또레 애들은 그냥 단순히 읽기만 했는데, 전 10살도 안된 나이에 저런 걸 고찰까지 했다고요. 이런 사람에게 성경공부는 해봤냐니... 그저 웃지요.
 
그럼 원래 주제로 돌아가봅시다. 아래 성경 안에서 상충하는 구절들이 과연 어떻게 설명이 되는지 듣고 싶군요.
 
1. 신앙은 사람의 의지(자유의지)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vs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2. 네피림은 노아의 홍수 때 멸절했나? 살아남았나?
(창 7: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vs
(창 6:4) 당시에 땅에는 2)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민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3.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았는가?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vs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4. 아브라함의 자식은 몇 명?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vs
(창 16: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창 25:1~2)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5. 바스맛의 아버진는 누구?
(창 26: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vs
(창 36:2~3)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6. 모세가 바위에서 물을 낸 곳은?
(출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출 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vs
(민 20: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민 20: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7.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여도 되는가?
(삿 6: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왕하 20: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vs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눅 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8. 누가 다윗을 시험하였는가?
(삼하 2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vs
(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9. 솔로몬의 말 외양간의 숫자는?
(왕상 4:26) 솔로몬의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며
vs
(대하 9:25) 솔로몬의 병거 메는 말의 외양간은 사천이요 마병은 만 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10. 마아가(마가야)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왕상 15:1~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vs
(대하 13:1~2)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미가야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더불어 싸울새

11. 여호와는 이스르엘을 죽인 것 때문에 예후를 저주하였는가?
(왕하 10: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vs
(호 1: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12. 요아스는 어디에 묻혔는가?
(왕하 12:20~21)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그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더라 그는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vs
(대하 24:25)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13.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을 떠나 간 곳은?
(마 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vs
(눅 2: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눅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14.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음성은?
(막 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vs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5.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는가?
(요 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vs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눅 7: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6.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가?
(마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vs
(행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17. 예수님은 스스로를 위해 증언할 수 있는가?
(요 5: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vs
(요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8. 심판의 주체는?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vs
(요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19.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나?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vs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0. 사람은 행위로 심판받는가?
(마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vs
(시 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21. 예수님이 못박힌 날은 언제?
(요 19:14~16)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vs
(막 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 14장~15장은 최후의 만찬부터 십자가에 못박힐 때까지의 기록
*유월절은 1월 14일(레23:5), 무교절은 1월 15일(레 23:6)
두 구절을 이어서 보면 1월 15일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고, 1월 14일에 빌라도 앞에 끌려와 판결을 받음???
 
22.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받은 포도주는??
(마 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vs
(막 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vs
(눅 23: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vs
(요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23. 예수님의 십자가 상 마지막 말은?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vs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vs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24. 가롯 유다는 어떻게 죽었나?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vs
(행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25. 예수님의 부활을 본 여자들의 행적은?
(마 28:8~11)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vs
(눅 24:8~9)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vs
(막 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26. 바울은 예수님을 보았는가?
(고전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vs
(행 9:4~8)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27.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과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들었는가?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vs
(행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28.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는가?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vs
(행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출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행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29. 하나님의 언약은 완벽한가?
(시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vs
(히 8:7~8)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30. 하나님은 지치시는가?
(사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vs
(사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렘 15: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31. 노아의 방주엔 동물들이 몇 쌍씩 올라왔는가?
(창 6:19~20)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vs
(창 7:2~3)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32. 창세기의 두 개의 창조 신화
창세기 2장 4절 이전
vs
창세기 2장 4절 이후
 
33. 아히멜렉은 아비아달의 아들인가? 아비아달의 아버지인가?
(삼상 22: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vs
(삼하 8: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대상 24:6) 레위 사람 느다넬의 아들 서기관 스마야가 왕과 방백과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과 및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 앞에서 그 이름을 기록하여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서 한 집을 뽑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서 한 집을 뽑았으니

34.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을 때의 나이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vs
(창 11: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 11: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205-70=135세)
(행 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냈을 때는 135세.
 
35.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아딘 자손의 숫자
(스 2:1~2)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스 2: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vs
(느 7:6~7)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느 7:20) 아딘 자손이 육백오십오 명이요 

36. 아도니감 자손의 숫자
(스 2: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vs
(느 7:18)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칠 명이요 

37. 아하스는 어디에 뭍혔나?
(왕하 16: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vs
(대하 28: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8.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른 해는?
(왕하 8:25)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vs 
(왕하 9: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39. 아하시야가 즉위했을 때의 나이는?
(왕하 8: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vs
(대하 22:2)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40. 아얄론과 그 초원과 가드림몬과 그 초원은 어느 지파에게 돌아갔는가?
(수 21:23~24) 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목초지와 깁브돈과 그 목초지와 아얄론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vs
(대상 6:66) 그핫 자손의 몇 종족은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성읍을 얻어 영토를 삼았으며
(대상 6:69) 아얄론과 그 초원과 가드림몬과 그 초원이며 
 
41.
아간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수 7장 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vs
(수 7장 24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1)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수 22장 20절)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성경을 보면 노아의 홍수 이후로 연대가 쭉 서술됩니다. 이것이 정확히는 모세의 시기까지 시간의 경과가 정확히 기술되어있고, 약간 애매한 점은 있지만 솔로몬의 시기까지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아래에 적어보겠습니다.
 
 
(창 11:10~26)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12:3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창20:9, 창26:10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 홍수 후 2년 + 35년 + 30년 + 34년 + 30년 + 32년 + 30년 + 29년 + 70년 = 292년
 
 
 
 
(창 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 292년 + 100년 = 392년
 
 
 
 
(창 25:26)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 392년 + 60년 = 452년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452년 + 130년 = 582년
 
 
 
 
* (창 47: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출 12: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 582년 + 430년 = 1022년
 
  
 
(왕상 6: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 1020년 + 480년 = 1502년
 
  
 
성서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전이 세워진 시기는 기원전 957년. (바빌론 유수로부터 역산한 결과가 957년입니다.)
 
  
 
-> 1502년 + 957년 = 2459년
 
  
 
노아의 홍수가 있던 시기는 기원전 2459년, 즉 BC 25세기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BC 3000년께 황하 유역의 문명, BC 3000∼2500년 사이의 인더스강 유역의 문명, BC 3000년께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나옵니다.
 
 
 
고고학적으로 왜곡이 없는 한, 노아의 홍수 시기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문명이 존재해왔고, 계속 이어집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었다면 당연히 문명의 단절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특히 가장 많이 해독되어있는 이집트의 역사를 보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시기는 고왕조 시기이고, 유명한 피라미드들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지요. 노아의 홍수를 기정사실화 한다고 하면 피라미드들의 시간적 연속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노아의 자손들이 다시 이집트로 내려가서 폭풍 번식을 해서 머릿수를 불린 다음에 기존의 피라미드와 똑같은 형식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황하 문명 같은 경우는 상왕조 이전 시기를 선사로 보고 어떻게 쉴드를 칠 수 있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선사를 넘어 역사의 시기로 넘어왔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합니다.
  
예전에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분께서 데이비드 다운 이란 고고학자가 이집트 역사에 대한 반박을 했고, 이게 현재 고고학계에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여의도 국회 도서관까지 갔습니다. 근데 저 이름으로 된 자료 하나 얻지 못했습니다.
데이비드 다운이란 학자는 단지 인터넷에서만 나오는 유명인일 뿐. 그리고 무수한 블로그와 카페의 글들은 하나같이 동일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해봤지만, 결국 똑같은 글들만 반복적으로 개제되어있더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꿈에서 깨어난 어지러운 마음, 아무도 없는 그 길에 홀로 서서 바라봐, 마음 속 깊은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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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로리 15-01-07 23:43
   
아 참, 여호와란 것이 신학자인지 제사장인지가 경전을 읽다가 주인이라는 뜻의 '아도나이'의 모음 표기와 그 밑에 YHWH 라고 추가설명된 것을 보고 이 둘을 합쳐서 여호와라는 어이없는 이름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런 이유로 여호와보다는 야훼라고 발음하는 게 더 오류가 적은 표기이지만, 비기독교인들이 보통 야훼를 멸시의 뜻으로 쓰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YHWH라고 씁니다. 나름 존중해주는 의미로...

근데 이 글은 예전에 쓴 것이어서 그냥 여호와라고 표기해놨네요. 일일이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올립니다.
     
헬로가생 15-01-08 00:19
   
개독들은 기독경에 야훼의 이름이 크게 4가지로 포현되고 그 이유를 모르죠.
우리말로는 맘대로 뒤죽박죽이니까.
목사들이 설명도 안 해주죠.
적어도 영어로만 읽어도 Lord, LORD, God, GOD 로 나뉘는데
그 이유만 파고들어도 기독경의 형성 역사가 보이는데.
oldboy 15-01-07 23:46
   
개독들은 이런 글에는 모른척 합니다.
     
띠로리 15-01-07 23:49
   
이 글을 세번째 올리는데, 전의 두번은 댓글이 하나도 없더군요.
올드보이님 말마따나 불리한 건 모른 척 하는 듯 합니다.
제주바당 15-01-08 00:02
   
성경에는 서로 상반되는 구절들이 있죠. 그래서, 헬라어 히브리어 사본직역들을 보기도 하고 KJV를 보기도 합니다. 위에 글들을 다 보진 않았지만 대충보니 나름 대답할수있는것들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질문자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님은, 진실로 진리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면 지적호기심이 가득찬 사람일뿐입니까?  성경을 다 읽어보았다는 대학교수도 정작 참된 진리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정직하여 진리이신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다면 그리고, 성경이 진정한 진리라면 따르리라는 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십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수는 없지만 믿기에 충분할정도의 증거들을 주십니다. 하지만,  안다고해도 내인생은 나의것이라고 속으로 외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띠로리 15-01-08 00:12
   
20년 넘게 의심없이 교회 다니다가 기독교 말로는 시험에 빠져서 기독교를 등졌습니다. 허나 미련이 남아서 지식적으로 파고 들다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미련도 싹뚝 잘라버린 사람입니다.

현재의 저는 제주바당님께서 제시한 선택지 중에 하나를 꼽자면 지적 호기심이 가득찬 사람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신앙을 포기하기 싫어서 도마와 같이 증거라도 보여달라고.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보고 믿는 자보다 복되다고 했지만, 그런 복은 필요 없으니 믿음만 달라고 100일 기도 했을 때에도 증거를 보지 못했습니다. 제주바당님의 말대로라면 믿기에 충분할 정도의 증거들을 줬어야 했을텐데 말이죠.
          
빨간내복 15-01-08 01:31
   
쵝오십니다.. 이거 뭐 빼도박도 못하겟네여..;

뭐라고 더 반박할까요?

너무 궁굼할뿐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용비어천가 15-01-08 00:12
   
라면교를 믿으세요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라면교를 외면 못합니다
          
oldboy 15-01-08 00:24
   
저는 칙힌 + 쇠주 1 + 병맥3 교를 주로 믿습니다.

아....

칙힌은 빼고 쇠고기 육회라도 개념치 않으며 온갖 酒님을 마다치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酒님에 관한한 다원주의자거든요.
          
빨간내복 15-01-08 01:29
   
님 너무 웃깁니다 ㅋㅋㅋㅋㅋㅋㅋ
     
헬로가생 15-01-08 00:22
   
기독교인은 먼저
왜 누구는 마음이 정직하여 진리이신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다면 그리고,
성경이 진정한 진리라면 따르리라는 결심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졌고
또 누구는 내인생은 나의것이라고 속으로 외치는 사람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궁금해 해야겠죠?
     
횡령범 15-01-08 03:57
   
광신도?? 증거도 없는데 믿긴 뭘 믿어요 덜떨어진 사람도 아니고 원
제주바당 15-01-08 00:21
   
1번에 관해 답해 보겠습니다. 신앙은 확실히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 않습니다. 마귀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일, 자유의지가 침해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죄는 없겠지요. 조종당해서 죄를 지은 것이니까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서 택정하셨다고 증거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럼 무엇인가? 둘 다 맞습니다.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받는 것도 맞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말도 맞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해보면 이것이 참으로 진리인것을 체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기에 너무나 죄가 많고, 내 스스로 하나님을 깨닫기에는 너무나 무지한데 어찌하다 믿게 되었나? 스스로 감탄할때가 많기 때문이죠. 안티들은 이런 글을 보면 조소를 퍼붓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알미니안주의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한 칼비니즘 둘 다 맞습니다. 합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손뼉치는것과 같죠. 손뼉은 한쪽으로만 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영접 이 둘이 합쳐질 때 ,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 마음이 열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미리 아심으로 그를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성령님을 보내셔서 깨달음의 빛을 주시고 참된 회개와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한 설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확신하는 것은 창조주께서 계신다는 것과 성경말씀이 내 개인의 삶가운데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는것..세상 사람 아무 믿을 사람없어도 하나님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그리고,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영적 느낌으로 너무나 강하게 위로받고 사랑받았다는 것..이것은 성경말씀을 단순히 믿고 받아들일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안티들에게 다시 조롱을 당하겠군요.. 대답해 보고 싶은 다른 질문들이 몇개 있지만,..이만 줄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안티여러분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자든 비신자든,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과 은혜로 이 지구에서 공기를 호흡하며 물을 마시며 양식을 먹을 수 있으며 걸어다닐수 있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oldboy 15-01-08 00:24
   
하...

답 없네요.
     
헬로가생 15-01-08 00:25
   
"하나님은 결단코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무논리 인증입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때부터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습니다.
기독경을 읽었다면 이정도는 알터인데 말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니라

(시편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제주바당 15-01-08 00:35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자기의 길을 계획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수 있습니다. 헬로가생님이 댓글을 적을 때 조종당해서 글을 적지는 않았겠지요..

그의 걸음을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길을 만드시고 인도하시지요. 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 확장하면 천국의 길과 지옥의 길.. 사람이 자기 맘대로 계획하고 행동하는 자유의지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의 계획대로 되지 않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아도 자신의 계획대로 잘 되어 불의와 불법을 행하면서도 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나, 죽은 이후에 한 사람은 힘들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더욱 굳은 신앙속에 천국에 들어가는가하면 후자의 사람은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기도 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이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창조의 섭리로 두신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뜻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죠.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하신 뜻을 두셨고, 각 사람에 맞는 길을 두셨습니다. 다만, 사람이 그 뜻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의 뜻대로 살려고 하죠.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 입니다. 교회다니는 사람에게도 이것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장로는 크게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참된 신앙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적을 너무나 가혹하게 대하였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죠. 자신의 자유의지로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두신 선한 뜻은 거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앞에서 자복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바래봅니다.  헬로가생님도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그분께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헬로가생 15-01-08 00:51
   
제가 순종 싫다면요?
그래서 제가 지옥에 간다면?
창세기 때 야훼는 제가 지옥에 갈 걸 알았나요 몰랐나요?
               
무엇일까요 15-01-08 00:53
   
제주바당 //
쪽팔린줄 모르는 인간이네.
지 종교 쉴드 친다고
성경도 지 멋대로 해석하는
쓰레기 개독 모습 또 보네.
양심이 있으면 니가 쓴 글 다시 봐라.
궤변도 분수가 있지. 한심한 개독님.
               
띠로리 15-01-08 01:14
   
밤이 깊었으니 마지막으로 쓰고 자러 가겠습니다.
댓글 다시면 내일 시간 날 때 들어와서 볼게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 이 부분이 자유의지입니다.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니라 -> 인도한다는 것은 이끈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야훼의 뜻대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보다 자연스럽습니다.

더 자세히 볼까요? 계획할지라도... '~ㄹ지라도'는 사건을 전환시키는 접속사입니다. 영문성경에서는 But이 쓰입니다. (KJV, NIV 성경 모두 But을 씁니다.)
제주바당님께서 이미 앞부분이 자유의지라는 것을 인정하였다면 뒷부분은 자유의지와 반대되는 내용이 오게되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영문 성경을 가져오겠습니다.
The steps of a {good} man are ordered by the Lord: and he delighteth in his way. -KJV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NIV

order, make... 명령하다, 지시하다, 만들다 란 뜻이지요? 역시 자유의지와는 정반대되는 구절입니다.
                    
아프로디테 15-01-08 02:43
   
자유의지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의지이고 상황의 의사결정의 선택의 자유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이끄십니다. 어디로 이끄냐면 하나님께지요. 영생과 구원과 삶의 길이지요. 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이끄는 길을 선택할지 아니면 자신이 가고 싶은 길로 갈 지는 본인이 선택하는거죠.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뒷구절이 영어성경에 but the Lord direct his steps 라고 되있네요 direct 는 방향을 잡다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 자기마음대로 길을 가도 하나님은 자신에게 오는 길로 방향을 잡아줍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인간의 몫이죠.

그리고 그 다음에 제시하신 구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려는 의미가 되려면 최소한 ordered 대신에 forced 정도로 표현되야합니다. order 는 누구나 어길수 있기 때문이죠. 고딩때 어머니가 공부하라 매일 command 내려도  그 말 들으셨나요? order는 command보다 약한 명령어입니다.
                         
띠로리 15-01-08 10:36
   
진정 이끌다와 본인이 선택한다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위화감을 못 느끼시나요?

A man's heart deviseth his way: but the Lord directeth his steps. -KJV

In his hear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ths steps. -NIV

방향 잡아준다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터치를 한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확실히 뜻이 약하죠. 하지만 NIIV 성경으로 볼 땐 확실합니다. 그의 걸음을 결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 성경의 공통된 뉘앙스를 본다면 단지 방향설정만 해준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같아보입니다.



oder and command
모두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남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을 나타낸다.

order명령[지시]하다:

The company was ordered to pay compensation to its former employee. (그 회사는 전(前) 직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Come here at once!’ she ordered. ("당장 이리 와!" 그녀가 지시했다.)

command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명령[지시]하다: He commanded his men to retreat. (그가 부하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order or command?
order가 command보다 더 일반적인 말로서 부모, 교사, 정부 등 권위를 갖는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 command는 order보다 약간 더 의미가 강하고, 명령에 대해 약간의 반감이 있거나, 허용된다면 반대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단어는 보통 군대의 장교에 대해 쓰이고, 그 외에 아무 논란 없이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정상적일 수 있는 맥락 속에서 쓰인다. 부모나 교사가 하는 말을 이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일반적이 아니다.

order와 command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제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를 이용하는 게 더 객관적이고, 확실하다고 생각되어 인터넷에서 퍼옵니다. 둘의 차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빨간내복 15-01-08 01:34
   
그리고 하나 물어봅시다.. 그럼 하나님 안믿으면 지옥 가는거 맞는가요?

정확한 대답을 해주세여~

너무 궁굼합니다..
          
빨간내복 15-01-08 01:32
   
짝짝짝 쵝오십니다..

역시 이런 증거를 제시하시는데 개독들은 또 뭐라고 반박할까요?

궁굼합니다..
     
띠로리 15-01-08 00:41
   
띄어쓰기를 하셨으면 좋았으련만, 이 정도 답변도 감사합니다.

사실 어이 없는 대답들로 어그로 끄는 개신교인들이 많아서 여기 사람들이 개신교에 많이 민감하거든요.
그런 걸 감안하시고도 글 쓰신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강단이 있으신 분 같네요.

지금 말씀하신 건 자유의지론과 예정론에 대한 설명인데, 이 둘을 합하게 되면 전지전능과 관련하여 난감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걸 차치하고라도 YHWH가 모든 사람들을 가여워하고 사랑했다면 자유의지에 손대지 않더라도 환경을 변화시켜서라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집에 갓난아이가 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다치지 않게 강제로 옆에 붙들어맬 수도 있지만, 창의력을 위해서 풀어놓았습니다. 아이는 집 안 어디라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근데 집안이 넓다보니 아이에겐 위험요소가 많습니다. 특히 선반에 있는 화분은 아이가 쉽게 만질 수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화분이 떨어져 깨지고, 아이가 다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이걸 인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분을 치우거나 아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겠지요.

YHWH의 모습은 아이가 화분을 건드리면 화분이 깨지고 아이가 다칠 걸 알면서도 화분을 치우지 않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그러고는 아이가 다쳐서 울면 '네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네가 화분을 깨서 다친 거니까 넌 혼나야 돼!' 라고 윽박지르는 부모와 같은 모습이죠.

YHWH는 모든 결과를 알고,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 행동마저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변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인구의 태반이 기독교도도 아닐 뿐더러,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즉,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그럼 왜 YHWH는 왜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구약 시대 때에는 직접 사람과 대화하고 심지어는 눈 앞에 나타나기도 했는데, 왜 지금은 안그러나요? 사도시대처럼 기적을 일으키며 공개적으로 병자들을 고쳐주지 않나요? 신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증거가 될텐데도 왜 안하는 걸까요?
되려 고고학적 발견이 하나둘 늘어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성경과의 괴리가 점점 많이 발생하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환경만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게좋게 환경을 조성해줘도 좋은데, 반대로 시험에 드는 환경만 조성해 준다면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아프로디테 15-01-08 03:05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드셨는지 생각해보세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매우 어렵다고 성경에 나오죠. 딴게 어려운게 아니라 진실된 믿음을 가지는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게 누군가 환경을 조성해주고 도와준다고 생기는게 아닌 것 같아요. 결국에는 본인 스스로 성경이나 경험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인간에게 명령하고 떠나셨죠. 가서 전하라고요. 저는 예수님이 이미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기에 최상의 환경을 조성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책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잖아요. 시험은 믿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역시 최상의 환경이죠. 저는 과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괴리 대신 경외감만 생기던데요. 저 원래 여기서 종교관련 댓글 안다는데 띠로리님 교회를 20년간 다니셨다는거 보고 댓글 답니다. 폰이라서 최대한 짧게 썼어요. 이해하시길
               
띠로리 15-01-08 11:03
   
성경에 믿음은 인간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죠.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회 설교 도중에, YHWH가 선택한 사람은 나중에 쳐서라도 자기 길로 돌아서게 한다는 설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몸 담았던 교회가 대한예수교 장로회였는데 합동측인지 통합측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글자도 비슷하고, 딱히 중요한 건 아니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기억이 맞다면 통합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장로교여서 예정론에 입각해서 저런 신의 개입을 설교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설교를 하더군요.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자유의지론과는 별개로 예정론 자체의 문제를 거론한 겁니다. 예정론대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YHWH가 사랑의 하나님이고, 진정 사람들을 사랑했다면 왜 환경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성경책 말씀하셨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구하긴 쉽죠. 하지만 그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다 그랬을까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던 중세시대 유럽만 해도 성경은 외부로 반출도 안되었고, 모든 성경은 평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던 라틴어로 했습니다. 지금도 경제력이 상위에 있는 나라들 중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들만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구입의 편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성경이 과연 믿음을 갖게 해주느냐? 하는 문제가 선행되어야 하겠죠. 위에 지적한 예들만 보더라도 성경 안의 모순들만 모아다놓은 겁니다. 성경과 다른 학문들의 충돌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의 모순들이요. 성경무오설(성서무류설)에 따르면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모순들을 융통성 있게 인정하려면 성경무오설을 파기해야 하고, 그렇다면 기독교의 근간 자체가 사라집니다. 성경 안의 모순들을 떠나서 물리학, 고고학, 천문학, 지질학 등 여러 학문들과도 상충되는데, 이것들이 과연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에 최상의 환경인지 되묻고 싶네요. 발제글의 맨 밑에 올린 노아의 홍수 연대는 고고학과 정면 배치되고, 우주의 나이, 지구의 나이, 그리고 여호수아, 히스기아 시대에 나타난 천체가 멈추는 현상은 물리학, 지질학, 천문학과 배치됩니다. 심지어 천체가 멈추면 지구의 자력 상실과 더불어 급격한 기후 변화로 순식간에 모든 생물이 멸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지요. 그런 이유에서 전 아프로디테님께서 과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경외감만 든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네요.
oldboy 15-01-08 00:54
   
제주바당// 님.....

주제에 대한 답을 좀 간략하게 한 이후에 본격적인 토론을 한번 해 보시지요.

이건 당췌 장문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괘변으로 일관하니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지 암담합니다.
     
헬로가생 15-01-08 00:56
   
진리는 간단하죠.
거짓말은 말이 길어지구요.
          
oldboy 15-01-08 00:59
   
내말이 바로 그겁니다.

항상 문제의 답에 대한 핵심은 항상 명확간략한것이거든요.
oldboy 15-01-08 00:55
   
아니면 소 단락으로 나누어서 반박을 해 볼까요?
띠로리 15-01-08 00:57
   
그나저나 이 글을 쓰게 만든 도미니크 씨는 어디로 갔나요?
     
oldboy 15-01-08 01:00
   
이미 심하게 발린 내상을 차유하려면 시간 좀 걸릴거라 봅니다.
     
헬로가생 15-01-08 01:06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구라가 들통나 사라지셨다는...
          
띠로리 15-01-08 01:18
   
oldboy, 헬로가생 // 전 진심으로 그 분이 어떤 대답을 할 지 진짜 궁금했는데, 실망입니다. 내일 3시간 기도하시고 신과 대화하고 돌아오실 것을 믿습니다!
          
빨간내복 15-01-08 01:3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간펜 15-01-08 01:12
   
제주바당님//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에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역사가 바로 이 주제에 대한 논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복잡한 문제입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순간 신의 전능함은 포기해야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마음이 어찌할지 모르고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건 신이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고, 전지하지도 않다는 뜻입니다. (전지와 전능의 상호 충돌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건 기독교의 근본 교리 자체를 흔드는 명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님처럼 장황하게 글을 쓰는 겁니다. 처음에 자유 의지를 인정한다면서도 뒤로 가면서 묘하게 논지를 흐트리면서 "그.런.데., 그게 알고보면 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거야"  -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창조의 섭리로 두신 뜻이 있다 (님의 표현대로) 라는 헷갈리는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이 "바운더리"를 정해 놓으신 거고, 인간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을 한다라는 논리인가요? 미국 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둘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말과 비슷하네요. 애초에 정해진 선택지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 정말 자유로운가요?
oldboy 15-01-08 01:22
   
제주님.... 님을 물어뜯기 위하여 수많은 늑대들이 대기 중입니다.

이미 빨간펜님께서 적절한 답을 주셨네요.

이것에 대한 님의 반론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님에 관한 사냥을 시작 하렵니다.
빨간내복 15-01-08 01:39
   
김정은을 왜 안죽이냐고?

개독교는 정의도 없나?

야훼는 옳고 그름도 모르나?

왜 이태석 신부같은분은 정의롭고 자기 한몸 받쳐서 여러생명 구한 사람은 암으로 빨리 데려가고

김정은은 왜 안데리고 가냐고? 2000천만 북한 주민들은 늘 배고픔과 기아와 가난으로 버티고잇는데

야훼는 이런거 안보이나?
점빵알바 15-01-08 01:47
   
치느님께선 항상 너희들과 함께하시니
카드나 현찰들고 빨리 각 지역에 분포된 지점을
전화 할 지어다.

치킨과 족발과 보쌈이 항상 너희와 함께할 지어다.
청백리정신 15-01-08 01:52
   
정말 흥미롭네요 진짜 10살때 부터 이런 심오한 의문을 가지셨다니;;;저도 같이 한번 생각해 볼께요
1.신앙은 사람의 자유의지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제가 말하는게 답이 될순 없다 생각하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려볼께요.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믿고자하는" 자유의지가 만났을때 신앙이 싹틀 수 있단 생각이 듭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란 사유는 종교적 사고의 출발점이잖아요..그리고 저는 다른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건 아니지만 동서 고금의 철학서를 띄엄띄엄 읽다보면  이런 의문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알게 모르게 심겨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고요..그런 점에서 볼때 사람은 이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상태로 만들어져 있단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신앙의 씨앗을 인간 모두에게 심어놓으신 거죠..하지만 가능성일 뿐, 모두 신앙을 가지게 되는것은 아니죠..예를 좀 들어보자면 현실에 너무 부대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같은 신앙의 출발점이 되는 의문을 미처 가지지도 못하는 분도 분명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아니면 이런 사유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생물학적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학문적으로 풀어나가시는 분도 계실꺼고요. 많은 다양한 접근법 중에서 종교적으로 접근하여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분들은 분명  자유의지로서 신앙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를 보자면 전 부모님이 두분다 카톨릭 신자셨고 다른 종교를 접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렸을때 부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솔직히 믿음은 안가더라고요 ..성경학교도 매년 갔지만 너무 지루해서 매번 창세기 조금 읽다가 말아버리곤 했어요..
어찌어찌 세례받고 신자 흉내는 내고 다녔지만 솔직히 신앙적으로 무의미한 세월이었다고 지금와서 생각 합니다 그저 주일학교 얘들이 불알친구들이니 타성적으로 다닌거죠..그러다가 논산 훈련소에서 갑자기 성당 말고 교회한번 가볼까 란 생각이 불쑥들어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신약 포켓북 하나를 받게됐어요...훈련소 자유 시간에 할게 없어서 그냥 심심풀이로 처음으로 신약을 끝까지 통독을 한번 하게 됩니다. 제 신앙은 그  때부터 였던것 같아요..예수라는 인간이 하는 말에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100% 는 아니였지만 제가 공감을 하게 되고 2번 3번 읽을 수록 첨엔 "에이 이렇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 사기당하고 이용만 당하고 늘 남밑에서 이해하는 입장을 유지 해야만 하는 인생이라면 그냥 안믿고 말지 뭐, 그래도 좋은 말이긴 하네" 정도였던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면서 "그래 예수처럼 모든것을 내려놓고 세상의 부와 권력보단 자신의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삶이 더 맘편하고 평화로운 삶일 수도 있겠다" 란 식으로 제 가치관에 변화가 찾아 오더라구요 자유시간 tv 에 나오는 소녀시대에 점점 초연해 지고 제시카 쳐다보는 시간에 신약 성경의 예수님의 말을 한번더 곱씹게 되는 절 발견하면서 제가 신앙을 가지게 되었구나란 생각을 어느순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제 경험에 비추어서 띠로리 님의 첫 의문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군대 입소전까지 없었던 신앙이 갑자기 생겼다곤 생각이 안들어요 분명 제 마음속 어딘가에 신앙의 씨앗이 있어서 제 자신의 의지로 물을 주고 거름을 주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 적으로든 신앙을 거부하고 있다가 군대라는 삭막한 환경에 의한 약간 강압적? 인 방법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물을 주게 되서 자그마한 싹이 텄단 생각이 드네요..하나님이 예비하셨던 작은 신앙의 씨앗에 "할게 이것밖에 없어서" 란 사족이 붙긴 하지만 제 자신의 자유의지로 물을 주게 되서 신앙이 생겼단 생각이 듭니다. ^^
     
oldboy 15-01-08 02:00
   
도를 아시나요?

저도 한때 활자중독이었던지라 장황스러운 글마저 좋아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력이 좋지 않아지니 장문의 글은 피하게 되더군요.

또한 그에 대하여 반박을 생각하면 손가락이 지레 겁먹고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님이 이기셨어요.
          
청백리정신 15-01-08 02:16
   
띄어쓰기 해볼께요 저 3시에 자는데 ^^*

근데 이거 수정이 왜 안되죠..이건 되는네 위에껀 안되네요?
     
빨간내복 15-01-08 02:17
   
사람은 이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상태로 만들어져 있단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신앙의 씨앗을 인간 모두에게 심어놓으신 거죠..

그런데 왜 저는 안생기는거죠?

제가 별종인가요?

하나님이 절 만들었다면.. 전 불량인건가요? 왜 절 불량으로 만드셧죠?

술먹고 만드셧나요? 아님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신건가요? 뭐라고 얘기라도 해주세요.. 하나님..
          
청백리정신 15-01-08 02:19
   
음..저랑 비슷한 환경에 처해지시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올드보이의 오대수 같은 환경에서 성격책 한권 있는 상황?
               
헬로가생 15-01-08 02:57
   
올드보이의 오대수 같은 환경에서 성격책이 아니라 코란이 있었다면?
                    
청백리정신 15-01-08 03:25
   
저같으면 이슬람 교도가...됐겠죠? 지금쯤 IS 한국 지부에서 청와대 테러 준비하고 있었을 수도....
우스갯 소리지만 모르겠네요 전 예수라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서 생긴 신앙이라..
하느님의 아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이라니 이것도 좀 아이러니 하네요 ^^
코란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자기 희생적인 교리라면 빠졌을 수도 있을것 같아요..
     
띠로리 15-01-08 11:38
   
첫 문단을 읽다가 인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니 동침신전앙와장이니 길게 썼지만, 두번째 문단을 읽고 이런 말들이 다 필요없는 것 같아 다 지우고 다시 씁니다.

청산리님의 종교관과 종교적인 생활을 반박하며 종교의 늪에서 빠져나오라 하지 않겠습니다. 종교가 진실이든 거짓이든간에 종교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 있고, 개인적으로 그 긍정적인 부분이 부정적인 부분보다 더 크다면 청산리님에게서 종교를 박탈하여 인생을 굳이 암울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종교 자체를 떠나서 예수란 한 인간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전 묵자와 같은 범애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적, 신화적 존재로서의 신의 지위는 죽은 다음에 제자들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서요.

진짜 예수란 한 남자가 한 말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좋은 말들이 너무 많죠. 그래서 저도 기독교를 안 믿는 지금도 가끔 그 구절들을 묵상하곤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당신의 속에 아직도 YHWH의 말씀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YHWH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 등등 말도 안되는 소리 하겠지만,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예수의 말 뿐만 아니라, 공자의 말, 부처의 말들도 선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이야기 한 것인데, 기독교가 진리라면 왜 YHWH는 모든 사람들에게 청산리님처럼 믿음의 씨앗을 주고,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진리로 유도하지 않았느냐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위에 갓난아이의 예에서도 들었지만,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도 충분히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지요.

만약 신의 전지전능을 인정한다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 결론이 너무 극단적이라 기분 나빠하실까봐 글로는 적지 않겠습니다. 허나 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 청산리님께서도 제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리라 생각되네요.
청백리정신 15-01-08 01:57
   
나머지 띠로리님의 의문을 나중에 천천히 또 생각해 볼께요...그나저나 정말 조숙 하셨군요;;ㄷㄷㄷ
     
띠로리 15-01-08 13:10
   
지금 이슬람애들처럼 어려서부터 성경 보고 읽고 자라서요...
심지어 친구들이 월리를 찾아라를 볼 때 그것과 비슷한 기독교 책을 봤지요.-_-
월리를 찾아라 같이 수다한 사람들 가운데서 주인공을 찾는 거였는데, 그림의 배경이 성경적 배경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 나오는 고센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열심히 노가다 하는 가운데에서 주인공 찾기 라든지, 여수가 당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그림에서 주인공 찾는  것 같은...

조숙했다기보다는 환경이 이렇다보니 기독교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거겠죠...
로스차일드 15-01-08 03:58
   
우주만물의 탄생부터 종말까지 모든것을 알고 모든것을 할수 있는 존재가 사람을 만들고 자유의지를 준 후 자기를 믿을지 말지 선택하게 한다음 믿는 놈은 천국을 보여주고 믿지 않는놈들에게 벌을 내린다면.

1.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누가 믿고 누가 믿지 않을것인지 이미 알고있다.
2.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놈은 고의로 믿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3. 전지전능한 창조자는 고의로 믿지 않는 사람을 만들었고 그게 누구인지 모두 다 안다.
4. 그러나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져서 선택권이 있다.

모든것을 종합한 신이 천지를 창조할때의 심리:
내가 이미 알고서 인간중 일부를 고의로 믿지 않도록 만들건 자유의지를 주어서 믿지 않는걸 선택하게 만들건 그건 별로 상관없어 ㅋㅋㅋ 하여튼 날 믿지 않는 새끼들은 존나 지옥불에 쳐넣어서 영원히 괴롭게 만들거야 ㅋㅋㅋ 자 이제 인간을 만들어볼까 ㅋㅋㅋㅋㅋ

난 이따위 신은 안믿는걸로 선택하겠어...
로스차일드 15-01-08 04:07
   
근데 진짜 하나님이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 지옥에 보낼 인간들을 왜 만들었을까... 지옥불로 영원히 괴롭힐 목적으로 인간을 만들었나보다.....
로스차일드 15-01-08 04:22
   
이것저것 다 필요없고 인간을 만들때 자유의지를 주고 신을 믿을지 말지 선택권을 준 다음 안믿으면 지옥에 보내 영원히 괴롭게 만든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이해가 안됨. 안믿으면 지옥에 보낼거면서 왜 선택하게 만드냐고. 이건 인간중 일부를 괴롭힐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했다고밖에 설명이 안됨. 이런 신을 과연 선하다고 할수 있나?
끄으랏차 15-01-08 04:57
   
징하네 정말 ㅋㅋ
order 한다고? ㅋㅋㅋㅋ

이미 따를지 안 따를지 알고 있고 마음대로 바꿀수도 있는게 전지전능인데
order???

이런 변명하시는 분은

댓글 다실때도 자기 손의 자유의지를 기대해서 order 하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댓글 달고 싶으면 니 손 움직이면 되요

지금 이 댓글을 적고 있는 제 손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뭘할지 어떡할지 어떻게 움직일지
모두 다 내 스스로가 알고 있고 하게 만들수도 안하게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손의 자유의지로 내가 원하는 댓글을 써주길 바라고 기다리다
안 쓰면 내 손을 벌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지전능이 아니란걸 먼저 인정하고
전지전능을 전제하는 성경의 거짓을 인정해야

이 모순은 해결됩니다.
타스 15-01-08 09:56
   
청백리님의 신앙은

 예수라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서 생긴 신앙이다 라고 하셨는데

 개신교계에서 그걸 blasphemy 라고 합니다

어찌 야훼의 아들 자칭 메시아님인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마당에 어찌  인간성을 운운합니까?!

 신성모독이고 이단적 발상입니다.
     
청백리정신 15-01-08 10:52
   
타스님...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는게 아니랍니다..다만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일생을 통해  보여주신 인간적인 면모들 때문인것은 맞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창녀나 가난한 거지들 천대받던 세관들 부정한병에걸린 병자들 같은 당시 사회적 약자들을 감싸주시지않고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처럼 부정하게 여겨 멀리하셨다면 전 그분을 사랑하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그분이 율법학자들처럼 안식일 이라고 율법에 얽메여 병자들을치료해 주시지않았다면, 사람을위해 율법이있다라고 말하시지않고 율법을 위해 사람이있다 라고 하셨다면 전 그분을 사랑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수께서 라자로의 죽음앞에서 마음아파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이 전 신답지 못하단 생각이 들기보단 오히려 더 사랑스럽습니다..
십자가 죽으심 전날밤 게세마니 동산위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인간적인 두려움에 순간 휩싸이신 나머지 하느님께 이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실순 없으시겠습니까 라고 청원 하는 모습이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으시고 결연히 죽음을 각오 하시는 모습이 전 신답지 못하단 생각 보단 존경스럽단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으로서 고문으로 만신 창이가 되신몸임에도  십자가를 메고가시며 몇번이고 힘에부쳐 쓰러지시고 겨우겨우 일어서시는 모습은 믿음이부족한 제 신앙 생활의 각성제가 되어줍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위대한 존재로서 우리앞에 나타나셨었다면 그분을 두려워 할지언정 이렇게 사랑하지는 못했을겁니다..
이게 신성모독이라시면 또그게 맞는거라면 오늘전 고해실에 신부님 뵈러가야겠죠 그리고 제 이런 사랑이 비뚤어 진거라고 신부님이 말씀하신다면 그냥 혼자 성경읽고 지내겠습니다
          
용비어천가 15-01-08 14:27
   
청백리님 님이 말하는건 개독경이 사실이라는 근거아래서 말하는거 같은데요


개독경이 사실이라는건 님의 망상이 전부겠죠


차라리 라엘리안을 믿으세요
아프로디테 15-01-08 15:11
   
회사라서 음슴체로 빨리 쓰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command, order 는 명령의 대상이 거부 또는 회피가 가능함 따라서 대상의 자유의지를 박탈할 수 없음. 설사 forced 라 쓰였어도 상대는 반항 또는 저항이 가능함 따라서 자유의지를 박탈 할 수 없음.

잠언 16:9 directeth, determine으로 해석된 히브리 단어 kuwn 의 영어 직역은
to be erect, to set up 으로 해석됨 따라서 히브리어 그대로 한글로 옮겨보면
"발걸음을 바로 세우는 자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해석이 가능함
이 문맥 어디에도, kuwn 어휘 자체에도 상대방의 운명을 결정하거나 자유의지를
훼손시키는 뜻은 담겨 있지 않음. 영어해석본은 KJV, NIV, NLT 등 다양함
그리고 해석이 조금씩 다름. 이를 가지고 성경의 오류로 몰아가는 것은
합당치 않음
     
아프로디테 15-01-08 15:11
   
두번째 댓글 답변

야훼는 인간과 교제하시려고 인간을 만드심, 사랑하시기에 자유의지를 주셨음.
인류 모두를 구원할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줄 필요가 없음.
또한 우리에게 가서 전하라는 지상명령도 필요 없음.
하나님의 선물은 구원이지 우리의 믿음이 아님

이집트 고대왕조의 연대 측정은 지금까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유적과
유물의 연대 측정에 기해서 그저 대략적으로 짜집기되어  추정된 연대임.

과학신봉자들이 믿는 방서성 탄소 측정법에 의해 재 계산된 최초 왕조의
시기에 대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052229415&code=930401

이 기사대로 만약 최초 왕조의 연대를 수정하게 된다면 그동안 짜집기 되었던
그 후대 왕조들의 통치 시기와 기간들이 모두 수정되어야 함. 저는 물론 탄소
측정법이 신빙성있는 연대 측정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이집트 왕조 연대는 잘못된 것이라는 방증은 될 수 있음.
딱 250년정도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집트 연대를 앞당기면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과 이집트 10대 재앙 등 귀신같이 성경과 들어 맞고
고고학적 증거도 풍부함.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피라미드 건설시기는
bc 2,600년 기사대로 최초 왕조 시기를 앞당기고 그 후대 왕조시기를 조정한다면
최소 최소의 피라미드는 대홍수 시기 이후 수백년 뒤에 건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띠로리 15-01-08 15:46
   
저도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만 쓰겠습니다.

יכין : 고치다, 준비하다, 설립하다, 수립하다 [yaki-n], 원형은 쿤인데, 히필(사역동사) 미완료 3인칭 남성 단수형입니다.

erect, set up... 똑바로 세우다라고 하더라도 세우는 주체가 신입니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의 행위에 개입을 하는 겁니까? 아닙니까?
글 서두에 쓴 이끈다와 자유의지가 공존하는 것에 대해 위화감이 안느껴지느냐고 했지요? 이 물음은 히브리 원어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koon(kuwn)도 분명 신이 손을 대는 행위입니다. 바로 세우든, 고치든 상관 없이요(물론 고친다는 뜻이 더 강하게 들리긴 합니다). 사람이 자유의지대로 행동하게 냅둔다는 게 아니고요.

노아의 홍수 이야기로 가보죠. 위에서 언급한대로라면 노아의 홍수는 bc 2459년 경에 일어납니다. 이것과 별개로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이집트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점이 300~400년이 뒤로 밀려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제1왕조가 세워진 것도 '최대 500년'의 편차가 있다고 합니다. 농경의 시작이 뒤로 밀린 것만큼 국가형성의 시기도 뒤로 밀려난 것이죠. 여기서 최대란 것이 중요한데요. 최대치가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기사에 나온 기존의 왕조설립시기에 문제가 된 500년을 대입해서 비교해봅시다.

이집트 최초의 왕인 아하의 즉위 시점은 기원전 3111년~3045년 - 500년 = 2611년~2545년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아닙니다.

“(정착 농경생활을 시작한 선왕조시대와 제1왕조 사이의 기간이) 기존보다 300~400년이 짧아졌다. 이집트는 이 기간에 어마어마한 사회변화를 이뤄내면서 빠르게 국가로 부상했다”
“이집트는 영토국가로 국가를 이룬 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흡사한 방식으로 국경선을 확립했다”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영토국가로 기틀을 갖춘 시기가 BC 2611년~2545년이 됩니다. (최대치이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이 앞당겨질 여지는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그 후인 BC 2459년 경이지요. 문명의 시작이라면 소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토국가라고 하면 어느 정도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적잖은 인구가 필요합니다.

아프로디테님이 가져온 기사를 바탕으로 재계산을 하여도 노아의 홍수 시기는 말이 안됩니다. 시기를 최대한 양보하더라도 이집트의 국가 형성 시기가 노아의 홍수 시기보다 짧게는 100년 정도 앞서서 고왕조가 세워졌고, 길게는 150년 넘게 차이가 납니다.  그것도 인류의 정착이 아닌 국가형성 시기로 봐서 말이죠.

ps. 간략히 쓴다 했던 게 여러번 첨삭을 하다보니 많이 길어졌네요. 전 또 나가봐야 해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아마 집에 가면 8시~9시 될 것 같은데, 댓글 다시면 그 이후에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프로디테 15-01-08 16:35
   
한가지 묻고 싶네요
1. 자유의지에 신이 조금이라도 개입한다면 그것은 자유의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라고 한다면 저는 더이상 토론을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어린 아들에게 억지로 밥을 먹을 먹이면(직접 개입) 아들의 자유의지가 사라지나요? 아들이 먹을 수도 있지만 뱉어 버리고 장난감방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는 이집트 최초 왕조는 당연히 대홍수 이후에 성립되었겠죠. 제가 기사를
끌어오 ㄴ이유는 지금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이집트 연대가 짜집기된 추정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 10재앙 사건은
현재 표본 이집트 연대에서 250년만 앞당겨도 성경과 합치된다는 것입니다.
                    
띠로리 15-01-08 19:31
   
두번째부터 이야기하죠
출애굽의 시기는 보통 아멘호텝2세, 람세스2세의 시기로 압축되는데, 당시 사회적 변화와 차기 파라오와 관련된 설화로 미루어 아멘호텝 2세 시기가 매우 유력합니다. 영화나 애니에서는 극적 장치를 위해 람세스 2세 시절(고대 이집트의 최전성기)에 출애굽이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학계에서는 람세스2세는 거의 폐기처분 수준이에요.
게다가 성경의 연도 계산과 비교해도 아멘호텝 2세 시절이 성경의 출애굽 시기와 비슷하게 떨어집니다. 250년 앞당길 필요 없이요.
그리고 이집트 역사는 기록이 고왕조 시절까지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에 크게 변동이 없을 겁니다. 1,2왕조 시기 정도가 고고학 자료가 부족해서 기타 방법을 추가해 연대를 추정하지만, 그 이후는 벽화나 기록 등으로 고대 기록 중에 가장 상세합니다. 게다가 고고학 중에 가장 오래된 분야로 이집트학만 200년 넘게 연구되었다는 강점도 있습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부분도 이 1왕조 이야기지요.

첫번째 질문으로 가볼까요?
1. 자유 의지란 자신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외부적인 요소들에 의한 방해를 받지 않고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2. 일반적으로 외적인 강제ㆍ지배ㆍ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

네이버 사전들에서 퍼왔습니다. 자유의지의 침해는 개입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선택을 제안, 추천하는 정도라면 침해된다 할 수 없으나, 행위를 하도록 강요한다면 명백한 침해지요.

위에 예로 든 아이를 다시 볼까요?
엄마가 밥 먹으라고만 하면 침해가 아닙니다. 엄마가 아이를 데려다가 식탁에 앉힌다면 침해입니다. 행동을 강제했으니까요. 나중에 아이가 음식물을 뱉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시간에 아이의 행동은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엄마의 의도대로 되었으니 명백한 자유의지 침해입니다.
제주바당 15-01-08 16:16
   
휴... 역시나 많은 댓글들이 있군요. 여러분들은 아마도 모든 것을 알게되어도 하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을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니, 많은 토론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네요.  한가지만 얘기하지요.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순간 전지전능은 깨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요? 그 생각은 다름 아닌 모든 것을 로보트화 프로그램화 시켜야 전능하다라는 생각인데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자유의지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님들이 이렇게 으르렁거리며 글을 쓰는것 자체가 자유의지의 표현아닌가요? 님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것 그리고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자유의지의 발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죠. 지정의를 가진 존재. 그리고, 법을 주셨습니다. 양심에 영혼에..그래서 인간만이 양심의 죄책감을 느끼죠. 어쨋거나 좋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가 무에 있나요? 죽어보면 다 알게되겠죠? 다만, 여러분들이 지옥에서 모든 것을 알고 고통하며 슬퍼할 것이 가련하네요..
     
띠로리 15-01-08 19:06
   
제대로 논쟁은 안하고, 지레짐작으로 당신들은 믿지 않을 사람들이니 그만두겠다고요?  최소한 남들이 수긍할 정도의 논박은 하고, 논쟁에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에도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하면 모를까... 재논박 받고, 그것에 대한 반론도 안 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단정하고 일방적으로 그만두는 모습이 그리 깔끔해보이지는 않는군요.

그리고 마지막은 다른 개신교인들처럼 지옥 이야기로 끝나는군요? 그저 씁쓸하기만 하네요. 예전엔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지옥이란 의미가 뭔지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끝내는 걸 보면 화가 났지만, 이젠 얼마나 할 말이 없으면... 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듭니다. 더불어 이런 끝맺음은 안티들의 조소만 불러온다는것도 아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론과 예정론의 충돌은 제주바당님도 잘 아실텐데, 여기서 재차 전지전능을 묻는 건 의아스럽습니다. 알미니우스를 안다면 왜 이 문제가 화두에 오르는지 알 거라 생각되는데요... 알미니우스가 왜 같은 신교 지도자인 칼뱅에 의해 이단으로 몰렸는지 그로부터 1000년 전에도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가 왜 똑같은 논쟁을 하고 펠라기우스가 이단으로 낙인 찍혔는지... 다 이 전지전능과 관련이 있는데 새삼스레 이 부분을 재기하니 당혹스럽네요.
     
헬로가생 15-01-08 21:58
   
헐... 떴다... 지옥협박
로스차일드 15-01-08 23:04
   
ㅋㅋㅋ 지옥으로 믿음을 강요하면서 '자유의지'로서 믿어야만 진정한 '믿음'이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라...ㅋㅋㅋ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낸다는게 자유로운 선택권인지 ㅋㅋㅋ  북한에서 투표를 하는데 김정은에게 반대하면 정치범수용소로 보낸다고 하면서 찬성표를 던지라고 하면 거기엔 '투표의 자유'가 없는겁니다. ㅋㅋㅋㅋㅋ 하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으르렁거린다는데 ㅋㅋㅋㅋ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려면 우선 주어인 하나님부터 증명해야 된다는걸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