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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23 09:57
조선은 아무리 집이 가난해도 집집마다 책이 있었다 ~
 글쓴이 : 별찌
조회 : 6,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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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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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201 19-07-23 10:00
   
신미양요 당시 프랑스선교사가 강화도를 점령하고서 이집저집 다둘려봐도 허름한 집에도 책만 가득했다고..
회고록에 기록이 남겨졌음.ㅡ..
libero 19-07-23 10:05
   
이런 위대한 민족을 반도의 반쪽에 가둔 신라에 분개하고, 중국을 사대하며 종국엔 일본의 침략에 맞서지 못한

조선의 무능함에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이궁놀레라 19-07-23 10:31
   
무능해서 망한 로마제국
무능해서 핵폭탄 2대 맞은 왜나라
무능해서 망한 진,한,당,송,청나라는 얼마나 무능하면 그렇게 빨리 망합니까?
님 의견이 좀 궁금하네요

님이 지능이 딸리는게 저는 좀 속상하고 부끄럽네요.
     
DarkNess 19-07-23 10:34
   
이것도 식민사관이죠
한국의 시각이 전혀 없는 일본의 비하만 가득한 조선은 무능했다 그래서 먹혔다
라는 이 어이없는 시각

게다가 신라시대는 발해도 같이 있던 남북국시대였습니다
역시 영토를 한반도 안으로만 제한하려는 식민사관입니다

패배주의에 갇히지 마시고 좀 넓게 바로 보세요
          
팬더롤링어… 19-07-23 10:54
   
자사람 아뒤를 확인해 보시길,,,,,충고는 사람에게 하는거지 벌레에게 하는게 아닙니다,,
     
호센 19-07-23 11:07
   
나도 중학교땐 이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 ㅋ

변한게 없네? 하긴 식민사관을 극복했다면 베충이도 안됬을 테니까
ㄴㅇㅀ 19-07-23 10:09
   
그래서 독립운동하던 분들이 교사가 되어서 개혁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교육집단 종교집단이 모이기도 좋고 정보교환하기도 좋고 반대로 일본놈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도 했죠
무릉도원인 19-07-23 10:11
   
와, 우리 민족의 DNA에 교육은 반드시 각인 되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자료네요. 좋은 내용 잘봤습니다.
호센 19-07-23 10:24
   
과거 어머님들 할머님들이 우격다짐의 무식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게 이 일제 치하의  단절된 교육의

대물림의 피해자들이셨던거
미친오리 19-07-23 10:26
   
이런 교육열 . . 멋지다
한수호 19-07-23 11:14
   
식민화가 시작 되고 (노동 착취를 위해서라지만) 침략자가 도입한 공교육에 대한 반발의 차원에서 저런다는 의미인거라.
이미 나라와 민족 다 까처먹고 하는 너무 때 늦은 반성 같은 거지, 앞선 교육열로 착각하면 안 됨.

근데...  이런 생각을 지배계층이 해야 하는데.
     
굿잡스 19-07-23 12:25
   
??

고구려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여 문지기·말먹이의 집에 이르기까지 거리마다 큰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르며 자제가 결혼하기 전에는 밤낮으로 이곳에서 책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  

-구,신당서 열전(列傳)-고려(高麗)  

고등교육 기관인 태학 뿐 아니라 1600여년 전  문무겸비  
세계 최초의 평민교육기관-고(구)려의 경당    

http://cafe.daum.net/hankookhistory/47AT/27?q=%BC%BC%B0%E8%20%C3%D6%C3%CA%C0%C7%20%BC%AD%B9%CE%20%B1%B3%C0%B0%B1%E2%B0%FC%20%B0%E6%B4%E7����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하고 문채가 넉넉하며,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굿잡스 19-07-23 12:32
   
황태연 교수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800년까지 중국 또는 동아시아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영국과 유럽을 앞질렀다. 그렇다면 조선은?     

◇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 비교     


- 조선(1780~1809): 쌀 8.2kg     
- 밀라노(1750~1759): 빵 6.3kg     
- 런던(1750~1959): 빵 8.13kg     

◇ 경작면적기준 총요소생산성 비교(1800년)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조선시대 한글 금속활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301&cid=58840&categoryId=58851

https://mbdrive.gettyimageskorea.com/index.php/image/main/?image_id=MXGA17000164
    

오늘날 책대여점같은 조선시대 세책점(아녀자도 소설을 읽고 오늘날 넷에서 댓글 달듯  

책에 댓글 놀이도 한)  

https://blog.naver.com/naverschool/221045767095

    
당시 이정도의 문명률(글을 아는 수준)이면 세계사에서도 탑클래스군요.  


엄청났던 조선시대 소고기 섭취량 Fact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3419515

한국 근대화, 일제시대 아닌 해방이 기폭제였다 

1910~2005년 사이 실질임금, 농업인구와 제조업 취업자수, 도시화율 등의 통계를 함께 견줘 보면, 남한에서 루이스 전환점은 1960년대 중엽께 나타났다. 1차산업 비중의 감소를 경제발전 척도로 본 클라크의 산업구조, 중공업 비중으로 경제성장을 분석한 호프만의 공업구조, 엥겔계수 등의 지표들 역시 1960년대 앞뒤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60년대 앞뒤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허 교수는 “해방과 함께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식민지적 경제구조란 소수의 일본인이 생산수단인 경지, 인적·물적 자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조선인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점차 배제되어 소작농이나 임금노동자로 전환됐고, 민족·학력 차별로 인한 식민지적 고용구조 탓에 임금노동자 가운데에서도 최저변을 형성하는데 그쳤다.>> 

해방은 이런 구조를 뒤바꾼 획기적인 일이었다. 해방과 더불어 교육은 양적으로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농지개혁은 일제강점기 자본주의적 외형 아래에서 오히려 확대 강화된 전근대적 소작제도를 일소해 농업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런 획기적 변화는 그 뒤 공업혁명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뤄진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으며, “조선이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이 모든 변화의 전제조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46151.html#csidx745a303ca274cee8315f8803d2c64f8
     
굿잡스 19-07-23 12:54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 조선 사회에서 문맹자들은 심한 천대를 받기 때문에 글을 배우려는 애착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도 조선에서와 같이 문맹자들을 가혹하게 멸시한다면, 경멸을 받게 될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


우리나라는 이미 당시 서구권에선 귀족조차 글을 제대로 쓰고 읽기 벅찰때 귀족뿐 아니라 서민을 위한

세계 최초의 문무겸비 교육기관을 시작으로 중세 고려도 이런 문화를 이어받아  조선 후기로 가면서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은 2만개 이상으로
이후 대한제국 시기에  교육령을 반포 기존 제도와 서구식을 결합 본격적 근대적 의무교육의 변화 발전의 초석이 되었군요.

그리고 조선시대 서당교육을 보면 단순히 암기식 위주가 아니라 오늘날 서구의 논술시험과 다르지 않는 바탕이 되는 자율 에세이등에 개인 맞춤과 도덕 교육도 겸비.

이런 바탕에서 오늘날 능력위주의 공무원시험같은 과거제에서 당시의 국제 질서나 현안에 대한 고난이도의 심도 깊은 통찰력과 사고 철학까지 묻는 논술형  문제들이 출제되군요.

<유럽의 바칼로레아, 공무원 시험등 인재 선발은 동북아 과거제의 영향>>  



그는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의 근대화에 성공한 지역은 서부 유럽과 북미, 동아시아에 불과하다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극서(極西)와 극동(極東)을 묶어 근대화 과정을 논한다.    

우선 서양에서 꽃핀 자유와 평등 개념, 자유시장, 공무원 임용고시, 관료제 등 근대화의 이념적 아이콘은 거의 모두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역으로 서구의 근대성은 유교를 발전시킨 동아시아에 이식됐고, 중·동부 유럽이나 중남미보다 큰 열매를 맺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극동의 구 유교국가들은 '준비된 근대국가' 또는 '낮은 단계의 근대국가'였다"면서 "극동과 극서는 시차를 두고 서로를 번갈아 깨워서 높은 근대화를 향해 함께 진보했다"고 역설한다.    

https://news.v.daum.net/v/20180226151424577
신의한숨 19-07-23 11:24
   
동네 노인네들 한글 교육을 시키셨던 울엄니가 그리워집니다.
페닐 19-07-23 11:44
   
아무리 가난해도 집집마다 책이있었다는건...

교육열도 교육열이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애 공부시킬 정도 여유가 있었다는 말도 됨

조선은 말년에 좀 망가져서 그렇지...생각보다 괜찮은 나라였음
카이사르98 19-07-23 11:44
   
북간도는  우리땅
뚜리뚜바 19-07-23 12:29
   
그래... 역사가 있는 민족이 그냥 모든걸 내줄수 있겠냐... 머리카락 하나도 내 뜻 내 의지로 떼어주리~!!
서울로 19-07-23 12:37
   
모처럼 정말 감명받은 글이였습니다.
오스프리 19-07-23 12:43
   
정작 그 우민화 정책은 본토에서 현재진행중 ㅋㅋㅋ
트레져sn 19-07-23 13:03
   
국뽕만 가득해서 무능했던 일제시대를 식민사관이네 뭐네 스스로 위로하면 그게 도움이되나??
국민들속에 영웅들이있고 혼은 살아있어도 사대부와 정부가 말아먹었으니 무능하지..
무능했던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정신이 필요하지 무조건 국뽕만 내세우면 그게 무슨 도움이되나??
현제든 미래든 잘못된점은 똑바로 인지하고 지금처럼 해쳐나가는 정신이 필요하지 오로지 내가 제일이다라는 어리석은 망상은 나라를 병들게한다 저들처럼...
     
굿잡스 19-07-23 13:07
   
하긴 자국 여성까지 아프리카 막장급으로 수십만을 인신매매 수출질 해서 무기 수입 전비 마련하든 버러지 전범 쨉이 수천년 미개 역사에 잠시 기고만장해서

아시아 태평양 수천만명을 학살 희생에  자국  국민까지  반자이 무대포 돌격에 가미가제로 옥쇄 쳐갉아 먹다 핵쳐맞고 지지 치든 비루한 쨉의 어리석은 망상이야 탈아급ㅋ

(제대로된 속죄나 역사적 성찰없이 전근대적 미개 막장짓거리에 아직도 미련을 못버리니 지금도 자국 국민을 개돼지 어쩌고 쳐하는  전근대적  정치인을 아무렇지 않게 뽑아주는 미개한 쨉 사회상하군. 전범 독재 아베 간바레~~ㅋ)
          
한수호 19-07-23 14:06
   
정확하게 댓글의 의도대로 걸려든 글이네요. 
...
               
DarkNess 19-07-23 14:49
   
뭐가 걸려들었다는건지...국뽕 국뽕 거리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네요
               
ㄴㅇㅀ 19-07-23 14:49
   
풉 걸려들긴 개뿔..
학생편람 19-07-23 14:13
   
어찌보면 당시 서당이 지금의 인터넷 커뮤니티랑 SNS 역할을 한 거네요. 독립운동가 분들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해충퇴치 19-07-23 17:14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과목이 쓰잘데기 없는 유교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mymiky 19-07-23 17:38
   
구한말 서당은 개량 서당입니다.

과거제도가 1894년에 폐지된뒤 서당은 유교경전만 가르쳐서는. 운영이 어려웠고

대한제국 교육령으로 근대식 공교육 개념이 조선에도 퍼지면서

개량 서당은 전통적인 한학과 함께..

한글.역사.지리. 수학. 실용 학문도 포함된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목들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