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평창이 고조선의 도읍이 된 적이 있었나?
도읍은 커녕 고조선의 영역권에도 속하지 않았음.
그렇다면 사서에 기록된 단군왕검은 남자였나? 여자였나?
현존하는 단군왕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의 문헌인데, 둘의 족보가 상이하긴 하지만 둘 다 단군을 사내아이로 기록함.
삼국유사는 다들 알다시피 환인의 아들로, 제왕운기에서는 환인의 손녀의 아들로 기록함. 즉, 단군이 남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단군설화의 근거 자체를 부정하게 되므로 근거토대가 없는 망상 밖에는 될 수 없음. 고대의 여성 군주가 있었다면 그건 단군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것임.
셋째, 석기, 청동기 시대의 고대사회에서는 모계 사회는 존재하였으나 모권사회는 밝혀진 바가 없음. 씨족 사회 규모에서는 모계가 모권이 될 수 있지만, 이때의 권력은 지금과 같은 권력이 아님.
꼴페미들이 이런 말 한다고 알아쳐먹을 두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지만, 위 세 가지 이유로 꼴페미들의 주장은 개소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