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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15 07:29
목넘이 마을의 개 <황순원>
 글쓴이 : 야구아제
조회 : 598  

 어디를 가려도 목(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을 넘어야 했다. 남쪽 만은 꽤 길게 굽이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 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 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남쪽 산목을 넘어오는 이들 이사꾼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서는 으레 서쪽 산 밑 오막살이 앞에 있는 우물가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 가는 것이었다.

 대개가 단출한(식구가 적은) 식구라고는 없는 듯했다. 간혹 가다 아직 나이 젊은 내외인 듯한 남 녀가 보이기도 했으나, 거의가 다 수다한(많은) 가족이 줄레줄레 남쪽 산목을 넘어 와 닿는 것이 었다. 젊은이들은 누더기가 그냥 내뵈는 보따리를 짊어지고, 늙은이들은 쩔룩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애들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여인들은 애를 업고도 머리에다 무어든 이고 있고. 이들은 우물가에 이르자 능수버들 그늘 아래서 먼첨 목을 축였다. 쭉 한 차례 돌아가며 마시고는 다시 또 한 차례 마시는 것이었는데, 보채는 애, 아직 젖도 떨어지지 않은 어린것에게도 물을 먹 이는 것이었다. 나지도 않는 젖을 물리느니보다 이것이 나을 성싶은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부르트고 단 발바닥에 냉수를 끼얹었다. 이것도 몇 차례나 돌아가며 끼얹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다 끝난 다음에도 애들은 제 손으로 우물물을 길어 얼마든지 발에다 끼얹곤 했다. 그러 나 떠날 때에는 여전히 다리를 쩔룩이며 북녘 산목을 넘어 사라지는 것이었다. 

 저녁녘에 와 닿는 패는 마을서 하룻밤을 묵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또 으레 서산 밑에 있는 낡은 방앗간을 찾아 들었다. 방앗간에 자리 잡자 곧 여인들은 자기네가 차고 가는 바가지를 내들 고 밥 동냥을 나섰다.

 먼저 찾아가는 것이 게서 마주 쳐다보이는 동쪽 산기슭에 있는 집 두 채의 기와집이었다. 그리고 바가지 든 여인의 옆에는 대개 애들이 붙어 따랐다. 그러다가 동냥 밥이 바가지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바가지 든 여인들은 이따 어른들과 입놀림을 해 봐야지 않느냐고 타이르는 것이었으나, 두 기와집을 돌아 나오고 나면 벌써 바가지 밑이 비는 수가 많았다. 이런 나그네들이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퍽 전인 아직 어두운 밤 속을, 북녘으로 북녘으로 흘러 사라지는 것이었다.

 어느 해 봄철이었다. 이 목넘이 마을 서쪽 산 밑 간난이네 집 옆 방앗간에 웬 개 한 마리가 언제 방아를 찧어 보았는지 모르게, 겨 아닌 뽀얀 먼지만이 앉은 풍구(바람을 일으켜 곡물에 섞인 먼 지나 겨, 쭉정이 등을 제거하는 농기구) 밑을 혓바닥으로 핥고 있었다. 작지 않은 중암캐였다. 그 리고 본시는 꽤 고운 흰 털이었을 것 같은, 지금은 황톳물이 들어 누르칙하게 더러워진 이 개는, 몹시 배가 고파 있는 듯했다. 뒷다리께로 달라붙은 배는 숨쉴 때마다 할딱할딱 뛰었다. 무슨 먼 길을 걸어온 것도 같았다. 그러고 보면 목에 무슨 긴 끈 같은 것을 맸던 자리가 나 있었다. 

 이렇 게 끈에 목을 매여 가지고 머나먼 길을 왔다는 듯이. 전에도 간혹 서북간도 이사꾼이 이런 개의 목에다 끈을 매 가지고 데리고 지나간 일이 있은 것 처럼, 이 개의 주인도 이런 서북간도 나그네의 하나가 아닐까. 원래 변변치 않은 가구 중에서나 마 먼 길을 갖고 가지 못할 것은 팔아서 노자로 보태고, 그래도 짐이라고 꾸려 가지고 나설 때 식구의 하나인 양 따라 나서는 개를 데리고 떠난 것이리라. 애가 있어 개를 기어코 자기네가 가 는 곳까지 데리고 가자고 졸라 대어 데리고 나섰대도 그만이다.

  그래 이런 신둥이 개를 데리고 나서기는 했지만, 전라도면 전라도, 경상도면 경상도 같은 데서 이 평안도까지 오는 새에, 해 가 지고 떠나온 기울떡(밀이나 귀리의 가루를 쳐내고 남은 속껍질로 만든 떡) 같은 것도 다 떨어져, 오는 길에서 빌어먹으며 굶으며 하는 동안, 이 신둥이에게까지 먹일 것은 없어, 생각다 못해 길 가 나무 같은 데 매놓았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먹일 수 있는 사람은 풀어다가 잘 기르도록 바라 서. 그래 신둥이는 주인을 찾아 울 대로 울고, 있는 힘대로 버두룩거리고 하여 미처 누구에게 주 워지기 전에 목에 맸던 끈이 끊어져 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래서 주인을 찾아 헤매다가 이 목넘이 마을로 흘러 들어왔는지도. 혹은 서북간도 나그네가 예까지 오는 동안 자기네가 가는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수 없음을 깨닫고 어느 동네를 지나다 팔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또 끼니를 얻어 먹은 집의 신세 갚음으로 잘 기르라고 주고 갔는지도. 그것을 신둥이가 옛주인을 못 잊어 따라 나섰다가 이 마을로 흘러 들어왔는지도.


 그러고 보면 또 신둥이 몸에 든 황톳물도 어쩐지 평안도 땅의 황토와는 다른 빛깔 같았다. 그리 고 지금 방앗간 풍구 밑을 아무리 핥아도 먼지뿐인 것을 안 듯 연자맷돌께로 코를 끌며 걸어가 는 뒷다리 하나가 사실 먼 길을 걸어온 듯 쩔룩거렸다.

 신둥이는 연자맷돌도 짤짤 핥아 보았으나 거기에도 덮여 있는 건 뽀얀 먼지뿐이었다. 그래도 신둥이는 그냥 한참이나 그것을 핥고 나서야 핥기를 그만두고, 다시 코를 끌고 다리를 쩔룩이며, 어 쩌면 서북간도 나그네인 자기 주인이 어지러운 꿈과 함께 하룻밤을 머물고 갔을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어쩌면 이 방앗간에서들 자기네의 가련한 신세와 더불어 길가에 버려 두고 온 이 신둥이의 일을 걱정했을지도 모르는, 이 방앗간 안을 이리저리 다 돌고 나서 그 곳을 나오는 것이었다. 

 방앗간을 나온 신둥이는 바로 옆인 간난이네 집 수수깡 바잣문(바자로 만든 울타리에 낸 사립문) 틈으로 들어갔다. 토방(마루를 놓을 수 있는 처마 밑의 땅) 밑에 엎디어 있던 간난이네 누렁이가 고개를 들고 일어서더니 낯설다는 눈치로 마주 나왔다. 신둥이는 저를 물려고 나오는 줄로 안 듯 꼬리를 찰싹 올라붙은 배 밑으로 껴 넣고는 쩔룩거리는 걸음으로 달아나 오고 말았다.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들이 끝난 곳에는 채전(채소밭)이었다. 신둥이는 채전 옆을 지나면서 누렁 이가 뒤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 다음에도 그냥 쩔룩거리는 반 뜀걸음으로 달렸다. 채전이 끝 난 곳은 판이 고르지 못한 조각뙈기 밭이었다. 조각뙈기 밭들이 끝난 곳은, 가물(가뭄)에는 물 한 방울 남지 않고 조약돌이 그냥 드러나는, 지금은 군데군데 끊긴 물이 괴어 있는 도랑이었다. 신 둥이는 여기서 괴어 있는 물을 찰딱찰딱 핥아먹었다.

 도랑 건너편이 바로 비스듬한 언덕이었다. 이 언덕 위 안쪽에 목넘이 마을 주인인 동장네 형제의 기와집이 좀 새(사이)를 두고 앉아 있었다. 이 두 기와집 한중간에 이 두 집에서만 전용하는 방 앗간이 하나 있었다. 신둥이는 이 방앗간으로 걸어갔다. 그냥 쩔뚝이는 걸음으로. 그래도 여기에 는 먼지와 함께 쌀겨(쌀을 찧을 때 나오는 가장 고운 껍질)가 앉아 있었다. 신둥이는 풍구 밑을 분주히 핥으며 돌아갔다. 이러는 신둥이의 달라붙은 배는 한층 더 바삐 할딱이었다.

 신둥이가 풍구 밑을 한창 핥고 있는데 저편에서 큰 동장네 검둥이가 보고 달려왔다. 이 검둥이가 방앗간 밖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향해 그 윤택한 털을 거슬러 세우면서 이빨을 시리 물고 으르렁댔을 때, 신둥이는 벌써 이미 한 군데 물어뜯기우기나 한 듯이 깽 소리와 함께 꼬리를 뒷다리 새에 끼면서도 핥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검둥이는 이내 신둥이가 자기와 적 대할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챈 듯이 슬금슬금 신둥이의 곁으로 와 코를 대 보는 것이었다.
신둥이가 암캐인 것을 안 검둥이는 아주 안심된 듯이 곁에 서서 꼬리까지 저었다. 신둥이는 이런 검둥이 옆에서 또 자꾸만 온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그러나 핥는 것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신둥이는 풍구 밑이며 연자맷돌이며를 핥고 나서 두 집 뒷간에도 들렀다 와서는 풍구 밑에 와 엎디어 버렸다. 그리고는 절로 눈이 감기는 듯 눈을 끔벅이기 시작했다. 점점 끔벅이는 도수가 잦아 져 가다가 아주 감아 버리는 것이었다. 검둥이가 저만큼 떨어져 앉아서 이편을 지키고 있었다.

 그 날 저녁때였다. 큰 동장네 집에서 여인의 목소리로, 워어리워어리 하고 개 부르는 소리가 들 려 나왔다. 검둥이가 집을 향해 달려갔다. 신둥이도 일어났다. 그리고 아까번에 핥아먹은 자리를 되핥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둥이는 무엇을 눈치 챈 듯 큰 동장네 집으로 쩔뚝쩔뚝 걸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대문에서 들여다뵈는 부엌문 밖 개 구유(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나무 그릇)에는 검둥이가 붙어 서서 첩첩첩첩 밥을 먹고 있었다. 신둥이는 저도 모르게 꼬리를 뒷다리 새에 끼고 후들후들 떨면서 그리고 가까이 갔다. 그러나 신둥이가 채 구유 가까이까지 가기도 전에 검둥이는 그 윤택 한 털을 거슬러 세우며 흰 이빨을 시리 물고 으르렁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신둥이는 걸음을 멈 추고 구유 쪽만 바라보다가 기다리려는 듯이 거기 앉아 버렸다.

 좀만에야 검둥이는 다 먹었다는 듯이 그 길쭉한 혀를 여러 가지 모양의 길이로 빼내 가지고 주둥 이를 핥으며 구유를 물러났다. 신둥이는 곧 일어나 그냥 떨리는 몸으로 구유로 가 주둥이부터 갖다 댔다. 그래도 밑바닥에 밥이 남아 있었고, 구유 언저리에도 꽤 많은 밥알이 붙어 있었다. 신둥이는 부리나케 핥았다. 그러는 신둥이의 몸은 점점 더 떨리었다. 몇 차례 되핥고 나서 더 핥을 나위가 없이 된 뒤에야 구유를 떠나, 자기 편을 지키고 앉았는 검둥이 옆을 지나 그 집을 나왔다.

 신둥이가 다시 방앗간을 찾아가는 데 개 한 마리가 앞을 막아섰다. 작은 동장네 바둑이였다. 신둥이는 또 겁먹은 몸을 움츠릴 밖에 없었다. 바둑이는 신둥이 몸에 코를 갖다 대었다. 그러자 이 번에는 신둥이 편에서 무슨 냄새를 맡아 낸 듯 코를 들었다. 그리고는 바둑이의, 금방 밥을 먹고 나온 주둥이에 붙은 물기를 핥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바둑이가 귀찮다는 듯이 자기 집 쪽으로 걸어갔다. 신둥이는 그 뒤를 바싹 따랐다. 바둑이는 자기 집 안뜰로 들어가더니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 신둥이는 곧장 부엌문 앞 구유로 갔다.

 구유 바닥에는 큰 동장네 구유 밑처럼 밥이 남아 있었고, 언저리로 돌아가며 밥알이 꽤 많이 붙어 있었다. 신둥이는 급히 그것을 짤짤 핥아먹고 나서야 그 곳을 나와 방앗간 풍구 밑으로 갔다.

 밤중에 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튿날도 그냥 구질게 비가 내렸다. 신둥이는 날이 밝자부터 빗속을 떨며, 어제보다는 좀 나았으나 그냥 저는 걸음걸이로, 몇 번이고 큰 동장과 작은 동장네 개구멍을 드나들었는지 몰랐다. 처음에는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구유 속은 궂은 비에 젖어 있을 뿐, 좀처럼 아침 먹이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밥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주인개가 구유에서 물러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주인개들이 먹고 남은 구유를 핥아먹고, 그리고 뒷간에를 들러 방앗간 풍구 밑으로 가서는 다시 누워 버렸다. 

 낮쯤 해서 신둥이는 그 곳을 기어 나와 빗물을 핥아먹고 되돌아가 누웠다. 저녁때가 돼서야 비가 멎었다. 신둥이는 또 미리부터 두 기와집 새를 여러번 왔다 갔다 해서 구유에 남은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이 날 저녁은 작은 동장네 바둑이가 입맛을 잃었는지 퍽이 나 많은 밥을 남기고 있었다.

 다음날은 아주 깨끗이 개인 봄날이었다. 이 날도 신둥이는, 꼭두새벽부터 두 집 새를 오고 가고 해서야 구유에 남은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는데, 이 날 신둥이의 걸음은 거의 절룩거리지 않았다. 방앗간으로 돌아가자 볕 잘 드는 곳에 엎디어 해바라기를 시작했다.

 늦은 조반(아침밥) 때쯤 해서 이쪽으로 오는 인기척 소리가 나더니, 두 동장네 절가(머슴)가 볏 섬을 지고 나타났다. 절가가 지고 온 볏섬을 방앗간 안에다 쿵 내려놓고 온 길을 되돌아서는데, 절가와 어기어 키(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그릇)를 든 간난이 할머니와 망 판을 인 간난이 어머니가 방앗간으로 들어섰다. 간난이 할아버지가 전에 동장네 절가 살이를 산 일이 있어 뒤에 절가 살이를 나와 가지고도 이렇게 두 동장네 크고 작은 일을 제 일 제쳐놓고 봐 주는 터였다.

 간난이 어머니가 비로 한참 연자맷돌을 쓸어내는데 절가가 다시 볏섬을 지고 돌아왔다. 한 손에 는 소 고삐를 쥐고. 풀어헤치는 볏섬 속에서는 먼저 구들널기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신둥이가 무슨 밥내나 맡은 듯이 섬(짚으로 촘촘히 결어서 만든, 곡식을 담는 그릇)께로 갔다. 그러자 절가가 개 편을 눈여겨보지도 않고 그저, 남 이제 한창 바쁠 판인데 개()새끼 같은 게 와서 거추장스럽다고 발을 들어 신둥이의 허리를 밀어 찼다. 그다지 힘 줘 찬 것도 아니건만 꿋꿋하고 억센 다리라 신둥이는 그만 깽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나가 쓰러졌다. 신둥이는 다시 해바라기하던 자리로 가 눕고 말았다.

 첫 확(방앗공이로 찧을 수 있게 절구의 우묵하게 팬 구멍)을 거의 다 찧었을 즈음, 작은 동장이 왔다. 작달막한 키에 머리를 빡빡 깎았다. 얼굴의 혈색이 좋아 마흔 가까운 나이가 도무지 그렇게 뵈지 않는 작은 동장은 방앗간 안으로 들어서며 다부진 몸집처럼 야무진 목소리로, 

 "잘 말랐디?" 

 했으나 그것은 무어 누구에게 물어 보는 말은 아니었던 듯 누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깨디디 않두룩 띻게(찧게)."

 했다. 소 뒤를 따르던 간난이 할머니가 연자의 쌀을 한 움큼 쥐어 눈 가까이 갖다 대고 찧어지는 형편을 살피고 나서 말없이 도로 놓았다. 잘 찧어진다는 듯. 
작은 동장이 돌아서다가 신둥이를 발견했다.

 "이게 누구네 가이(개)야?"

 절가와 간난이 할머니와 간난이 어머니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작은 동장의 발길이 신둥이의 허리 중동(중간)을 와 찼다. 신둥이는 뜻 않았던 발길에 깽 비명을 지르며 달아날 밖에 없었다. 얼마를 와서 그래도 이 방앗간을 떠나지 못하겠다는 듯이 뒤돌아보았을 때에는 벌써 절 가와 간난이 할머니와 간난이 어머니는 그게 누구네 개건 내 아랑곳 아니라는 듯이 자기네 일에 만 열중해 있었는데, 다만 작은 동장만이 이쪽을 지키고 섰다가 돌멩이라도 쥐려는 듯 허리를 굽 히는 게 보여 신둥이는 다시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야 했다. 비스듬한 언덕길을 내리기 시작하는 데 과연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옆에 떨어졌다.

 신둥이는 어제 비에 제법 물이 흐르는 도랑을 건너, 김 선달이 일하는 조각뙈기 밭 새를 지나기까지 그냥 뛰었다. 이런 신둥이는 요행 다리만은 절룩이지 않았다.
서쪽 산 밑 간난이네 집 옆 방앗간으로 온 신둥이는 또 먼지만 내려앉은 풍구 밑으로 가 누웠다. 그러나 얼마 뒤에 신둥이는, 그 곳을 나와 다시 동장네 방앗간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비스듬한 언덕을 올라 방앗간 쪽을 바라보는 신둥이는 그 곳에 작은 동장의 모양이 뵈지 않음에 적이 안심된 듯 그 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으나, 문득 지금 한창 풍구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보매, 우악스러울 것만 같은 절가에게 눈이 가자 주춤 걸음을 멈추고 그 편을 한참 지켜보다가 그만 돌 서 온 길을 되걷는 것이었다. 

 낮이 기울어서야 간난이 할머니와 간난이 어머니가 앞집 수수깡 바자 울타리를 끼고 이리로 오는 것이 보였다. 간난이 할머니와 간난이 어머니는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쪽을 바라보았다. 신둥이는 이들이 자기를 어쩌지나 않을까 싶어 일어나 피하려는 눈치를 보였으나 두 여인 은 물론 신둥이를 어쩌는 일 없이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둥이는 그 길로 동장네 방앗간으로 갔다. 방앗간은 비로 한 번 쓸었으나, 그래도 여기저기 꽤 많은 쌀겨가 앉아 있었고, 기둥 같은 데도 꽤 두툼하게 겨가 붙어 있었다. 신둥이는 풍구 밑부터 들어가 마구 핥았다.

 그 날 초저녁이었다. 신둥이가 큰 동장네 대문 안에 서서 지금 거의 다 먹어 가는 검둥이의 구유 쪽을 바라보고 섰는데, 방문이 열리며 큰 동장이 나왔다. 역시 작은 동장처럼 작달막한 키에 머리를 빡빡 깎았다. 또한 혈색이 좋아 아주 젊어 뵈었다. 얼른 보매 작은 동장과 쌍둥이나 아닌가 싶게 그렇게 모습이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처음 보는 사람은 이 두 사람을 서로 바꿔 보는 수가 많았다. 이 큰 동장이 뜰로 내려서면서 지금 구유 쪽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신둥이를 발견하자 보지 못하던 개임에, 이놈의 가이새끼, 하고 발을 굴렀다. 목소리마저 작은 동장처럼 야무졌다. 

 신둥이는 깜짝 놀라 개구멍을 빠져 달아나고 말았다.
큰 동장이 대문을 나서는데, 마침 저녁을 먹고 이리로 나오던 작은 동장이 신둥이를 보고, 이 개가 오늘 아침에 자기가 방앗간에서 쫓은 개라는 것과 지금 또 이 개가 형한테 쫓겨 달아나는 사실에 미루어, 언뜻 보지 못했던 이놈의 개()새끼가 혹시 미친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듯, 갑자기 야무진 목청으로, 미친가이 잡아라!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큰 동장 편에서도 지금 꼬리를 뒷다리 새로 끼고 달아나는, 뒷배가 찰딱 올라붙은 저놈의 낯선 개()새끼가 정말 미친 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듯, 데 놈의 미친가이 잡아라 소리를 따라 질렀는가 하자, 대문 안으 로 몸을 날려 손에 알맞는 몽둥이 하나를 집어 들고 나오더니, 신둥이의 뒤를 쫓으며 연방 미친 가이 잡아라 소리를 질렀다. 

 동장네 형제가 비스듬한 언덕까지 이르렀을 때 신둥이는 벌써 조각뙈기 밭 새를 질러 달아나고 있었는데, 마침 늦도록 밭에 남아 있던 김 선달이 동장네 형제의 미친개 잡으라는 고함 소리를 듣고 두리번거리던 참이라, 이놈의 개()새끼가 미친개로구나 하고 삽을 들고 신둥이의 뒤를 쫓아가 기 시작했다. 동장네 형제는 게서 더 신둥이의 뒤를 쫓을 염은 않고, 두 형제가 서로 번갈아 미 친가이 잡아라 소리만 질렀다. 그것은 마치 자기네의 목소리를 듣고 김 선달이 한층 더 기운을 내어 쫓아가 그 삽날로 미친개의 허리 중동을 내리찍도록 하라는 듯한, 그리고 자기네의 목소리 를 듣고 어서 저쪽 서산 밑 사람들도 뭐든 들고 나와 미친개를 때려잡으라는 듯한 그런 부르짖 음이었다. 이 부르짖음은 신둥이가 서쪽 산 밑 오막살이 새로 사라져 뵈지 않게 되고, 사이를 두 어 김 선달의 그 특징 있는, 뜀질할 때의 웃몸을 뒤로 젖힌 뒷모양이 뵈지 않게 된 뒤에도 그냥 몇 번 계속되었다.

 동장 형제의 목고대(목청)를 돋운 부르짖음이 그치자, 아까보다도 별나게 고즈넉해진 것만 같은 이른 저녁 속에 서쪽 산 밑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바로 손에 잡히게 솟아오르더니, 좀 사 이를 두어 엷은 안개가 어리기 시작하는 속을 몇몇 동네 사람들을 뒤로 하고 김 선달이 나타났 다. 첫눈에 미친개를 못 잡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도 김 선달이 채전을 지나 조각뙈기 밭 새로 들어서기 전에 작은 동장이 그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됐노오?"

그것은 제가 질러 놓고도 고즈넉한 저녁 속에서는 너무 지나치게 큰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되리 만큼 큰 고함 소리가 되어 퍼져 나갔다. 대답이 없다. 그것이 답답한 듯 이번에는 큰 동장이 같이 크게 울리는 고함 소리로, "어떻게 됐어, 응?" 했다.

 "파투웨다(실패했다). 그놈의 가이새끼 날래기가 한덩이(한정이) 있어야지요. 뒷산으루 올라가구 말았어요."

 이것이 무슨 조화일까. 김 선달의 말소리가 바로 발 밑에서 하는 말소리 같으면서도 또 한껏 먼 데서 들려 오는 말소리 같음은? 그만큼 고즈넉한 산골짜기의 이른 저녁이었다.

 "그래 아무리 빠르믄 따라가다 놔 뿌리구 말아? 무서워서 채 따라가딜 못한 게로군. 그까짓 가이 새낄 하나 무서워서■■."

큰 동장의 말이었다. 김 선달은 노상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곧잘 누구나 웃기는 익살꾼답지 않게, 큰 동장의 말에는 아무 대꾸도 없이 안개 속을 좀전에 일하던 밭으로 들어가 호미랑 찾아 드는 것이었다.

 이 날 어두운 뒤, 서쪽 산 밑 사람들은 아직 마당에들 모여 앉기에는 좀 철이른 때여서, 몇 사람 안 되는 사람들이 차손이네 마당귀에 쭈그리고 앉아 금년 농사 이야기며 햇보리 나기까지의 양 식 걱정 같은 것을 하던 끝에, 오늘의 미친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김 선달이, 바로 그젯밤에 소를 빌리러 남촌에를 갔다 늦어서야 산목을 넘어오는데 꽤 먼 뒤에서 이상한 개 울음 소리가 들려 와 혼났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흡사 병든 개가 앓는 듯한 소린가 하면, 누구에게 목이 매여 끌리면서 지르는 듯한 소리기도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가 목을 잡아매어 끄는 것치고는 한자리에서 그냥 지르는 소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놈이 아 까의 미친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쩍하면 남을 잘 웃기는 꾸밈말질을 잘해, 벌써부터 동네에서뿐 아니라 근동에서들까지 현세의 봉 이 김 선달이라 하여 김 선달이란 별호(별명)로 불리는 사람의 말이라, 어디까지가 정말이고 어디서부터가 꾸밈말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고 동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었으나, 차손이 아버지 가 김 선달의 말 가운데 누가 개 목을 매 끌 때 지르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한자리에서 그냥 지르는 개 울음이더라는 대목에 무언가 생각키우는 바가 있는 듯 담배침을 퉤 뱉더니, 혹시 그것이 며칠 전 이 곳을 지나간 서북간도 이사꾼의 개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 서북간도 나그네가 어느 나무에다 매 논 것이 그만 발광을 해 가지고 목에 맨 줄을 끊고 이렇게 동네로 들어온 것 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짐승이란 오랫동안 굶으면 발광을 하는 법이라고 하며, 기실 김 선달이 들은 개 울음소리는 이렇게 발광한 개가 목에 맨 끈을 끊으려고 지른 소리였음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 한자리에 앉았던 간난이 할머니는 차손이 아버지의 말도 그럴듯하다고는 생각했지 만, 좀전에 마누라에게서 들은 아침에 동장네 방앗간에서 보았을 때나, 방아를 다 찧고 돌아오는 길에 이쪽 방앗간에서 보았을 때나, 그 신둥이 개가 미친개로는 뵈지 않더라는 말이 떠올라, 좌우간 그 개가 참말 미쳤는지 어쨌는지 자기가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 개가 미쳤건 안 미쳤건 이제 다시 동네로 내려올 것도 분명하니, 차손이 아버지도 그놈의 미친개 가 이제 틀림없이 또 내려올 테니 모두 주의해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때 벌써 신둥이는 어둠 속에 묻혀 서쪽 산을 내려와 조각뙈기 밭 새를 지나 반 뜀걸음으로 동장네 집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주의성 있는 걸음걸이였다.

 언덕길을 올라서서는 멈칫 걸음을 멈추고 방앗간 쪽이며, 두 동장네 집 쪽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아주 조심성 있는 반 뛴걸음으로 큰 동장네 집 가까이로 갔다. 개구멍을 들어서니 검둥이는 이제는 신둥이와는 낯이 익다는 듯이 아무 으르렁댐 없이 맞아 주었다. 신둥이는 곧장 구유부터 가서 핥기 시작했다. 작은 동장네 바둑이도 이제는 신둥이와는 낯 이 익다는 듯이 맞아 주었다. 여기서도 신둥이는 곧장 구유부터 가서 핥았다.

 작은 동장네 집을 나온 신둥이는 동장네 방앗간으로 가 낮에 한 물 핥아먹은 자리며 남은 자리를 또 핥았다. 그러나 거기서 잘 생각은 없는 듯 그 곳을 나와 다시 서쪽 산 밑을 향하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유명한 간난이 할아버지가 수수깡 바자문을 열고 나오다가 방앗간 풍구 밑에 엎디어 있는 신둥이를 발견하고 되들어가 지게 작대기를 뒤에 감추어 가지고 나왔다. 

 미친개기만 하면 단매에 죽여 버리리라. 신둥이 편에서도 인기척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그러면 서 어느새 신둥이는 꼬리를 뒷다리 새로 끼고 있었다. 저렇게 꼬리를 뒷다리 새로 끼는 게 재미 쩍다. 간난이 할아버지는 한자리에 선 채 신둥이 편을 노려보았다. 뒤로 감춘 작대기 잡은 손에 부드득 힘을 주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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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바클럽 19-06-15 09:39
   
아무래도 저 때문에 올려주신 글 같군요. 그런데 이게 끝인가요?
개를 잡아 죽이는 스릴러로 오해했었는데...

유기견 한마리에 작은 소동이 일어난 시골 풍경이었군요.

큰동장과 작은동장의 헤어스타일이 같고 동안인 점 등 닮은 것은 형제임을 들어내는 설명인지
신둥이 입장에서 동일인으로 착각하게 되는 점을 나타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말하자면 신둥이에게 가장 적대적인 적이 2명 있는데 그들은 결국 같은편(같은 족속)이다.
뭐 그런거요. 근데 그 둘은 말만하고 행동은 안하네요;;

저 떠돌이 개는 배척하는 마을 사람이 있는 것에 놀라 도망치고도 왜 다시 돌아오게 되는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네요. 미친개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죽을 지도 모르는데..

국어시간을 허투로 보냈기에 그럴싸하게 문학을 즐기지는 못하는 사람이라..
그저 황순원님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게 가장 크네요.

글을 보며 연상하는게 사람이라면 흔히 하는 자연스런 작용이긴 하지만 본듯하고, 소리를 들은듯하고
향기를 맡은 한 글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네...작품이라 할만한 글 자체를 읽어본지가 오래에요ㅠㅠ

짧은 댓글 남기려고도 했지만 올려주신 성의에 보답하고자 허접하게나마 최대한 이것저것
주절거렸어요. 원하시는 만큼의 이해력이 없더라도.. 그 점 이해해주세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야구아제 19-06-15 11:40
   
이 소설은 광복 직후 혼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북은 사회주의로 남은 민주주의로 정부가 편성되고 있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이념적으로 공격하고 비판하며 서로를 배척하던 시기였죠.

이 시기에 누구는 남으로 누구는 북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목넘이 마을이라는 곳은 작가가 평안도 출신이므로 평안도 어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실존하는 공간으로 보기 보다는 평안도라는 지리적 위치를 근거로 남에서 오는 사람도 지나야하고 북에서 내려 가는 사람도 지나가야 하는 곳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를 이사꾼들이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들이 지나는 이 마을에 신동이라는 개 한마리가 나타납니다. 이 개 역시 이사꾼들이 남긴 개로 그들과 같은 처지라는 것이죠. 일종의 동일시 입니다.

그 때부터 신둥이 개가 겪는 일들이 당시 혼란기 민중이 겪었던 일과 같아집니다.

즉, 차별 받고 폭행 당하고 때로는 이유 없는 죄명으로 죽임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북은 소련군이 장악하면서 인민재판을 통해 지주를 벌하고 농민들이 이유 없이 지주나 인텔리 계층을 때려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던 때였죠.

실제로 황순원은 '카인의 후예'라는 소설에서 그 역변기를 잘 그려 냈습니다.

어느 지방에서 흘러 온 개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줄의 흔적에서 꽤나 유서 깊은 집안의 개인 그 신둥이는 살기 위해 노력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을 통해 이념을 넘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신둥이 그 개가 서북간도에서 내려 온 사람이으로 비유됐다면 일제 시기 먹고 살기 위해 간도로 이주한 우리 민족의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 되니까 말이죠.

암케로 동네 개들과 어울려 그것도 여러 마리와 어울려 임신을 한 모습은 생명력의 결정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들이 마을로 분양되고 대를 이어 혈통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우리 민중이 당시를 어떻게 살아 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이 소설은 그럼에도 당시의 이념적 시대 때문에 글이 호도될까 액자식 구성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 설정되어 있어 이 글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쓰인 글인지도 옅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