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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28 16:34
'안중근 의사' 신문 러시아 첫 공개
 글쓴이 : 칼까마귀
조회 : 1,577  

4-66.jpg



http://www.fnnews.com/news/201905281413431959



친일파 토착왜구는 끔찍하게 싫어 하겠지만

자랑스러운 한국인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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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까마귀 19-05-28 16:34
   
뿔늑대 19-05-28 16:36
   
얘도 시러함 ㅋ
     
칼까마귀 19-05-28 16:42
   
          
깁스 19-05-28 17:26
   
롱기누스의 탕 ppk가 빠졌네요
냐웅이앞발 19-05-28 16:49
   
빨리 유해를 우리 국민이 모셔야 하는데...
Requescat 19-05-28 16:51
   
안중근 의사와 김재규 열사 두분이서 지하에서 웃고 계실겁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pgkass 19-05-28 19:19
   
안중근 러시아 신문

몇마디 나누고, 동료들은 안과 작별하였다. 그들의 작별은 매우 감명을 주었으며, 보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안은 동료들에게 큰절을 하였으며, 동료들도 그에게 큰절을 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슬픔에 가득하였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안은 4호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갔다.
특히 한 신문은 하얼빈 거사를 위해 떠나는 안중근과 동료 우덕순, 조도선이 눈물을 흘리며 큰 절로 인사하는 장면까지 르포 형식으로 기사화했다.

하얼빈, 10월 13일(10월 26일) 아침 9시에 최전선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브체브이와 러시아 지도자들이 이토 공작과 함께 기차 칸에서 내리는 순간, 내국인들과 외국 영사들이 있는 쪽 마지막 등쪽, 브라우닝 권총으로부터 몇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고, 이토 공작은 치명적 총상을 입었고, 남만주철도개발대표 다나카는 발에 작은 상처를, 하얼빈 일본총영사 카와카미는 중상이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황궁 개인비서대신 모리는 경상을 입었다.

이토의 죽음을 조선인들은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몇 번이나 진짜로 이토가 암살되었는지를 물었고, 연속적으로 그 사실이 확인되자 참을 수 없는 흥분상태에 빠졌다.
<일본인들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한다. 그들은 우리 조국을 빼앗고 국유재산을 강탈했으며 우리 황제에게 금전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알리기를, 자신들은 자신의 장군의 명령을 받고 따르며 26명의 대원이 있고, 그 본거지는 만주라고 하였다.

일본 총영사관 심문관 앞에서의 첫 번째 진술. 일본 총영사관에서 안은 주장하기를 자신은 조선에서 징벌적 행위를 한 이토를 복수하기 위해 선발된 29명 중 한명이라고 하였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에 체포돼 첫 심문에서 한 진술

안에게서 발견된 자료들에 따르면 이번 암살의 주모자는 조선에 있으며, 이토의 암살은 봉기를 위한 시그널 역할을 해야만 한 것이었다.
일본 영사관에서 진행된 체포된 조선인들에 대한 심문에서 10명의 조선인이 자신들은 이토 후작의 암살에 가담했다고 진술하였다.
암살자 안은 심문에서 “이것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있는 것이 기쁘며, 자신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라고 하였다. 안은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암살자는 책상에 앉아서 중국 문자로 장황한 서술을 하였는데 이것은 본 사건과 관련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판단컨대 암살자는 지식인이고 교육을 잘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2월 14일(2월 27일) 이토 공의 암살자, 안에 대한 사형이 선고되었다. 선고에 앞서 그에게 할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안은 약 1시간에 걸쳐 흥분하여 말하기를 모든 조선사람들이 이토를 혐오하고 조선 민족의 원수인 그를 나쁜 짓을 하는 무대에서 하루빨리 몰아내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모두가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다. 암살자는 극도로 안정되어 보였다. 그는 평상시처럼 먹고 잠을 잤으며, 자신의 참여에 대하여 처음부터 마음을 굳게 먹고 참여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가족에 누를 끼치지 말고, 가치있게 죽음을 맞으라는 부탁과 함께 마지막 헤어짐의 인사말을 그에게 보냈다.

아사히 신문의 특파원에 따르면 예정된 시간에 안은 사형장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는 하얀색의 명주로 된 조선 전통 한복을 입고 있었으며, 이것은 일부러 그의 사촌 형에 의하여 보내진 것이다.
안은 약간 창백하였으나 자신의 운명에 완전히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교도소장은 사형에 관한 명령서를 읽고 안에게 자신의 친지나 친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안은 특별히 할 말은 없고,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자신들은 극동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해 왔다고 말하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도를 하도록 허락받고, 안은 조용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의 목에 매듭이 묶여졌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15분 후 그의 몸은 의사에 의해 검시되었고, 관에 넣어져 튜렘의 작은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암살에 가담한 3명의 동료들에게는 안과 이별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들 중 한명은 이 의식 중에 미친듯이 행동하였다. 그 후 관은 지역 기독교 묘지로 옮겨졌다. 안 자신은 하얼빈에 안장되길 원하였고, 친척들은 그의 시신을 조선으로 가져가기를 원하였으나 허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신문들은 포르트-아르투르 법원을 비난하였는데, 왜 안을 무기징역 시키지 않고 사형을 시켰는가의 문제였다. 이들 신문에 따르면 조선에서 반 일본 혁명가들은 안을 영웅시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천 장의 안을 닮은 초상화를 담은 서간문들을 인쇄하였으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조선의 충실한 국민>. 일본 경찰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이 서간문의 배포를 막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신문들은 안을 사형시키지 않고 징역에 처했다면 이러한 서간문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새끼사자 19-05-28 22:59
   
개인적으로 안중근 의사라고 부르기 보다는 안중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고 봅니다. 흔한 일뽕이나 일본애들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걸 가장 강력하게 파괴시키는 것이 장군이라는 군인 신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