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두산 외야수 임재철. 그는 36살의 나이에 지금도 자신만의 때를 기다리는 남자(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초등학교 때였다. 우연히 학교 합창단에 들었다. 악보도 볼 줄 몰랐다. 남이 내는 소릴 그대로 따라 했다. 그래도 합창단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사과박스보다 빳빳한 와이셔츠를 사주셨다. 하지만, 발표회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반대였다. 중간에 가사를 잊었다. 음도 제멋대로였다. 동료의 원망 어린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발표회가 끝나고 1년 치 눈물을 쏟아냈다. 세상에 나란 소년은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눈이 ‘퉁퉁’ 불은 막내를 보고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네가 눈물을 흘린 1984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다. 때를 기다리면 분명히 다시 기회가 찾아올 거야. ”
27년이 지나고. 1984년 엉터리 가사를 엉뚱한 박자로 노래한 소년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론 만회할 기회는 찾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때를 기다린다. 정확한 가사와 박자로 무대의 주인공이 될 나를 말이다.
4월 5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두산 임재철도 ‘때’를 기다리는 사내였다. 프로 13년 차의 임재철에게 그가 기다리는 때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유망주에서 저니맨으로
지난 2월 일본 미야자키 캠프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과 연습경기에서 임재철이 1루 주자로 나와 있다(사진=줌인스포츠 강명호 기자) |
1999년 부산 경성대를 졸업하고 롯데에 입단한 임재철은 당시만 해도 ‘공·수·주’ 3박자를 갖춘 대형 외야재목으로 주목받았다. 국가대표 출신인데다 대학 때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임재철은 최고 인기팀 롯데의 주전 외야수가 돼 자신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입단하자마자 2군에서 뛰었다. 임재철은 좌절하지 않았다. 때를 기다렸다.
“당시 입단 동기 가운데 정원욱이란 투수가 있었어요. 경성대 동기이기도 한데, 그 친구가 정말 잘했어요. 신문 1면에도 ‘정원욱, 신인왕 후보 0순위’하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고요. 하지만, 전 줄곧 2군에 있었습니다. 솔직히 부럽더라고요.”
이때만 해도 1군은 ‘부러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즈음이었다. 2군 훈련을 마친 임재철은 친구 정원욱을 만나러 부산 사직구장을 찾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정원욱은 경기가 끝나고, 구장 출구를 빠져나왔다. 그때였다. 수많은 팬이 정원욱을 둘러싸고 사인을 요청했다. 임재철은 나무망치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머리를 삭발했다.
“프로는 누구를 부러워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러운 대상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이란 마음으로 머리를 죄다 밀었어요.”
처음으로 때가 찾아온 건 그해 7월이었다. 임수혁의 부상으로 타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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