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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22 08:22
[MLB] [야구는 구라다] 하퍼의 응시, 류현진의 혁신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2,610  


[야구는 구라다] 하퍼의 응시, 류현진의 혁신

mlb.tv 화면

2014년 1월이었다. 추신수가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1억 3000만 달러짜리 계약 직후다. 이례적인 단독 게스트였다. MC들은 난리다. 먹잇감을 노린 질문이 쏟아졌다.

김구라 : 류현진 선수의 약점은 뭐예요?

김구라 : 참고로 우린 장점은 안 물어봅니다. ㅋㅋㅋ

추신수 : (곤란한 표정으로) 저만 알고 있으면 안됩니까?

윤종신 : 사실은 본인이 약점을 모르게 하려는 거죠?

추신수 : 그렇죠. 분명히 이 방송 보면 전화 올 거예요. “형 뭐야?” 하면서. ㅎㅎㅎ

윤종신 : 류현진 선수 공 중에 좋아하는 게 있군요.

결국 등쌀에 못이겨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놓는다. 추신수의 얘기다.

“본래 왼손 투수는 좌타자한테 체인지업 안 던지거든요. 그런데 현진이는 던지는 거예요. (맞대결 때를 얘기하며) 초구에 슬라이더 던져서 볼이 됐어요. 그럼 다음 공은 스트라이크 잡으려는 게 투수의 심리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직구겠구나’ 하고 딱 나가는데, 공이 오다가 안 와요. 그래서 (배트가) 나가다가 어쩔 수 없이 툭 쳤어요. 1루 땅볼됐는데, 저도 어이가 없어서…. 1루까지 걸어다가시피 했어요. 체인지업을 던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 때다. 김구라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응시했나요? 걸어가면서?”

추신수가 덜컥 걸려들었다. 손으로 입 터는 흉내까지 낸다. “예, 뭐 (김구라를 가리키며) 형이 하시듯 많이 했죠.” 머리에 김이 솟고, 중얼 중얼하는 그래픽이 등장한다.


2014년 1월 <라디오스타 추신수편>의 한 장면 [유튜브 채널 MBC엔터테인먼트 캡처]

탬파베이에서 시작된 체인지업 혁명

2010년 무렵 주목을 끄는 팀이 있다. 템파베이 레이스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운영방식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로 인해 스몰 마켓임에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했다. 앤드류 프리드먼 GM과 조 매든 감독이 이끌던 시절이다. 그들은 혁신을 내세우며 고정 관념을 깨트렸다.

세이버매트릭스가 오프라인에 실현됐다. 과감한 시도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했다.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는 연일 화제였다. 오프너, 불페닝 같은 용어들도 태어났다. 유틸리티 플레이어와 (포수) 프레이밍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런 것들과 함께 시도된 게 있다. 바로 체인지업의 혁신이다.

전통적 체인지업은 반대손 타자에게(만) 유효하다. 즉 우투수는 좌타자에게, 좌투수는 우타자에게 던져야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유는 궤적 때문이다. 먼쪽은 위험하다. 가운데로 말려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같은 손(좌투수→좌타자)에게는 구사할 수 있는 공간이 좁다. 몸쪽 뿐이다. 당연히 정확해야한다. 삐끗하면 타격존으로 들어간다. 아니면 타자를 맞힐 지 모른다.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때문에 잘 안 던지게 됐다. ML 전체 평균이 5~6%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스는 그런 관념을 깼다. 그래도 던져야한다는 논리였다. 카일 스나이더, 짐 히키 코치 같은 유능한 투수 코치들의 주장이었다. 제임스 실즈, 데이비드 프라이스, 제레미 헬릭슨 같은 체인지업 투수들은 충실히 이를 따랐다. 결국 같은 손 상대 구사율이 30%까지 올라갔다. 그러니까 좌우 구분없이 던졌다는 뜻이다.


mlb.tv 화면

무려 3분35초나 걸린 신경전의 결과

0-0으로 팽팽하던 3회 말이다. 홈 팀의 2사 1루였다. 비싼 타자의 차례다. 무려 (13년간) 3억 3000만달러짜리 브라이스 하퍼가 나왔다. 파울 2개로 시작됐다. 이 때부터 실랑이다(첫 타석은 1루 땅볼).

3구째를 앞두고 사인 교환이 길어졌다. 타자가 더는 못 참는다. 뒤로 한번 빠진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복잡한 루틴을 시작한다. 배트를 길게 뻗었다가, 홈 플레이트를 두어번 두들긴다. ‘나도 시간 끌 수 있어.’ 마치 그런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신경전이다.

그러자 투수도 지지 않는다. 투구판에서 발을 뺀다. 그 사이 타자도 물러선다. 실랑이가 만만치 않다. 구심의 인내력이 한계를 맞았다. “어여들 하지?” 재촉이 시작됐다. 2개의 유인구, 하이 패스트볼과 커브가 거푸 존을 벗어난다. 카운트는 2-2로 공평해졌다.

5구째 또 한번의 커브(74마일)가 떨어졌다. 1루쪽 파울 지역으로 커트됐다. 여기서 또 한 번 랙이 걸린다. 포수 사인이 복잡해진다. 단번에 OK를 못 받아서다. 그 사이 타자도 자세를 푼다. 겨우 2사 1루일 뿐이데 마치 승부처 같은 겨루기다. ‘뭐지? 뭘 던지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지?’

결국 6구째. 전혀 뜻밖의 공이 갔다. 몸쪽에 툭 떨어지는 체인지업(78마일)이었다. 힘차게 출발한 배트는 허공을 가른다. 헛스윙과 동시에 하퍼의 짧막한 외침이 있었다. 황당함, 어이없음이다. 추신수가 <라디오스타>에서 털어놨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직구인줄 알고 나갔는데 공이 안 오는 거예요.”

세번째 스트라이크로 3회가 종료됐다. 둘의 대결은 무려 3분35초나 걸렸다.

완벽한 KO승을 거둔 투수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타자만 덩그러니 타석에 남았다. 헬멧, 장갑, 보호장구를 그 자리에서 푼다. 푸른 눈은 줄곧 백넘버 99번을 응시한다.


mlb.tv 화면

20%에 근접한 좌타자 상대 체인지업

이 장면은 화제였다. 블루제이스 전담 중계팀의 해설자 벅 마르티네스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하퍼의 얼굴을 보세요. ‘이게 무슨 볼이야’ 하는 표정이네요. 좌완이 좌타자에게 체인지업을 던지는 건 무척 드문 일이죠.” 토론토 지역 언론도 비슷했다. 충격적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의외의 볼배합에 놀라는 눈치다.

정작 당사자는 덤덤하다. 기자들의 질문에 별 일 아니라는 투다. 특유의 만연체 코멘트다.

“오늘 하퍼에게는 처음 던진 구종이었고, 그게 중요한 카운트에서, 아주 내가 만족할만한 각도로 삼진을 잡아내 가지고, 좋은 승부였던 것 같고, 왼손 투수라고 해서 왼손 타자한테 체인지업을 아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구종을 어느 상황에서 어느 코스에나 던질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벅 마르티네스나 토론토 미디어에는 생소할 지 모른다. 하지만 새삼스럽지 않다. 하퍼에게만 ‘처음 던진 구종’일 뿐이다. 99번은 원래 같은 손 타자에게도 곧잘 체인지업을 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글스 시절부터다. “2011시즌 부터였던 걸로 기억해요. 현진이가 좌타자에게도 체인지업을 써보자고 해서 사인을 냈죠. 결과도 나쁘지 않았어요.” (이글스 신경현 배터리 코치, 당시 주전 포수)

탬파베이에서 혁신이 일어나던 시점과 비슷하다. 그 역시 태평양 건너에서 같은 시도를 한 것이다. 다만, 주목할 부분이 있다. 최근 들어 훨씬 적극적이다. 구사율이 꽤 높아졌다. ML 초기에는 10% 미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부터는 20%에 근접한다 (2019년=19.2%, 2020년=19.8%). 레벨업과 무관하지 않다.


팬데믹 시대의 미디어는 고달프다. 이제 독순술(讀脣術ㆍlip reading)까지 익혀야한다. mlb.com이 피해자의 입모양을 읽었다. “하퍼가 ‘how’ 또는 ‘wow’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how’나 ‘wow’나 달라질 건 없다. 몇몇 매체는 그걸 감탄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구라다>는 생각이 다르다. 피해자는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불 같은 성격이다. 8년간 14번이나 퇴장당했다. 마운드로 달려올라간 적도 있다. 빈정 상하면 자기 팀과도 덕아웃에서 몸싸움이다. 그야말로 승부욕의 화신이다. 그런 캐릭터에 비춰보면 ‘how’나 ‘wow’는 그다지 고분고분한 궁시렁거림이 아니다. 속되지만 가장 적합한 표현이 있다. ‘깊은 빡침’이다.

<라디오스타>가 다시 등장해야한다. 머리에 김이 솟고, 입을 터는 제스처 말이다. 그리고 김구라와 추신수의 대화까지.

“그래서 응시했나요?” (김구라)

“예, 뭐 (입 터는 제스처) 형이 하시듯 많이 했죠.” (추신수)

친한 형인데도 그렇다. 하물며 하퍼야 오죽했겠나. 혁신의 길은 거칠고, 험하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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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20-09-22 09:01
   
영원히같이 20-09-22 10:45
   
공이 밑으로 뚝 떨어지니까 타자 입장에서는 정말 곤란할듯
던지는폼도 구종별로 다양하게 나와야 하는데 거의같고
쳐도 땅볼임 ㅎㅎ
Republic 20-09-22 15:34
   
야구가 이래서 좋아.
장면하나 구종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뭔가 대단한듯
기시화할 수 있다는게..
야구는 미디어스포츠의 꽃임 .
andyou 20-09-22 19:56
   
이 시리즈 재미있더라구요.
입만 터는 기사가 아니고 제대로 볼만한 몇 안 되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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