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4월 국내 언론은 한 고등학생 유격수의 메이저리그 팀 시카고 컵스와의 계약 소식을 일제히 알렸습니다.
당시에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었지만 대부분 투수가 주종을 이루던 미국행 러시 중에 아주 드문 내야수 출신이던 이 선수는 72만5000 달러의 상당히 고액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88cm의 큰 키에 날렵한 체격으로 뛰어난 스피드와 수비 잠재력을 인정받았던 이 선수는 바로 이학주(26)였습니다. 당시 동기 중에는 김상수, 안치홍, 허경민, 오지환 등 뛰어난 내야수들이 유독 많았지만 컵스는 체격 조건이 뛰어나고 스피드를 겸비한 이학주에 주목했습니다. 그렇게 이학주는 KBO리그의 두산, LG, 우리 등의 구애를 뿌리치고 더 큰 리그에서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갔습니다.
2009년 루키리그를 건너뛰고 하위 싱글A에서 미국 프로야구 생활을 시작한 이학주는 68경기에서 3할3푼에 33타점 56득점 26도루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주목을 끌었습니다. 다음 해 싱글A로 승격, 122경기를 뛰며 2할8푼2리, 40타점, 85득점에 2루타 22개, 3루타 4개, 그리고 32도루로 순항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선발 투수가 절실히 필요하던 컵스는 탬파베이에서 맷 가자를 트레이드 영입합니다. 그런데 당초보다 트레이드 규모가 커졌습니다. 탬파베이가 유격수 유망주 이학주가 포함되기를 원했고 결국 3대5로 8명의 선수가 팀을 옮기는 대형 트레이드가 됐습니다. 이학주는 이제 탬파베이의 유망주가 됐습니다.
새 팀에서의 첫 시즌도 좋았습니다. 상위 싱글A로 승격해 시작한 시즌은 더블A 진출까지 이어졌습니다. 121경기 2할9푼2리 30타점에 98득점을 올렸고 2루타 17개에 3루타를 무려 15개나 쳤습니다. 도루도 33개로 매년 늘어났습니다. 2012년에도 더블A에서 활약을 이어가던 이학주는 시즌 막판 무릎 십자인대파열이라는 중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시련에 봉착합니다.
긴 재활 끝에 2013년 막판 돌아와 15경기에서 4할대 타율을 과시했던 이학주는 그러나 2014시즌부터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AAA에서 고전합니다.
2014년 2할3리, 2015년에는 2할2푼에 그치면서 탬파베이는 시즌 후 이학주를 웨이버 공시합니다. 일단 40인 로스터에서 제외한 후 마이너리그 재계약을 원한 구단의 의도와는 달리 이학주는 FA를 선택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자이언츠는 단장까지 큰 관심을 보이며 이학주를 원했고 월급 1만8000 달러라는, 메이저 경력이 없는 마이너 FA에게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줬습니다. 게다가 6월초까지 빅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면 옵트 아웃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나갈 수 있다는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에도 동의했습니다. (결국은 이 조건이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4월17일 빅리그 백업 내야수 에이레 아드리안사가 부상으로 DL로 가면서 이학주의 MLB 데뷔가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자이언츠는 외야수 맥 윌리엄슨을 호출했습니다. 이학주의 실망감은 컸지만 당시 팀에서는 백업 내야수보다는 오른손 대타 요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 실망한 탓인지 이학주는 5월에 슬럼프 기미를 보였습니다. 5월 타율이 2할1푼5리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옵트 아웃 가능 일시인 6월1일이 다가오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에이전트는 옵트아웃 기간을 한 달 정도 연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소프트뱅크에서 이학주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도 전해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구체적인 제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속 마음이 흔들리던 이학주는 결국 옵트아웃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72시간 내에 25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으면 FA가 될 수 있는 운명의 시간이었습니다.
멀쩡히 뛰고 있는, 마이너 옵션도 없는 빅리그 선수들을 로스터에서 제외할 수 없었던 자이언츠는 결국 이학주를 포기했습니다. 이학주는 다시 마이너 FA가 됐습니다. 곧바로 캔자스시티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학주는 에이전트를 교체하는 와중에 이 기회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학주가 마이너 FA가 된 직후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자이언츠 내야진의 줄부상이 시작됩니다.
6월 10일 내야수 켈비 톰린슨이 DL로 가자 자이언츠는 내야수 라미로 페냐를 호출했습니다. 빅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지만 자이언츠 마이너 내야수 순위에서 이학주보다 아래였고, 특히 백업 내야수로서 이학주의 멀티 능력과 수비 능력은 단연 자이언츠 마이너에서 최고로 인정받았습니다. 팀에 남았더라면 이학주의 사상 첫 빅리그 승격은 2016년 6월 11일이 될 뻔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6월 21일 3루수 맷 더피가 부상으로 쓰러졌고 자이언츠는 내야수가 아닌 외야수 맥 윌리엄슨을 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6월 29일에는 2루수 조 패닉마저 뇌진탕으로 DL로 갔고, 시즌 중반에 마이너에 합류했던 루벤 테하다가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빅리그로 올라갔던 라미로 페냐 마저 부상이 왔고, 자이언츠는 6월 30일 내야수 그랜트 그린을 올렸습니다.
아쉬움이 가득한 이유는 6월에만 이학주는 적어도 3번은 빅리그에 승격할 기회가 있었고, 다른 어떤 선수보다 먼저 선택받았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FA를 선택해 이미 팀을 떠난 이학주에게 빅리그는 다시 멀어진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학주가 옵트 아웃을 선택하자 현지에서는 일본에서 큰 계약을 보장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대안이 있지 않는 한 옵트아웃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긴 기다림에 지친 탓인지 이학주는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간발의 차이로 8년만의 빅리그 데뷔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당장 무적 선수인 이학주는 에이전트를 교체하고 일본 진출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새 에이전트사를 통해 꾸준히 일본 팀과 접촉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반가운 소식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학주는 국내에 돌아와도 2년간은 뛸 수 없다는 규정에 묶여 KBO리그에서도 당장은 뛸 수 없습니다. 작년 겨울에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관심을 보이기도 하는 등 일본 NPB 진출 가능성이 열려있기는 하지만 시즌 중반에 영입이 성사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 마이너에서 고생하고 빅리그가 코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결과적으로는 아쉬운 결정을 내리면서 이학주의 MLB의 꿈은 다시 요원해지고 말았습니다.
긴 기다림에 지친 선수의 새로운 시도를 향한 마음이 이해도 되지만, 순간의 선택이 아주 긴 여운을 남기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