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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1 17:26
[기타] 거리개념
 글쓴이 : 잠원
조회 : 5,795  

여기는 개념을 호떡사먹고 현대국민국가와 임금님시대를 지꼴리는데로 넘나드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는데
일단 여기서는 거리개념에 대해서 집고 넘어가지요.


조선왕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다녔는데..
아니 불과 몇 십년전까지 시골에서 핵교에 가기 위해서 10리(4km)를 걸어서 다녔다는 얘기를 한 두번은 들었을텐데..
같은 10리라도.. 지금의 10리하고는 느낌이 또 다르지요.
자동차 타는 사람이 느끼는 10리의 거리와..  자전거타는 10리가 다를것이고... 자전거도 없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걸어야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10리는 차이가 많지요. 일단 시간부터가 엄청난 차이거든요
도시에서는 차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산길의 10리는 2시간을 고생하며 걷는 거리인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던 조선시대 경상도에서 서울에 오기 위해서는 보름은 기본이고 한달이 거렸다는 것이   책상에서 책으로 공부하는 현대인이 망각하기 쉬운 것이지요.
더구나 중간에 강을 만나고 ... 폭우가 쏟아지면 동굴에서 잠을 자야하는 상황도 있을텐데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그 시대에는 산을 하나 넘는것이 큰 맘먹어야했고..
평생을 오늘날의 군단위를 벋어나서 구경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시절이지요

한반도가 그런데...  한반도보다 수십배가 큰 중원대륙은? 



울퉁불퉁한 길은커녕  길도 없는 시대에 살던 고대인들은?

인간이 말을 타기 이전시대라면 대빵들도 똑 같이 먼지가 풀풀나는 땅을 걸어다녔을텐데..
걸어다니면서 대제국을 경영했다?  
완존 구라지요.
잘해봤자 사방 수km를 영역으로 하는 성읍국가 (예외라면 나일강과 메소포타미아지역)


고대에 말의 이용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지요.
동아시아에 말이 들어온 시기는 높게 봐줘야  10세기경인데.. 
그 이전시대는 씨족집단.. 잘 봐줘도 부족집단이 돌도끼나 짱돌들고 싸운던 시대지요

따라서 기원전 10세기 이전은 역사로서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지요.
민족의 근원과 뿌리를 찾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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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 15-04-01 17:36
   
10세기 이전 중원은?  은나라?
당연히 성읍국가지요.
당시 경작이 쉬운 토지지역인 황토고원과 황하유역에는 이런 성읍국가들이 많았을거라는 생각인데... 은나라는 이런 성읍국가들이 느슨한 형태의 연맹체형식으로 묶인 것이지요.

고조선?
당연히 성읍국가지요.
(물론 후기고조선은 고대왕국이지만)


이걸 마치 큰 영토를 지배한 대제국인양 지도로 만들어서 교과서에 색칠하는 것인데..
잘 봐줘야 영향권이지요.
.
     
꼬마러브 15-04-01 18:57
   
고조선이 주나라, 은나라처럼 성읍국가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현 교과서에 있는 고조선지도는 영토가 아니라 고조선관련 유적, 문화범위지도입니다.
          
잠원 15-04-01 22:54
   
고조선을 성읍국가... 이리 쓴 책을 본 기억이 없는데요.

"현 교과서에 있는 고조선지도는 영토가 아니라 고조선관련 유적, 문화범위지도입니다."
->고조선지도만 유적과 문화지도라면 주석이 달려야할텐데.. 그런 주석은 보덜 못했거든요.



제가 이런 내용을 쓴 것은..
환빠라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인데..  년대를 많이 올려봤자가 봤자라는거지요.
(성읍국가라 하였지만.. 여기서 성읍은 영화속의 성이 아니라 잘해봐야 대빵이 살고 있는 큰 집이나 목책을 중심으로 한 씨족이나 부족의 ...  시규모는 어려울테고 읍내정도의 규모라는 거지요)

또 제가 이리 쓴 것은 한국고대사를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니거든요
어짜피 짜장도 동시 출발이니..
더구나 한국고대사라면 축소된 역사인데...  고대사 뻥티기는 중국이거든요. (중국 알라들이 고대 역사지도를 보면 완존 지꼴리는데로 그려놨던데..)

물론 최근의 홍산문명은 놀라운 일로 중원문명의 모태가 고조선이었다는 것인데.. 동양고대사의 기존 지식들을 뒤엎고 다시 써야한다는 생각이지요.
그런다하더라도 홍산문명 역시 잘봐줘도 성읍국가... 아님 마을국가(?!)
.
               
Centurion 15-04-02 02:50
   
그런데.. 중국은 오히려 요서 홍산문명과 양쯔강 이남의 양사오 문화가 앞선걸 인정하고.
황화문명이 가장 앞섰다는 논리를 폐기하고, 홍산문명을 중국의 발원지로 만드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의 삼황오제가 이 쪽 홍산문명 사람이라고 우기는게 탐원공정이죠.

님이 생각하는 그 성읍국가, 마을 국가를 우습게 볼게 아니에요..
사실 그런걸로 치면, 삼황오제 이후 요순 하은주 시대만 하더라도...
그냥 손바닥만한 면적이어야 될텐데.. 이 면적 자체도 작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애시당초 이동과 교류, 연락도 안닿는 상태에서..
수백킬로 밖의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제후국으로 다스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그런 면에서 고대인들의 행동반경과 역량을 무시하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뭐~ 이미 그 시절에도 상당한 인력을 동원하여 건물을 짓기 시작하는데..
이런 중노동을 느슨한 연맹체 수준으로 할 수가 없지요.

이집트 같은데서 피라미드 짓던 시대가 언제인지 생각해봐도..
고대인들의 역량을 너무 저평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바빌론, 앗시리아, 수메르, 이집트 이런 나라를 떠올려 보시길..
걔네들 활동 영역이 장난이 아니에요.
                    
잠원 15-04-02 08:44
   
탐원공정 얘기가 나와서 댓글이 길어졌는데..
넘 길어서  탐원공정 얘기는 주제글로 올리지요.


"그 시절에도 상당한 인력을 동원하여 건물을 짓기 시작하는데..
이런 중노동을 느슨한 연맹체 수준으로 할 수가 없지요. "
->
당시 철기시대 이전인데..  이런 대규모토목공사를 나무나 뼈 돌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지요.

후대의 왕국기준으로도 대규모사업인데 이런  대규모 토목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만큼 대규모 제국이어서라기보다..  당시 약탈과 침략전쟁이 많았고 노예를 많이거느리고 있었다는 의미겠지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예외라니깐 그러네..
이들은 자연이 준 선물인 대규모 충적토에서 일으킨 문명인데.. 당시 이들은 시기와 규모에서 비교불가의 위치거든요.

뭐 홍산문명이 이들과 겨룬다는 말도 들리지만..  규모는 이들을 따를 수가 없지요.



글고 시대가 흐르면서 큰 차이가 날텐데... 
하나라면 하나라로.. 주나라면 주나라로 말해야지.. 하은주라니.. 천년이 넘는 기간을..
니꼴리는데로 뒤섞는 버릇이 습관이구만.. 
.
                         
Centurion 15-04-02 10:07
   
말투가 요상하시네요.
니꼴리는대로 뒤섞는 버릇이라니요..

님은 지금~ 고조선 시대 말하고 있잖아요.

님 말대로 고조선이 주변국과 교류도 못할 코딱지만한 성읍국가라면..

엄연히 단기 4333년부터 한무제시기(기원전 100여년)까지
대략 2천년 넘는 세월을 존재한 나라를 한꺼번에 니꼴리는대로 뒤죽박죽 말씀하고 계신겁니다.

아니~ 그 수천년세월에 알타이 산맥에서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이동하고 부딪히고 혼혈되고, 밀려나고, 그 유적들이 남아있는지 아세요?
수백, 수천킬로 밖의 백인, 황인, 인도 아리안민족이 이동해와서 충돌하고 부딪힌 곳이 거깁니다.
(참고로 그런 충돌흔적이 고고학적으로 나타나는게 기원전 3~4천년 이전입니다.)

그런 증거가 있고만.. 고대인들 무시하면 안된다 이거죠.

님이 역사적 고고학적 지식 정보를 접하지 못하셨나본데..
이집트고 메소포타미아고 그깟 자연환경의 수혜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그 시절에 무역도 하고, 이웃나라에 수백킬로 걸어가 원정하고,
대제국을 건설하던 시대에요.

사극 드라마에 무역상단 나오죠.
그거 실제로 많게는 수만명 단위로 움직이기도 하는 수준이에요.

하은주 시대 하나라 지도 못보셨나보네요.. 허허..
그 시대 교통도 발달되지 않은 성읍국가가
뭐~ 님이 사시는 사방 몇킬로 짜리 도시만할 거 같죠?

http://qmun.jinbo.net/xe/files/attach/images/23067/429/228/a72f5cbb913b5f64231b2e7d31ef3523.jpg

아무리 봐도 저 면적이 서울광역시보단 클거 같은데요?

그리고 지금 중국이 말하는 게 황화문명보다 빠른게 나왔으니까.
홍산문명, 양사오문화 등이 황화문명에 영향을 끼쳤다 이겁니다.

중국이 말하는게 그거고만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세요?

님이 중국의도를 숨겨주려고 혼선 주시는겁니까?
중국 애들은 그게 아닌데, 왜 님이 이상하게 해석하시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ㅋㅋ
                         
잠원 15-04-02 10:33
   

고조선을 성읍국가라 하였지만..
괄호를 치고 후기에는 왕국이 되었다고 적었을텐데요?
혹시 못 보셨나요?

글에서 기원전 10세기를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10세기의 고조선은 성읍국가단계라는 것이지요.


"고대인들 무시하지 말라이겁니다. "
->
누가 무시한다고 그러는거요?
길도 없는 땅에 살면서 ...  돌도끼들고  전쟁을 벌이고..  나무 막대기로 농사를 짓고..
당시는 그런 수준의 시대였다고 말한 것인데... 무시라...



http://qmun.jinbo.net/xe/files/attach/images/23067/429/228/a72f5cbb913b5f64231b2e7d31ef3523.jpg
->
링크된 지도에서도 하나라의 영토라 하지 않고 세력범위라 하였자나요?

세력범위라 하지만..  단어는 같지만 오늘날 쓰는 세력범위와는 차이가 크지요.
예를 들어서
기원전에 콩고 밀림지대에 5000명을 거느린 왕국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후손들인 콩고 알라들이 아프리카 지도 절반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세력범위라하면서 자위한다?
거짓말일까?
진실이니 거짓말이니의 문제보다는 재밌는 얘기지요.

과연 지도의 동그라미친 원 안에  개간된 땅은 얼마나일까?
10%?  1%?  0.1%?
내 생각에는  많아야 1% ~  0.1% 사이가 아닐까 하는데...
나머지 99%는  밀림과 동물들이 뛰노는 땅이거든요

동그라미 범위도 우습지만... 단어도 영향권도 아닌  세력권이라는 것이거든요?
나무 막대로 농사짓고 .. 병사들이 맨발로 뛰어다니고 돌도끼들고 싸우면서 한반도보다 넓은 땅을 세력으로했다?


지꼴리는데로 지도에 동그라미치며 노는 상황이 콩고 알라들하고 막상막하.. 비스므리한 레벨이구만요.
 
.
Marauder 15-04-01 21:19
   
10세기가 기원전인가요? 주나라에서도 전차를 사용했다는 기억이 있는데 그때 전차를 소가몬게 아니라면 기원전이겠죠?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면 원시시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미개척지도 많았겠죠...
     
잠원 15-04-01 23:09
   
인간이 말을 사육한 것은  더 오래되고요.
소 처럼 고기를 얻고 짐을 끄는 용도로 쓰였지요.
따라서 말을 길들여서 마차로 끌게 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데..

여기서 말을 탄다고 했을때는 승마를 말하거든요.
또 말을 잘 길들이는 능력자가 있어서 단순한 승마가 가능했더라도 .. 한시적일뿐..
말을 무리없이 오래도록 달리게 할 편자와  편안하게 탈수 있도록 한 안장이 함께한 이후에야 비로소 말을 이용했다고 할 수가 있지요.


미개척지가 많다기보다.. 당시는 조그만 성읍이나 씨족마을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미개척지지요.
당시 지도에 영역을 표시한다면 점으로 표시하겠지요.
(무리와 따로 떨어져서 독립해서 산 다는 것은 약탈이나 짐승등으로부터 위험했을텐데..
성읍국가가 생긴 이후로는 대부분이 이들  마을이나 성읍을 중심으로 몰려 살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잠원 15-04-01 23:54
   
중원을 예로 든다면...
토지이용만 하더라도 춘추시대와 전국시대가 많이 다르거든요?
춘추시대만하더라도 성읍도시 중심사회로 미개척지가 많았지만..  전국시대에 와서야 비로서  면으로 표현될만큼 개간이 이뤄진 것이지요.(물론 인구가 그만큼 크게 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다 하더라도 강이나 호수 주변에는 넓은 저지대가 있었고 산림이 곳곳에  산재한 모습이지요.
또 해안가는 개척의 역사가 제일 늦지요


오늘날 김포평야는 곡창지대인데 백제시대에도 곡창지대일까?
조선시대만하더라도 지금 토지의 절반 이상은 수초가 우거진 황무지였으리라는 생각이지요.
하물며 백제시대는 서울보다 생산량이 적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고

지금의 서산만하더라도 조선 후기까지 사람도 많지 않고 오지였거든요?
서산은 마을이 거의없는 전형적인 산촌으로 유명한데.. 
당시 사람들은..  서산은 사람이 살만한 땅이 아니다는 것이겠지요.
서산이 그런데... 하물며 중국 해안가는...
          
Centurion 15-04-02 02:40
   
님이 생각하기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일찍부터 한반도에 살았고,
농경지에 의한 인구 부양의 포화상태랄만한 상황도 일찌감치 왔습니다.

간단히 고구려, 백제, 신라 인구.. 이거 다합치면 최소 수백만~최대 1천만 가량 나옵니다.
이후의 고려, 조선시대 인구랑 삐까뜹니다. 한마디로 인구 포화상태라 일찌감치 왔다는 소리죠.

그냥, 그 조그만 한반도와 만주에 있는 나라가
중국 인구(6천만~1억)의 1/10 정도 되는 규모였어요.
고구려가 혼자서 괜히 수나라, 당나라를 물먹일 수 있었던게 아니에요.

그런걸 감안해보면 상당히 빠른 시기에 농사가 발달했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아마 탄화된 쌀이 발견된것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걸로 압니다만.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33

논란은 있지만, 중국의 1만2천년 전 쌀에 비해 3천년이 빠른 1만5천년전으로 나왔고..
최소 5천년 전쯤에 이미 한강유역에서의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중국의 경우엔 중심지역인 중원지역과 일부 서쪽, 남쪽의 개척이 시작되긴 했어도..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된건 5호16국 이후 동진 정권 이후부터죠.
중국은 면적이 솔까 미친듯이 넓기 때문에 그런것도 있습니다만..

그런 미개척 상황을 한반도에 갖다붙이셔도 안통합니다.
하다못해 산에 불질러서 화전 지어먹던 나라이고,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한강유역에서 피터지게 싸움을 벌인 나라가 삼국이에요.
미개척지 많았으면 일단 거기 농사짓는거부터 했곘죠.
               
잠원 15-04-02 08:02
   
이 댓글만봐도 지맘데로 시대를 왔다리갔다리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기원전 10세기 얘기하는데 고구려, 신라, 백제가 왜 나오지요?
또 "당시 중국인구(6천만~1억)의 1/10 정도".. 내 알기로는 이 정도 되는 것은 무려 천 수백년도 이후나 되서야 (심지어는 명나라말에 1억 인구라는) .. 이런 개뻥을 마치 기정 사실인 양 하고 맘데로 뒤섞어서 놀고 있으니..



사실 제가 은나라를 마치 조그만 목책을 가진 나라라는 식으로 얘기한 것은..
은허의 유적이나 갑골문등의 유물의 대량출토에 의해서 은나라를 마치 대단한 대제국으로 진시황시대 레벨로해서 공상하는 이들을 많이 보다보니깐....
그런 상상하던 나라가 전혀 아니고...  그와 비교하면 넘 별 볼일 없는 작은 인구와 땅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다소 과장이 있었는데 ..

저도 고대 중원의 역사를 하은(상)주로 배웠지만.. (최근에 은나라 이전에 상나라가 별도로 존재했다는)이 시대구분에 의하면 은나라는 초기(상나라)는 기원 10세기 전으로  제가 말한 성읍국가 단계일테고... 은나라 말기에야 비로서  이런 성읍국가의 연맹체로 초기 왕국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다 하더라도.. 은나라 시절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강대한 왕권을 가진 고대왕국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은나라 초기(상나라)는 목책을 두른 성읍국가로...  은나라 말기에 와서 토성을 두른 도시국가로 .. 그리고 (성읍)도시간 연맹체... (초보적인)왕국으로 성장한 것이지요.
은허는 당시 이때의 유물이거든요.


만 2천년전의 탄화미가 발견됐다? 중국보다 빠른 신기록이다?

이런 오래된 탄화미가 발견됐다는 것은 한반도에 일찍부터 농경이 이뤄졌다는 소식이니 빠른 것이 좋은 소식이지만..
그래봤자 당시 고대시대에 농경에서 중요한 것은 벼재배가 아니라 귀리같은 관리를 안해도 잘 자라는 밭작물이거든요?  벼가 중요한 작물이 되고... 더 나아가 주식이 되기 위해서는 2천년은 지나야 하지요.

내가 중세왕국이나 현대를 비교한 것은 이해를 돕자는 것이었는데..
주제는 말이 없던 선사시대와 고대시대이야긴데...  삼천포니..
.
                    
잠원 15-04-02 10:00
   
탄화미와 농경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기원전 10세기는 청동기시대거든요?
청동기의 사용은 혁신적인 일이지만... 당시 청동기는 귀중품이라서 귀족들이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지요.

그래서 청동기 유물만 보더라도 대부분이 장식품류인데 ..
무기로 쓰였더라도 모든 병사에게 돌아가지 못했을테지요.
청동기시대  많은 병사들은 아직도 돌도끼들고 싸웠다는 것..

하물며 그 귀한 청동기를 농기구로 쓴다? 말이 안되거든요.
따라서 당시 땅을 개간하고 경작하는데 나무막대등으로 했을텐데...  농사를 지어봤자 한심한 수준이었을테죠.

나무나 돌등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건물을 세우고... 길을 낸다?
가소로운 수준 아닐까요?
(뭐 엄청난 노예가 생겨서 쪽수로 대규모사업을 일으킬수도 있지만.. 이건 매우 특별한 사례로 이 조차도 국력(?!)총동원이겠지요)
.
                    
Centurion 15-04-02 10:54
   
그러게 코딱지만한 성읍국가라는 걸 뻥을 왜 치셨습니까? ㅋㅋㅋ
나원참..  남보고는 개뻥이라더니 본인이 한 택도 아닌 과장법은 개뻥이 아닌 줄 아시나봐요?

누가 보면 말 없던 시절엔 사방 몇킬로도 못다니는 줄 알겠네요 ㅋㅋ
도로 환경 안좋은 조선시대에도 과거 보려고 서생들이 경남에서 서울까지 몇백키로 꼬박꼬박 걸어다니고, 보부상들은 일년에 몇천킬로도 걸어다녔을텐데..

"오늘날 김포평야는 곡창지대인데 백제시대에도 곡창지대일까?
 조선시대만하더라도 지금 토지의 절반 이상은 수초가 우거진 황무지였으리라는 생각이지요.
 하물며 백제시대는 서울보다 생산량이 적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고 ? "

<--- 그리고 뜬금없이 시대 점프한건 님이구만, 왜 남한테 뒤집어 씌워요?
이상한 분일세. 님한테 댓글 달려니 백제 이야기 나온거지 ㅋㅋㅋ

그리고 제가 뭐 고구려, 뱍제의 호구수가 드러나던서기 서기 600년대의 상황을 말씀드린거긴 합니다만..

삼국이 시작되던 삼국 건국무렵 시절의 삼한 인구 자체가 1만호 단위로 76개국 즉 76만호 X 5 해도 적어도 380만입니다.
북쪽에 낙랑, 대방 등 한사군과 부여나 고구려, 옥저, 동예 같은 나라 빼구요. 이게 중국 한나라 시절 동이열전에 나온겁니다.

그리고, 탄화미가 나온건 1만5천년전이지만, 한반도에서 재배벼 볍씨(여주 탄화미)가 나온건 3천년전입니다. 주나라 건국시기입니다.
고양 탄화미는 5천년 전~ 즉 고조선 건국보다 더 빠른 시절에 나왔구요. 이게 농사로 쌀먹기 시작한 흔적으로 한강변 근처 지역에서 발견되죠.

http://samchang.or.kr/bbs/skin/ggambo6210_board/print.php?id=dataroom&no=352

1만2천년전에 발견됐든 1만5천년전에 발견됐든, 그걸 2천년 지난 뒤에 먹을 수 있다고 하는건?
짱개들 쌀재배 시기랑 맞춰서 먹었다고 하기 위해선가요? ㅋ

뭐 어쨌건 중요한건 거기서 한 1만년이 지난 백제 시대 한강에서 쌀농사 못짓는다는 말하곤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네요.

그리고 중국만 하더라도 솔까 후대의 위촉오 삼국지 씹어먹을만큼 국가간 총력전을 벌여서 이게 뭔 개소린가 싶을만큼 많은 병력이 동원됩니다.
아니,, 님이 아까 말하던 그 청동기 시대에 말이죠. 농사도 지어먹기 힘든 시절에 춘추전국시대로 수십만 대군이 부딪히는 회전을 벌이던데요.

저도 구라인 줄 알았더니, 전국시대 때 장평대전 유골 발견된거보고 그 엄청난 대군과 사상자 수가 구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이다.
아니 그 많은 인구들을 부양할만한 농경지가 없었을거라 생각하세요?

전 딴거 아니고 농기구 없다고 농사 못짓고,말없다고 멀리 못간다고 생각하는 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겁니다.
아니, 실제로 그 많은 인구가 먹고 살았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거리를 걸어다녔는데요?

제가 그래서 고대인들의 스케일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는겁니다. 제가 할려는 말이 그거에요. 시대고 뭣이고도 중요하지 않고..
6.25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시절에도 학교가고 장터간다고 하루에 몇십리 길 걸어다니던 사람 많았습니다.

님이 현대인이라서 그 옛날 사람들의 근면성과 스케일을 모르는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Centurion 15-04-02 13:27
   
그리고 이 사람이 참 노답인게 넷티켓을 쌈싸먹은것도 문제지만..

자 몇가지 더 지적해봅니다.

성읍국가라면서요.
아프리카 밀림 한가운데 코딱지만 성 하나에 주변에 얼마 안되는 면적에
농사짓고 살아도 그런 점 단위가 넓게 펼쳐져 있으면 나라의 영토가 된다. 맞는 말입니다.

근데, 그게 지금도 그렇거든요.

철기 생산되던 시기. 유럽 중세 봉건시대 안그랬나요? ㅋㅋㅋㅋ
영주가 성 쌓고 주변에 농노들 시켜서 부려먹던 시절은 뭐 대단한 줄 아세요?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도 그런 모양이고, 미국의 서부개척도 그런 모양새였는데요.

이 분 아무래도 착각이 너무 심하신 거 같은데..
지금 그런씩으로 치면 미국이나 호주는 놀리는 땅 엄청 많을텐데..
돌도끼들고 우가우가하는 미개한 나라 됩니까?

점인지 면인지는 중요한건 인구를 보면 압니다.~
소위 청동기 무기도 쓰는걸로 벌벌 떨던 시절에 청동농기구 안쓰던 그 시절에도..
인구가 바글바글했거든요. 그럼 그 인구는 어디서 뭐 흙퍼먹고 강물로 배 채우고 삽니까?

먹고 살려면 농사짓고 목축을 하든, 유목을 하던 수렵, 채집을 하건 해야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경, 목축,수렵, 채집, 유목 같은 게 생겨난겁니다.
특히 유목.. 이건 뭐 풀먹이 찾아서 온 몽골초원,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해집고 다니죠.
그래도 모자르다고 중국 확 밀어버리고 초원으로 만드려던게 몽골입니다.

그래서 그 유목하던 몽골족이 뭐 인구가 한 몇천만명, 몇억명 되던가요? 꼴랑 백만명입니다.

반면, 농경이라는건 농사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좁은 면적에서 많이 건지려고 빽빽하게 심어요.
거기서 나오는 곡물과 야채의 양도 상당한 편이고요.

어차피 중요한건 인구가 얼마나 되느냐지. 농기구가 좋고 나쁘고가 아닙니다.
인구가 바글바글하면 점이 아니라 면적으로 흩어져 온 천지사방에 농사짓는거에요.

그러다, 뺏으러 쳐들어오는 놈도 있고, 행정 관리도 해야겠고, 식량을 세금으로 걷어서 모아둬야겠고,
그걸 위해 생기는 게 성읍입니다.

그런 성이 여기저기 생겨나는겁니다.
인구가 많으니 관청도 설치해야겠고, 그걸 보호하기 위해 쌓는게 성이에요.

인구가 늘면 또 인구에 맞춰서 군현제등 봉건 군국제든 의 행정기구도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인구 많은 곳은 군현이 촘촘하고, 인구 적은 변방지역은 은 아주 넓직넓직하죠.

당연한거지만.. 인구 늘면 더 넓은 지역을 활용하고, 또 넓게 퍼져가고, 성 쌓고 그건 자동입니다.
그냥 인구증가와 국가의 성장, 팽찰, 발전은 당연한겁니다.

결국 '인구론'의 문제라 이겁니다.
도구는 불편함을 없애주는거지. 그거 없다고 아예 못하는게 아니라니까요.

결국 춘추전국시대더 청동기였고, 기껏해야 목재 농기구로 농사짓던 시대라 쳐도..
그 많은 인구들 부양할만한 농업생산력이 나왔고, 그만한 면적의 농토가 있었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맨손으로 농사를 짓던가 편한 곡물을 먹고 살던가 결국 먹을 게 있어서 그 인구가 살수 있다는겁니다.

결국 결정짓는건 인구입니다. 면이고 점이고는 그렇게 따지는게 아니에요.
그냥 인구가 늘면 그 점이 촘촘해지고, 면적이 넓어지는거에요. 왜 먹고 살아야 되니까.

몇십만, 몇백만 인구가 자연에서 자생하는 사과나무 따러 다니고,
돌도끼 깍아서 사냥하는 걸 망상하고 있다면..
그 정도 인구가 살기 위해 돌아다녀야될 면적은 아주 넓어야 될겁니다.

어디 한번 지금이라도 밖에 나와서 남의 과수원, 논밭 말고.
자연에서 자생하는 사과나 멧돼지 잡아서 서바이벌 해보시죠 ㅋㅋㅋㅋ

아마 한 몇십키로를 헤매도 굶어죽으실걸요. ㅋㅋㅋ 그걸 몇십만명이 모여사는 상황에서 한다.?
아니 몇만명만 모여있어도 얼마 안되서 반경 몇십킬로에 먹을게 없어 다 굶어죽겠죠. 그래서 농경을 해야합니다
그것도 인구 규모에 맞는 면적의 대규모 농경을 말이죠.

그리고 돌도끼로 우가우가하던 시기는 님이 말한 기원전 10세기 경이 아니고..
그건 구석기,신석기 시대 이야기죠. 국사시간에 엎드려 주무셨나요? 농경의 시작은 신석기시대인데..

님이 본문에 언급한 기원전 10세기면 아무리 늦은 신석기도 끝날무렵입니다.
아니.. 뭐.. 솔직히 홍산문화에서 나오는 그 흑피옥의 기술력 보면..
이건 뭐  돌도끼 들고 우가우가 하는걸 상상도 못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하여튼.. 고작 점에 모여살았니 뭐니해도 어차피 영토는 그런걸로 정해지는건데..

뭐.. 남들이 안산다고 인적드문 곳이라고 어디 한번 캐나다나 미국 숲속이나 들판에서 살아보세요.
경찰한테 걸리면 추방당하나? 안당하나? 뻔히 아실텐데.. ㅋ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순동 사용은 기원전 5천년전, 청동기가 기원전 3500년 전..
가축이 끄는 수레의 발명이 기원전 4000년 전.

중국이나 한반도가 아무리 느리다해도
기원전 13세기쯤엔 이미 중국 은나라에서 전차가 굴러다녔던 시대..
청동기는 대략 기원전 2천년전에 이미 사용되기 시작.

이미 돌도끼들고 우가우가 하던 시절이랑 상관이 없던 시대인데..
이 분은 택도 없는 시절에 택도 없는 우가우가 돌도끼 상상을 하고 계시네요.

한반도에서 제일 늦게 발견되는 신석기가 기원전 1천년경이라고는 하지만,..
대략 빠른건 기원전 5천년전..  게다가 농경의 명백한 증거인 재배벼 볍씨가 그 무렵에 발견.

이거 돌도끼 들고 전쟁하고 우가우가 하던 시대 맞나요?
청동기가 나오는게 최소 기원전 15세기인데..

중국에서 기원전 10세기 무렵 때
은나라랑 목야대전에서 총합 75만 대군이 맞붙어 주나라가 건국되는데.. 허허 참..
돌도끼든 부족전쟁 우가우가 75만 만 대군이라.. 참 대단하네요 ㅋㅋㅋㅋ 장관이었을 거 같습니다. ㅋㅋ
     
잠원 15-04-02 15:05
   
그럼 은나라시절 은나라의 인구가 얼마일까?

이것도 애매한게..  직접 통계가 없고..  은나라도 시대에 따라서 팽창과 찌그러짐이 있을텐데...

돌 도끼로 땅을 개간하면서 .. 나무 젓가락을 쟁기대신 쓰고 ..  길도 없는 땅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화북평원 전체를 주름잡고 세력으로 거뒀다고 우기것지만
좋다 이거지요.

그래서 기원전 10세기 은나라의 인구는 얼마정도일까?
아니 화북평원 전체 인구는 얼마라는걸까?



중간까지만 읽다가 댓글을 달다보니 마지막 부분에
'은나라랑 목야대전에서 총합 75만 대군이 맞붙어 주나라가 건국되는데..'요게 있네용?
->
애초에 내가 애기를 꺼낸것은  말사용 이전시대...  은나라 초기에 해당이 될텐데..
지 맘데로 시대를  바꿔서 주나라 초기로 만들었고 놀고 있지만..
통 큰 내가 이해를 해 줘야지용..

헌데 병력이 75만?
누구 맘데로?
빵을 하나 더 붙인게 아닐까?


춘추시대는 추장들이 놀던 시대고..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전국시대는 되야할텐데..
전국시대는커녕..  진시황제라면  근처까지 가겠구만..
.
          
Centurion 15-04-02 15:31
   
기원전 11세기, 상나라 주왕이 민심을 잃었음을 안 무왕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병법에 정통한 태공망에게 군사 5만을 주어 황하를 건너 동쪽을 쳐나가게 했다. 그리하여 맹진(盟津)에 이르니 8백 제후들이 모여 있었다. 무왕은 주왕의 흉악함과 잔인함을 성토하고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주왕을 토벌할 것을 호소했다.

상나라 주왕은 황급히 군사 70만을 긁어모아 자기가 직접 거느리고 목야로 달려나왔다. 그는 70만으로 무왕의 5만을 물리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상나라 군사의 대부분은 노예이거나 동이에서 잡혀온 포로들이었다. 주왕의 학대를 받아온 그들은 오래 전부터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주왕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려고 하겠는가. 무왕의 군대가 진격해 오자 그들은 모두 창끝을 되돌려 상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70만 대군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태공망은 군사를 지휘하여 상나라 수도인 조가로 돌진했다.

조가를 겨우 빠져 나온 주왕은 그날 밤 녹대로 가서 숨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낱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자, 녹대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 뛰어들어 xx했다. 무왕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도읍지를 풍에서 호경(鎬京)으로 옮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목야대전 [牧野之戰]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4.25, (주)신원문화사)
               
잠원 15-04-02 15:42
   
내가 년도를 착각했구만.. 

헌데 여기서 70만 얘기는 ..
중국공상당이 펴낸 '중국상하오천년사'의 내용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 책의 내용을 사실처럼 얘기하는데..
갑골문이나 기록으로 전해내려오는 얘기인가요?

그럼 중국공상당이 펴낸 '중국상하오천년사'를 신뢰한다면...
중국공상당의 동북공정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역사라고 한 것은 왜 발광하는거지요
                    
Centurion 15-04-02 15:59
   
허허~ 왜곡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것도 크게 이익이 있으니까 하는거지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중국상하오천년사 신원문화사가 무슨 중국공산당 출판사인지 확인해보세요.
                         
잠원 15-04-02 16:08
   
왜곡할 이유가 없다?
그럼 왜곡할 이유가 없다면 지꼴리는데로 써도 상관없다는 소리네요.

헌데 환빠들을 보면... 사실적으로 임금님 이름도 나오고 연대도 나오고.. 못 보던 내용이 있던데...
신원문화사에서 기록도 없는 고대 역사를 사실처럼 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지요?
.
                         
Centurion 15-04-02 16:17
   
아놔.. 왜 댓글 갯수제한인가 리플을 못달지.. 쩝..

자 봅시다~ 지 꼴리는대로 기록할 동기가 뭔가요? 범행동기가 분명해야 범행을 저지르죠.
뭐 자화자찬을 위한 구라치기? 근데 동시대 사람들은 겪어서 알텐데요.

그리고 저게 어디 한두군데 나오는 내용인지 아세요?
보는 눈이 많았던 중대결전이지 역사상 빅이벤트인데요.

뭐 구라고 과장이고 해도 솔까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서 확인하지 않고선 어려운거고.
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는 역사기록 갖고 왈가왈부 좀 하지맙시다.
               
잠원 15-04-02 15:51
   
뭐 국가 총력전이니..
황하 주변 연맹체를 모두 끌어들이면 동원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2천년 후에 저보다 2배의 병력을 겨우 유지한 것을 보면...
그럼 당시 인구가 절반이라도 된다는건가?
반에 반? .. 그 반에 반?
군대의 동원 능력이 인구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건가요?

그러니깐 당시 은의 세력권에 있던 인구가 얼마라는 건가용?

.
                    
Centurion 15-04-02 16:05
   
하왕조 시기: 1,335만명 정도(제왕세기 기록)

상나라-주나라 교체기 전쟁.
견융의 주나라 침공 이후 춘추전국시대  도래

춘추시대(B.C 770~403년), 전국시대(B.C 403~221년)
-잦은 전쟁으로 인구 감소 요인 많음..

전국시대( 기원전 5-3세기 ) 총 2000만명 추정-진나라 통일 대략 인구 2천만

진-한 교체기, 초한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 요인 많음.

한 초( 기원전 200년 무렵 ) 약 1,500~1,800만

전한 무제 초기( 기원전 134년 ) 3,700만

한 무제시기( 기원전 87년 ) 3,200만 내외

서기 2년( 한서 지리지 ) 5,900만

남북조(400~500년) 4,000만
당나라(755년)         5,292만
송나라(1080년)       10,000만
송나라 말기(1290년) 5,985만
명나라(1393년)         6,055만
청나라(강희제, 1714년) 12,300만
청나라(건륭제, 1762년) 20,000만
청나라(건륭제, 1790년) 30,000만
청나라(도광제, 1840년) 41,300만
청나라말기(1900년)        約 40,000만
1949년                         54,167만

http://ko2cn.com/?p=362
http://dotodtk.egloos.com/m/9736573
                         
잠원 15-04-02 16:20
   
전국시대가 2천만 추정인데..
하나라가 1300만?


위에 내가 쓴 글을 전혀 안 읽었다는 거구만.

하나라와 은나라는 차원이 다르고요..
은나라와 춘추시대는 또 다른 차원이거든요?
더구나 인구가 급격히 팽창된 시기로 전국시대를 꼽는데..
철재농기구가 일반인들에게 대량으로 보급되고...  개간이나 농업기술의 발전 때문이지요.

내 위에서도 춘추시대만해도 주요도시 중심의 사회로... 지도에  점으로 표현한다면 전국시대로 가면서 면 중심으로 급격한  변혁이 이뤄졌다고 썼고만..
하나라와 전국시대는 전혀 다른세상인데..
인구가 별 차이가 없다네...ㅎ


그러니깐 난 애초에 말 사용 이전시대는 목책을 중심으로한 성읍국가로 이후 제국은커녕 왕국과 비교하면  별 볼일 없는 수준이라는 내용을 쓴 것인데... 
내용을 읽지 않은 듯한 동문서답식 영양가 없는 댓글만 달리니..

.
                         
잠원 15-04-02 16:34
   
하나라는 신화의 나라인데..  그래서 은나라를 비교한다면.. 
당시 황하유역과 화북평야 의 개간지가  토지대비 1%라면.. 전국시대는 50%가 되는 식이거든요?  개간지가 그렇고..
또 철재농기구의 대량보급과 농업기술의 발전이 있을거 아닙니까?
비교 대상이 아닌 거지요.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중원은 전국시대 이후의 얘기지요
이후시대에는 화북지역의 미개간지의 개척도 있지만...  이때부터는 남쪽으로 영토확장이지요
.
Centurion 15-04-02 16:35
   
아놔~ 어이가 없구만.  이게 왜 의미가 없는 통계에요? 와. 기가 차네.
 진짜. 사람이 얼굴에 철판을 깐건가.. 통계 자료까지 찾아줘도 엉뚱한 소리를 하네..

하나라 시절에 인구가 1350만 정도나 되면, 그 뒤의 은나라 인구는 특별한 이유없으면 더 늘면 늘었지 줄지가 않죠.
뭔 전쟁을 하거나, 대기근, 전염병으로 무더기로 죽어나가지 않는 이상..

그리고 하나라나 은나라나 짜달시리 엄청난 농경기술의 격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은나라가 전대 하나라보다 농경기술이 딸려서 인구가 감소할 이유도 없고..

그리고, 춘추시대고 전국시대고 인구가 일단 거기서 거기고만.. 무슨 점에서 면으로 급격한 확대... 참...
전국시대 다룬 역사책 보면 춘추시대나 전국시대나 전쟁하면 성 수십개씩 뺏고 뺏는 내용이 수두룩 빽빽한데..

게다가 춘추전국시대는 툭하면 각국이 총력전으로 장정들을 끌어내서 죽고 죽이던 시대라 인구가 증가는 커녕,
감소하던 시절이고.. 그 앞의 상나라나 주나라는 교체기에만 전쟁 좀 했을 뿐이고만..

갑자기 전국시대 되면 농경면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콩딱지만한 땅에서 농사짓다가.. 대규모 개간을 해서
인구가 몇배라도 뛰는 것처럼 생각하네.. 헐...

실제로 그런 인구 증가가 계속 되는건 태평성대 소리 듣던 시절이고,,
그중에서도 철기시대가 시작된지 한참 지난 청나라 강희제 시기가 핵심인데..

상식을 좀 가집시다. 님아.. 아놔 진짜 ..
     
잠원 15-04-02 17:05
   
니꼴리는데로가 아니라...  답답이...  철벽을 보는 듯하고만..
내가 왜 이런 철벽을 붙들고 놀고 있는지 .. 내 자신이 한심한 지경인데..

암튼 마무리는 해야것지?



[하왕조 시기: 1,335만명 정도(제왕세기 기록) ]
->
구전 설화를 쓴 책이라지만...  인구가 내용에 있다면.. 요부분은 작가가꼴리는데로 썼을테지만  이런 내용을 왜 넣었는지 .. 사실적으로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그냥 황당..


[상나라-주나라 교체기 전쟁.
견융의 주나라 침공 이후 춘추전국시대  도래
춘추시대(B.C 770~403년), 전국시대(B.C 403~221년)
-잦은 전쟁으로 인구 감소 요인 많음.. ]
->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땡이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노는 스케일이 다른 시대로... 전쟁으로 죽은 이들 이상으로 인구가 급팽창한 시기..


[전국시대( 기원전 5-3세기 ) 총 2000만명 추정-진나라 통일 대략 인구 2천만
진-한 교체기, 초한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 요인 많음. ]
->
당시는 전쟁으로 죽는 것보다 가뭄이나 질병이 인구감소의 원인..
뭐 전쟁으로 돌림병이 악화됐다면 그럴수도 있지만
 

[한 초( 기원전 200년 무렵 ) 약 1,500~1,800만
전한 무제 초기( 기원전 134년 ) 3,700만
한 무제시기( 기원전 87년 ) 3,200만 내외 ]
->
한초에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는... 전쟁으로 죽어서라기보다  통계 누락..
왕조 교체시기나 전쟁 후엔 통계누락 인구가 절반 이상일 수도 있었던 시대..


[서기 2년( 한서 지리지 ) 5,900만
남북조(400~500년) 4,000만
당나라(755년)         5,292만
송나라(1080년)       10,000만 ]
->
송나라 시기에 인구가 급팽창 한 것은 강남 개발때문


[송나라 말기(1290년) 5,985만
명나라(1393년)         6,055만
청나라(강희제, 1714년) 12,300만 ]
->
청나라에서 인구가 2배 늘은 것은... 그동안 한족 관료와 토호들이 못살게 굴고 얼마나 부정부패가 많았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이지..
이전시대와 비교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온 것이지

생각해보니.. 농업기술의 발전의 영향도 중요하겠구만


.
          
Centurion 15-04-03 00:58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땡이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노는 스케일이 다른 시대로... 전쟁으로 죽은 이들 이상으로 인구가 급팽창한 시기..

-> 와~ 대단.. 남들이 장담도 못하는걸 장담하시네~ 타임머신 보유중이신가? 나 좀 빌려주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시대 농기구가 철제가 아닌 시대, 즉 은나라, 주나라에 비해 딱히 나을것도 없던 시대.
    나중에 한나라 말기에서 반토막나는 위,촉,오 삼국시대 인구보면 아주 거품 무시겠구먼..   

한초에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는... 전쟁으로 죽어서라기보다  통계 누락..
-
>이 분  진나라 말기 초한지 안보신 분..

왕조 교체시기나 전쟁 후엔 통계누락 인구가 절반 이상일 수도 있었던 시대..
송나라 시기에 인구가 급팽창 한 것은 강남 개발때문

->급팽창은 무슨, 밑에 강희제 때만 봐도 태평성대면 30년마다 인구가 2배씩 뛰고 있고만.. 그걸 강남개발 하나로만 설명하네. 
  애시당초 1080년 송나라는 양쯔강 이북도 갖고 있던 시대고, 송나라 말기는 양쯔강 이남에 찌그러져 있던 시대인데..
  그나마 당나라에 비하면 2~300년만에 인구 겨우 2배정도 찍은거고.. 그 당나라 인구는 수백년 앞의 한나라 시절 인구랑 별 차이도 없는데..
  철제 농기구가 풀린게 한나라 때라니까 왜 한나라 인구가 전쟁에서 떼죽음이 일상이던 춘추전국시대에 비해서 꼴랑 2배 정도밖에 못되었는지 설명도 못할 궤변을 하고 있네..
 
청나라에서 인구가 2배 늘은 것은... 그동안 한족 관료와 토호들이 못살게 굴고 얼마나 부정부패가 많았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이지..
이전시대와 비교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온 것이지

생각해보니.. 농업기술의 발전의 영향도 중요하겠구만

->철제농기구가 나온지가 이미 1천년도 더 지난 청나라 강건성세 때
  드디어 철제 농기구와 농업기술 발달이 빛을 발해서 인구가 명나라 때에 비해서 2배,5배, 8배씩 늘었고만....
 
  눼눼~ 대단하십니다..

  쓰지도 않은 철제농기구로 인해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으로도 인구감소는 커녕 인구 급증 시즌이고..
  그 뒤의 왕조들은 인구조사도 제대로 못해서 세금이 철철 세는걸 방치하는 무능 부패한 관료과 토호들의 세상이었으며
  한나라부터 보급된 철제농기구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천년이 넘게 지난 청나라 때 그 효과가 빛을 발했다~ 이거구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궁동자 15-04-02 19:10
   
노벨 역사학상이 없는게 아쉽군요.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수있는 학설인데 말이죠.

말이 없으니 도시국가가 한계라...

암요 로마제국은 허상이고 그냥 도시들의 연합이었죠. 그리스처럼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알렉산더 대왕? 말도없는데 무슨. 그냥 도시 몇개 치고박은거죠  ㅋㅋㅋㅋ

황제는 무슨 로마시 시장일 뿐이죠. 보병군단이라니 웃기지도 않죠 어딜 감히 기병한테 개기는지. 켈트의 우월한 전차, 기병군단은 로마보병군단 따위는 씹어먹었죠. 아스테릭스는 카이사르를 이겼고 갈리아전쟁기는 전부 거짓말입니다. ㅎㅎㅎㅎ

말 느님이 최고시다. 보병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전차도 꺼져 기병이 킹왕짱, 등자가 없으면 말을 탄게 아녀, 스키타이도 훈족도 모두 구라 등자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탐? 고대에는 유목민족이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등자가 발명된 이후에  안들어진거ㅋㅋㅋ

우리가 배운 역사는 후대에 조작된 역사다! ㅋㅋㅋ노벨상  드리고 싶습니다. ㅋㅋㅋㅋㅋ
     
잠원 15-04-02 22:44
   
그러잖아도 베충이 얘기했었는데...  베충이선수가 오셨고만..

며칠전에 조배숙이 위안부가 어쩌고 하는 발언을 껀수라고 주어와서 개발광 하는 것을..
번짓수를 잘못 찾았다고 아자씨가  뭐라했더만 .. 
그걸 앙심을 품고 지딴에는 엿 먹인다고  여기와서 똥 싸는 것일텐데 ..

여기서도 왠 뚱딴지같은 로마제국이 등장하고 있으니..
그런 똥된장 구분을 못하는 실력 가지고는 초딩상대로도 장사가 안되것구만..

.
          
남궁동자 15-04-03 12:16
   
로마제국이 뚱딴지? 일단 한번 웃고요. 정 그러면 당신같은 방숭이 머리로도 이해할수 있게 아메리카 대륙은 어떻게 생각해요? 마야, 잉카, 아즈텍 제국 말이요?

그쪽 동네는 방숭씨가 그렇게 좋아해서 죽고 못사는 말도 없었고 철기, 청동기도 아닌 석기시대였고 심지어 바퀴도 없었는데 말이죠? 땅도 전부 산악지대였는데 어떻게 제국인지 설명좀 해 보시죠? 님이 말한 조건에 전부 어긋나잖아요? 석기시대, 말도 없고 바퀴도 없음, 땅은 평지는 거의 없고 전부 산인데 얼마든지 걸어다니면서 제국을 세우네요? 돌도끼, 돌창, 나무쟁기 가지고 말이죠.

똥은 그만싸시고 이제 고향섬으로 돌아가서 세슘이나 많이 드시고 인간되세요?
               
잠원 15-04-03 12:35
   
고대시대 말이 없었다면...
고대왕국...  대제국 건설이 가능할까?

물론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같은 곳은 예외라지만.. 또 바다를 이용한 그리스같은 해양국가가 있지만...  거의 모든 땅에는 도시국가들 세상이지.
아마 자동차가 나오기까지 그랬을거야..


일베충에게 이 정도로 성실히 답해주는 것은 자체로 상 받을 일일거야
.
                    
남궁동자 15-04-03 12:40
   
그만 우끼끼 거리고 아즈텍, 마야, 잉카 제국 설명해 보라니까? 그동네는 석기시대+말없음인데?

그리고 로마군단들이 말타고 정복활동 다녔니? 유럽에 등자가 유입된게 언제인지 아니?

그만 방숭섬으로 돌아가지?
                         
잠원 15-04-03 12:55
   
기껏 대구리 굴려서 생각해 낸 것이 정글이나 절벽위에 사는 사람들이니..
베충이선수가 연구하느라 대구리 고생이 많것구만..
이런 놀면서 똥싸는 글에도 답해준다는 것이 인내를 시험하는 것 같지만


로마군단이라...
로마제국은 말을 사용안했을까?
로마군단에는 말이 없었을까?

당시 로마군대는  중무장한 밀집보병으로 전투해서 큰 재미를 본 것인데..
그래서 기병보다는 보병이 중심인 것이지..

보병들의 대규모  빠른 이동을 위해서 좋은 길도 만들고 했자나?
물론 아피아가도라는 것이 보병전용은 아니지만... 빠른 소식전달과 보급로를 위해서 군대가 첫번째 목적이었지.. 부수적으로 상인들과 여행은 부차적이고 ..
.
                         
남궁동자 15-04-03 13:16
   
할말 없으니까ㅋㅋㅋㅋ 정글이나 절벽위에 사는 사람? 정글이나 절벽위에 살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나?

아즈텍의 방 하나를 황금으로 가득채우고 전사들 수가 몇십만인데 그렇게 무시하면 안되지 ㅎㅎㅎㅎ 석기라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제국들한테 밀리는게 하나도 없는데 단순히 정글? 절벽? 에산다고 무시?

수준하고는ㅋㅋㅋ

글고 갈리아가 로마보다 훨씬 말을 많이 사용했고 여러면에서 더 발전한점도 있었는데 로마한테 정복당한건 왜 무시? 당신 말대로면 갈리아가 이겨야 되는거 아니야?

헛소리는 그만하시지 국가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건 말이나 청동기, 철기따위가 아니라 인구수다. 다른게 전부 없어도 인구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국가가 형성되고 제국이 생겨나는거야. 동남아 지방도 밀림이라말을 잘 사용 안했지만 제국이 있었고 낙타타고 다니는 사막에도 제국이 있었다고.
Centurion 15-04-02 23:58
   
그리고 철기가 전국시대 무렵에 시작된건 맞는데.. 춘추시대는 청동기였고..
그나마도 전국시대 끝나는 시점까지 철제 무기는 비싸서 잘 안만들고, 대부분 청동검 썼습니다.
진시황 병마용에서도 나오는게 대부분 청동검이구요.

그런데 농사기구를  그 비싼 철제로 농기구를 만든다굽쇼?

제가 중국 사극 드라마 '초한지'를 봤는데.. 여기에 주인공들이 차고 나오는게 죽창이고,
두번째가 동검이에요. 그나마 청동검도 아니고 그냥 구리 동검인지 코팅한건지 그런 누리끼리한 모양새고..
그냥 논밭은 목재농기구나 끽해야 석기를 매달아 씁니다. 

철제 무기가 보편화되고, 농기구까지 퍼진건 최소 한나라 시절입니다.  그러니 님이 하는 말은 전제부터 틀렸어요.

전국시대 때 철기로 인한 농업혁명을 기대하셨나 본데. 그런거 없습니다.
     
잠원 15-04-03 12:45
   
'보편화' .. 아주 중요한 핵심인데.. 처음으로 댓글다운 댓글이 달리네..
똥만 싼 선수가 이런 단어를 생각한 것이 트집잡고 우기기 위함 같아서 그렇지만..

그러니깐 청동기 시대라도.. 얼마나 보급되고.. 얼마나 일상에서 쓰였나가 중요하지요.
헌데 이건 알려진 것이 없고.. 대략 추축으로 학자들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텐데..



암튼 철제 농기구가 보편화된건 한나라시절이다?
그 보편화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거지용?
51%는 되야 한다는건가용?
10.5% 보급되면 별 의미가 없는건가용?


그럼 전국시대에 철제농기구 보급은 어느 정도지요?
.
          
Centurion 15-04-03 17:16
   
전국시대 자체가 철제 무기도 사용하는 거 자체를 벌벌 떨던 시절이라는거요 ~ ㅋㅋ

초나라와 연나라에서 조잡한 철제 무기 수백자루 만들었다는데..
실제로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는 진시황 무덤 병마용에서 청동검만 잔뜩 발견되었다오.
애시당초 철기 기술은 청동보다 훨씬 고온의 온도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기도 쉽지 않고,
애시당초 청동검 자체도 부러지지 않게 짧은 길이로 강도를 유지해서,
조잡한 철검에 비해 내구성 도 나쁘지 않았다고함.
철검의 장점은 단지 길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뿐.. 그래서 대량생산되어 보급되지도 않고..

그런 시대에 철제 농기구가 쓰이길 바라는건..
롤스로이스나 람보르기니를 경운기 삼아 밭을 간다는 소리지. ㅋ

아놔~ 근데 똥싸는 선수 드립보소. ㅋㅋ 가생이닷컴 운영원칙도 모르는 사람인가?
나도 딴데서 입이 걸걸한 편이지만, 여기는 매너가 법이라 그냥 참아가며 글 쓰는데 까불지 마쇼 ㅋㅋ
               
잠원 15-04-03 19:32
   
전국시대 초나라와 연나라에서 조잡한 철제 무기 수백자루 만들었다고?

야 다쪼선수/  웃기지 말고..  가서 냉수 마시고 자빠져 자라...
얘가 징그럽게 노네..



고대역사에서 내가  대학생 실력이라면..
넌 초딩이거든?

택도 없는 소리로  물고늘어지며 이기려 하는데..

니가 이긴다 하더라도...
초딩이 대학생을 실력으로  이길 턱은 없자나?
그럼 여기 가생이 역사게시판은 초딩들 놀이터라는 의미란다.

.
                    
Centurion 15-04-03 21:45
   
내가 욕질은 너보다 선수인데 참고 있으니 긁지 마라잉~
그리고 애시당초 니가 망상하는 전국시대 철제농기구가 없다고 인간아.
                         
잠원 15-04-04 09:22
   
삼돌이선수... 니가 그러니깐 자꾸 긁고 싶어지자노..


처음에는 은나라시대의 성읍국가썰에 발끈해서 댓글을 달더니..
그래서 수십만명이 동원되는 전쟁을 벌이던 시절이라면서 고대를 무시하지 말라던 알라가...  지금은 허락도 안 받고 돌면했구만
검색해보니 많이 다르던가?

공부하는 자세는 좋은데... 전국시대 철제농기구가 없다?
철기시대 검색은 안하셨나 보구만.. ㅎ



주제글을 쓴 글 쓴 목적이... 
은나라 이전 고대는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많지 않고 규모도 별 볼일 없는 수준으로  동물의 낙원에서 동물들과 재밌게 살았다는 식으로 원론적인 얘기를 하였을 뿐인데..
영양가도 없는 삼돌이 선수와 놀고 있었으니
.
Centurion 15-04-04 12:19
   
잠원 왈..

10세기 이전 중원은?  은나라?
당연히 성읍국가지요.
당시 경작이 쉬운 토지지역인 황토고원과 황하유역에는 이런 성읍국가들이 많았을거라는 생각인데... 은나라는 이런 성읍국가들이 느슨한 형태의 연맹체형식으로 묶인 것이지요.

*******고조선?  당연히 성읍국가지요. **********

(물론 후기고조선은 고대왕국이지만)


이걸 마치 큰 영토를 지배한 대제국인양 지도로 만들어서 교과서에 색칠하는 것인데..
잘 봐줘야 영향권이지요.

고조선을 성읍국가... 이리 쓴 책을 본 기억이 없는데요.

"현 교과서에 있는 고조선지도는 영토가 아니라 고조선관련 유적, 문화범위지도입니다."
->고조선지도만 유적과 문화지도라면 주석이 달려야할텐데.. 그런 주석은 보덜 못했거든요.



제가 이런 내용을 쓴 것은..
""""""""환빠라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인데..""""""""""
(짱개도 같이 디스하는척 하더니, 결국엔 환빠라고 정확히 지 공격 목표를 드러냄)

 년대를 많이 올려봤자가 봤자라는거지요.
(성읍국가라 하였지만.. 여기서 성읍은 영화속의 성이 아니라 잘해봐야 대빵이 살고 있는 큰 집이나 목책을 중심으로 한 씨족이나 부족의 ...  시규모는 어려울테고 읍내정도의 규모라는 거지요)

또 제가 이리 쓴 것은 한국고대사를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니거든요
어짜피 짜장도 동시 출발이니..

**(같이 디스하는 척 객관적인척 물타기)**

더구나 한국고대사라면 축소된 역사인데...  고대사 뻥티기는 중국이거든요.
(중국 알라들이 고대 역사지도를 보면 완존 지꼴리는데로 그려놨던데..)

물론 최근의 홍산문명은 놀라운 일로 중원문명의 모태가 고조선이었다는 것인데..
동양고대사의 기존 지식들을 뒤엎고 다시 써야한다는 생각이지요.

잠원이가 결국 하고 싶은 말
""""그런다하더라도 홍산문명 역시 잘봐줘도 성읍국가... 아님 마을국가(?!) """


결론::

잠원이는 객관적인 척, 짱개, 환빠  동시 까기를 시전하는 듯 하면서..

결론은.. 자기 공격목표가 환빠라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마지막 결론까지 홍산문명은 성읍국가라 영향력 없다는 폄하를 하고 있다.

지 입으로 은나라는 수많은 성읍국가의 연맹체라면서..
고조선과 홍산문명은 그런 성읍국가의 연맹체라고 말한 대목조차 없다.

잠언 왈...

""""""""환빠라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인데..""""""""""
*******고조선?  당연히 성읍국가지요. **********
""""그런다하더라도 홍산문명 역시 잘봐줘도 성읍국가... 아님 마을국가(?!) """

""""당시 경작이 쉬운 토지지역인 황토고원과 황하유역에는 이런 성읍국가들이 많았을거라는 생각인데..."""
"""" 은나라는 이런 성읍국가들이 느슨한 형태의 연맹체형식으로 묶인 것이지요. """"

은나라는 띄워주고, 고조선과 홍산문명은 까내리는 쭝꿔런 클라스..

어이 쭝꿔런씨 고만 커밍아웃하시짘ㅋㅋ
고조선과 홍산문명은 성읍국가, 마을국가 단수형이고, 은나라는 연맹체라는 복수형인데 이게 같냐?
     
잠원 15-04-04 15:46
   
여기서도 일을 벌이셨구만
2자리선수가 검색하며 공부하랴.. 하루 종일 가생이 감시하랴.. 고생이 많이시겠어...

.
          
Centurion 15-04-04 16:30
   
아니 그냥 심심해서 온거야~ 감시까지라니~ 뭐 ㅋㅋㅋㅋㅋ

이제 고만 뽀록났으니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야 쓰겄냐?

계속 니네 나라처럼 대놓고 철판깔고 버틸겨?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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