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5-04-01 05:48
[기타] 조선 후기 고지도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의 국경선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9,789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military&wr_id=34029

재업입니다.

yhctHlqkHPe44jmlRp.jpg

19세기말 제작된
여지도(輿地圖)〈古 4709-78〉 1책에 포함되어 있는 <의주북경사행로>

<1> 명나라는 조선과 요동(=요양) 동쪽 180리 '연산파절'을 국경 경계로 하기로 합니다.
(이 부분은 명의 공식 사서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젤 아래쪽 참고자료를 보세요.)

고려멸망(위화도회군)의 계기가 된 
'요동정벌'에 등장하는 문제의 철령위와 철령 위치비정.
(명나라 주원장이 고려 영토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개원 관할에 넣어버리자 고려가 빡쳐서 요동을 공격하러 감)

분수령은 훗날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 정계비에는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하여 이 분수령에 비를 세운다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서위압록 동위토문고어분수령상 늑석위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토문강'이 두만강을 지칭하는지
현재 중국 영토안의 `토문강'을 지칭하는지는 당시에도 논란거리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but 본인이 위 지도를 확인 도중 연산관 바로 코 앞에 있는 '분수령'에 주목했습니다.

여기서 청석잠, 석문잠 등이 나오는데, 이는 봉우리 잠岑 을 의미합니다.
(그 말은 즉슨, 청석령, 석문령의 다른 말이라는 뜻이죠)

*석문령, 청석령은 중국 가는 조선사신단들이 여기 넘기가 빡셌던지 꽤 많은 기록을 남겨뒀습니다. 

고구려 시기에도 중요해서 
청석령, 석문령 일대는 요동의 바로 동쪽이자, 고려의 국경선으로 훗날 고려가 거란에게 뺏긴 곳으로 

훗날 조선후기 정조 때 문신 홍경모가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오면서,
이 일대를 고려의 용병술이 떨어져 거란에 뺏겼다고 한탄을 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굴욕을 겪은 조선만 하겠냐만 ㅋㅋ) 

한마디로.... 청나라 시기 때까지도.. 
이 연산관.. 바로 요동의 바로 동쪽이 국경선이었던 셈..

이 분수령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찾으래도 찾을 수 없는게 당연하죠 ㅋㅋ 엉뚱한 곳에 있었으니까..
결국  우리는 이제껏 낚여왔던 거였습니다..

조선 후기엔 현재의 압록강을 압록강이라 불렀지만..
역시 예전 조상들은 요하를 압록강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위 지도에도 보이듯 이 요하는 지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YVzHIvI4qlh2lD9Oj6XMieyXnHN.jpg



하나는 요하라고 표기되어 있는 곳으로 상당히 서쪽에 북쪽으로 향하는 지류죠.
하나는 요양, 석문령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태자하'라 불리우는 강이 있습니다. 
그 뒷편이 혼하이고, 그 다음이 요하죠. 

아마도 여진족들은 고구려, 발해+신라의 피가 섞인 민족이다 보니, 
요동 남쪽에 있는 요하의 한 지류를 가르켜 
고구려 때처럼 아리수니 압록강이니 하며 불렀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압록강의 북쪽으로 향해 있는 지류를 언급한 것이려나? 

어쨌든, 모든 의문의 키를 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 '분수령'이 고지도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점을 발견햇나 모르겠네요. 

** 어쩌다 옆동네에서 어떤 화교놈과 논쟁하느라, 
자료 찾는 중에 여기저기서 글을 읽고,
동팔참 지도 찾는중에 명나라가 인준한 조선의 경계인 철령의 위치와
공식 국경 '연산파절'을 찾는 도중 이 지도를 통해 모든 의문이 풀려나갔게 됐습니다.

참고로, 청나라 사행을 두번이나 갔다온
조선 후기 정조 때 문신 홍경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슨 책에 나오는지는 모르겠네요.)

1830년, 1834년 두 차례나 연행을 다녀온 홍경모洪敬模(1774~1851)는 
동팔참 3백리를 지켜주는 석문령石門嶺을 거란에게 빼앗기고 
압록강을 국경으로 삼은 것을 예로 들어 고려의 용병用兵이 고구려만 못함을 꾸짖었다. 

그런 옛 땅은 다 잊고 압록강만을 천참天塹(천혜의 요충지)으로 삼는 조선의 옹졸함은 말해 무엇하랴? 
홍경모는 우리는 “고려를 닮은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를 닮은 것인가?”라며 준열하게 물었다. 

참고로 요양 강건너 맞은편이 바로 "석문령"입니다. 동팔참의 최종 코스인 셈입니다.
이 석문령을 잃고, 연산관까지 밀려나 분수령이 조-명 국경선이 된것이고,
다시 조-청 국경선으로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게 된 것지요..

cLWE4z4zU1rdQTLo.jpg



뭐, 이건 중국 교과서인가 한국 교과서에 나오는 청나라가 설치한 
'유조변책'=버드나무를 심어서 설치한 일종의 국경 목책 지도라고 하는군요.

명나라는 '요동정벌, 위화도회군'의 계기가 된 철령위..
즉, 고려 강계지역 철령에 설치하려한 철령위를 서북 500리로 뒤로 물렸고, 
요동 동쪽 180리 연산파절을 경계로 삼고, 동팔참 수백리를 비워두었고, 
원나라 때 개원이 관할한 철령 북쪽, 서쪽, 동쪽 관할만 확인하고, 
철령 이남과 공험진 이남, 
그리고 여진족이 들어와 뒤섞여버린 고려시절의 10여개 지역등을 조선에게 돌려줬습니다. 
(아래 참고자료의 고려사, 태종, 세종, 성종실록에 구구절절 나오죠)

pb8OK8ntaiM (1).jpg

우리나라 역사책은 계속 위 지도처럼 철령을 강원도 쪽에서 찾고 있는데.. 
문헌 기록에 의거하여 구글지도를 통해 축척을 통해 확인해 본 바 아래와 같습니다.

E7Grj2CkXqotm4VtslhN4Dvxn.jpg

철령은 애시당초... 현재의 압록강 유역 근처 혹은 간도지방에 있었을거라 추정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봤듯이..
명나라가 포기한 동팔참의 관할은 연산관 남쪽을 관할하는 조선의 관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선지 이 지역은 완충지대 비스무리하게 공백지가 되었는데, 여진족과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고, 
명나라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거나, 조선 백성이 부역을 피해 도망가 야인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지역입니다)

어쨌든.. 이 걸 청나라와 다시 조선 후기에 백두산정계비를 분수령에 세움으로써 인정받은 건데.. 
일본 애들이 역사왜곡과 더불어, 간도협약으로 청나라한테 넘겨준거죠. 

실질적으로 연산관을 경계로 해서 보면, 요양시-심양-개원을 잇는 선을 기준으로
동쪽의 길림성-흑룍강성이 대부분 조선 영역이 됩니다. 

<근거 - 참고자료>

**부록. 여지도 <의주북경사행로>의 지명색인 

※주(※州)    ※하(※河)
(가나다 순)

가년섬문(加年蟾門)  각항도(覺巷島)  갈석(碣石)  개원(開元)  개평(盖平)  거류하사(巨流河司)  거용관(居庸關) 
게수점(憩水店)  고교(高橋)  광영(廣寧)  광영일(廣寧馹)  구궁대문(九宮臺門)  구연성(九連城)  금주(錦州)
낙정(樂亭)  낭자산점(浪子山店)  냉수점(冷水店)  노구하(蘆溝河)  노변점(路邊店)  
대제하(大堤河)  대통하(大通河)  대횡산(大橫山)  대흑수(大黑水)  동경(東京)  동관(東關)  
마시하(馬市河)  마천령(磨天岺)  만상성(灣上城)  명수당문(鳴水塘門)  무령(撫寧)  밀운(密雲)
반령(盤岺) 반산(盤山)  백기보(白旂堡) 백애(白厓)  백탑포(白塔鋪)  백하(白河)  백하(白河)  법고문(法庫門)  
보거(寶拒)  복주(福州)  봉황산(鳳凰山)  봉황성(鳳凰城)  부락령(部落岺)  분수령(分水岺)  
사하(沙河)  사하일(沙河馹)  산해관(山海關)  살목선산(薩穆禪山)  삼하(三河)  서산(西山)  석문잠(石門岑)  석하(石河)  설리점(雪裏店)  
성경(盛京)  소릉하(小凌河)  소운하(蘇運河)  소주(蘇州)  소흑산(小黑山)  수합문(受哈門)  숭잠문(崇岑門)  시황도(始皇島)  신대문(新臺門)
신점자장(新店子庄)  심하보(深河堡)  십리하일(十里河馹)  십삼산점(十三山店)  쌍봉하(雙峯河)
압록강(鴨綠江)  양수점(兩水店)  양하(洋河)  여순(旅順)  여양일(閭陽馹)  영액문(英額門)  영원주(寧遠州)  영평(永平)  예방문(霓邦門)  옥전(玉田)
왕청문(汪淸門)  요양(遼陽)  요점(要店)  요하(遼河)  운산관(運山關)  웅악(熊岳)  위원문(威遠門)  응운산(應運山)  의무여산(醫巫閭山)  이도정(二道井)  임강진(臨江鎭)
장산(長山)  조하(潮河)  주아호주일(朱兒呼朱馹)  중우소(中右所)  중전소(中前所)  중후소(中後所) 
창려(昌黎)  창반문(廠盤門)  창평주(昌平州)  천산(千山)  천주산(天柱山)  천진교(天津橋)  철령(鐵岺) 
청룡교(靑龍橋)  청룡하(靑龍河)  청석령(靑石岺)  
탕점(湯店)  통원보(通遠堡)  통주(通州)  통하(通河)  투하(渝河)  
평곡(平谷)  풍윤(豊潤)  
하점(夏店)  해성(海城)  향하(香河)  홍라산(紅羅山)  환향하(還鄕河)  황성(皇城)  황순(荒旬)  황창문(皇廠門)

출처: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4&page=2&sn1=&divpage=3&sn=on&ss=off&sc=off&keyword=%BC%DA%B4%EB&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404

**2.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에 나타난 조-명 국경선 기록 **

***<문헌의 근거>*** (읽기 싫으면 패쓰하세요)

성조(聖朝) 홍무(洪武) 21년 2월에 
호부(戶部)의 자문(咨文)을 받았사온데, 
호부 시랑(戶部侍郞) 양정(楊靖) 등 관원이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주원장)의 성지(聖旨)를 흠봉(欽奉)하기를, 

‘철령(鐵嶺) 이북(以北)·이동(以東)·이서(以西)는 
원래 개원(開原)의 관할에 속하였으니, 군민(軍民)을 
그대로 요동(遼東) 관할에 소속시키라.’ 하였습니다. 

(명나라 주원장의 철령 일대에 대한 영토요구)

* 철령 북쪽, 동쪽, 서쪽은 
개원로(지도의 심양 북쪽 개원) 소속이라고 주장하며,
요동(=요양) 관할에 소속시켜라. 

2. 
명나라가 1461년 편찬한 지리서인
명일통지(明一統志)에는 철령위에 대해 
“도사성(都司城) 북 240리에 있다.(요동 도사성=요양)
 옛날에는 철령성이었고 지금의 철령위 치소(관청 위치) 동남 500리에 있었다. 

고려와 경계를 접했다. 
홍무 21년(1388년)에 철령위를 그곳에 설치했다가 
26년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고려 영내에 설치했다가 5년만에 현재 위치로 철수) 

3.
영락 2년 5월에
흠차 사신(欽差使臣=명나라사신) 
동녕위 천호(東寧衛千戶) 왕수(王脩)가 칙서(勅書)를 받들고 왔사온데, 
‘삼산(三山)·독로올(禿魯兀) 등 열 곳의 여진(女眞) 백성을 초유(招諭)한다.’하였고, 

홍무 21년에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의 성지(聖旨)를 받자와, 
‘공험진(公탪鎭) 이북은 요동(遼東)으로 환속(還屬)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鐵嶺)까지는 그대로 본국(本國)에 붙여 달라.’고 청하기 위하여, 
배신(陪臣) 김첨(金瞻)을 보내어 글을 받들고 가서 주달하게 하였사온데, 

그해 10월 11일에 <김첨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와서 공경히 칙서(勅書)를 받자오니, 
‘삼산 천호(三散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 등 열 곳의 인원(人員)을 허락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신(臣)이 일국(一國)의 신민(臣民)들과 더불어 감격하여 마지 아니하였습니다.
(조선이 반발하자, 다시 조선에게 여진의 관할을 넘김=이 지역은 고려의 영토로 기록되어 있슴.)

(태종실록)
“조사해 보건대, 본국의 동북 지방(東北地方)은 
공험진(公탪鎭)으로부터 
공주(孔州)·길주(吉州)·단주(端州)·영주(英州)·웅주(雄州)·함주(咸州) 등 
고을이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동북지방은 
원산만 근처 강원도 철령이 아니라, 공험진지역임..

요(遼)나라 건통(乾統) 7년에 동여진(東女眞)이 난(亂)을 일으켜서 
함주(咸州) 이북의 땅을 빼앗아 웅거하고 있었는데,고려(高麗)의 예왕(睿王) 왕우(王췓)가 
요(遼)에 고(告)하여 토벌할 것을 청하고 군사를 보내어 회복하였고, 

원(元)나라 초년(初年) 무오년(戊午年)에 이르러 
몽고(蒙古)의 산길보지(散吉普只) 등 
관원이 여진(女眞)을 거두어 부속시킬 때에, 
본국(本國)의 반민(叛民) 조휘(趙暉)와 탁청(卓靑) 등이 그 땅을 가지고 항복하였으므로, 
조휘로 총관(摠管)을 삼고, 탁청으로 천호(千戶)를 삼아 군민(軍民)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진(女眞)의 인민(人民)이 그 사이에 섞여 살아서, 
각각 방언(方言)으로 그들이 사는 곳을 이름지어 
길주(吉州)를 ‘해양(海陽)’이라 칭하고, 
단주(端州)를 ‘독로올(禿魯兀)’이라 칭하고, 
영주(英州)를 ‘삼산(參散)’이라 칭하고, 
웅주(雄州)를 ‘홍긍(洪肯)’이라 칭하고, 
함주(咸州)를 ‘합란(哈蘭)’이라 칭하였습니다. 

지정(至正) 16년에 이르러 
공민왕(恭愍王) 왕전(王컉)이 원나라 조정에 신달(申達)하여 모두 혁파(革罷)하고,
인하여 공험진(公탪鎭) 이남을 본국(本國)에 환속(還屬)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관할하여 다스렸습니다.

(*태종실록)
 “홍무(洪武) 5년 7월 25일 아침 봉천문(奉天門)에서 조회할 적에, 
배신(陪臣) 장자온(張子溫)이 <태조 고황제의> 선유(宣諭)하신 성지(聖旨)를 받자왔는데,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여진[女直]들이 너희 나라 동북 지방에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예로부터 호걸(豪傑)이라서 분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거든 왕에게 말하여 근본을 용심(用心)하여 방비하게 하라.’ 하였으므로, 

홍무(洪武) 21년 2월 28일에 
본국(조선)에서는 배신(陪臣) 박의중(朴宜中)을 보내어 주청(奏請)하게 하기를, 
‘공험진(公탪鎭) 이남으로부터 철령(鐵嶺)까지는 
원래가 본국(조선)의 토지이오니, 바라옵건대 그대로 본국에 소속하게 하소서.’ 하니, 


(*공험진은 윤관이 개척한 고려-조선의 동북지방인데, 
강원도 동북지방인 역시 동북지방인 강원도 철령까지를 고려의 영토라 주장하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차라리 공험진에서 경남이나 전라도까지 고려의 영토다라고 주장하면 모를까.ㅋㅋ 
문맥상 동북지방 공험진과 서북지방 철령을 의미하는게 훨씬 정확하다. 
주원장이 주장했듯 개원이 관할한 고려의 철령이 핵심 문제가 되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명나라랑 국경 문제를 논하는데 
동북 공험진-동남 중부지역 강원도 철령을 말하는 건 말이 안된다. 
명나라와 접하는 서부와 동부 경계를 말하는게 당연하다.

그해[本年] 6월 12일에는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으로 인준을 받았고, 
그해 4월 18일에 본부 상서(本部尙書) 이원명(李原名) 등의 관리가 
대포서(大?西)에서 성지를 공경하여 받자왔는데, 

이르기를, ‘철령의 연고에 대해서는 왕국에서 말이 있으니, 그렇게 하게 하라.’ 하신 바 있습니다. 

따라서 영락(永樂) 2년 5월 18일에 배신(陪臣) 김첨(金詹)을 보내어 주청하게 하기를,
‘삼산(參散)·독로올(禿魯兀) 등처의 여진 지방은 
태조 고황제께서 허락하여 주신 땅에 속하오니, 
그곳에 사는 관민(官民)을 본국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Centurion 15-04-01 05:52
   
따라서 영락(永樂) 2년 5월 18일에 배신(陪臣) 김첨(金詹)을 보내어 주청하게 하기를,
‘삼산(參散)·독로올(禿魯兀) 등처의 여진 지방은
태조 고황제께서 허락하여 주신 땅에 속하오니,
그곳에 사는 관민(官民)을 본국으로 하여금
그전과 같이 관할(管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니,

그해 10월 초1일에 칙유를 받자왔는데, 이르기를,
‘삼산(參散)의 천호(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 등
10처(處)의 인원을 청한 대로 허락하니 그리 알라.’ 하신 바 있고,


(철령 이남 ~ 공험진 이남은 모두 조선 땅이다,
 삼산, 독로올 등 여진지방도 조선 관할이다라고 명나라가 인정함)


(세종실록)


우리 고황제(高皇帝=주원장)는 만리(萬里)를 밝게 보시어
요동의 동쪽 1백 80리의 연산 파절(連山把截)로 경계를 삼으셨으니,
동팔참(東八站)의 땅이 넓고 비옥하여 목축과 수렵에 편리함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수백리의 땅을 공지(空地)인 채로 버려둔 것은
두 나라의 영토가 서로 혼동(混同)될 수 없다는 것인데,

(성종실록-공조판서 남원군 양성지)
 
*조선-명나라 경계는 압록강이 아니라 연산 파절(連山把截)이라고
 조선 세조-성종 시기 문신 양성지는 말하고 있습니다.*


*요동의 동쪽 1백 80리의 연산 파절(連山把截)로 경계를 삼으셨으니,
동팔참(東八站)의 땅이 넓고 비옥하여 목축과 수렵에 편리함을 어찌 몰랐겠습니까?


= 이 말의 뜻은 즉슨..

요동(=요양) 동쪽 180리가 조-명 국경선이고..

그 지역 밖에 동팔참이 있는데..
이 동팔참 지역이 목축과 수렵에 유리함에도
명나라가 직접 다스리지 않고 비워뒀다는 소리입니다.
Centurion 15-04-01 06:43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military&wr_id=34029&sca=&sfl=wr_subject&stx=%EA%B5%AD%EA%B2%BD%EC%84%A0&sop=and

요약하자면..

조선 초기 명나라와의 국경분쟁의 대상이 된 철령위는 강원도에 붙어있는게 아니라,
요동~압록강 어디쯤에 붙어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국경선 문제가 되는 백두산 정계비 관련 부분은 오류가 있는 거 같습니다만..
연산관 근처에도 분수령이라는 곳이 하나 더 있긴 하더군요.
고급2 15-04-01 09:55
   
이게 사실이라 쳐도 머함?
나라 망하고 친일사학 주류가 아직도 역사학계를 잡고 있고 자진해서 영토 축소하는판이고
통일 말하면 종북으로 모는 판인데
독도나 안넘겨주면 다행
     
Centurion 15-04-01 11:29
   
그렇긴 하죠.
그냥 간도 이야기, 철령위 이야기가 나와서 한번 올려본겁니다.
별 소용 없는 일이라도 옛날에 재미삼아 적어본 글이라..

어차피 실력(무력, 경제력, 외교정치력)이 없으면 뜻대로 할 수 있는게 없죠.
우리나라의 정계, 재계, 학계, 외교계, 국방안보 모두가 엉망진창이기도 하구요.
          
오투비 15-04-01 15:08
   
이런 글 보면.. 오오! 좋은정보다! 이렇다가도 금세 울나라의 현실을 깨닫고 좌절감이 옴.....
               
굿잡스 15-04-01 16:03
   
오투> ㅋㅋ 본인의 어그로 댓글 자체가 그런 취지로 댓글질 열심히 하는 건 아니

였음? ㅋ(이 사람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고 아는 것도 뭔가 공부할려고 하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 저기 평소 어그로 말장난 글만 싸지르면서 뭔. 국적불명으로 뭐하려

고 여기 죽치고 있는지 지난 글들 보면 뻔하고 한심한.)
굿잡스 15-04-01 16:11
   
어느 사회고 돌이켜 보면 문제 없는 나라 없고 지금 현실적으로 잽이나 짱국 유럽이나 미국 역시도

미세하게 보면 막장급 투성이.(우리가 우리 내에서 살다 보니 그기에 어느 나라보다 앞선

정보화 인프라에 볼거 안볼거 다 귀와 눈으로 들어오다보니 어쩌고 하는 거죠)



군자의 복수나 신념은 100년 아닌 천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비록 우리가 분단되어 있다고 해서 향후 영원히 분단되어 있을 것도 아니며

저 서토가 지금 이민 만주족 청이 물려준 영토에 로또로 들어차 있다고 해도 그게 또 영원할 거라는 건

세상의 이치도 전혀 아니고.


오늘날 역사를 조금씩이나마 하나 하나 알아가고 자각하려는 노력과 힘이 모인다면

그렇지 않는 것과는 비록 시작은 미흡해도 향후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호태천황 15-04-01 20:50
   
고토회복이란 기치는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이군요. 지금도 필요하고..
몽생 15-04-01 21:45
   
그럼 대동여지도는 뭐라고 생각하심
     
정헌대부 15-04-02 00:20
   
그래서 대동여지도가 논란임.
지금에 대단하게 느끼는 대동여지도가 왜 조선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느냐는 거임.
김정호 또한 자신이 썼다는 지도유설과 동여도지 외에는 알려진게 없는 사람이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안된 대동여지도와 김정호가 어떻게 일제에 알려지게 되었느냐는 거임.

또하나가 논란거리가 대마도임.
현재 대동여지도는 1861년도에 제작되었다는데 대마도가 조선지도에 없음.
1845년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미완성), 1857년 이후에 제작된 해좌전도,
1864년 조선세견전도, 1800년대에 제작된 영국지도와 1865년 미 페리제독의 일본지도,
1868년 미국에서 만든 일본지도, 1876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팔도지도 등
국내 외에서 만든 여러 지도에 있는 조선영토 대마도가 대동여지도에서 만은 없기에
더 논란이 되고 있음.
 
 
Total 2,80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803 [기타] 일본어 기원 부여한어 반도한어 열도한어 (Korean-Japane… (5) 햄돌 04-05 2165
2802 [기타] 한번 한국어의 계통에 대해 이야기 해 봅시다 (40) Thorgeirr 04-05 3425
2801 [기타] 우리나라도 구한말 왕정이 솔선수범을 보였으면 지… (9) 인간성황 04-05 2169
2800 [기타] 몽골서 '中관광객 모욕사건' 두부국 04-05 3688
2799 [기타] 삼국시대에 불교의 파급력이란게 생각했던 것 이상… (1) Centurion 04-04 7246
2798 [기타] 외국인이 본 구한말 조선인 (4) 근초고왕 04-04 4382
2797 [기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어와 유사한 어휘의 타밀… (9) Centurion 04-03 8375
2796 [기타] 고구려 음악 대탐사 (4) Centurion 04-03 6085
2795 [기타] 인도 가야지방 탄생 내력과 허황옥 모습 및 gayatri (노… (19) 열심히공부 04-03 9257
2794 [기타] 고구려의 토욕혼 정벌 (2) 두부국 04-03 4247
2793 [기타] 호머 헐버트의 진실 (1) 정헌대부 04-03 2321
2792 [기타] 전설이 입증하는 배달국의 한반도 진출!!! (3) 유리수에요 04-02 4338
2791 [기타] 탐원공정 (32) 잠원 04-02 3649
2790 [기타] 배달민족...배달의 어원 (9) 마라도 04-01 3958
2789 [기타] 거리개념 (44) 잠원 04-01 5795
2788 [기타] 인도에 있는 지명 가야 gaya 와 아유타국과 가락江 (12) 열심히공부 04-01 8013
2787 [기타] 일제가 두려워했던 신문 (2) 인간성황 04-01 2408
2786 [기타] 조선 후기 고지도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의 국경선 (10) Centurion 04-01 9790
2785 [기타] 조선군 복장에 대해서.. (6) Centurion 04-01 16403
2784 [기타] 모택동과 주은래 "만주는 조선 민족의 땅" (3) Centurion 04-01 7229
2783 [기타] 예전부터 참 궁금 한 것이 있었습니다. (4) 호태천황 03-31 1527
2782 [기타] 흉노는 온돌을 사용했다. (11) Centurion 03-31 5595
2781 [기타] 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꼭 다시 되새기어… 전쟁망치 03-31 1361
2780 [기타] 고려는 중국 통치자의 세번째 정권 (7) 두부국 03-31 2944
2779 [기타] 108 번뇌 - 조선 수학자 최석정의 지수귀문도(마방진) 열심히공부 03-30 5377
2778 [기타] 고구려 영토 축소...어이없는 '동북공정' 베끼… (18) 두부국 03-30 5323
2777 [기타] 낙랑에 대한 조상들의 생각 (12) 마라도 03-29 3197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