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irror.enha.kr/wiki/%EC%9B%8C%ED%95%B4%EB%A8%B8%20%ED%9E%88%EC%8A%A4%ED%86%A0%EB%A6%AC%EC%BB%AC%3A%20%EC%A1%B0%EC%84%A0%EA%B5%B0
조선에서 많이 쓰인 첨주형 투구. 사극에선 편의상 저 챙 부분이 평평한데,
실제론 이렇게 완만한 각도의 챙이 달려있습니다.
사이즈가 딱 방탄조끼죠.
일본에서 발견된 임진왜란 때 조선갑옷으로 유명하죠.
아마도 병사들이 입었을 보급형 갑옷이라 사료됩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병사들은 단단한 가죽 갑옷을 착용하였고, 유럽인의 모자와 같은 철모를 쓰고 있었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강철로 되어 있었고 그 밖에는 무쇠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터키인의 활과 같은 작은 활을 매우 잘 다루고,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유성룡의 갑옷으로 유명한 가죽 찰갑.
신미양요 때 노획된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조선군 면갑
(배를 두툼하게 둘러서 모양을 잡아주는 띠가 보입니다.)
동래성에서 출토된 조선군 갑옷입니다.
겨드랑이와 낭심을 보호하는 부분에 갑옷을 덧대어 달아놓은 형태입니다.
본래 조선 갑옷은 목을 보호하는 갑옷과 겨드랑이를 보호하는 갑옷 등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부위가 전투시 자주 노출되어, 적에게 찔리거나 베이게 되는 약점이었기 때문이죠.
가죽 찰갑이지만, 조선의 찰갑 엮는 방식을 알수 있습니다.
조선군 복장은 사실상 통일성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각자 입은 복장이 제각각이지요.
유럽에서도 군복 유니폼의 개념은 크롬웰의 뉴모델아미 때부터라고 합니다.
그 때부터 빨간색이 영국군의 유니폼이 되지요.
이건 팔기군 기병을 상대하는 장면인데, 조총병만 조선군 같네요. 사르후 전투 묘사인가 봅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마상 총기병입니다. 방풍안경까지 지급되었다고 하죠.
이상 삽화는 '조선전쟁 생중계'였습니다.
위 그림들은 고려-조선의 기록화인데.. 녹색, 붉은색 등 복장이 너무 다채로운데..
그런 복장을 재현한 그림 같습니다. 묘하게도 고려-조선 기록화엔 저런 복장이 많이 나옵니다.
조선군 갑옷은 포형(두루마기식) 갑옷인데.. 상하의 일체형이 있고, 상하의 분리형이 있습니다.
대충 위는 조선의 정예군인 갑사들 복장입니다.
겉으론 천조가리 같지만 안쪽에 저렇게 철편이나 가죽편이 붙어서 방호력이 훌륭한 갑옷입니다.
일본은 그냥 다 드러내고, 위에 전포를 입었죠.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군의 복장은 사극처럼 검은색 천조가리 하나 입은 형태로 알고 있는데..
동래성 전투도를 보더라도.. 검은색 두루마기에 겉에 푸른색의 옷을 덧대어 입은걸 알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선비들 복장에 요런 투구를 쓴 모양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사극에서 의금부의 군사들이나 입는 고급스런 복장에 가깝다 이거죠..
이게 최소한의 평상시 복장(요즘으로 치면 전투복)이고,
아마도 검은색 웨이터 복장은 조선후기에 나라꼴이 막장이 되서야 정착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조선군은 무기와 갑옷 같은 장구류가 개인 마련으로 알고 있고,
이걸 전문적으로 빌려주는 대여점도 존재했습니다만..
또 한편으론 각 지방 군영과 관청에서 무기와 갑옷을 보유하고 있는 기록 역시 나온다는 점입니다.
간혹 왕이 직접 갑옷을 만들라 지시해서 여기저기 나눠주기도 하지요.
또한, 임진왜란 5년 전인
1587년 3월 2일 정해왜변 직후에 경상도 암행어사 이정립이
"병력은 출동 준비를 갖췄고 궁시, 총통도 확보했고 철갑과 철환이 부족하나 현재 만들고 있다"고
보고하는 실록 기사도 있고,
조선 전후기를 통틀어 두정갑 등 갑옷을 대량으로 제작한 기록이 종종 나오니
임진왜란 당시 장수나 군관이 아닌 일반 병사들도 상당수가 갑옷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난중일기 임진년 3월 6일자에서도
"맑았다. 아침을 먹은 뒤 출근해 군 기물을 점검했다.
활, 갑옷, 투구, 통아, 환도가 깨지고 헐은 것이 많고 기준에 미달하는 것들이 매우 많았다.
색리, 궁장, 감고 등을 논죄했다."라는 일기를 볼 때, 각 진영에서 갑옷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군이 전투 중에 갑옷을 입었다는 소리지 그저 창고에 보관만 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조선군 전원이 갑옷을 입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동시대 유럽 군대, 특히 쉴새없이 유럽에서 전투를 치러온 스페인군도 전원이 갑옷으로 중무장하지는 못했다.
또한 프로이스는 조선원정에 직접 참여한 이도 아니다. 갑옷을 보유했다는 기록만으로는 조선군의 갑옷 착용 비율이 어느정도인지 증명해주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한나라~중국 삼국시대의 갑옷)
한국 자본이 들어간 삼국지 용의 부활이죠.
웃긴게.. 삼국시대에 첨주형 투구가 등장하는데.. 시대를 너무 앞서간 느낌마저 듭니다.
문제는 한국 병졸의 트레이트 마크 같은 투구인데.. 이 무렵부터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써먹기 시작합니다.
남송시대를 다룬 정충악비라는 드라마입니다.
병졸들의 갑옷과 전포를 입은 장수들이 보입니다..
아주 광범위하게 첨주형 투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송나라와 명나라도 이런 형태의 투구를 쓴건 맞으나..
뭔가 선수를 뺏긴 느낌이랄까요...
일본도 갑옷 위에 전포를 입는건 흔한 일입니다.
무신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이게 등장했죠.
전포는 아무래도 장수들의 직위를 나타내고,
피아식별과 평상시 갑옷의 보호(최소한 먼지라도 덜묻도록)에 활용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두정갑은 이 전포와 갑옷을 일체화시킨 형태로 발전된게 아닌가 싶구요.
결론 요약:
1. 조선군의 전투복장은 검은 흰색 옷위에 검은색 웨이터복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검은색 두루마기에 푸른색 전포나 붉은색 전포 기타 등등을 덧입은것으로 보여짐.
2. 조선군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갑옷이 존재했고, 그 중 보급형은 조끼형 갑옷일 걸로 추정..
3. 갑옷과 무기는 개인이 장만하기도 하지만, 지방 관청이나 진영에서 자체 장만하기도 함..
4. 정충악비에 나온 송나라군 스타일이 조선군과 매우 흡사할 것으로 사료됨.. (평상시 복장에 갑옷 착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