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국가들의 국호를 공부해보아도
[가야]에 대해선 참으로 미궁이었습니다.
이두로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속 시원한 것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고려 문화재 연구원 이사장)의
유튜브 강의를 듣고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가야를 상징하는 유명한 쌍어문(물고기 2마리)의 유래를 듣고는
가야라는 국호가 생긴 과정을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이 지금도 김해에 남아있는 쌍어문입니다.
두마리의 물고기는 페르시아 신화에 나오는 가라 kara 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인데
영약을 생산하는 신령스런 나무 [코케레나]를 지키고 있습니다.
가라 물고기 kara fish 에서
[가야, 가락, 가라] 라는 국명이 나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천년전 중동에서 시작된 kara 물고기 신화의 이동 경로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인도에 있던 아요디아(아유타) 나라가
기원전 2 세기경 쿠샨 왕조에게 망하자 왕실과 귀족들이
히말라야 남쪽 차마고도길을 통해서 중국 사천성 보주(현재 안악현)으로 피난을 와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아요디아 많은 수의 국민들도 왕족을 따라 같이 중국으로 피난왔을 것입니다.
카스트제도를 지키면서 소수민족으로 백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AD 47년 후한 광무제의 혹독한 세금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7000 명 가량이 양자강 중하류 강하(현재 무한)로 추방되었는데
그 다음해인 AD48년 그 무리중에 있던 허황옥이 김수로왕에게 시집을 오게된 것입니다.
북방 계통인 김수로왕의 세력이
인도계 중국(한漢) 사람인 허왕후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허황옥이 무작정 찾아와서 갑자기 결혼이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이미 사전에 서로 합의하여 성사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위기에 몰린 허황옥 가문에서
평소 무역(허황옥 가문이 중계무역을 함)으로 잘 알던
김수로왕 측에서 혼인 의사를 밝혔고 김수로측에서 동의하여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사실 김수로왕 측도 한나라에 투항하여 큰 공을 세운
김일제(흉노의 왕자)의 후손이었으나 신新나라 왕망의 편에 섰다가
한나라의 원수가 되어 김해로 피신해와서 변한의 작은 나라들을 누르고
연맹체를 이끌던 처지였으니 허황옥과 동병상린이었기에
그 혼사가 쉽게 이루어졌으리라 여겨집니다.
어쩌면 허황옥 가문에서
그 전부터 김수로왕 측에 많은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어서
김수로왕이 가야면맹체의 리더로 부상하도록
막강한 뒷받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때부터 인도 유민, 흉노 유민 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그 이전부터 서로의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러다가 소수민족이었던 흉노계 김수로왕측이 먼저 김해로 피난가고
이후 위기에 몰린 인도계 허왕옥측도 자연스럽게 딸(공주)을
김수로왕에게 시집을 보냈을 것입니다.
허황후는 이후 12명의 자녀를 낳아서 한국 인구증가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등이 그 직계 후손들인데 남한에서만 600 만이나 됩니다.
김수로왕은 연맹체 이름을 가라 (kara)라고 하여
두마리 물고기가 가야제국을 영원히 지켜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허왕후 일행이 가져온 많은 드라비다어(인도어)중에
농사와 관계된 대표적인 단어가 [살 sal] 입니다.
[쌀]은 드라비다어 [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김해에서 살았던
김영삼 대통령이 [쌀]을 [살]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발음을 우습게 생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김대통령은 이천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제대로 발음을 했던 것입니다.
결론....
가야 - 가라 - 가락
이라는 국명은
오천년전에 중동지방에서 유래된
신령스런 두마리 물고기의 이름인
kara 에서 나왔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