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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21 15:24
[기타] 신라, 진한과 진나라의 관계.. 그리고 서이徐夷, 예맥, 일본으로 간 진나라의 서복徐福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8,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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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요(堯)임금이 희중(羲仲)을 우이(嵎夷)에 살도록 명(命)하면서 ‘양곡(暘谷)’이라 하였으니 그곳은 대체로 해가 돋는 곳이다

무을(武乙)에 이르러 [은(殷)이] 쇠약(衰弱)해지자, 동이(東夷)가 점차 강성해져서 드디어 회수(淮水)와 대산(岱山)으로 나뉘어 옮겨오더니 점차 중토(中土)에까지 뻗어와 살게 되었다.

그 후에 서이(徐夷)가 참람되어 왕호(王號)를 칭하며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종주(宗周)를 쳐서 서쪽으로 황하(黃河)의 상류(上流)에까지 이르렀다.

왕(穆王)이 후(後)에 적기(赤驥)·녹이(騄耳) 등의 말을 얻어서 조부(造父)로 하여금 그 말을 몰고 초(楚)나라에 알려서 서국(徐國)을 치게 하니, [조부(造父)는] 하룻만에 [초(楚)나라에] 도착하였다. 이에 초문왕(楚文王)이 대병(大兵)을 일으켜 서국(徐國)을 멸망시켰다. 언왕(偃王)이 어질기만 하고 권도(權道)가 없어서 차마 그 백성을 데리고 싸우지 못하였으므로 패(敗)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리하여 북으로 팽성(彭城) 무원현(武原縣) 동산(東山) 아래로 달아났는데, 따라간 백성이 만명(萬名)이나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 산의 이름을 서산(徐山)이라고 하였다. 

진(秦)나라가 육귝(六國)을 합병한 후 
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지방의 이(夷)를 모두 분산시켜 진(秦)의 백성으로 만들었다

-후한지 동이열전 '서'편

진한(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되, 진(秦)나라에서 망명(亡命)한 사람들로서 고역(苦役)을 피하여 한국(韓國)에 오자, 마한이 그들의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주었다 한다. 그들은 나라(국,國)를 방(邦)이라 부르며, 궁(弓)은 고(孤)라 하고, 적(賊)은 구(寇)라 하며, 행주(行酒)를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도(徒)라 하여, 진(秦)나라 말과 흡사하기 때문에 혹 진한(秦韓)이라고도 부른다.

-후한지 동이열전 '한'편

그 뒤 40여世를 지나 조선후(朝鮮侯) 준(準)에 이르러 스스로 왕(王)이라 칭하였다. 한초(漢初)의 대혼란기에 연(燕)·제(齊)·조(趙)나라 사람으로서 그 지역으로 피난간 사람이 수만명이나 되었는데,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은 준(準)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스스로 조선(朝鮮)의 왕이 되어 나라가 손자 우거(右渠)에게까지 전하여졌다.

-후한지 동이열전 '예'편
전해 내려온 말에 “진시황(秦始皇)이 방사(方士) 서복(徐福)을 시켜서 남녀 아이들[童] 수천 명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서 봉래(蓬萊)의 신선(神仙)을 찾게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서복은 [뜻을 이루지 못한 죄를 물어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돌아오지 못하고, 마침내 이 주(洲)들에 머무르게 되었으며,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서 수만 가(家)를 이루었다.”고 한다. 

-후한지 동이열전 '왜'편

[마한(馬韓)의] 남쪽 경계는 왜(倭)에 가까우므로 문신(文身)한 사람도 있다.

그 나라(진한)에는 철(鐵)이 생산되는데 예(濊)·왜(倭)·마한(馬韓)이 모두 와서 사 간다. 모든 무역에 있어서 철(鐵)을 화폐로 사용한다.


변진(弁辰) 사람들은 진한(辰韓) 사람들과 뒤섞여 사는데, 성곽과 의복은 모두 [진한(辰韓)과] 같으나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변진(弁辰)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신체가 장대하고 머리칼이 아름다우며, 의복은 깨끗하고 형법은 엄격하다. 변진은 왜국(倭國)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문신(文身)한 사람이 상당히 있다.

-후한지 동이열전 '한'편

위에 지도는 대충 구글링해서 퍼온것이니 태클은 사절입니다.
어쨌든 위에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구이(九夷)가 나와있기도 한데... 
저들이 춘추전국시대까지도 어느 정도 존재하다가, 결국 다른 나라에 합병되고 맙니다.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백성이 되었죠.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진시황 때 만리장성을 쌓고, 진시황 무덤 만드는 일로 
농민반란이 발생하고, 망했던 각국의 후예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이 때 등장하는게 초나라 패왕 항우와 한나라 고조 유방이죠)

위에도 이 무렵 진나라의 백성들은 물론, 
한나라 초기 제후국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 백성들이 혼란을 피해 
고조선으로 수만명이 도망친걸로 나와있습니다. 
한고조 유방의 친구이자 연왕 노관이 흉노로 망명했고, 
그의 수하인 위만은 고조선으로 항복했다가 준왕을 몰아내죠.

진한 사람들은 주로 진나라에서 도망친 유민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살고 온 사람들이라 일부 용어 사용은 중국풍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만..
마한 사람들이 땅을 내어주고 상당히 잘해줬을 뿐 아니라,
이들이 딱히 마한이나 변한과 크게 언어가 다르다는 말은 없습니다.

(*사료에 '다른 점이 있다'고 적혔다고, 완전히 말이 안통한다는 소리라는게 아니죠. 
 약간 다르다. 많이 다르다의 차이는 큰 것입니다.)

즉, 말이 기본적으로 통하고, 의심이나 배척을 받지 않았던 동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의아니게 중국땅 조선족 되버린 케이스랄까요.

그리고 변한에 대한 내용을 보면, 왜와 가까워 문신한 사람이 많다고 적혀있습니다.
이게 뭔소리냐... 왜국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소리지요.(왜인 포함)
이미 철을 화폐로 하여 무역을 하는 상태였고.. 
왜처럼 문신한 자들이 돌아다녔다는 말은 즉슨, 마한과 변한, 진한 할거없이 이미 왜와 교류 중이었습니다.
바다로 못다니는 상황이 아니라, 이미 무역과 다른 이유로 뻔질나게 왜열도를 돌아다녔다는 소리죠.

진시황이 파견한 서복은.. 3천명의 동남동녀.. 즉, 소년소녀들과 기타 장인들과 수행인원 포함 5천명 정도로
일본에 도착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제주도에 상륙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일본까지 갔는지 관련 이야기가 
좀 전해져내려오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근데, 서복은 기본적으로 불로장생을 연구하는 당대로 치면 석학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죠,.
그의 주변에 있던 인물들도 기술과 과학, 지식에 있어 뛰어난 인재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남동녀들은 나이 어린거 빼곤 별 영양가가 없다쳐도)..
그런 인재들이 진나라를 벗어나 일본에 상륙했으면 진나라 수준의 문명은 금새 구축했겠죠.

그러나 그 정도였는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일본쪽에선 서불을 학문과 의료술의 신으로 모신다는 말이 있더군요.

그리고 재밌는 게... 서복(徐福)은 서(徐)국의 서(徐)와 같은 성씨입니다.
삼국지 유비가 도겸의 후사를 이어 주자사가 된 서(徐州)란 지역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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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의 중심인 하비는 사수와 회수에 둘러싸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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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서씨의 유래는.. 

첫째. 고조선의 예국 군장 여수기 후손설..
둘째, 기자조선 후손설(기자조선 마지막 왕이 정착하면서 지명의 첫글자를 딴것)
셋째, 백제왕족 후손설이 있는데..(당나라 황제에게 하사받은 성씨가 서씨)

이 중 가장 연대가 앞서는게 바로 첫번째 예국 군장 여수기余守己의 후손설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한 서국도 이 사람의 후예로 보이는데요.
余 + 두인변(彳 : 두 사람, 즉 여러 사람이라는 의미)을 붙인것으로..
서씨는 '여씨 사람들, 여씨의 후예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죠.

예국은 대략 훗날 한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들의 후예가 중국 황하와 양쯔강 사이에 자리잡아 夷로 대활약을 벌였다는 것이죠.

그러나 고조선 시대라면.. 
한무제에게 동쪽으로 밀려나기 이전 고조선의 제후국인 예족이 요서 근처에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즉, 예족은 하은주시대, 춘추전국시대.. 전한에 밀려나기 이전에.. 중국지역으로 상당한 자기세력을 보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죠. 그 증거와 흔적이 서씨徐氏, 서이 서국, 서주徐州에 남아있는것이죠.

이들이 예맥족의 예족인데.. 
예족이 이런 활약상을 보일 때, 
맥족은 누구냐하면.. 고구려인을 보통 맥족이라 표현합니다. 
후한지 동이열전에 고구려인의 기습을 맥인의 기습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맥국이라는 표현도 있구요.

구려(句驪)는 일명(一名) 맥(貊)이라 부른다. 별종(別種)이 있는데, 소수(小水)에 의지하여 사는 까닭에 이를 소수맥(小水貊)이라 부른다. 좋은 활이 생산되니 이른바 맥궁(貊弓)이 그것이다.

고구려왕(高句驪王)의 칭호를 고쳐서 하구려후(下句驪侯)라 부르게 하였다. 이에 맥인(貊人)이 변방을 노략질하는 일은 더욱 심하여졌다

이에 [후한(後漢)은] 광양(廣陽)·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탁군(涿郡)· [요동(遼東)]속국(屬國)에서 3천여명의 기마병을 출동시켜 함께 [요광(姚光) 등을] 구원케 하였으나, 맥인(貊人)이 벌써 돌아가버렸다.

여름에 다시 요동(遼東)의 선비(鮮卑)[족(族)] 8천여명과 함께 요대(遼隊)[현(縣)]을 침공하여 관리와 민간인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채풍(蔡諷) 등이 신창(新昌)[현(縣)]에서 추격하다가 전사(戰死)하였다

안제(安帝) 영초(永初) 5년(A.D.111; 高句麗 太祖王 59)에 궁(宮)이 사신(使臣)을 보내어 공물(貢物)을 바치고 현도(玄菟)에 예속되기를 구(求)하였다. 원초(元初) 5년(A.D.118; 高句麗 太祖王 66)에는 예맥(濊貊)과 함께 현도(玄菟)를 침략하고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하였다.

가을에 궁(宮)이 드디어 마한(馬韓)· 예맥(濊貊)의 군사 수천명을 거느리고 현도(玄菟)를 포위하였다. 부여왕(夫餘王)이 그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어 2만여명을 거느리고 [유(幽)]주(州)·[현도(玄菟)]군(郡)과 함께 힘을 합하여 [궁(宮)을] 쳐서 깨뜨리고 5백여명을 참수하였다.

-후한지 동이열전 '고구려'편

**여기서 고구려왕 궁(宮)은 바로 고구려 태조왕입니다. 
수성은 그 다음 왕 차대왕의 이름입니다. 
백고는 그 다음 왕 신대왕의 이름입니다.

고구려는 후한지 동이열전 '고구려'편에서 
선비족, 예맥족, 마한족을 동원하여 한나라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중국을 휩쓸던 동이족은 '중국의 4이의 방향에 있는 지나족일뿐, 한민족이 아니다'~가 아니라..
바로 예맥족의 두 주축 중 하나인 예족들이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공교롭게도.. 서복은 서씨徐氏입니다. 즉 동이족으로 추정된다 이거죠.
중국에 다른 유래를 가진 서씨徐氏가 존재하는지는 아직 안찾아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서주 출신의 서씨 徐氏가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 진나라에서 탈출할 동기도 가지고 있고, 
어쩌면... 진나라에 합병되어 흩어진 동포 아이들을 모아서 
탈출한 집단 탈출국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진나라는 서주 하비지역(회수~사수) 사이의 서徐국인들을 사방팔방 흩어버리려 했으니까요.
서복은 자신의 학문과 지식을 이용해, 진시황의 환심을 사고, 동남동녀 선발권을 행사해.. 
동포들을 모은 후 탈출했다고 보면 어떨까요?

어쨌든, 그렇게 된다면.. 일본에 정착한 서복 일행은.. 夷의 중국 탈출기였고...
일본은 어쨌든 한민족의 후예들에게 개척당한 것일 가능성이 생깁니다..

일본은 철저히 한국인의 영향력을 부정하려 애쓰지만...
서이夷의 후예든, 삼한의 후예든.. 우리 예맥 민족이 개척한 상황이 되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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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항우가 수도로 삼았던 초나라의 팽성이 바로 서주 지방입니다.

한고조 유방의 고향은 서주의 패현(현재 강소성 패현)인데.. 바로 팽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초나라 항우의 고향은  강소성 숙천현(宿遷縣) 서남부 지역이라고 하는데 여긴 서주가 맞나 모르겠네요.
물론 군대를 일으키는 곳은 좀 더 아래쪽인 회계가 되지요.



추가사항..

"서군(徐君)의 궁인(宮人)이 알을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물가에 갖다 버렸다. 

어느 사람이 이것을 주워다가 따뜻하게 싸주었더니 이름을 언(偃)이라 했다. 궁인이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다시 데려다가 대를 잇게 하여 서군을 삼았다. 그는 신이한 사람이었다. 무원현 동쪽 십리에 서산(徐山)의 돌집으로 된 사당이 있다. 서언왕은 진(陳), 채(蔡)의 사이를 드나들면서 주궁(朱弓)과 주시(朱矢)를 얻었다. 이것은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 하여 언왕이라 하였다."

-박물지(博物誌)

부여 시조 동명성왕, 고구려 시조 추모왕, 신라 박혁거세 거서간의 건국신화를 

고대로 빼다 박은 원본 난생설화인... 서언왕 출생설화..


요약:

1.고조선을 형성한 두 부족(예맥) 중 예족 군장 여수기의 후예가 서씨()
2.중국 은나라때부터 주나라, 춘추전국시대까지 존재했던 서이徐夷, 서국이 바로 예족의 후예.
   훗날 서국은 서주徐州로 이어짐.(삼국지에 나오는 도겸, 유비, 여포의 서주가 바로 그곳..)
   이 곳은 또한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인 패현이 있는 곳이며, 초나라 항우가 수도로 삼은 팽성이 위치.
3.진시황의 통일 후 흩어졌으나, 
   서복徐福이 동남동녀 3천과 장인 등 5천명을 이끌고,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감.. 
   성씨를 보아하니, 서이족의 후예로 진시황한테 사기치고 탈출극을 벌인게 아닌가 사료됨..
4.진나라의 부역을 피해, 초한전쟁과 한나라 초기 혼란상을 피해 
   탈출한 동이족들이 한반도에 자리잡은게 진한..(훗날의 신라)
5.마한, 변한, 진한은 이미 왜 열도와 일찌감치 철을 매개로 한 무역 중이었고, 
   왜인(문신)을 한 삼한인이나 왜인이 들락거림.
6.일본은 진나라 서복을 자신들의 조상인양 받들고, 한민족의 영향을 애써 축소하려는데.. 
  실상은 서복도 동이족 출신으로 동족 아이들을 선발해 집단 탈출 사기극을 벌인게 아닌가 함..
  결국 중국 쪽 한민족이나, 한반도 한민족의 수혜를 받기는 마찬가지..
7.고구려 태조왕은 선비족, 마한족, 예맥족 모두를 동원해가며, 한나라를 침공.. 이런 동원력의 배경에는..
   고구려 태조왕의 카리스마 뿐 아니라,동족의식 같은 민족적 유대감이 있지 않은가 사료됨..
   고구려가 마냥 힘으로 주변국을 제압하고 강제동원할 상태는 아닌 상태라고 보기에..
   (태조왕도 계루부 고씨 왕으로써 소노부 해씨를 제압한 첫번째 왕이라.. 지배구조가 튼튼하다고 보긴 어려울 듯..)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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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사랑 15-03-21 15:32
   
쉽게 이야기를 하면
중국이 우리나라 땅이였는데
국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중국놈들에게 빼앗긴거죠 ~
이거 다시 찾아야 하는데
국력이 딸리니 당장은 찾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다시 찾아야 할 우리나라 땅이네요
갈매기사랑 15-03-21 15:35
   
로마도 망했는데
중국도 안망하라는 법은 없죠
권력이라는게 오래되면 부패하는 법이니
분열하면서 망할 때
우리 땅은 모조리 찾아와야 할겁니다
이쉬타르 15-03-21 16:23
   
우리조상에 다 연결은 맥족 하고 예족인데 그외 종족은 우리랑 연관이 현재로선 증거가 부족하고 의문이죠..당연히 본문의 선비족은 우리하고는 다르고...
예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하면 보통 맥의 일파로 보더군요..즉 예와 맥은  근본이 같은 종족입니다 ...하상주대의 산뚱성이나 장슈성의 구이,래이는 혈연이나 문화적 구조로서 다른 종족일것 같고..상나라 건설을 한 상족은 여러가지로 볼적에 맥족의 일파 같고 그 상족은 당시 동이들 하고는 대규모 전쟁을 수차례 펼친 숙적관계 였담디다..
     
Centurion 15-03-21 16:33
   
"서군(徐君)의 궁인(宮人)이 알을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물가에 갖다 버렸다.
어느 사람이 이것을 주워다가 따뜻하게 싸주었더니 이름을 언(偃)이라 했다. 궁인이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다시 데려다가 대를 잇게 하여 서군을 삼았다. 그는 신이한 사람이었다. 무원현 동쪽 십리에 서산(徐山)의 돌집으로 된 사당이 있다. 서언왕은 진(陳), 채(蔡)의 사이를 드나들면서 주궁(朱弓)과 주시(朱矢)를 얻었다. 이것은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 하여 언왕이라 하였다."

-박물지(博物誌)

중국 서언왕의 출생설화입니다.
이건 뭐.. 빼도 박도 못하는 부분이죠. 중국 고대문헌인 박물지에 나와있는건데요.
아주 그냥 부여 동명성왕, 고구려 추모왕, 신라 박혁거세 신화를 빼다 박았습니다.

물론, 연대가 더 올라가죠.
은나라가 망한 뒤 주나라 건국 무렵(기원전 10세기)이니..
그러니 이게 원본 오리지널 설화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이족은.. 그냥 고조선의 후예이고, 예맥족의 일파일 수 밖에 없는거죠..
예맥족 지역에서 그 건국신화를 다 돌려 쓸 정도니까요.

애시당초 서나라는 은나라 멸망 후 주나라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따로 제후국들로부터 조공을 받았고, 주나라와 다른 세계관을 가졌죠.
이러니, 주나라를 계승한 짱개쪽 후예들이 서이족을 참람되다고 씹는 것입니다.

중국 안에서 시조를 난생설화로 포장한 왕조가 더 있나요? 없습니다.
이건 서이족이 짱개 지나족이 아니라, 예맥족의 일파라는 확고한 증거인겁니다.
마치 중국 사서에 동이열전에 우리 민족을 기록해도,  삼국사기는 우리 민족만 기록한거랑 같죠..
 
정통성을 잇는 후계가 우리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걸 굳이 부정하려는 게 이해가 안되는군요. 이런 명확한 증거가 있는데 말이죠.
          
이쉬타르 15-03-21 16:39
   
대체로 맥은 중토에 근접해서 요서에다가 위치 하고 해서 지나족들하고 마주 보며 살았고  예가 요동,한반도 근처 였고 했는데 ,,학자들 말은 예를 왜로 같다고 보구 한편 예족을 부여를 건설을 한 종족으로 보더군요
구이가 맥하고 같든가??... 할 증거가 나오지 못해서 현재로선 그렇게 속단은 금물 이란게죠..난생설 하나로는 부족하죠
               
Centurion 15-03-21 16:51
   
그리고 여씨, 서씨, 부여씨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국내에도 여씨余氏성이 좀 있더군요.
여기에 서씨徐氏와 부여씨(夫餘氏)를 보면..

셋다 余를 근본으로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余 徐 餘

하다 못해 김씨 金氏랑도 글자가 비슷하죠..
김씨는 余 밑에 줄 하나 더 그었네요.

(김씨의 기원이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 무제가
 흉노족 휴도왕의 아들인 김일제가 성을 하사한것인데..
 희한하게도 余 자에 밑에 줄 하나 더 그은 성을 내렸다? 아내의 유혹 민소희처럼..?
 우연치곤 아주 요상하죠 )

余자는 나 여, 남을 여자 입니다.
1. 나 2. 남다 3. 남기다
4. 나머지(=餘)  5. 나머지 시간(時間) 6. 여가(餘暇)
7. 여분 8. 정식 이외의 9. 다른

혹여? 은나라 동이족의 잔당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서나라는 주나라 건국초기때부터 부딪혀왔으니까요.

더불어 은나라 왕족인 기자의 마지막 후손이 한반도에서 서徐씨 성으로 바꾸게 되는데요.
이 또한 묘한 우연이 또 겹친다는 점이죠. 왜 하필 기箕씨가 서徐씨로 바꿨을까요?
이러한 공통점이 우연일거라 생각하시나요?

당나라가 백제왕족에게 서씨성을 하사했다고 알려져있는데..
부여씨에게 서씨성을 하사했다..? 왜 그럤을까요? 여씨로 줄여 불러도 되는데.. 하필 서씨?
그건 동이족을 대표하는 고정관념, 대표적인 성씨가 서씨여서가 아닐까요?

물론, 훗날 모용씨의 연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부여왕족들은 여씨를 썼습니다.
후연의 건국에 동참하고 훗날 반란을 일으킨 부여왕족 여암(餘巖)은 서씨가 아닌 부여씨의 여씨를 썻죠.
     
정헌대부 15-03-21 17:08
   
고구려인은 자신들의 조상을 예족, 맥족이 아니라 고리족(국)이라 했어요.
왜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금석문을 무시하고 우리의 조상은 모두 예족, 맥족이라고만 하나요?
예족과 맥족은 우리이 조상인 조선 구이족 중에 일부일 뿐 입니다.
금석문대로 따른 다면 고리족에서 조선 구이족 중 하나인 부여족이 나오고
부여족에서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나오는 겁니다.
해서 가설이지만 고구려에서 고려로 국명을 바꿀 때 한자로는 고려, 발음은 고리라고 읽어야 한다는 설도 있어요.
또한 옥저족은 예나 맥과 별개로 존재하던 구이족 중 하나로 우리와 연관이 있어요.
이러한데 옥저족도 우리와 연관이 부족하다고 보시나요?
또한 선비족은 스스로를 기자의 후손이고한 금석문도 존재합니다.
          
Centurion 15-03-21 17:51
   
에~ 제 근본취지는 그게 아니라,
일단 후한지 동이열전에선 고구려를 다른 명칭으로 맥족으로 부른다는 점이고..
반면 중국의 서주에 해당하는 지역을 휘저었던
주나라 시기 강대국 서나라는 고조선 예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죠.

물론 본인들이 직접 기록한 역사서나 금석문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만..

결론적으로 중국땅에 위치한 구이들을 지나 짱개족으로 볼 수 없다는게 제 취지입니다.
은나라 멸망 후 주나라의 천자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조공을 받던 서나라..
이들은 고조선 예족의 후예이고. 부여-고구려-신라와 난생설화를 공유하며..

서나라의 멸망 이후에도 연, 제, 조나라,
혹은 진나라에 의해 초나라 서주지방에서 여기저기로 흩어졌어도
이들이 다시 고조선, 삼한 영역으로 넘어와 진한 세력이 되었다는 점이지요.

고조선이 환웅이 예족(호랑이) + 맥족(곰 부족)의 결합으로 나라를 세웠고..
예족들이 주로 중국 동부해안지역에 위치, 맥족은 부여, 고구려처럼 중국 동북부에 위치.

다만,, 동예처럼(서예가 없죠)
이들이 한무제의 공격으로 멸망한 고조선 영역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예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즉, 예족의 서쪽일파는 중국 서부에 남아있고, 동쪽 일파는 동예가 된것인데..
예족이 요서의 한사군에 의해 동서로 크게 단절되는 상황이 되는것이죠.

그러다 구이라고 불리웠던 서이족들이 중국 진-한 교체기 시절에 많이 넘어온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진한이 12국.. 인구 1만호가 1국이니.. 60만명 정도니까 엄청 많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들을 지나짱개족 취급해선 안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마한이 54국, 변한이 12국)

보통 경상도를 흉노니 지나짱개족이니 공격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Centurion 15-03-21 18:03
   
그러니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고구려, 부여 등은 큰 분류로 봤을 때 맥족에 해당되는 것이지..
고구려가 부여족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국인들이 사서에서 고구려를 맥족, 맥인으로 부르거든요.

반면, (동)예족 같은 경우에도 본인들 스소로 고구려와 같은 동족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이미 예족과 맥족의 구별이 소용없는 수준이라는걸 알 수 있죠..

[예(濊)에는] 대군장(大君長)이 없고, 그들의 관직으로는 후(侯)와 읍군(邑君)과 삼로(三老)가 있다. [예(濊)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부여국(夫餘國)은 현도(玄菟)의 북쪽 천리(千里) 쯤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高句驪)와, 동쪽은 읍루(挹婁)와,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 사방 이천리(二千里)이며, 본래 예(濊)[족(族)]의 땅이다.

부여도 본래 예족의 땅이라고 적혀있는데,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고, 부여는 맥족이 되는 셈이니..결국, 예와 맥족의 구별은 무의미하다거나, 중국의 민족구별이 별 소용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고조선 건국으로 예,맥은 섞이고 섞여 하나의 예맥족이 되었으니 말이죠.
이쉬타르 15-03-21 16:29
   
하상주시대 자료를 다시 읽고 하는데 당시에 동이족은 구이,래이만 지칭하고 북/북동부지역 거주 종족을  맥 하구 산융 만 가지구서  부름니다..그 맥을 여러가지로 부르고..섬서성에도 맥의 일파가 출현하는데(만맥, 북맥으로부름) 아마도 산융족을 맥하고 일부 혼동 같더군요 맥족은 유목을 허지않으니 섬서성까지 진출해서 살지못하죠..
대체로 상나라를 맥족이 건설을 하는 나라로 지칭해도 사료상 부족허진 않으니 이를 우리교과서에다 싣는 날에는 지나족들이 혼백이 빠져나가고 분기탱천 할게 틀림 없습니다

 현재 사학자들이 상나라를 건설한 종족을 동이족이라 부르던데 엄밀하게는 이게 안맞는 소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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