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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8 10:48
[기타] 신미양요(1871년)이 일어나기 10년전(1861~1865년) 미군이 쓰던 무기.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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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도와 대검입니다. 다들 잘아시니 패스.

권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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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T8m0xVYPMwI

리볼버 종류가 많은데, 이거 사용법은 둥근 모양의 탄창(실린더)에 화약을 다져놓고, 
라운드탄을 끼워넣습니다. 그 다음에 다진 후 발사하죠. 
전투 전에 미리 장전해두면 6발 정도는 연발로 쏠수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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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군 기병대들 중 유명했던 모스비 대령의 기병대가 쌍권총으로 무장하고 다녔지요.
그러나 전투 중에는 재장전이 몹시 힘들며, 실린더를 통채로 들고 다니다가 갈아끼우기도 했다는데, 
이게 무겁고 좀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소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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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FK5GcG_QHJ0

북군의 제식 소총  사격 및 장전 장면..


남북전쟁 흑인연대의 활약을 그린 영화 글로리의 한 장면.

http://youtu.be/K1BraAJD0tk

어떤 흑인이 총 잘쐈다고 나대다가, 
옆에서 장전을 방해하는 장교의 갈굼 때문에 버거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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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시절의 대포도 그 이전 시절처럼 전장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후장식 대포가 나오는건 조금 뒤에 나올  암스트롱포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죠.
신미양요에선 폐쇄기가 장착된 암스트롱포(1855년)가 나오지만, 
남북전쟁 땐 개발되긴 했으나 잘 보기힘듭니다.


http://youtu.be/VHVOHAfS5EY

포병 사격 재연.


http://youtu.be/dSraOEtrhWY

종합적으로 보기 좋은..
1863년 게티스버그 전투의 하이라이트 부분. '피켓 사단의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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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 장군의 남군 사단 12500 명이 북군 2군단 핸콕 군단에 돌격하다 거의 절반이상 사상자를 냅니다.



이 전투 말고도 안티에탐 전투라고 있는데,
여기서 하루만에 남군, 북군 합쳐서 2만3천의 사상자가 발생됩니다. 
이때 남군이 4만병력, 대포 130 여문, 7만5천병력에 북군이 240문 정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2차대전 오마하 해변이 하루에 3천명 죽었죠.

이런 케이스는 그 이전의 나폴레옹전쟁이나 독립전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http://youtu.be/IFpFHj4XfFg

멜 깁슨 주연의 패트리어트에 나오는 전투장면도 그대롭니다. 
이런 전투방식은 남북전쟁 이후로도 얼추 계속되어 1차대전 초기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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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전투를 벌인 덕진진에는 덕진돈대, 남장포대, 덕진포대가 소속되어 있었는데.
덕진진은 만호가 지휘하는 군관 26명, 병사 100명, 돈군 12명, 군선 2척(숙종)시절 배치되었고.
남장포대는 15문의 포, 덕진포대는 10문의 포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병력에 비해선 과도하게 많은 포란걸 알 수 있죠. 

남북전쟁 때 미군은 사단급이 40 여문의 포를 갖췄는데..
1개 중대쯤 되는 병력이 포가 25문이라...

갑곶의 홍이포.jpg

물론 홍이포(컬버린) 정도만 있었으면,  이 컬버린의 유효사거리 700미터, 최대사거리 3~4km 정도 되기에
덕진진-덕포진 양쪽에서 쏴대면 해협 폭 1km에 불과한터라 군함의 통과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흠.. 자료 찾아보니, 신미양요 미군 군함들이 철갑함이 아니네요. 하지만, 목조 증기함이라고 해도 
범선 시절 USS 컨스티듀션(2200톤급 헤비 프리깃)시절에도 178mm 목재 측면 장갑으로 
영국 프리깃의 18파운드 컬버린을 튕겨냈던걸 생각하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미해군은 당시 전열함을 찍어낼 여유는 없었기에, 프리깃을 상당히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최강 영국해군도 경악할만큼 무장도, 장갑도 충실하게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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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군함
- USS Colorado(1856년 건조/3425톤/10인치 포 2문, 9인치 포 28문, 8인치포 14문)
- USS Alaska(1868년 건조/2394톤/11인치 활강포 1문, 60파운드 포 1문, 20파운드 포 2문)
- USS Palos(1865년 건조/420톤/포 2문)
- USS Monocacy(1864년 건조/1370톤/13인치 구포 1문, 32파운드 포 2문)
- USS Benicia(1868년 건조/2400톤/11인치 활강포 1문, 9인치 활강포 10문, 60파운드 강선포 1문, 20파운드 후장식 강선포 1문)

병력 
- 해군 및 해병대 1,230명,[6] 대포 85문 

조선군

지상병력 
- 500여명.[7] 주무장은 화승총[8]

양측 피해

미군 : 전사 3명, 부상자 10명

조선군 : 조선군 집계 지휘관 어재연 장군 외 조선측이 확인한 전사자 53명, 부상자 10명/ 미군측 집계 사살전과는 243명. 익사 100여명, 포로 18명. 조선군이 파견한 총병력 규모 기록과 대조할 때, 미군의 집계는 투입 병력과 비교할 때 오차가 거의 없다, 초지진, 덕진진 및 광성보 시설 함락 및 조직적인 파괴와 요새 중장비 전량 노획 및 파괴, 수자기 약탈

USS 콜로라도(Colorado) : 1856년 6월 Norfolk Naval Yard에서 진수, 1858년 3월 현역 배치 
비장갑 목조, 스크루추진 프리깃함 동급함 없음 
함정 전장 263ft, 전폭 52.6ft 배수량 4772t 최고속도 9kt 
무장 
10인치 전장식 활강포 2문, 9인치 전장식 활강포 28문, 8인치 전장식 활강포 14문 

USS 알래스카(Alaska) : 1868년 10월 Norfolk Naval Yard에서 진수,1869년 10월 현역 배치 
비장갑 목조, 스크루추진 슬루프함 알래스카급 네임쉽 
함정 전장 250ft, 전폭 38ft 배수량 2394t 최고속도 12kt 
무장 
5.3인치 전장식 강선포 1문, 11인치 전장식 활강포 1문, 8인치 전장식 활강포 6문 

USS 베니시아(Benicia) : 1868년 8월 Portsmouth Naval Yard에서 USS 앨고머(Algoma)로 명명 및 진수, 1869년 3월 베니시아로 재명명, 1869년 10월 현역배치 

비장갑 목조, 스크루추진 슬루프함 알래스카급 2번함 
함정 전장 250ft, 전폭 38ft, 배수량 2394t 최고속도 12kt 
무장 
5.3인치 전장식 강선포 1문, 3.7인치 전장식 강선포 2문, 11인치 전장식 활강포 1문, 9인치 전장식 활강포 10문 

USS 모노카시(Monocacy) : 1864년 12월 Denmead사 조선소에서 진수, 1866년 ???월 현역배치 
비장갑 목조, 외륜포함 모혼고(Mohongo)급 포함 3번함 
함정 전장 255ft, 전폭 35ft, 배수량 1370t 최고속도 11~12kt 
무장 
6.4인치 전장식 강선포 2문 9인치 전장식 활강포 4문, 4인치 전장식 강선곡사포 2문, 24파운드 활강곡사포 2문 

*이상은 신미양요 참전함정 

http://cafe399.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jpLA&fldid=K8Pw&contentval=0003K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B0%FC%C0%FA%C0%D3%C0%E7%B4%F6&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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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홍이포는 화약을 엄청 많이 쓰는터라, 
조선에서 1731년(영조 7년) 훈련도감에서 자체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실전배치는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홍이포(120mm) 1발 당 화약 3.5kg, 
 천자총통(128mm) 1발 당 화약 1.1kg, (유효사거리 500, 최대사거리 약 1km~1.4km)
 지자총통(93mm~105mm) 1발 당 화약 0.75kg, (640~1000m) 오히려 천자총통보다 사거리나 효율이 좋음
 현자총통(58~67mm) 1발당  화약 150g 사거리 (차대전 1000m 철환 1600m) 조선수군 주력함포

하지만, 대략 200보 정도에서 함포사격, 100보에서 조총사격, 90보에서 활 사격.

참고로, 명나라 말기 명장 원숭환이 영원성 전투에서 
청나라를 막기 위해 배치한 홍이포가  11문 밖에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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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 해군은 8인치, 9인치 함포를 사용했는데..
구경 203 mm, 228mm이니 얼마나 화력이 쎈지 알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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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8인치 함포, 아래가 9인치 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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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이거 보신 분 많으실텐데. 이게 8인치 곡사포입니다. 실제로 보면 포스가 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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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보병들은 저 아담한 포를 썼습니다. 폐쇄기가 달린 암스트롱포로 보입니다.
근데 저게 사거리가 6~700미터 정도 되고 속사가 가능하며 정확도도 높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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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레밍턴 롤링 블럭 소총이죠. 방아쇠 때문에 리볼버 같은 모양인데, 발사 후 총탄을 빼내고 다시 쏩니다.
볼트액션 이전에 쓰던 반자동 단발 소총이랄까요..

http://youtu.be/fdvICJ86c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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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남군기병대로부터도 사기라는 소리를 듣던 북군 기병대의 스펜서 연발소총이죠.
신미양요 때 미 해병대도 썼다고 합니다. 

반면 조선군이 쓰던건  화승총인데.. 
유럽도 조선처럼 핸드건(승자총통 형)무기를 쓰다가, 나중에 화승총으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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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유럽에서 대항해시대 때 일본까지 전해지죠.

화승총의 원리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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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기면 천천히 타들어가는 심지가 화약접시에 접촉해 
안쪽에 장전된 장약을 폭발시켜 탄환을 발사시키는 원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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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국이 노획한 조선의 화승총인데, 보통 화승총에 비해 상당히 긴 길이를 자랑합니다, 
 당연히 총신이 길어지면, 명중률이나 파괴력, 사거리가 늘어나죠. 화승총 진화의 끝판왕일지도 모르겠네요.

화승총은 항상 불을 붙여둬야 했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화승이 부족하거거나 하는 상황에 별로 안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불편했고, 제약이 많았죠..

이걸 개선하기 나온게 Flintloc 방식의 머스킷... 즉, 부싯돌 격발식 소총이죠.
이걸 나선정벌(1654, 1658년) 때 조선도 노획했습니다만.. 

이미 화승총이 많은 량이 제작되었고, 
이게 제작비용도 비싸고, 좀 복잡해보이니 생산은 안했습니다. 
부싯돌도 소모식이라 30발쯤 쏘면 교체해야 되는 물건이었죠. 불발이 없던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근본적으로 둘은 점화방식의 차이만 있지, 그렇게 차이가 나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이 동영상에 화승총과 수석식 머스킷 둘다 등장합니다. 
 화승총의 배경이 대영제국 시절 미국 식민지 건설 초기지요. 
 부싯돌 점화식 머스킷을 쏘는 장면의 복식은 미국 건국 초기 복장입니다. 
 영국의 성공적인 첫번째 식민지인 제임스타운 건설이 1607년,
 미국 독립전쟁이 1775년, 프랑스대혁명이 1789년, 미국 남북전쟁은 1861년, 신미양요는 1871년입니다.

그러다가, 1807년에 스코틀랜드의 목사이자 장교였던 포사이스가 뇌관을 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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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뇌관(percussion)을 끼워서 화약접시에 화약을 붓고 잠그고, 부싯돌로 터뜨리는 과정을 단축해버리게 됩니다. 또한 이게 비에 안젖으면 우천시에도 사용가능했고, 연기도 적어 여러모로 획기적인 개선이었습니다만.
개발 당시엔 특허가 말소되길 기다리며 안썼고, 훗날 미국 남북전쟁 때 대대적으로 사용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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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에선 기존의 둥근 탄환을 개량한 저런 원추형 탄두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신미양요 때 미 해병대는 훨씬 사용하기 편한 스펜서 연발소총 혹은 레밍턴 롤링 블럭을 썼는데..

미 해병대라는 부대가 지금도  미 의회 동의없이도, 
대통령 명령 한마디에 24시간 내에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신속기동군이라.. 보통 정예부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20 기계화보병사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한미연합사의 동의없이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부대가 20 기계화보병사단이고, 
그래서, 제일 최신장비가 먼저 배치되는곳이 20기계화 보병사단이거든요.

게다가 해군도 일단 장비가 비쌉니다. 

한국 육군이랑 한국 해군이랑 비교해봐도.. 
탱크 한대, 야포 1대와 군함 1척은 비교불가 수준의 가격차가 납니다.

저 땐 공군이 없던 시대라, 사실상 해군력이 중요했고, 
그 해군력이 해외무력투사의 핵심이고, 세계제국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습니다.

지금의 미 해군도 처음에는  프리킷 몇척으로 시작해 영국의 눈치를 보고, 
알제리 해적들한테 통행세 내고 다니던 해양 약소국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통상조약을 맺고, 
해외에서 자국 이익을 수호하라고 내보내는 미국의 아시아 함대가 허접할 리가 없잖습니까?
요즘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조차도 자이툰부대는 방탄복이고, 화이바고, 차량이고 죄다 제일 좋은걸로 
때깔좋게 꾸며서 보내듯이 말입니다.

고로, 당시 미 해병대는 미군에서도 장비와 보급이 좋은 최정예 부대라고 보면 될겁니다.

그리고 저 아래 어떤 어그로님이 생각하듯,
헬리곱터에 화살 날리는 수준의 비교보다는 훨씬 적은 격차가 났다고 볼 수 잇습니다..

Matchlock 방식의 머스킷과 Flintlock 머스킷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Fiintlock 머스킷과 뇌관식 소총도 큰 차이는 안나구요. 

사실 조선이 나선정벌 때 노획한 수석식 소총을 대량 제작했더라면...
홍이포(컬버린)이라도 몇문이라도 만들어 배치했더라면, 조금 나았을거란 생각은 듭니다만..

원채 19세기 중반부터 총기와 대포, 군함의 개량과 발전이 급속히 빨라지던 시대라..
큰 효과를 보긴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개항하고, 무기 사들이고, 기술 배우는게 최선이긴 했죠.

그래도 누구 생각처럼 그렇게 미개한 수준은 아니란건 확실합니다. 

1400년대 중반에 등장한 화승총과 1870년대 미군 연발소총, 증기선을 비교하는데..
1939년에 등장한 헬기와 선사시대에 나타났을 활과 비교하는게 말이 되나요?

어그로도 좀 유식하게 끕시다.. 너무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ㅋㅋ


추가로..
신미양요 때의 강화도 덕진진과 
미국 남북전쟁 시기 서부 미시시피강의 수상 운송로를 뚫기 위해 벌여졌던.. 
포트 헨리, 포트 도넬슨 전투 그림을 좀 더 보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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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덕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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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고 느끼는거지만... 조선의 강화도 포대 축성술이 제법 근사합니다. 
오히려 너무 높은 성벽을 쌓으면, 눈에 띄거나 무너지기 쉬운데, 
적당히 흙을 덮어서 성곽의 방호력을 높이고, 위장효과도 주고. 

포좌도 낮고 성곽에 둘러쌓여있어 상당히 괜찮아 보입니다.

물론, 방향전환이나, 전술적으로 유연한 운용을 하기엔 
미군 방식처럼 포를 참호 위로 드러나게 하는게 낫겠지만..

이런 해안요새와 대포, 화승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무슨 아마존 원주민 보듯 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린지..원..

추가2..

1683년 비엔나 전투 
오스트리아 및 신성동맹 & 폴란드-리투아니아 vs 오스만제국 30만 대군



알라트리스테 
로크로이 전투 1643년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연합군 vs 프랑스  

화승총 쏘는 아마존급 미개인들 영상 두 편 추가로 올립니다. 
신미양요1871년으로부터 200년전 쯤에 아마존 활쏘는 미개인급 국가들이네요.


추가3.


신미양요에 관한 미군기록을 Thomas Duvernay가 정리해 게시한http://www.shinmiyangyo.org에서 예전에 발췌 후 국역했던것에 내용을 약간 추가(일부 교차비교 포함). 발번역이라 원문 병기 함. #3. yth.

 

*Thomas Duvernay : 현 영남대 국제학부 한국학 교수, 전투 당시 탈취된 조선군의 장군기(帥旗, Generalissimo)의 반환을 이끌어낸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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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10:00 a.m. on June 10, the assault on the forts began. The landing forces consisted of about 650 men (over 500 sailors and 100+ Marines).  In this fight, the US had .50 caliber Remington rolling block carbines, the Marines had muzzleloading Springfield muskets and Navy Plymouths; the Koreans had matchlocks. They landed at Ch’oji Fortress, which the Americans called Marine Redoubt, with no opposition; they camped nearby overnight. The next morning, they finished destroying the fort, dumping or spiking cannons and then moved on, with Marines traveling ahead as skirmishers.

(1871년) 6월10일(이하 양력) 오전10시 초지진에 대한 상륙돌격이 개시되었고 상륙군은 650여명으로 (500명이상의 해군보병 및 100명 이상의 해병대) 구성. 미군 주력은 0.50구경 레밍턴 카빈으로 무장했고 해병대는 전장식(前裝式)들인 스프링필드와 네이비 플리머스 보총을 사용(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해병대 천시..?)하였으며 조선군은 화승총을 사용. 별다른 저항없이 초지진에 상륙한 미군은 '해병대 보루'(Marine Redoubt)라고 명명한 후 주변에서 숙영. 다음날인 6월11일 아침, 상륙부대는 전날부터 실시한 초지진에 대한 사용거부(진지파괴 및 장약소각)와 화포 폐기를 끝내고 나서 해병대를 척후로 내세우고 이동을 개시.

 

The Korean forces banded together as guerilla units but, armed with only matchlocks, and being kept in check by US artillery (12-pdr. howitzers on field carriages), they could not get within effective firing range. The US troops moved on toward the next objective, Dǒkjin Fortress (Fort Monocacy). 

조선군은 소부대(불명)별로 연계된 유격전을 시도하였으나 미군의 12파운드 야전 견인곡사포 포대(7문 양륙 -원정 미 아시아함대 사령관 John rodgers’s report)에 포착되어 조선군의 유격대가 휴대한 화승총의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지 못함. 미 상륙군은 다음 목표인 덕진진(포트 모노케시라고 명명)까지 북쪽을 향해 전진.


(12파운드 곡사포 7문 육지 배치) 


The Korean forces had, likewise, abandoned the second fortress, choosing to mass together farther north. The Marines quickly dismantled this fortress, too.  Like the past fortress, they dumped and spiked cannon, burned stores, etc.  Next, they went onward toward their main objective, a small fortress attached to Kwangsungbo (광성보), called Sondolmok Dondae (손돌목돈대). The Americans originally referred to it as the citadel, but later renamed it Fort McKee, in honor of the Navy lieutenant killed in the fighting there. The Korean forces had regrouped there, en masse.  Along the way, some Korean units tried to flank the US forces; they were checked, again, by strategic placement of artillery on two hills nearby the Citadel.

조선군은 이 두번째 진지를 포기하고 더 북쪽에서 밀집방어를 선택한 것으로 여겨짐. 미군은 초지진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지 사용거부 및 화포 폐기와 비축품 소각 등을 실시한 후, 주요목표인 광성보의 부속돈대(손돌목돈대)를 향해 이동. 미군은 초기에 광성보를 ‘요새’로 호칭했으나 뒤에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미 해군 대위의 이름을 따서 포트 ‘맥키’라고 명명. 조선군은 광성보에 집결하여 부대를 재편하였고 일부 부대 [광성보 편제의 어영군(御營軍, 어영청소속 보군1초(步軍1哨: 보병 1개중대))과 별무사(別武士: 기병)들을 지칭 -고종실록] 는 미군의 접근로를 따라 매복하여 접근하는 미 상륙군의 측면공격을 시도하였으나 광성보 인근 야산 언덕 두 군데에 배치한 미군 야전포병대에 또다시 포착되어 공격이 무위로 돌아감.

 

Artillery, both from the ground forces and also from the USS Monocacy, offshore, pounded the citadel and the hill directly west of it, in preparation for an assault by US forces. The US forces, made up of nine companies of sailors and one company of Marines, grouped on the facing hill, keeping cover and firing at any defender who showed himself.

미군의 돌격을 지원하기 위해서, 상륙군에 지원된 야포들(12파운드 야전곡사포 7문)과 해안쪽 모노케시함의 함포들의 이중십자포격이 광성보와 고지 서측면에 공격준비사격으로 실시됨. [*원정함대 5척의 전함 중 Monocacy함(60파운드포 2문, 8인치포 4문) 외에도 Palos함( 24파운드 곡사포 4문, 24파운드 강선곡사포 2문)과 원정함대에 동반했던 화력미상의 소형증기선 19척중 4척이 참가]. 해군보병 9개중대 및 해병 1개 중대로 구성된 미군은 광성보 전면의 고지 위에 공격진형을 구성하고 엄폐한 상태에서 조선군 수비대 [어재연장군의 직할대, 당시 조선군 병력배치 형태는 병인양요때와 마찬가지로 전 병력을 집결하여 결전을 벌이기보다 문수,정족산성과 각 진,보 등에 분산 배치되어 거점방어 형태로 지연전을 펼치며 기회를 틈타 수시로 유격전을 벌이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것으로 추정되며 광성보 내 실제 방어병력은 미군 병력에 비해 1/2 ~ 1/3 수준이었던 것으로 판단됨] 를 향해 사격을 실시.

 

When a signal was given, firing stopped and the US forces charged toward the Citadel, with Lieutenant Hugh McKee in the lead. The Koreans fired as fast as they could, but the US forces gained ground before they could reload; the Koreans ended up throwing rocks at the attackers.  Lieutenant McKee was the first in the citadel, with a sword in one hand and a revolver in the other. He was shot in the groin and speared in the side by Koreans inside.  After him came Commander Schley, who shot and killed the Korean who speared Lieutenant McKee.  An interesting anecdote about Lieutenant McKee was a story that might shed a little light on why he raced ahead of everyone in the charge on the citadel. 

돌격명령이 떨어지자 포격이 중지되었고 미군은 휴 맥키 대위를 선두로 요새를 향해 돌격을 개시. 조선군은 재빨리 사격을 실시하였으나 화승총의 재장전이 이루어지기 전 미군의 선두가 요새에 도달.(화승총의 특성상의 단점으로 재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림). 조선군은 결국 요새위에서 바위 등을 던지며 저지. 맥키 대위는 한손에 검을 다른 한손엔 연발권총을 든 채로 가장 먼저 요새에 도달하였으나 내부의 조선군에 의해 하체에 총상을 입고 옆구리를 창에 찔림. [*백제군 소수 결사대에게 고전하던 신라군 화랑 관창의 역할처럼 전투촉발의 매개체가 된듯함] 상륙군 지휘관 쉴리가 그 뒤를 따라서 맥키 대위를 창으로 찌른 조선군을 사살함. 맥키 대위가 왜 요새를 향한 공격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앞서서 질주해 들어갔는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가 되는 일화가 있다.

 

For a long time, I wondered why he did something that was seemingly suicidal.  Then, one day I received e-mail from a distant descendant of his, William C. McKee.  He transcribed a newspaper clipping from that time.  In it, was the story of how word got back to his ship, the USS Colorado, the day before it left for Korea that his fiancee, a socialite, ran away with a career diplomat.  Lieutenant McKee overheard crewmembers talking about it and, when someone noticed him standing there, he had a clenched fist, like he wanted to strike someone.  He spent the entire night pacing the deck, according to the story.  It might explain his feelings on June 11, where he was probably still very emotionally distressed over losing his fiancee.

오랫동안 나는(토마스 듀버네이 교수) 왜 그가 xx에 가깝게 보이는 행동을 했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윌리엄 맥키라는 그의 먼 친척으로부터 그 당시의 신문기사를 옮겨적은 이메일을 받았다. 그 내용에 따르면, 한국을 향해 출항하기 바로 전날 밤 자신의 소속함인 기함 콜로라도 함상에서 맥키 대위는 승무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지나다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교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그의 약혼녀가 어느 중견 외교관과 눈이 맞아 달아나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가 거기에 서있던 그를 보게 되었을 때, 그의 주먹은 꽉 쥐어진 채 마치 누구라도 때릴듯한 모습이었다고 하며 그 밤 내내 그는 갑판을 반복해서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6월11일의 그의 감정이 약혼녀를 잃게 되어 매우 정서적으로 격앙된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Also, in an event related to Lieutenant McKee, I got to know his great-great nephew, James Wardrop quite well. I arranged for him to visit Kanghwa Island for the chesa (제사) for General 어재연 back in 2000.  Jamie was a focal point of the ceremony that year and became quite close to 어윤원, the elderly grandson of the general. A rift between two families had been healed.

또 한가지 맥키 대위와 관련한 일로서, 나는 제임스 워드롭이란 그의 증조카를 알게 되었는데 지난 2000년도에 강화도에서 올린 어제연장군의 제사에 그를 초청하도록 주선하였다. 제임스는 그해 제사에서 부각되는 인물이 되었고 어재연장군의 장손인 어윤원씨와 친해지게 되었다. 두 가문간의 역사상에 이루어진 균열이 메워지는 순간이었다.

 

I was very glad to have been part of a chapter in Korean history that was finally closed.  The fighting went on for only fifteen minutes or so and all the defenders were killed, wounded and captured or escaped. When the fighting was over, about 350 Koreans and three Americans, Lieutenant McKee, landsman Seth Allen and Marine Denis Hanrahan, were dead.  Lieutenant McKee’s body was shipped back to his hometown of Lexington, Kentucky, in the United States, for burial.  The other two KIA, plus one sailor, Thomas Driver, who died from a fever, were buried on Chakyak Island.

나는 마침내 종결된 한국역사의 한 페이지 중에 일부로나마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 그 15분간의 전투에서 모든 방어자들은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탈출했다.

[*고종실록엔 전사 53명 부상 24명 포로(부상) 14명이며, 광성보 함락직후 주 거점을 염하(鹽河, salt river, 강화해협) 건너편 덕포진(德浦鎭)에 이전설치.

애너폴리스 미 해사박물관에 있는 당시 상륙군지휘관의 일기에, 백병전 시 조선군은 숫적 열세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최후까지 싸웠고 창검이 부러지면 돌, 흙을 들고 싸웠으며 중상을 당했어도 항복을 하지 않고 죽여달라고 손짓으로 표현하는 모습 등 조선군의 용맹함에 놀란 마음을 기록했고 또 미군이 총검을 사용했으나 조선군이 착용한 13겹의 목면갑에 총검이 효과가 적어 개머리판으로 백병전을 벌였다고 하는데 디지타이즈된 원본이 없는듯하여 미확인. 그러나 용맹함에 대한 부분은 다른 지휘관들의 자료에서도 간간이 언급됨. 그리고 미군이 광성보를 함락한 당일 오후 초지진으로 후퇴하여 숙영하는 그 밤에도 조선군{첨사(僉使:종3품, 중앙파견부대가 아닌 해당지방 진영지휘관) 이렴(李濂)}의 야간기습이 있었고 그 다음날 아침 미군은 함선으로 철수한 뒤 작약도 근방으로 물러남]

전투가 끝났을때 350여명의 한국인(실록기록과 상이)과 3명의 미국인 맥키 대위, 수병 세스 앨런, 해병 데니스 핸러한이 죽었다. 맥키 대위의 시신은 배로 옮겨져 장례를 위해 고향인 미국 켄터키주의 렉싱턴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두 전사자와 열병으로 사망한 토마스 드라이버의 시신은 작약도에 매장되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military&no=77862


추가4.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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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랑 15-02-28 13:24
   
어그로들 생각하는거보면 지적수준이 벌레랑 비슷하다고 느낄때가 많았고,
벌레보다 가치 없다고 느꼈었는데..
제 생각을 고쳐야되겠네요.
어그로들 때문에 이런 양질의 읽을거리를 나오다니요..
     
Centurion 15-02-28 18:24
   
간혹 어그로에 낚여서 못이기는척.. 귀차니즘 극복하고 생각 정리해가며 글쓰는것도 좋더군요.
뭐, 별로 대단찮은 글인데, 재미로 써봤습니다.
          
그노스 15-02-28 20:51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국산아몬드 15-02-28 15:23
   
본문에 한국의 화승총이란 사진이 천보총이라네요. 무겁고 불편해서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마트MS 15-02-28 17:59
   
본문 2장의 사진속 조총중 .2정 모두. 천보총으로 확인은 나지 않았을거라 생각되네요.

국내에선 아직 현존 하는 조총 유물중.

사료에 기록된 천보총과 총열길이를 늘린 장조총간의. 구조적-성능적 차이에 대해서  아쉽게도
구분하지 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존 조총과 구조적 차이점도 없이.

숙종대. 박영준이 제작한. 1km이상 사거리의 천보총-영조대.박영준의 아들 박지번이 만든 900보의 천보총.
비슷한 시기. 수어청 소속 윤필의 천보총.모두 기본적으로 사거리 천보에. 가볍고 휴대하기가 편한 장점을 지닌 조총에 해당되는 조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적인 조총은 아직 보지 못하였기에. 개인적으론 천보총은..
미발견 혹은 완전히 실전된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
게다가 이미 천보총이 등장하기전. 조선에서는. 조총보다 사거리와 위력이 향상된 대조총을 사용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대조총은 지나치게 무거워서 휴대의 어려움이 있어 야전보다는.거점 방어용으로 성의 거치대에서 운용하였다 한는데.
이러한 기존 대조총이나. 총열 길이를 증가시킨 장조총을 제외한. 독보적인 성능의 천보총의 존재는. 현재로서는 사료속 에서만 접할수 있을듯 하네요.
푹찍 15-02-28 16:08
   
조선은 심지어 활도 괜찮았지요 ㅋ
활의 최종 끝판왕.
어떻게든 개항 개방해서 지지고 볶고 했어야 했는데
조선수준에서는 그닥 헬게이트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ㅋ
아.. 양반닙네들이나 세도가들한테는 헬게이트였나 ㅋㅋ
갈라파고스가 그래서 좋치 않쵸.
     
Centurion 15-02-28 18:23
   
뭐,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주변 환경이 대충 대충 한번씩 큰일 펑 터져도,
외교로 대충 떼우고 고개 좀 조아리고 얼추 또 1~2백년 평화가 이어지니..
국방비에 돈쓰는게 많이 아까웠나 봅니다..

북벌타령한 효종이 나선정벌에서 상당히 빠른 시점에
플린트락 머스킷을 입수했는데, 대량생산할 생각은 안했죠.
홍이포도 인조 때 이미 들어와서, 영조때 자체개발도 되었지만..
대량생산해서 실전배치할 생각은 안했구요.

뭐, 결국 돈 때문이고, 화약 많이 먹는다는 이유인데...
크게 필요성도 못느꼈고, 그래서 개량할 의지를 못느낀게 가장 큰 문제였죠.

반면, 유럽이나 미국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기존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더 효과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싸움에 이기기 위해
필사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계속하다보니 발전이 이뤄질 수 밖에 없었구요.

심지어 요즘도 위정자들과 똥별들 사이에서 외교로 떼워보자는 마인드가 보이긴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국방예산은 또 떼먹기 바쁘고...

비싼 무기 사놓고도, 이스라엘 군처럼 최대한 이것저것 붙여서 생존력을 개선하는거 없이,
도입부터 퇴역까지 원판 그대로 굴리는 무기들도 허다하죠..

그런 나태함과 안일함이 사실상 임진왜란 이후로 병기의 개량이 거의 없었던 원인이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나 나라 국익보다 지들 배만 부르면 된다는 극한 이기주의, 세도정치 이후론 더하구요..

요즘도 대한민국 지도층에는 이런 마인드가 팽배하죠. 재벌이든, 정치인이건...
깡통의전설 15-02-28 18:36
   
신미양요때 미국이 물러나긴 했지만 조선이 입은 데미지가 훨씬 컸긴 했죠. 뭐 조선군 주력병기는 활이었고 걔네들보다 사거리가 안되니 매복작전으로 이겼죠 아마...
     
Centurion 15-02-28 18:50
   
이 시절엔 이미 활이 아니라 조총이 주력무기였습니다.
거의 조선의 화승총 수량이 10만 자루가 넘었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개인 보조 무장으로 환도가 지급되긴 했는데,
조선군은 일본과 다르게 칼을 거추장스럽게 여겨서 칼을 짧게 하는 편이었습니다.

신미양요 전투 후 미군이 노획한 조선군 총기, 대포 등 화기만 대략 481 점, 군기는 50개에 달합니다..
조선군 병력이 대략 500명이었으니.. 뭐... 거의 전멸 수준.. 생존자 몇명이 포로로 배에 탄 사진이 찍히기도 했죠.
          
디노 15-02-28 22:02
   
조총이 서울 경기권에서만 10만정이었어요...
전국 다 합하면 20만정이 넘었을 겁니다.
신미양요당시 미 해병이 천 이백명 정도 조선군병력은 350명 정도였습니다.
350명 중 250명이 싸움 도중에 사망하고 100명은 물에 뛰어 들어 죽었죠...20여명이 포로로 붙잡혔어요.
               
Centurion 15-03-01 03:45
   
그러게요~ 제가 합산해봐도 360명인가 밖에 안되더군요.
본래 세개 초 병력이 투입되었다는데.. 1초 당 병력이 대략 125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일단 병력도 훨씬 모자르고,
오히려 미 상륙군이 640~650명이라는데, 얘네들은 분당 10발 이상 쏘는 연발소총이 주무장이고,
조선군은 분당 1~2발이라.. 병력도 거의 반 밖에 안되는데.. 조선군이 360~720발(사거리 50~100미터) 쏠 사이.
미군은 6400발 이상(사거리 400미터짜리 최신식 연발소총)을 퍼붓는데다..
암스트롱포로 보이는 육상포와 전투 시작 전 약 70문에 달하는 대구경 함포의 지원사격까지 받았기에...
압도적으로 발릴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달까요.
200미터를 전진하는데 일단 3명인가 총에 맞았고, 광성보 돌입시 1명(맥키 대위가 창에 찔렸는데..
3명 전사, 10명 부상.. 백병전 때 부상자가 좀 있었나 봅니다.

특히 광성보의 360명 병력한테 8~10인치 함포를 수십문이 갈겨댔으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육군으로 치면 포병여단급 이상인데, 구경조차 무식하게 크니...
그렇다고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딱 유리한게 지형 정도인데.. 그 지형도 약간 높은 고지라..
조총 쏜다고 아래를 내려다 보려 상체를 세우면 저격을 당하는 상태..

이런 신식무기를 가진 상대에 대항할 무기나 전술이 아무것도 바쳐주지도 않고,
연구, 도입된 적이 없으니.. 지는 것도 그럴만 하지요.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지 않은 나머지 병력은 손돌목 포대 병력이거나, 다른 곳 병력인가 싶기도 합니다.
     
디노 15-02-28 22:04
   
매복으로 이겼다는 걸 보니 신미양요가 아니고 병인양요를 말씀하는 것 같군요...
정족산성과 문수산성에서 매복을 해 프랑스군에게 타격을 줬었죠...
신미양요 땐 매복을 해 이긴 싸움 없어요...
미군이 무단으로 강화해협을 올라왔기에 조선군이 먼저 포로 공격을 했었죠...
그리고 당시 조선군 주력 무기는 활이 아니라 조총이었습니다.
zzag 15-03-01 04:54
   
* 비밀글 입니다.
     
Centurion 15-03-01 12:40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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