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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4 15:39
[기타] 이순신 백의종군의 진실!! (필독)
 글쓴이 : shrekandy
조회 : 12,788  

이순신은 정말 고문을 당했나?- 유명규((사)21세기 이순신연구회 회장)




  • http://www.changwon.com/news/articleView.php?idxno=1035077&gubun=

  • 두어 달 전, 어느 영화사에서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보도(경남신문 3월 8일)를 본 적 있다. 그 기사에서 영화사는 영화제작의 변으로 ‘이순신에 대한 왜곡된 모습을 바로잡고… 흥행보다는 역사적 고증을 통한 사실에 근거를 둔 영화로 최대한 정사(正史)에 가깝도록 충무공의 참모습을 그릴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순신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다. 이순신에 대해 가장 왜곡된 것 중 하나가 이순신이 엄청난 고문을 받았다고 믿는 대목이다.
    <iframe width="200" height="200"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vspace="0" hspace="0" allowtransparency="true" scrolling="no" allowfullscreen="true" id="aswift_3" name="aswift_3" style="left: 0px; position: absolute; top: 0px"></iframe>

    정유재란 직전, 한산도의 통제영에서 통제사직을 박탈당한 뒤 의금부도사에게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돼 의금부에 갇혀있었던 한 달여 동안(정확히 28일간) 이순신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참혹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그런 잔혹한 고문을 정말 당했을까? 역사적 기록을 뒤져보면 천만의 말씀이다.

  • 정사(正史)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중 그 시기의 기록들을 아무리 뒤져도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고문당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단지 유성룡이 지은 징비록에, 이순신이 어느 날 하루 단 한 번의 고문을 받았다는 내용이 큰 의미 없이 실려 있고, 정탁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 ‘신구차(伸救箚)’에 이순신이 고문을 한 번 받았다는 사실이 실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고문의 강도는 별로 잔혹하지도 극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열흘 남짓 후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석방되어 나온 날의 일기를 보면, 그날 석방을 축하하러 찾아온 많은 인사들과 밤새 술을 마셨다고 쓰고 있고, 바로 다음 날 밤에는 혼자 몰래 도성 안으로 들어가(당시 죄인의 신분으로는 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유성룡을 만나 밤새 밀담을 나누고 나와 그날 아침부터 바로 말을 타고 백의종군 길에 나섰다고 적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의 전쟁을 치르며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 있었던 데다 워낙 잔병치레까지 심했던 50대 중반의 이순신이, 우리가 알 듯 의금부에서 잔혹하기 그지없는 그런 혹심한 고문을 받았다면 이런 행동들이 과연 가능했을까? 

    그래서 나는 절대로 이순신은 혹심한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문을 받았다면 아마도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곤장을 좀 맞지 않았을까 정도)이었을 듯싶다.

    이순신이 그렇게 모진 고문을 받은 것으로 묘사한 최초는 1932년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이순신’에서였다. 그 책에서 이광수는 이순신이 의금부에 잡혀와 무려 8일 동안이나 인간으로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수반한 잔혹하기 그지없는 고문을 받은 것으로 묘사했다. 그 이후, 모든 위인전에서부터 아이들이 보는 동화, 만화는 물론 TV드라마, 영화 등에서 이순신에 대한 잔혹한 고문장면은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된 것이다. 

  • 이광수가 ‘소설 이순신’을 쓸 때 그는 이미 친일파로 전향한 후였다. 

  • 그는 이순신을 묘사하면서 일본인들에 비해 열등한 우리 민족을, 썩어빠져 제 나라마저 지키지 못한 조선왕조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 그런데도 그 이후의 우리 작가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내용을 확대 재생산했고 그 결과가 지금 이순신의 어이없는 모습이다.

    나라에 충성해본들 돌아온 것이 잔혹한 고문의 고통뿐이었다면 우리 후손들 중 그 누가 그의 뒤를 따라, 그처럼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겠는가? 이순신을 다루는 작가들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유명규((사)21세기 이순신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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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공주대 교수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316


인터넷에서 백의종군의 의미를 검색해보니 ‘흰 옷을 입고 군대에 복무함, 즉 벼슬이 없는 말단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 참전함’으로 나온다. 그것을 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나아감’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순신의 백의종군도 그렇게 이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순신의 백의종군에 대해서 오해할 여지가 있긴 있다. 

첫째는 백의(白衣)에 내재된 의미가 혼란을 부추겨왔다고 본다. 예로부터 벼슬을 한 자는 사모관대를 하고 문관은 학이 그려진 관복을 입고, 무관은 호랑이가 그려진 관복을 입는 반면, 평민들은 백의를 입는다는 생각에서 이순신이 장군에서 졸병으로 강등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둘째,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압송되어 한양의 의금부에 투옥된 날은 1597년 3월 4일이었고, 그로부터 8일 후인 12일부터 그에 대한 혹독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차례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정탁을 비롯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의문부의 옥문을 나온 게 1597년 4월 1일이다.

이때부터 ‘백의종군을 하라’는 임금의 명령에 따라 도원수 권율의 휘하로 들어가는 고난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장정 도중, 이순신이 잠시 동안 머물렀던 곳이 대부분 종의 집이나 허름한 곳이었다. 

그는 난중일기에다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윤간의 종, 경기도 체찰사의 아병인 이름도 모르는 자의 집, 여산 관가에 속하는 종의 집, 이희경이 부리는 종의 집, 쓸쓸한 시골집, 김덕령의 아우 김덕린이 빌어 사는 집, 농사짓는 박호원의 종 집, 주인 없는 공관, 이희만의 집 등이다.

명색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했던 분이 백성들의 안방보다도 못한 누추한 곳에서 하루나 이틀 밤을 지내고 길 떠나는 초라한 모습에서 ‘이순신의 위상이 졸병으로 강등된 게 맞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장군에서 졸병으로 강등되었다고 보기 힘든 사항들이 여럿 발견된다.

하나, 조정의 여러 고관대작들이 백의종군 길에 오른 이순신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거나 사람을 보내 문안인사를 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지나는 길목에 있던 행정 관아의 최고책임자들 역시 그의 임시 거처를 방문해서 위로와 함께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그가 여전히 장수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둘, 1597년 6월 9일자 ≪난중일기≫에다 그는 “... 처음으로 노마료奴馬料를 받았다. ...”고 기록했다. 노마료는 ‘복무의 대가로 노비와 말을 먹일 비용’을 말하는데 그것을 받았다는 것은 곧 그가 몸종을 부리고 말을 탈 수 있는 신분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 

셋, 이순신은 평생 동안 두 번의 백의종군을 당했다. 남들은 한번 하기도 힘든 백의종군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던 것이다. 특히 제1차 백의종군은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시절 때의 일이다. 그가 재임 중일 때 갑청아와 사송아가 이끄는 여진족의 급습을 받고 다수의 병력과 녹둔도 주민들이 희생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직속상관인 함경도 북병사 이일이 그의 병력증원요청을 거부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는 그에게 패전의 책임을 물어 백의종군하도록 했다. 그때가 1587년 8월이었다. 물론 이일의 무고와 거짓보고도 이순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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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말대로라면 친일파놈들 정말 용서 못할 애들이군요 (이미 용서못할 아들이지만...)

1. 이순신이 무진장 고문 받은것 처럼 포장 
-> 2. 조선 정부는 무능하다 이거요!
-> 3. 국민들: 역시 조선은 무능해! 조선은 한심한 과거!일본 제국 만세!
-> 4. 일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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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투 15-02-14 17:58
   
백의종군은 졸병이 되어 참전하는 게 맞지요.

다른 졸병들이 어려워 했다고  앙반사회에 인맥이 있어서 먹거리를 대접받았다고 장군 인건 아니지요.

그리고 선조는 무능한 것이 맞습니다.
자신이 서울을 버리고  또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명분을 찾기 위해 행한 갖가지 주장과 행동들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요. 

선조의 그 명분에 가장 큰  희생양들은 의병장들 이었을 껍니다.
영웅문 15-02-14 18:13
   
//하나, 조정의 여러 고관대작들이 백의종군 길에 오른 이순신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거나 사람을 보내 문안인사를 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는 사실이다.//
예전 박근혜대통령이 의원도 아닌 시절에 엄청난 사람들이 박근혜를 찾았죠.
여러번의 승전을 한 전쟁영웅이 고초를 겪고 나왔으니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지...
정치를 조금만 알아도 쉽게 알수 있는 것을 고관대작이 직접 찾아왔다라는 이유로 아니라고 말할수 있는 용기에 감탄을 금할수 없네요.

선조의 입장에서 전쟁영웅은 의주까지 피난갔다 온 자신의 입장에서 분명 정적이었죠.
자신이 고초를 준 전쟁영웅에 대해서 어떻게 사초에 기록하게 했을진 뻔하지 않을런지....

다만 이광수의 소설을 마치 사실인냥 따라 쓴 사람들의 게으름은 분명 집고 넘어가야 옳을 듯 하네요.
shrekandy 15-02-14 18:16
   
까먹고 추가 안한 자료 더합니다. 그대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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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log.naver.com/fajade/80017593253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건 역사학계의 설 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백의종군에 대한 이야기가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인 경우가 많고(저 아래 누군가처럼) 저는 이 설이 꽤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몇자 소개해보겠습니다. 먼저 이순신은 일생동안 백의종군을 두번 당했습니다. 첫번째는 녹둔도 사건 때문이죠. 이 전투가 조정에 잘못 알려지고 큰 처벌을 받을뻔한 이순신을 구한것은 드라마에서처럼 원균이 아니라 선조였습니다(이걸 보면 나중에 편집증 증세를 나타내기 전의 선조는 꽤나 통찰력 있는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조가 이순신이 전투에서 패배한것은 아니라 하여 백의종군으로 감형 시켜준것이지요. 여기서 알 수 있듯, 비변사 취조보다 낮은 수준의 처벌이 백의종군입니다.

중종실록에 보면 변경의 백성이 한명이라도 납치되면 그 주장을 백의종군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녹둔도 사건의 경우 피랍된 백성이 106명인데 `패전책임은 없으므로 처벌을 깎아서`백의종군을 시켜주었습니다. 뭔가 거꾸로 된것 같지 않으신가요? 송우혜씨의 말에 따르면 무장에게 있어 처벌은 처형-유배-파면-백의종군 이라는 것입니다. 백의종군은 말하자면 보직해임 내지는 근신의 처벌인것이죠. 심지어는 백의종군 상태에서 공무를 집행한 경우도 발견됩니다. 가령 고을 수령같은경우 백의종군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고을 일이 돌아가질 않으니 일단 흰 옷을 입었지만 임무를 수행한것이죠. 옷 색깔과 종류로 겉으로 나타내는 계급이 정해지는 조선시대에 부하들도 울긋불긋한데 혼자 흰옷 입고 있음 얼마나 쪽팔리겠습니까?

이런점을 감안한 명예형이란 말입니다. 다음은 송우혜씨가 같이 제시한 백의종군의 예 들입니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일 행궁의 시위가 너무 적어 체모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궐내의 시위 장사와 의금부 관원 등을 모두 백의종군시켜 처벌하였습니다.">

 (<선조실록> 선조 25년 5월 22일조). <양사가 아뢰기를, "사변이 일어난 뒤로 군율이 해이해졌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장수를 일일이 벌 주기가 어려워 매양 백의종군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미 극도로 구차해졌습니다.">(

<선조실록> 선조 25년 8월 18일조). "군율을 위반한 변장과 수령들을… 백의종군시키는 것도 형벌을 감해주는 것인데"

(<선조실록> 선조 30년 8월 15일조) :사은사(謝恩使)(로서 중국에 가기)를 회피한 정명해를 전례에 따라 백의종군토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4년 12월 1일조). "임금이 기우제 지내려고 북교(北郊)에 거둥할 때 길을 잘못 인도한 훈련대장 장붕익을 백의종군토록…"

(<영조실록> 영조 1년 7월 23일조). 보시면 아시겠지만, 힘든 업무를 뺑끼치거나 길 안내 실수한 무관들에게 내려진 처벌이 백의종군입니다. 기록을 더 살펴 들어가면 이러한 백의종군형에 처해진 인물들은 곧 복직되는 경우가 많았고(이순신의 경우만 보아도) 차후의 관직생활에 페널티가 되는경우가 없었습니다. 이 경우도 이순신이 근거가 되는데, 선조는 갖은 꼬투리를 잡아 이순신을 못살게 굴었지만 `백의종군 했던놈`과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게 경력에 흠이 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일것입니다. 그리고 난중일기만 보아도, 백의종군 시절의 이순신은 군관을 몇명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들르는 고을에선 수령들의 인사를 받았고 권율이 찾아와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못 찾았는데 녹봉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정유재란 직전에 체포된 이순신에 대한 처벌은 비변사에서 이미 끝났고(하긴 모든 수군장수들이 죄인신분이긴 했구나...), 백의종군은 `너 완전히 용서한건 아니다`란 표시이며 복직(꼭 통제사가 아니더라도)전의 근신상태라고 보면 이상할까요? 제가 옳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전 이상의 이유로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김탁환의 불멸에 보면 이순신은 평생 백의종군 경험이 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며, 백의종군중인 이순신에게 옛 부하들이 반말을 까는등, 터무니 없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하여간 어딜가나 소설이랑 현실이랑 착각하는 인간들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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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위해 15-02-14 20:42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지금까지 백의종군에 대해 잘못알고 있을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글 잘읽었습니다.
     
중용이형 15-02-14 22:52
   
백의종군에 대해 잘 몰랐는데 좋은 글 잘 읽었어요.
     
shrekandy 15-02-15 13:36
   
두분 모두 잘 읽어주셨다하니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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