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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06 11:40
[기타] 입 쩍벌어지는 18세기 평양 모습
 글쓴이 : shrekandy
조회 : 11,730  

http://www.museum-joanneum.at/fileadmin/user_upload/Muenzkabinett/Content-Bilder/osa12.jpg

일뽕/조선까들은 항상 말하죠

"위에 오사카같은 그림 봐라 얼마나 훌륭하냐. 조선 도시들은 이렇게 상업이 활달하거나 화려했음?" 

그래서 찾았습니다. 18세기, 정확히 말하면 1700년대 중반, 평양의 모습을.

평안도관찰사부임축하도 라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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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조선은 서울말 발달했단 뻘소리도, 조선은 상업이 발전하지 않았단 뻘소리도 모두 사라지길...보시다 싶이 큰 길 옆에 있는 건물들 죄다 상가들입니다. 

더 조사해 보니 조선시대에 이미 체인점까지 내놓는 상인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것에 관한 자료또한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호호호호님덕분에 조선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많이 배우네요. 점점 조선이 좋아지게 하니 참으로 의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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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르 15-02-06 14:15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햄돌 15-02-06 14:21
   
그 대단하다는 왜국 그림보면

신발을 안 신은 사람이 많은데 왜 저러죠?

비오는날 신는 나막신을 왜구들은 허구한날 신고다니는데 왜 그렇죠?

신발이 없나요?
     
shrekandy 15-02-06 14:25
   
어...그러고보니 제가 위에 올린 오사카 그림에도 일본인들일 신발을 안 신고 있네요...

뭐 조선 통신사 기록보면 가난해서 훈도시만 입었단 기록도 있고 그런거 보니 가난이 이유였을수도 있지만요...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진짜 생각해보니?
          
햄돌 15-02-06 14:36
   
이제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 .

왜구들은 왜 나막신을 사시사철 신고 다니는 걸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비오는날 신는 신발인데
               
shrekandy 15-02-06 14:39
   
정말...아무리 나라가 습도가 한국보다 높다고 해도 그렇지 저렇게 대도시 한복판에서도 신발을 안 신네요 진짜 뭘까요? ㅎㅎ
굿잡스 15-02-06 14:48
   
서북한 지역만해도(평양일대등)

모르는 무식한 잽극우나 왜빠들이 오사카드립이지 솔직히 평양을 오사카와 역사적으로도 비교하기도

뭐합니다.

오사카라는게 일제 시대 이전까지  행정명이 구다라스(百濟洲) 즉 백제주로 불릴 정도로 우리 백제인들이

오사카를 지배 경영하기 위한 대표적 지역입니다. 이곳에는 사야마이케(狹山池)라는 오사
 
카부 사야마시에 위치한 관개용 저수지가 있는데 전체 둘레 약 3㎞, 전체면적 약 36
 
㏊ 축조연대는 일반적으로 616년으로 백제인들이 이일대를 경영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로
 
에도시대까지도 사용되었을 정도로 매우 오랫동안 오사카의 중요 젖줄이죠. 이런 바탕으로

수도인 쿄토가 소규모의 도시지만 오사카가 나름의 대도시로 발전한 기틀이 되었고 에도시대(도쿄)

이후에도 상업도시로 그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에도시대 왜국의 대표적 쿄토부터

오사카,에도(도쿄)도 일부 그림의 미화된 묘사로 어쩌고지 실제 일반 대다수 백성들은 허술

한 밀집 닭장주거형의 판자집에서 생활)
 

그러나 이에 반해 이미 평양일대는 팽이형토기전기시대(비파형동검시대) 즉 기원전 4세기 이전에

대규모의 밀집취락에(대형고인돌등 묘제가 자그만치 1만 4천여개가 발굴) 막쌓기 공법의 여

러 토성들 즉 완연한 방어형 성곽들이 발견되는 지역입니다.(도시문명의 역사에서 비교불가임)

그기에 고구려시대 3경중 후기 중심 대도시인 평양의 장안성은 둘레 23킬로에 배후에

대성산성(둘레 7,218미터, 겹성을 포함한 총 길이는 9,284m)을 둔 당대 동아시아의 최대 도시

중 하나로 유럽의 최대도시라는 로마를 상회하면서 발달했습니다. 이후 고구려 멸망기에 그 면모를 잃어

버리다 다시 중세 고려가 4경체재로 수도인 개경(개성)과 더불어 동격으로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중시한 서경(평양)을 키우게 되면서 다시금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죠.

이후 조선시대에 가서 정치적 이유로 개성을 벗어나 고려시대 남경(서울)으로 도읍을 정하면서

수도인 한양이 정치의 중심지가 되지만 이런 개성과 평양의 대도시는 여전히 상업과 유흥, 예술의

도시로 그 자리를 메우게 됩니다.(개성의 토착 세력이 정치적 투사력이 약화되자 고급인력들이

대거 상업에 매진. 개성의 세수 상당수가 상인들에 의해 나올 정도) 개성을 중심으로 하는 이런 송상이나

조선시대 패션의 아이콘인 기녀중에서 특히나 평양기녀가 유명하죠. 그기에 평양의 면모를

보면 바둑판의 정열된 대도시의 외형과 우아한 기와로 도배된 풍광을 느끼게 하는.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 새로운 말이 아닌.

한마디로 서북한의 평양일대는 3천년의 오랜 도시문명을 간직한 공간이며 번성한

역사이군요.(조선과 왜는 시골로 가면 그 문화나 수준이고 생활상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지는)
나와나 15-02-06 19:05
   
어렸을 때는 조선이 초가집에나 살고, 농촌으로 이루어진 사회 정도의 인식이었는데

점 점 자라면서 이러한 자료들을 접하다보니 인식이 완전히 바뀌더군요
뚜리뚜바 15-02-06 20:34
   
호호호호님 욕해서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더 활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지니지 15-02-07 10:54
   
이런 그림들 어디서 찾으셨나요?
아이들 교과서에 꼭 있어야할 그림들이네요.
조선시대... 정말 눈물나게 아름답네요.
진공 15-02-07 11:49
   
대단하다
쿨맨 15-02-07 14:02
   
맨 위의 오사카 전경 그린 그림 보니까, 그림에 등장한 쪽바리들 중에 신발 신은 쪽바리가 진짜 하나도 없네요?

대단하다. 신발 안신은 걸 어떻게 찾았을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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