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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01 11:47
[기타] 서양 계몽주의학자들이 극찬한 유교/ 유교 정부
 글쓴이 : shrekandy
조회 : 4,272  

http://blog.ohmynews.com/haianist/12739

자꾸 조선과 유교는 썩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길레...과연 그 시절에도 그런 취급을 받았을까요?

볼테르와 그 유명한 칸트의 스승의 스승 (...)인 크리스챤 볼프의 평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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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시기 프랑스에서 유교사상을 적극 수용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를 들 수 있다. 볼테르가 지닌 동양문화에 관한 지식은 그보다 조금 앞서 활약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나중에 볼테르의 유교사상에 관한 지식은 오히려 교회권력과 예수회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반교권주의자라고 자처하였으며, 18세기 프랑스에서 교회권력의 붕괴는 전적으로 볼테르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교회권력에 대한 대항뿐 아니라, 절대왕권에 대항하여 위로부터의 개혁을 꿈꾸던 볼테르에게 유교적 성왕정치는 이상적인 정치의 전형으로 비쳐졌다. 특히 꽁트·부베·노엘 등의 선교사에 의해 소개된 유교의 정치·도덕 철학은 혼란에 처한 당시의 프랑스 현실 속에서 일종의 이상으로 비쳐졌다.


볼테르가 태어난 직후인 1696년 꽁뜨(Louis le Comte: 1655-1728)는 파리에서 ꡔ중화신인상기中華新印象記ꡕ를 출판하였는데 서간집인 이 책의 제2권 제2신에서는 유교의 ‘인정’(仁政)에 대하여 상술하고 있으며, 부베(Joachim Bouvet: 1656-1730) 신부는 1697년 파리에서 ꡔ중국황제소사中國皇帝小史ꡕ를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청의 강희제를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으로 묘사하고 유교적 성왕 정치의 구체적 실현의 예를 담고 있다. 또한 예수회 신부 노엘(Francois Noel: 1657-1729)은 1711년에 ꡔ육경ꡕ(Sinensis Imperii Libri Classici Sex)을 펴냈는데, 이러한 책들은 볼테르를 위시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애독되었다.


볼테르는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공자와 유교에 관한 책을 읽고, 유교야말로 기적이나 현담(玄談)에 근거를 두지않은, 이성에 기초를 둔 자연법적 도덕이라고 생각했다. 볼테르는 그가 쓴 글 중 80개의 작품과 200여통의 서간문에서 유교 문화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혼란스런 사회현실에 분노했던 볼테르의 눈에 유교문명은 덕성(德性)의 문명이었으며, 유교적 군주들은 이상적인 ‘개명군주’(開明君主)로 비쳐졌다. 신과 교회의 권위 그리고 절대왕권에서 벗어나서, 신적 질서 대신 자연적 질서를 탐구하고 계시에 의한 신앙대신 이성에 의거한 지식을 모색하던 볼테르에게 유교 사상과 민본정치의 이념은 그가 목마르게 찾고있던 진리 그 자체였다. 볼테르는 유교의 본질이 하늘을 공경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가르침으로 보고 공자를 천하에 둘도 없는 사표라고 보았다.9) 볼테르는 그의 연구실에 공자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경배하였다고 한다.10)    



볼테르의 유교에 관한 생각은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등의 백과전서파에 전수되었다. 원래 ‘백과전서’는 영리에 밝은 한 서점이 착수한 사업기획의 하나였으나, 견실한 시민계급 출신인 디드로가 이 사업을 위임받은 후 그는 사람들의 인식을 중세 때부터 계속되어온 종교적 세계관에서 이성적 세계관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편집방침을 정했다. 백과전서파는 종교적 권위가 아닌 이성이야말로 진리의 기초가 되며, 인류의 진보는 자연의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백과전서파는 진정한 정치는 이성에 기반을 둔 법에 의한 통치에서 가능한 것이며, 교육은 종교교리를 암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지혜를 배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유학이 지닌 합리적 세계관과 도덕적 군주관 그리고 덕성의 교육은 이들 백과전서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계몽시기에 ‘중농주의자’라고 불렸던 일군의 경제학자들도 유교의 정치·경제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업정책의 실패에 자극을 받은 이들 중농주의자들은 유교의 성왕과 같은 ‘개명군주’(開明君主)가 다스리는 농본주의적 유토피아를 이상사회로 삼았다. 중농주의자 케네(Quesnay: 1694-1774)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자연만이 인간을 이롭게하는 부의 생산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연적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하나로 연관짓는 통일적 질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유교의 천인합일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유교의 자연관과 사회관을 극찬하였으며, 그의 사후에 그의 입장은 제자인 미라보(Mirabeau)에 의해 다음과 같이 묘사되었다. “유교사상의 요지는 인간 본래의 성품을 회복하여 다시는 우매함과 정욕에 가리워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공자가 가르쳤던 것은 경천외인과 물욕의 극복이며,  정욕이 아닌 이성으로 행위의 표준을 삼는 일이다. 공자는 이성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도,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말도록 가르쳤다. ·····도덕을 세상에 펴는 일, 이것이야말로 나의 스승이 하려고 했던 일이었다. 나의 스승 케네는 자연이 준 비전(秘傳)을 밝혀냈으며, 이것이 바로 경제의 체계이다”11) 케네의 유교사상에 대한 숭배 때문에 당시의 중농주의자들은 그를 ‘유럽의 공자’라고 부르기도 했다.12)


계몽시기 독일에서의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에 못지않았다. 칸트(Immanuel Kant)의 스승인 슐츠(Schults)의 스승이었던 크리스챤 볼프(Christian Wolf: 1679-1754) 역시 유교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1721년 7월12일 할레(Halle) 대학에서 유교의 실천철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라이프니츠의 이신론(理神論)에 영향받은 그는 유교사상과 기독교가 서로 모순된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유교의 도덕철학은 그가 수립하고자 했던 자연도덕(신의 계시에 의한 도덕과 구별되는 의미에서)과 부합된다고 믿었다. 그는 유교의 도덕이 인간의 본성과 정감에 합치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유교를 상당히 합리적인 사상으로 생각했다. 그는 강연을 통하여 독일의 대학에서도 합리성에 기반을 둔 덕성의 배양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유교적 교육은 이상적 교육의 전범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할레대학의 신학교수들은 울프의 입장이 무신론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27조목의 반박 성명을 냈다. 사태가 시끄러워지자 프러시아 국왕 프레데릭 1세는 다음해 11월 그를 대학교수직을 해임하고, 48시간내에 국경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하고 불복시에는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다. 할레에서 쫒겨난 그는 오히려 마르부르그 대학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프레데릭 2세가 등극한 후에는 다시 소환되어 궁정 고문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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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유교가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18세기까지만 해도 매우 우수한 정치 철학으로 인정받았던걸로 보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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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 15-02-01 11:53
   
유학이라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니죠.
현시대에도 좋은 것이고...
다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조선시대의 유학은 그 도가 넘쳐서 유학의 기본이 아니라 파당싸움의 이론적 토대로 변해 버렸죠.
유럽도 기독교가 너무 지나쳐서 루터나 칼뱅같은 자가 신교를 만들었듯 말이죠.
어떤 것이든 지나치면 안됩니다.
요즘 이슬람이 욕먹고 있는 것도 지나친 자들이 설쳐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욕먹고 있는 것도 지나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현 우리나라는 종교라는 장사수단으로 바뀌었지만 약간이라도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종교라는 것의 도움을 받았으면 하지만.....
Windrider 15-02-01 12:42
   
과거의 것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니 그렇게 보일수밖에요. 화승총하고 ak소총을 비교하는꼴이죠.
호호호호 15-02-01 13:59
   
그래 그 훌륭한 유교국가 조선은 인류에 무슨 영향을 끼쳤죠
비유교권나라들이 증기기관 페니실린 은행 금융 의술 건축 과학을 발전시켜서 인류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때 조선유교는 실생활에 무슨 영향을 줬나요 머리칼 안자르고 3년상치르는거?상업을 천시한거?상복을 몇년입는걸로 당파싸움하다가 진쪽이 완전 귀양가고 사약받는 상황?주자학외엔 사문난적으로 몰아부치는거?500년간 유교사상에 그렇게 억압당하고도 깨닫는게 없나
     
굿잡스 15-02-01 14:08
   
ㅋㅋ 호호> 적어도 본인이 후빨러 짓하는 잽같은 똘아이 짓으로 주변국에

절대적 민폐는 안끼쳤잖음? ㅋ.

그리고 무슨 긍정적 영향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 부분만이 최상이고 고상한 수준이면

뭐하러 인간이 동물과 같지 않는 위치라고 자처하남? 그냥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이지.

정신문명은 문명이 아니고 중요한 핵심 영향력 아닌가?

오늘날 인간의 과학적 진보와 발란스도 다름 아닌 이런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

려는 근본 움직임에서 물질 문명도 발전하고 성장, 성숙하는 거지 뭔 손가락 세기 놀이 하

심? 잽이나 당신처럼 덜떨어진 수준에서 무기나 이런 넷같은 문명의 이기를 주니

제대로 콘트롤 못하고 허접 갑민폐질에 민폐 쉰소리나 작렬. 본인이 알아서 보여주고

있구만 ㅋ
          
호호호호 15-02-01 14:38
   
조선은 자국민들한테 민폐많이 끼쳤지 자국민 제대로 보호를 못해서 수도없이 포로로 끌려가게 만든 무능한 나라  차라리 침략해서 타국에 피해를 주는게낫지 약해빠져서 허구헌날 백성들 피난가기바바쁘게 만드는 나라는 더 민폐임 그리고 과학적진보도 아무나 할수있는줄 아는감 그만큼 사회시스템이 우수해야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진취적이어야 과학적진보를 이루는거임 인도가 아무리 정신문명운운해봤자 의식수준은 물질문명 발달한 서구보다 훨씬 떨어짐 마찬가지로 조선유교의 정신문명운운은 정신승리임 실제론 의식수준이 굉장히 낮은 우매한 의식이었음
               
나와나 15-02-01 14:39
   
측우기
혼천의
신기전
한글
칠정산
수원 화성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수많은 화약무기

등은 뭐죠?
                    
호호호호 15-02-01 14:42
   
한글 하나빼곤 그닥
                         
뚜리뚜바 15-02-01 14:54
   
옆나라는 저위의 유물말고 같은시기나온 발명품이 잇나;; 한글 하나가 얼마나 큰건지나 아시고 그러시나;; 이 사람 진짜 우리나라 사람 아닌거 같다;;
                         
나와나 15-02-01 14:57
   
               
나와나 15-02-01 14:42
   
굉장히 대단한 논리로군요
아무런 근거도 대지않으면서 어떻게 조선의 의식수준이 낮은 우매한 의식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ㅋㅋㅋ
토론 한 번이라도 해보셨어요?
               
꼬마러브 15-02-01 23:37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 세계최초의 로켓무기인 신기전, 세계최초의 철갑선(논란여부가있지만)인 거북선.. 그리고 훈민정음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정신문화.. 이 얼마나 휼륭한 것들인가요.. 반면 옆나라 일본은 이 때 무엇을 했죠? 훈도시입고 왜구질?ㅎㅎ
     
나와나 15-02-01 14:35
   
자, 여러분들은 지금 과학과 철학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무식한 어그로 한마리를 보고 계십니다
     
인생사 15-02-01 14:41
   
일본땜에 한국의 발전이 50년은 손해 봤는데 이런 나라가 주변에 있다는게 불행이지
호호호호 15-02-01 14:51
   
동학군이 주문외우면 총알도 피해간다고  믿고 10만명이 기관총앞에 댝돌하다가 거의 죽음
500명 일본군한테 학살당함 정신문명 참 대단했음
     
뚜리뚜바 15-02-01 14:56
   
10만명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단 500명의 일본군을 찬양하려고 비꼬시네;; 한글쓰지 마세요;; 그딴 글 적으라고 세종대왕님이 만들어주신 글은 아니니까요;;
     
인생사 15-02-01 14:57
   
지금 일본인의 세뇌된 전근대 의식 수준을 보고 계십니다.
     
나와나 15-02-01 15:04
   
동학군이 주문외우면 총알도 피해간다고 믿었다는 근거는 뭐죠?
최소한 남들이 모르는 얘기할 때는 근거자료를 제시하길..

그리고 당시 농민군은 무슨 호미랑 도리깨들고 주문 외우고 다니던 부대가 아니라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조선 정부군에서 회전포라 불리던 개틀링 기관총도 탈취하여 보유하던 군대였습니다

아주 근거없이 폄하하는 데 도가 텄군요?
호호호호 15-02-01 14:59
   
외적이 쳐들어오기 쉽다고 길도 닦지않은 조선
그래도 20일만에 일주일만에 수도가 털린 클래스가 무슨 정신문명
그냥 수준이하지
굿잡스 15-02-01 15:00
   
별생각 없는 사람들이 어떤 실체하는 고정되고 완전한 모습이 이미 존재하는 식으로

착각, 오류를 범하는데 초기 불교 즉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금강삼매경에 들어

대각한게 다름 아닌  사법인(四法印)이군요. 이게 뭔가 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ㆍ일체개고(一切皆苦)ㆍ제법

무아(諸法無我)ㆍ열반적정(涅槃寂靜)을 이름인데 이중에서 제행무상이란 결국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어떤 특정한 모양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바뀌기에 어떤 상을 둘 수 없고

그렇기에 어떤 상에 집착하는 자체가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설파한 것이죠(그리고 이런

상은 어떤 인연의 작용에 의해 그 시기에 나타나는 장구한 시간속에 일시적 모양일뿐이라서 연기법이

나온)

이런 예를 함 불러 볼까요?

유럽의 경우

자연재해와 정치의 모순에 따른 농민의 반란과 전염병등의 해결책마냥 그것도 여자라는 가장 약자적 이유

만으로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행사된 것이 15세기 말 아예 대놓고 "마녀칙령"를 선포한 로마교황 이노센

트 의한 마녀 재판과 처형이였고 이후 17세기 말까지고 지속적으로 거의 천여년이 자행되었던 게

역사입니다. 만약 이런 무식하고 해괴한 짓거리를 오늘날까지 카톨릭이 했다면 유럽에서 아직

존속되고 살아남아 있을까? 왜 고인이 되신 교황 바오르 2세는 십자군 원정과 학살에 대해서도 다시금

뒷늦게 공식적 사과를 했을까요? 결국 우리가 이런 종교나 철학도 당대에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고

행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사못 달라지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카톨릭도 그런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거듭 변화하고 그시대에 맞게 온고지신 때론 환골탈태를 통해 이어져 왔던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도 미국내의 대다수는 18,9세기까지도 낯설고 그리 좋은

뉘앙스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점차 발전하고 보편화된 인식이 깨어나면서 민주주의가 나름

좋은 단어로 그리고 세계로 펴져 나간 것이죠. 오늘날 이런 민주주의도 또다른 시대적 한계와 환경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변혁의 시대적 사상을 요구할때에는 또다른 구시대적 유물처럼 인식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완전할 수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현실에서 어느 정도 합리성에

나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정치 체계로 이끌고 통용되고 있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향후 유교에 대해 시간이 되면 구체적 이야기를 함 해보겠습니다만 이런 유교도 이전에 저도 가끔

이야기를 했지만 공자라는 사람이 갑자기 새로 창조한 아이템이 전혀 아니군요.

춘추전국시절 어지러운 서토상에서 공자세가등 여러 문헌 기록을 보면 그 스스로 동이족인 동북방에서

내려온 상나라의 예법과 제례에 어릴 적부터 익숙하고 즐걸 놀면서 배우다 보니 그걸 바탕으로 그시대에

맞게 다시 체계화, 집대성한게 유교였고 그게 후대에 가서 국가의 정치 이념으로 다시금 크게 부흥하게

된 것임.

결국 이런 유교도 그 시대적 상황에서 유용했고 그 시대적 한계도 맞았으면 오늘날의 카톡릭이나 여러

철학이나 이념, 종교처럼 현대에 맞는 온고지신을 통해서 현시대에 맞게 재조명 옷을 입히고

장점을 취한다면 결코 나쁠게 없다는 것이죠.이걸 일방적으로 무식하게 단세포로 부정만 쳐

하고 상대가 어떤 식의 제시를 해도 수긍을 하지 않고 헛소리만 한다면 어떤 저열한 의도로

어그로 끌기 위한 속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저급부류겠죠.
니르 15-02-01 15:01
   
거의 2000년을 이어온 유교에는 분명 진리에 가까운
철학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위대한 사상도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고
특히 조선에선 숲을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격으로
인간 의 행동을 제약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니
예의 감옥에 스스로 갇힌꼴이고
글공부 이외의 기술을 기예로 여겨 멸시하는것이 유교의
폐해 죠 능력만있으면 기용한다 가되어야
발전할텐데 유재란 미명하에 유학자가 아니면
등용하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재능이 빛도 못보고
없어졋을까요
호호호호 15-02-01 15:04
   
수천년전 로마가 생각하던 도로확충의 중요성
수천년후 고매한 정신문명의 조선은 어찌 생각 못했을까나
유교빠돌이들은 그저 자신들 알량한 권력을 지킬생각밖에는 안했음
수준이하지 무슨 정신문명
     
굿잡스 15-02-01 15:08
   
?? ㅋㅋ 이건 뭔 다중 아이디로 내내 허접소리나 쳐하남 ㅋ.

그런 로마제국이 붕괴되면서 도리어 도시 규모가 축소되고 중세 암흑기를 맞아 천여년

간 마녀사냥이 자행된 유럽은 뭐임? 이건 뭔 본인 무식에 자폭, 자승자박은 늘 상표권으

로 달고 사는구만 ㅋ
     
뚜리뚜바 15-02-01 15:09
   
확실히 수준이하네;; 당신같은 인간이 이땅에 있으니... 유교가 실패했구만... ㅉㅉ 어쩌다 이런인간이 유교의 나라에서 나왔지;;
     
나와나 15-02-01 15:14
   
이제 이렇게 하나하나 반박도 하기 귀찮음...
반박해놓으면 자꾸 무슨 딴 소리만 지껄이니..

도대체 도로확충의 중요성과 정신문명이 얼마나 큰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건지..

아예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 하는 건가?

정작 중요한 조선의 복지 제도와 정책에는 묵묵부답만 일관하고.. ㅉㅉ

조선은 향촌 질서를 추구했기 때문에 지방 중심으로 발달했고 조세 운반도 수로를 이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도로 발달이 적었을 뿐임

그에 비해 그 이전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등은 대도시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가 즐비했고 체계적인 도로도 확충하고 상업도 발전했었던 거고.

그러니까 사회 구조와 체계, 주요 산업 등의 차이일 뿐 우열이 있는 게 아닙니다
굿잡스 15-02-01 15:10
   
동게의 자폭, 자박 어그로로 붙어단니는 호,니,전,마 ㅋ

내내 허접소리 앵앵~~ ㅋ
호호호호 15-02-01 15:16
   
한마디로 위선과 비겁 무능이었다고 보면됨
유교의 참본질은 보지못하고 억압하고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용도였을뿐
머리는 자를지언정 머리칼은 자를수 없다던 조선유교빠돌이들부모가 주신 생명보다 머리칼에 집착한 머저리들이었음 효의 본질은 모르고 그저 우매한 아집이 지배했음 그게무슨 정신문명 수준이하지
     
망망월월 15-02-01 19:53
   
헤이트스피치란 상대를 이해하고 비판하려하는게 아닌 맹목적인 비난을 일컫는 말이죠. 호호님께 사람들이 삿대질하는 이유는 그저 헤이트스피치를 녹음기처럼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댓글달아주며 관심주는게 즐거우신겁니까?
멍게 15-02-01 16:43
   
유교가 나쁘다기보단 농경시대 기준으로는 괜찮은 사상으로 봐야죠
당연히 패러다임이 상공업으로 넘어가는데 유교가 더 이상 적합할 리가 없죠
멍게 15-02-01 16:46
   
유교가 나쁘다 까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를 기준으로 보고 있기 때문 입니다.
유교가 나온 것도 2400년 전이고 조선이 추구하던 주자학도 나온지가 몇백년이 지났죠. 다음 사상으로 넘어가지 못한게 문제였을 뿐 입니다.

유럽도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 같은 사람의 사상에서 못 넘어갔으면 중세그대로 였겠죠
구름위하늘 15-02-02 13:32
   
근대에 중국에 파견된 서양 카톨릭 선교사들은 성경을 한문으로 출판하기도 했지만,
그 반대로 중국 한문 서적을 번역하거나 해석하여 서양으로 가져갑니다.

중국에서 소개된 유교, 도교와 불교는 서양 사회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원자모델을 제시한 네델란드의
물리학자 보어는 태극 모양을 가문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보어의 첫 번째 제안 : 양자 세계의 이중성을 설명하는 상보성의 원리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0&contents_id=1468

서양으로 간 팔괘의 원리
http://levi.tistory.com/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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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4 [한국사] [역사지리 #2] 고조선 시대의 열국의 위치 추정 (2) 윈도우폰 04-07 350
19963 [한국사] [역사지리 #1] 한반도와 만주의 지형 (소국 들의 위치 … 윈도우폰 04-07 397
19962 [기타] 민족의 친연성에 대해 (1) 관심병자 04-07 249
19961 [한국사] 가설을 세우는데는 출처가 필요없죠 (16) 하이시윤 04-07 324
19960 [기타] 출처를 다는 건, 남녀노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입… (11) 아비바스 04-05 280
19959 [한국사] 소위 말하는 시민사학자들이 가생이 동아게에 계시… (7) 하이시윤 04-02 576
19958 [기타] 무식한 사람은 역사나 학문을 말하기 전에 기본을 갖… (2) 윈도우폰 04-02 297
19957 [한국사] 역사를 학문으로 받아드린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 (9) 아비바스 04-02 410
19956 [한국사] "정보" 를 다루는 사람들은 "출처" 를 달아야 맞습니… (11) 아비바스 04-01 364
19955 [한국사] 역사에 있어 사료나 증거라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3) 윈도우폰 04-01 408
19954 [한국사] 사이비 역사유튜버 거르는 꿀팁 (3) 아비바스 04-01 372
19953 [한국사] 요즘 역사 컨텐츠를 많이 보면서 깨닭는 것 ( 사이비 … (3) 아비바스 04-01 393
19952 [한국사] 동아게에서 역사글 관련 글 볼때마다 느낀 것 (5) 아비바스 04-01 303
19951 [한국사] 묘제로 본 고대 우리 민족과 이웃 민족 (5) 윈도우폰 03-31 535
19950 [한국사] 역사학자 돌려까기^^ 윈도우폰 03-30 354
19949 [한국사] 우리 고대사 #7 : 맥족의 이동 윈도우폰 03-22 603
19948 [한국사] 우리 고대사 #12 : 한민족과 재가승 윈도우폰 03-22 517
19947 [한국사] 우리 고대사 #11 : 한반도의 왜(倭) 윈도우폰 03-22 481
19946 [한국사] 우리 고대사 #10 : 진국의 한(韓)족 윈도우폰 03-22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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