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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07 03:30
[일본] 부채(쥘부채, 접선)의 기원이 일본이라는 소릴 들었는데요
 글쓴이 : aosldkr
조회 : 5,649  

https://mirror.enha.kr/wiki/%EB%B6%80%EC%B1%84

엔하위키에서 접는 부채가 800년대쯤 일본에서 기원했다고 나오는데요.
약간 쇼크라고 할까.... 근데 이게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서서 대략 난감하네요.
다른 걸 찾아보니 고려선이다 뭐다 해서 중국에 넘어간 것도 있다는데, 이건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때에 생긴 오해라고도 하고....

솔직히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대로 아시는 분 있다면 설명좀 부탁드립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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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리뚜바 15-01-07 11:20
   
이거 쥘부채는 우리나라가 최초가 맞다던데;; 검색만해도 뉴스자료로 쉽게 나오는데요?;;
정헌대부 15-01-07 20:48
   
오래전 다큐로 본 기억에 의하면 접선의 시작은 신라 입니다.
방송에선 우리쪽과 중국쪽 문헌을 보여주면서 접선의 시작은 신라였으나 당나라에 전해져 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는 접선의 유행이 사그러 들었지만,
송나라 접선이 알아주었고 16-17세기에 들어서는 왜 접선이 알아줬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왜에서 수입된 접선을 사대부가 부인들이 최소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유행을 안다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고가에 수입했다고 합니다.
햄돌 15-01-08 00:36
   
신라의 그림이 그려진 쥘부채를 당나라 사신들이 좋아했다네요 . .
만법귀일 15-01-08 07:30
   
부채의 가장 오래 된 기록은 풍씨의 기원인 여와씨와 풍백에 있습니다.
동이족이며 제갈공명의 갈천씨의 조상입니다. 신라의 진법과 부채는 풍백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Windrider 15-01-08 09:37
   
위키를 믿으시다니???
헤밍 15-01-08 19:24
   
일본이 기원인게 뭐 있나???
고므도리 16-01-20 12:50
   
쥘부채의 유래

쥘부채는 고려시대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송나라 사람 곽약허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화계(畵繼)》에는 고려 쥘부채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나타난다.

          고려의 부채에는 종이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있다. 금광죽(琴光竹)으로 자루를 만들었는데, 마치 시정
          에서 만든 접첩선(摺疊扇)과 같으나, 정교하고 치밀하여 중국의 것이 미치지 못한다. 부채를 펴면 폭이
          3․4척 가량 되고, 접으면 겨우 두 손가락 너비만 하다. 그려 넣은 그림은 대부분 사대부가의 여자들이
          수레를 타거나 말을 타고서 답청(踏靑)을 하거나 습취(拾翠)를 하는 모양이다. 또 금가루와 은가루로
          바탕을 꾸미고 은하수, 별, 달, 인물의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데, 비슷한 형체만 대충 남아 있다. 이는 먼
          고려에서 오는 도중에 마멸되어서 그런 것이다. 부채에 물들인 청록색이 아주 기이하여 중국에서 물들인
          것과는 다른데, 오로지 공청(空靑)과 해록(海綠)을 물을 들인다(《화계(畵繼).》).

금광죽으로 자루를 만드는데, 부채를 펴면 폭이 3․4척 정도 되고 접으면 겨우 두 손가락 너비만 하다고 하는데, 고려 쥘부채의 모습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쥘부채는 어떻게 해서 나타났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쥘부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일본의 학자들은《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회선(檜扇)이라는 부채가 있는데, 이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회선은 회나무 껍질 25개를 엮어 만든 것으로서 흰 종이로 바르고 그 위에 등꽃모양을 놓아 띠같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회선을 접는 부채로 보고 그 기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선을 쥘부채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매우 약하다. 오히려 고려의 송선(松扇)과 더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송선에 대해《고려도경》에서는 소나무의 부드러운 가지를 가져다가 가늘게 깎아서 줄을 만들고,
          그것을 두드려 실로 만든 후에 짜냈다고 하기도 하지만, 고려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기록한《계림
          지(鷄林志)》나《화계》에서는 소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수류목(水柳木) 껍질로 만든 것으로
          문양이 소나무나 잣나무와 아주 비슷하므로 송선이라고 한다고 한다. 고려 사람들이 말한 것을
          기록했다는 점에서《계림지(鷄林志)》나《화계》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며, 송선의
          제작방식이 일본 회선의 제작방식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즉 회선은 쥘부채라기보다는 송선과
          같이 나무를 짜서 만든 것으로 보는 게 더 옳을 듯 하고, 쥘부채의 기원으로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점은 송나라 사람들이 송선과 쥘부채를 따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데서도 그러함을 알 수 있다.
          즉 쥘부채의 기원을 일본의 회선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물론《고려도경》의 화탑선(畵榻扇)조에 “화탑선은 금은을 칠해서 장식하고 거기다 그 나라의 산림(山林), 인마(人馬), 여자의 형태를 그렸다. 고려인들은 만들지 못하고 일본에서 만든 것이라 하는데, 거기에 그린 의복을 보니 정말 그러했다”라는 부분과《도화견문지》 접선에 대해 “왜선이라고 일컬으니 본래 왜국에서 났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왜국에 쥘부채가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쥘부채의 존재는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고려도경》이나《도화견문지》에서 일본을 언급하는 것은 금은으로 장식한 화탑선에 대한 부분임을 볼 필요가 있다.《고려도경》에는 백섭선도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채에 대해서는 일본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도화견문지》에서도 은니(銀埿)로 운기월색지상(雲氣月色之狀)을 그린 부분에서만 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금은을 이용한 쥘부채는 고려보다는 일본에서 많이 제작했을 가능성을 알 수 있긴 하다. 이에 대해 장동익(張東翼)은 왜국(倭國)이 고려에 신속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張東翼,《宋代麗史資料集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370).

하지만 이 점이 쥘부채가 일본에서 유래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린 쥘부채가 일본에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이나《도화견문지》외의 기록을 보면, 쥘부채의 유래에 대해 고려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쥘부채의 유래가 고려로부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학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영국인 조셉 니덤(Joseph Needham)은《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이라는 책에서 쥘부채는 고려에서 처음 만들어져 중국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는 고려의 쥘부채로 인해 중국에 쥘부채가 널리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쥘부채의 유래는 고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쥘부채가 일본에서 발명되고 유통되었다고 한다면 중국에서도 일본의 쥘부채가 널리 유통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은 과연 쥘부채가 일본에서 유래했는가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또한 중국에서 널리 유행한 쥘부채가 고려에서 제작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 유래는 제쳐두더라도 고려 쥘부채의 질이 매우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기원이 어느 나라인가 하는 점은 부차적이다. 어느 곳에서 발전되고 널리 이용되는데 영향을 주었느냐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고려의 쥘부채가 동아시아에 널리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고려의 쥘부채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한옥마을 부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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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흔히 어디가, 어느나라가 기원이니, 시초이니 하는 것으로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근시안적인 자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종이가 어디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현재까지 찾은 증거와 기록에서 출발할 뿐, 그 이전에 다른 곳에서 사용된 종이가 있었음에도 그 유물이 존재하지 않을 뿐입니다.

따라서 고대 문화의 시초란 알 수가 없을뿐더러 큰 의미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가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되었다는 것은 현재까지 증명된 학계의 관점일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종이문화가 어디에서 꽃을 피웠는지, 어느곳에서 더많은 발전을 이루어 인류의 역사에 기여하였는지를 볼 수 있는 인식입니다.

문화의 원형이란 것은 자기 중심적인 인간들의 착각일뿐입니다. 문화란 그자체로 원형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흐르고 흘러 섞이고 발전되어 찬란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곳도 있고, 그것을 최초로 만들었다 해도 활용되지 않고 발전되지 않아 사라진 문화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지요.

지금 현재 도자기 중 다완(찻사발)은 일본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그 기원은 한국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연스런 문화적 흐름이 아니라 강제적인 전쟁을 통한 찬탈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임란 당시 토요토미가 직접 명령서를 써서 한국의 모든 도공을 몇년에 걸쳐 붙잡아서 일본으로 데려갑니다.
그 이후로 한국의 찬란한 도자기 문화는 급격히 사라졌고, 일본의 도자기 문화는 지금까지 조선인의 후손들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됩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지요. 지금 거꾸로 우리의 도공들이 일본에 가서 그 기술을 배우는 실정입니다. 물론 조선인 후예들에게서 말입니다.

이러한 예는 세계사를 통해 보면 엄청 많습니다. 따라서 문화를 논할 때는 어디가 시초냐 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발전했고 그것이 인류문명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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