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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19 00:25
[통일]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7,230  

 
200601100097.jpg
 

 
발해사의 대표적 전문가인 한규철 교수의
 
<高麗 來投·來往 女眞人―渤海遺民과 관련하여> 

논문을 중심으로 여진족이란 무엇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글 올립니다.(몇몇 어그로들의 댓글은 사양)
 
 
발해가 망하자 요동일대를 아우러면서 등장하는
 
여진족이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해서
 
실제 여진족이란 소수의 흑수말갈(이들도 이미 발해시대 용접 관리되고

있던 세력)+다수의 발해인(멸망후 여진족으로 변칭되었을 뿐)이란 말입니
 
다.
 
흑수의 땅은 모두 발해에 복속되었다.
-발해고 무왕-

발해가 점차 강성함에 따라 흑수 역시 그 소속이 되었다.
-당회요 말갈-


<금사에서 신라계 황제 어쩌고도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지역적 관점에서도 금사는 발해와 큰 연관성을 당연히 가집니다.>

발해 멸망 후에도 엄연히 흑룡강 일대 발해의 중심 수도인 상경용천부는
 
저 위에 첫 지도처럼 동란국으로 이름만 바뀌어 있었고 반란이 거세지자 요
 
양일대로 대대적 발해인들의 이주도 있었지만 (이들 발해유민은 거란인으로
 
변칭되어 고려와 내왕을 함) 1115년 금나라가 건국되기 전까지 이 일대에는
 
후발해(後渤海)라는 줄곧 발해의 한지역에 엄연한 100여년을 지속한 후신
 
왕조가 있었습니다.(정안국도 그렇고)

와다세이(和田淸)같은 학자는 존속기간을 10여년으로 보았지만 히노가이사
 
부로(日野開三郞)은 그 시점을 1007년(遼 統和25年) 경으로 박시형은 1114
 
년 경으로 보고 있음. 즉 금건국 직전까지도 흑수말갈을 주변 반독립세력으
 
로 거닐고 있던 올야(兀惹)성의 후발해 세력이 건재했다는 말입니다. 이들
 
은 실제 유민으로 불려서도 안되는 엄연히 국호를 가지고 사신 왕래를 하든
 
발해 후예의 나라임.(宋나라에 발해(渤海) 사신이 등장) 이렇게 보는 이유는
 
히노가이사부로는 후발해의 멸망을 오소경(烏昭慶(烏昭度))이

요나라 統和22년(1004)에 여진에게 붙들려 거란에 바쳐진 사건을 근거로 후
 
발해가 멸망했다고 보았고  박시형은 오사성발해국 즉 후발해(烏舍城渤海國
 
(後渤海))의 멸망을 올야가 여진에 귀속하는 1114년 때로 보고 있는 연구를
 
낸바 있습니다. (이런 동만주일대의 소위 생여진으로 불리면서
 
발해 후국들과 변방민들의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거란은 당시 연운 16주 관리에 신경을 세우면서 송과 대립하고 있었기에
 
발해인들은 반독립적 혹은 엄연한 왕조국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임)
 
이게 뭘 말하냐 하면 아래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 발해의 중축 건국 세력은
 
우리 한민족의 중심 세력인 즉 고구려민화된 부여(속말말갈)과 백산말갈등
 
이 주축이 되어 고구려 옛영토를 수복(收復)하면서 지배 피지배 대다수가
 
고구려민이 였던 상황이였고 이후에 등장하는 여진족 역시도 사료를 보면
 
여진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쓰여지던 시기는 발해의 힘이 약화되고

거란이 강해지던 903년 경부터로 일부에 한정적으로 불리던 것이

요사(遼史)와 구오대사(舊五代史)등의 사료에서 확인가능 합니다. 
 
이러다 발해가 망하면서 요의 통치를 받던 발해유민들은

거란인 혹은 숙여진(熟女眞)으로 요의 통치를 받지 않는 후발해나
 
정안국같은 엄연한 발해 후신 국가와 변경민들이 다 생여진 즉 여진족으로
 
변칭,범칭 되어져 나오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죠(즉 실제 여진족이란 대
 
다수 발해민+ 발해시대와 멸망 이후 후국인 후발해에서 관리되고 있던 반독
 
립적 소수 완안여진이 실체라는 사실임)

이런 전체적 사항을 보면 여진족이란

발해의 대도인 상경용천부 즉 흑룡강 일대에 후신으로 등장한 100여년의 후
 
발해 올야성을 중심으로 엄연히 왕조사가 지속되고 있었고 그 변경에 반독
 
립적 신라계가 들어가서 생겨난 완안부족의 여진족들이 발해가 약화되는 시
 
기에 일부에서 한정되어 불리다 발해가 망하면서 따로 새로운 종족들로 대
 
체된게 전혀 아니라 거란의 통치 아래 있던 발해민은 거란인이나 숙여진으
 
로 따로 독립된 발해 후신 후발해나 정안국 및 변경 완안부등은 생여진으로
 
이름만 변칭되어 광범위하게 범칭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그러다 상경용천부 일대 후발해  올야성의 힘이 약화되면서 완안부가 회유
 
나 요의 알력을 이용해서 본격적 생여진 즉 상당수의 발해민들을 통합하면
 
서 급격히 불어나게 됩니다.(그리고 이들 올야성의 발해민들은
 
금황실에서 가장 큰 견제 세력이 됨)

이런 가운데 나오는 말이 발해와 여진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기록중 하나로 여진발해본동일가라는 말이 나왔던 시기의 전황임.


    「女直、渤海本同一家,我興師伐罪,不濫及無辜也。」

-금사(金史)

..여진과 발해는 본시 동일(同一)한 집안이니, ..

위의 ‘女直渤海本同一家’ 기록을 단순히 정치적 목적에서 보는데 이 말에는

상당한 역사적 여러 관련성과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여진이 발해의 피지배층 유예이자 발해유민이었던 사람들이었다는 한
 
증거 자료임. 다시 말하면 발해와 여진을 本同一家로 보는 위의 기록은 여진
 
족이란 앞서도 계속해서 말한 발해(渤海)와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복합민족
 
적 성격의 종족명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에게서도 알겠지만
 
발해인들이 스스로 말갈의 후손을 자칭하지 않았다는 것임. 즉 이들에게서
 
만약 말갈이 한집안인 일가(一家)의 기준이었다면 여진발해본동일가(女直
 
渤海本同一家)가 이나라 여진말갈본동일가 (女直靺鞨本同一家)라고 말해서
 
야 옳겠죠.
 
그리고 첫지도에서 확인되는 압록강 유역의 정안국 역시 발해유민이 세운
 
국가로 고려사를 보면 서여진(西女眞)으로 지칭되어 나옵니다. 
 
정안국이 멸망하는 시점이 10세기 말엽인 바로 그 이후의 이런 여진족도
 
다름 아닌 발해유민의 이칭(異稱)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러 고고학 탐사를 통해
 
기존 알고 있던 지배지보다 거의 두배 가까운 그보다 훨씬 윗쪽인 아무르일
 
때까지 발해의 직접 지배 행정 치소와 무덤, 유물들이 대거 발견되
 
었죠(윗지도상의 트로이츠코예 발해 유적)
 
향후 더 조사가 이루어지면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당시  고구려
 
후기 발해시대에 오면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이미 기존 고구려시대에 간접
 
지배지역든(세력권 아래 부용세력으로 두던) 북방 흑수말갈지역이고 발해시
 
대에는 직접지배영역으로 북쪽으로 영역이 확대됨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
 
는 상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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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12-19 00:30
 
아래서고 여러번 이야기 했습니다만

고구려 이후 30여년이 안되어 세워진 발해(지배, 피지배 대다수 고구려민)

이후 나온 후발해, 정안국같은 엄연한 왕조들과 함께 금사가 왜 단순히 혈족적 개념만이

아니라 지역적 공간적 의미에서도 대단히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금

공부하고 되새겨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고구려 이후 말갈 어쩌고니 발해 멸망 후 여진족이고 이들은 아래에서도 사서로 언급했

지만 고조선시대 숙신-읍루-말갈- 여진같은 단일 계통이 아니라 (이런 후대 동북방 북방의

변경 말갈은 소수임)이미 우리의 고구려민화된 고구려백성으로 발해 건국에서도 중축 역할

을 한 부여(속말말갈이나 백산말갈등)등 상당수의 고구려인들이 말갈로 변칭적으로 불리였고

(그래서 국내 학계의 통설은 말갈,여진족도 대다수 고구려 발해민과 소수의 흑수말갈의

이원계통으로 보고 고고학에서도 이를 증명)실제 이들도 스스로 말갈 어쩌고가 아니라 발해

인으로 단지 서토사서나 이를 차용하던 국내 사서들에서 말갈이니 여진족등 변칭적 용어로

범칭되었던 것이지 종족 자체가 새로운 종족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거나 급격히

출산율이 높아서 급팽창했거나 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본 지식으로 깔고 봐야 하겠군요.
아베크또와 14-12-19 00:35
 
그래도 우리랑 여진족은 다르다고 생각드네요 여진족은 만주어 쓰던 민족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랑 언어도 다르고 옛 고대시대부터 우리랑 아주 친밀한 부족이였던건 사실이지만 같은 동족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여진족 왕족이나 귀족들은 우리 조상들이 많이 계셨던거 같은데 그래서 대조영이 발해 건국할때도 여진족인 당시 말갈족을 흡수해서 같은 발해인으로 어찌보면 같은 것 같기도 하지만 아닌거 같기도하고 일단 중국에 가장 많은 소수민족인 여진족 출신들은 어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야할듯 장족이였나? 무슨족인지 생각은 안나는데 중국에서 2번째로 많은 소수민족이 여진족 출신들이라네요
     
굿잡스 14-12-19 00:44
 
여진족은 만주어 >?? 만주어는 정확히 조선 중기에 나오는 후금 이후 통칭해서 부른 만

주일대의 부족어겠죠. 그리고 첫댓글이고 본문을 정독하시지 않는 듯 한데

부여 동북방에 있던 이들은 후한서고 이후 고구려 부용세력으로 이후 발해시대에고

흑수말갈 즉 발해 말의 신라계 완안부 자체는 요동일대에서 차지하는 인구수에서 결코 많은게 

아닙니다.  학계의 통설은 이런 소수와 대다수의 발해민(고구려민)의 이원적 계통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발해 멸망후 여진족으로 새로운 종족이 대거 어디서 나타난게 아니라

밣해민 대다수가 변칭되어 광범위하게 범칭화되었다는 연구 내용임.
     
만법귀일 14-12-19 08:17
 
왕우량교수(중국다렌대학) : "(고려와 여진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지역,  동일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여진인과 신라인(나중 고려인)은 민족공동체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진족, 읍루족, 물길족, 만주족이 동이족이란 정사의 기록 또한 많이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니 언어가 같았음은 당연 한 것이고, 제주도 방언을 서울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현재인들이 만주어를 이해 할 수 없다고 우리랑 언어가 다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와 역사를 전공하시는 분들이 여진인과 고려인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였다고 하니.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굿잡스 14-12-19 00:36
 
     
니르 14-12-19 01:08
 
LA 한인타운 대다수인은 우리 대한민국인

www//환빠.대체국뽕 역사연구회.잡스닷컴
          
굿잡스 14-12-28 17:34
 
.
변방경상도 14-12-19 00:58
 
자신들이 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에 정사를 만들어야되는데 근본도 없고 자신들에 역사가 하잘것이 없으니까 일본서기처럼 우리 고대사를 다수인용하여 짜맞춘거지요 발해지배 이전에 그들은 나라자체가없던 말갈부락민족이니까 모든부분에서 발해와 신라를 인용한거지요 예를들어 고려 왕건은 발해왕자 대광현이 귀화했을당시 같은 왕족으로써 대우해줌니다 발해자체를 같은 동족으로 보는거지요 근데 금나라는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발해와 금나라에대한 고려인에ㅇ인식차이는 어떻게 설명이 붙습니까?
변방경상도 14-12-19 01:01
 
자신들이 실은 말갈인이지만 여진이라고 어느시기부터 자칭하는표현인거지요  그게더 있어보이지않겠습니까? 말갈은 미개인 부락민 야인을 뜻하는 멸칭같은표현인데 당시에는 왜인이 자신을 일본인으로불라달라는것과 같은 이치였죠
굿잡스 14-12-19 01:08
 
어그로 댓글은 사양

(여기서 뭐 유동저급 아이디로 어그로짓 쳐한다고 학계 연구가 없어지거나 중단되는 줄 아

시남??안타깝네.  뼈 빠지게 허접 쉰소리하면서 애써 보든지.ㅋ 씨가 먹힐지 모르겠지만)

어그로에겐 먹이 사절.

________________
변방경상도 14-12-19 01:12
 
우선 고구려 고분벽화와 청나라시대 관련 그림과 대조해보세요 어떠한 문화적 동실성이 느껴지는지를 고구려는 우리들에 조상이지 만주족에 조상이 아닙니다. 만주족은 그저 부락민족이고 유목생활과 수렵으로 연명하던 야인도적집단들입니다 농경정주국 문명제국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과 다른 별개에 변방 이민족입니다 하지만 인종적으로 중국인보다는 우리와 매우 가깝기때문에 하나에 일파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다른 문화를 가진 이민족입니다
변방경상도 14-12-19 01:18
 
그들이 우리의 하나에 일원이였던 시기는 소수민족까지 아우르던 대국 고구려와 발해 시기 한정이지만 그시기에 조차도 그들은 나라운영에 크게 주류가될수없던 변방에 도태된 부락민족이에요 물론 고려 조선시기에도 일부있었겠지만
스마트MS 14-12-19 01:37
 
용장인 고영창이 발해독립군 성향의 군세를 이끌고.거사를 일으켜 대원국과 대발해황제 라는 제호를 사용하면서 파죽지세로 금나라를 공격하고 자신만만하게 여진을 과소평가하고.이미 상당수의 발해유민을 흡수한 고려에 외교적 행동도 취하지 않다가
금나라 태조 아골타의 서침에 단명으로 종지부를찍은여진아골타와 발해계 대원국 고영창의 패권다툼 결말 이사건 이후
금태조. 아골타가 한말인. 여진발해본동일가. 는 건국단계 원동력으로서 삼기위해
발해와 여진은. 이 질 적 인 민족이 아니고 뿌리가 같다는말로. 발해계를 포함한
정복한 여러민족을 여진의 세력안에 흡수 하여 포용 하겟다는 뜻풀이가 가까울듯 싶네요. 금사 권2. 태조 수국 2년 2월
발해멸망후 거란의 발해주민 이주정책등으로 흩어져 각지역을 거점삼아 반거란 발해부흥 움직임도
이어오던 맥도 이후  마지막으로 고영창의 패배와 몰락이후 발해유민의 저항운동도 사그러 들걸 보면
승리자로서 취한. 금태조의 태도가 보여준 발언이라. 그리 깊게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굿잡스 14-12-19 02:51
 
이부분은 2부 파트에서 다루려고 했더니 먼저 제기하시니 간단히 몇마디 적고 추후

구체적 내용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본 앞서 발해황실 및 귀족의 주요 6대성씨(대씨와 고씨가 주요 황실 성씨 인원수로 기타 오(烏)씨)

와 서성(庶姓) 즉 아래 그늘 성씨로 49개 성씨로 대략 파악하는데 발해가 망하면서

앞서 언급한 거란 지배 발해유민은 숙여진 그리고 이외의 생여진에 송은 오씨의

후발해에게 오사성발해왕이라는 통칭을 주었는데 이 변경에 있던 신라계의

완안부 세력이 이후 후발해가 약해진 틈을 타서 거란을 이용 완안부의 힘을 키우고 후발해

까지 아우러게 됩니다 즉 이를 통해 완안부는 발해민을 상당수 흡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

다 마지막 동만주 생여진 통합의 영강주(寧江州) 공격을 성공시키고는 아직 거란의

통제하에 있던 요양등 남쪽 숙여진인 발해유민들을 회유하면서 본동일가라는 말이 나오

는데 이점은 단순히 회유로 볼 수는 없다고 보군요. 이는 우선 왜 숙여진을 발해라고 했

는가 하면 생여진쪽에 후발해나 압록강유역의 정안국이고 발해민들이 변칭된 여진족으

로 없었던게 아니라는 점은 위에서 밝혔고 당시에는 요양의 거란 지배아래 있던 이들은

통합 전이였기에 발해인이라고 따로 구분해 두고 본디 같은 집안이라는 말은 실제 발해

시대 같은 발해민들이라는 말에서 근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가 말기 약해

지면서 완안부의 일부에서 신라계가 여진족명을 써고 동만주 일대 발해유민을 흡수하면

서 기존 발해민들이 여진족으로 변칭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외에 사치(徙置) 즉 이주정책을 마치 발해인(이미 완안부를 중심으로 후신 발해왕조

인 후발해와 정안국등을 흡수한)의 토사구팽식으로 말하는 논조도 있지만 이는 요의 사치와

금의 사치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보군요. 왜냐하면 금의 사치는 금황실 권력내에 올야

발해민이 강력한 견제 세력이였고 요양일대 상당수의 발해유민들이 살고 있으면서 초기

고영창이 금과 협상 과정에서 황제를 고집하다 참살되는 식으로 이런 쪽 어느 부류를

이주시켜 금내부적으로‘一家’안에서의 반대세력을 소개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요나라가 발

해의 이민 정책과는 달리 봐야 할 것으로 보이군요. (그리고 이런 반발해적 견제가 커던 희

종은 결국 발해인들에 의해 시해되고 발해계 해릉이 전면에 등장하는 식의 배경도 나오는.)

그리고 요나라안에서는 끊임없는 고위직 발해인반란들이 나왔지만 금시기에는 금의 초기와

전성기를 관통하는 시기를 국가운영에서 함께 했던 걸 보면 더욱 그러해 보입니다.(실제 이

주정책에도 고구려계 국무총리격인 장호가 세금우대등으로 중도 건설과 함께 이주담당을 했고 세

종시기에도 발해인은 여전히 주요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변방경상도 14-12-19 01:46
 
금나라는 신라인이 세우고 나라운영은 발해 지배층이였다 해도 민족구성원은  말갈인이겠지요  그렇다고 그들이 거란에 파괴된 발해5경을 고구려 발해 양식으로 원래모습으로 복원을 한것도 아니고 그곳에 발해인처럼 정주생활을 한것도 아니고  그럴 기술과 경제력 바탕 자체가 전무한 그들은 결국 중원을  침공 지배하여 그땅에 절대다수의  중화인들과 함께살면서 자연스레 그들에 문화권으로 흡수되지요 금태조는 그리고 발해인들 다수를 나라건설에 기반을 다지는데 이용하면도 그들에 세력이 강해지는것은 항상경계해왔죠 실제로 발해인에게 어느정도 신분에 제한이 많았습니다
     
스마트MS 14-12-19 01:54
 
흑수말갈과는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금나라. 여진족은. 호리개 오도리 오국부 올야 말갈등 북방민족 여러
이전 당나라시대 부터 자리잡던 기존 여진을 중심으로 결집 확대된걸로. 말갈족. 하나로 통합하기에는
그 규모와 성분 구성원은 혼잡해 보여서 말이죠.
     
gagengi 14-12-19 02:07
 
변방경상도 14-12-19 02:00
 
애당초 말갈이나 여진으로 불리는 만주족은 단일된 통일된 하나에 민족적인 개체가 아니죠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중에 야인여진이 흑수말갈 일파아닐까요?
gagengi 14-12-19 02:09
 
말갈족은 원래 한강상류토착민이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에 밀려 함경도에서 살다가 신라김함보의 이주로 금나라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말갈도 한민족의 주요 부족중 하나입니다.

말갈은 한강상류 토착민: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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