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국에서 연락처 정도는 주고 받은 중국사람이 대충 500~1000여명은 될 거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정도의 만남으로 잊혀져갔고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10%정도나 될 까 모르겠네요.
중국에서의 10년 동안 이 친구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제 중국생활은 정말 무료하고 따분했을 겁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사귄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몇 번 만나다 보니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된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제가 밥을 자주 사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지가 밥을 한 번 산다고 하더군요.
그냥 별 생각없이 따라 갔는데 나름 고급식당으로 절 데려갔지요.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해서 그냥 다른 곳에 가자고 하니까 괜찮다고 해서 입 맛에는 안맞았지만 고맙게 잘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오히려 중, 상급 식당들의 음식은 우리에게 안 맞는 경우도 많지요. 뱀, 자라, 거북이, 이름모를 벌레... 이런게 나올 때도 있습니다 --;;;)
며칠이 지났는데 이 녀석이 안보이는 겁니다. 평소에도 연락 안 할 땐 한 동안 연락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길에서 마주쳤지요.
손에는 5마오(한화 약 80원)짜리 호떡 비슷한 걸 들고 있었고요. 그 날은 몰랐는데 나중에 다른 친구녀석을 통해서 들으니 저한테 좋은 식사 한 번 대접하려고 거의 한 달치 생활비를 다 써버렸었나봅니다. 밥 먹을 돈도 없어서 매일 세 끼를 호떡으로 때우고 있었던거지요. 저한테 전화하면 분명히 밥 사주려고 할테니까 그게 싫어서 전화도 한 동안 안했던거고요.
그 때 느낀게 중국 사람들은 나름 체면도 중요시하면서 한 번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한테는 정말 잘해준다는 점이었지요.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중국에서 체류한지 오래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친구를 하나 사귀었는데 얼마 안지났는데도 불알친구처럼 가까워졌지요. 어느 날 그 친구가 놀러와서 하는 말이
"니 워크맨 나 가진다."
그 분은 나름 친하다 하는 녀석이 이런 말을 하니 거절도 못하고 뺐기는 심정으로 당시에 몇 십만원은 했을 워크맨을 친구에게 선물했지요.
뭐 그래도 서로 친하다 보니 금방 잊고 잘 지냈지요.
하루는 그 분이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정말 별거아니게 싼 물건인데 왠지 모르게 너무 탐이 나더랍니다.
친구한테 말을 할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가 눈치가 이상했는지 왜 그러냐고 물어봤지요.
그래서 말 나온 김에 그거 자기 주면 안되냐고 했는데, 그 친구의 대답.
"병.신, 갖고 싶으면 그냥 가져가면 되지 뭘 물어보냐." --;;;
그 뒤로는 서로 필요한 건 그냥 가져다 쓰는 사이가 되었는데, 전 처음엔 그냥 싼 물건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줬겠지 했는데 나중에도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도와주는 거 보면
정말로 그 분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나봅니다.
중국에서 새로 친구를 사귀고 어느 정도의 관계가 되면 친구들이 멀리 외국에서 온 귀한 친구라고 이것 저것 신경을 많이 써줍니다.
좀 힘들거나 한 일은 가능하면 자신들이 처리를 하고 외국인 친구들은 최대한 편의를 봐주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진짜 친구가 되고 나면 오히려 약간은 실망을 할 정도로 좀 막 대하는 경향도 있지요.
처음에는 이 놈이 나 한테 질려서 이런 건가 했는데 이 친구 저 친구 많이 만나다 보니까 그게 아니라 저를 마치 자기 나라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던거지요.
어려운 일, 더러운 일, 힘든 일 다 함께 의논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친구들은 졸업하고 전국 각 지로 흩어져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설이나, 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다가 제가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일부로 들렀다가 가곤 합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집안이 빵빵한 친구들은 아니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기분 좋아지게 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럼, 중국에서는 저런 친구들을 사귀는게 쉬운 일일까요?
제가 유학 할 때는 중국어 공부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었지요.
아침에는 길거리 좌판 사장하고 놀고, 점심때는 거지하고 먹을 거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도 해보고, 저녁엔 동네 건달들하고도 술도 마셔 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봤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하고 교류를 하다 보니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너무나 쉽게 우리는 진정한 친구, 우리는 형제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형제~ 내가 싼빠오(三包-먹고, 자고, 놀고) 할테니까 방학 때 우리 고향에 놀러와."
"형님~ 중국에서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제가 다 책임집니다."
"동생~ 이 동네에선 내 말 한 마디면 다 해결되니까 뭐 든지 상담하라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저는 적어준 전화번호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전화를 합니다.
물론 절반은 전화자체가 안되고요(중국은 SIM카드를 길거리에서 신분증 없이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번호를 자주 바꿉니다.), 혹시 전화가 되더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피해가는 사람들이 많지요.
같이 놀 때는 무슨 무협지에서 나오는 의형제 같은 느낌을 주던 사람들이 나중에 보니 허풍쟁이로 변해 있습니다.
제가 너무 쉽게 진짜 친구를 만들려고 했던 거고, 그들의 허풍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지요.
지금 상하이에서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데요. 제 한국친구가 상하이로 구경을 하러 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열리는 큰 규모의 국제행사기 때문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근처에 숙박할 곳을 잡는 것도 참 힘이 듭니다.
그래도 별로 크게 걱정이 안되는게 위에서 말한 친구들이 있어서 입니다.
상하이에 있는 친구에게 내 친구가 갈 테니 며칠 자게 해주라고 전화를 해놨습니다. 단칸 방에 허름한 집이지만 중국친구도 별로 물어보는 거 없이 허락을 했고요.
제 한국친구가 상하이에 있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제가 신경안써도 그 중국친구가 알아서 다 처리해 줄 것입니다.
이 친구들은 제가 중국생활을 통해서 얻은 또 다른 의미의 재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