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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1 22:20
[기타] 가야갑옷이 빛좋은 개살구더군요.
 글쓴이 : 실험가
조회 : 7,859  

역사를 찾아서라는 팟캐스트 듣는데 가야철기는 동시대 고구려철기와 비교하면 실용성이 매우 낮은 조악한 것이었다네요.

예를 들어 갑옷형태도 고구려는 얇은 철판을 여러겹 덧댄 편갑인데 가야는 두꺼운 하나의 철판으로 이뤄진 통갑이라서 후자가 방어력도도 약하고 무거워 움직이기도 힘들었다네요.

저는 가야철기 하도 띄워주길래 무기는 최강인데 나라등치가 워낙 작아서 아깝게 망한줄 알았는데 그냥 일대일로 붙어도 고구려철기ㅔ 상대가 안되는 수준이었다네요.

그런데 그런 가야철기도 감지덕지하며 전수받던 나라가 당시 일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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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engi 14-11-01 22:38
   
편갑이 통갑보다 더 견고하고 활동성도 좋은데 서양의 갑옷이 좋은 줄 아는 사람들이 통갑이 더 좋은 줄로 압니다.
고구려 편갑군과 서양의 통갑군이 맞붙어 싸웠다면 서양군대도 개박살 났을겁니다.
     
현시창 14-11-02 13:04
   
서양식으로 따진다면, 고구려의 찰갑은 라멜라 계통이고, 가야의 판갑은 플레이트 계열입니다.
서양 역시 라멜라와 플레이트 계열 모두를 사용했고, 대략 12세기까지는 메일(라멜라도 아니고, 플레이트도 아닌 한국식으로 따지면 쇄자갑)이 대세였습니다. 물론 동시기 고려 역시도 쇄자갑이 주류였죠.

그리고 11세기 무렵엔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당시 기사들이 걸친 메일의 방호력을 생각해보면 서양군대가 개박살났을거란 가정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11~12세기 무렵의 아랍군대는 이미 중동을 휩쓴 투르크 계열 유목민들이 기병의 중심을 장악한 군대였는데.

이 궁기병들의 화살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기록이 됩니다.
100대 이상의 화살을 맞고서 고슴도치가 되어서도 돌격해오는 프랑크인(당시 아랍인들은 유럽인을 모두 프랑크인이라 통칭)을 괴물이라고 묘사합니다.

이 당시 시리아 지역의 제철 기술이 세계최고 수준의 탄소강을 생산하고 있는 수준이었고, 셀주크 투르크 기병들의 발굴된 화살촉 역시 역사 스페셜에서 재현한 고구려 화살촉과 비교해 경도가 비슷하고, 투르크인들이 쓰던 활 역시 드로우 파워가 고구려 각궁의 그것돠 유사합니다.

즉, 결론은 국가적 자부심도 정도껏 들이키세요...
14세기 서양 코트 오브 플레이트는 아르퀘부스나 머스킷 탄환도 튕겨내는 물건입니다...
동시기 조선의 두정갑도 우수한 갑주지만, 그만한 성능을 내진 못했습니다.(운동생리학 측면에서 기병이 아닌 한 몸에 걸리는 부하는 오히려 두정갑이 더 심합니다...)
          
실험가 14-11-02 14:05
   
광개토태왕시기는 유럽으로치면 훈족의 대이동이 막 시작될 무렵입니다.서양 중세와 비교하면 안되죠. 아더왕보다 더 이전인데..켈트족들 나무갑옷 입고 싸움.
               
현시창 14-11-02 15:07
   
켈트족이 나무갑옷 입고 싸웠다고요? 어떤 서적에서 그런 언급이 있던가요?
나무방패겠죠? 떡갈나무 방패는 로마기록에도 언급되는 내용이고, 그리고 켈트족 전사들 역시 메일을 입고 싸웠습니다. 에트루리아인을 밀어내고 북이탈리아를 장악한 로마군이 켈트족의 갑주에 영향을 받아 로리카 하마타(체인메일)를 장비합니다.

이러한 체인메일은 B.C 4세기경부터 켈트족부터 이베리아인까지 서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헬레닉 계통의 갑주(그리스식 갑주)를 입던 로마 역시 이 영향을 받습니다. 간단히 말해 고구려 건국이전부터 체인메일로 무장했고, 철제병기로 무장했습니다. 켈트족마저도.

무슨 광개토태왕 시기 유럽이 철기도 사용 못하는 미개지역쯤으로 치부하시는데...
오히려 초원길을 통해 아리안족 계통이 기원전부터 사용하던 체인메일이 거꾸로 통일신라 말기, 고려시기에 전래됩니다. 그래서 조선초기까지 경번갑, 쇄자갑의 형태로 이용되죠.

그리고 광개토태왕보다 200년 앞선 서기 1세기 무렵부터 로마는 카타프락토이(예, 마갑까지 챙겨입고, 몸까지 갑주로 칭칭감고 길이 3미터가 넘는 기창을 쓰는 그 개마기병입니다.)랑 죽자고 싸우던 사입니다. 오히려 사산조의 중기병 경기병을 격파하고, 현재의 이라크까지 정복했어던 나라를 두고 발리니마니 하시면...-_-
(심지어 그 후신인 동로마도 1만단위 중기병을 키워 십수만명 사산조 페르시아 대군과 몇번이고 격돌해 승리한 바 있습니다.)

제발 적당히 좀 합시다.
자부심이 지나치면 독이됩니다.
                    
행복한콩 14-11-05 00:02
   
님이야 말로 오버이신데요 ... 그런 로마가 어떻게 훈족 궁기병 활살에 맥을 못춥니까??
                         
현시창 14-11-05 00:11
   
님이야 말로 오버이신데요....
훈족이 쳐들어올 무렵 로마는 내부붕괴중이었거든요.
국경을 지키던 외부의 군단은 군단장을 황제로 추대하려고 로마로 몰려들어 한낱 정치군인이 되어 사라졌고, 구멍난 국경을 게르만족을 고용해 막았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로마의 정예군은 제국의 부가 모두 모인 콘스탄티노플과 레반트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군단병이 훈족 궁기병 화살에 맥을 못 췄다고요?
정확히는 고용한 게르만족 용병이 맥을 못 추었습니다. 게다가 진짜 정예군은 제국의 부를 보전하려 사산조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투닥거리고 있었습니다.

훈족은 사산조 페르시아와 투닥거리다 주력을 유럽으로 돌렸고, 동로마의 경우는 그 막대한 부로 훈족을 매수하고, 아틸라가 죽자마자 이간책을 시도해 그 아들 하나를 죽이고, 아들 하나를 복속시켜 다뉴브 강 일대의 국경을 정리하지요.

자, 궁기병 화살에 누가 맥을 못 춰요?
          
남궁동자 14-11-02 20:02
   
체인 메일은 냉병기나 일반 화살등에는 방어력이 뛰어나지만 둔기나 송곳화살, 기창등에는 매우 취약하지 않나요? 그래서 플레이트 메일에 밀렸다고 알고있는데요.
               
현시창 14-11-02 23:11
   
취약한 편이었죠.
그리고 체인메일 진화절정기에 플레이트 아머가 등장한 것도 있고요.
트랜지션 아머등 긴 교체기를 거치며 교체가 된 것으로 압니다.
          
아비요 14-11-03 13:52
   
코트 오브 플레이트니 슈트 오브 플레이트니 뭐니 하면서 우주갑옷인냥 말하는데 결국 그냥 갑옷일뿐입니다. 다 상성인 무기에는 뚫리게 되어있어요. 예전에 어떤 플레이트 덕후님이 현시창님과 비슷한 말을 하시더군요. 무조건 짱짱맨이고 화살과 퀘럴등의 거의 모든 무기가 절대 통하지 않으면 가법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가능한 인체공학의 결정체라더군요. 무슨 그 갑옷 걸친 기사를 판타지의 인간병기처럼 묘사하던데 다 헛소리임.
               
현시창 14-11-03 21:35
   
상성인 유일한 무기가 머스켓이었습니다.
그 외엔 별다른 대항마가 없었으니 14세기까지 서유럽 전장에선 랜서들이 주력이고, 나머진 떨이였죠.

실제로 십자군 전쟁당시 호버크를 입은 12세기 기사들 수백에 수천이 녹아내린게 허다합니다. 불과 2~300기의 중기병으로 구성된 종교기사단이 그 광대한 영역을 상비군 이삼천 남짓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별 다른 상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 코트 오브 플레이트나 슈트 오브 플레이트 모두 15세기에 절정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때 등장한 병기가 파이크와 머스킷입니다. 그러나 파이크는 정확히는 갑주입은 기사를 상대하는 병기가 아니라, 기사가 탄 말을 상대하는 병기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장미전쟁에서도 하마기사 하나가 수십명의 무장병을 상대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심지어 머스킷이 등장한 이후에도 중장갑 기병이 100년 넘게 지속됩니다.
그만큼 그 중장갑을 제대로 상대할 상성병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머스킷이 충분한 신뢰성과 실효성을 가지는데 근 100년이 걸렸다는 뜻입니다.(이런 기병우위가 워낙 오래가서 30년전쟁기 기보의 구성비는 5:5혹은 오히려 기병의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아비요님 말씀대로 그저 갑주, 병기일뿐이지요.
하지만, 그 갑주체계가 서유럽의 군사사상과 전술과 심지어 사회체계까지 수백년을 잠식했습니다. 헛소리라는 단정을 내리려면 그만한 설득력 있는 글을 가져오면 될 일입니다.
15세기까지 별다른 상성이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서유럽 갑주체계에 상성인 무기에는 다 뚫리게 되어 있다는 당연한 소리를 단서없이 달아봤자 설득력 하나도 없습니다.
(무려 15세기에 그런 상성이란게 존재해서, 말 그대로 단병접전이 강요되는 공성전에서 오스만투르크가 갑주입은 소수의 기사단에게 수십대 일의 피해를 강요받았습니까? 그네들 기록보면 예니체리조차 갑주입은 기사 1명을 대적하려고 최소 4명이 동시에 덤벼야했습니다. 아르퀘부스로 저격당한 기사가 멀쩡히 살아서 석궁으로 되려 사수를 쏴죽인 기록도 존재하고요. 혹은 공성용 폭탄-일종의 나프타-을 던져넣었는데, 성첩아래 기사 몇이 그대로 살아남아 의기양양 들이닥친 공성군이 되려 전멸했다던가...서양의 갑주입은 중보병, 중기사의 전투력은 상대한 상대방도 괴물이라고 묘사하였는데, 상성? 갑주따위? 라고 손쉽게 판단내리시는군요.)
                    
실험가 14-11-04 08:02
   
그렇게 막강한 중갑기사단을 거느렸던 폴란드와 헝가리가 허접한 경갑주를 입은 몽골에 순삭당했군요.ㄷㄷㄷ
                         
현시창 14-11-04 11:56
   
무려 12~13세기 무렵 헝가리가 중기병 집단을 거느리던 국가였던가요?
헝가리는 18세기까지도 서유럽에 경기병을 수출하던 대표적 용병수출국이었습니다. 무려 16세기까지 활과 화살로 무장한 경기병을 수출하던 국가였죠. 헝가리의 중기병은 독일용병들로 채워졌고요.

본시 마자르 계통 유목기병 중심의 헝가리군이 중무장화를 하게 된 계기가 몽골군의 침공이었습니다. 애시당초 헝가리군은 몽골침공 당시 중무장된 군대가 아니었는데, 이후 중무장합니다.

아울러 폴란드군 역시도 중장화된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그 근거로 삼는 레그니차 전투에 대해 가장 정확한 서술로 남은 타타르 연대기를 보면 몽골군은 폴란드군을 격파하지 못했습니다. 양측 모두 1만이 되지 못하는 비슷한 규모의 군대였고, 그나마도 모라비아출신 징집병만 깨트렸을뿐, 본진인 폴란드소집군 자체는 깨지도 못했습니다.

석궁으로 무장한 후, 몽골군의 유인전에 끌려들어가지 않은 덕에 폴란드 무장병력(맨 앳 암즈를 주축으로 한 기사단)은 그냥 물러났습니다. 몽골군도 당연히 그 뒤를 쫓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벌어진 모히 전투에서 몽골군은 오히려 헝가리군과의 근접전을 강요받자, 바투의 부관과 바투의 친위대 수십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러 밀렸고, 소모전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헝가리군의 숫자가 더 적었음에도 강으로 가로막히고 기동력을 제한받아, 근접전을 강요받자, 오히려 헝가리군에 밀려 위급한 상황까지 갔습니다. 예비대인 수부타이가 도하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참패를 당할 뻔했죠. 여기서 일부 중무장한 독일 무장병력이 큰 활약을 하게 되죠.(이후로 헝가리의 중무장 상비군은 비잔틴식 무장에서 서유럽식 무장으로 컨셉이 바뀌게 됩니다.)

자, 몽골침공당시 폴란드는 튜튼 기사단도 어쩌지 못하고 휘둘리는 국가였고, 헝가리는 이제 막 봉건왕조로 접어드는 유목부족 국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몽골군은 이 양국 군대와 싸워 근접전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아울러 점점 동진할수록 강과 요새, 구릉으로 인해 경기병 특유의 기동력이 제약받자, 근접전을 강요받았고, 그때마다 어려운 싸움을 했습니다.

순삭이니 뭐니 언급하시기 전에 정확한 사료를 가지고 정확한 분석부터 하시길 빌겠습니다. 10만 폴란드 대군이 2000기의 몽골군에게 발렸다는 식의 환상적인 전투가 시중에 너무 퍼져 있어서 문제입니다.
                         
실험가 14-11-04 13:03
   
님말대로라면 서유럽 기사단이 전세계를 정복했어야 정상인데 왜 반대로 몽골이 세계제국을 세웟는지 미스테리네요.
                         
현시창 14-11-04 15:11
   
반박은 안 하고, 그저 말꼬리 잡고 늘어지시는군요.
솔직히 보기 추합니다.

제 주장에 서유럽 기사가 최강이라 한 적 있습니까?
물론 없죠. 그저 별다른 생각없이 흑백논리 대입시키시는데 좀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유럽의 기사들이 몽골군에 깨졌다는 환상을 제시하질 않나...(몽골군과 붙은 헝가리군은 유목기병에 광부등으로 구성된 민병대가 조합된 군대였습니다.)

특히 헝가리군이 기존의 활이 아닌 노궁중심으로 원거리 전투주력이 변경되는 이유도 몽골군이 상당수의 중장기병을 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헝가리군은 오히려 누군가의 환상속엔 활이나 쏘고 돌아다니는 최강의 경기병일 몽골군을 맞아 싸우고 나선 더더욱 중장화됩니다.

그리곤 서유럽식 요새를 산맥과 강변따라 주르륵 건설하지요.
옛 헝가리의 영역이던 카르파티아나 왈라키아보면 험준한 지역엔 어김없이 성채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비싼 무장을 갖춘 엘리트전사를 육성하기 위해선 중세수준의 경제력 정도론 봉건주의에 입각한 정치체계외엔 답이 없었고.

이 봉건체계하의 기사가 아무리 잘나봤자, 그 한계상 외부침략에 이용되는데는 경제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12세기 중세경제의 절정에 달한 유럽대륙이 레반트 지역에 찔러넣은 무장병력의 수는 기껏해야 1만남짓에 불과했습니다.(애시당초 중원의 주나라 봉건제, 일본의 막부하 봉건제, 서유럽식 봉건제 모두 핵심은 방어입니다. 공격이 아니라...)
                         
실험가 14-11-04 16:30
   
ㅋㅋㅋㅋㅋㅋ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상세한 답변을 넷상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내가 검색을 못해서 그런지는 멀라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참고로 켈트족 나무갑옷은 고딩때 읽은 이우혁의 퇴마록 세계편 아더왕이야기에서 본기억이 나서 던져본거였고 몽골군 동유럽정복은 초딩때 읽은 어린이 학급문고에서 본거였네요.일부러 낚시성 어그로를 끌어서 죄송합니다.

그러고보니 여기 참 신기하네요.역사전문 사이트도 아닌데 이런 수준의 논쟁이 일어나는거보면  옛날 네이버 역사카페 눈팅할때 삘이 남.

그런데 이성계가 투구끈날려 겨우 쏴죽인 아지발도 정도면 무장수준에서 서양기사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엇을까요?애도 화살이 전혀 안통하는 수준이었다는데..아지발도 하나로도 천하의 이성계가 엄청 애먹었는데 이런애들 수백,수천이 돌격해오면 당시 고려정도는 순식간에 절딴나겟네요. 공성전 외에는답이 안나올듯..당시 화포라고 해봐야 배에 불지르는 용도였으니
                         
현시창 14-11-05 00:15
   
아지발도 일화는 사실상 이성계 뛰어주기 일화에 가깝죠.
     
나가라쟈 14-11-02 14:08
   
판타지/무협지에서 흔히 볼수있는 논리.ㅋㅋ 서양애들은 조악한 무기와 무식한 검술,무술, 진법도 모르는 열등한 것들로 간주하며 동양/한국 만세 수준.
mymiky 14-11-01 22:48
   
역사스폐셜에서 실험한적이 있었는데,
고구려 갑옷에 활 쏳았더니, 약간 찌그려지긴 했지만 못 뚫고 팅겨나가 버리더라구요-
신기했음.
박애주의 14-11-01 23:27
   
그냥 보셔도 아시겠지만 가야 갑옷은 고구려에 비해 기술력이 훨씬 뒤떨어지죠. 다만 철 자체가 많이 나오고 철의 질도 좋은 편이라 가야의 철기를 좀 띄워주는거죠. 교과서에서도 가야 갑옷이 가야 철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는 것이지 가야 갑옷이 좋다고는 안합니다.
콜라코카 14-11-01 23:43
   
철기 전체가 아닌 무기류만 그런것이죠 고구려 광개토태왕한테 본진(금관가야)털리고
가야도 갑옷이 찰갑형태로 바뀌었죠
     
실험가 14-11-02 06:25
   
본거지 털리고 영영 세를 회복못했죠.광개토태왕정벌후 시기에 가야여전사 유물 출토되엇다던데..말이 좋아 여전사지 얼마나 정세가 급박햇으면 아녀자까지 동원해야될정도로 허약해졌다는 증거밖에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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