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판옥선의 포 (총통) 사격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표의 양현으로의 이동설, 포의 연속 사격 후의 판옥선 회전설 등이 거론되기에
판옥선이 어떤 방식으로 포사격을 했는지에 대해 적어보고자 함.
물론 이 글을 적는 나도 군사전문가는 아니고, 들었던 바와 상식을 기반으로 적는 것임.
판옥선에는 화포를 20 문 내외로 적재했음. (상선의 경우, 최대 24문)
그리고 포를 다루는 화포장도 20 명 가량 탑승했음.
따라서 각 포마다 포를 다루는 화포장이 한 명씩 할당되었다는 이야기.
판옥선의 화포는 기본적으로 전장포였음.
화약과 포환 또는 장군전 등을 포의 후미에서 넣는 것이 아니라 포구 (포 앞)에서 장전하는 방식.
일단 포를 발사했다고 가정하고 시작.
그 다음의 발사를 위해 화약과 포환을 장전하기 위해서는, 포혈로 내밀어진 포를 뒤로 후퇴시켜야 함.
그래야 포구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무거운 포를 매번 사람이 들고, 끌고 하면서 뒤로 당겼다, 앞으로 밀었다 하기는 힘듬.
그래서 포를 나무로 만든 상자 위에 올려서 고정을 했음.
그리고 그 나무 상자에 바퀴를 달아서 이동이 용이하도록 했음.
그런데 바퀴달린 나무 상자를 그냥 평편한 바닥에 놓으면
사격 시의 반동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 튀거나 방향이 틀어질 지 모름.
그래서 레일 비슷한 구조물을 나무 상자 아래에 장치했을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사격 시의 반동에 의해 크게 뒤로 밀리는 것을 제한하기 위하여
나무상자와 포신 앞의 구조물 사이를 밧줄로 연결하여 밧줄 길이 이상으로 밀리는 것을 방지했을 것임.
대충 아래의 사진과 같은 모양이었을 것임.
이제 사격 절차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사격 시, 포신이 지나치게 뒤로 밀리면, 조준점이 흐트러지면서 명중률이 떨어짐.
그래서 나무 상자 바퀴 뒤에 쐐기 모양의 구조물을 놓아서 포를 얹은 상자의 후퇴를 어느 정도 방지.
1) 포 사격이 끝나면 후퇴 방지용 쐐기를 제거하고 나무 상자를 뒤로 후퇴시킴.
2) 포신 내부를 나무 봉에 감긴 헝겊에 민물 (바닷물이 아니라)을 묻혀 포신 내부를 쑤심.
남아 있는 화약 찌꺼기를 제거하고 포신을 냉각시키기 위함.
이 과정을 생략하고 다음 화약을 바로 넣으면 화약이 잔열에 의해 폭발할 수가 있음.
3) 마른 헝겊을 감은 봉으로 쑤셔서 물기 제거. 안 그러면 화약이 젖어서 불발될 수 있음.
4) 화약을 장입하고 봉으로 쑤셔서 다짐. 그래야 넣은 화약이 모두 동시에 폭발할 수 있음.
5) 화약을 다진 후, 그 앞에 격목을 넣고 때려서 밀어 넣음.
격목은 포신 내부 직경과 빈틈이 거의 없이 같은 직경을 가진 원반 형태의 나무임.
포에 장전하는 포환이나 장군전의 직경은 포신 내부 직경보다 작기 때문에
포환이나 장군전과 포신 사이에 틈이 있게 되고
이 상태에서 그냥 발사하면, 화약의 폭발력이 포환이나 장군전에 100 % 전달되지 않음.
그래서 화약의 폭발력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격목을 때려 박는 것임.
단일 포환이나 장군전 만을 발사할 때는 이 과정에서 장전이 끝나지만
요즘의 산탄에 해당하는 조란환 (구슬 크기의 철환. 수백개를 장전)을 장전할 때는
화약 넣고 격목 때려 박고, 그 앞에 흙으로 막고 또 조란환 수백개를 넣은 다음에 또 흙으로 막고,
다시 조란환 수백개를 넣은 다음에 흙으로 막고, 그 앞에 큰 철환 하나를 넣기도 함.
이렇게 장전한 것을 왜군 전선의 격군이 있는 부분이나 조총 사수가 있는 부분을 향해 발사하면,
맨 앞의 큰 철환이 왜군 전선의 벽에 큰 구멍을 뚫게 되고
그 뒤를 이어 수백개의 조란환들이 구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퍼져서
격군이나 조총 사수들을 싹쓸이할 수 있음.
6) 포의 후미에 있는 약선혈을 날카로운 송곳 등으로 쑤셔서 약선 (도화선)을 넣을 통로를 확보
7) 약선을 넣고, 포를 앞으로 전진시켜 전선의 옆에 뚫린 포혈로 밀어냄
8) 조준 후, 명령에 따라 약선에 불을 붙임.
9) 약선이 타들어가서 장전되어 있는 화약에 닿으면 발사됨.
이 과정을, 아무리 빨리 한다고 해도 최소한 2-3 분은 걸림.
반면에,판옥선은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라, 양현의 노를 다른 방향으로 저어주기만 해도
판옥선은 제자리 회전이 가능함.
탱크의 전주선회를 생각해보면 됨.
탱크의 양 쪽에 있는 캐터필러의 회전 방향을 서로 다르게 하면, 탱크는 제자리에서 회전하게 됨.
판옥선도 마찬가지로 노를 젓는 방향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판옥선의 방향을 쉽게 바꿀 수 있고
여기에 소모되는 시간은 포를 재장전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짧음.
따라서 판옥선은 한 쪽에 있는 포를 발사하고 나서 그 포를 재장전하는 동안
판옥선의 방향을 180 도 회전시켜
반대편에 준비되어 있는 포를 발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임.
그리고 그 사이에 이미 발사했던 포는 재장전 과정을 거치고.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한 쪽을 쏘고, 회전하고, 반대 쪽을 쏘고, 회전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임.
이렇게 사격하는 것이 한쪽 현에서 사격을 한 다음에
그 포를 끌고 반대편에 가서 다시 재장전하고 다시 발사하는 것보다는 비교가 안 되게 효율적임.
물론 포를 끌고 다니면,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판옥선이 전복한다는 것은 별개로 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