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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8 02:16
[중국] 한국이 왜 중국을 정벌한 적이 없다고 하는가...
 글쓴이 : 디노
조회 : 4,046  

백제의 역사는 신라출신 김부식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되고, 삭제되어 그 흔적이 미미한 실정입니다.

한데 중국의 사서에는 백제가 중국에서 임명한 왕이나 후, 태수들이 나옵니다. 이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흔히 남조의 역사서에만 등장한다고 해서 의미를 축소하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북조의 역사서인 위서 백제국전에도 백제의 태수나 왕의 명칭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송서 백제국전, 양서 백제전, 남사 백제전, 통전 백제전 등에 나오는 백제의 태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는 주로 현지 출신의 인물로 태수를 임명했습니다.


서하태수 풍야부

대방태수 장무, 고달

낙랑태수 모유

조선태수 양무, 장새

광양태수 고달

광릉태수 양무

청하태수 회매

성양태수 왕무

 

그에 반해 백제가 왕이나 후로 봉한 인물은 대부분 백제왕족인 여씨와 백제 8대 대성의 귀족들입니다.

 

송서의 여기, 여곤

남제서의 여고, 여력

위서의 여례

남제서의 사법명, 해례곤, 목간나 등입니다.

 

중국의 사서에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할 때, 백제가 요서를 차지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가 약유요동 하자, 백제가 약유요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유라는 것은 힘으로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요서에 진출한 백제는 부여의 유민들과 힘을 합쳐 그 세력을 계속 키워 나갔던 것입니다.

 

이들이 훗날 이정기가 제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보탰고, 장보고가 중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흔히 신라방, 신라소의 사람들이 신라에서 건너간 신라인들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신라는 전기 신라 때에는 중국과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사신을 보낸 기록도 삼국 가운데 가장 적었죠.

나당전쟁 이후, 신라와 당나라는 외교관계가 단절됩니다.

신라인들이 건너갈 틈이 없었어요. 그러다 외교관계가 회복되자마자 신라방, 신라소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이는 신라인들이 건너가서 생겨난 명칭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백제인들을 일컫는 말이었어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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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ed 14-09-28 02:19
   
님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을 점령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gagengi 14-09-28 03:07
   
그건 대륙의 동쪽 일부일뿐이니까 국경선 변경정도라고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정복은 중국전체를 점령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신라김함보의 금나라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했지만 한민족이 갈라져 정복한 것이니까 직접 정복은 아니죠.
     
디노 14-09-28 03:17
   
대방태수와 낙랑태수는 요녕성 대릉하 하류부근,
조선태수 하북성 천안현 부근,
광양태수 하북성 용화현 혹은 난평현
청하태수 하북성,
광릉태수 강소성 양주시
성양태수는 하남성,
서하태수는 산서성 이석현에 있었어요.

당시 중국은 지금보다 훨씬 영토가 작았고, 특히 서하태수가 다스린 산서성은 서부 내륙지방인데 이것을 어찌 변경정도라고 할 수 있나요...
     
굿잡스 14-09-28 08:10
   
우리 고조선 고구려 문명권은 기마문화이지만 엄연히

일찍히 정주,정착문명을 일군 세럭임.

북방의 다른 유목문화처럼 본거지를 이리저리 옮겨 단

닐 이유도 전면전을 함으로써

야기되는 리스크 대비 경제적으로도 그닥

메리트도 없는 소리임의 기본 차이는 인지하고

역사를 봐야 할 것입니다.

백제의 경우는 남부 작은 공간에 치우쳐 있다보니

서해와 열도간의 해양 삼각지역으로  일찍히

해양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 그리고 필요성에 눈을

떴고 그러다보니 열도를 개척 정벌하면서 풍부한

산림목재부터 인력까지 확보하면서

서토에도 진출하며 해양대국을 이룬 나라였고

(북위의 남조 정벌을 위한 대기병을 2번이나

분쇄시킨게 백제 군사력이죠)

고구려는 도리어 북위대군과 요서에서 충돌 직전까지

무릅써는걸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북연의 물자와

사람을 다빼갔지만 요서 앞마당은 도리어 공간을

벌여두어 서토와 명백한 안보 전략적,문명적 선을 그어두었

고 직,간접적 세련된 통치술로 큰 국력의 손실없이

주변 물자와 사람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스스로의 천하관과 동방문명권의 중심에 고구려가

풍요로움을 구가하도록 했다는 걸 명심하길 바랍니다.

<중원고구려비>가 그냥 나온게 아니란 말이죠.

우리 고구려 입장에서는 서토는 중원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서토이고 변방 오랑캐들임.

서토에서 수십개 왕조가 생겨나고 멸하는 동안

동방문명권의 천자인 우리 고구려는 천년의 시간속에

우리가 살던 이곳,이땅이 천하의 중심이요 중원으로

자리하고 그런 세계관속에서 실제 생활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련된 통치술하에 주변에 고구려 휘하

부용세력으로 일찍히 말갈,선비족부터 거란,실위(후대

몽골)등을 두고 신라를 신속화 서토로는 세력권을

요서의 후연, 북연 이후 북조사를 연 대국 북위도 고구려계 세종이 등극

하고는 요동의 고조가 군사를 직접 거닐고 가서는

북위조정을 장악해 버립니다.
고급2 14-09-28 10:14
   
백제 고구려가 망하면서부터 우리 비극이 시작된거
     
shrekandy 14-09-28 10:34
   
아닌데여. 뭐라는겨
     
굿잡스 14-09-28 10:45
   
해동성국 대발해와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한 신라

의 전성기는 남북국시대이죠. 그기에 화려한 귀족

시대의 고려나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금의 도시

문명도 다름 아닌 우리 고구려, 발해문명이

주도한 연장입니다. 

조선 역시도 전국시대 왜의 지배자 사이에선

조선대국관의 인식으로 바라봤던 나라였지요.
스파게티 14-09-28 10:40
   
굿잡스님의 댓글에 나오는

고구려 입장에서는 서토는 중원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서토이고 변방 오랑캐들임.

서토에서 수십개 왕조가 생겨나고 멸하는 동안

동방문명권의 천자인 우리 고구려는 천년의 시간속에

우리가 살던 이곳,이땅이 천하의 중심이요 중원으로

자리하고 그런 세계관속에서 실제 생활했단 말입니다



이말이 인상깊네요... 우린 항상 짱개역사서를 놓고 비교하고 논쟁할뿐  고구려 입장은 생각을 못하니까요
     
지나가던이 14-09-28 12:45
   
2222 저도 굿잡스님 의견에 깊이깊이 공감~~~~~~~
왜 우리가 지나족입장에서 고구려를 논해야하는건지 이해불가.........ㅉㅉㅉ
     
멍하니 14-09-28 14:12
   
3333
Windrider 14-09-30 18:42
   
신라가 문제야.왜 왜세를 끌어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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