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4-09-19 16:38
[통일] 고연수, 고혜진이 15만 전군을 지휘하다 전멸했다??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6,752  

 
어느 어그로님의 발자취를 통해서
 
645년 1차 고당 전쟁에서 당측이 3대 전투로 불리는 건안성,신성, 주필산 전
 
투(안시성) 중 주필산에 대해 사료를 통해서 왜 고연수, 고혜진이
 
급파한 15만 대군(각 성에 주둔한 몇만 단위의 병력 외에 급파한 병
 
력수로는 드러난 기록상에선 고구려 역대 최대를 보이는)의 지휘자가 될 수 없는지
 
그래서 왜 주필산 1차 고연수의 실패가 주필산 전투의 전체 실패도 고구려의
 
일방적 피해가 아니였음을 차근 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략설계 14-09-15 11:38  너 고연수 가지고 자꾸 헷소리할래??
니가 15만을 봤어??
고연수군 15만이 역사서 어디서 나온줄 알어??
고구려는 책이 없고 다 중국역사서여..

구당서에 "고연수군 15만6천8백명 항복"
멀 붙잡긴 붙잡어 항복이라 나오는데..

실제 전투에서, 고구려군 1만 전사.. 산 위의 고연수군 3만6천800명 죄다 항복이고..
이중 고연수를 비롯해서 군 간부 3,500명 당으로 압송이고..
말갈병은 생매장이고..
도망간 병사 포함해서 실병력을 임용한님 저서 "전쟁과역사" 6만 정도로 보고 있어..

고연수군 "전멸이다"
깨져도 이렇게 깨진 전투가 없는데.. 멀 붙잡어??
당태종이 뭐란 줄 알어??
"한번으로 싸움으로 고구려를 깨뜨렸다"고 해..
"깨뜨렸다"고..
이 패전으로 "석황성, 은성의 군사가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사방 수백 리에
인가가 비었다"고 하는데.. 멀 붙잡어??
인터넷 다니면서 패전을 미화하는 특이한 습관있냐??

한번 싸움으로 군대가 사라졌는데 고연수는 당태중한테 무릎꿇고 항복하고,
멀 붙잡어??
6만이 사라지고 6만을 없애는 과정도 니 눈깔엔 죄다 붙잡은걸로 보이냐..

아는건 쥐뿔도 고구려밖에 없는지 고구려 얘기만 하면서
고구려도 헷소리를 해대고 모르면 어뜩하냐??
앞으로 먼 얘기할래??

 
 
>>>>>>>>>
 
이 어그로님은 구당서 하나만 신기하게도  철썩같이 의지해서리
 
(이외 삼국사기. 신당서, 자치통감, 책부원귀, 삼국사절요,전당문, 당회요,
 
책부원구등 여러 사서에서 이관련 기록들이 많은데 말이죠)
 
고구려군 15만은 전멸해니 6만은 사라지고 6만은  없애고 어쩌고
 
신나게 어그로짓을 열심히 해댑니다.(그리고 이 답번을  보라고 여기 저기 주
 
제와 상관 없는 곳에까지 따라와서 댓글을 열심히 답니다.)
 
 
본격적 사료로 들어가죠.
 
 
6월 2일 백암성을 항복받은 당나라 이세민은 약해진 건안성을 먼저 치자고
 
하고 이세적은 북쪽에 있는 안시성이 식량 요충지인 요동성을 공략해 버리면
 
보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안시성 공략을 대대적으로 먼저하는 의견을 내
 
면서 당의 주력이 안시성으로 몰리게 됩니다.
 
 
(윗 링크는 요동 일대 고구려 성곽 배치도)
 
 
이런 가운데 고구려는 15만 대군을 급히 안시성 일대로 보내게 되는 것이죠.
 
이러면서 그 일대 주필산에서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아래 기록은 이런 15만 고구려군이 안시성과 연계된 공략에 이세민이
 
우려를 보내고 있는 내용입니다.
 
○[太宗이] 安市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에 高[句]麗의 北部傉薩 高延壽와 南部傉薩高惠眞이 [그들의] 군대 및 靺鞨의 무리 15만을 이끌고 와서 [安市城을] 구원하였다. 太宗은 이렇게 말하였다.“저들이 만약 군사를 정비하여 安市[城]과 연합을 하여 城壁을 쌓고, 높은 산에 의거하여 城中의 곡식을 날라다 먹으면서, 靺鞨의 무리를 풀어 우리의 牛馬를 약탈하여 간다면, [우리가] 공격을 하여도 함락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上策이다. 城中의 무리를 이끌고 밤에 도망가는 것이 中策이다. 우리와 싸움을 벌이면 사로 잡힐 것이다.”
 
이런 가운데 15만 대군을 이끈 총사령관 대대로(大對盧)인 고정의가 당군에
 
대한 전략적 대치법을 아래 사료에서 이야기 합니다.
 
지구전과 보급 차단을 이야기 하지만 고연수는 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는 게 아래 기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죠.
 
잠시 고구려의 관등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대대로 고정의는 1관등이고
 
당측 기록으로 일부 남아있는 이름인 고연수는
 
5관등인 위두대형이고 위로는 태대사자, 울절, 막리지 그리고 
 
대대로가 있습니다. 최고회의라는 대로회의 중 고연수라는 5관등은 최고
 
말단이고 고혜진은 아예 회의에 참석 불가라는 말이죠.(기록에는 없지만
 
이런 15만 대군을 이끌는데는 이런 고연수 외에도 여러 5관등과 상위
 
관등의 지휘자들이 존재했을 것임) 당연히 이 15만대군을 이끄는 최고 사령관
 
이 누구인지는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 고연수가 15만 대군을 이끌고 가서 6월 21일~6월 23일까지의
 
주필산 전투에서 이세민의 유인책으로 전멸했다는 식의 구당서는 누가
 
봐도 의심될 수 밖에 없죠. 무엇보다 아래 이런 구당서의 오기를
 
바로 잡은 신당서의 기록인 이세민의
 
1차로 불리는 주필산 3일간의 전투의 결과와 이후 다시 이세민이 포위되는
 
과정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高句麗의] 어떤 大對盧가 [高]延壽에게,“내가 들으니 中國이 어지러우면 英雄들이 모두 일어난다고 한다. 秦王은 총명하고 용감하여 무너지지 않는 敵이 없고 싸움에 상대할 적이 없으므로, 드디어 天下를 평정하고 皇帝의 자리에 군림하니, 北狄이나 西戎에서 稱臣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금은 온 나라를 쓸어 와서 謀臣·重將이 다 [이곳에] 몰려 있으니, 그 銳鋒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군사를 돈좌시켜 날짜를 끄는 한편, 몰래 奇兵을 보내어 그들의 饟道를 끊는 것보다 더 나은 계책이 없다. 한달이 못되어 군량이 떨어져 싸우려 하여도 싸울 수 없고, 돌아가려 하여도 길이 없게 되니, 그때에 탈취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계책을 세워 주었으나, [高]延壽는 듣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安市[城]에서 40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였다.
 
 
 
아래 신당서 기록은 이런 고연수의 선발진인 군사병력수가
 
대략 5만(최대6만)정도임을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기존 대대로 고정의의 책략과는 달리 고연수는 이세민의 유인책에 걸려 이
 
후 전사가 2만(신당서뿐 아니라  자치통감, 책부원귀, 삼국사절요에 다 2만으
 
로 기록할 만큼 압도적임) 생포가 3만 6천5백명중 3천 5백은 당 경내로 3천 말
 
갈은 죽여버렸다는 기록입니다(생매장). 그런데 재미난건 나머지 3만을 돌려
 
보냈다는기록이죠. 생매장까지 시키고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적군, 그
 
것도 무려 3만을 그냥 돌려 보냈다??
 
여기에는 순순히가 아니라 이세민이 3만을 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는 후속타
 
가 존재합니다.
 
이게 바로 5,6만의 선발대 성격인 고연수외에 고정의 최고 사령관이 이끄는
 
9,10만의 본진 후속병력이라는 것이죠.
 
이세민은 이런 고연수를 항복시키면서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곧 이세민 친위 6군과 이적의 흑군이 재자 고구려에 포위되어 버리면서

고위급인 왕군악이 전사했고, 후방의 양홍례와 유흥기가 이끄는 병력과도 계
 
속해서 주필산에  전쟁을 이어갑니다. 이런 후속병력과 급박한 재전세 역전는
 
다름 아닌 항복한 일부 고연수 선발대가 아니라  최고 사령관인 고정의군 9,10
 
만 규모에 의해 재차 포위되는 상황속에 당측도 위협을 느끼면서
 
3만 고구려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어글로님은 재차 무슨 이런 고정의와 합세한 대략
 
11만 병력이 버티는데 안시성 공략은 어떻게 했니 어쩌고 반론을 펴기 시작합
 
니다.
 
이는 6월 20일 안시성에 도착한 이세민 본대는 이후 급파한 15만 고구려군을
 
상대하는 한편 요동도제1군총관인 장사귀를 먼저 안시성에 보내어 공략을 주
 
도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에 이세민은 주필산에 최고 사령관이 이끄는 고정의 본대
 
의 장기 지구전 계책에 휘말리면서 계속해서 지루한 소모전 양상속
 
에서 고구려 내지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50여일간 발이 묶기는 형태가 계
 
속된 것이죠. 그리고 이세민이 친정 나온 전투에 수성전이 탁월한 고구려에
 
육박전도 즐겨하는 걸 뻔히 아는데 수나라 300만도 대패하고 돌아간
 
상황에서 수성전을 격파하기 위해 최소 3배의 공격 병력는 병법의 달인
 
이라는 당 이세민이 모른채 황제가 친정나온 병력수가 
 
11만 정도의 병력을 맞으면서 안시성 공략의 동시 작전을
 
펴지 못할 정도의 적은 병력수를 데러왔다고 생각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사고이겠죠.



太宗은 ‘오랑캐가 나의 계책에 빠져 들었다’ 하고, 左衛大將軍 阿史那社尔에게 명하여 突厥의 騎兵 1천을 이끌고 가서 유인하게 하였다. 고구려가 늘 靺鞨의 銳兵을 앞세우므로, 社尔의 군사가 싸우다가 패하여 달아났다. [高]延壽는 ‘唐[兵]은 상대하기가 쉽다’ 하고 30리 진격하여 산기슭에 진을 쳤다. 太宗이,“내가 너의 나라에 强暴한 臣下가 있어 제 임금을 죽였기에 그 죄를 물으러 왔은즉, 交戰을 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하니, [高]延壽도 그렇다 하며 행동을 멈추고 기다렸다.太宗이 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 李勣으로 하여금 步·騎兵 1만 5천을 거느리고 서쪽 산고개에 진을 쳐서 賊과 대적케 하였다. 長孫无忌와 牛進達로 하여금 精兵 1만을 거느리고 [高]句麗의 후면 狹谷으로 나가게 하였다. 太宗 [자신은] 騎兵 4천을 이끌고 깃발을 눕히고 高[句]麗 [陣營의] 북쪽 산 위로 올라 갔다. 그리고 모든 군사에게 ‘鼓角 소리가 들리면 돌격하라’고 하였다. 이어 朝堂에다 장막을 설치하고 말하기를,“내일 한낮에 이곳에서 오랑캐의 항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날 밤에 [高]延壽의 진영에 流星이 떨어졌다.

○ 이튿날 고구려가 [李]勣의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바로 싸움을 벌였다. 太宗은 [長孫]无忌의 군사가 먼지를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고, 鼓角을 불고 兵幟를 사방에서 함께 들게 하였다. 고구려가 당혹하여 군사를 나누어 방어하고자 하였으나, 무리가 이미 어지러워졌다. [李]勣은 창을 든 보병을 이끌고 공격하여 그들을 무너뜨리고, 无忌는 그 후미를 쳤다. 太宗이 산에서 달려 내려오니, 고구려군은 크게 와해되어 2만급의 머리를 베었다.[高]延壽는 남은 무리들을 수습하여 산을 등지고 굳게 지켰다. 无忌와 勣은 [군대를] 합세하여 포위하고, 냇물의 다리를 철거하여 歸路를 차단하였다.太宗은 말고삐를 잡고 고구려의 營壘를 살펴 보고,“高[句]麗가 온 나라를 기울여서 왔으나, [大將旗를] 한번 흔들어 깨뜨렸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도운 것이다.”하고, 말에서 내려 하늘에 두번 절을 올려 감사하였다.[高]延壽 등이 事勢가 궁함을 헤아리고 바로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다. 轅門에 들어 와서 무릎으로 기어 앞에 나아가 절을 올리고 命을 청하였다. 太宗이,“이 뒤에도 감히 天子와 싸우겠는가?”하자, 두려워서 땀을 흘리며 대답을 못하였다.

○ 太宗은 酋長 3천 5백명을 가려내어 모두 벼슬을 주어서 內地로 들여 보내고, 나머지 3만명은 [그 나라로] 돌려 보냈다. 靺鞨 사람 3천여명은 목을 베었다. 노획물은 牛馬 십만필과 明光鎧 1만벌이었다. 高[句]麗가 크게 놀라서 后黃과 銀의 두 城이 스스로 빠져 달아나니, 수백리에 人家의 연기가 끊겼다.이에 驛을 통하여 太子에게 [소식을] 전하고, 아울러 여러 신하들에게 글을 내려,“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니 이와 같다. 어떻게 보는가?”하였다. 거동하였던 산을 駐蹕山이라 이름하고, 破陣圖를 그렸으며, 전공을 기념하는 글을 돌에 새겼다. 그리고 [高]延壽에게는 鴻臚卿을 제수하고, [高]惠眞에게는 司農卿을 제수하였다.斥候를 하던 騎兵이 [高句麗의] 諜者를 잡아 왔는데, 太宗은 그 포박을 풀어 주었다. 그가 사흘동안 밥을 먹지 못하였다고 하자, 밥을 먹여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신발까지 주어서 보내며,“돌아가거든 莫離支에게 전하라. 만약 군사의 동정을 알려거든 부디 내가 있는 곳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 가라.”고 하였다. 太宗은 모든 營壘에 참호를 파지 않고 斥候만 근엄히 할 뿐이었으나, 군사들이 군량을 운반할 적에 비록 單騎일지라도 고구려는 감히 약탈을 하지 못하였다.
 
<신당서>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대은하제국 14-09-19 16:44
   
이거와 관련없는 애기지만

고구려는 나당연합보다는

내분으로 망하지 않았나요?
     
굿잡스 14-09-19 17:03
   
내분이 결정타였죠.  1차에서 당나라 이세민이 돌궐(수나라가 고구려에 망하고

이연부터 아들 이세민도 위수지맹으로 돌궐에 조공 바치면 시간을 범)부터

이후 설연타까지 잔가지를 치면서 뿌리 뽑고 2차 고당전쟁은 백제까지 쳐내면서 신라와

공조하에 치밀한 사전 치기를 완성한 가운데 본격적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결국 당나라는 다시금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아예 당측 조정에선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만들던 함선을 중단케하고

농사나 지어라고 하죠.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연남생이 일부 거란부족까지 데리고 투항하면

서 2번이나 재차 확인하고서야 이걸 기회로 다시금 3차 고당전쟁이 급격히

불붙게 된 것이죠. 이런 고구려 최고군 수뇌부랄 수 있는 연남생을 앞세워

요동일대 고구려성의 허실을 간파하고 빠르게

평양성으로 진격하면서 각 성주도 동요하기 시작했고 내부적으로 안면있는 이들을 회유

하면서 기존의 양상과는 다르게 일부 성들은 자진해서 문을 쉽게 여는 등 이후 수도인

평양성이 함락되게 된 것이죠.
     
굿잡스 14-09-19 17:12
   
그러나 이런 무리한 당의 대외정복의 재시도는 결국 당의 멸망을 재촉하는 기폭제가 됩니다.

고수전쟁에서 체력을 보존하던 돌궐이 이후 혼란기의 서토내지를 휩쓸면서 씹어 먹었다면

다시금 일으킨 고당 전쟁은 토번의 성장을 낳으면서 수도가 함락되는 사건이나 이후 절도사

의 난이나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제나라등 수십개의 세금을 내지 않는 번국들이 생겨나면서

당조정은  빠르게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

이런 고당 전쟁으로 인해 일시적 평양성 함락은 주효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요동성의 여러 성들부터 황해도 일대 및 발도 밟아 보지 못한 동만주에서 지

속적인 고구려 저항 운동이 거세지고 신라도 백제와 이런 고구려군을 지원하면서 이후 매소

성 전투에서 당군의 대군을 격파, 몰아내고 위로는

당나라의 평양 안동도호부도 재차 요동, 요서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요동반도 일대는 (소)고구려로 불리면서

30여년이 안되어 고구려 유민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면서 동만주 일대에서 기존 고구려 백성들을 빠르게 통합하면서 발해를 건국하고 난

이후 이 소고구려도 흡수되게 됩니다.
전략설계 14-09-19 17:10
   
"고연수, 고혜진이 15만 전군을 지휘하다 전멸했다??"

<--- 이런 얘기하는 사람 세상에 굿잡이 너 말고 없거덩..

인제 니 혼자 퀴즈 내서 니 혼자 푸냐??
     
굿잡스 14-09-19 17:15
   
전략설계 14-09-15 11:38  너 고연수 가지고 자꾸 헷소리할래??
니가 15만을 봤어??
고연수군 15만이 역사서 어디서 나온줄 알어??
고구려는 책이 없고 다 중국역사서여..

구당서에 "고연수군 15만6천8백명 항복"
멀 붙잡긴 붙잡어 항복이라 나오는데..

실제 전투에서, 고구려군 1만 전사.. 산 위의 고연수군 3만6천800명 죄다 항복이고..
이중 고연수를 비롯해서 군 간부 3,500명 당으로 압송이고..
말갈병은 생매장이고..
도망간 병사 포함해서 실병력을 임용한님 저서 "전쟁과역사" 6만 정도로 보고 있어..

고연수군 "전멸이다"
깨져도 이렇게 깨진 전투가 없는데.. 멀 붙잡어??
당태종이 뭐란 줄 알어??
"한번으로 싸움으로 고구려를 깨뜨렸다"고 해..
"깨뜨렸다"고..
이 패전으로 "석황성, 은성의 군사가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사방 수백 리에
인가가 비었다"고 하는데.. 멀 붙잡어??
인터넷 다니면서 패전을 미화하는 특이한 습관있냐??

한번 싸움으로 군대가 사라졌는데 고연수는 당태중한테 무릎꿇고 항복하고,
멀 붙잡어??
6만이 사라지고 6만을 없애는 과정도 니 눈깔엔 죄다 붙잡은걸로 보이냐..

아는건 쥐뿔도 고구려밖에 없는지 고구려 얘기만 하면서
고구려도 헷소리를 해대고 모르면 어뜩하냐??
앞으로 먼 얘기할래??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19064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3%BC%ED%95%84%EC%82%B0&sop=and


네. 어그로님아, 그런데 이말을 어그로님 당신이 쳐해놓고는 그리 남보고 반박해

보라고 스토킹 짓까지 쳐하면서 여기 저기 댓글 단게  본인임을 금새 또

까먹었습니까?ㅋ 이 정신 없고 뻔뻔한 어그로님아.(가생이 제법 봐왔지만

이런 저급 막장 단기 기억환자인 어그로는 살다 살다 첨보는 ㄷㄷㄷ)
     
전략설계 14-09-19 18:04
   
고연수가 15만을 지휘했냐??
고연수, 고혜진이 15만 전군을 지휘하다 전멸했다??
이런 소리는 니한테 첨 듣는데.. 사서에 없는 소린데.. 역사도 창작하냐?

어디 고연수, 고혜진이 15만 지휘한 근거좀 대봐??
          
굿잡스 14-09-19 18:45
   
고연수군 15만이 역사서 어디서 나온줄 알어??

고구려는 책이 없고 다 중국역사서여..

구당서에 "고연수군 15만6천8백명 항복"

멀 붙잡긴 붙잡어 항복이라 나오는데..


고연수군 "전멸이다"

깨져도 이렇게 깨진 전투가 없는데.. 멀 붙잡어??

당태종이 뭐란 줄 알어??

"한번으로 싸움으로 고구려를 깨뜨렸다"고 해..

"깨뜨렸다"고..

>>

한번 싸움으로 군대가 사라졌는데 고연수는 당태

중한테 무릎꿇고 항복하고,

멀 붙잡어??

>>

ㅋㅋ 이 어그로님은 본인이 적은 한글도 독해력이

딸리십니까?  고연수군 15만 어쩌고 쳐하고는

전멸이다 한번에 어쩌고 이런 소릴쳐해놓고는
나는 한적 없다?ㅋ ㅋ

에구 어그로님아 유치원 한글공부부터 다시

하시죠 빡세게 이 정신나간 어그로님아

(혼자 그리 살면서 잘노시게)
전략설계 14-09-19 18:06
   
밀리니까 흙탕물 작전하는거 같아서,
나 저번 글에다 글 쓴다.. 글루 와라~~

요 토론 보시고 싶은 분들은 일루 오세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3829&sca=&sfl=&stx=&spt=0&page=0
대은하제국 14-09-19 18:26
   
고구려 사서 기록은 모두 고구려 멸망때 모두 불태워 없어졌나요?
     
나와나 14-09-19 21:58
   
유기, 신집 등이 언제 소실됬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가장 유력한 설이 고구려 멸망 때 안학궁이 불타면서 함께 없어졌다는 설이죠
뿡뿡 14-09-19 22:15
   
당나라가 고구려 책 태우는데 3일 걸렸ㄷㅏ고 하더군요.

다른건 몰라도 통사 하나 없는 이나라에서 학계 어쩌고 운운 하는거 자체가 신뢰가 안가네요...

의사가 당산 암이요...하면 믿지만 학게ㅔ 어쩌고 하면서 아니다 하면  별 ㅅㅂㄹㅁ...이런 생각 들어서 그닥 신뢰가 안가네요...
karin123 14-09-20 03:33
   
남은 고구려군이 안시성에 들어가 수성전에 큰 도움을줬다는데 사실인가요?

또한 확실치는 않겠지만 연개소문이 퇴각하는 당태종을 잡으러가면서 만리장성을 넘었다는데, 이때 고구려병력은 대략 얼마나 되나요?
꿈꾸는자 14-09-20 11:54
   
중국역사에서 구당서,신당서,자치통감 모두 5대10국의 혼란기와 송나라때 쓰여진건데..이들은 수나라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면서 당나라를 띄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래서 당태종의 정관의 치보다 더 뛰어난 개황의 치를 이룬 수나라를 세운 수문제조차도 태조나 고조라고 하지 않고 문제라고 칭하죠..수양제는 이보다 더 심해서 잔혹하다는 뜻의 양제라고 붙여버리죠..이들은 당나라를 찬양하는 기본입장으로 저술했기에...철저하게 수나라를 깎아내리고 당나라를 띄어주죠..그래서 황당한 내용이 많이 보이죠..수나라가 고구려와 싸울때는 병력수까지도 정확히 기록하고 패전하여 돌아온 수까지 기록하지만 당나라군의 패전기록과 출진한 병력수들은 대부분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특히 고구려군과 싸운후 최종적으로 패배한 전쟁은 그런면이 더하죠..
꿈꾸는자 14-09-20 12:01
   
특히 당태종을 심하게 찬양했는데 그로인해서 당태종의 고구려원정 참패기록조차도 제대로 기록됐다고 보기 힘듭니다..남아있는 사료가 우리측 자료들은 고구려멸망으로 모두 불타 사라져서 없어졌고 남은거 중국측 붓대끝 논리로 적은 저 사료밖에 없으니 참조는 해야겠지반 모든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될겁니다..
전쟁중에 고구려군 포로를 3만명을 돌려보내준다는 저 말도 안되는 기록도...그냥 웃을 뿐이죠....황당을 넘어서..
중국인들의 정신병을 의심할정도의 기록이죠 ㅋㅋㅋㅋ...
어쨌거나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군 15만 대군을 이끈 고구려군의 주장은 고정의 였고 그가 이끄는 본대 약 10만대군은 건재했네요...유인책에 말려서 패배후 항복한 고연수와 고혜진이 이끌고 간 병력은 5만정도로 추정되고요..많아도 5만 몇천정도...2만명을 목을 베고 3천5백명은 당나라 영토로 압송하고 말갈병 3천정도는 생매장 시켰다고 하죠...3만의 고구려군 포로를 놔준다..말도 안되는 코미디죠 ㅋㅋㅋㅋ..이거야 말로 중국인들의 붓대끝 논리죠 ㅋㅋㅋㅋ
10만대군의 고정의 본대가 있고 안시성에서도 양만춘이 이끄는 수만명의 고구려군이 있는데 5만정도의 고구려군이 당군의 유인책에 말려 죽어가는걸 보고 있다는건 말이 안되죠..이들의 공격으로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꿈꾸는자 14-09-20 12:18
   
고구려 멸망 너무 아쉽죠...당고종 이치와 실권자 측천무후를 비롯한 모두가 662년 제 2차 고당전면전에서 당군의 대패로 끝나면서 당태종때부터 수십년간 준비했던 고구려 원정계획을 완전히 포기합니다..
당나라 조정에서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그동안 계속해서 고구려에 패배했지만 계속됐던 군비 증강과 함선 건조를 중단시킵니다..사실상의 완벽한 항복선언이죠..더이상은 무슨 방법을 써도 고구려에 이길수없다는 현실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말죠....
그래서 그동안 고구려의 국력을 깎아먹기위해 계속됐던 국지전도 중단시키죠..얼마나 놀랐는지 몇년후 고구려에 연개소문 아들들간의 내전이 터진걸 뻔히 알면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습니다...
연남생이 장남과 가신들을 여러차례보내고 자신이 거느린 세력 호구와 병력등의 장부를 받치고 계속 설득 하지만 선발대가 현도성에 도착하고나서도 움직이지 않습니다..겨울이 지나고 해가지나서 666년이 넘어서야 드디어 급히 수개월간 준비한 50만이상의 대군으로 고구려 원정에 나서게 될정도죠..너무나 신중하고 혹시나 이게 함정이 아닌지 모든걸 면밀히 따지고 움직였을 정도로 신중한 행보를 보이죠...
고구려.....진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우리 한민족 한국인에게 불러일으키는 대상입니다...
결코 내분이 없었다면 멸망하지 않았을 한민족 역사상 다시없을 대제국......아쉽네요......
고구려 고당 전면전 3차의 기록은...너무나 한심합니다...내분으로 사분오열된 고구려.....이전까지의 고구려의 전쟁양상에선 볼수없는 일들이 벌어지죠..싸우지 않고 수십개 성들이 항복하고 연개소문 동생인 연정토는 평양성 남부를 방어해야할 평야성 이남지역을 송두리째 신라에 받치고 투항하고...내분으로 서로 살기위해서 같은 고구려군끼리 충돌하면서 사분오열되니 모든 고구려내 제후와 성주들이 고구려 멸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많은수가 싸우지 않고 당나라와 신라에 투항.....정말 짜증나는 결론이네요...이래서 후계자를 잘못세우면 큰일난다는 교훈을 얻는다는 ㅠ_ㅠ....
 
 
Total 19,98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787
2539 [다문화] 영국참수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네요 (18) 김투덜 05-24 5215
2538 [통일] 동아시아 조공무역과 유럽의 대항해시대. (8) 굿잡스 09-16 5216
2537 중국은 앞으로 5년안에 3차 세계대전일으킨다. (5) s 01-03 5217
2536 [기타] 친일파 (5) 맨유 03-23 5217
2535 [기타] 현재 미국과 중국의 gdp격차는 매년 줄어들고있습니… (42) ㅉㅉㅉㅉ 03-14 5218
2534 [한국사] 한국인은 유전자 검사 결과 중국인 유전자가 다른다?… (4) 뉴딩턴 08-24 5218
2533 한국이 중국과 다시 손잡고 갈수없는이유 (5) 스탈린 12-30 5219
2532 [기타] 가림토 문자는 정말 실존?? (48) 진이 09-15 5221
2531 [기타] 만주 북중국 몽골 초원은 원래 우리민족의 활동영역 (9) 슈퍼파리약 10-07 5223
2530 [일본] 호사카 유지 ㅡ 일본,극우 군대 생기면 첫 희생양은 … (9) mymiky 09-27 5223
2529 한국분들 좀 보세요~~~~~~~~~!!!!! (34) 한반도 05-16 5224
2528 [기타] ★ 한반도님. 조선족들은 통일을 바라고 있나요? (44) 한국인 05-16 5224
2527 [일본] 일본의 파렴치한 태도 내일신문 04-06 5225
2526 [일본] 日자민 ‘극우공약’ 파문… 韓·中에 영토 분쟁·역… (9) doysglmetp 11-21 5225
2525 [일본] 임진왜란 해전사 (1) 애국자연대 08-16 5225
2524 [기타] 음‥‥‥ 방금 뉴스 게시판에서 대마도나 독도가 한… (4) Jogiches 02-24 5228
2523 [기타] 고구려 존속기간은 1000년? (22) 대은하제국 12-13 5228
2522 [통일] 통일의 기회는 반드시 한번은 올꺼같습니다. (27) 임페라토르 01-05 5230
2521 [일본] 조선호랑이섬멸작전 일본의 속내 혹 아시는분 계신… (13) 아무나 03-31 5230
2520 [중국] [질문]중국에 순수 한족이 얼마나될까요? (2) 중국에 01-08 5231
2519 [한국사] 요서 백제 추적(bc 3세기~ad 5세기) (23) 감방친구 06-16 5231
2518 칭찬할만한 일본인이라니까 이사진이 생각나는 군요 (5) 567 03-18 5232
2517 [기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에 대해 생각해 보면요.... (136) 맥주군 11-18 5232
2516 [통일] "유럽과 아시아 철도 민영화는 부작용뿐" (13) 굿잡스 12-12 5234
2515 [기타] 세계지도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들 (29) 관심병자 04-16 5234
2514 [기타] 금,청사 우리역사인가???그럼 일본사는??? (22) toshake 07-16 5235
2513 [다문화] 곳곳에 스며들며 조직을 넓혀가는 화교들 (7) 내셔널헬쓰 04-12 5236
 <  641  642  643  644  645  646  647  648  649  6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