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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7 15:19
[통일] 주필산 전투는 고구려의 대패였다??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9,351  

아래 보니 이제는 스토커짓에 막말까지 계속하면서
 
이미 십년 전부터 연구되어 공개된 내용조차 제대로 모르는 어떤 무개념 인
 
을 위해서 주필산 전투에 대해서 새삼 다시 알아 보죠.(하긴 이러니
 
우리나라 사람이면 아는 그 유명한 광개토태왕의 기초 공격루트하나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말갈, 거란 정도 어쩌고 웃긴 소리나 하더만. 그기에 무슨 당
 
나라 이세민은 돌궐이나 거란, 말갈 획책 신라 연합 어쩌고는 전략 운운식이
 
고 우리 고구려가 주필산에서 효과적으로 당나라를 묶어 두면서 
 
이후 후방의 설연타로 하여금 교란 작전을 펴게 한건 꼼수 어쩌고나 쳐하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1818&sca=&sfl=mb_id%2C1&stx=becaus
 
 
 

 

이미 몇년 전에 고구려 전문가인

김용만의 <새로 쓰는 연개소문>에서 주필산 전투에 대한 사료 연구를

통해서 상당부분 밝혀지고 이미 공개된 내용을 새삼스럽게 올립니다.

우선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주필산전투는 고연수, 고혜진의 한방 전투가 전혀 아니라 6월 21일~6월 23
 
일까지 고당간의 백병전을 벌여 당나라군이 크게 승리한 초기 3일간의 전쟁
 
을 선발대 전초전이라고 본다면  8월10일까지 주필산에서 양군이 대치하며
 
벌인 공방전을 2부로 50여일간의 전투로 밝혀진 부분이죠.(즉 이말은 이세민
 
이 이끈 당나라는 요동성과 안시성사이에서 박혀 고구려 내지로 제대로 들어
 
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군사력을 소진하면서 식량 부족과 다가오는 겨울 추위
 
등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됩니
 
다.
 
결국 고구려는 효과적으로 고구려 내지를 보호하면서 요동일대 외곽 방어선
 
에서 당나라 군대를 철벽 방어 이후 당의 퇴각 과정에서 이세민을 추격까지
 
하게 된 것이고. 이후 1여년이 안되어 이세민은 병사로 켁)
 
 
 
 요동성과 백암성이 당나라군에 함락되자 연개소문은 대군을 징발하여 안시성으로 보낸다. 고구려 대군과 당태종 이세민 친정군과 이세적의 선봉대가  합쳐진  당나라 대군 간의 일전을 말한다. 주필산 전투는 6월 21일부터 시작되어 8월 10일 당나라군이 안시성으로 진영을 옮기면서 끝난다.
고구려는 백암성을 보호하기 위해 고돌발 장군과 1만명의 병사를 파견한다. 백암성 성주 손대음은 이세민에게 항복하기에 앞서 한번 망설였다. 이에 이세민이 크게 노했다는 기록이 <신당서>에 전해지고 있다. 이는 고돌발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고돌발이 데려온 병사는 1만은 이세민과 대적하기에는 일천하다고 판단하고 다시 이세민에게 항복하였는지도 모른다. 백암성을 지원 나온 고돌발은 계필하력의 당나라군과 싸워 1천명의 사상자를 내지만 당나라 장수 계필하력과 싸워 중상을 입히는 등 당나라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당나라군의 거센 저항에 백암성 입성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이 부분은 백암성편에서 자세히 다뤄볼 예정입니다.)  

백암성 점령한 이세민은 요동으로 돌아가 9일간 군을 재정비하고 고-당전쟁 진격로를 부하들과 숙의한 걸로 보인다. 이세민은 6월11일 요동성에서 출정하여 6월 20일 안시성 부근에 정착한다. 이곳을 주필산이라고 불렀다.
이세민과 이세적이 합해진 당나라군 수십만(흔히 당나라군을 육군 병력 10만, 20만, 30만, 50만명 등 학자마다. 다양하게 추정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세민과 이세적의 군대를 26만명으로 규정지어 보았다.)명과 고구려가 후방에서 급히 징발한 15만명, 고구려성 주변에 약 10만명, 고구려군은 총 25만명 정도가 대치했으리라 본다.
주필산전투는 크게 두 번의 전투로 나뉜다. 6월 21일~6월 23일까지 고구려-당간의 본격적인 백병전을 벌여 당나라군이 크게 승리한 초기 3일간의 전쟁을 1부라고 본다면,  8월10일까지 주필산에서 양군이 대치하며 벌인 공방전을 2부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주필산전투는 중국사서와 <삼국사기>에 자세히 나와있다. 주필산전투에 관련된 문헌을 인용해 보았다.

○[太宗이] 安市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에 高[句]麗의 北部傉薩 高延壽와 南部傉薩高惠眞이 [그들의] 군대 및 靺鞨의 무리 15만을 이끌고 와서 [安市城을] 구원하였다. 太宗은 이렇게 말하였다.“저들이 만약 군사를 정비하여 安市[城]과 연합을 하여 城壁을 쌓고, 높은 산에 의거하여 城中의 곡식을 날라다 먹으면서, 靺鞨의 무리를 풀어 우리의 牛馬를 약탈하여 간다면, [우리가] 공격을 하여도 함락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上策이다. 城中의 무리를 이끌고 밤에 도망가는 것이 中策이다. 우리와 싸움을 벌이면 사로 잡힐 것이다.”

○ [高句麗의] 어떤 大對盧가 [高]延壽에게,“내가 들으니 中國이 어지러우면 英雄들이 모두 일어난다고 한다. 秦王은 총명하고 용감하여 무너지지 않는 敵이 없고 싸움에 상대할 적이 없으므로, 드디어 天下를 평정하고 皇帝의 자리에 군림하니, 北狄이나 西戎에서 稱臣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금은 온 나라를 쓸어 와서 謀臣·重將이 다 [이곳에] 몰려 있으니, 그 銳鋒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군사를 돈좌시켜 날짜를 끄는 한편, 몰래 奇兵을 보내어 그들의 饟道를 끊는 것보다 더 나은 계책이 없다. 한달이 못되어 군량이 떨어져 싸우려 하여도 싸울 수 없고, 돌아가려 하여도 길이 없게 되니, 그때에 탈취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계책을 세워 주었으나, [高]延壽는 듣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安市[城]에서 40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였다.

○ 太宗은 ‘오랑캐가 나의 계책에 빠져 들었다’ 하고, 左衛大將軍 阿史那社尔에게 명하여 突厥의 騎兵 1천을 이끌고 가서 유인하게 하였다. 고구려가 늘 靺鞨의 銳兵을 앞세우므로, 社尔의 군사가 싸우다가 패하여 달아났다. [高]延壽는 ‘唐[兵]은 상대하기가 쉽다’ 하고 30리 진격하여 산기슭에 진을 쳤다. 太宗이,“내가 너의 나라에 强暴한 臣下가 있어 제 임금을 죽였기에 그 죄를 물으러 왔은즉, 交戰을 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하니, [高]延壽도 그렇다 하며 행동을 멈추고 기다렸다.太宗이 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 李勣으로 하여금 步·騎兵 1만 5천을 거느리고 서쪽 산고개에 진을 쳐서 賊과 대적케 하였다. 長孫无忌와 牛進達로 하여금 精兵 1만을 거느리고 [高]句麗의 후면 狹谷으로 나가게 하였다. 太宗 [자신은] 騎兵 4천을 이끌고 깃발을 눕히고 高[句]麗 [陣營의] 북쪽 산 위로 올라 갔다. 그리고 모든 군사에게 ‘鼓角 소리가 들리면 돌격하라’고 하였다. 이어 朝堂에다 장막을 설치하고 말하기를,“내일 한낮에 이곳에서 오랑캐의 항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날 밤에 [高]延壽의 진영에 流星이 떨어졌다.

○ 이튿날 고구려가 [李]勣의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바로 싸움을 벌였다. 太宗은 [長孫]无忌의 군사가 먼지를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고, 鼓角을 불고 兵幟를 사방에서 함께 들게 하였다. 고구려가 당혹하여 군사를 나누어 방어하고자 하였으나, 무리가 이미 어지러워졌다. [李]勣은 창을 든 보병을 이끌고 공격하여 그들을 무너뜨리고, 无忌는 그 후미를 쳤다. 太宗이 산에서 달려 내려오니, 고구려군은 크게 와해되어 2만급의 머리를 베었다.[高]延壽는 남은 무리들을 수습하여 산을 등지고 굳게 지켰다. 无忌와 勣은 [군대를] 합세하여 포위하고, 냇물의 다리를 철거하여 歸路를 차단하였다.太宗은 말고삐를 잡고 고구려의 營壘를 살펴 보고,“高[句]麗가 온 나라를 기울여서 왔으나, [大將旗를] 한번 흔들어 깨뜨렸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도운 것이다.”하고, 말에서 내려 하늘에 두번 절을 올려 감사하였다.[高]延壽 등이 事勢가 궁함을 헤아리고 바로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다. 轅門에 들어 와서 무릎으로 기어 앞에 나아가 절을 올리고 命을 청하였다. 太宗이,“이 뒤에도 감히 天子와 싸우겠는가?”하자, 두려워서 땀을 흘리며 대답을 못하였다.

○ 太宗은 酋長 3천 5백명을 가려내어 모두 벼슬을 주어서 內地로 들여 보내고, 나머지 3만명은 [그 나라로] 돌려 보냈다. 靺鞨 사람 3천여명은 목을 베었다. 노획물은 牛馬 십만필과 明光鎧 1만벌이었다. 高[句]麗가 크게 놀라서 后黃과 銀의 두 城이 스스로 빠져 달아나니, 수백리에 人家의 연기가 끊겼다.이에 驛을 통하여 太子에게 [소식을] 전하고, 아울러 여러 신하들에게 글을 내려,“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니 이와 같다. 어떻게 보는가?”하였다. 거동하였던 산을 駐蹕山이라 이름하고, 破陣圖를 그렸으며, 전공을 기념하는 글을 돌에 새겼다. 그리고 [高]延壽에게는 鴻臚卿을 제수하고, [高]惠眞에게는 司農卿을 제수하였다.斥候를 하던 騎兵이 [高句麗의] 諜者를 잡아 왔는데, 太宗은 그 포박을 풀어 주었다. 그가 사흘동안 밥을 먹지 못하였다고 하자, 밥을 먹여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신발까지 주어서 보내며,“돌아가거든 莫離支에게 전하라. 만약 군사의 동정을 알려거든 부디 내가 있는 곳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 가라.”고 하였다. 太宗은 모든 營壘에 참호를 파지 않고 斥候만 근엄히 할 뿐이었으나, 군사들이 군량을 운반할 적에 비록 單騎일지라도 고구려는 감히 약탈을 하지 못하였다.
<신당서>

고구려와 당이 첫 대오를 갖추고 싸운 전투는 고구려 장수의 그릇된 전략으로 당나라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성격은 본진 보다는 선발대의 성격이 크다. 선발대가 몇 명이었는지 정확한 숫자의 근거도 틀리고 1차 주필산전투에서  죽은 고구려군의 숫자는 한국과 중국 양측 기록이 모두 틀리다. 고구려군은 3일간의 전투에서 전사자가 <삼국사기>에서는 3만명, <자치통감> <신당서>에서는 2만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로잡힌 군사가 많은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는데 <삼국사기>와 <신당서>는 36,800명이다. <구당서>서는 156,8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후에 <신당서>에서 오기를 바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군은 첫 전투에서. 선봉대장 고연수와 고혜진이 사로잡히는 최악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포로로 잡힌 3만6천8백중 욕살이하 관장들 3천5백명은 중국 경내로 옮겨졌고, 말갈족 선봉대 3천3백명은 생매장 당했다. 나머지 고구려군 3만명은 돌려 보냈다. 당나라군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고구려군이 항복한 6월23일 당나라군 장수 왕군악이 전사한다. “당태종 이세민은 후에 1차 고-당전쟁을 회고하기를 신성-건안-주필산의 세차례의 큰싸움에서 고구려군과 싸워 양측 모두 큰 사상자를 내어 황제가 큰 공을 세우지 못해 한탄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특히 3대 전투에서 주필산전투는 요동성 점령과 함께 당나라군 최대의 성과로 보았는데, 전후 당태종 이세민이 안타까움을 표했다면, 당나라군의 피해가 상당히 컸으리라 유추해 볼 수 있다.
위의 <신당서>의 기록과 <삼국사기>에 실렸던 고구려군 3만명을 되돌려 보냈다고 하는데. 일반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김용만 선생은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에서 “주필산의 미스테리”란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항복한 고구려군이 36,800명이라고 기록한 <신당서> 등의 기록은 어떤가? 이 또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3만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신당서> “고려전”등에 기록된 고연수군을 포위한 당군의 숫자가 3만 명이었다. 그런 당군이 이렇게 많은 고구려군을 순순히 풀어줄 수는 없다. 3만의 고구려군 역시 처음부터 당군에 항복하지 않았거나, 당군에게 포위되어 고연수가 항복을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자발적으로 탈출했거나, 고구려군의 구원작전으로 구출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주필산 전투는 3일만에 끝난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필산 전투에서 활약한 당나라 장수들의 기록을 통해서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신-구당서>(양홍례열전)에는 당시 병부시랑이자 군대의 기밀을 책임지는 1급 군사참모였던 양홍례가 주필산 전투에서는 기병과 보병 24개군을 이끌고 고구려군과 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장손무기, 이세적과는 다른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또한 전군대총관 유홍기도 주필산 전투에서 공을 세웠는데, 대총관이라면 이세적과 비견되는 장군인 만큼, 고구려 선봉부대를 격파한 전투가 아닌 고구려 주력군과의 전투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양홍례, 유홍기의 활약은 주핋산 전투가 단 1회의 전투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고, 그것은 고구려군이 고연수가 항복했다고 붕괴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당문>에 따르면 주필산 전투에서 이세민은 이세적으로 하여금 장사귀를 비롯한 14명의 행군총관을 거느리고 고구려군의 서남면을 맡게 하고, 장손무기에게는 26총관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나아가 고구려군의 배후를 담당하게 하고, 자신은 북쪽 산에 올라가 전황을 살폈다고 한다. 장손무기가 이세적보다 더 상위의 관등을 가진, 이세민에 필적할  권력자였음을 감안하면, 이세적이 1만5000, 장손무기가 1만을 거느렸다는 기록보다는 장손무기가 이세적의 두배에 해당하는 총관을 거느렸다는 <전당문>의 기록이 사실에 더 부합하는 것이다.
장손무기와 이세적이 거느린 40명의 행군총관의 숫자라든가, 양홍례가 지휘한 24개의 병력을 고려한다면, 주필산 전투에 참여한 당군은 대략 30만명에 이른다. 물론 당군의 전체 병력은 물론 이보다 더 많다. 그런데 이러한 당의 대군이 안시성 북쪽에 도착해 6월21일~23일까지 고구려군과 대결을 한 이후, 7월5일 안시성 동쪽 고개로 이동할 때 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유홍기, 양홍례 등이 당군은 주필산 일대에 머물면서 건안성 공격 등 다른 대안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안시성 공격 외에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8월 10일 안시성 남쪽으로 진영을 옮기면서 뒤늦게 안시성 공략에 나서게 된다.
결국 당군은 1차 주필산 전투 이후 무려 50일간이나 주필산 전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이 진군하지 못했던 것은 고구려 지원군 본진이 당군을 이곳에 몰아넣고 포위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주필산 부근에서 펼쳐진 고구려군과 당군의 지루한 대결을 2차 주필산 전투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2차 주필산 전투는 고구려군이 원하던 작전은, 즉 고정의가 말한 지구전이며, 연개소문이 의도했던 작전의 결과였다.

-중략-

당군은 7월13일 전사자의 시체에 표식을 하도록 하고 이들을 일부 군대가 먼저 퇴각할 때 함께 귀환하도록 조치했다. 이것은 당군이 주필산에 머물 때 전투가 많이 생겨 전사자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즉 고구려군의 포위 공세가 심했음을 뜻한다.
당군은 1차 주필산 전투 이후 고구려의 후황성과 은성, 두성을 함락시켰다,  기록에는 성안에 있는 고구려군이 스스로 빠져 달아났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투를 통해 함락시켰을 것이다. 후황성과 은성이 천산산맥을 넘는 길목에 위치한 성이라고 할지라도 당군이 이를 토대로 고구려 내지로 진격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군이 안시성을 피해 천산산맥을 넘어 수암쪽으로 진군을 시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수암 지역에는 노성구산성 등 둘레 2~3km의 남짓한 고구려 성들이 있다.
도리어 당군은 곳곳에 포진한 고구려 성들에 둘러싸여 새로운 활로를 뚫지 못하고 요동성에서 안시성 이르는 좁은 공간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주필산 전투는 당군이 고구려 원정에서 거둔 대표적인 승리라고 말했지만, 고구려의 장군 2명을 포로로 잡은 것 외에는 특별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당군은 시간과 군량을 소모하면서도 고구려군을 격파시키지 못했고, 전략적 목표인 고구려 내지로 진격할 힘조차 상실해 갔다. 당군에게는 분명 전략적으로 실패한 전투였다. 반면 고구려군은 당군을 포위 압박해 적의 힘을 소모시켰으며 전장을 요동으로 한정시키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김용만 <새로쓰는 연개소문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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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09-17 16:04
   
강소성 몽롱탑의 회자되는 전설만 봐도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쫓겨 우물에 숨었다는 내용이 전해

올 만큼 당시 이세민이 이끈 당나라 군대가 얼마나 큰 대패를 하고 이후 퇴각 과정에서 고구려의 거

센 추격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는 정황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서토 전설이나

삼국사기의 기록만 봐도 짐작 가능한.(전통적으로 고구려는 육박전도 즐겨 했지만  몇

배의 대군이 올때는 요동일대 방어선에 효과적 지연작전을 펴고 이후 중앙대군이 와

서 쓸어 버리는 공조 체재외에 내지로 끌고와서 체력을 소진시키거나 후퇴하는 적군

을 맹렬히 추격해서 진형을 와해시켜 몰살시키는 전술에 탁월했죠.)


 두 달 동안 공을 들여서 쌓았던 토산을 고구려군에게 빼앗기고 안시성을 함락하는 데 실패한 당 태종은 회군을 하는데, 당시의 정황을 『삼국사기』에서는

‘요동에 이르러 요수를 건너는데 요택(遼澤)이 진창이 되어 수레와 말이 지나갈 수 없으므로, [장손]무기에게 명하여 1만 명을 거느리고 풀을 베어 길을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에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황제는 스스로 말채찍 끈으로 섶을 묶어 일을 도왔다.’
 
‘여러 군대가 발착수(渤錯水)를 건너니 폭풍이 불고 눈이 내려서 사졸들이 습기에 젖어 죽는 자가 많았으므로, 명령을 내려 길에 불을 피워 맞이하게 하였다.’
전략설계 14-09-17 16:16
   
첨보는 사람 글마다 매너 없이 지껄여댄 자업자득이다 인간아 니 인격이여~~

어제도 gagengi란 분한테 막말했네..

"중세의 시대적 상황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만 하시군요.(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개념 자체도 뭔지 다시금 생각해 보시길)"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3770
--> 서로 의견이 좀 다를 수 있지 딴 사람 글에다 "개념이 없네.. 엉뚱한 소리하네" 이딴 소리 하고 다니냐??
      니가 그렇게 잘 알어??

"전략 이사람은 동게에서도 아는척 혼자 다하면서 웃긴 소리하더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190648&sca=&sfl=wr_subject&stx=50&sop=and
-->  항상 지가 먼저 남 도발해놓고 링크질은 허벌나게 잘해요.. 그게 요즘 토론 패턴이냐??
     
굿잡스 14-09-17 16:20
   
지식은 딸리고 그렇다고 남의 말은 귀담아 들을

요량도 애초에 없어 보이고(뭐 보니 한글은 좀 아는 것 같은데 정상적 울 국사 교육도

못받는 사고도 넘 티내는) 뭔 의도로 안되는 지식에 여기 저기 까는 글을 계속해서

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막말에 반막 찍찍 계속쳐해보시든지.
          
전략설계 14-09-17 16:45
   
말 잘했다..
존대 받고 싶으면, 남한테 말 하는 버르장머리나 고쳐라..
니 첫마디에 존대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래서 자업자득이란 것이다.
계속 반말 들어야것다..
               
굿잡스 14-09-19 07:21
   
한심한 인간하군 본인 글에 부족한걸

이야기했다고 무개념 막말에 본인과 상관없는

다른 사람과의 이야기에까지 쳐와서는

주제와 상관도 없는 양아치 짓이나 계속쳐하고선. 쯧
전략설계 14-09-17 16:44
   
그렇게 팩트인 것처럼 떠들더만..
김용만 개인 의견이었네.. 그지??

쭉 보니까, 김선생 혼자 추론하는게 많고, 중국 역사서를 인용하면서 유리한 것은 인정하고,
불리한 것은 의문스럽다고 하네..
참전한 중국장군 얘기는 사서 내용 인정하면서, 고구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
이런건 나도 하겠다.. 이렇게 하면 주필산전투는 수백갈래 시나리오 만들 수 있어..
중국 사서를 인용하려면 다른 내용도 인정하고 들어가든가..

학계가 인정하는 기본적인 3만 포로설까지 인정안하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자유창작이야~~
1천년 더 전 얘기를 어디다 근거를 두냐??
나도 똑같이 중국 사서에 근거 두면서 인정할거 안할거 선별하면 시나리오 하나 만들어봐??
고연수와 고혜진이는 맨 앞에 서서 그 둘만 잡혔나부지..

니가 좋아하는게 '삼국사기'인데..
삼국사기에서 36,800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위에 써져있네..
삼국사기 그 내용은 인정안하고 선별이여??
36,800명의 큰 병력이 쌩 포로로 잡힐 정도면, 나머지 인원은 어떻게 개죽음 당하고,
그 군대의 군기나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됐겠냐??
내가 리플에다 썼지..
중국 사서에 "주필산 주변 성들은 알아서 항복하고 수백리에 인가에 사람도 없어졌다"고..
잘 싸웠는데 알아서 항복하고 민간인들까지 도망치냐..
자신들을 보호해줄 고구려군이 항복하고 도주해서 깔끔히 없어지니.. 사람들 심리가 튀는거여.

니가 틈만나면 인용하는게 '삼국사기'인데.. 저 김용만선생은 '삼국사기' 내용 부정하네..
김선생이랑 너랑 잘 안 맞는데 김선생 주장 내세우냐??
니가 인용하는 사람 글하고 니가 근거를 두는 자료가 서로 안 맞는데,
인터넷에서 계속 사기질칠래~~ 인간아..

삼국사기 내용 부정하는 사람 글 '옳타구나'하고 옮겨놓고,
툭하면 삼국사기 인용하는 뻔뻔스런 짓꺼리 하지마라~~ 그런게 모순이여..
     
굿잡스 14-09-17 17:52
   
참전한 중국장군 얘기는 사서 내용 인정하면서, 고구

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

이런건 나도 하겠다.. 이렇게 하면 주필산전투는 수백

갈래 시나리오 만들 수 있어..>>????ㅋㅋㅋ

자폭질 열심히 쳐하심. ㅋ 이건 뭔 번역기 돌려
해석하나?  올린 한글도 못읽는감 ㅋ


<고구려와 당이 첫대오를갖추고싸운전투는고구 려 장수의 그릇된 전략으로 당나라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러나고구려군의성격은본진보다는선 발대의 성격이크다. 선발대가몇명이었는지정확 한 숫자의 근거도 틀리고 1차 주필산전투에서 죽 은 고구려군의 숫자는한국과중국양측기록이모 두 틀리다. 고구려군은 3일간의 전투에서전사자 가 <삼국사기>에서는 3만명, <자치통감> <신당서 >에서는 2만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로잡힌군사 가 많은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는데<삼국사기>와 <신당서>는 36,800명이다. <구당서>서는 156,80 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후에 <신당서>에서 오기 를 바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군은 첫 전투 에서. 선봉대장 고연수와 고혜진이 사로잡히는 최 악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포로로 잡힌 3만6천8백 중 욕살이하 관장들 3천5백명은 중국경내로옮겨 졌고, 말갈족 선봉대 3천3백명은 생매장 당했다. 나머지 고구려군 3만명은 돌려 보냈다. 당나라군 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고구려군이항복한6 월23일 당나라군 장수 왕군악이 전사한다.당태 종 이세민은 후에 1차 고-당전쟁을회고하기를신 성-건안-주필산의 세차례의 큰싸움에서 고구려군 과 싸워 양측 모두 큰 사상자를내어황제가큰공 을세우지못해한탄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 특히 3대 전투에서 주필산전투는요동성점령과 함께 당나라군최대의성과로보았는데, 전후당태 종 이세민이 안타까움을 표했다면, 당나라군의 피 해가상당히컸으리라유추해볼수있다. 위의 <신당서>의 기록과 <삼국사기>에 실렸던고구려군3만 명을되돌려보냈다고하는데. 일반적사고로는도저히이해가 안되는부분이다. 김용만선생은<새로쓰는 연개소문전>에서 “주필산의 미스테리”란 소제목으로다음과같이분석하였다.

항복한 고구려군이 36,800명이라고 기록한 <신당서> 등의기 록은 어떤가? 이 또한 의문의 여지가있다. 3만이라고 하더라 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신당서> “고려전”등에 기록된 고연수군을 포위한 당군의숫자가3만 명이었다. 그런당군이 이렇게 많은 고구려군을순순히풀어줄수는없다. 3만의 고구 려군역시처음부터당군에항복하지않았거나, 당군에게포위 되어 고연수가 항복을 선언했다고하더라도, 이들이자발적으 로 탈출했거나, 고구려군의 구원작전으로구출되었을가능성 이더크다.
>
     
굿잡스 14-09-17 17:58
   
딱 보니 애초에 전반적 관련 지식도 없고 올려준 한글조차 혼자 엉뚱한 소리쳐하면서 국까는 열심히ㅋ
말하는 수준도 딱 본인 수준하군 그기에 사료 한줄
제대로 못대면서 자폭질이나 열심히ㅋ
쯧쯧
     
전략설계 14-09-18 06:54
   
책만 배껴다 옮기지 말고..
니 의견을 얘기해봐!!
하다 보니 막히냐??
     
전략설계 14-09-18 07:04
   
너도 머리 있음 생각해봐..
김용만이 의문을 갖는 것은 3만이 어떻게 3만6천을 포로로 삼고, 3만을 풀어주냐 그거지..
주필산에 당군이 3만이 있었다는 것이 틀린거여..

당시의 상황을 보다 정확히 기술한 <<전당문>>에는 장손무기가 26총관을 거느렸고, 이세적도 장사귀를 포함한 14명의 행군 총관을 지휘했다고 나타나 있다.
또 <구당서>와 <신당서>의 <양흥례 열전>에 따르면 병부시랑 양홍례가 보,기의 24총관을 이끈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주필산에 있었던 당군의 규모는 약30만이 된다.

다른 책에 나온 내용이다잉~~
책도 여러 개를 보고, 모두가 인정하는 3만포로설 인정도 안하는 책 보고,
이런데서 팩트인양 썰 풀지 마란 말이야~~
          
굿잡스 14-09-18 07:50
   
고구

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ㅋㅋ

이건 뭔 본인이 쳐한 허접소리 아님 ㅋ 이정도면 난독증 수준인가?ㅋ 번역기 사용 한다고 해석이 안되나? 본문 내용을 읽고 덧셈 뺄셈도 안되는건가??초딩 산수를 여기서 가르쳐 줘야 하남? ㅋㅋ

선발진 고구려의 3일간 피해규모가 저기에 어디에

3만 생포에 3만 돌려 보내니 도합 6만 어쩌고

쳐하남?  산수가 도저히 안됨??

양측 기록에 따라 2,3만 전사에 생포는 신뢰가능한

숫자인 3만6800명 그중에서 3500명은 서토경내로 3300의 말갈족은 생매장.  그 빼고 나머지 3만이 뻔히 적으로 둔갑할게 뻔한데 고스란히 돌려줘다는건 캐구라가 높고 실상은 당군도 왕군악장수가 전사하는등 결국 생포한 숫자는 실질 6800명 밖에 안되었다는 산수가 그리 이해 안되남?  ㅋㅋ
결국 3일간 고구려 피해는 전사자가 최대 3만
생포 6800명 도합 3만 6800명
대체로 안시성에 보낸 총 고구려군이 15만 정도로 보니 못해도 11만 정도의 대군은 여전히 활동.
이러다보니 고정의군에 의해 주필산에서 50여
일간 발목이 묶여 계속해서 피해와 피로 누적에
9월 말 이세민은 결국 고구려 내지도 밟아 보지도 못한채 철수선언.

이정도로 초딩 산수 계산까지 친절하게 해줬는데도
허접 쉰소리 계속 쳐할 인간이면
전형적 어그로라고 볼 수밖에.
               
전략설계 14-09-18 20:35
   
상식을 갖고 생각을 해봐..
11만이나 벌판에 주둔해있는데..

645년 7월~9월까지 3개월이나 당나라가 안시성에 토성이나 쌓고 한가하게 공성하고 있겠니?
11만이 언제 때릴지 모르게 주변에 있는데 공성에 들어가냐고??

주필산 전투가 6월21일~6월23일이여..
안시성 전투가 7월, 8월, 9월이여..
주필산에서 50일을 묶였으면, 안시성을 어떻게 때려?? 안시성은 뭐여??

6월말에 벌판의 대군을 물리치고 나서, 7월부터 공성에 들어간 것이지..
사서의 내용 안보니..
당태종이 고연수보고.. 직공할까 주변성 칠까 했더니..
고연수가 안시성 까칠하다가 피하라고 했단 내용..
그러나 수나라 짝 되기 싫어서 주변 성 정리하려고 7월부터 안시성 친거여..
세상에 10만 대군이 벌판에 남아있는데, 공성한다고 토성 쌓고 난리치는 군대가
세계에 어딨냐??

주필산에서 50여일 발목이 묶여있는데, 안시성 공성은 또 머여??
                    
굿잡스 14-09-18 21:00
   
주필산에서 50여일 발목이 묶여있는데, 안시성 공성은 또 머여?? >??

하 이건 뭔 이 인간은 도대체 한글은 아는 건가?? 정말 번역기 돌려

글쳐 읽남? 참나 ㅋㅋ


<주필산 전투는 6월 21일부터 시작되어 8월 10일 당나라군이 안시성으로 진영을 옮기면서 끝난다. >  이 초반 글 문구 못읽음?? ㅋㅋ

<장손무기와 이세적이 거느린 40명의 행군총관의 숫자라든가, 양홍례가 지휘한 24개의 병력을 고려한다면, 주필산 전투에 참여한 당군은 대략 30만명에 이른다. 물론 당군의 전체 병력은 물론 이보다 더 많다. 그런데 이러한 당의 대군이 안시성 북쪽에 도착해 6월21일~23일까지 고구려군과 대결을 한 이후, 7월5일 안시성 동쪽 고개로 이동할 때 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유홍기, 양홍례 등이 당군은 주필산 일대에 머물면서 건안성 공격 등 다른 대안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안시성 공격 외에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8월 10일 안시성 남쪽으로 진영을 옮기면서 뒤늦게 안시성 공략에 나서게 된다.
결국 당군은 1차 주필산 전투 이후 무려 50일간이나 주필산 전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이 진군하지 못했던 것은 고구려 지원군 본진이 당군을 이곳에 몰아넣고 포위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주필산 부근에서 펼쳐진 고구려군과 당군의 지루한 대결을 2차 주필산 전투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2차 주필산 전투는 고구려군이 원하던 작전은, 즉 고정의가 말한 지구전이며, 연개소문이 의도했던 작전의 결과였다. >

그리고 이글도 못읽겠니?? ㅋ 번역기가 잘 안돌아감?ㅋㅋ 한심해서리.
               
전략설계 14-09-18 20:42
   
고구려와 당이 첫 대오를 갖추고 싸운 전투는 고구려 장수의 그릇된 전략으로 당나라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성격은 본진 보다는 선발대의 성격이 크다. 선발대가 몇 명이었는지 정확한 숫자의 근거도 틀리고 1차 주필산전투에서  죽은 고구려군의 숫자는 한국과 중국 양측 기록이 모두 틀리다. 고구려군은 3일간의 전투에서 전사자가 <삼국사기>에서는 3만명, <자치통감> <신당서>에서는 2만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로잡힌 군사가 많은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는데 <삼국사기>와 <신당서>는 36,800명이다. <구당서>서는 156,8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 이게 니가 발제글로 쳐 올린것이여..
머라고 써 있냐??

니가 툭하면 인용하는 삼국사기에 "전사자 2만에 포로 36,800명"이라고 돼 있고..
다른 중국 사서도 비슷해..

너는 니가 쓴 글 내용도 부정하냐??
지 글도 지가 부정하는데, 내가 니보고 머라 해야 인정하겠냐?/
삼국사기 내용 부정하고, 중국 사서 내용 부정하면..
너하고 김선생 하고 둘이서 타임머신 타고 가서 보고 와서 보고해라~~
그 수밖에 없다..
                    
굿잡스 14-09-18 21:04
   
그러니까 번역기 돌려서 보는 건지 한글도 못읽는 따라단니면서 허접

쉰소리나 쳐하는 인간님아

저글에 어디서 전략 본인이 말하는 이런 셈법이 있음?

<참전한 중국장군 얘기는 사서 내용 인정하면서, 고구

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

이런건 나도 하겠다.. 이렇게 하면 주필산전투는 수백

갈래 시나리오 만들 수 있어..>>

윗글 니 말대로면 사상자 3만에 포로 6만 그기에 3만 돌려 줬다는 말인데

저 글에 어디에 그런 말이 있나고?? 응

제발 본인 무식한 난독증 셈법에 어디에 그런 사료적 근거가 있는지

들고 와보라니가 뭔 계속 허접 소리 쳐하남?

이건 뭔. 밀터에서도 허접쉰소리 쳐하다 다른 여러 사람에게 모다구리

당하더만 이렇게 사는게 취미샹활임?. 에휴.. 번역기 성능이 안돌아가짐??ㅋ
                    
전략설계 14-09-19 05:38
   
니가 주구장창 떠드는 삼국사기에..
"전사자 2만, 포로 36,800" 나와 있는데..

왜 포로 3만도 인정안하냐고??
니가 쳐 올린거 아니여??
자기가 쓴 것도 자기가 부정하냐??
에라이~~
                         
굿잡스 14-09-19 06:49
   
고구

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

ㅋㅋㅋ

본인이 지가 이런 글을 쳐 올려놓곤

누구보고 헛소리임?? 이건뭔 기본

한글도 제대로 못적나ㅋ

내가 위에서고 본문에서고 누누히

이야기 하니 무슨6만 생포해서

그중에 3만 돌려 보내준것마냥

본인이 이야기 쳐해놓고 참나

어이없어서리 ㅋ
     
전략설계 14-09-18 07:47
   
니가 신봉하는 김선생의 추론도 문제가 많은게..

주필산은 안시성 바로 옆이여~~
공격군이 수가 부족하면 들어갈 수 없는 사지여..
망치(고연수군)와 모루(안시성)지..

3만 군대가 이 사지로 들어갔는데, 고구려군 3만이 포로가 되고 3만을 풀어줬다..
그럼 고구려군은 흑싸리껍질도 안되는 군대로, 고구려군을 욕보이는 소리여..
주필산에 들어간 3만이고, 산을 에워싼 군대는 30만이지..
그니까 3만6천 고연수군이 항복을 한거여..

당의 중군, 장손무기군, 이세적이 삼면에서 공격했는데.. 3만이여..
고구려가 6만정도 선발진을 보냈는데, 30만이 넘게 출병한 당이 정면대결인데
거기다 3만만 꼴랑 보냈다는 니 김선생도 답답허다..

당군 3만에 다 털렸다는 누구도 하지 않는 해괴한 해석, 고구려 무시하는 소리여..
책도 하나보고 여기서 썰풀지 말고 여러가지를 봐..
나 집에 책이 3천권 있고, 한국 전쟁사도 100여권 있지만, 그것을 선별하지,
(비싼 오스프리만 300권 가지고 있다)
너처럼 하나 가지고 맹신해서 이런데서 썰풀고 그거 하나만 맞다고 배껴쓰고 그러진 않어..

한국고대전쟁사 제대로 알려면, 임용한님 책좀 봐라..
전쟁과역사 3권짜리 구판, 신판 다 가지고 있는데..
이런거는 기본적으로 보구 이런데서 썰 푸라고..
물론 그분이 다 맞을순 없지만..
니 김선생처럼 역사서의 한 부분 가지고 전체를 뒤엎는 의문과 추론이 아니라..
당시 주필산전투 상황만 가지고도 10여페이지 걸쳐 상세히 설명해놨어..
          
굿잡스 14-09-18 08:08
   
쉰소리 그만 하고 실질적 사료 한줄이나 구체적 근거
들고 와서 반박쳐하길 바람. 어디 올려준 한글도
제대로 이해못하면서 엉뚱한 소리나.전형적 어그로 국까마냥 말장난 그만쳐하고.
          
전략설계 14-09-18 21:01
   
닥쳐!!!

어디서 책하나 사봤다고 그거 그대로 읊지는 않는다.
김선생꺼 그대로 읊지를 말고 니 얘기를 하라고..
지금 나를 김선생하고 토론 붙이는거냐??
               
굿잡스 14-09-18 21:05
   
김선생꺼 그대로 읊지를 말고 니 얘기를 하라고.. >?? ㅋㅋ

멍청한 건가? 어자피 논문이고 사료는 출처로서 인용하는 거고

지금까지 보면 제시한 한글도 제대로 못쳐 읽어서리

역사 운운하면서 본인 글에 사료 한줄 못들고와서 허접 말장난이나

쳐하고 그기에 덧셈 뺼셈도 못하는 전형적 어글로하군 . 한심해서리.

(역사 토론의 기본도 모르는 어그로 인간하군. 쯧)
               
나와나 14-09-18 22:31
   
닥쳐!!!
------------
ㅋㅋㅋㅋㅋㅋ
이건 뭐죠???

굿잡스님이 매너없느니 뭐니 하더니 자기는 이런 글까지 썼었군..

설령 진실을 이야기할 지라도 이딴 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안 들어줍니다

가생이는 반말이나 모욕적인 글을 쓰면 G먹고 쫓겨나니 조심해서 쓰시길..
               
전략설계 14-09-19 05:42
   
나와나님..
굿잡이한테 잘못한거 없이 가만히 있어도..
굿잡이가, 님 글에다 "엉뚱한 소리하네", "개념 없네" 요런 소리 쳐하고 갑니다.
어제도 딴 사람한테 생뚱맞게 또 한건 하더만요..
토론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디가나 있는 저런 부류 잘해줌 앙돼요!!!
저런 애들한테 이럽니다. 잘해쭘 못써요!!!
                    
굿잡스 14-09-19 07:00
   
ㅋ 정작 남은 별말도 안하고 발제글에

잘못된 부분 언급한걸. 무개념으로
이전부터 함부로 막말쳐하던 인간이

뭔 아쉽다고 남까지 구차하게 끌고
오남?  댓글마다 상관없는 다른 사람글의
주제에까지 양아치 짓하는걸 뻔히
쳐하곤 ㅋ. 참나 할짓이 그리 없음?쯧
                    
전략설계 14-09-19 13:08
   
니 쓴 글을 니가 한번 쳐봐라..

남 죽어라 글 써놓은면.. 밑에다 "엉둥한 소리하네" "개념 없네"
이게 제정신이여??
난 악플러는 존대할 필요를 못 느낀다. 됏냐??
          
굿잡스 14-09-19 07:59
   
[高句麗의] 어떤 大對盧가 [高]延壽에게,“내가 들으니 中國이 어지러우면 英雄들이 모두 일어난 다고 한다. 秦王은총명하고용감하여무너지지않 는 敵이 없고 싸움에 상대할 적이 없으므로, 드디 어 天下를평정하고皇帝의자리에군림하니, 北狄 이나 西戎에서稱臣하지않은것이없었다. 지금은 온 나라를 쓸어와서謀臣·重將이 다[이곳에] 몰려 있으니, 그 銳鋒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지금 으로서는 군사를돈좌시켜날짜를끄는한편, 몰래 奇兵을 보내어 그들의饟道를끊는것보다더나은 계책이 없다. 한달이못되어군량이떨어져싸우려 하여도 싸울 수 없고, 돌아가려 하여도길이없게 되니, 그때에탈취할수있을것이다.”라는 계책을 세워 주었으나, [高]延壽는 듣지 않고 군사를 이끌 고安市[城]에서 40리 떨어진곳에주둔하였다.

전략 이 무식한 인간은 본문에 버젓이 이런

사료 올려줘도 이게 뭔 내용인지

그리 이해가 안되서 허접삽질이나 계속 쳐하는
한심해서리ㅋ

이정도면 한자 기본급수 좀 아는 초딩보다 못한
이해력 하군 ㅋㅋ
전략설계 14-09-17 16:56
   
645년 고구려원정 이전부터 당태종하고 설연타가 고구려 원정에 대해 신경전을 벌였고,
설연타가 20만을 보내 당나라를 공격하고,
요동에 거의 대부분의 군대를 보낸 당이 요동에서 철수한 그 군대로 설연타를 막은 것은,
김선생 같이 똑같은 사서에서 인정하고 안 하고를 선별하는 하나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역사의 정설입니다.

굿잡아~~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한 계기가 된게,
607년 돌궐 계민가한 막사에서 고구려 사신과 마주친 것인데..
영양왕이 사신을 보낸 것도 이런 양동작전이었고..
설연타 646년에 없어진후 고구려는 멀리 서돌궐 수도(사마르칸트)까지 사신을
직접 보내기까지 했는데..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돌궐과 고구려의 협공은 고구려의 심혈을 기울인 무기이자,
고구려침공을 결정할만큼 수당의 아픈 급소여..

굿잡아~~
"너같음 20만이 등뒤를 때리는데 군대를 계속 요동에 두겠냐?"
     
굿잡스 14-09-17 19:00
   
645년 고구려원정 이전부터 당태종하고 설연타가 고

구려 원정에 대해 신경전을 벌였고,

설연타가 20만을 보내 당나라를 공격하고,

요동에 거의 대부분의 군대를 보낸 당이 요동에서 철

수한 그 군대로 설연타를 막은 것은,

김선생 같이 똑같은 사서에서 인정하고 안 하고를 선

별하는 하나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역사의 정설입니다.>>??ㅋ

설연타 20만 운운은 641년 아님? 글구 고정의에

막혀 내지로 들어가지 못하고 피해가 가중되던

당나라는 앞서 당휘하 일부 돌궐군이 후방으로 빠지

나 645년 9월 18일에 가서야 당의 이세민 본진은 철수 선언.말에 본격 철수하면서 태원에 12월 14일부터 이후

다음해 8월까지 토벌이 이어지고 이것도 돌궐계 세

력의 힘 입은바 클 것임.

이게 뭔 소리인 알겠음? 설연타 남하는 12월에 가서

고 당군은 고정의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막혀 9월까지도

이세민 본진은 내지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해와 피로가 가중되는 가운데 9월말 철군.

설연타의 움직임이 당군의 회군을 재촉한 역할도

분명 있었지만 당 이세민 본진 조자도 수개월

별볼일 없이 식량부족이고 점차 매서운 만주벌판의

추위속에 강행을 자초했다가는 더 큰 타격을 받았을

흐름.

어설프게 국까질 하면서 막말이나 쳐하는게

당신 수준임? 한심하군 쯧
     
전략설계 14-09-18 07:20
   
그럼 안시성이 언제 나오는데??
고연수군 날려버리구..
고연수 앞세워서 당태종이 평양직공을 할까, 주변 성들 먼저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수양제가 직공하다 고구려한테 35만 몰살당한 기억이 있어, 주변성부터 정리하는데..

645년 7~9월 안시성을 한창 공략하는데..
요동에서 본토로 후딱 가니???
뒤에 고구려군 추격 달고 한달이면 후딱 가서 또 다른 전쟁을 하냐고??
당태종 퇴각길이 요동의 습지니 해서 험난했는데, 신속하게 말 달려서 다른 전쟁을
한 것처럼 착각하지 마라..

또 다른 각도에서..
12월에 산서성 타이위안에서 붙었다면, 설연타가 남하를 언제 했겠냐??
설연타가 남하하는거 알고 퇴각에 들어간게 시간상으로 맞나자??

니 대갈로는..
9월18일에 퇴각했으면, 9월19일에나 중국본토에서 붙어줘야 설연타 남하때문에
퇴각했다 인정할래??
뒤에 추격군을 달고, 대군이 습지를 개척하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퇴각하는
경우를 생각해봐..

설연타의 20만 대군이 남하하려면, 하루 아침에 후딱 남하하겠니..
일본도 15만 쳐들어오는데 얼마나 티를 냈으면 우리쪽에서 사람을 보내 정탐가고도,
1년이 더 걸려 침공했어..
니 말대로 12월에 설연타가 산서성까지 올 정도였으면,
이미 9월말 시점에는 선발진이 출발했거나, 당침공 준비 소식이라도 당에게 알려졌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역사여..
말 잘했다.. 니 말대로 하니까 설연타 남하하고 당태종 퇴각 시간이 딱 들어맞는다.
          
굿잡스 14-09-18 08:35
   
ㅋ시간 걸리는건 누가 모르남?ㅋ 날짜까지 친절하게 다 올려주니 뭔 뻔한 쉰소리 계속 쳐하남?실제 한창 고당격전
일때 설연타 세력이 바로 움직였다면 이세민 본진 친청군이 알아서 전선에 미리 일부병력 세워두고 일찍히
태원으로 가는걸 서둘려겠지. 당 이세민도 요동출전
전에 설연타에 미리 엄포를 놓아서 설연타도 숨죽이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말은
요동의 전황이 고정의군에 당군이 막혀 고구려에 점차 유리하게 돌아가자 설연타 세력도 남하를 결심하게 되면서 12월에 가서야 양측이 맞붙게 된 것이고

국까질 하기전에 제발 좀 생각좀 하고 댓글질
남발바람.
          
전략설계 14-09-18 20:57
   
인제 시간 걸리는거 이해했어??
당태종이 본토에 방어군을 두기야 뒀지.. 패했으니 문제지..
아무리 당나라라고 주력군 30만이상이 요동으로 건너갔는데,
본토에 20만 대군 막을 군대가 있겠냐??

고구려원정 떠나기 전부터..
설연타 가한이 고구려원정 같이 가자고 한거 당태종이 거부하고 신경전 벌렸는데..
당태종이 요동에 있다고 설연타 생각 안드겠냐??

12월에 북경 서쪽 산서성에 남하했다면,
20만 대군이 언제 출발했겠냐??
20만 대군이 움직이는데, 설연타 전 지역에서 병력 모으는 과정,
군수품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9월 이전에 당태종 귀에 들어갔다고 보는게 상식적 아니냐??

당태종이 요동성을 친게 5월이여..
그거 친다고 출발하고 미리 준비하고 한거 생각하면 연초부터 시작한거여..
근데 연말에 출물할 적을 미리 예상하고 배치했을 것이라고?
먼 소리여.. 말이 막히니까 혼잣소리하냐..

수나라, 당나라는 5호16국을 겪고 나온 나라라.. 북방민족에 대한 경계가 강한 나라여..
그래서 수양제가 돌궐에서 고구려사신을 보고 둘이 붙을까봐
고구려 침공의 원인이 됐고,
당태종이 말갈병만 추려서 생매장한 것도 이때문이여..
멀리 요동으로 대군을 몰고 갔는데, 설연타 걱정을 안하고 그 군대 이동에 반응을 안 보였다면, 그건 니수준이나 되니 그러지, 당태종이람 그럴 수 있겠냐..
니 말은 빈 집에 20만이 쳐들어왔는데 남 일처럼 보라구??
               
굿잡스 14-09-18 21:07
   
당태종이 요동성을 친게 5월이여..
그거 친다고 출발하고 미리 준비하고 한거 생각하면 연초부터 시작한거여>?? ㅋㅋ

니 말대로 사전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면

한창 요동성 칠때 확실히 본진 빠진 당나라 뒤에서 탈탈

터는게 설연타에게 훨씬~~ 유리하고 수월하지 뭐하려 미쳤다고 이후 당나라 대

군본진 다 들어와서 정비될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줬다가 이후 맞짱떠서

1년도 안되서 설연타 캐박살 뿌리까지 뽑힘? ㅋ

이건 뭔 본인 자위추측글만 열심히 쳐하면서 제대로 근거 하나 사료 한줄

안들고 오면서 큰소리만 치는 ㅋㅋ. 에구 한심아. 한심아.

(이건 뭔 역사를 초딩 수준에서 날로 쳐먹으려는 . 그것도 남이 하나 하나

친절히 제시하면 이후 요리조리 말장난 자위적 공상이나 쳐하군)
               
전략설계 14-09-19 05:47
   
니가 설연타 아버지냐??
그게 1400년전에 설연타 맘이지?? 니 맘이여??
당군이 요동에 있을 때 때려야 한다 이런거까지 설연타가 니 생각대로 해야돼??
당 주력이 본토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뒤통수 때리기 좋은거지..
인제 출병해서 딱 한판 벌였는데, 그때 뒤통수 때리자는 머저리같은 생각
니 말고 누가 하겠냐??
하는 족족 사고가 딸리냐..

역사적 사실은 겸허하게 받아들여..
니가 12월에 타이위안에서 한판 떴다고 써놓고,
5월에 당군 요동에 있을 때 때리는게 유리하다고..
그건 니 생각이고??
역사적 사실은 아니잖어..
할 말 없으니까, 인제 역사를 막 지지고 짬뽕질이나 하냐??
밀리니까 짬뽕질 할 타임이여??

돌궐, 설연타, 철륵하고 고구려는 평화시에도 연락체계를 가지고 있어..
너 사마르칸트 가본 적 있냐??
엄청 멀어요.. 천산산맥이 뱅기에서 보이는데.. 쭉 산이여..
거기를 넘어서 고구려사신이 사마르칸트까지 왔다갔다 해..
그 전쟁통에 설연타에게 사신을 안 보냈겠냐..
보내면 먼 얘기했겠냐..
"뒤에서 때려달라", "때려달라", "우리가 무너짐 다음은 설연타 니들차례다"
요랬겠지..
안시성에 한참 싸우던 7, 8, 9월에 고구려사신이 설연타에 안 들어갔겠냐..
설연타도 당의 고구려원정을 생존차원에서 지켜본 것이고.. 그래서 당태종
가기전부터 따라간다고 신경전을 벌였던 것이고..
요동성 무너지고 주필산에 고구려군 깨지고, 안시성에서 멈춰서서
당군이 공성하고 있으니까.. 결단 내려서 출발했고..
그 규모를 보면 요동에 보낸 주력이 아니고서는
막을 수 없어 철군한거지.. 실제로도 그랬고..
요렇게 역사를 정리하라니까..
책 한번 사본거 티낸다고 배껴서 옮기지만 말구~~
니가 말한 시간대가 다 맞자나..

6월에 주필산에서 고구려 야전군 깨지고..
7월, 8월, 9월 안시성에서 공성전 들어가고.. (토성만 2달 쌓았다)
(11만이 뒤에서 우글대는데, 어떻게 한가하게 공성한다고 토성쌓고 자빠졌겠냐,
등뒤에서 기습당하기 전에 야전군을 먼저 치고 공성들어가야지)
9월에 퇴각하고
12월에 니말대로 당 본토, 북경 서쪽까지 설연타가 남하했으니..
설연타가 20만대군 전국에서 거병해서 본토로 남하하는 기간,
당군이 퇴각해서 본토에서 설연타를 상대할만한 기간..
딱 들어맞네..

니 주장이 없어서 내가 김선생하고 논쟁한거 같다..
담부터 이런 식으로 토론하지마??
아무래도 니 상대하는게 시간낭비같단 생각이 든다.
                    
굿잡스 14-09-19 06:42
   
ㅋ 남이 다 언급한 똑같은 소릴 혼자

뭔 다른 것처럼 다람쥐 쳇바뀌 돌아가는

소리만 쳐하는

글구 사료에 친절히 한글까지 설명해줘도

끝까지. 고구려 15만이 다 대파된 거
마냥 허접 소리나 쳐하는ㅋ


위 사료 어디에 주필산 전투에서 15만 대군이 전멸쳐했니

같은 소리가 있음?? 정작 총지휘관

본대인 고정의군은 1차전에서 나서지도

안고 그아래 품계가 훨 낮은 고연수 고헤진

일부 선발대 부장급 정도 생포기록을

도대체 니가 말하는

전사 3만 제외하고 6만 포로에

3만은 돌려보냈다는 사료기록이 어디에

있나니간??  언제까지 기다려줌???ㅋ
                    
전략설계 14-09-19 08:51
   
"고구려 15만이 전멸했다"  <-----

내가 이렇게 말한 부분 있으면 찾아봐???
인제 안한말 했다하고 진흙탕 만들어서 빠져나가는 전술 쓰냐??

니가 김선생 책자 고대로 배껴서..
3만 포로설도 아니라며?? 주필산에서 50일간 잘 싸웠다며??
니가 옮긴 글에..
전사 2만, 포로 36,800이 나와 있다니까..
니가 철석같이 인용하는 삼국사기에 말이다..

안 맞자나..
야지에서 정면대결 시작하자마자, 6만이 홀라당했는데..
나머지 군대가 싸워지냐고??

전사 2만, 포로 3만6천 이 삼국사기 내용부터 뒤집어보라니까??
김부식이 니보다 몰라??
삼국사기는 머하러 인용하냐??
니가 해놓고도 꼬이자너??

지가 지글을 부정함 어뜩해??
누가 저 내용을 옮겨오래??
니가 한거 아냐??
                         
굿잡스 14-09-19 12:06
   
"고구려 15만이 전멸했다"  <-----

내가 이렇게 말한 부분 있으면 찾아봐???
인제 안한말 했다하고 진흙탕 만들어서 빠져나가는 전술 쓰냐??

>>>>???  ㅋㅋㅋ 이건 뭔 어그로가 진흙탕 이야기 쳐하네 ㅋㅋ

어그로가 주제에도 맞지 않는 여기 저기 글에 자기글 쳐 보라고 캐소리

짝찍해서 윗 본문 반론글을 올린 걸 고새 까먹은 건가?

이정도면 어그로에 단기 기억 환자 구만 ㅋ.



<<<<<<<<<<

전략설계 14-09-15 11:38  너 고연수 가지고 자꾸 헷소리할래??
니가 15만을 봤어??
고연수군 15만이 역사서 어디서 나온줄 알어??
고구려는 책이 없고 다 중국역사서여..

구당서에 "고연수군 15만6천8백명 항복"
멀 붙잡긴 붙잡어 항복이라 나오는데..

실제 전투에서, 고구려군 1만 전사.. 산 위의 고연수군 3만6천800명 죄다 항복이고..
이중 고연수를 비롯해서 군 간부 3,500명 당으로 압송이고..
말갈병은 생매장이고..
도망간 병사 포함해서 실병력을 임용한님 저서 "전쟁과역사" 6만 정도로 보고 있어..

고연수군 "전멸이다"
깨져도 이렇게 깨진 전투가 없는데.. 멀 붙잡어??
당태종이 뭐란 줄 알어??
"한번으로 싸움으로 고구려를 깨뜨렸다"고 해..
"깨뜨렸다"고..
이 패전으로 "석황성, 은성의 군사가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사방 수백 리에
인가가 비었다"고 하는데.. 멀 붙잡어??
인터넷 다니면서 패전을 미화하는 특이한 습관있냐??

한번 싸움으로 군대가 사라졌는데 고연수는 당태중한테 무릎꿇고 항복하고,
멀 붙잡어??
6만이 사라지고 6만을 없애는 과정도 니 눈깔엔 죄다 붙잡은걸로 보이냐..

아는건 쥐뿔도 고구려밖에 없는지 고구려 얘기만 하면서
고구려도 헷소리를 해대고 모르면 어뜩하냐??
앞으로 먼 얘기할래??

>>>>>>>>>>>>


헐 어그로 님아  이거 니가 올린 글 아님 ㅋㅋ

대략 이미 천년전의 오기 바로 세운

신당서나 삼국사기 기록이고 정황은 안쳐보고

무슨 전멸 어쩌고 쳐하면서 6만 사라지고 6만 사로 잡히고 어쩌면서

캐소리 쳐해놓곤 이건 뭔 ㅋㅋ. 야 

그기에 10년 전에 나온 이 관련 반론 사료와 글을 올리니

이제는 덧셈 뺄셈도 못해서리

<<참전한 중국장군 얘기는 사서 내용 인정하면서, 고구

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

이런건 나도 하겠다.. 이렇게 하면 주필산전투는 수백

갈래 시나리오 만들 수 있어..>> 또 이런 허접소리 쳐해놓곤 ㅋㅋ

6만 사로 잡아서 그중에 3만 돌려보내고 3만 생포 어쩌고 이런 글

어그로 님이 올려 놓고는 진흙탕?? ㅋㅋ 완전 막장 코메디쳐하군. ㅋㅋ


그기에 이 어그로님은 애초에 주필산 전투에 대한 기초 상식도 없군. ㅋ

안시성 관련 이야기 친절하게 안 올려서 해석안해주니 뭔 혼자

공상 소설 남발 ㅋㅋ

6월 20일 안시성에 도착한 이세민 본대는 이후 주필산쪽을 맡으면서

요동도제1군총관인 장사귀를 보내 안시성을 공략하는 한편 급파한

15만 대군에서 대대로 1관등 총사령관 고정의가 본진으로 지구전 이야기를 함에

5관등 고연수와 7관등 고혜진등이 선발진 형태로 나가서 (15만중 대략

5,6만정도) 싸우다 이세민의 계략에 포위 당하면서

2만 전사(최대 3만) 6800명 생포에 이중 말갈 3300명 생매장

이후 이세민도 재포위되는데 이는 후속부대인 고정의군대가 애워싸면서

결국 당나라도 3만을 친절하게 보내준게 아니라 그렇게 보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런 주필산 전투가 벌어지는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걸 전혀~~ 모르남? ㅋ

그리고 11만 우글거린다고 양동작전은 못하남?? 이건 뭔

단세포인가?? 수나라도 요동에서 대치하면서 우회해서 얼마든지

별동대 30만 정예로 평양 진격까지 쳐했고  이세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11만 정도도 커버 못할 군병력 데리고 그것도

그 험한 지형에서 수성전의 고수인 고구려를 상대로 최소 병력 3배

이상이 되야 하는게 병법의 기본인데 이정도 병력도 안데리고 황제가 직접

나서 친정했다는 캐소리를 지금 반론 어쩌고 펴는 것임??


어그로님아 단기 기억환자까지는 이해하는데

제발 기본 사고도 좀 하고 삽시다.



가생이 오래하면서 이런 막장 어그로형은 처음임 ㅋㅋ.
제로타겟 14-09-17 18:19
   
굿잡님은  성격이 되게
 까칠하심  좀 유연하게 .....
     
굿잡스 14-09-17 18:57
   
ㅋ 뭐 개념 없는 이에겐 까칠하게 대하는 부분도
있긴 한데 저사람 본문에 링크 올린 댓글들 함 보시죠

막말쳐하는게 어그로수준이니.
     
전략설계 14-09-18 06:52
   
gagengi님은 죽어라 발제글 쓴 죄 밖에 없는데..
니가 뭣이라고, 남한테 엉뚱한 소리한다고 하고, 개념 없단 소리하냐..
반말??
넌 싸대기 맞어도 할 말 없는 인간이여..
남들한테 그렇게 말 찌끄려놓고도 존대말은 듣고 싶어??

토론하다 막히면 링크질로 남 신상 터는 변태기질까지 있는데..
그러다 니도 링크질로 당한다..
          
굿잡스 14-09-18 08:16
   
gagengi님은 죽어라 발제글 쓴 죄 밖에 없는데..

니가 뭣이라고, 남한테 엉뚱한 소리한다고 하고,

개념 없단 소리하냐..>>??  ㅋ 오지랖도 넓어서리

정작 당사자는 아무말도 안하는데 본인이 뭔 어쩌고

쳐하남? 글구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언제 저분 보고 개념없는 당신같이 개념없다 했음?  단지 조선사회에 대한 이해부족에 전후 시대 구분도 안되었다고
말했지. 이건 나외에 다른 여러분도 댓글로 지적한거고.  참 궁색한 ㅋ 왜 본인 국까짓에 어그로하다 안되니 별소리 안하는 사람까지 끌고 와야할만큼
옹색함?ㅋ
꿈꾸는자 14-09-18 23:44
   
주필산전투에서 15만대군을 이끄는 고구려군 주장은 고정의였죠..그가 이끄는 본대 10만대군은 건재했고 안시성의 양만춘의 고구려군과 함께 기각의 세를 형성하여 당태종이 이끄는 당나라군을 막아냅니다..
안시성 단독으로 막아낸게 절대 아니죠..
거기다 고연수와 고혜진이 이끌던 5만의 군대중 최소 수천명에서 많게는 약 1만명정도의 고구려군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본대에 합류했죠..
     
전략설계 14-09-19 05:54
   
남은 병력이 안시성으로 상당수 들어가고,
당태종이 퇴각할 때 추격했던 주력이 아닐까 싶네요..
나물밥 14-09-19 03:08
   
댓글쭉봐도 전략설계님쪽의 글에 더 수긍되네요. 반박을 잘 못하시는듯. 팩트와 사료에대한건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굿잡스 14-09-19 06:21
   
팩트와 사료에대한건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  ㅋ
네 인정할건 인정해야지요. 

 太宗이산에서달 려 내려오니, 고구려군은 크게 와해되어 2만급의 머리를베었 다.[高]延壽는 남은 무리들을 수습하여 산을등지고굳게지켰 다. 无忌와 勣은 [군대를] 합세하여 포위하고, 냇물의다리를 철거하여 歸路를 차단하였다.太宗은 말고삐를잡고고구려의 營壘를 살펴 보고,“高[句]麗가 온나라를기울여서왔으나, [大 將旗를] 한번 흔들어 깨뜨렸으니, [이는] 하늘이나를도운것 이다.”하고, 말에서 내려 하늘에 두번 절을 올려 감사하였다.[ 高]延壽 등이 事勢가 궁함을 헤아리고 바로무리를이끌고항 복하였다. 轅門에 들어 와서 무릎으로 기어 앞에 나아가절을 올리고 命을 청하였다. 太宗이,“이 뒤에도감히天子와싸우겠 는가?”하자, 두려워서땀을흘리며대답을못하였다.

○ 太宗은 酋長 3천 5백명을 가려내어 모두 벼슬을주어서內 地로 들여 보내고, 나머지 3만명은 [그 나라로] 돌려보냈다. 靺鞨 사람 3천여명은 목을베었다


근데. 사료 어디에 저 전략이라는 사람 말처럼

6만을 생포해서 3만을 돌려 보냈다는식의 기록이

보이는가요???

2만 전사에 생포는

숫자인 3만6800명 그중에서 3500명은

내지로 3천여말갈족은 생매장(죽임)이고 나머지 3만은

돌려 보냈다는 기록임. 그리고 이건 다른 기록이나 전황

상 실제 고스란히 당이 친절히 보내준게 아니라

고구려3만이 일시 포위당했다 빠져 나왔음을 의미.

하여튼 3일간 고구려측 피해규모는 전사 2만 최대

3만에 내지로 데려가고 말갈 죽인 3천 가량 합쳐

3만 6천5백 정도라는 말임.

그리고 <고구려가 요동일대로 급파한 15만 대군의

총지휘관은 생포된 고연수 고혜진이 아니라

대대로 고정의입니다. >사료에 언급되는 고연수 고혜진은

품계가 한창 낮은 아래 부장급장수라는 말임. 이말은

사료에 언급된 이 둘 외에 높은 직급의 상당수가

15만 대군안에서 지휘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고 15만중 본진을 운용하던 총사령관 고정의군
은 이 1차전에 전혀 속하지 않은 채 이후 지속적으로

당군을 괴롭히면서 50여 일 동안 발을 묶어두고 있었

다는 말임.

본문에 사료랑 추가 한글 설명까지 다 올려놓았는데

무슨 사료를 이야기 하시는지??
          
전략설계 14-09-19 09:02
   
니 글에 삼국사기에 "전사 2만, 포로 3만6800"이라고 써져 있자나..
이거를 왜 부정하냐고??
나물밥님 얘기는 이 소리여..

이걸 부정하려면, 니가 해명하라니까??
모든 사서에서 인정하는 포로 3만6800 설에서 니가 먼디 부정해..
김선생이 근거로 삼는게 주필산에 당군이 3만이란 그 소리밖에 없자나..
그런 식으로 역사를 창작할거 같으면, 나도 수십가지 시나리오 만들어낸다니까..
포로 3만 부정하는게 정설이고 학계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냐??
여기가 니 책 한권 사본거 티낸다고 팩트인양 썰푸는 곳이냐구??

중국 사서든, 국내 삼국사기든 나와 있는
주필산에서 고구려 포로 3만6천800(최소)에 대해 부정할 근거를 대라고..
증거도 없으면서 그걸 부정하니까 다른 분들이 머라는거여..

10만 군대 배후에 두고 공성 들어가는 바보가 어딨어..
주필산 전투 6월말에 끝나고, 7월, 8월, 9월 안시성 공성전 들어갔고..
토성만 2달을 쌓았서..
배후가 그렇게 위협이 되면, 배후의 적을 들판에서 큰 전투를 치루지..
한가하게 토성 2달 쌓고 자빠졌겠냐..
주필산 전투 이후 들판에서 고당간에 전투다운 전투 있었든??
사서에 나와 있어??
당나라 30만 하고, 고정의군 10만이 붙었으면, 사망자가 얼마 나오겠냐..
그런 전투가 없어??
10만대군이 사서에도 없는 게릴라나 할 병력이냐..

니나 김선생 논리면..
포로도 없었고.. 중국 사서, 삼국사기 적힌 내용 전면 부인해야하고..
3달 안시성 싸움도 토성도 전부 허구여..
15만이 뒤에서 우글대는데 먼 공성이고 피라미드 쌓듯 토성을 쌓냐..

6월말에 3만이 빠져나갔음
고구려군이 튀지 않은 이상 야전에서 고구려와 당군이 다시 붙었겠지..
7월, 8월, 9월 안시성 공성은 먼 말이고 공성에 어떻게 들어가??
들판에 적이 없어지니까 공성에 들어간거지..
니가 역사를 그냥 써??
               
굿잡스 14-09-19 12:23
   
전략설계 14-09-15 11:38  너 고연수 가지고 자꾸 헷소리할래??
니가 15만을 봤어??
고연수군 15만이 역사서 어디서 나온줄 알어??
고구려는 책이 없고 다 중국역사서여..

구당서에 "고연수군 15만6천8백명 항복"
멀 붙잡긴 붙잡어 항복이라 나오는데..

실제 전투에서, 고구려군 1만 전사.. 산 위의 고연수군 3만6천800명 죄다 항복이고..
이중 고연수를 비롯해서 군 간부 3,500명 당으로 압송이고..
말갈병은 생매장이고..
도망간 병사 포함해서 실병력을 임용한님 저서 "전쟁과역사" 6만 정도로 보고 있어..

고연수군 "전멸이다"
깨져도 이렇게 깨진 전투가 없는데.. 멀 붙잡어??
당태종이 뭐란 줄 알어??
"한번으로 싸움으로 고구려를 깨뜨렸다"고 해..
"깨뜨렸다"고..
이 패전으로 "석황성, 은성의 군사가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사방 수백 리에
인가가 비었다"고 하는데.. 멀 붙잡어??
인터넷 다니면서 패전을 미화하는 특이한 습관있냐??

한번 싸움으로 군대가 사라졌는데 고연수는 당태중한테 무릎꿇고 항복하고,
멀 붙잡어??
6만이 사라지고 6만을 없애는 과정도 니 눈깔엔 죄다 붙잡은걸로 보이냐..

아는건 쥐뿔도 고구려밖에 없는지 고구려 얘기만 하면서
고구려도 헷소리를 해대고 모르면 어뜩하냐??
앞으로 먼 얘기할래??

>>>>>>>>>>>>


헐 어그로 님아  이거 니가 올린 글 아님 ㅋㅋ

천넌도 더 된 신당서나 삼국사기 기록이고 정황은 안쳐보고

무슨 전멸 어쩌고 쳐하면서 6만 사라지고 6만 사로 잡히고 어쩌면서

캐소리쳐 해놓곤 이건 뭔 ㅋㅋ. 야 

그기에 10년 전에 나온 이 관련 반론 사료와 글을 올리니

이제는 덧셈 뺄셈도 못해서리

<<참전한 중국장군 얘기는 사서 내용 인정하면서, 고구

려 군 3만을 포로로 삼고, 3만은 돌려보냈다는 부분은

.. 사서에 있는데도 인정 안하네??

이런건 나도 하겠다.. 이렇게 하면 주필산전투는 수백

갈래 시나리오 만들 수 있어..>> 또 이런 허접소리 쳐해놓곤 ㅋㅋ

6만 사로 잡아서 그중에 3만 돌려보내고 3만 생포 어쩌고 이런 글

어그로 님이 올려 놓고는 진흙탕?? ㅋㅋ 완전 막장 코메디쳐하군. ㅋㅋ


그기에 이 어그로님은 애초에 주필산 전투에 대한 기초 상식도 없군. ㅋ

안시성 관련 이야기 친절하게 안 올려서 해석안해주니 뭔 혼자

공상 소설 남발 ㅋㅋ

6월 20일 안시성에 도착한 이세민 본대는 이후 주필산쪽을 맡으면서

요동도제1군총관인 장사귀를 보내 안시성을 공략하는 한편 급파한

15만 대군에서 대대로 1관등 총사령관 고정의가 본진으로 지구전 이야기를 함에

5관등 고연수와 7관등 고혜진등이 선발진 형태로 나가서 (15만중 대략

5,6만정도) 싸우다 이세민의 계략에 포위 당하면서

2만 전사(최대 3만) 6800명 생포에 이중 말갈 3300명 생매장

이후 이세민도 재포위되는데 이는 후속부대인 고정의군대가 애워싸면서

결국 당나라도 3만을 친절하게 보내준게 아니라 그렇게 보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런 주필산 전투가 벌어지는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걸 전혀~~ 모르남? ㅋ

그리고 11만 우글거린다고 양동작전은 못하남?? 이건 뭔

단세포인가?? 수나라도 요동에서 대치하면서 우회해서 얼마든지

별동대 30만 정예로 평양 진격까지 쳐했고  이세민이 바보가 아닌

이상 11만 정도도 커버 못할 군병력 데리고 그것도

그 험한 지형에서 수성전의 고수인 고구려를 상대로 최소 병력 3배

이상이 되야 하는게 병법의 기본인데 이정도 병력도 안데리고 황제가 직접

나서 친정했다는 캐소리를 지금 반론 어쩌고 펴는 것임??


어그로님아 단기 기억환자까지는 이해하는데

제발 기본 사고도 좀 하고 삽시다.



가생이 오래해도 이런 막장 어그로형은 처음임 ㅋㅋ
                    
전략설계 14-09-19 13:00
   
6만은 고연수군대를 추정하는거여..
역사스페셜에 자주 나온 임용한님이 포로, 전사자 수, 도망자 합쳐서 산출한 수치고..
전사자 2만에 포로 3만6800 조금 있을 도망자까지 하면 최소 6만이래..

남은 10만 고구려군이 30만 당군 뒤치기를 햇으면,
645년 7월, 8월, 9월 큰 전투 한번 없었겠냐??
스쳐도 몇만짜리 전투가 있었어야지..
 
당군은 3달간 안시성 공성을 하면서 그 자리 그대로 있었는데..
남은 10만 고구려군이 전투를 안벌린거 아녀..

들판에서 니 뒤를 10만대군이 노리고 있는데..
성 공격하고나 하고 있겠냐.. 연인원 50만명 들여 토성이나 쌓고 있겠냐고..
기본적인 전투상식에 맞는 소리나 해라..
                    
전략설계 14-09-19 13:01
   
안시성하고 주필산에서 당태종이 양동작전을 했다는데..
너는 주필산이 어디라고 생각하냐?

당태종이 4천병력으로 주둔한 산이 주필산이여!!!!!!
황제가 머물렀다고 해서 주필산이여..

고연수가 주둔한 곳이 안시성에서 8리다..
8리!!!!!!!!!!!!

8리면 3.2킬로여.. 안시성 바로 옆이라니까..
달리기 잘해도 10분 거리고,
경기병이면 고연수 주둔지에서 안시성까지 3분 거리여..
당태종 기병이 마갑도 치워버린 경기병인거 알지??
기병으로 3분거린데 먼 양동작전이여..

주필산이 어딘지.. 안시성과 거리가 얼마인지.. 쥐뿔도 모르는게..
                         
굿잡스 14-09-19 14:15
   
안시성하고 주필산에서 당태종이 양동작전을 했다는데..
너는 주필산이 어디라고 생각하냐? >??

이 어그로님은 또 국어 공부 하십니까? ㅋ 양동 작전이 따로 있나요?

어그로씨


<[太宗이] 安市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에 高[句]麗의 北部傉薩 高延壽와 南部傉薩高惠眞이 [그들의] 군대 및 靺鞨의 무리 15만을 이끌고 와서 [安市城을] 구원하였다. 太宗은 이렇게 말하였다.“저들이 만약 군사를 정비하여 安市[城]과 연합을 하여 城壁을 쌓고, 높은 산에 의거하여 城中의 곡식을 날라다 먹으면서, 靺鞨의 무리를 풀어 우리의 牛馬를 약탈하여 간다면, [우리가] 공격을 하여도 함락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上策이다. 城中의 무리를 이끌고 밤에 도망가는 것이 中策이다. 우리와 싸움을 벌이면 사로 잡힐 것이다.” >

이세민은 이 급파 15만 대군을 제대로 막지 못하면 힘들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고 그에 따라 윗글에도 올렸지만

6월 20일 안시성에 도착한 이세민 본대는 이후 주필산쪽을 맡으면서

요동도제1군총관인 장사귀를 먼저 보내서 안시성 공략을 주도하게 하는

한편 이세민은 고연수선발대를 유인책으로 끌고 와서 초기 3일간 백병전을 벌인 것이고.

뭐가 문제 있남? 어그로씨? ㅋ


<6만은 고연수군대를 추정하는거여..
역사스페셜에 자주 나온 임용한님이 포로, 전사자 수, 도망자 합쳐서 산출한 수치고..
전사자 2만에 포로 3만6800 조금 있을 도망자까지 하면 최소 6만이래..

남은 10만 고구려군이 30만 당군 뒤치기를 햇으면,
645년 7월, 8월, 9월 큰 전투 한번 없었겠냐??
스쳐도 몇만짜리 전투가 있었어야지.. >


그래 어그로님아  당연한것 아님. 내가 올린 사료에 그렇게 나왔고

<어그로씨는 무식하게 구당서내용만 쳐보고 신기하게 일방적으로

무슨 고구려 전멸에 6만 사라지고 6만 생포 어쩌고 무식한 캐소리 떠들었잖

숩니까> 이 어그로님아. 그기에 뭐 대단한 논파라고 스토킹 짓까지 쳐해서

이렇게 본문 반론글이 올려진거고. 이제 좀 기억 나십니까요?어그로님아.

왜 이래 ㅋ 이제 와서 또 말바꾸십니까요? ㅋ

내가 올린 기록대로 보면 당연히 고연수는 5,6만 정도이고

그래서 계속해서 선발대 선발대 1차 3일간 어쩌고 쳐한건 아닙니까?

이 어그로 씨야.  남이 그렇게 말해도 이전부터 캐소리나 쳐하더만.

그리고 이중에 2만 전사( 신당서뿐 아니라  자치통감, 책부원귀, 삼국사절요에

다 2만으로 기록)에 일부 경내 옮기고  3천 말갈 생매장. 나머지 3만이

그냥 보내진줄 아남??

이세민 친위 6군과 이적의 흑군이 재자 고구려에 포위되면서

이때 왕군악이 전사했고, 후방의 양홍례와 유흥기 등

본문에 언급한 싸움들을 보면 이는 이미 항복한 고연수 선발진이 아니라

바로 후속 최고 사령관인 고정의군 9,10만에서  재차 포위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3만 고구려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이고.

그외에도 계속해서 교전들이 있었다고 분명히 본문에서 이야기 했는데도

뭔 또 허접소리 쳐하시남요 이 어그로님아.
                         
전략설계 14-09-19 18:33
   
한소리 또 하고 또 하고 앵무새 소리하지 말고..

주필산이 어디냐고?? 묻자나..
양동작전 인제 깨갱이냐..

고구려, 말갈병이 펼쳐진게 10리래.. 10리..
안시성에서 8리 떨어진 곳에 고연수군이 주둔했으니..
10리면, 병력으로 고연수군 주둔지에서 안시성을 덮어..

양동은 얼어죽을 양동이냐??
                         
전략설계 14-09-19 18:35
   
6만 사라지고 6만 생포가 어딨어?? 찾아봐..
이게 안되니까 슬슬 창작하네??
아~ 역사 창작이 니 전공이었지.
전략설계 14-09-19 12:46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213&ntt_writ_date=20130905
국방일보에 실린 교수님 글입니다.

설연타가 군대를 움직인 것이 645년 7월~8월 사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은 당태종이 고구려에서 철군하던 645년9월 이전입니다.
설연타의 군대가 움직인 이후 당태종이 철군한 것입니다.

고구려가 죽어가는 설연타 가한의 아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들고 가서 설연타로 하여금
하주를 공격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국방일보에 실린 기사다.
이리 명확한 것을..
굿잡아~ 반론좀 해봐라.
     
굿잡스 14-09-19 14:57
   
??? ㅋㅋ 이건 뭔 누가 설연타가 당군의 후퇴를 회책한게 사실임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이 어그로님아?

앞서 이세민도 돌궐 일부를 후방으로 보내고는 안시성 공략에 집중했던 것이고.


<“(태종이) 요동토벌을 하러 갈 때 집실사력에게 조(詔)를 내려 금산도에 주둔하여 돌궐(기병)을 지휘하여 설연타를 대비하도록 했다. 설연타의 10만 기병이 하남을 침공하자 집실사력은 약하게 보여 적이 하주까지 들어오게 했다. 집실사력은 이내 진을 정비하여 설연타를 패배시키고 600리를 추격했다. 그런데 설연타의 (진주)비가가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북에서 시위하고 돌아왔다.”-신당서 집실사력전>

이세민은 요동 정벌 하기 전에 이미 이런 설연타의 남침을 우려해서 집실사력보고 지키도록

했고 그렇기에 이세민은 크게 별다른 동요없이 더구나 진주가한의 죽음을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 더욱 안시성 공략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고. 그러나 계속해서 당나라는 피해와 피

로 및 식량까지 떨어지고 점차 매서운 만주 벌판의 추위에 다미가한이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오르도스 일대를 노략질 하자 당태종도 결국 진퇴양난속에 태원으로 회군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요택에 빠져 허우적 되면서 많은 병사들이 추위등에(고구려 추격도

있었겠지) 사상이 발생했다고 기록하고 있잖습니까요. 이 어그로님아.
          
전략설계 14-09-19 19:03
   
당군은 겨울에도 공성한다..
661년~662년 겨울동안에 소정방이 평양성 공성하고 있었다..
고구려같은 큰 나라를 어떻게 봄, 여름, 가을 날씨좋을 때만 해서 정복이 되겠냐..
공성은 서영교 교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비가 뚫릴 확률이 높은 것이고..
주필산 전투 이후에 야전에서 고구려-당 사이에 쳐줄만한 전투가 있었다는 기록 없어..
니가 찾아봐..
설연타의 남하가 당군 퇴각에 주효한 것은 사실이여..
이걸 인정하기 싫어서.. 요렇게 횡수하면서 토론을 끌어??
설연타의 남하와 당군 퇴각이 아무 관련없는 것처럼,
고구려 고정의의 15만과 안시성만으로 퇴각한 것처럼 얘기했는데..
이쯤에서 니 생각을 얘기해봐라..

당군 퇴각과 설연타 퇴각 관련 있냐 없냐??

연개소문이 주필산 패배후 설연타에 뇌물 맥였단다..
당군에 주는 영향이 없는데 연개소문이 뇌물 맥였겠냐??
당시 상황을 니가 잘 알겠냐?? 연개소문이 잘 알겠냐??

니 혼자 알아먹을 뻘소리나 지껄이지 말고
인정할거 인정해라잉~~
나 토론해서 져본 적이 없다.
     
전략설계 14-09-19 18:39
   
너 설연타가 당 뒤통수 치려면 당군이 요동칠 때 쳐야 된다고 뻘소리한게 어제 아니었냐??

역사는 당군이 안시성 치고 있을 때 설연타 군대 움직였다.
주필산 패배후 고구려가 가장 힘들 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당나라 뒤통수 쳤다.?

설연타가 당군 계획적으로 뒤통수 친거 인정하기 싫은가 분데..
설연타한테 뇌물 쥐어준 시기도 주필산 전투 패배 이후고..
그것도 연개소문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고구려-설연타가 계획적으로 합작으로 당 뒤통수 때린거를..
설연타가 당 뒤통수 때릴려면 요동성 칠 때 때리지, 왜 겨울이냐고??
어쩌고 했던 니 얘기가 지금 생각해보면 한참 모자한 소리지..
전략설계 14-09-19 18:21
   
KBS 역사스페셜(HD) 22 수당전쟁 2편에..
"주필산 전투 패배후 연개소문이 설연타 가한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나온다.
연개소문이 주필산 패배후 설연타에 뇌물 맥였단다..
요런게 팩트다..

주필산전투 6월,
설연타가 군대를 움직인 것이 7월~8월,
당군 퇴각 9월~10월,
시기적으로 맞는 것이지. 이렇게 얘기를 연결해서 하라고..

사서의 일부를 확대해서 소설쓰지 말고..

또 역사스페셜 방송에서 서영교 교수란 분이..
"공성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는 것이라 유일하게 고구려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설연타뿐이었다"

니가 김선생껴 배껴 옮긴 니 주장도 아닌 김선생 주장도
방송에서 일부 나오긴 하지만, 정황일뿐이지,
국영방송 다큐의 결론은 주필산전투에서 고구려군이 패배했다는 것이여..

또 방송에서,
자치통감에 실려있는 주필산전투 이후 당태종과 이세적의 대화내용이 나오는데.
다음 목표를 건안성으로 할까, 안시성으로 할까 논쟁하는 대목인데.
이것도 니 눈깔로는 허구로 보이냐??

"당태종 -- 병력과 식량이 부족한 건안성을 치자"
"이세적 -- 건안성 치러 내려가다가는 보급로가 끊긴다"

니말대로 3만이 능력껏 빠져 나가 야전에 고구려군 10만 대군이 버티고 있는데..
주필산 전투후 한가하게 어느 성 칠까 당태종하고 이세적이 이딴 대화하고 있겠냐??
이미 들판에 적이 없어졌기에 가능한 대화야.

확정적이지도 않는 일부 정황 정도 가지고
개인들이 확대해서 창작을 한들,
사서의 주필산 이후 내용과 연결이 되냐구??

니가 보기엔..
당태종 이세적의 자치통감 대화내용도 소설이지??
니가 써올린 "전사 2만, 포로 3만6천8백" 삼국사기 기록도 인정안하는데..
멀 인정하겠냐??
저런 내용들 다 소설이지??

역사는 앞뒤 내용을 연결해서 보는거여..
설령 의심해볼 부분이 있다고 해도 뒤의 돌아가는 상황하고 전혀 안 맞으면
그냥 개인들 생각일뿐이여..
그래서 니같은 생각이 한낮 혼자생각일뿐 정설이 못되는거여..
휴로이 14-09-19 20:00
   
봐서는 안될 자신의 사서를 뜯어고친 인간 말하는건가???
소설이되버린 사료를 자료로 삼아서 논한다는게 웃긴다.
     
전략설계 14-09-20 09:53
   
위에 당태종과 이세적의 대화내용은 '환단고기'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삼국사기 내용을 인용하려 했고,
토론에 참고해야 할 사서가 더 있다면 얘기해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전략설계 14-09-20 09:44
   
2009년 10월 31일 방영된
<역사스페셜.E16.연개소문은 왜 투르크에 사신을 보냈나>의 내용입니다.

1. 안시성에서 공성 중일 때 연개소문이 설연타에 사신을 보내 중원을 침공하도록 사주하였다.

2. 당의 고구려 원정이 계속되자 중원의 수비가 느슨해졌고, 이틈을 타 연개소문과 합작한 설연타가 기병을 동원해 당을 공격한다

3.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교수 인터뷰
"설연타가 오르도스를 거쳐 남으로 내려오면 당의 장안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당의 주력이 동방으로 나와 았을 때 설연타가 공격하면 당은 치명타를 입는다"

4. 김용만
"고구려가 당을 요동에서 붙잡고 있어서 설연타는 이때 당을 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고구려는 당이 고구려에 집중할 수 없도록 설연타를 꼬드겨 두 나라가 당의 발목을 잡은 서로를 위한  윈윈게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김용만
"제2차 고당전쟁에서도 연남생 부대를 격파하고 승승장구하던 당군이였지만, 당고종의 명에 의해
 주력부대 6개 중에 2개 부대를 철군시켜 철륵의 반란 진압에 나섰다."

6. 서울대 역사학과 노태돈 교수
"고구려는 유목민족과 연합해 중국세력에 대항하는 다원적 세력균형이 바로 연개소문이 추구하는 국제관계임"

동영상이 없다면, 내용을 간추린 블로그가 있네요.
http://blog.naver.com/wjdwjd9096/130137062268
전략설계 14-09-20 10:02
   
굿잡아~ (악플러에 한정해서 반말하는거니, 다른 분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니가 쳐배껴서 옮겨놓은 김용만선생 역사스페셜 인터뷰 내용 봤지??
김용만선생은 고구려가 설연타를 꼬드겨서 당의 발목을 잡았다고 인터뷰하셨다.

돌궐계로 인해 고구려 땅에서 당군이 회군한게 1차고당전쟁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2차고당전쟁에서도 철륵의 반란으로 연남생군 격파하고도, 계필하력군 등 2개군이
돌아간 사실이 있다.
설연타보다 힘이 약한 철륵이 침입도 아니고 반란만 가지고도 회군을 시킨 당이야..
하물며 반란도 아니고 오르도스를 통해 남하하면 바로 장안인데 설연타군이 침공했는데.
당태종이 회군하지 안시성에 머 볼게 있다고 남아있겠냐???

안시성을 점령해도 그 다음은 건안성이야.. 그 다음 평양성이고..
안시성 -> 건안성 -> 평양성 이 순서인데..
평양성 함락 직전이 아니라면 안시성을 점령 직전이라도 회군할 상황이고..
1차고당전쟁 당시 고구려 국력을 보면 볼 때 평양성은 반년을 공성해도 괼까말까야..
당태종 회군의 직접적인 원인은 설연타의 당 침공이야..

쌀쌀해져서 추워서??
제2차 고구려-당 전쟁은 659년 음력 11월에 당이 고구려 침공했다.
겨울을 잡아서 침공하는데, 추위 때문이겠냐??
전략설계 14-09-20 10:09
   
굿잡아~

너 어디가서 김용만 선생 이름 팔아먹지마라~
니 궤변만 늘어놔~~
김용만 선생은 최소한 "연개소문이 설연타를 꼬드겨서 침공하게 만든 사실" "철륵의 반란이 당군의 철군을 가져온 사실"은 인정하는 분이여..

니처럼 설연타가 당 뒤통수 치려면 5월 요동성 왔을 때 치지 겨울에 치냐..
요런 소리 안한다고.. 이건 니 궤변이라구??
당시 동북아가 어떻게 돌아갔는 지에 대한 기본 이해도 없는게..
책 한권 샀다고 죄다 배껴 옮겨서 저자 팔아먹냐??

김용만선생은 "설연타 침공으로 당군이 퇴각한 사실을 인정해" 너하고도 생각이 다르다.
너는 김용만선생 애독자가 아니라
"설연타 침공으로 당군이 퇴각한 사실"을 부정하는 그냥 니 궤변만 풀어놓은거여..

반박할거 있으면 혼자만 알아먹을 소리 하지말고..
"설연타 침공과 당군의 퇴각이 무관한 사실"을 입증할 근거를 대라~
나물밥 14-09-21 21:24
   
생각나서 댓글보러 간만에 왔는데 더이상 댓글이 없네요 ㅋ 이 토론은 이렇게 끝난듯?ㅋ 번역기돌렸다고 하신분이 이긴듯 ㅋ
진실게임 16-01-07 23:00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나서 이리 저리 사실들을 꿰어맞춰서 역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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