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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5 20:15
[기타] 최초의 귀화인 박연
 글쓴이 : RedOranG
조회 : 3,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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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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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4-09-15 20:58
   
엄밀히 말해서 박연이 최초의 귀화자는 아니죠..
북창 14-09-15 21:09
   
옛날 조선 사람들 보면 정말 답답함...
가까운 타국과의 교역에 득이 많을까...먼 타국과의 교역에 득이 많을까...
이런 간단한 이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거 보면...성리학 이념은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학문이었던듯...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는 성리학을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 없는 이유...
     
mymiky 14-09-15 21:19
   
먼 타국보다, 가까운 타국과의 교역을 중시하는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리학이 나올 당시엔 신사상이였다는 점을 간과하시네요.
          
북창 14-09-15 22:17
   
당연한게 아니죠. 먼 타국과의 교역은 막대한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삼국시대 때도 행해졌었는데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요.
성리학은 그런 본성을 억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업의 쇠퇴를 가져왔죠.
그리고, 성리학도 신사상이라고 볼 수 있죠. 조상을 신으로 모시잖아요.
뭐...물론 좋은 점도 있긴 했지만...현대적 관점에서 봤을땐...최악의 신분 제도라 하는 카스트 제도에 버금가는 사회악적인 이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mymiky 14-09-15 22:36
   
상식적으로 생각하세요. 먼 타국보다는 가까이 지척에 있는 나라와 교역이 활발한게 우선입니다. 그걸 못하면, 목 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고 먼 타국까지 교역을 하는거구요.
먼 타국을 교역하는 것 또한, 중간 중간마다 지점이나 그걸 중계해주는 중간책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삼국시대의 아랍과 신대륙 찾던 16세기 초반의 유럽의 상황도 마찬가집니다.
무작정,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 순진한 생각이죠. 아주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필요가 먼 곳까지 가게 한 것입니다. 지중해가 투르크인들에게 막히자, 막힌 동쪽대신 서방으로 간게 콜롬버스고, 그런거죠..
게다가, 옛날엔 배 타는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태풍이나 해일 만나면, 걍.. 목숨이 어찌 될찌는 신께 맡기는거죠.. 중국에 가는 사신단들도, 해로보단 육로로 가고 싶어한게 그 때문이고, 중국보다 배를 꼭 타야하는 사정의 일본쪽으로 가는걸 꺼려한게 다 그 때문입니다.
서양인들의 신항로개척도 사실, 동방의 투르크인들과 사이가 좋았다면, 그닥 모험을 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타서, 항료나 자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해와야 했죠. 뭐 그걸 서양인들의 모험심이 커서니 어쩌니 하는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중국측과 가깝고, 대체적으로 원만한 관계유지가 되었으므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중국을 통해 구할수가 있어서, 크게 아쉬울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엔 온 세상의 물건이 다 있었으니까요. 물론, 나중에 이걸로 자만하다가 골로간건 사실인건 패스하구요.

조선왕조의 상업쇠퇴의 원인은 멀리보면, 원-고려말기의 인플레이션의 영향입니다.
개방적인 원에 비해, 들어선 조선이나 명이나 그걸 겪어봤기에 상업보단 농업에 더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죠(정화의 원정도,타국과 교역보단 명나라 피알이 주요목적.)

글고, -.-;; 신사상이 조상 신神이 아니라, 新(새로울 신)입니다.
조상을 신으로 모신다? 유교는 애초에, 신이니 하는 것들을 미신이라고 까는 무신론입니다만?  유교식 차례 지내는 것과 별개의 개념입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유교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수 있고, 그렇게 여기지만,
당대에 있어 최고의 정치철학이였던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고, 유교의 긍정적인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씁니다.
                    
북창 14-09-15 22:59
   
약간 얘기가 엇나가는거 같은데요...
일단, 박연을 훈련도감에 배속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문물이 중국 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했을 시기였고, 효종의 북벌 정책으로 청국과도 소원해져 제대로된 무역도 못하던 시기였죠. 거기에 대만이나 동남아는 이미 서양 세력이 들어오고 있던 시기였으니...표류자들을 통해서도 그들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전쟁을 준비하던 나라에서 무기류가 발달한 그들과 어느정도 소통은 해야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조선의 상업 쇠퇴의 원인은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핵심은 경상주의죠. 경상주의가 바로 성리학에서 비롯된 거고요.
신사상은 제가 잘못 알아들었네요.
여튼, 다 차치하고...성리학은 그냥...어떻게 피지배층 인간들을 말 잘듣는 도구들로 만들까 하고 연구한 학문 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뭐꼬이떡밥 14-09-16 00:47
   
님 말대로 서양이 동남아와 일본에 들어왔지요..
그소식이 조정에 전해 졌겠죠..
그것만 전해졌을까요?
남만인 화란인등이 있는 곳은 다 식민지가 된것도 보고 되었겠지요?
왜 기독교 카톨릭이 금교령이 내려지고 목을 자르면서 까지 엄하게 했을까요?

덥석 노란머리 놈들 받아들였다가는 식민지 될까봐 두려웠던건 아닐까요?
                         
shrekandy 14-09-16 06:09
   
참나 피지배층을 도구로 만들려고 왕이 격쟁이란 제도를 만들어 매일 백성들을 만나며 말을 들어주고, 재판을 심도있게, 과학수사까지 곁들어하며, 노비에게 100일 휴가를 주고, 장애인들에겐 우대정책을 핍니까?  말이 되는 소릴하시죠
                         
흐아앙 14-09-16 07:14
   
뭐꼬이떡밥//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서양세력을 배척한것은 아닙니다. 지배층이라 할 수 있는 유생들에게 양보해준 일종의 정치적인 거래였죠. 그 후로 오페르트 도굴사건 등 여러 이유로 인하여 진짜 싫어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같은 경우 식민지배보단 교역을 우선하던 나라였구요.
                         
흐아앙 14-09-16 07:22
   
shrekandy// 성리학은 왕의 이념이 아닌 조선 정치이념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심도있게 하다뇨. 문헌상으론 그런 제도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지방관이 까라면 까 식의 재판이였는데요.. 이러한 문헌상의 제도와 실제로 이뤄졌던 실제의 괴리가 엄청나게 큰 나라였습니다.  500백년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우월했던 제도 세내개 못꼽는 국가가 있을까요?
                    
흐아앙 14-09-16 07:09
   
지중해 무역이 투르크로 인해 막히게 되자 새로운 항로들을 개척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왕실과 항해자 모두 부와 명성을 위해 간것이지 생존을 위해 가진 않았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라는 말은 이미 부와 왕실 또는 본인의 명예도 국가라는 집단에서 저것들을 필요로 한다는걸 인정하시게 되는것입니다.  이부분이 조선의 취약점이였다는건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변함이 없죠. 일본의 지배자층에서 사치문화가 발달된 사실도 알았지만 조선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중화의 명분을 이어받은건 우리 조선뿐이니까! 이런 부분까지 굳이 미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보네요.
                         
굿잡스 14-09-16 14:12
   
유럽의 중세 사회에 대한 구조와 상황에 대한 기초부터 인지해야 하겠군

요.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천여년간 이어진 중

세 유럽은 과거 로마제국이 만들어 놓은 도로망과 물류,인적 교류같은 대

규모 상호 이동은 극히 제한되고 일부 원거리 무역과 귀족들의 일부 사치

품외에는 대다수 농노들의 문화나 삶,경제력이라는 건 그야말로 부실 그자

체였음(한마디로 지독하게 가난). 그기에 한 국가 단위의 공간안에서 조차

도 각영주간의 물류,인적 교류는 극제한적이였단 말이죠.

그나마 중세 후기로 가면서 점차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지만

흑사병의 유행(1347∼51), 백년전쟁(1337∼1453), 농민 반란(1388) 등

중세후기의 또다른 극심한 혼란상을 겪게됩니다. 그런 가운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동으로 통하던 국제무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동쪽루트가 막혀버린

유럽은 제대로된 큰 시장도 통합된 경제 체재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일부의 부와 명성등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제대로 잘먹고 살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본격적 대항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이죠(그기에 비잔틴제국의

우수한 학자들이 이런 오스만제국의 팽창으로 유럽으로 피신하면서

대항해 시대의 기술적,이념적 뒷받침을 점차 부채질)

그에 비해 유럽에서도 황금의 나라처럼 인식되던 서토같은 오늘날

미국에 견주는 단일최대소비시장 외에도 동북아는 우리 고조선 고구려

문명권(만주와 남북한 열도일대를 아우르는)의 자체 소비시장과

유라시아를 잇는 북방 유목민들이 만든

최소 3개 이상의 거대한 문화권과 소비시장을 가지고 일찍히 전쟁간은

충돌뿐 아니라 다양한 무역교류를 해왔든 것이고. 그기에 조공무역 역

시도 이런 국가간의 공무역의 독특한 형태로 이미 동아시아는 오늘날

국제자유무역간은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돌아가고 있었다는 말임.

(독일의 경우도 근대국가의 면모로 그리고 유럽에서 강국으로 인식

될 수 있었던 실질적 배경은 다름 아닌 1818년에 프로이센에 의해

국내 관세폐지에 따른 소규모 지역간에 막혀 있던 물적, 인적 교류를

촉진시킨 관세동맹을 통해서 경제부흥과 더불어 유럽의 강국 중 하나

로 발도움하게된 계기임)

이때문에 굳이 서토나 조선등은 유럽처럼 대항해를 할 필요도 없이

각자의 독자적 황제적 국제 외교와 정치,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는 이미 상호간에 무역 교류를 해오고 있었고 내부적으로 이미

왜국 외에는 단일 중앙집권적 통합 경제 체재를 두고 있었기에 딱히

유럽처럼 대항해를 위한 현실적 필요성 없이도 주변국만으로도

먹고 살기에 상당 부분이 커버 가능했던 상황이였습니다.
치면튄다 14-09-15 21:16
   
납치 ㅋㅋㅋㅋㅋ
엑샤크 14-09-15 21:25
   
아라비아사람들이 여자꼬시는 노래도있는뎁쇼 굳이치자면 아라비아사람들도 동화됬을걸요
덤벨스윙 14-09-16 10:05
   
무식하긴 대항해시대가 왜 시작됐는지나 알고 말하시는겁니까?
후추때문이에요.
10척의 배가 나가서 9척이 가라앉고 1척만 무사귀환해도 떼돈을 버는게 후추무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원거리 무역의 위험을 감수할만큼 고수익이었던거죠.
전국시대 이미 네덜란드상인들과 접촉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원거리로 배를 보내지 않고 일본으로 오는 상인들과만 교역한것, 조선이고 중국이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원거리 교역을 등한시한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만한 교역품이 없었던겁니다.
조선시대 한국의 입장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만한 대단한 교역품이 있었나요?
굿잡스 14-09-16 13:21
   
근데 귀화인들은 일찍이 많았는데요 ㅋ

유명한 사람들로 보면 삼국시대 인도 야유타 공주인 허황옥(김해 허씨로 가야 수로왕의 부인이죠)이

나 베트남 왕족 이용상(화산 이씨), 유구(오키나와) 산남왕 온사도, 이지란(여진족),

김충선(임진왜란 시기 동래성 침략 다음날 3000여명을 데리고 자진 투항하면서

귀하한 왜 장수 사야가)등 딱히 특별한 경우들이 아닙니다.조선초기 기록만 봐도

회회인이라고 이슬람인들도 들어와서 국제결혼도 하고 여진, 왜인이나 서토인들도 전란을 피해서

혹은 살기 편해서 오는 경우도 제법 되었음.

고구려도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무역,외교 루트를 확보하면서 다양한 국제적

교류를 보였고 해상대국 백제 외에 신라 서라벌도 일찍히 아랍상인들이 100여명

씩 들어와서 무역을 하면서 동방의 이상향 어쩌고 기록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

그외 해상가문 출신인 왕건이 건국한 고려도 발해(금)도 그렇고 조선도 결코 막힌 나라

가 아니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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