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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5 05:45
[기타] 임진왜란이 조선에겐 엄청난 대재앙이었군요...^^;
 글쓴이 : 시간여행
조회 : 5,279  

어떤 블로그에서 조선초 세종당시 문화나 수준이 굉장하였고....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햇으면 ...근대문명의 시작도 가능하였다고 기술하면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국운이 쇄하였고 심지어 새로운 국가가 나타날 싯점을 지나쳐서

아쉬움등을 쓴글인데 읽어 볼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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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때 한국 문명 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 동서양 역사학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실 역사전쟁 백년전쟁                                  

        

                                             동서양 역사상 누가 왕이었을 때 문명 수준이 가장 높았고 백성이 가장 잘 살았던 것일까. 중국은 16 세기에 유럽에서 근대문명이 일어날 때까지 전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었으므로 그 왕은 중국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순(堯舜)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꼽히는 왕이다. 그런데 기실 요순은 원시시대의 부족장으로 최고의 문명의 나라 그러니 백성이 가장 잘 살았던 나라의 왕이 결코 될 수가 없다. 그를 제외시키면 누구를 동서양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뽑을 수가 있는가. 세종대왕(世宗大王)은 일찍이 요순과 맞먹는 왕으로 꼽혀졌다. 세종대왕은 역사상 실제인물 그러니 이조 초기의 왕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문명 수준이 높았고 그래서 백성이 가장 잘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털끝만큼의 허위가 들어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아래의 내용은 《이순신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유길만 지음, 경향미디어 출간)》의 부록에서 발췌한 것이다.

중국에서 고도문명(근대문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를 거쳐 중국은 서진제국 시대가 되었다. 서진은 부패와 타락의 극한점에까지 이른 제국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중국은 역사진보의 도상에 있었다. 그런데 행운으로 하여 천년 세월에 걸쳐서 그때까지 발전한 중국문명도 주변의 호전적인 야만족에 의해서 마침내 뿌리째 뽑혀져 나가게 되고 만다. 다행히 중국을 정복한 야만족은 중국 문명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않았다. 부패와 퇴폐로 병든 서진의 세상을 개조하여 건전한 정신의 세상으로 만든 면도 있기는 했다.

 

구미의 사상가들은 중국을 가르켜 진보를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만 하는 정체된 문명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동서양 할 것 없이 역사상 국가들의 태반이 그러했다. 구미인이 그토록 찬미하는 그리스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유렵국가 단 하나의 문명권만이 행운으로 하여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데 성공했을 따름이다.

 

서진시대 이후 이민족에 의해서 문명이 뿌리째 뽑혀져 나가버린 중국은 세월이 흐르자 다시 진보의 도상에 오르게 된다. 어떤 역사가는 송나라 말과 명나라 말에 다시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고 한다. 송나라와 명나라는 부패하고 타락하여 멸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과정, 곧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런데 주변 이민족에 의해서 중국은 다시 그때까지 발전시킨 문명이 뿌리째 뒤흔들리게 되어서 발전이 정체되고 말았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부패 타락이 극에 달해 내란으로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내란은 역사진보, 문명발전의 한 과정이며 자신의 문명 자체를 뿌리째 뽑아내 버리지는 않는다. 명나라가 주변의 호전적 야만족인 청나라에 정복되었기에 문명이 뿌리째 뽑혀져 나가게 된 것이다. 동양문명이 서양문명을 앞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그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명나라는 어째서 자신보다 백배나 약한 국력의 청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는가. 사실 청나라는, 내란으로 아무리 허약해져 있었다고 하지만 백배나 국력이 강한 나라인 명을 결코 정복할 수가 없었다. 역사연구가들은 청이 명을 정복할 수가 있었던 것은 일본과의 칠년전쟁으로 인하여 명의 국력이 극도로 쇠잔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패와 내란으로 침체해 있는 명이 세계 최강인 일본군과 칠년 동안이나 싸웠으니 어떠하였겠는가.

 

 

명나라에서 싹튼 고도문명의 맹아를 짓밟아버린 사람은 누루하치가 아니라 히데요시였다. ― 누르하치의 청은 명을 멸망시켰으나 병든 정신의 중국을 건전한 정신의 중국으로 만든 면도 있다. 히데요시는 유럽의 고도문명(근대문명) 새싹을 짓밟아버리지 못하였지만 고도문명 새싹을 짓밟아버린다는 목표는 어쨌든 이룩한 셈이다. 그는 명의 고도문명의 맹아뿐만이 아니라 조선의 것도 짓밟아버렸다. 그때 조선에서도 고도문명이 발아하고 있었다.

 

 

 

조선 초 과학 문명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외래 민족에게 정복됨이 없이 한 문명이 수천 년 간 지속된 국가는 세계역사에 한국밖에 없다고도 한다. 한국은 끊임없는 외침을 받았지만 이민족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고 신라, 고려, 조선으로 수천 년 동안 문명이 지속되었다. ― 역사진보 법칙상 조선에서 고도문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조선 초기에 고도문명이 발아하였던 것이다.

 

세종시대 문명은 세계최고 수준이었다고도 한다. 그처럼 높은 수준은 중국에서는 전설상의 시대인 요순시대가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조선 초 과학문명 수준은 높아서 중화기 분야에서는 근대문명이 벌써 발아한 유럽수준을 넘어섰다. 세종 시대 그처럼 과학이 발전한 것은 원나라를 통하여 아라비아 문명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선 초 과학문명은 실용적인 것이었지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의 뒷받침이 없는 것이라 모래성 같은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과학문명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가는 것이다. 유럽에서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을 뒷받침으로 하는 근대문명이 마침내 꽃피게 된 것도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게르만 국가는 원래 그리스와 같은 대륙의 국가였다. 그러나 게르만인은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 곧 고급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신 먼 지역에 있는 로마제국을 정복하여 저급 문명을 받아들였으며, 로마문명을 소화한 다음에도 여전히 그리스 문명은 어려워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리비아 문명권이 어느 정도 소화시켜 먹여주자 그때서야 게르만인은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을 겨우 소화 흡수하여 고도문명(근대문명)을 이룩한 것이다. 게르만제국은 그리스 문명을 천년세월에 걸쳐서 받아들였다. 끊임없이 주변민족과 투쟁을 벌이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게르만인의 지적 수준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물론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고 행운으로 하여 수천 년 세월동안 자기문명을 보전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인은 그때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조선은 아라비아와 지구 반대편에서 마주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아라비아 문명의 파편이 들어오자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실용적 과학문명을 이룩했다. 다시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이 들어오고 조선인이 그것을 소화흡수하여 고도문명(근대문명)을 꽃피우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따름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조선 문명이 이민족에 의하여 뿌리째 뽑혀져나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의 이야기이다.

 

조선은 타락과 부패의 극에서 임진왜란을 맞았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문명발전의 한 과정이었다. 춘원 이광수가 자신의 ‘이순전’전에서 조선시대를 얼간이 임금과 간신무리 관리들, 얼뜨기 백성들이 어우러진 절망적 시대로 묘사한 것은, 분명히 그런 점이 있기는 하지만, 옳은 것이 아니었다. 이광수는 조선장수들은 비겁하게, 일본장수들은 의젓하게 묘사했는데 사실이 그러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겁함은 타락한 문명인의 속성이고 의젓함은 호전적인 야만인의 속성이기도 했다. 이광수는 평면적 시각에서 그 시대를 보았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시대 모습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다. 문명발전 역사를, 우주 법칙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신은 공평한 것인가. 그때까지 세계역사에서 특별하게 수천 년 간 지속한 조선 문명도 이윽고 뿌리째 뒤흔들리게 되고 만다. 조선 한반도 땅이 호전적인 이민족에 의해서 완전히 정복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일본, 한국 삼국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조그만 나라가 세계최대 국가인 명과 최강군의 국가인 일본 간의 칠년전쟁 터가 되고 말았다. 인구는 반의 반으로 줄고 산천은 폐허가 되었다. 비록 일본군이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수천 년 세월에 걸쳐서 겨우 이룩한 문명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세계 여타 문명권이 그랬듯이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임란 후 조선에는 역사진보에 불리한 점이 또 있었다. 진보를 위해서는 내란이라도 일어나 부패한 이씨 왕실이 전복되고 새 왕조가 들어서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도 않은 것이다. 임진칠년전쟁은 명과 일본에 내란이 일어나 왕조가 바뀌게 하였는데 조선에서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란이 일어나 왕조가 바뀌는 일이 조선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것은 몇 가지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칠년전쟁 터가 되었기에 전체 인민이 빈사상태에 빠져버려 내란을 일으킬 인물들이 일본과 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고 더하여, 당시대 고도수준이었던 조선 관료제가 내란을 일으킬 요주의 인물들을 전쟁이 끝나기 전에 모조리 제거시켜버렸다. 또한, 조선왕실의 권위는 땅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수십 배 국력의 명제국이 뒷받침하여 주고 있는 상황 때문에 조선 민중이 조선왕실에 반항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을 지식인들이 알았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왕조가 바뀌지 않게 된 것이다.

 

조선은 정묘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다시 당하게 된다. 이에 이르러서는 수천 년 세월에 걸쳐서 축적된 문명이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리스 수학과 논리학을 반소화시켜 먹여준다고 해도 소화흡수시킬 수가 없는 빈사 상태에 빠져버리게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조선에서 발아하던 고도문명(근대문명)도 고사하고 만 것이다. 히데요시는 고도문명 파괴 욕구본능을 조선에서도 만족시킨 셈이다.

 

 

임란이 끝나고 오십년이 지난 후에도 조선의 인구는 조선 초의 삼분의 일에 불과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은 글자 그대로 조선의 인구가 반의반으로 줄게 만든 대재해였다. 그것은 이민족의 완전정복, 파괴를 능가하는 재해였다. 조선인의 우아성은 사라지고 추악성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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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rekandy 14-09-15 06:50
   
동의 못하겠는 글이네요. 일단 보통 조선까만큼 막장인 글은 아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 오류가 많은듯. 알단 자꾸 그리스 수학거리는데, 한국은 이미 고구려때부터 아주 발달된 수학교육을 시켰습니다. 고구려 측정법인 고구려 척 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쓰였고, 통일 신라때에는 수학 잘하면 공무원이 되는등 우리 조상이 수학 많이 밀었습니다. 신라 학생들이 배운 구장산술같은 책만 봐도 오히려 서양 수학 보다 더 앞선 것도 많이 배웠는데 저자는 무슨 수학이 서양에서만 발달된것같은 착오를 하네요. 그리고 조선의 인구가 반의 반으로 줄었단건 심한 과장으로 판정난걸로 아는데 아닌가? 애초에 세계대전도 아니고 500년전에 일본이 많이 죽여봤자 몇백만 인구의 75프로를 어떻게 죽임? 옛날 전쟁은 군사들이 주로 죽었지 민간인은 많이 안죽었어요 아무리 약탈등을 많이 해도요.

그리고 누가 그리스 수학을 먹여줘도 못 이해할 수준의 빈사상태로 조선이 됐다고요? 17-18세기 즉 임진왜란 1,200년 이후 홍정하란 수학자가 중국 수학자 수학 배틀에서 쳐발른 이야기 모르낭? 홍정하가 쓴 구일집이란 책만 봐도 당시 조선 수학이 얼마나 발전해 있는지 알수있습니다. 오히려 이때가 조선 수학의 전성기중 하나였는데 뭐란거죠. 이때도 서양 수학에 전펴 꿀리지 않았습니다. 몇몇 분야에서 앞서면 앞섰지. 예로 10차 방정식 풀이 기타등등.

그리고 선조때 조선이 부패, 타락? 이때 이이, 이황, 허준, 이순신, 권율, 류성용등 가라성같은 인물들이 줄기차게 나오던 시대인데 무슨 부패. 200년동안 전쟁이 없어서 나태해지는 경향은 어느나라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지금 대한민국도 군사 30만으로 줄이자는등, 모병제하자는둥, 적은 더 많고 휴전 기간은 50년도 안되는 주제에 이런 말이 나오는판에 일본, 유구, 만주에서 조공 잘 받고 편하게 200년을 살던 조선이 나태해지지 않기를 바라는게 말이되나요? 국가가 나태해지는 거랑 부패가 판치는건 다른겁니다. 솔까 임진왜란만 안 일어났어도 선조는 초기를 봤을때 명군이 될수도있었죠. 왜란때부터 막장을 타서 그렇지.
     
시간여행 14-09-15 07:17
   
대충 흐름만 파악하라고 올린글이구요 ....정확한 피해상황은 오류가 잇는것 같네요...
전쟁후 동아시아 정세가 명청 교체기가 될정도로 큰 사건인건 맞는데 ...결과적으로
왕조가 쭉 이어진게 더 안좋은 결과일수도 있다 이런 정도로 해석해 봅니다...
조선 관료의 타락은 몇몇의 인물로 이렇다 저렇다 할수는 없고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겠죠..바로 옆나라의 전시상황조차 파악못하는 시스템이라면 정상은 아니죠..
     
두근두근 14-09-15 08:38
   
근대에 와서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서양 수학에서 비롯된거고 서양 수학은 효율적인 수학이었죠 반면 동양수학은 실용적이 못했다고 해야하나 서양에 비하면 파급력인 약한게 맞음 님이 중,고등학교때 배운 수학의 대부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그 근본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생각한다면 간단히 증명돼는 사실이죠
          
굿잡스 14-09-15 14:13
   
근대에 와서 우리가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서양 수학에서 비롯된거고 서양 수학은 효율적인 수학이었죠 반면 동양수학은 실용적이 못했다고 해야하나 서양에 비하면 파급력인 약한게 맞음 님이 중,고등학교때 배운 수학의 대부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그 근본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생각한다면 간단히 증명돼는 사실이죠 >???

 ㅋ 이건 두근두근님이 좀 잘못 아시는. 그리스쪽이 학문적 수학개념으로 접근하면
서 지적 호기심을 극대화 이론적 중심에서 발전했던건 사실인데 도리어 실용 응용
수학에서 더 활용성을 일찍히 극대화 했던게 우리나라였고 특히나 조선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갈수 없을 정도의 근현대적 관료적 사회,제도화를 더욱 정밀하게
구축했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야는 잡과형식으로
조선 중기 양전란 이후에도 큰 흔들림없이 유지되었던 분야였고.
이런 조선의 수학 발전의 특징은 이런 관영, 관료수학자(천문,도량, 조세, 군함의 포병수,건축,토목 장인등)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했으며 18세기 조선후기에 가면 실학 사상의 영향으로 중인집단의 성장과 더불어 양반 계층에서도 더이상
관념적 사고에서 점차 탈피 영의정까지 지낸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은<구수략(九數略>에서 세계 최초로 9차 마방진등 매우 체계적 수학저서를 남겼고
그외 남병길이 편찬한 <구장술해( 九章術解)>의 내용을 보면  제1장 방전(方田), 제2장 속미(粟米), 제3장 쇠분(衰分), 제4장 소광(少廣), 제5장 상공(商功), 제6장 균수(均輸), 제7장 영부족(盈不足), 제8장 방정(方程), 제9장 구고(句股)(피타고라스의 정의)
등 이미 현대 중등 수학의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학서는 조선의 중인집단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관료에 등용되거나 장인으로서 최소한의 이론적 지식은
습득했다고 봤었고 그외 홍길주(洪吉周, 1786∼1841)같은 조선의 수학자는
<숙수념(孰遂念)>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뺄셈과 나눗셈만으로 제곱근을 구하는
독자적 방법부터 황금분할, 부정방정식, 원에 내접하는 다각형의 성질, 세 정수로 이뤄진 직각삼각형의 조합 등 여러 수학 분야에 대한 독창적 수학저서를 편찬해
낼 정도였습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하시길


세계적 수준 이르렀던 조선시대 수학자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33024
          
굿잡스 14-09-15 14:27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8세기에 제작된 석굴암같은 경우도
미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이 석굴암은 당시 우리나라 수학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알 수 있는 건축학의 백미입니다. 서토에서도 둔황, 원강 석굴 같은 것이 있지만
수학적 정밀건축학에서는 석굴암을 결코 따라 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이때
원과 원주율,아치형 천장구축, 분수 등분할, 정삼각형과 그 수선의 분할(本尊과 臺座의 크기),  등차급수적인 점차감소(본존의 형태), 정육각형의 일변과 외접원(굴의 입구와 내부의 평면원의 관계), 정팔각형과 내접원(본존 대좌의 구성관계)등 그기에
좌불을 보는 예배자의 시선까지 고려해서 3배 크기로 그 뒤의 등배까지 다 일치화된
대단히 정밀한 수학건축물의 결정체였다는 것이죠.
그기에 박창범교수가 울나라와 서토의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기존에 막연하게
서토에서 천문학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종래의 견해를 뒤집는 실증적 연구로
삼국사기의 천문학 정확도와 기록들이 훨씬 높고 많았으며 도리어 서토의 사서들이
이런 우리기록을 참조해서 적어 놓은 것까지 밝혀낸 상황임.
이런 천문학의 발전도 다름 아닌 수학이 밑바탕이 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대단히 고등 정밀 학문입니다.(이미 피타고라스 정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학문임) 그외에 조선 불패신화를 만든 수군의 뒤에는
발달한 선박건조술과 앞선 화약과 화포제작기술 그기에 도훈도같은 수학자가
있어 적선의 사거리와 함포거리를 계산함으로써 ( 망해도술의 원리를 통해 '두 쌍의 닮은 직각삼각형의 길이는 비례한다'는 수학적 원리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 그기에
따른 각 거리마다의 화폭량까지 이미 계산 준비해서 실전에 임함으로써 당시
세계어느 나라보다 앞선 근대적 함포해전사와 정밀타격을 가할 수 있는
불패의 조선함대의 업적을 만든 것입니다.
     
두근두근 14-09-15 20:30
   
태평성대라고 안일하게 국방에 소홀한다는것 자체가 왕하고 관료들이 무지하다는 증거고요 그거에 대해서는 변명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조선은 여러모로 신비한 왕조인게 왕조가 끝날때까지 관료들이 당파싸움만 하다가 나라가 망하는걸 보면 확실히 문제점이 많은 왕조였음
          
엑샤크 14-09-15 21:06
   
그럼지금 군축한 유럽은 병크에병크가 더한나라군요 ..그리고말하자면 조선은 북한쪽이 전방이얐고 말그대로 전라도나 경상도는 후방이였습니다 물론 터지고나서의병폐는이해하나 실드칠부분도 충분히있다는건 말씀드리고싶네요
          
나와나 14-09-15 22:55
   
붕당 정치가 어떻게 해야 당파 싸움인지...

붕당 정치는 현대 정당 정치와 부합되는 세계 최초의 정당 제도입니다

붕당 정치는 현대 권력 분립의 원리와도 일치하며

서로 언론을 통해 비판하고 권력을 견제할 뿐 아니라

공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선진적 제도입니다

조선의 붕당이 변질되기 시작한 건 숙종 때 기사환국부터이고

서로 죽이고 귀양보내는 이미지는 대부분 경종 통치기에 이루어졌는데,

이건 겨우 4년 남짓이죠

일제가 이걸 과장시키고 각인시킨 것일 뿐...

만약 조선의 붕당 정치가 당파 싸움이면 영국 토리당, 휘그당도 당파 싸움입니다
흐아앙 14-09-15 08:22
   
서양의 근대화가 그냥 증기기관 뚝딱해서 시작된 줄 아시는데 과학을 비롯 각종 학문이 대학이라는 교육기관, 중동의 연금술과 항해를 위한 항해술 선박건조술 등등 엄청나게 여러가지 코스를 통해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발달되어온것이 몇백년치가 누적되어있던것이 산업혁명 근처에서 한방에 포텐이 터진겁니다. 조선시대에 어떤어떤 발명품을 보면 실로 놀라운 물건이다 이는 서양에 얼마얼마 앞선다 이런얘기는 근대화가 시작될 가능성과 큰 연관성이 없는 이야깁니다. 특히 왜란 전부터 이미 성리학은 관념화에 빠져들기 시작했구요.. 왜란이 중요한건 아니였습니다.
     
시간여행 14-09-15 14:00
   
넵..저도 산업혁명이나 근대화는 동양에서 일어나기 힘들다고 보고 있읍니다...중국이 국가교체없이 고도문명이 지속되었다고 해도 말이죠...중국위주로 문화교류를 해온 조선도 한계성이 잇었던 것이고 ..그 바닥엔 기술에 가치와 기술자의 대우 ,성리학위주의 교육방식등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깔려 있읍니다...
세종땐 특별히 과학을 우대해서 여러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흐름이 끊어 졋다는 겁니다...왜란때 도공이나 기술자들이 많이 끌려가서 전반적으로 문화적손실이 큰건 사실 이거든요 ..
     
굿잡스 14-09-15 14:37
   
흐아앙님의 견해는 일종의 근대화란 단순히 공업화 자본주의화를 따라가는

유럽화 이런 도식이 깔려 있는 협소하고 서구중심적 개념입니다. 초기에  M.베버같은 사람

이고 특히나 서구가 자신의 열감 침탈의 명분론마냥 혹은 서구의 우월성 어쩌고식으로

주장하기 위한 주류적 시각이였지만

현대의 근대화란 이런 단선적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 사회제도적 전반적 부분을 아우르는걸

말합니다. 제가 아래에서도 조선이 비록 후기로 가면서 유럽에 비해 공업생산적

근대화에 비해서는 부족했지만 사회 제도적 어느 면에서는 일찍이 이미 앞선

개념부터 전반적 근대적 제도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고 하는건 이런 뜻을 말하는 것이죠.
          
시간여행 14-09-15 14:52
   
굿잡스 님이 항상 얘기하는 조선후기 사회전체적으로 근대화되고 있었다는 설은 님이 거의 단독으로 주장하시는 거잖아요..민란이나 단순히 저항하는 것조차 시민의식이런거로 평가해서 그런식으로 높이 올리는데 문제는 그걸 다른 나라에 적용되면 또 다그렇게 적용된다는 겁니다...중국도 일본도 다 그정도  그렇게 근대적과정이라고 인정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특히 서양쪽의 근대화는 과하게 평가절하시키시는데 이해가 안됩니다...
유럽문화가 원래 전체적으로 충분히 기초과학이나 자양분이 충분한 문화였죠..다만 중세에
종교로 인해 억압되고 중세암흑기가 온것이고..신위주에서 점차 인간..종교에서 과학이렇게
지구는 돈다 이러면 처형 이런살벌한 싯점에서 과학이 발전되 온거거든요..물론 막강항
해양세력이 식민지침탈로 자본화나 산업화로 온 측면도 있죠...한때 융성한 스폐인 포르투칼도 더 고도화된 산업문명에 의해 박살나는게 근대의 살벌함입니다..
역으로 해석하면 중세동양이 충분히 서양정도는 능가할수 있었고 별거아니다 ..
이런 의미인데 이런식으로는 한번도 서술한걸 본적은 없네요...좀 불만입니다..
제가 서양빠돌이가 아닙니다...객관적으로 이리저리 대조해보고 알아보고 결론내린거지..
               
굿잡스 14-09-15 15:07
   
굿잡스 님이 항상 얘기하는 조선후기 사회전체적으로 근대화되고 있었다는 설은 님이 거의 단독으로 주장하시는 거잖아요..>??

ㅋ 저게 저의 독자적 주장은 아닙니다만.

조선 후기의 연구가 점차 활발해지고 문헌연구와 실증적

데이타가 쌓이면서 소위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이 계속해서 입증되는

흐름속에서 나오는 주장입니다만.

그리고 서구의 근대화를 과하게 평가 절하하는 것 없습니다. 도리어 서구중심의

식민 침탈의 정당성으로 이걸 이용하고 특히나 아직도 이걸 부추기는 옆 섬나라의

전근대적 제국주의적  향수의 시각과 전쟁 중범죄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여전히 파렴치한 캐소리들을 재생산하는 시각들이 문제이죠.

이에 따라 우리도 알게 모르게 조선의 실체적, 전체적 모습을

모른채 상당히 비틀리게 보고 있었던 것이고.

그기에 왜 마르크스가 젊은날 근대 공업화의 선두라는 영국사회를 보고 절망적, 한탄

의 목소리로 마르크스주의가 나왔고 레미제라블이 써여 적는지등 다각적 부분의

시각을 유지하고 근대 서구사회의 모순과 명암을 함께 봐야 할 것 같군요.
               
호부 14-09-15 15:14
   
아뇨 그건 님만의 생각입니다. 중세 유럽의 문화는 결코 그런 문화가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이슬람 문화가 그런 문화였죠. 당시 이슬람은 최고의 선진 문명이었고 유럽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기초를 이식받은 겁니다. 다만 그 이후 내분에 빠진 이슬람덕분에 유럽은 발전할 시간을 갖은겁니다. 뭐 그래도 이후에 몽골이 이슬람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유럽이 이슬람을 넘보는건 어림도없는 소리지만요.
스페인 포르투갈은 식민지의 수탈에 너무 의존하다가 본국의 역량을 다말아먹어서 영국 프랑스 등에게 역전당한겁니다. 영국 프랑스가 추윌한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진거죠. 수탈경제가 오래 유지될리가 없는데 그걸 무시한 대가를 치룬거죠.
이신 14-09-15 12:00
   
수학의역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했엇지만 그건 확실치 않아서요...  신라는 거의 수학의 왕국수준이엇어요 그건그렇고 세종때에서의 과학문명은 세계의200년~300년보다 앞서갔엇어요.
신기전(초기미사일), 측성기등등 만들었잖아요
군사력이라면 세계 1위,2위정도 될겁니다 그만큼은 강력하다고 얘기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없는탓에 무방비상태라서 그래요...
     
두근두근 14-09-15 20:22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는 이미 한계성이 명확한 왕조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일단 중국에 벗어나지 못하는 사대주의에 의해서 동양적인 사고방식 이상으로 벗어나지 못했고 일본은 그걸 놓치지 않고 메이지유신으로 과감히 서양문물을 받아들인거 보면요 그리고 수학도 사실 조선시대 수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그당시의 이론이 지금까진 제대로 이어져오는게 없고 현대 과학과 공학에서 쓰는 수학들은 동양에서 유래한 수학이 아니죠
          
나와나 14-09-16 00:07
   
님은 기본적인 사대-책봉 관례의 개념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군요

조선이 한 사대는 동아시아의 국제적 질서일 뿐이죠
그것가지고 중국에 벗어나지 못한다는 둥 헛소리를 하시면 곤란합니다

조공은 실리적 이익을 위해 택한 국제 무역이고
책봉은 형식적인 절차입니다

그 밖에 조선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명나라에 귀속되어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그리고 님은 뭔가 서양에 환상이라도 가지신 것 같군요
서양적 사고방식은 뭔가 앞서있고 선진적일 것 같나요?

동양적 사고방식에 벗어나지 못했다??
님이 생각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은 무엇이길래 벗어나야만 하는 존재죠?
동양 철학과 정신적 가치는 서구권에 꿇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고 발달했습니다만..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지배층들이 "아, 우리 서양 문물 받아들여야 겠다"하고 개혁한 게 아니라

근대화를 주장한 조슈, 사쓰마 번이 지배층인 바쿠후를 내쫓고 정권을 잡은 '정권 교체'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갑신정변? 정도되는 게 성공한 케이스지 지배층이 깨어있어서 스스로 개혁한 게 아닙니다
푹찍 14-09-15 13:44
   
이순신장군님이 잘못했네 ㅋ
너무 고지식해서 일베충 선조 밴 안시키고 안고 가다가 결국 조선이 일베판이 되어버렸으니 ㅋ
자기 희생으로 성웅 이순신이 아니라
새왕조를 연 영웅 이순신이 되었어야 했는데
     
시간여행 14-09-15 13:53
   
너무 그렇게 편협하게 보진 마시고...이순신장군이 왜란을 막은건 엄연한 사실이고 ..
이이의 10만양병설이 무산된 과정이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서 상황파악이 안되서 전쟁준비를
못한것은 성리학이나 기존 보수세력의 문제점이 잇다고 봅니다..
          
shrekandy 14-09-15 14:19
   
이이 10만 양병설은 고작 딸랑 1줄나온 기록으로 현재 정설도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이 자꾸 전쟁 대비하시는데, 조선이 왜 일본이 침입을 할지 의심을 안했는지 읽어는 보셨나요? 아니 모른게 아니라 이정도 20만씩 끌고올줄은 몰랐던거고 이건 당연한겁니다. 200년을 조선에 조공바쳐오고 쳐들어오면 맨날 두들겨 맞고 다니던게 약소국이 일본입니다. 즉, 빵셔틀이죠. 빵셔틀이 갑자기 일진을 줘패 승리한다같은 소년만화적 전개를 누가 기대했겠나요? 신립이 조총을 대수롭지않게본것도 안목이 적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조선활에 비해 딱히 난것도, 오히려 명중률, 사거리에서 뒤진단걸 알고한소립니다.  명나라도 처음에 조선이 구조 요청하자 못 믿은거 모르시나요? 수,당도 이긴 니네 조선이 왜따위에게 질리가 없다하면서 말이죠. 당시 일본의 대규모 침략은 일본 역사상 한번도 없었기에 누구도 예측 못한거였니다. 와도 2,3만명 끌고올줄 알았지 20만은 ㄴㄴ
굿잡스 14-09-15 14:59
   
이글은 우선 중국이라는 게 뭔지부터 정의를 제대로 하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요순 조차도 동이족 어쩌고 하는 마당에 동서양 문화 교류를 촉진시킨 원은 누구의 역사이고

도리어 명나라 시절에는 수학은 조선보다 퇴보했습니다. 특히나 명은 주판등 너무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 치우치다보니 도리어 조선에서 보이는 독창적 수학저서나 과학의 발달보다 정체,퇴보된 시기였고.

그기에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 시대에 서서히 발전한 비단길에 비해 이미 북방의 초원길은 유라시아와

동북아 고조선 선대 만주일대로 더 빠르게 촉진 교류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이는 채색토기만

봐도 이미 만리장성밖 요하 발해일대의 토기가 서토 내륙의 황하 앙소문화보다 500여년을 앞선 나오죠.

그기에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은 매우 정교한 구리, 주석, 아연등 합금조합이지만 서토의 경우는

형태도 다르지만 단순한 청동제로 발달에서도 미치지 못하는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이외에 실제 하남 박물관의 동이족 관련 기록만 봐도  <깃털달린 활과 화살 발명,  문자창조, 청동기제조, 철

을 단련하였으며,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고,  농업 발전과 치수(治水)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봉황등 새를  토템신앙으로 하거나 실제 수레의 경우도 진시황의 마차의 원형이 서토 내륙이 아니라 장도

라는 발해만 일대에서 발견되었음)

만리장성밖 만주 요하일대에 세계 4대문명에 버금가는 도리어 황하 앙소문화보다 더 앞선 신석기

후기에 이미 정교한 직업의 분화와 신분제를 알 수 있는 다량의 옥기류부터 대규모의 인력 동원을

알 수 있는 100여미터의 거대제단이나 지중해 도시국가처럼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여신상과 신전및

여기저기 상당한 크기의 도시형 촌락등이 발견되는 요하 발해문명을 봐도 이미 고조선 선대 문명지는 독자

적 원시문명과 이후 빠른 정치체의 국가단계로의 진입을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게 뭘 말하냐 하면 우

리가 아는 단순히 일방적 서토문화 수용이나 서토에서 일방적 문화가 우리에게 전파되었다는 식은 대단히

왜곡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죠.>

이미 중국이라는 자체가 추상적, 모호한 개념의 역사와 공간성에 문화도 여기 저기 짬뽕이지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 쭝국문명 우위론이나 태동론도 전혀 맞지 않는 다원적 문명관과 교류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기에 유럽의 문명이라는 것도 중동의 앞선 문명교류속에서 더불어 발전했고 로마제국 이후 도리어

퇴보되어 버리고 오랜세월 침체했던 중세 문명 역시도 이런 중동의 과학과 수학을 통해서 활기를 띠면서

17세기에 가서 점차 고등 수학의 토대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발전한 것이죠.

어느 문명이고 어느 나라고 그 나라가 이미 일정한 정치체와 지식 기반을 자체 보유하고 있던 나라라면

그것을 일방적 관점에서 봐서는 곤란합니다.(특히나 조선은 이런 소위 인프라라는 사회 제도적 부분에서는

상당히 정교하고 앞서 있었던건 알수록 주지의 사실임)


그기에 앞서도 나름 몇가지 지적으로 언급했지만 저 글처럼 조선이 무슨 15세기 이후 모래성 어쩌고

비유하는 식의 논조는 국가라는 문명이라는 특히 사회제도적으로 대단히 정교화 더욱 발전해가는 조선

사회상을 보면 딱히 공감가는 부분이 아니군요(그기에 무슨 임진시기 직전 조선의 부패와 막장??

도리어 15세기 실용 과학에서 16세기에 이이,이황같은 석학들에 의한 철학적 부분의 발달로 관심이 줄어들

고 정체되어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후 17세기에 가서 다시 과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흐름으로 감)
     
두근두근 14-09-15 20:27
   
조선은 어차피 망하게 될 왕조였다고 보는게 명나라를 사대한다는 그 사상부터가 이미 그릇된거죠 외교를 하는건 좋지만 왕 책봉을 명나라 황제한테 허락맡는걸 보고 속국인지 아닌지 착각이 들정도니까요
          
엑샤크 14-09-15 21:10
   
???.그건형식적이였습니다 오히려 그걸로뜯어낸거죠 니뽕이나 그런나라도 예왼아니고요 앵간한아시아국가들은 다 고개숙였습니다 하다못해 영국도 조공외교를했고요
          
나와나 14-09-15 22:13
   
그건 형식적인 겁니다
일종의 통보죠

조선 국왕을 명나라 황제가 허락해야 왕이 되는 거라면
왕좌를 침탈한 세조는 어떻게 왕이 됬죠?

지금 대통령 뽑히면 먼저 미국 방문하죠?
우리는 이게 당연한 일이고 형식적인 일임을 알지만 이것도 나중에 몇 백년 뒤에는 대한민국이 미국의 속국이 아니었냐는 말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나와나 14-09-15 22:23
   
"제후는 천자를 대함에 있어서 해마다 한 번 소빙을 하고 3년에 한번 대빙을 하며 5년에 한 번 조근을 한다"

-예기, 왕제편


원래 동아시아의 국제적 관례에서 제후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은 천자에 조근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조선 왕이 명나라 황제에게 조근을 한 횟수는?

0번...

즉, '사대=속국'이라는 공식은 전혀 틀린 말이라는 겁니다
     
나와나 14-09-15 22:41
   
저도 굿잡스님의 글에 동감이 많이 가네요

위 게시글의 전체적 흐름이나 내용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오류들도 많이 보여요

예를들면 명과 조선의 국력 차가 수십 배라는 등 명나라의 과대평가, 혹 조선의 과소평가들이 보이고

굿잡스님이 쓰신 댓글에도 나오듯이 만주-한반도 문명권이 이미 고대부터 타 문명권과는 다른 독자적이고 선진적인 문명을지녔던 것을 간과한 채

조선 문명이 행운으로 인하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거나 아라비아 문명의 전래 덕이라는 등 오류들 때문에

재밌게 읽으면서도 눈살을 찌푸리게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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