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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19 17:09
[기타] 조선이 가난한 나라인가요?
 글쓴이 : 대은하제국
조회 : 4,940  

 
이거 보고 놀랐는데요 진짜인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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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14-08-19 17:15
   
그건 19세기부터 인듯 청나라 그림이 보니까 여인이 담배를 피우는거는 마약인가? 야...마? ㅈㅅ 잘 기억..ㅠ
     
mymiky 14-08-19 18:26
   
아편?
이신 14-08-19 17:15
   
마약때문에 전쟁이 난적도 있었어요 중국에서
내일을위해 14-08-19 17:23
   
하아~~~~ 어떻게 저런. 일본의전통가옥  찾아보시고 열하일기읽어보면 저 블로그가 얼마나 잘못된지 알수있습니다. 중국애들이 가마니를 쌓아놓고 산다고요? 그냥 웃죠. 일본의 기와집이 40키로? 참나. 딱 한가지 인정하는건 상업은 발달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gaevew 14-08-19 18:55
   
[펌글]그러나 안타깝게도 근세사에 '코리아'는 반도역사가 분명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을 서세가 보호하거나 옹호하지 않을 수 없는 합체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꺼꾸로 풀이 하면 그들에게 근세기 이전역사에서 두렵고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실체가 '코리아'이며 때문에 네덜란드가 세계대양을 휘어잡으면서도 배를 만들어 상납한 과거의 무서움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한반도에 가둬놓고 앙갚음을 한다고 생각하면 틀림 없다.
지금도'코리아' 란 이름의 국가는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거대한 세계지배국 코리아, 삼한의 대조선은 당연히 지금의 대서양인 대동양을 동해라고 하였던 세력이었고 그 세력을 서세들은 '코리아'라고 하였으며 그 주체들이 있었던 곳은 다름아닌 북아메리카대륙이며 그곳에 존재하던 모든 역사가 서세에 의해 철저하게 지워지고 없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금방 들어나는 이야기다.
코리아, 대조선이 건재했을 때 일본도 네덜란드도 모두 한낱 코리아가 지배한 세력이거나 한낱 조직에 불과하고 장사아치에 불과한 것으로서 코리아의 거대한 영향력아래에서 생존하기위해 발버둥치던 해양세력이었다는 사실 또한 그들이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당시 그들이 만든 고대지도를 보면 아시아(亞細亞)란 단어는 지금 아시아대륙보다 아메리카대륙에 더 많이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아시아란 명칭이 결코 현재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근세기에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떠밀려 동아시아로 이동된 과정에서 생성되거나 근세기 서세가 동양의 근원지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으로 지정한 명칭임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다 근세기에 불과 100년에서 130년 전에 일어난 사실들이란 점에서 할말을 잃는다.
멀지도 않는 100년 또는 130년 정도의 시간에 코리아, 대조선이 해체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역사가 코리아 역사라니 어찌 놀라움과 한이 왜 없겠는가?
네덜란드가 코리아와 단지 직교역을 하기 위한 것임에도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여 상납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절 그 시기가 바로 생사여탈지권(生死與奪之權)을 가지고 있었던 코리아, 삼한의 전성시기임을 어찌 어리석은 우리가 알 수 있었겠는가?
mymiky 14-08-19 18:56
   
조선이 유교국가라서 검약함을 강조하긴 했는데, 아마도 사람들 머릿속엔 그런 이미지로 박혀있는듯..

위에서 인용한 북학의-박제가는 청나라 풍물을 잘 알수 있는 책이지만, 저자 박제가는 당시에도
-당벽-이라고 비웃음 샀던 양반임. 당벽이 뭐냐고 하면, 지금의 중빠라고 번역하면 됨.
이를테면, 중국이 미국을 꺽고 세계를 재패할꺼라는둥,, 중국이 최고! 뭐 이런 분..으로 유명했던 사람ㅋㅋ

박제가가 살았을 당시 청은 건륭제 시기로, 청의 전성기의 거의 끝물이였는데, 뭐, 박제가가 양반이니
좋은 곳만 골라 다녔던 이유도 있고( 부자들이 관광다니는데, 그 나라 뒷골목 다니겠음? 번화가나 관광지만
보고, 살아보지도 않고, 그 나라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과 비슷함)

그후, 박제가가 찬양하던 청나라는 쇠퇴기 고고씽. 사실 건륭제 치세 후반부터는 청나라도 부패하고 있었는데, 박제가가 찬양하고 있던 동시대 서양 상인들이나 선교사들은 오히려 청나라를 걱정하고 있었음.

일동장유가도 일본풍물을 알수 있는 사신의 기행문인데, 조선의 사신들 기행문은 이거 아니라도 많아요.
조선통신사들가 열몇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니, 그때마다 저자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조금씩 논조가 다양하죠, 주로 일본의 번화함을 주장하려고 일동장유가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는데, 그 중에 일본에 좋게 쓴 문장만 뽑아서 보여주는 식이라고 할까?

일동장유가는 일단, 무척 방대한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아마도? 원본을 다 읽어본 사람이 드물겁니다.
있어도 청소년용 축약용 정도가 있을까? 저 블로그의 주인도 못 읽어봤을껄요? 사실 저도 듣기론 일동장유가 내용중엔 일본 찬양뿐만이 아니라 일본을 까는 내용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아는데 ㅋㅋㅋ 인터넷에선 어디서 복사했는지,  늘 같은 문장만 보게 되는군요.
     
mymiky 14-08-19 19:17
   
제가 하고픈 말은, 기행문이란 것은 글쓴이가 여행(유람)을 다녀와서 쓴 글이기 때문에
자기 주관이 많이 개입된 글이라는 겁니다. 그럼으로, 재밌게 읽으면 될뿐,
그게 꼭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알수 있게 하는건 아닙니다.

박제가나 김인겸 모두 청, 일본에 있었던 시기는 짧습니다. 몇달정도?
그 나라에서 정착을 하고 사는게 아닌 이상,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 속속들이 알기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차가 있고, 인터넷이 있는 편한 세상이 아니던 교통시설이 열악하던 과거엔 더더욱 그렇구요.

옛날엔, 외국경험을 해볼수 있었던건 상인들이나, 외교관들 같이 특수한 신분계층이 아니면 하기 힘들었죠.  박제가나 김인겸 모두 사신행렬에 속하여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 분들이 보고 느낀 것을 읽되, 위에서도 말했듯이 저자의 주관과 그 나라의 짧은 경험만을 맛보았기에 겉면위주로 봤을수도 있단겁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조선이 가난했냐?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이건 산업혁명 후에 산업국가들이 농경국가를 깔때 흔히 가난하다던가. 미개하다던가 잘 까는 레파토리죠. 특히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조선은 가난하고 미개하니 문명국인 우리가 보호해 주겠다는 선전을 많이 했기에, 그런 인식이 박혔다고 생각합니다.

뭐-상대적으로 청, 일본에 비해 조선이 가난하게 보일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걍- 중국이야 고대부터 물량빨 강한 나라니까 넘어가고, 일본도 에도막부 시기엔 기본적으론 쇄국이나, 한편으론 도자기 수출하고 국부를 늘린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도 영정조 시기엔 상업이 번창했으나, 사람들 인식이, 흔히 조선은 유교 국가라서 가난할 것이다고 무턱대고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죠. 뭔가 강대국인 청일에 비해 우리가 밑져보이는 기분이랄까? 뭐, 편견일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도 자신감 없고, 무지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조선이 세계에서 하위권에서 놀던 가난국이냐? 물으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현대gdp 개념을 조선에 그대로 적용할순 없겠으나,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자인 제임스루이스 교수는 2007년 ‘Research in economic history vo 24'에서 1780년~1809년까지의 조선 숙련노동자의 하루 임금(쌀 8.3kg)은 이탈리아 밀라노 숙련노동자 하루 임금(빵 6.3kg)이나 영국 숙련노동자 하루 임금(빵 8.13kg)을 상회하였고 이는 영‧정조시대 조선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사는 나라였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제학자인 앵거스 2001년 OECD의 발행물로 발간한 ‘Development Centre Studies The World Economy A Millennial Perspective’에서 1900년 조선의 1인당 GDP는 $850였으며 이는 세계27위이고 이 시기 영국은 $4593로 세계 1위, 일본은 $1135로 세계 24위, 중국은 $652로 35위였다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gaevew 14-08-19 19:13
   
옥토29 14-08-19 19:50
   
청나라는 제가 잘 모르니 넘어가고...일본 이야기가 영 괴랄한데요.
도쿠가와 막부 집권기인데. 그 시대면 일본 미인의 조건중 하나가 그 악명높은 흑치입니다. 이빨 까맣게 칠하고 다니는거. 미적기준이 판이하게 다른 서양인들조차 아름답다며 농부 딸내미를 귀족 아가씨로 착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게 조선 여성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 보고 살던 조선인이 이빨을 까맣게 칠하고 생활하는 일본 여자들을 보고 아름답다며 헤벌레한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요?;;
서라벌 14-08-19 20:48
   
말도 안되는 소리네요. 위에 마이미키님이 잘 설명해 주셨듯이, 당시 청나라가 경제규모로 따진다면 세계 최고수준이긴 했으나 박제가는 확실히 중국빠돌이 맞습니다. 좋게 말하면 중국 보고 배우자인데 솔직히 거의 신봉수준까지 갔죠. 그리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도 이후 일본이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위의 블로그처럼 오바 떨 수준은 아니죠. 누군가가 비하를 목적으로 일동장유가에서도 간추려서 저런 말을 뽑아서 보여준 거 맞습니다.
서라벌 14-08-19 20:49
   
게다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일본을 다녀온 사신에게 왕이 일본의 사정에 대해 물어보는 기사가 있는데 찢어지게 가난해서 백성들이 굶어죽는 자가 많으니 이에 또 우리나라를 침략할까 걱정이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굿잡스 14-08-19 21:24
   
예전에 오다가다라는 사람이 조선까면서 들고 온게

만쭈리지 뭔지 하는 양반의 블로거가 저 내용이더만. 쯧.

저양반 블로거 이전부터 조선을 희한하게 까대는게 이상하다 싶더만 저 글의 원문 왜곡까지 쳐해서

까대는 것 보고 진짜 전형적 잽뽕스럽다는 생각이 확 들었던.


1764년 1월 22일 오사카
100 만채는 정도는 될 듯한 집의 모두는「기와 지붕」이다. 굉장하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조선의 최대의 대저택」의 10배 이상의 크기로, 구리 지붕에,내부는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도시의 크기는 약 40 km 이며, 그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믿을 수 없다.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 였다. 세상에, 이와 같이 훌륭한 도시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울의 번화가의 10000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본 통역이 통신사도 있지만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더럽고 어리석은 피를 가진 짐승과 같은 왜놈이 중화주의 시대에, 이 토지에 왔다. 그리고 2000년간, 평화롭게 번영해, 하나의 천황가를 존속시키고 있다. 한심스럽고, 원망스럽다.

>>> 실제 원문내용

마농수의 숙소 곁에 높은 난간 위에 앉아 사면을 바라보니,

지형도 기절하고 인호도 많을시고 백안이나 되어 뵌다.

우리나라 도성 안은 동에서 서에 오기 십리라 하지마는 채 십리가 못되는데,

부귀한 재상들도 백간집이 금법이요, 다 모두 흙기와를 이었어도 장타는데,

장할 손 왜놈들은 천간이나 지었으며,

그 중에 호부한 놈 구리기와 이어놓고, 황금으로 집을 꾸며 사치키 이상하고,

남에서 북에 오기 백리나 거의 되되, 여염이 빈 틈 없이 빽빽이 들었으며,

한 가운데 낭화강이 남북으로 흘러가니, 천하에 이러한 경 또 어디 있단 말고?

북경을 본 역관이 행중에 와 있으되, 중원의 장려하기 이에서 낫잖다네.

이러한 좋은 세계 해외에 배판하고, 더럽고 못쓸씨로 구혈을 삼아 있어

주평왕 때 입국하여 이제까지 이천년을 흥망을 모르고서

한 성으로 전하여서 인민이 생식하여 이처럼 번성하니,

모를 이는 하늘이라. 가탄하고 가한이라.




1764년 1월 28일 쿄토
거리의 번영이 오사카에는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천황이 사는 도시이며, 매우 사치스러운 도시다. 산의 모습은 용장, 강은 평야를 둘러싸 흘러 비옥한 농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
이 풍부한 낙원을 왜인이 소유하고 있다. 분하다.「황제」이나「천황」를 자칭 해, 아이나 손자에게까지 불리고 있다.분하다.
이 개와 같은 왜인을 모두 소탕 하고 싶다. 이 토지를 조선의 영토로 하고, 조선왕의 덕으로 예절의 나라로 만들고 싶다.

>>> 실제 원문내용



여염도 왕왕있고, 흔할 손 대밭이다. 토지가 기름 져서 전답이 매우 좋네.

이십리 실상사가 삼사상 조복할 때 나는 내리쟎고, 왜성으로 바로 가니,

인민이 부려하기 대판(오사카)만은 못하여도 서에서 동에 가기 삼십리라 하는 구나

관사는 본룡사요, 오층 문루 위에 열 아문 구리 기둥 운소에 닿았구나.

수석도 기절하고, 죽수도 유취있네. 애황이 사는 데라 사치가 측량 없다.


산형이 웅장하고 수세도 환포하여 옥야 천리 생겼으니, 아깝고 애닳을 손


이리 좋은 천부금탕 왜 놈의 기물되어 칭제 칭왕하며 전자 전손 하니

개돝같은 비린 유를 다 모두 소탕하고 사천리 육십주를

조선땅 만들어서 옹화에 목욕감겨 예의국을 만들ㅤㄱㅗㅍ다.




1764년 2월 3 히나 후루야
거 리의 번영, 아름다움은 오사카와 같다. 굉장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인구가 많음, 토지의 풍부함, 가옥의 사치스러움…이 여행의 최고다. 난징에도 없는 풍경이다.조선의 수도도 훌륭하지만, 나고야와 비교하면, 매우 처량하다. 사람들의 아름다움도 최고다.

육십리 명호옥(나고야)을 21시에 들어오니 번화하고 장려하기 대판성(오사카)와 일반이다.

밤빛이 어두워서 비록 자세 못 보아도 산천이 광활하고 생식이 번성하며

전답이 기름지고 가사에 사치하기 일로의 제일이라.

중원에도 흔치 않으니, 우리나라 삼경을 갸륵다 하건마는 예 비하여 보게되면 매몰하기 가이 없네.

(중략) 인물이 명미 하여 연로에 으뜸이다.

1764년 2월 16일 에도(도쿄)
좌 측에는 집이 늘어서, 우측에는 바다가 퍼져 있다. 산은 전혀 보이지 않고, 비옥한 토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누각이나 저택의 사치스러움, , 사람들의 활기차, 남녀의 화려함, 성벽의 아름다움, 다리나 배….모두가 오사카나 쿄토에서 삼배는 우수하다. 이 훌륭함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나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하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나고야와 같다.



>>> 실제 원문내용



십육일 우장입고 강호(에도)로 들어갈 때 왼편은 여염이요, 오른편은 대해로다.

피산 대해 하여 옥야천리 생겼는데, 누대제택 사치함과 인물남녀 번성하다.

성첩이 정장한 거소가 교량주즙 기특한 것 대판성(오사카) 서경보다 삼배나 더하구나.

좌우의 구경꾼이 하 장하고 무수 하니, 서어한 붙끝으로 아루 기록 못하겠다.

삼십리 오는 길에 빈틈없이 묶었으니, 대체로 세어보면, 백만이 여럿일세

여색의 미려하기 명호옥(나고야)와 일반이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63226&cpage=1




에도시대 막부가 조선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해 재정이 휘청했죠.

잽 한해 쌀 생산량의 12퍼센트를 소비할 정도 였던.(이게 기본적으로 조선통신사가 지나가는 도로며

건물을 번듯하게 보일려고 일찍히 그리 부산할때가 없이 재정을 물쓰듯 했다는 사실임,

그기에 저 기록들만 봐도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얼마나 특정세력 즉 일부 극소수 위정자나 대상인들이 독점적 부와

대저택을 소유하면서 대다수 농민들의 피를 쳐빨아 먹고 있었으니 에도시대가 그

찬란한 어쩌고와는 달리 앞선 야요이, 나라 헤이안 시대보다 성장점이 최저점임을,

이런 이면을 보는 눈은 가져야 겠죠. 서민 운운하면서 무슨 일부 대저택들 눈요기꺼리

이야기와 특정 대도시 일부묘사로 어쩌고 그것도 잽빠돌이들 전형적

원문 왜곡질 창작글까지 나열해서 조선을 까대는

(참고로 울 나라 고려 시대가 저런 모양새죠 한마디로 귀족시대 어쩌고

특히나 정치 막장이든 무신정권기일때 최충헌은 민간집 100여채를

허물고 누각 하나에 천여명이 앉아서 놀 정도로 고루누각이 고려 황궁처럼

즐비하고 의리의리했음. 당시 고려 귀족들은 이런 장원이나 대장원을 소유하고 웬만한

축구장 같은 거대 저택에서 사병까지 거느리고 왕처럼 지내는게 별거 아닌 시대였단

말이죠 이말은 고려시대의 일반 백성의 삶이 조선시대에 비해 좋았던게 아니라는 말

임. 왜 조선이 초기부터 법으로 사대부들이고 엄격하게 주거지 하나에도 검약과 절제

를 표방했는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였고

사대부들의 덕목이였음.  권력과 부가 독점된 빈부차가 심한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겠죠)
굿잡스 14-08-19 21:46
   
조선 후기 모습(경기감영도)

http://blog.daum.net/gijuzzang/4071655


왜국의 선진주거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0580&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A1%B0%EC%84%A0+%EC%A3%BC%EA%B1%B0&sop=and

글구 박제가라는 양반은 청뽕도 심했고(청어를 공용어하자고 주장한

인물임) 오늘날로 치면 독설가에 극좌파적 성향의 인물임 ㅋ(이 양반의 독설적 디스를 보고

단세포로 그게 조선의 어떤 전반적 실체적 고정적 모습마냥 보아서도 곤란하겠죠. 뭐

잽극우나 잽뽕들에게는 옳거니 하고 떡밥 먹잇감 줬겠지만 ㅋ)

이양반이 영국 대영제국 시기 어쩌고 할때 실제 가보고 살았으면 저 마르크스보다

더 영국 사회의 뒷골목이고 참상을 디스날렸을 인물일지도 모름.
nation 14-08-19 21:58
   
한국인들이 흔히 비교하는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이 확실히 조선보다 앞섰기에 조선이 초라해보이지,

조선 자체만 보면 세계적으로 나름 상위권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규모가 14위인데, 조선 후기가 이보다 못하지 않았을 겁니다.

실증사학에 근거를 둔 만쭈리 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lsn76
글을 보면 18세기 조선 인구를 세계 7~8위 정도로 보던데

산업혁명 이전 시기에 인구와 경제력이 대략 비례하던 것을 감안하면.....
조선이 생산성이 낮았다 해도 경제력은 대충 15위보다는 높았을 듯.
     
굿잡스 14-08-19 22:11
   
??? 링크가 무슨 실학사상??ㅋㅋ

그리고 제발 이 양반 블로그로 역사 공부 하지 마세요.(물론 일부 팩트도 있지만

거의 자의적 출처 불명의 오류 투성이들임. 가져온 누구 주장 어쩌고도 어느 정도

안목없는 자기식 입맛에 맞는 소스만 들어와서 어쩌고 하던)

윗글에도 말했지만 잽 기록은 실제 원문 내용이 아니라 왜곡 창작글로 쳐올려놓고는

무슨 비교 어쩌고 웃겨서리.

이런게 보니 한두개가 아니더군요.

둘러보니 풍납토성만 해도 고고학계에서 10여년 이상을 연구해서 나온 내용을 싹

무시해버리고 무슨 탄소 연대 측정의 오차가 수천년 어쩌고 이런 캐소리로

삼국사기 초기 내용 무시해버리고 과거 식민사관의 원삼국같은

헛소리나 남발하던..(풍납토성축조가 이르면 기원전 2세기에서

늦어도 기원후 2세기 사이로 보는게 그냥 나온줄 아는 어처구니 없는. 기초개념도

없는 양반이 역사 호도나 쳐대고 있는 쯧.)


아래 저급 아이디 어그로 글도 그렇고 대부분보면 잽뽕스럽거나

예전에 인조이 재팬에서도

잽극우들 쳐하는게 실제 원문이나 고고학적 소스보다는 저런 식의 잽스러운

만화 캐릭터와 그림으로 찌라시 만들어서

역사글이니 어쩌고식의 패턴 성향이 강하더군요.  접근하기 쉽다고 마냥 혹해서

그렇겠거니 보다는 아예 저 대은하제국님처럼  모르면 물어 보든지 다양하게

서로 검증을 해보고 의심해보는 사고가 더 낫습니다.
나와나 14-08-19 22:20
   
환곡 1000만석은 쌀로 환산하면 600만석 정도가 되는데, 중앙과 지방을 합한 1년 세입이 400만석 정도였으므로 조선왕조는 국가재정보다 더 큰 규모의 곡물을 저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시기 1790년대의 중국의 경우에 상평창(常平倉), 의창, 사창(社倉)에 저장한 곡물이 쌀로 환산하여 2300만석이었다. 곡물의 총량은 중국이 더 컸지만 중국의 인구가 3억인 것에 비하여 당시 우리나라는 1600만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1인당으로 계산하면 중국의 5배나 되었다. 국가가 저장한 곡물량으로는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이 틀림없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3118360

당시 곡물 생산량 =경제력이었던 걸 감안하면 조선의 경제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죠
도밍구 14-08-19 23:04
   
돈 받고 파는 책도 좋은 책을 만나려면 수백권을 거쳐야 하고
이름을 걸고 주장하는 논문도 그나마 내용이라도 있는 것을 찾으려면 몇 달, 몇 년인데요
하물며 아무나 적고 아무나 보는 블로그 내용이라면 어떨지...
그래서 차라리 알려진 책이나 보는 것보다
이렇게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게시판이 운영만 잘 된다면 좋아 보입니다.
점빵알바 14-08-20 06:59
   
ㅋㅋㅋ.

정조때...
시골 촌도 비단옷에 가죽신...
중국과 쪽국은 문명의 후토국이군.

그때 아메리카는 원시부족이었음.
ㅎㅎㅎ.

한 100년정도 우기면 진실이 될지도... 
(한국이 역사를 포기해 가니...)
맘마밈아 14-08-20 15:49
   
임진왜란때 동원한 군대만 봐도 일본은 배만 2천척가량 우리는 120척정도...원래 상대가 안되었기에 기습과 매복 화포를 이용한 공격만 했음. 백병전에서 왜병 한사람이 조선병사 10명을 상대할 정도였고. 당시 일본이 그정도 함선과 군대를 동원했다면 경제력 또한 그정도 격차가 아닐지...
     
굿잡스 14-08-20 17:24
   
임진왜란때 동원한 군대만 봐도 일본은 배만 2천척가량 우리는 120척정도>?? ㅋㅋ

진짜 단순하군요.

근데 임진왜란때 왜가 동원한 총수가 2천척 어쩌고는 어디서 나옴???

글구 울나라가 120척??  ㅋ

애초에 울나라 판옥선의 경우는 150명에서  200여명이 탈 수 있는

2,3층의 높이와 크기라면 잽은 안택선같은 2층 구조도 있지만 이건 거의 소수이고

주력는 세키부네같은 고작 5,60여명이 탈 수 있는 저층 구조임.(그외 이보다

소형인 코바야부네) 이런 배들은 울나라가 중기에 판옥선이 새로 건조되면서

전기에 사용된 중,소맹선같은 배로 조선에서는 고깃배로 전락함 ㅋ 그리고 애들은

울나라 충파에 쳐발려 부서지거나 제대로 화포하나 장착도 못하는,

좀 큰 안택선도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할 정도란 말이 뭔 뜻인지 아시겠어요?? (그

만큼 기술력뿐 아니라 공정기간이고 우리쪽 건조가 힘들고 잽왜선은 만들기 쉬운

배라는 말임)

그리고 애초에 잽은 전국시대를 막끝내고 칼찬 백정놈들이 대다수 농노를 바탕으로

전면전을 작정하고 전쟁준비의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임. 이말은 즉 대다수 자국

농노를 바탕으로 강제노역을 통해 물자 징발부터 야산에 벌목해서 배만드는 인력으

로 집어 넣고 작정하면 지들 왜인 대다수는 말없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고 전쟁터에

서 그렇게 끌려 간 것이고.(위에 영주도 따라야 하는 판에 밑에 농노들이야 ㅋ)

이걸 단순히 무슨 국력 어쩌고 비교질 하는 건 참 웃기군요.(울나라는 이와 반대로

괜히 전쟁론 부추기면 백성들 생업이고 힘들어지니 어쩌고 했던 것이고)

 그리고 울 조선 수군은 대규모 기습전에 털리는 전장에서도 120척이 아니라

180척 이상 어느 사료에서는 250척 이상의 잽보다 튼튼하고

큰 규모의 판옥대선을 보유하고 건조했음.(실제 명량 영화에서 역사고증으로 시달린

게 잽의 주력선들이 해상에서 이 조선 판옥선을 상대로 백병전 조차 하기 힘든

이유는 바다에서 보면 울 판옥선은 평저선에(배가 수면 밑으로 깊게 빠지지 않는

구조) 2,3층 구조 까지 거의 떠있는 성같은 높이라서 조선의 선진 근대 함대의 막강

함포화력 즉 왜가 끽해야 자랑하는 조총의 50미터에서 100미터 유효사거리보다 훨

씬 긴 2킬로에서 500미터등 정밀 타격까지 줄 수 있는 함포술까지 가지고

있어 원거리에서 학살 수준으로 조지는 것이라 왜선들이 쳐발릴 수 밖에도

없지만 붙는다고 백병전하기도 결코 쉽지 않은 왜인들에게는 조선의

판옥선은 성곽같은 함선들임.)

참고로 조선시대 전기의 군선(軍船)은 문헌상으로 보면

대맹선·중맹선·소맹선 등 세 종류로 당시 진포에 배치되어 있던 척수는 대맹선 81

척, 중맹선 195척, 소맹선 461척, 무군 소맹선 245척 등 총 982척에 이름. 이후

이런 가운데 1555년(명종 10)  새로운 군함이 건조되기 시작한게

판옥선으로 임진왜란 기간 우리의 주력선으로 그 위용을 과시함.
아수라다 14-08-20 16:31
   
이렇게 화두가 되어 글을 올립니다.
블로그 필자 입니다.. 해당 블로그 글귀는 정보라고 보기보단 유머에 가깝습니다.
유머의 시각으로 봐주세요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성 내용은 kbs역사 저널 프로그램 흥선대원군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시청 후 
또한 개인적인 생각을 작성한 것입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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