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신이 바다건너 오늘날의 연해주에 도착하여 연해주의 한촌락을 보고 그곳의 주민구성을 지배층은 고구려계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라고 기록했는데 그게 확대해석되서 발해의 인구구성전체가 소수의 고구려계가 다수의 말갈족을 지배하는 사회라고 우리가 현재 잘못배우고 있는겁니다
뭐 친일사학의 영향이죠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산하의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사학자와 거기에 동조하는 친일매국사학자 이병도의 후예들인 강단사학의 폐해고
고구려인 69만호 물론 호구에 기록되지 않는 인구도 상당히 많겠죠..만주는 가축을 방목하면서 유목하기엔 최적의 장소가 많죠 당연히 기마민족인 고구려인중에는 정착한 기마민족과 유목생활을 하면서 가축을 기르는 유목민이 모두 공존할겁니다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호구에 기록되지 않는 수가 어마어마했으니비교도 안되게 광할한 영토를 가진 고구려라면 호구에 기록되지 않는 인구도 당연히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