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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07 18:16
[기타] 역사상 장군과 군왕에 대한 개인평
 글쓴이 : 전략설계
조회 : 5,024  

재미난 주제라..

광개토대왕 -- 중국 삼국시대가 끝나고 5호16국 시대의 틈을 노려, 말갈, 거란 정도 휘어잡은 것이지, 
북중국의 강국을 정면승부로 쳐들어가서 뺏은 것은 아니고..


장수왕 -- 남진정도 했고..


김유신 -- 중원도 아닌 백제 정도 침입에서 구원투수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불을 끄긴 했지만, 야구로 치면 구원투수.. 다른 나라를 공세적으로 쳐들어가서 정벌한 경우 없고.. 황산벌이야 허둥지둥 급조해 나온 백제군에 10:1 (전문가들은 당시 백제군 1만5천병 예상, 그래도 3:1)로 수적으로 질 수 없는 싸움이었고, 실제 사비성을 점령을 주도하고 백제 주력군과 대치하다가 백제 내부반란으로 의자왕을 사로잡은 것은 당나라 10만 대군이라.. 고구려 멸망도 당고종때 100% 당나라 힘으로 한 것이라, 김유신이 고구려정벌에서 한 것이라고는 겨울철 평양 근교에 고립돼 전멸 직전인 당나라 군대를 지원하러 남들 다 못간다고 할 때 쌀부대 끌고가서, 당나라에 쌀 전달하고 온거라.. (영화 '평양성' 이거 역사적으로 거의 가공 SF)


강감찬 -- 6차에 걸친 거란 침입을 다 혼자 막은 것도 아니고.. (서희도 1차례 막고 영토를 확장) 
마지막 침입에서 거란의 침입로를 미리 예상하고 개전부터 적에 데미지를 주고, 우회하여 개경직공에 나선 적을 추적하여 개경을 포기하고 후퇴하도록 했고, 적의 귀환로를 미리 예상해서 귀주 인근에서 수성이 아닌 들판 정면승부를 펼치다가, 김종현 1만 기병 뒤치기도 우연이 아닌 아마 강감찬의 작전이었을 것으로 봐짐..  뛰어나긴 하나, 30만 40만으로 안되는 전쟁을 전쟁말기라 거란군과 전투에도 능한 고려군을 상대로 후방병참도 없이 비록 황실기병 정예이긴 하나 딸랑 10만으로 고려원정에 뛰어든 거란의 판단미스도 커서..


을지문덕 --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청야 산성전투 전술를 딱히 을지문덕이 그걸 개발했다고 할 수 없고..고구려가 중원과 첫 전쟁이라 고구려 국력이 살아있을 때였고 고구려 산성, 청야 전쟁방식도 중원이 첨 겪는터라
중국측이 넓은 중원에서 전투하다 산성위주의 고구려 전술에 파악치 못하고 준비하지 못해 애먹었으리라고 봐짐.. 쪽수로만 밀어붙이면 된다는 생각이라.. 그뒤 당나라 태종도 딱히 수나라와 달라졌다고 할건 없지만.. 당 고종(측전무후)은 달랐음.. 꼬드기는 신라를 끼기도 했지만, 전쟁을 수십만의 1회성 대군몰이이 아니라,, 빈번하게 수만 단위로 쳐들어가서 고구려 힘을 서서히 빼는 식으로 가서..  고구려를 지치게 하여 북방방어선의 힘을 빼고.. 그래도 신라가 뒤에서 쌀부대 지원 안했으면, 너무 깊이 들어가다가 중간에 당 주력도 몰살당할 위기가 있었기고 당의 힘만으로 고구려 멸망은 쉽지 않았다고 봄

윤관 -- 대단한 사람이나 십수만을 동원해서 여진을 친 것이라.. 물론 그 여진이 30년 뒤에 금나라를 건국하는  싹수있는 여진이긴 하나.. 여진이 국가급으로 정비되기 전이라.. 해볼만한 전쟁이었음..


최영 -- 애국자이자 고려의 기상을 최후에 보여준 사람.. 고려는 홍건적 침입, 거의 정규전인 왜구의 침입을 겪고도 요동을 치는 뒤끝 저력을 발휘함.. 이거는 대단한 기상임.. 북진정책이라는게 단지 말로 그친게 아니란 걸 보여줌.. 고려인으로 전주에서 고려 원나라 접경지로 이사가 원나라에 빌붙어 살던 가문의 이성계가 그 습성을 못 버리고 중원대륙하면 빌빌 기는 습성이 있어서.. 위화도 회군 당시 요동은 무주공산임.. 암두 없음.. 몽고도 아주 망한 몽고도 아니고 북원이 건재했었고  명은 중원도 채 정비하기 전이라.. 조선이 건국하고도 "조선이 10만대군으로 요동을 치면 어뜩하냐"고 발발기던게 명이었음.. 명의 소유도 아니었고 북원의 소유도 아닌 나라도 없이 족보 없는 동네 군벌따위나 설치던 요동이라 1차 정벌처럼 그냥 입성하면 되는 상황이었음.. 괜히 최영이 요동치자고 한게 아님.. 가면 어서옵쇼하는 상황이었고, 고려 요동성 먹었다고 과연 명이 그 요동찾겠다고 새 나라 정비하기도 전에 중원을 비우고 동북지역에 십수만의 대규모 원정을 할 여력이 있었나 싶음..

권율 -- 전라 의병을 몰고 가서 행주산성의 기적을 만들었으나 그걸로 끝임.. 원균을 개패듯이 패서, 백수십척의 판옥선을 날려버린 데 일조함..


알렉산더 -- 장창에 기병을 넣어 적을 측면을 치는 전술을 이 사람이 개발했는 지는 몰라도 암튼 실전에서 
보여준 것은 이 사람이라..  페르시아를 친 것은 배꼽이 배를 치는거라, 명량과 비교할만 하고.. 그건 인정..  페르시아 쳐서 그 힘을 갖고 이집트 정벌한 것이라 그건 페르시아를 흡수한 힘이고.. 헬기가 있는 요즘 세상도 치기 힘든 박트리아(아프가니스탄)를 정벌한건 인정.. 걔들이 그 당시 상황이 좀 안좋았나.. 지형이 험준하나 이슬람이 생기기 전이라 뭉치는 구심점이 없었나..

시저 -- 로마제국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갈리아 정도 치고, 갈리아도 쳤으니 그 여세로 이집트 진 거는.. 
알렉산더처럼 마케도니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페르시아를 치고 나간 것에 비하면 세발의 피.. 알렉산더 한테는 안됨..

징기스칸 -- 몽고를 뭉치게 한 리더쉽은 인정.. 하지만 몽고기병의 전술을 징기스칸이 개발한 것은 아니고.. 
징기스칸 살아생전에 중원을 통일한 것도 아니고.. 유럽원정을 간 것도 아니고.. 호라즘(우즈벡)하고 서하, 금정도 친 것인데, 십자군도 실패한 중동을 장악한 것도 후손들이라.. 몽고의 세계정벌을 전부 징기스칸업적이라 할 수 없고.. 인생의 대부분을 내전 치루다 보내, 나면서 부터 전쟁무기인 몽고초원을 통일했다는 점에 의미..

나폴레옹 --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프랑스를 가지고, 고만고만한 나라 하나씩 치다가.. 신장의 야망 노부나가 땅 늘려가듯 하나씩 따먹어, 포병장교출신이라 포를 이해하고 기동력을 중시해서 앞선 근대전술로 연전연승한건 인정하지만, 프랑스란 베이스가 있었다는 점에서, 알렉산더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지..


이순신 -- 자기나라를 지키는 수비형 전투결과임.. 타지를 나가는 정벌전술은 없었고..
              자기나라 안에서 전쟁이라 적군의 이동과 같은 정보전에서 먼저 우위를 점했고..
              함포의 유무로서 적절한 전략을 취하는경우 원거리타격으로 연전연승할 수 있는
              근간이 됨..
              비록 명량, 노량 등에서는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매전투가 수적열세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작은 규모의 군력을 가지고 이기는 전투만 골라서 할 수 있는 전략이 있었고..
              쫄기 쉬운 병력을 데리고 잘 싸우게 한 리더쉽이 있었고..
              (왜군이 옆 고을까지 왔다고 정상 보고한 백성 등등 멀쩡한 사람 여럿 목을 침,
              쫄기 쉬운 때 군기하나는 확실히 잡음)
              노량은 이순신이 택한 장소, 시기도 아니었고, 순천에서 도망가는 소서행장 뵈기 싫어서 죽이러
              간거라 원거기 함포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힘든 야전이 벌어진거고..
              작은 나라의 장수로 태어나 자기 나라 지키기 위해 100년 전쟁머쉰들이 쪽수로 밀고
              와도 부하들 쫄지 않게 적당히 목도 치면서 순간순간 떼죽들을 상대할 장소를 정해서,
              가지고 있는 원거리 댐지를 잘 사용한 것이라 봐짐..
              둔전이나 어민통행세 등으로 군비를 욕 안 먹고 무리없이 충당할 줄 알아
              경제에 대한 개념도 있었고, 무엇보다 벼슬에 욕심도 없이 임란이 있기전부터
              상관에 옳은 말을 하다 2-3번 좌천된 점은 다시 보기 어려운 충직한 사람임
              이거는 조부가 사화에 휘둘려 폐가할뻔한 일이 있어 영향을 받은듯 함.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자기 나라 지키는 데에는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군대를
              지키기 어렵고, 죽음직전까지 몰리고, 칠천량이후 명나라해군이 참전해,
              해군지휘군을 갖고 조선수군 작전에 관여하는 등 주변의 어려운 상황이 많았음에도,
              명나라 해군까지 휘둘러서 노량에 참전시켜 죽어도 싸우게(등자룡 사망) 한 점은,
              전쟁을 위해 장군으로서 모든 덕목을 갖췄다고 봐짐.
              참고로 임란에 참전해 목에 힘주던 명나라 장수들 임란 끝나고 후금 치러갔다가
              만주에서 거의 다 요절해 쪼금 시원한..

* 누가 우위인지는 각자 알아서들 판단하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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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 14-08-07 19:24
   
을지문덕 부분에서 요동성은 대도시지 산성이 아니었죠. 하지만, 중국 어느 나라도 고구려의 요동성을 점령한 적이 없습니다. 고로...고구려가 청야 산성 전투 전술을 펼쳤다고 볼 수는 없을듯...
     
전략설계 14-08-07 19:32
   
중원이나 북방군대를 상대로 고구려, 고려가 벌판에서 정면대결한 경우는 거의 없죠.
당 상대로 고연수가 말아먹고, 거란 상대로 강조가 호기 부리다 사로잡히기도 했고,
몽골군대에게 첫 야전에서 되레 기병상대로 우리가 기습당해서 패전하고 그 뒤는 야전을 피했죠.
청야 산성이라는 것은, 평양성이든, 개성이든 그 오는 길목에 성들에서 항전하는 방식으로,
수도에 오기까지 적 진을 빼는 전술을 얘기합니다. 요동성 얘기가 아니네요.
수당과 전쟁이나 고려거란전쟁이나..
전부 적이 산성을 점령하다가 찐을 빼고, 오히려 성을 피하다가 병참라인 무시하고 들어오다
퇴로에 을지문덕, 강감찬에게 당한 경우입니다.
수도까지 오는 산성 라인을 돌파하기가 당시 세계최강의 군대들도 쉬운 일이 아니었죠.
베트남이 더위와 풍토병, 정글로 중원세력을 막아냈다면, 우리는 산성으로 버틴겁니다.
요동성은 평지성이지 산성이 아닙니다.
          
북창 14-08-07 19:46
   
청야 산성 전투에서 청야란 성과 들판을 다 불싸질러서 허허벌판으로 만들고 산성으로 토껴서 싸운다는걸 말함이 아니었던가요? 그래서 요동이라는 허허벌판에 있는 성을 불싸지르고 근처의 험한 산성으로 들어간다는걸로 이해했는데...
사전 한번 찾아보시길~
               
전략설계 14-08-07 20:29
   
자기가 지킬 성을 불지르는건 또라이죠.. 요동성 의 고구려수비병만 수만인데..
청야란 야(들판), 성을 제외한 바깥을 불질러서 적이 편히 못쉬게 하는거고..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때도 러시아가 청야로 지키게해서 전력을 소진시킨 경우도,
러시아경우는 광대한 영토와 겨울추위를 썼던 반면에.. 우리는 산성이죠..
당태종 원정때도, 건안성-안시성-요동성-개모성-신성 요 천리장성 라인중에,
다 점령하고 안시성 하나 점령 못해서 설연타가 남하하는 바람에 당이 퇴각한 것이고요.
요동성은 수나라침공때 버틴 적은 있지만, 당태종 침략때 바로 점령된 성으로,
중원세력이 점령못한 성이 아닙니다.
                    
북창 14-08-08 08:17
   
그런 의미라면...그냥 청야 전술이라고 하셔야죠. 청야 산성 전투라 하면...다 태우고 산성으로 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니까요.
근데, 실제로 청야 전술은 또라이 짓입니다.
수나라 때나...대규모 침공이라 청야 전술이 통했지만...당나라때는 그걸 간파하고 소규모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펼쳐서...청야를 한 고구려의 국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니까요.
요동성 함락 부분은 제가 실수했네요...뭐랑 착각한거 같은데...뭐였는지는 기억이 -_-;;
          
굿잡스 14-08-08 17:19
   
중원이나 북방군대를 상대로 고구려, 고려가 벌판에서 정면대결한 경우는 거의 없죠.
당 상대로 고연수가 말아먹고>??? ㅋ

전략설계님은 본문 내용도 그렇고 개인평 어쩌고 하기 전에 최소한의 뼈대

공부는 하시고 댓글이고 남발하시길.

기본적으로 고구려는 초기부터 다물정신(옛고토 회복)을 이념으로 주변 북방세력을

끊임없이 복속하면서 당시 한제국과도 정면에서 맞상대하면서 대국으로 큰 나

라임.(이런건 고구려 연표만 봐도 금방 알 부분을. 쯧. 이런 나라가 단순히 수성전

만 했다?? 수성전 어쩌고는 고구려가 대국이

되면서 정주정착 문명국가이니 내지를 보호하기 위해 점차 밀집 중대형 방어

성곽을 지었지만 중,후기에도

기본적으로 고구려는 적의 대군이 오면 요동지역에서 수성전으로

지연시키고 중앙대군이 와서 쓸어버리는 즉 수성과 육박전도 즐겨하면서 내외의

조합을 통해서 적의 대군을 농락하고 무너뜨렸음.)


애초에 수나라처럼 300만 대군이나 당나라 100만대군등 서토통일왕조들이 쳐들어

오는데 아무리 날고 뛰는 수성전이라고 성안에만 쳐박혀 백만대군에 고립되어

있으면 답이 나오겠습니까?(아래 해양대국 백제만 해도 광개토 태왕이

후연을 치기 전에 백제를 먼저 털지만 그렇다고 백제 군사력이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였음. 백제는 열도를 외치영토로 일대의 산림자원부터 전투인력까지

동원가능했던 나라였고 실제 이후 북위가 남조 정벌을 위한 기병 대군을

두번이나 패배, 좌절을 시켰던게 남조가 아니라 우리 백제 동성대왕의 군사력이였음.

이때문에 서토 사서에 이슈가 되는 대륙백제 어쩌고 백제에 대륙의 여기 저기를

할양하는 기록들이 나오는 게 5세기때 상황임.)

주필산 전투만 해도 님은 겉핥기로 아시는데 안시성을 지원하기 위한

15만 대군중에 일부 싸움에서 패한 6800명 정도의 포로이지 그외의 고구려가 이끌

고온 군사력은 여전히 건재하면서 당나라를 주필산에서 50여일동안 발을 묶어 두

고 있었다는 사실임. 이때문에  요동에서 안시성 사이에 박혀 갇혀버린

이세민의 대군은 결국

고구려 내지로 제대로 발도 밟아 보지 못하고 퇴각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의 거세 추

격에 실달리다 겨우 살아 돌아와 1여년이 안되어 병사하게 됩니다. (물론 과

거 2차 고수전쟁 역시 요동성을 뚫지 못하자 우회로 평양 직격으로 보낸 30만의 수

나라 정예 별동 대군 역시도 다시 요동성일대로 살아 돌아간 숫자는 2700여명에 불과) 그

기에 고구려는 이미 5세기부터 명실공히 왕중의 왕 태왕으로 불리면서 주변 부용세

력들을 제압하고 거느린 실질적 북방지역에서 흉노제국의 대선우격에 올라있던 국

력을 가졌던 나라임.

이런 패권적 기반을 만들어 놓은게 광개토태왕이고(이미 6대 태조대왕(47년 ~ 16

5년)시기에 요서 10성을 쌓는등 대국의 위치에 올라있었고) 이후 장수태왕이 반석위에 올려

놓았던 것이고. 그것도 만주일대 날고 뛰는 전투유목민족들이 즐비하고 물량 인구

발 서토왕조 까지 있던 만주를 제압하고 이런 지리 주변 상황에서

한 국가가 천년사직을 이어가면서 동북아에서 수백년을 안정적, 패권적 국력을 보이

는게 결코 쉬운 줄 아십니까?

유럽에서 신의 재앙 어쩌고 하며 제국을 세운 훈족이 고작 얼마로 유럽을 벌벌

떨게 한줄 아심??  2000여명이에요. 동아시아에서 서진한 이 유목 기병에게

캐털리고 로마제국도 농락당했다는 말임. 이런 식의 동아시아에서 일부 소수의

유목기병들이 서진해서 세운 제국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소위 백수의 제왕인 호랑이나(서토왕조, 북방 유목, 우리 고조선 고구려문명

권) 최소 부족단위로 있더라고 늑대들이(선비,거란,실위(후대몽골), 말갈)등이 즐비했

던게 특히나 밀집되어 있던게 동북아쪽임.(실제 만주 북방지역의 유목세력들이 서토

내지로 들어가서 정복왕조를 세우고 대국이 된 케이스가 즐비하고. 이들은 고구려

가 태왕으로 있을때는 제대로 명함도 못내밀었음. 실위,거란, 말갈, 일부선비고 다 고

구려 부용 세력 휘하였고 그나마 선비족이 서진해서 이후 남하하면서 북조사

라도 연 정도이지. 이 북위도 결국 고구려계 세종이 등극하고 고조가 요동에서

군사를 데리고 가서 조정을 장악해 버렸고. 아예 고구려인만 따로 추대하는 벼슬

까지 두었던)


그리고 아래 보니 무슨 당나라가 순수 지 힘으로 고구려 무너뜨려니 어쩌고

하시는데요 애초에 당나라는 2차 고당 대전에서 대패를 하면서 더이상

전쟁을 포기했음. 그러나 때마침 오늘날로 치면 국방부장관급인 연남생이

거란일부 부족까지 데려와 투항하면서 두번이나 의심을 하고 이후 3차 대전이

불붙게 된 것임.(당연히 고구려의 허실을 알고 연남생이 고구려 내부에

알고 있는 세력까지 있으니 고구려 내분까지 겹치면서 평양으로 빠르게 진격

했던게 주효했을 수 밖에요. 뭐 이것도 이후 당나라는 몇년 못가서

건재한 다른 고구려 세력들에 의해 안동도호부는 요동 요서로 밀려나 버리지만)
          
굿잡스 14-08-08 18:02
   
고구려는 초기부터 멘땅에 헤딩하면서 다물 정신으로

주변 북방 세력을 끊임없이 통합하면서

한제국과 당당히 투쟁하는 가운데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로서(무슨 수성전만 고집?? ㅋ 참

나)

bc 37년 추모왕은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 정벌 통합.

bc 9년 2대 유리왕은 국내성 서쪽 부분노의 계책을 받아들여

2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선비족을 정벌.

ad 21년 대무신왕은 동부여 선제 공격하면서  대소 죽이고 돌아옴.

갈사국, 개마국, 구다국을 통합.

ad 37년 고구려는 남쪽의 낙랑국을 멸망.

ad 49년 5대 모본태왕은 후한의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에 기습작전을 감행하여 후

한으로부터 막대한 물건을 받고 귀국.

6대 태조대왕은 동옥저, 갈사국, 조나, 주나를 통합하고 동해안에서 남만주 일대에 이

르는 영토차지,숙신으로 부터 조공을 받음.

태조대왕 55년에 요서지방에 10성을 쌓고 후한을 상대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서

후방에 배후기지를 건설하였다.

ad 98년 태조대왕은 6개월간 책성에 머물면서 지배를 강화.


2세기 초 고구려는 후한의 요동군과 현도군을 공격하여 이겼다. 고구려는 후한의 전쟁 포로 1명당 비단 40필을 받고 화해.

197년 왕의 동생인 발기와 소노부가 공손씨 정권에 투항하여 서부지역 영토를 잃었다.

238년 위나라가 요동의 공손씨를 공격할 때에 원군을 파견 242년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  공격 이후 위나라 관구검뿐 아니라 모용선비에 커지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부여는 식량 제공등 연합세력으로 침공

이때도 고구려는 안에서 수성전 한게 아니라 초기에는 동천왕이 이끈 강력한 철기

군은 양맥에서 6천명을 도륙하면 두번이나 승리하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면서 이

후 방진에 걸려 고구려 수도까지 털리는 초유의 사태가 난 사건이죠.

(물론 이당시의 동천왕이 이끈 군사는 5부 세력 전체가 아니라 태왕의 측근

군사임)

259년 위나라 대군이 침략하자 양맥곡에서 대파.

270년 서천왕은 숙신과 부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요서지역의 모용선비와 부

여 쟁탈전을 벌렸다.

300년 미천왕은 요동으로 진출하려는 전략을 꾀했다.

313년 낙랑군을 차지했다.

314년 대방군을 완전히 동방지역에서 몰아냈다.

319년 미천왕은 우문선비, 단선비, 서진 등과 함께 대릉하 주변에 위치한 모용선비

의 수도 극성을 연합하여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342년 모용선비는 서진의 평주자사 최비를 몰아내고, 단선비를 격파하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고구려는 모용선비에게 수도가 함락 당했다. 고구려는 왕모와 미천왕의 시

신을 빼앗기자 모용선비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무릎을 꿇었다. 모용선비가 우문

선비를 물리치고 황하 일대로 남하하여 강국으로 성장했다.

346년 모용선비는 부여를 침략하자 부여는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다.

371년 고구려 국왕 고국천왕이 백제와 전쟁에서 살해당했다.

391년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아 왜와 가야 연합군을 격파하여 금관가야를 멸망시키고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격파하여 한반도의 패자가 되었다.

또 동부여의 64개성을 점령하였다. 숙신족을 정벌하였다. 거란족의 일파인 비려를 격파하고 서요하 상류인 염수(鹽水)까지 진격했다. 모용선비가 세운 후연을 공격하여 멸망하게 하였다. 백제의 58개성을 점령하고 신라 수도에 주둔군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백제의 수도가 한성에 있었다. 또 후연이 멸망했지만 그 땅에 고구려 후예인 고운이 북연을 건국하였다.

광개토대왕은 요동에서 한강에 이르는 비옥한 평야지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고구려는 거란, 북연, 신라, 숙신과 같은 제후국을 거느렸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제국의 기본 틀을 완성했다.

427년 장수왕은 평양성으로 천도하여 남진 정책을 썼으나 실제로는 북방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435년 척발선비족이 세운 북연이 북위의 공격으로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되어대릉하 연안에서 대면하였으나, 큰 무력 충돌은 없었다.

475년 백제가 부흥을 꾀하고자 북위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자, 이를 먼저 탐지한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는 남쪽의 웅진으로 밀려갔다. 이때 고구려의 영토는 아산만에서 대전을 거쳐 포항에 이르렀다. 고구려는 남한강 상류인 충주 지역에 국원성을 세우고 남부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494년 문자명왕 때 부여가 스스로 투항했다. 고구려는 부여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실위족에게 철을 공급하며 회유책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물길족의 반란도 진압하는 등 고구려의 북부 지배는 더욱 강화되었다.

550년 유연을 멸망시킨 돌궐이 고구려의 서북 방면으로 침략해 왔다. 고구려가 돌궐을 막는 틈을 타서 백제와 신라 연합군이 한강유역을 공격해왔다. 고구려는 이때 신라와 화해하고, 신라로 하여금 백제를 견제하게 했다. 신라가 백제를 견제하는 대가로 한강유역의 땅을 주고 돌궐과의 전쟁에 집중했다. 고구려는 돌궐과 첨예한 이권이 걸린 거란족 지배문제에 있어서 기득권을 잃지 않았다.
꼬마러브 14-08-07 20:37
   
광개토대왕 전 군왕인 소수림왕때 고구려는 나라의 위기였습니다. 그당시 백성들이 너무 굶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요. 아무리 타이밍을 잘잡았다하더라도 절체절명의 위기 멸망직전의 나라를 오히려 영토를 수배로 넓히고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만들고 전성기를 이끈건 정말 대단한 업적입니다
     
꼬마러브 14-08-07 20:38
   
그리고 장수왕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물려받아 지두우를 분할시키고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며 영토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발달했었고요. 장수왕때는 북위뿐만아니라 남쪽의 송나라도 고구려의 눈치를 봅니다. 오히려 북위는 고구려를 상국으로 대접하는 듯의 행위도 하였고요.
꼬마러브 14-08-07 20:43
   
애초에 당시의 군왕, 장수들과 같은 인물들을 현대에 와서 누가누가 더 우위일까? 하는 생각 자체가 초딩적이고 유치한생각이죠
     
전략설계 14-08-07 20:56
   
'이순신과 같은 급의 장군'이란 글에 리플로 달았던 글입니다.
나와나 14-08-07 21:53
   
광개토태왕이 그냥 시대 잘타서 거란, 말갈 휘어잡은 정도라고요..?

뭘 잘 모르시는 듯..
고구려는 남쪽 중국 대륙보단 서북방 초원지역을 장악하고 세력을 키웠습니다

광개토태왕 시기 고구려는 토욕을 정벌했는 데, 이는 당시 고구려의 세력이 지금 중국의 감숙성,청해성까지 미쳐있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거기다 고구려는 위성국 북연을 세우고
유연과 지두우를 분할하는 등 강대국들의 모습과 비슷한면모를 보이죠

또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아브 궁전 벽화에 고구려 사신이 등장하는 걸 보아, 그 당시 초원길을 장악한 고구려가 서역과 활발히 교역하였다는 걸 알 수 있고,

고구려가 단순히 동쪽에 위치한 지역강국에 지나는 나라가 아니라 동서양 무역교류의 중심지 중 하나이던 무역 강국이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또 고구려가 북위에 조공받친 것을 보고 고구려를 북위 속국인 냥 보는 사람도 있던 데

조공이란 당시 국제 무역이고, 하사품이 조공품의 몇 배이기 때문에 조공국에게 많은 경제적 이익을 남겨주죠
     
전략설계 14-08-07 22:05
   
개인평이라고 했고요 사람마다 보는 각도가 다르겠죠.

서돌궐 중심인 사마르칸트 벽화는, 광개토대왕때가 아닌 7세기 당나라시절에 그려진 벽화로,
무역강국이었다는 의미가 아닌 알고 보면 짠한게..
당나라 고구려 원정시, 2번씩이나 당나라 뒤를 쳤던 설연타, 철륵세력이 사라진 후에,
당의 뒤를 쳐줄 이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고구려가 마지막으로 붙잡으려 했던게 서돌궐로,
7세기입니다. 7세기로 광대토대왕과 사마르칸트 벽화는 무관하네요.
짠한 마음은.. 설연타, 철륵은 당나라 장안성 북쪽인데..
서돌궐 사마르칸트는 고구려에서 5천킬로 거리로 아주 멉니다.
사실상 중국을 견제해줄 세력이 아닌데, 다 사라져서 거기까지 간게 짠한거고..
벽화 그려지고 나서 얼마뒤 고구려 멸망합니다.
     
전략설계 14-08-07 22:26
   
광개토대왕때 중원세력과 붙은 것은 후연이고.. 후연은 5호16국의 하나였을 뿐이고..
이 후연을 정벌한 것도 아니고, 후연으로부터 요동성 공격을 받고 이를 물리친 정도였습니다.
그로인해 후연이 망하고 북연이 등장한 것이고..
그거밖에 못했냐가 아니고,
원글의 기준이 세계적인 장군과 군왕을 이순신장군과 비교하는 것이라..
세계적 수준에서 보는 것이지 비하하는 내용은 아니고 각자 나름 평가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와나 14-08-07 22:17
   
그리고 우리는 고구려가 휘어잡은 말갈, 거란 등이 어떤 존재였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구려가 정벌했던 선비, 말갈, 거란, 숙신, 실위 등은 강력한 기마병을 지닌 북방 유목민족들입니다

로마 제국은 훈족의 등장으로 몰락해가며 멸망했고,

한나라는 흉노에 의해 거의 속국으로 전락했고,

수, 당 역시 북방민족 선비족의 국가였으며

아바스 제국은 튀르크족에게 나라를 빼앗겼고

송나라는 거란과 탕구트족에게 짓밟혔고 여진에게 망했으며

몽골은 아예 왠만한 나라를 다 정복해버리고

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이나

인도의 무굴 제국도 유목민족의 국가였고

명나라 역시 만주족에게 정복됩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북방 유목민족들이 세운 강력한 제국들이 그들의 강력한 군사력을 입증하는 데,

이들을 정벌, 복속시키고 휘하에 두고 북방을 장악한 게 고구려입니다
     
전략설계 14-08-07 22:33
   
다른 시대라면 모를까..
광개토대왕때인 5호16국시절에 잘난 북방기병들이라면 전부 중원에 나라 하나씩
세우던 시절이라 북방기병을 정복했다는 말이 나오려면 북방기병이 세운 북중국으로 들어가 그들과 싸웠어야 합니다.
광개토대왕을 폄하하는건 아니지만 세계적 군왕과 비교시 부족한 부분입니다.
옆의 후연정도는 쳐서 뭉개뜨려야...
자꾸 이런 얘기하면 광개토대왕을 폄하하는 것 같은데..
글 주제가 이순신장군과 비교되는 세계적 장군을 열거해보는거라..
알렉산더 시저와 같은 레벨에 놓고 얘기하다 보니 그렇네요..
바로 앞선 선대왕중 빼어난 정복왕이 없는 상황에서,
30대에 단명한 광개토대왕 혼자 한 세대에 걸쳐 중원을 정벌하기란 벅찬 일이지요.
2-3세대 걸쳐서 해야 할 일이고.. 남쪽에 백제, 신라를 두고,
후연이나 북연과 정면대결해서 나라의 명을 걸기가 껄끄러웠을겁니다.
만주의 이런저런 부족들 싸그리 정리해서 후세가 중원에 밀리지 않은 국력을 갖춘 것에,
의미를 둬야겠죠.
          
꼬마러브 14-08-07 23:18
   
후연은 사실상 나중에 북연으로 바뀌면서 고구려 세력권 안에 들어왔죠. 그리고 서쪽으로는 유주지방까지 세력을 떨칩니다..
karin123 14-08-08 00:13
   
광개토 당시 후연은 몇 번씩 고구려 침입했으나 다 대파하고 오히려 광개토가 역공을 가해 500여리의 땅을 잃기도 했습니다.
멍게 14-08-08 02:11
   
수당 전쟁 때 고구려의 방어선이 되어주고 통일된 중국의 물량공세를 상대로 버티게 해준 요동의 요새들도 장수왕때 구축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윤관에 대해서는 아예 전략자체가 잘못 짠 전쟁을 시작해버린 이상 질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당시 고려가 그런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거란이 한 것 처럼 무리하게 고려침략을 하기보단은 왠만하면 사이좋게 지낼려고 했죠. 세종대에 4군 6진 개척할 때도 많이 참고를 했죠. 윤관 개인적으로 봐도 그 후 윤관의 집안인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에도 최고의 명문집안이였구요.
     
전략설계 14-08-08 02:43
   
뺏는 것은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는 걸 보여준 원정이었죠.
멍게 14-08-08 02:18
   
그리고 글을 보면 전반적으로 이 사람은 겨우 이런 애들 약점잡아서 이긴 것이다 라는 식으로 쓰셨는데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의 약점을 잡아내서 치는 것이죠

그리고 알렉산더는 무리하게 끝까지 가겠다 해서 결국 병사들 파업과 함께 돌아오면서 죽어버렸죠. 개인적인 관점에선 대단할지 몰라도 결국 자기가 만든 제국을 얼마 유지도 못하고 망해버린 점 에서 보면 후한 점수 주기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시저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의 국경선을 라인강으로 지정한 것이나 장수왕 시절 더 이상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기 보단 제대로 된 방어선 구축을 할 수 있는 지역까지 확장하고 방어선 구축을 제대로 한 것이 국가의 존속이라는 입장에서는 훨씬 위대하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네요.
     
전략설계 14-08-08 02:42
   
정치외교적인 면보다는 군사적인 면으로 세계 최고는 누구일까 해서, 하나 하나의 한계점을 짚지 않다보면은, 전부 다 위인이고 잘한 사람들이라..
징기스칸이 세계정복했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북중국하고, 구 돌궐지역 정도 살아생전에 정복한 것이고, 중원과 중동, 이집트, 러시아는 그 후손들이 한 것이라, 다 한가닥한 위인들이라 최고를 가리기 위해 분간할 필요가 있었네요.
심당이고선 14-08-08 04:29
   
광개토대왕 -- 중국 삼국시대가 끝나고 5호16국 시대의 틈을 노려, 말갈, 거란 정도 휘어잡은 것이지,
북중국의 강국을 정면승부로 쳐들어가서 뺏은 것은 아니고..

장수왕 -- 남진정도 했고..

?????????????
광개토왕은 후연을 탈탈털어먹었는데?
유주자사진을 유주에 봉했는데?

장수왕은 지두우를 먹었는데?

?????
     
전략설계 14-08-08 05:29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점령한 것도 아닌데 후연을 언급하고,
유주자사 진은 북한만 빼고는 한국, 중국, 일본학계에서 중국인망명객으로 보고 있는데,
국내 학계에서도 정설로 보지 않는 내용까지 꼭 써야될가요..
          
굿잡스 14-08-08 18:25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점령한 것도 아닌데 후연을 언급하고,
>>?? 좀 겉핥기로 어쩌고 그만 하세요. 쯧

왜 후연 이후 북연이 선비계열이 아니고 고운이라는 고구려계가 추대되었겠음?

뻔한건 아님 멸망 직전에 가서 겨우 목숨줄 부지 할려니 고구려 눈치와 지배아래에

신속된 괴로국마냥 들어 선 것이고 이는 여러 사서 기록과 정황으로도 얼마든지

드러남.


후연 이후 들어선 북연이 왜 고구려에 신속된 국가로 보느냐?

고구려가 북연을 속국으로 인정했다고 하는 핵심적인 근거는

“또한 종족의 禮을 베풀었다. 且敘宗族"

이는 고구려가 종주국, 북연에 제후국이라고 보았던 것이고

이외에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북연 멸망 때, 용성에서 북위는 배후인 북연을 치기 위해 쳐들어 오는데

고구려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이 북연의 물자와 인력을 대거 고구려 내지로

이동시킴. 이 과정을 북위도 보면서도 고구려 군세에 함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켜 보기만 한 사건도 나오고 풍발의 동생 풍비가 고구려에 414년까지 인

질처럼 머물렀다는 것이나 409년 고운이 죽임을 당하자  풍발이 고운의 시신으로 동

궁으로 옮기고, 시호를 혜의황제라고 하는 등 지가 시해주동자로 지목되는 놈인데

도 고구려 눈치밥으로 함부로 못하고 극진한 예를 다하거나

그외 기년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대체로 5세기 초로 보이는

요녕성 의현에서 <대고구려국(大高句麗國)>이라는 표시가 대놓고 새겨진 고구

려 금동불상이 출토되었음.
엔타 14-08-08 10:00
   
어그로신 듯 한데,

카이사르는 무주지에 가서 깃발 꽂은 정도고...황무지 개척?
알렉산드로스는 몽골 기병 3만이면 싹쓸이될만한 허접한 지역 점령한 정도라
징기스칸이랑 비교할 인물들이 아닌데 말입니다.

징기스칸에다 대고 다른 정복자들이나 장군들을 비교하자면 이야기가 안되지 않나요?
     
전략설계 14-08-08 13:05
   
몽골 기병의 능력을 논하는 게 아니라,
군대에 대한 평가는 배제한 채 군왕, 장군 개인에 관한 평가입니다.
만일 징기스칸이 몽골이 아닌 고려에서 태어났어도 그많은 영토를 정벌했을까요.
          
엔타 14-08-08 13:32
   
위에 님이 직접 다신 댓글들 읽어보세요.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

제말의 요지는 님의 논리대로
징기스칸 얘기하는데 겨우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 정도가 언급되는거 부터가 에러라는 이야깁니다.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 정도는 동시대의 동아시아에 있었으면
그냥 평범하게 살다갈 레벨 아닌가요?

어그로에는 이런식으로 대응하면 되지 싶은데 말입니다.
     
전략설계 14-08-08 15:04
   
징기스칸 얘기하는데 겨우 카이사르, 알렉산더 얘기하냐?.. 그거는 님 개인 생각이고요.
이 글은 내 개인생각입니다.
본인이 정 그렇게 생각하면 밑도끝도 없이 한줄 짜리로 얘기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귀에 쏙쏙 들오게 징기스칸이 월등한 이유를 글로 쓰면 되는겁니다.

어그로라면서 어그로에 말리는 것도 똑똑한 짓은 아닌 것 같네요.
          
엔타 14-08-08 15:12
   
이미 위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무주지에 가서 깃발 꽂은 정도고...황무지 개척?
알렉산드로스는 몽골 기병 3만이면 싹쓸이될만한 허접한 지역 점령한 정도라"

정 불만이시면 우선 카이사르 부터 왜 대단한지 그 업적을 이야기 해보시죠.
그럼 제가 친절히 아닌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어그로 상대하는 건,
간만에 포인트나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전략설계 14-08-08 16:32
   
시저가 깃발 꽂은 "갈리아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라는
귀에 쏙쏙 들오는 말씀 하셨고..
"몽골기병 3만이면 알렉산더만큼은 한다"고 하시는데 정작 징기스칸 얘기는 없네요.

"시저가 대단하다"고 한 적 없는대요.. 본문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없는대요..
                    
엔타 14-08-08 17:19
   
건망증이 있으신가 아님 그냥 막무가내 어그로신가 싶군요.
아래가 님이 한 말이랍니다.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으로 있으면서 갈리아 지방 추가로 개척한거는,
님 기준으로 저도 이야기 한거지만, 무주지에 깃발 꽂은 수준 아닌가요?
머 훈족이 유럽 덮쳤을 당시 난리난 상황을 보면
난이도상으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설마 몽골 기병 3만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물어보는건가요?
그렇담 실망인데요.


마지막으로 난독증까지 있으세요?
"시저가 깃발 꽂은 "갈리아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라는 "

갈리아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란 말은 누가 한건가요?
                         
전략설계 14-08-08 18:29
   
그래서 '시저의 갈리아정복=광개토대왕의 지두우를 유연과 나눠먹기'가 똑같단 말씀인데.
귀에 쏙쏙 들어오는 독특한 생각 가지고 계시네요.
광개토대왕의 거란, 말갈 복속도 아니고 역사학자들 들으면 뒤로 자빠지넸네요.

역사적인 군대를 평한 글이 아닌데, 끝까지 번짓수를 잘못 찾고,
그리고 어디에 시저의 갈리아정복을 대단한 업적이라는 내용이 있나요..
로마라는 베이스를 가지고 한 것이라 알렉산더 밑이라고 얘기했지.

빠질이 심해 뵈이는게 없는지,
징기스칸 개인에 대해 한줄 평도 못하면서,
번짓수까지 잘못 찾고 있네요.
                         
엔타 14-08-08 18:58
   
난독증이 심하십니다.
광개토대왕 이야기는 한적도 없고 (그리고 다른 분이 한 지두우 이야기는 장수왕)

아래와 같이 말 장난 즐기시는 듯 해서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

이 말에 비꼬기 위해
"징기스칸 얘기하는데 겨우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 정도가 언급되는거 부터가 에러라는 이야깁니다."
라고 한거지요.

고작 카이사르랑 알렉산드로스 정도랑 비교하는데 징기스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까?
이건 애들도 알텐데 말이죠.

정히 모른다면 해드리는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아까 얘기한거처럼 스리슬쩍 동급 물타기한 카이사르에 대한 이갸기 부터 하자니까요.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얘기도 하고 징기스칸 얘기도 합시다.


PS  인간적으로 본문내용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냥 뻘소리던데,
    두줄 읽었나? 암튼 본문가지고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위에 적은 대로 댓글가지고 이야기 하는거랍니다.
                         
전략설계 14-08-08 19:11
   
답답한 사람이네..
내가 인물평하는데, 카이사르를 넣으면 어떻고 알렉산터들 넣으면 어떻다는건가요.
이순신과 비교되는 장군이 국내에 있냐는 글이 있어,
쭉 한번 나열을 해봤는데..
징기스칸이 멋이라고, 평하고 싶은 사람 정하는 것도 못한답니까??
그렇게 빠질 하고 싶으면 혼자 평하시라고요.

말고리 잡고 싶은가 본데..
알렉산더, 시저가 나오는데, 내가 그럼 지두우를 언급해야 되냐 그겁니다..

내 글에서 인물 택은 내가 합니다.
징기스칸이 있는데, 왜 알렉산더, 시저를 언급하냐고요??
내 맘입니다.

답답한 분아, 인물평은 한줄도 못하고 주구장창 '몽골기병 3만', '지두우'만 반복하나요.
인물평하는 글에 댓글을 달라면 각자 생각하는 인물평을 해줘야 나두 답변을 해주지...
이런게 말장난입니다.
빠질도 심하면 뵈는거 없어지나 봅니다.
                         
엔타 14-08-08 19:19
   
본문은 장문의 뻘글이라 다 안 읽어봐서 모르고,
댓글에 뻘소리 있기에 태클거는거 맞아요.

위에서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어그로에는 이런식으로 대응하면 되지 싶은데 말입니다."

정 억울하시면 제가 태클 건 내용에 대해 반박하시면 됩니다.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친절히 설명해 드린다고 했지요?
                         
전략설계 14-08-08 22:07
   
글도 안 읽어보고 리플만 주구장창 다니 말장난한다는 겁니다.

별 기대도 안했지만, 결국 몽골기병 강하단 소리 하고,
징기스칸 인물평 한줄 못하고 그치네요.

자기 좋아하는 징기스칸 최고로 안 쳐줬다고,
내용은 쥐뿔도 없는 못 알아먹을 혼잣소리만 하는 요런게 전형적인 빠의 특성이죠.
                         
엔타 14-08-09 03:34
   
왜 태클이 걸렸나 몰라서 횡설수설 하시는 듯해서 콕 찝어 말씀 드릴께요.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

님이 다신 댓글을 보면
징기스칸,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를 동급인냥 묶어서 다른 이의 업적을 하찮게 평가하신건데


자 제가 태클을 건건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는,
징기스칸과 비교할 급으로 거론될 만한 레벨이 아니다."

요게 핵심이자 시작이고.
(사실 카이사르 정도는 장수왕과 비교해도 비교할 급이 못 되죠? )

해서 우선 카이사르의 업적부터 이야기하고,
알렉산드로스의 업적도 이야기하고,
징기스칸의 업적도 이야기하고
과연 비교할 급으로 묶이는게 맞나 따지자는 겁니다.

일단 제가 님의 눈높이에 맞춰 카이사르의 업적도 이야기 했지요?
이미 로마 영토였던 갈리아(남부)에 총독으로 부임해서 추가로 갈리아 지방 개척한 건데
"이건 무주지에 깃발 꽂은 정도"라 별거 없다.
훈족 예도 들면서 난이도 설명도 해드렸고.

일단 여기에 대한 반박부터 하시면
제가 거기에 대해 친절히 설명 드린다고 했고.

쉽죠?

자 본문 타령이니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느니 하면서 횡설수설하지 마시고
쉽게 쉽게 갑시다.
                         
전략설계 14-08-09 08:18
   
본문은 이순신 장군과 비교할만한 국내외 장군과 군왕에 관한건데...
본문은 읽어보지도 않았다면서..
주구장창, 징기스칸하고 알렉산더, 시저를 같이 놓고 얘기하냐고 하니..
말장난이란 소립니다.
시저는 로마를 베이스로 했기에 알렉산더보다 밑이다라고 했으면,
이걸 가지고 얘기를 해야 반론이지..

어디 위인진 발간하는 출판사에다 전화해서, 왜 징기스칸 책이 있는데,
시저하고 알렉산더 책도 발간하느냐?
영화사에다가는 왜 징기스칸 영화가 있는데, 알렉산더 영화를 제작하냐..
어디가서 어러면 정신병자 소리 듣습니다.
빠질도 지나치면 민폐입니다.

내글에서 이순신장군과 비교할만한 인물은 댁이 택하는게 아니라,
내가 택하는거입니다.
                         
엔타 14-08-09 13:20
   
위에 어떤 분이 장수왕의 업적을 이야기한거에 대해
자신은 징기스칸,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를 들먹이며 면박주는건 괜찮고,

남이 그거에 대해 태클을 걸어 자신을 면박 주는건 억울하다?


재미있는 논리로 세상 사시는 분이네요.

그리고 면박당한게 억울하다면 횡설수설하며 말돌리지 마시고
제대로 반박을 하면 될 일인데 말입니다.
                         
전략설계 14-08-10 14:00
   
이봐요.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 나폴레옹 등을 언급하는데..
이 사람들이 정복했던 부족들을 전부 열거해야 되냐 그 소립니다.
댁 말대로 징기스칸을 평하는데 '서두우 공동점령'급을 언급을 해야 되냐 그겁니다.
그 식이면, 갈리아 원정기에 나오는 시저 정복한 부족들 전부 열거해야되고,
징기스칸이 정복한 소부족까지 전부 열거해야 되는데..
인물평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습니가..
본문은 읽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 댓글 가지고 말장난 거는거 밖에 더 되요?

징기스칸이 정복한 작은 부족들까지, 시저가 정복한 부족들까지 다 열거줘해야만
그 사람 인물평을 하냐구요?
토론의 기본적인 것까지 가르켜줘야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알아쳐드시겠습니까..
본문 쓴 양보다,
본문도 안 읽어본 사람 댓글 달아준게 더 기니..

몽골기병이 강한걸 모르는 사람 있어요?
징기스칸이 조선보병 데리고 그많은 영토 정복했겠오?
징기스칸 인물평 해보라고 했더만, 결국 못하고 사라지나부네요.
전형적인 '말장난'에 '빠질'이었나봅니다.
                    
굿잡스 14-08-08 18:37
   
쭉보니 전략님은 무슨 동서양의 고대 군사력에 대해 제대로, 아니 보니

울 국사에 대한 기본 공부도 미흡한 상황에서 그기에

무슨 북방 유목민족처럼 이리 저리 돌아단니면서 아무렇게

들어가서 제국을 세우는 것만 보고 뭐 대단한 것마냥 어쩌고 소릴 하시는데

참 노답니다.

님은 기본 정주 정착 문명국 그기에 잘먹고 잘사는 나라랑 전투력은

높은데 이리저리 돌아단니면서 약탈 경제식으로 사는 유목민족이랑

좀 어떤 처지인지 개념부터 잡고 역사를 보시길 바람. (일시로

땅따먹기만 잘하면 그게 마냥 최고로 보임??)

그리고 비록 알렉산더가 기존 유럽에서 보이지 않는 일부 기병운용이

좋았던 점은 있지만(고대 유럽은 기본 보병이 주임)

알렉산더고 로마 밀집보병이고 동아시아 특히 동북방에서

날고 뛰는 수만에서 10만의 탁월한 기병궁사를 거느린(묵특 대선우)

흉노나 여러 북방 유목민족이고 서토의 막대한 인구력 그기에 반농반목의

우리 고조선(동호의 이칭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흉노는 묵특 이전에 동호에게

발리든 세력이였음) 고구려,백제 군사력에 함부로 나댈수 있었다고 보이심??

애초에 유럽이라는게 지중해에서 그나마 날고 뛴다는 <누미디아 기병>

이라고 해봐야 지들 지중해에서 말 좀 탄다 정도이지 무장 수준이나

마상 무예 수준이고 전술이고 동북아에 오면 찌그려지는 수준임. 그기에

유럽은 말은 귀족 전유물에 무엇보다

말을 타고 안정적으로 발에 버팀목과 힘을 가하게 해주는 등자는 겨우 6세기

이후 전해지고 11세기 정도에 가서야 보편화되는 상황이지만 동아시아는 기원전

4세기 전후로 늦어도 기원전 2세기경에는 이미 날고 뛰는 북방 기마 민족들이

등자를 착용하고 그기에 고구려는 3세기부터 철기병 운용에 5세기 초에는

이미 중장기병(개마무사)까지 만들어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었음. 그기에

동북아는 군사동원력도 이미 여기 저기 일찍히 수만은 기본에 수십만을 동원했던게 동북아

수준이였고.

(왜 동아시아의 고작 2천여명의 북방 유목 세력이 유럽에 들어가서

신의 재앙 어쩌고 공포에 벌벌 떨면서 제국을 세우고 로마를 농락했는지

함 생각좀 해보시길 바람)
                         
전략설계 14-08-08 19:11
   
징기스칸을 얘기해보라고요??
이눔아 14-08-08 13:52
   
칭기즈칸이 호라즘 정복할때 주치 제베 수부타이는 어디를 조지고 다녔을까요?
엔타 14-08-11 02:48
   
전략설계님/ 댓글이 추가로 달리지 않아 새로 달아드립니다.

님이 얘기하는 수준이 본문에서나 댓글에서나 장군이나 왕들 업적 위주던데, (주로 영토 확장이나 전쟁)
그 눈높이에 맞춰 카이사르랑 알렉산드로스 업적 이야기 한거고...
헌데 웬 횡설수설이십니까.

게다가 서두우는 멀까요?
역사 지식도 제대로 없는 분이 떠드는건가.
설마 몽골의 지두우나 거란8부가 갈리아 지방에 있던 원주민들이랑 같은 급으로 생각하시나요?

아래 이미 몇번이나 얘기한 내용을 반박은 못하고 횡설수설...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으로 있으면서 갈리아 지방 추가로 개척한거는,
님 기준으로 저도 이야기 한거지만, 무주지에 깃발 꽂은 수준 아닌가요?
머 훈족이 유럽 덮쳤을 당시 난리난 상황을 보면
난이도상으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

그리고 본문에 보니 카이사르가 이집트도 정벌한거로 아시는 듯 한데,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기둥서방 노릇한거 였을 뿐
이집트를 정복해서 로마의 속주로 만든건 아우구스투스.

그리고 댓글 다신거 보니 징기스칸이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랑 비교할 급이 아닌건
구지 이야기 할 필요없는 상식이란건 아시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암튼 카이사르 부터 풀고 알렉산드로스랑 징기스칸 진도 나가자니까
이해가 안되십니까?
     
엔타 14-08-11 02:48
   
그리고 자꾸 물타기 하시는데,

어떤 분이 광개토대왕이랑 장수왕 언급한거에 대해
아래 내용을 댓글로 달았지요?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점령한 것도 아닌데 후연을 언급하고,  ..."

전 이걸 깐겁니다.

어그로도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끌텐데...
그냥 본문부터 댓글까지 싹다 횡설수설
          
전략설계 14-08-11 12:33
   
답답한 분아..

누가 댓글로 진흥왕을 왜 뺐냐고 물어서,
내가 "시저, 알렉산더가 있는데 진흥왕을 꼭 언급해야 되냐" 이렇게 할 때만이,
"징기스칸이 있는데 시저, 알렉선더를 언급하냐"고 해야 받아치는거지..

내가 "시저, 알렉산더(세계적인 정복가)같은 사람을 언급하는데, 지두우 공동점령같은 건까지 언급해야 하느냐?"고 했는대도,
"징기스칸이 있는데 시저, 알렉선더를 언급하냐"고 받아치니,

...

말귀 못알어먹는단 소리 듣는겁니다.
               
엔타 14-08-11 17:10
   
이거 난독증인지 일부로 어그로 끄는건지 헤깔리는데 말입니다.
이번엔 진흥왕까지? 이전 댓글에는 서두우 타령하시더니 코메디 제대로 하십니다.

그래요 쉽게 가드리지요.


위에 어떤 분이 장수왕과 광개토대왕 평을 했지요?
님은 그 평에 대해 시저(알렉산더, 징기스칸)를 들먹이며 아래글대로 싸가지 없이 면박을 주고.
(본문 글 자체가 역사 지식도 없이 뻘소리 한거던데,
 댓글까지 그 따구로 다니 어그로라고 하는겁니다.)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점령한 것도 아닌데 후연을 언급하고,  ..."


자 그래서 전 그 헛소리에 대해 까준거고.

"시저가 머 대단한게 있다고 장수왕과 광개토대왕 얘기한 분을 면박을 주느냐?"

"시저가 갈리아 총독으로 있으면서 갈리아 지방 추가로 개척한거는,
님 기준으로 저도 이야기 한거지만, 무주지에 깃발 꽂은 수준 아닌가?
머 훈족이 유럽 덮쳤을 당시 난리난 상황을 보면
난이도상으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

시저가 갈리아 개척한게 장수왕이나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이랑 비교할 급이나 되나?

그리고 본문 타령하기에 본문에 시저가 이집트 먹었다고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까드렸으니 이것도 답변해보세요.
                    
전략설계 14-08-11 19:33
   
이쯤되면 사고가 부족하단 생각마저 듭니다.

시저, 알렉산더 언급한 것은 시저,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넷을 다 열거하기
싫어 둘만 언급한건데..
논하는 것이 이 수준에서 얘기를 하는데.. 지두우 수준까지 언급해야 하냐 그겁니다.

내가 '장수왕'을 견줘서 '시저, 알렉산더' 급이 안된다고 인물을 견줘서 급이 되네 안되네
한 적이 없는데,
'징기스칸'이 있는데 '시저, 알렉산더를 왜 비교하냐'고,
어디서 자다가 봉창 뚜들기는 소리를 하니까 부족하단 소릴 듣는 것입니다.

상대가 업적의 경중을 얘기하면 업적으로 받아쳐야지,
상대가 업제의 경중을 얘기하면 인물의 경중으로 다른 것으로 받아치지
덜 떨어졌단 소릴 하는겁니다.

내가 '시저, 알렉산더'만 언급하고 끝난게 아니고,
본인 빠순이질 하던 징기스칸도 똑같이 언급하는데.
빠질 잘하던 징기스칸 얘기에, '지두우 공동점유'를 꼭 언급해야 되냐 그겁니다.

나도 안해본 토론이 없는데.
보면 듣보 수준의 논리는 쥐뿔도 없는데, '까줬네', '답변하라'니 하는거 보면,
가는 곳마다 먼저 논쟁 걸고 터지기 딱 좋은 수준이네요.

상대가 업적의 경중을 얘기했으면 업적을 받아치라구요.. 한국말 모릅니까??
                         
엔타 14-08-11 22:42
   
뇌가 부족한 분이신가?
답변은 못 하고 횡설수설만 여전하군요.

님이 본문에 단 뻘소리는 기억이 안나시나?

"광개토대왕 -- 중국 삼국시대가 끝나고 5호16국 시대의 틈을 노려, 말갈, 거란 정도 휘어잡은 것이지,
북중국의 강국을 정면승부로 쳐들어가서 뺏은 것은 아니고..

장수왕 -- 남진정도 했고.. "


이 뻘소리에 사람들이 의견을 단거고,

님은 또 댓글에 이런 뻘소리를 달았고

"알렉산더, 시저, 징기스칸과 같이 비교하는데,
장수왕이 대흥령산맥 서쪽 지두우를 유연하고 나눠먹었네 라고 써야되고,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점령한 것도 아닌데 후연을 언급하고,  ..."


자 그래서 묻겠습니다.

"시저가 갈리아 개척한게 장수왕이나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이랑 비교할 급이나 되나?"

"본문에 시저가 이집트도 정복했다는 듯한 헛소리는?"

말 그만 돌리고 일단 이거나 대답을 해보라니까요.
                         
전략설계 14-08-12 20:42
   
국사책에서 장수왕 하면 '남진정책'이지,
모두가 얘기하는 장수왕의 남진을 남진이라고 얘기했는데, 댁 귀에는 삘 소리로 들리오.

'지두우 공동점령 하면' 그게 장수왕의 대단한 북진거리나 되냐구??
옆에서 시저,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나오는데,
지두우 공동점령 내세워서 장수왕의 북진이라고 하냐구??
개념좀 차려.. 존대말도 아깝다.

광개토대왕은 또 어떻다구??

시저가 이집트 정복한거 이 생전 몰랐냐??
BC.48~B.47 이집트 원정가서 프톨레마이우스13세 전사시킨거 몰라??
아는게 급이냐??

시저가 어쩌고 장수왕이 어쩌고 니도 아는게 있음 나같이 글로 써봐..
안되지?? 뒤에서 댓글로 짓지나 말구..
나서서 하라믄 하지도 못하는 게..
나는 개인평에서 각자 인물에 대해 할 얘기 다 했어.. 비교는 너나 열심히해..

논쟁하는 방법을 모르나본데.
시저,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을 언급하는데,
'지두우 공동점령'은 정복지로는 같이 논할 급이 안맞다고 얘기했으면,
'지두우 공동점령'은 시저,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의 정복지와 같은 급입니다.
이게 반론이야..

반론하는 방법도 내가 가르쳐줘야 하냐??
                         
엔타 14-08-13 01:59
   
이집트는 BC 2세기 초에 이미 로마의 동맹국으로 반속국상태.  (시저 이전부터 이미 로마의 내정간섭기)
이집트를 정복해서 속주로 삼은건 아우구스투스. (로마의 이집트 지배 시작. BC 30년)

시저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기둥서방 역할.
클레오파트라 7세와 그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내분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의 편을 든거.

시저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미인계에 홀려 사병 노릇한겁니다.
후일 2차 삼두정치의 1인인 안토니우스 역시 시저처럼 클레오파트라 7세의 미인계에 홀려
불륜 + 삽질로 로마에 민폐 (안토니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누이인 옥타비아와 이혼 + 이집트에 로마땅 퍼주기 등)
이에 빡친(실제론 명분을 얻은)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를 정복해버립니다.


무식한데다 반말까지 싸지르는게 딱 어그로 맞구만 말입니다.

시저 업적을 대보라니까 웬 헛소리만 하시는지.
깡신 14-08-19 10:58
   
전력설계님...세계사 인물로 가기전에 국사라도 제대로 알고 생각을 하세요.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적을땐 확신이 있어야하는데 너무많이 틀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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