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4-08-07 08:56
[기타] 고대 유럽(로마)과 동아시아의 인구
 글쓴이 : 엔타
조회 : 3,513  

로마 인구가 1억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했던 한나라도 5,900만명 (AD 2년) 정도 였습니다.

상식적으로 밀을 주식으로 하고 육식을 즐기는 지역의 인구가 벼농사 지역보다 많을 수는 없지요.

1. 밀은 벼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적습니다.

2. 밀은 벼에 비해 지력 유지를 위해 장기간 휴경을 해야합니다.

3. 밀은 벼에 비해 열량이 낮습니다.

위의 이유들로 인해 고대에는 밀에 비해 벼의 단위면적당 인구부양력이 3배 이상 높았습니다.
(대신 벼농사는 물이 풍부해야하는 기후-지리적 요건이 필요하고 노동력도 그만큼 많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밀을 주식으로 하는 경우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경우보다 필수 아미노산의 섭취를 위해 육식의 섭취를 많이 해야 합니다.
육식을 위한 목축에는 농사에 비해 많은 목초지가(통상 6배) 필요하기에 그만큼 로마의 경작지는 영토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시기별 유럽의 인구를 살펴보면,

우랄산맥 서쪽에 거주하던 유럽 전체 인구는

1. 서기원년 3천3백만명

2, 천년 후인 AD 1000년에 3천8백만명

3. 중세 삼포제가 도입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1340년에 7천만명

4. 시비법의 발달과 감자가 보급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특히 17~18세기) 1750년에는 1억4천만명


그외

고대에는 병력동원 능력이 인구부양력에 비례했는데,
로마의 병력동원 능력을 보면 당시 인구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조)와 수백년간의 패권 전쟁시를 봐도 동원된 병력이 3만~5만 수준이었지요.

사실 유럽사가들이 로마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의 상당부분이 실제로는 로마 영토가 아니기에
병력동원 문제는 그런 이유도 반영이 되긴 합니다만,

아무튼 로마 인구는 영토에 비해 적은 수준이었고,
고대부터 현재까지 유럽의 인구가 동아시아의 인구 보다 많았던 적은 없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shrekandy 14-08-07 11:27
   
통계 잘 봤습니다.하지만 일단 제가 연구한 뵈로는:

일단 서양에선 기원후 2세기쯤 로마 제국의 인구를 7천만으로 보고있습니다

유럽은 당연히 인구가 낮죠. 로마 제국내에서도 가장 인구가 없었던곳이 서유럽 지역입니다. 가장 낙후되고 들 발달된 곳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로마제국은 유럽외의 동아시아의 문명과 페르시아를 제외한 모든 대문명 지역을 거뭐진 국가였습니다. 이집트,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북아프리카등은 유럽과 달리 훌륭한 문화와 역사, 과학을 가진 지역들이고 때문에 인구도 유럽에 비해 월등이 많았죠. 즉, 로마 제국의 1억 인구의 대다수는 이쪽에서 온겁니다. 고로 로마가 망할때 중심지는 서유럽이 아닌 동쪽 그리스, 이집트, 서아시아가 포함된 동방으로 이동하죠.

마지막으로 로마는 못해도 20만대군은 항상 운영했습니다. 전성기땐 50-70만쯤을 운영했죠, 워낙 국경이 넓고 사방이 적이니 패르시아에 대군을 투자할순 없었을거니와, 페르시아는 사실 샤푸르 대제 이전까진 로마에 맨날 쳐발리던 상황이라..,삼지어 그 샤푸르 대제도 연속 패전하다 로마 황제가 오만해져 너무 깊숭히 들어와 운좋게 이긴거고요

추가 자료는 다시 찾아서 때되면 올라겠습니다
     
엔타 14-08-07 12:19
   
당시 유럽인구에서 게르만 제 민족들의 인구를 빼고,
이집트와, 소아시아, 시리아, 카르타고(지금의 튀니지)의 인구 정도를 더하면 로마 인구가 나옵니다.
로마의 가장 크고 중요한 지역들이었지만 위 지역들도 인구가 많은 동네가 아니지요.

그외 지역은 인구가 거의 없던 지역이라.

로마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서로 국운을 걸고 600년 이상을 싸우던 패권 전쟁이었습니다.
3두정치 시절에는 카이사르와 더불어 최고 우두머리였던 폼페이우스가 페르시아와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고,
제정 로마 시기에는 로마 황제가 친정을 하다 죽은 경우도 2번이나 있었고.

로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전쟁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이었지요.

그런 국운을 건 전쟁에서의 병력이 3~5만 수준입니다.

게다가 로마는 중간에 훈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시기가 60년 가량 되는데,
나라가 망할 상황에서도 병력을 총동원하지 않았을리는 없겠지요.

참고로 아우구스투스가 비로마인까지 확대하여 시민권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재위 말년인 AD 14년에 실시한 호구조사에서 493만 7천명이었습니다.
시민의 수이기 때문에 정확한 인구수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인구수나 병력이 터무니 없는 수치라는건 짐작이 가능할 겁니다.
          
jclulu 14-08-07 12:25
   
전 이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님 의견이 설득력이 있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재미있는 주제네요...
          
엔타 14-08-07 12:45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사망한 3두정치의 일인은 폼페이우스에서 크라수스로 정정합니다.
          
shrekandy 14-08-07 13:27
   
음 맞습니다. 아무리 국경선이 넓어도 가장 큰 라이벌인 패르시아에 3만만 투자하긴 그랬을지 모르긴 하나, 하여간 egloos에서 퍼온 글입니다

로마 공화국의 인구 조사 자료(2차 포에니 전쟁 말기부터) ; 附로마제국 인구 1억설 



공화국 로마의 인구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알려주는 자료로, 5년마다 켄소르(감찰관)들이 조사하여 기록한 인원수 자료가 있다. 한니발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부터 기원전 28년에 이르기까지 남아있는 연도별 조사 결과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는 기원전)


204/3년  21만 4천명
194/3년  14만 3704명
189/8년  25만 8318명
179/8년  25만 8794명
174/3년  26만 9015명
169/8년  31만 2805명
164/3년  33만 7022명
159/8년  32만 8316명
154/3년  32만 4천명
147/6년  32만 2천명
142/1년  32만 7442명
136/5년  31만 7933명
131/0년  31만 8823명
125/4년  39만 4736명
115/4년  39만 4336명
 86/5년  46만 3천명
70/69년  91만명

    28년 406만 3천명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대체 이 수들은 무엇을 센 값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기원전 28년 이전의 것들은 총 인구 자료가 아니며, 로마 시민인 성인 남자,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 '부분' 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부분' 이라는 것은 얼마간의 누락을 제외한 거의 70% 이상의 대부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절반 이상이 제외되고 남은 나머지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필시 실제 인구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을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위의 자료에 포함된 것일까, 아닐까? 이런 요소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공화국 로마의 인구나, 그것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인구 등의 추산은 매우 크게 변동하게 된다.

일단 될수 있는 한 전체 인구를 적게 잡는 쪽을 택해서, 센서스 자료가 프롤레타리아와 노년층을 포함한다고 가정하고 기술적인 누락분을 감안한다면 기원전 2세기 말에 공화국에는 약 50만명 가량의 성인 남자 시민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인 남자의 수가 전체 인구의 30%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이 당시 '로마인' 은 170만명쯤 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은 '이탈리아인' 의 수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보면 이탈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자유인은 3백만명에서 4백만명 가량이었다고 셈할수 있다. (노예는 제외된 것이다.)

나중에 이탈리아 전역으로 시민권이 확대된 후인 기원전 69년의 조사에서 (성인 남자 시민의)수가 90만명 가량인 것을 보면 이런 계산은 넓은 범위에 걸쳐 어느정도 재현성을 보인다고 생각된다. (90만명 X 1.2(20%의 누락(?)) X (10/3) 을 하면 360만명이 된다)

그런데 기원전 28년에 갑자기 센서스 결과는 몇배나 훌쩍 뛰어서, 400만명이 넘어버린다.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마 40년 정도만에 공화국의 인구가 네, 다섯 배나 증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의 계산이 실제 공화국의 인구를 반영한다는 가정을 유지하면서 이 결과를 설명하는 방법은, 어느 시점엔가 센서스에 등재된 명수가 '성인 남자 시민' 에서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모든 로마인' 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406만명이라는 수치는 다시 한번 앞의 계산 결과와 무리없이 하나의 선상에 놓인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몹시 극단적으로 보이는) 다른 해석 방법도 물론 존재한다. 공화정 시기 내내 이루어진 조사는 사실 전체 성인 남자 수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며, 기원전 28년, 아우구스투스의 집권기의 자료에 와서야 그것이 비로소 현실에 접근했다고 보는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당시 '로마인' 의 수는 거의 1300만명이나 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나중으로 가면 더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위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기원후 47년의 조사 결과는 거의 600만명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전체 '로마인' 의 수는 거의 2천만명이나 될 것이다.

로마인의 수만 2천만명이나 되었다면, 대체 노예와 속주민까지 합친 전체 로마 제국의 인구는 얼마나 많았단 말인가? 그것을 접한 사람이면 대개 '이상하다' 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로마제국 인구 1억설은 보통, 여기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엔타 14-08-07 14:01
   
호구조사에서 중요한 점은 영토에 미치는 행정지배력이 중요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당나라 건국 초기 호구조사에서 인구는 1천2백만에 불과합니다.
이게 연이은 전쟁이 수습된 후 통치가 안정되어 실시한 호구조사에서는 5천2백만에 이릅니다.

로마의 경우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정상적인 행정지배력이 발휘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1. 공화정과 제정 시기의 속주에 대한 정책

2. 아우구스투스 당시 로마 제국 영토의 틀이 확립될 정도로 팽창이 된 점.

3. 아우구스투스 당시 병력 동원을 위해 비로마인에게까지 시민권 부여

4. 카라칼라 시기에 세수 확보 및 병력동원을 위해 제국 자유민 전체에게 시민권부여 (AD 212년)

5. 카라칼라 시기 이후에도 병력동원 능력은 여전히 낮음

6. 카라칼라는 무리한 병력 동원을 통해 파르티아를 정벌하다 원정 중에 부하들에게 암살 당함.
  (결국 이 전쟁은 후임 황제인 마크리누스가 파르티아에 영토와 배상금을 물고 종결)

7. 이후로의 페르시아와의 전쟁이나 훈과의 전쟁에서도 병력동원 능력은 낮았음
          
shrekandy 14-08-07 13:42
   
추가로 공화국당시 페르시아 몇번 로마가 진적은 있지만 국운이 걸릴 만큼은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페르시아가 수도를 로마한테 최소 3번은 털립니다. 반대로 페르시아가 로마 깊숙히 이탈리아까지 진출한 적은 없죠.

어디까지 제가 공부한 바고 님 밀도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다만 제가 이 전글에서 한말은 어디까지나 로마제국의 인구 구성은 이민족 수가 압도적이였단겁니다.

일단 tulane 대학에서 발표한 기록상으론 제국 인구가 5600만정도 됬디고하네요
http://www.tulane.edu/~august/H303/handouts/Population.htm

하여간 제국내의 시민수가 4백만이면 여전히 제국의 건국민족인 라틴족의 수는 전 제국 인구의 10프로 밖에 안되죠. 하지만 로마는 어디까지나 라틴족, 이탈리아인들의  역사입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음
               
엔타 14-08-07 16:19
   
파르티아 수도였던 크리시폰을 점령했던 경우,
(크리시폰은 티그리스강 인근이라 로마와 가까이 붙어 있어서 자주 전투가 벌어집니다.
 실제 크리시폰 점령 자체는 전쟁 승패에 별다른 영향을 못 주기도 하구요.)

트라야누스 황제 때인데 황제가 직접 친정하여 로마 역사상 동방으로 최대 판도를 이루나 했지만,
획득한 영토 다 잃고 귀환 도중 사망

카라칼라 황제 당시 친정하여 크리시폰 약탈까지 하나 원정 중 마크리누스에게 암살당하고,
마크리누스가 황제에 올라 영토 및 전쟁배상금 물고 강화.

위 2명의 황제때 로마가 가장 많이 밀고 갔지만 당시 친정했던 황제들은 사망하고 결국 전쟁은 패합니다.

그외 나머지 한번 역시 크리시폰 인근까지 진출은 했으나 패하여 후퇴하던 중
황제는 사망하고 후임 황제 때는 안티오크까지 역으로 털립니다.
아래 고르디우스 3세가 사산조와 싸울 때


이후 사산조 때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일방적인 페르시아 우세,

시작부터 로마 황제 고르디우스 3세 사망
(전투 중 패했다는 설도 있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부하들에 의해 암살됐다는 설도 있음)

로마의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전투 중 포로로 잡혀가 죽음
(능욕을 당하다 처형 됐다는 설도 있고 페르시아에서 잘 살다 죽었다는 설도 있음)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전투 중 사망
니시비스, 싱가라, 아르메니아 빼앗기고 강화

훈족이 중근동에 진출함에 따라 전쟁은 소강 상태

동로마 시절은 로마가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치고 영토를 뺏기던 일방적인 페르시아 강세
                    
엔타 14-08-07 16:19
   
로마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땅을 누가 많이 차지하냐에서 시작합니다.

로마-그리스의 입장에선 몇백년간 지배하던 영토를 페르시아에 빼앗긴 입장이고,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알렉산드로스에 망한 아케메데스조 당시의 고토를 회복하는 전쟁이었습니다.

로마는 셀레우코스의 일부를 차지한 후 제국의 중심이 소아시아로 옮겨지게되고,
(훈제국 역시 발칸반도를 점령해서 동서로 로마를 분리한 후 당시 로마의 중심이었던 소아시아 지역 부터 초토화 시키죠.)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로마 황제가 직접 나서야할 정도로 국운을 건 전쟁이었습니다.
               
엔타 14-08-07 16:45
   
링크 주신 내용을 읽어 봤습니다만,
호구조사를 바탕으로 계산한게 아닌 단순한 추정치더군요.
(물론 호구조사를 기준으로해서 추정하더라도 고대 인구라는게 상당한 오차는 있게 마련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소아시아(시리아,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제외한)에만 1천5백만이 거주했다는데,
그 좁은 땅에 그정도의 생산력이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오히려 동로마를 거치며 오스만제국의 중심지로서 계속 발전해서 번영하던 지역인데
현재 인구수를 봐도 당시 1천5백만은 무리지 싶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인구를 350만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천만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아마 긍적적인 가정을 해서 뽑은 수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당나라때 고선지 장군이 서역 원정을 하며 탈라스까지 진출했을때
원정군 규모가 3만 이었습니다.
고구려와 전쟁은 차치 하더라도 발해와 전쟁 때도 20만을 보내던 당나라가 3만으로 서역 일대를 정벌 했다는건 당시 그 지역의 인구나 병력이 그만치 적었다는 뜻일 겁니다.

몽골 역시 유럽과 중근동 원정때 3만씩 보낸거에 비해
금, 고려, 남송 정벌시 17만을 보냅니다.
 
 
Total 2,14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35 [기타] 여몽연합군 일본 정벌 (14) shrekandy 08-14 5649
2034 [기타] 금나라와 청나라는 다르게 봐야합니다 (6) 대은하제국 08-14 2307
2033 [기타] 고대 요동은 이곳이겠죠? (4) 센스 08-13 2302
2032 [기타] 황제국이란 단어가 좋은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10) 초밥왕 08-13 2042
2031 [기타] 고대의 요동과 지금의 요동 (6) 센스 08-12 2479
2030 [기타] 궁금한게 있습니다 발해멸망의원인이 (4) motelcalifornia 08-12 1989
2029 [기타] 설악산 조난됐던 대만인,119구조대에'감사의 편지 (7) 스쿨즈건0 08-11 3679
2028 [기타] 가야와 백제의 일본 지배 (3) shrekandy 08-11 3598
2027 [기타] 일본은 신라의 속국 (9) shrekandy 08-11 4786
2026 [기타] 요즘 친일매국노 역사 담당하는 놈들 똥줄탓다 (8) 재림 08-11 2081
2025 [기타] 홍산문화는 절대로 중국의 것일수가 없습니다 (7) 대은하제국 08-10 2108
2024 [기타] 우실하 교수 홍산문명 특강 (8) 풍림화산투 08-09 2997
2023 [기타] 고대 백제인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8) 풍림화산투 08-09 3798
2022 [기타] 고구려가 당나라를 선제공격한적이 있나요? (13) 대은하제국 08-09 5141
2021 [기타] 국보 문화재 관리 상태 엉망 (3) 개츠비 08-08 1512
2020 [기타] 정도전은 개혁가 ?? 아님 간신 ?? (20) 긔긔 08-08 2635
2019 [기타] 한국 금속활자 쓰레기? (8) shrekandy 08-08 3746
2018 [기타] 말갈족이 발해시대때 피지배층이라는건 잘못된 역사… (6) 대은하제국 08-08 2239
2017 [기타] 우리나라(역사, 문화)의 독자문명을 인식하는게 중요… (1) 투기꾼 08-08 8331
2016 [기타] 역사상 장군과 군왕에 대한 개인평 (52) 전략설계 08-07 5022
2015 [기타] 고대 유럽(로마)과 동아시아의 인구 (10) 엔타 08-07 3514
2014 [기타] 티무르제국이 코끼리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나요? (1) 대은하제국 08-07 1939
2013 [기타] 발해, 고구려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6) shrekandy 08-07 3764
2012 [기타] 이순신과 급을 같이하는 장군은? (9) 햇살조아 08-06 3137
2011 [기타] 金史가 한국사가 아닐 경우에 대비해야 할 점 (137) 투기꾼 08-06 3841
2010 [기타] 금나라는 한국사가 맞는것같습니다 (73) 대은하제국 08-06 4796
2009 [기타] 티무르제국 무굴제국은 정확히 어느나라 역사일까요 (7) 대은하제국 08-06 223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