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4-07-13 04:44
[기타] 중국 사료에 보이는 한사군 존재에 대한 의문점
 글쓴이 : NordicBerry
조회 : 3,859  

대은하 제국님께서 아래에 한사군에 대해 물으셔서 
저도 호기심이 생겨 여러자료 살펴보았고 상당히 문제가 많다 여겨집니다 
대강 정리해 보면



사료에 나타나는 한사군의 의문점 

1. 사마천은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를 집필한 인물로 한사군전쟁에 몸소 종군하여 
<사기 조선열전>에 다음과 같이 한사군전쟁을 기록합니다. 

'한 무제는 순체와 양복 두 장군에게 5만 여의 대군으로 고조선을 정벌케 하였고 
1년이 넘는 전쟁 끝에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귀국하였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수도를 점령하고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장군에게 합당한 논공행상는 무엇일까요? 

당시 승전하여 개선한 장군은 제후에 봉하고 이하 장병에게도 합당한 포상을 하는것이 관례 
였습니다. 

그러나 사기에는 
(1)좌장군 순체: 사형 후 시신을 길거리에 조리돌리는 기시형 
(2)누선장군 양복: 기시형이었으나 막대한 벌금을 내고 서인으로 강등 
(3)위산: 고조선과 강화협상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참수 
(4)공손수: 마음대로 군사형태를 바꾸었다는 이유로 참수 
(5)졸정다: 육군선봉장, 참패의 이유로 참수 
이처럼 전쟁에 참전했던 한나라 장수와 사신들은 모두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중 좌장군 순체는 시중으로서 무제의 총애를 받던자였습니다. 

사마천은 <사기 조선열전>에서 한사군전쟁의 결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사평합니다 
“兩軍俱辱 將率莫候矣 (수.육 양군이 모두 치욕을 당했다. 장수들 중 제후로 봉해진 자가 없다) 

승리한 전쟁의 사평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2. 낙랑, 임둔, 현도, 진번 이라는 한사군의 구체적 지명은 사마천의<사기>가 아니라 
고조선과 한의 전쟁 200년 후인 반고의<한서 무제열전>에 처음 등장한다 합니다

사마천은 전쟁에 직접 종군한 목격자 임에도 한사군 식민지명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고, 
단지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으로 삼았다'라고만 합니다. 

반고의 <한서>가 한사군에 대한 역사적 사료로써 빈틈이 없다면 위 논쟁은 불필요 하지만,
<한서> 역시 한사군에 대한 모순적 기술이 많이 나타납니다 

(1)한서 무제본기: 한 4군으로 기록 
(2)한서 지리지: '현도·낙랑은 무제 때 설치했다'고 한2군으로 기록 
(3)한서 오행지: '두 장군이 조선을 정벌하고 삼군을 열었다'고 한3군으로 기록 

즉, 같은<한서>내에 한사군에 대한 모순된 기록이 나타나는 겁니다 



3. 이처럼 고대 역사서 <사기>와 <한서>에도 모순된 기록으로 그 존재조차 불확실한 한사군을 
한반도내에 위치했다고 정설로써 각인시킨 인물은 누구일까요? 

바로 조선사편수회를 주도했던 이마니시 류라는 일제 식민사학자입니다 

이마니시 류는 조선총독부의 ‘고구려 고적조사 사업’을 ‘한 낙랑시대의 고적조사 사업’으로 개칭한다는 총독부 방침에 따라 역사왜곡에 돌입합니다 

이마니시 류도 평양 일대의 유적은 고구려 유적으로 보았으나, 
총독부의 방침대로 평양을 한사군 '낙랑'의 유적지로 탈바꿈 시킵니다 

(1)이마니시 류는 2000년 전 한나라 시대의 와당과 봉니를 발견하였다 하고, 
(2)점제현 신사비를 최초로 발견하였다 하며 
(3)평양을 낙랑군의 유적지로 둔갑시킵니다. 


이마니시 류는 1935년 출간한 <조선사의 길잡이>에서 한사군이 조선사의 시작이라 말합니다. 
한국사의 시작을 식민지인 한사군으로 믿게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추락시켜 식민지배에 순응케하고, 
일제의 식민지 경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고조선과 한의 전쟁 후 2000여 년이 흐른 일제강점기에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평양은 한사군 중 낙랑군으로 규정됩니다.



4. 한국사의 식민지성을 강조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려는 이들의 역사왜곡은 
해방 후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사 체계를 만들었어야 함에도, 
일제 식민사학은 실증주의란 이름으로 한국사의 주류로 남아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위치하였다는데에 이견을 제시할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래는 네이버 백과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낙랑에 대한 일제식민사학이 여전함을 보여주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낙랑군은 한나라가 주변의 이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외이(外夷)의 공간에 군현을 설치하면서 그 일환으로 설치한 군이다.한사군의 위치를 중국의 요동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반도 중·북부 및 남만주 일부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낙랑군의 관할지역은 오늘날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부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랑군 [樂浪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현재 한국사의 시작을 식민지로하는 한사군의 이 역사왜곡은
한강이북이 중국사의 일부라는 중국 동북공정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한사군에 대해 대강 정리해 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2002년 MBC 뉴스 ---------------
'임둔'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이 중국 요서지방인 요녕성 진시시(錦西市) 소왕대에서 발견됩니다,
한사군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최소한 임둔이란 지명은 한반도와 관계없음을 나타내는것 같습니다.


“고조선 중국내륙에"

 

앵커: 고조선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넓었다는 학설이 제기됐습니다. 고조선 계통의 유물이 중국 요서 지방에서 출토됐습니다. 김성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기원전 108년, 한나라에 의해 설치된 한 4군은 지금의 평양의 낙랑, 오른쪽에 임둔 , 오른쪽에 진번 그리고 만주 동부와 함경도에 현도가 위치했는 게 통설입니다. 그런데 임둔 이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이 중국 요서지방인 요녕성 진시시(錦西市) 소왕대에서 발견된 사실이 최근 단국대 박물관 복귀대 박사의 논문에서 밝혀졌습니다.

 

공문서를 넣은 상자 등에 함부로 뜯어볼 수 없도록 진흙을 바르고 직인을 찍은 봉니가 바로 그 유물인데 규격과 서체로 볼 때 한의 중앙 정부가 인근 태수에게 보낸 것입니다. 더욱이 복리 출토 성토에서는 고조선 계통의 유물이 다량으로 나와 바로 이곳이 임둔 소재지임을 밝혀준다고 복 연구원은 말합니다. 임둔 이 요서지방에 있었다면 낙랑은 그 왼편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한 4군의 전신인 위만조선과 고조선의 위치가 한반도가 아니라 요하를 중심으로 한 중국 내륙쪽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인터뷰: 우리나라의 상고사인 고조선이 만주지역으로 비장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럼 만주지역으로 비정이 된다고 할 때는 우리나라 상고사 전체의 틀이 한번 바뀔 수 있는 거죠.

 

기자: 이번 연구결과로 일제시대 일인학자들이 한반도 위치설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던 평양지역의 낙랑유물 유적부터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MBC뉴스 김성우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설설설설설 14-07-13 09:09
   
후한서 동이열전에 보면 부여왕이 111년에 낙랑을 침공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침공해서 그 곳의 백성들을 죽이고 사로잡는 다는 기록이 있는데 부여는 만주쪽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였는데 만약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면 어떻게 만주에서 평양까지 내려와서 칠 수 있냐는 의문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낙랑은 요동과 요서에 있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사실 낙랑 자체가 아직 미스테리한 부분입니다. 워낙 이부분은 논점자체가 많은 부분이거든요. 이 부분은 통일이 되어야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듯 싶습니다.
NordicBerry 14-07-13 09:21
   
역시 그렇군요 여러 사료를 보아

설설설설설님 말씀대로 애초 한의 낙랑군은 요하지역에 있음이 합당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최숭의 낙랑국 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공교롭게도 위치가 한반도 북부지역입니다

방금 그와 관련된 칼럼을 하나 읽고있는데, 한의 낙랑군과 최숭의 낙랑국에 대한 것입니다    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3878

이게 혹시 실마리가 될수 있을요?

'일본인들이 대동강유역에서 발굴한 유적에서 낙랑과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
실은 낙랑군이 아나라 낙랑국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요
     
설설설설설 14-07-13 09:24
   
제가 말씀드렸듯이 낙랑자체가 어떤 학설이 나오면 다른 학설이 또나오고 또 나오고 논점자체가 너무 많아서 아직 미스테리한 부분이거든요. 일단은 통일이 답입니다. 그래야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거든요
          
NordicBerry 14-07-13 09:26
   
아 그렇군요 ㅋ 댓글 감사합니다
               
꼬마러브 14-07-13 09:30
   
낙랑군에 가려졌던 낙랑국 1
http://blog.naver.com/cldnastp/70163610263
낙랑군에 가려졌던 낙랑국2
http://blog.naver.com/cldnastp/70164242730
낙랑군에 가려졌던 낙랑국3
http://blog.naver.com/cldnastp/70165136268
낙랑군에 가려졌던 낙랑국4
http://blog.naver.com/cldnastp/70165812804
                    
NordicBerry 14-07-13 11:42
   
링크 감사합니다 빠르게 읽어 보았는데, 내용이 많아 시간을 두고 다시 봐야겠네요 ㅋ

<삼국사기>에 낙랑에 대한 기술이 많은데 핵심은 이게 낙랑군이냐, 낙랑국이냐의 여부인듯합니다.
1. 우선 설설님이 댓글로 설명하신 <후한서 동이열전>을 신뢰한다면 낙랑군은 요하지역이 분명해 보입니다

2. 그럼 낙랑국의 위치가 한반도 북부라면, 모든게 설명되는데

3. 그에 대한 해답으로  꼬마러브님의 링크글 중<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이 부분이 눈에 띕니다
 '17년(B.C1) 봄 낙랑이 내침하여 위례성에 불을 질렀다'

4. 위의 낙랑이 낙랑군이라면 발해만 부근의 요하 지역인데 이들이 위례성
즉, 지금의 서울까지 내려와  침공한다는 것은 거리상 너무 멀어 보입니다.

5. 그래서 위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기록된 낙랑은 한반도 북부 낙랑국이 맞는것 같습니다
                         
굿잡스 14-07-13 13:26
   
참고로 낙랑은 문헌의 기록을 보면 여러 곳에서 확인됩니다.

요동등 요하일대 두군데에 남부일대에도 확인되고.

서토에서도 사천이나 광주가 있고 우리쪽에도 이런 지명이 무엇보다

광주도 저 전라도에도 있지만 경기도에도 광주가 있는 등 너무 하나라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죠. 물론 오늘날 평양이라는 지명도 특수명사

보다는 평평한 의미의 일반 명사로 그래서 현재 북한 수도일대는

과거 고구려의 장안성이면서 평양성으로 불리웠지만 황해도 일대의 한성도

(남)평양으로 만주 일대도 (북)평양이 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Windrider 14-07-13 09:51
   
이마니시 류는(금서룡) 이병도의 스승이죠. 한반도 축소설을 지지하며 조선사편수회에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역사를 왜곡한 식민사관의 대부죠.
     
NordicBerry 14-07-13 11:58
   
네, 이 자가 우리에게 끼친 해악이 참으로 커보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일어난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한반도라는 틀에 강제로 꾸겨넣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꿈꾸는자 14-07-13 11:14
   
무엇보다도 사마천의 사기는 원본이 전해지지 않습니다..수많은 세월과 왕조들이 지나면서 개정되고 중국의 춘추필법에 맞게 고쳐졌죠..반고의 한서는 춘추필법으로 쓰여진거죠..그들의 입맛에 맞게..물론 이넘도 원본이 없고 수많은 세월과 왕조를 거치면서 역시나 다시 개정되고 고쳐졌죠..
우리가 우리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중국 한족들이 쓴 역사서 말고..한족을 정복한 이민족들이 쓴 역사서인 요사나 금사,청나라의 만주원류고나 사고전서등을 연구해야 될겁니다..
요사나 금사는 몽골인들이 지배하던 원나라때 쓰여진 책이죠..흠정만주원류고와 사고전서등은 청나라 여진족들이 지배하던 시대에 쓰여진 책이고..사료적 가치고 높죠..
     
NordicBerry 14-07-13 11:52
   
춘추필법이 뭔지 검색해보니

일종의 짱깨중심 서술로, 이것들이 지금도 잘하는 정신승리법이네요 ㅋㅋㅋ

정말, 한족의 사서를 볼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추천해주신 <흠정만주원류고>와<사고전서>도 한번 봐야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신명 14-07-13 12:21
   
관련된 설화가 자명고로 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인거 같은데 네이버를 보니 낙랑공주는 대부분 낙랑태수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더군요.

낙랑국의 왕의 딸로 알고 있었는데 태수의 딸로 나오네요..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는 태수인데 딸은 공주가 될 수 있을까요?


낙랑군과 낙랑국의 혼돈에서 오는 게 아닐지..
오샤 14-07-13 13:25
   
진시황의 무덤도 아니랍니다....  이정도면 어느정도인지 알죠.
플루 14-07-13 13:37
   
좀 원문 좀 제대로 출처 적으세요.
원문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불가능한 한글 갈겨 놓지 말고,
해당 사료, 페이지, 밝히고 원문 그대로 옮기고 그 다음 해석을 하던지 하세요.
인터넷에 한글로 토막글 적힌거 긁어서 복사하지 말고.

당장 첫번째 조선열전에 부분도 그들이 왜 처벌받았는지 조선열전에 다 설명 되어 있는데,
아주 곡학아세를 하네요.

네이버 지식백과에 사기열전 한문과 완역본, 그리고 원본 스캔본까지 다 있습니다.
인터넷과 정보화사회의 발전이 참 다행입니다. 더 발전해 갈수록 원문 확인이 손쉬워져서
이런 글처럼 마음대로 왜곡하는게 힘들어질테니.

그리고 아직도 낙랑을 평양에서 만주로 보내고 싶으신가 보네요.
그렇겠죠. 낙랑의 위치가 고조선의 위치니까.
낙랑이 평양이면 절대 안되죠. 진실이 중요한게 아니니까.
     
플루 14-07-13 13:40
   
진짜로 민족역사를 알고 싶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토막글만 찾아 다니지 마시고,
취미가 아니라 제대로 한문 배우시고 대학가셔서 공부하시고, 원서 좀 보세요.
한자안다고 한문아는거 아니니, 한문을 배우시고요.
어설프게 한자 안다고 엉뚱하게 해석하는 한심한 인간들 처럼 되지 말고.
          
NordicBerry 14-07-13 14:07
   
와 대단한분 납셨네 ㅋㅋㅋㅋㅋ

일요일에 한가롭게 호기심 좀 풀려 하려했더니 이렇게 강단사학이 제 취미에 쌍욕을 해대네요 ㅋㅋㅋ
이분은 어느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시길래 "한문도 제대로 못배운 놈이 마음대로 왜곡질이냐" 훈수질하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낙랑이 평양이면 왜 평양인지 말하면 되는 겁니다. 뭐가 그렇게 고까워서 쌍심지를 킵니까? 애도 아니고

도대체 왜이러는 걸까요?

가생이가 전문적인 역사지식을 나누는 그런 학술모임이라면 아닥하고있겠습니다

내가 누구를 선동하겠다는 목적도아니고 내가 본자료들,
사실 사료라고 할것도 없어요 대부분 신문기사나 칼럼들 그런것들이니까
그런것들 대강 정리 해본것 뿐인대 딱 그것뿐인데 이리 막말을 하시네요ㅋㅋㅋ

님 말대로 인터넷과 과학이 발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안그랬으면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것처럼 님같은 인간들이
계속 한자나 들이대면서 지가 옳다고 밥그릇 챙기고 있었을거 아닙니까ㅋㅋㅋㅋㅋ

ㅋㅋㅋ역사공부하자고 직업도 내팽겨치고 대학가서 공부하라는 너는 정말 노답이다 ㅋㅋㅋ
          
NordicBerry 14-07-13 14:26
   
그들이 왜 처벌받았는지 나왔다는 조선열전 사료 부탁합니다

그리고 한사군에 대하여 댓글로 말하지 마시고

한사군은 왜 한반도 내 인가, 낙랑군은 왜 평양인가에 대한 주제로 본문글 하나 세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서보고 공부하신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궁금증 해소하자고 다시 대학 진학하는것은 가성비가 너무 안좋아 보입니다

역사전공자의 날카로운 해석 부탁합니다.

제가 얼마나 곡학아세를 하여 혹세무민하였는지 제가 더 궁금합니다
          
NordicBerry 14-07-13 15:11
   
左將軍徴至, 坐爭功相嫉, 乖計, 棄市. 樓船將軍亦坐兵至洌口,28) 當待左將軍, 擅先縦, 失亡多, 當誅, 贖為庶人.

좌장군은 불려 와서 공을 다투어 서로 질투하고 계책을 어긋나게 했다는 죄를 받아 기시(棄市)의 형벌을 받았다. 누선장군 역시 군사가 열구(洌口)에 이르렀을 때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했으나 자신이 멋대로 먼저 공격하다가 군사를 많이 잃어 죽어야 마땅했지만, 돈으로 죄를 용서받고 대신 평민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115. 조선열전 [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 (사기: 열전, 2013.5.1)

이내용 같네요 ㅋㅋㅋ

그런데 아무리봐도 고조선의 수도를 함락하고,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장군에게
단지 공을 질투하여 계책에 어긋나게 했다고 기시형이란 극형을 내리는게 앞뒤가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무려 고조선의 수도를 5만7천이라는 대군으로 1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공략하여
마침내 함락에 성공한 그 장군에게 말입니다
없습니다 14-07-13 15:18
   
인터넷에 조선열전 해석이 다 나와있는데 몇구절만 떼오는건 좀 그렇죠.
http://history-backup.tistory.com/entry/마천이-지은-사기史記-조선열전朝鮮列傳-전문-번역
ㅁㅁㅁ은 사마천이 입니다.
Windrider 14-07-13 15:19
   
치우와 황제의 싸움도 이상하죠. 황제가 이겼다고 하는데도 늘 두려워했고 심지어 전쟁과 병기의신으로 숭배받았죠. 전쟁에 지고도 이겼다고 정신승리함. 짱개=베충이
진실게임 14-07-17 19:32
   
근데, 치우도 황제에게 이기고
한사군 역사도 실제로는 조선한테 패했다면...


그 뒤의 역사는 어캐 설명할 거요?

우리가 다 이기고 땅도 안 빼앗기고...

우리는 왜 중국 땅에 안 살고 한반도에 사나요?
     
NordicBerry 14-07-18 08:08
   
음 ㅋㅋㅋㅋ 뜬금없네요
아마 본문제목 때문에 한사군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오해하신듯 합니다
본문과 댓글의 주요내용은 한사군 위치에 대한 것입니다

위만조선은 한에 멸망하지만,
그 멸망의 주원인이 고조선 내부의 분열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는듯하여 보충합니다

<사기 조선사열전> 중 이 부분을 보시면
위만조선이 내분으로 몰락하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左將軍已並両軍, 即急撃朝鮮. 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19)相與謀曰:「始欲降樓船, 樓船今執, 獨左將軍並將, 戦益急, 恐不能與, (戦)王又不肯降.」陰、唊、路人皆亡降漢. 路人道死. 元封三年夏,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険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己又反, 複攻吏. 左將軍使右渠子長降、20)相路人之子最21)告諭其民, 誅成巳, 以故遂定朝鮮, 為四郡.22) 封參為澅清侯,23) 陰為荻苴侯,24) 唊為平州侯,25) 長[降]為幾侯.26) 最以父死頗有功, 為溫陽侯.27)

좌장군은 이미 두 군대를 병합해 즉시 급히 조선을 공격했다. 조선의 재상 노인(路人)과 재상 한음(韓陰), 이계(尼谿)의 재상 삼(參)과 장군 왕협(王唊)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에 누선에 투항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붙잡혀 있고, 홀로 좌장군이 두 군대를 병합해 거느리고 있어 전세가 더욱 급하게 되었다. 아마 그와 더불어 싸울 수는 없을 것이나, 우리의 왕도 또한 항복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 했다. 한음, 왕협, 노인은 다 도망해 한나라에 항복했다. 노인은 도망하는 도중에 죽었다. 원봉 3년 여름에, 이계의 재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 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했다. 그러나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옛 우거의 대신(大臣) 성기(成己)가 또 반란을 일으켜 다시 관리들을 공격했다.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재상 노인의 아들 최(最)를 시켜 그 백성들을 타일러 성사를 죽이게 했다. 그런 까닭에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四郡)을 설치했다. 삼을 획청후(澅淸侯)에 봉했고, 한음을 적저후(狄苴侯)에 봉했고, 왕협을 평주후(平州侯)에 봉했으며, 장항을 기후(幾侯)에 봉했다. 최는 아비가 (항복하려고 오는 도중에) 죽은 공으로 인해서 온양후(溫陽侯)에 봉해졌다]


위 내용을 요약하면,

1.고조선의 재상 노인, 한음과 이계의 재상 삼, 그리고 장군 왕협 등은 오랜 전쟁에도
우거왕이 무제에 항복하지 않을 거라 여기고 한나라에 투항을 모의합니다

2. 결국 투항을 결심한 노인, 한음, 왕협은  모두 무제에 투항하고,
이계의 재상 삼은 이 과정에서 고조선의 우거왕을 피살합니다

3. 죽은 우거왕을 대신하여
위만조선의 대신이던 성기가 계속하여 왕검성에서 한나라에 대항하나

4. 성기도 우거의 아들 장항과 노인의 아들 최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위만조선은 그렇게 평정됩니다

5. 그리고 우거왕과 성사를 죽인 최와 한음, 삼 등의 매국노들은 한의 제후로 봉해집니다
(반면, 한의 장수들은 극형에 처해집니다)

즉, 위만조선은 한의 공격에도 1년 여를 버티었으나, 내부 갈등으로 분열하고 곧 멸망합니다
 
 
Total 2,14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981 [기타] 간도는 우리땅인가? (7) 투기꾼 07-21 4839
1980 [기타] 중국이 만약에 위구르역사를 중국사로 가르치면 테… (2) 대은하제국 07-20 2299
1979 [기타] 왜 한반도에 사냐하면요 (5) 덤벨스윙 07-20 2969
1978 [기타] 간도, 대마도 우리땅인가? (50) 바토 07-19 5873
1977 [기타] 이거 무슨 영상인가요? (1) 대은하제국 07-18 1855
1976 [기타] 환단고기대해서 말인데요 (12) 대은하제국 07-18 2697
1975 [기타] 우리는 왜 한반도에 살아요? (24) 진실게임 07-17 3665
1974 [기타] 과연 기자조선 위만조선은 존재했을까요? (10) 대은하제국 07-17 2261
1973 [기타] 활의 민족 (17) 설표 07-17 5327
1972 [기타] 북위는 어떤 나라였나요? (5) 쇼킹너구리 07-15 3186
1971 [기타] 타임머신을 타고 청나라 황제한테 이런말을 하며 어… (6) 대은하제국 07-14 2730
1970 [기타] 日 "아베, 야스쿠니 안 갈 것"...중국에 전달 (5) 블루하와이 07-14 2545
1969 [기타] 이렇게 생각합니다. (2) 꼬마러브 07-13 1859
1968 [기타] 이게 맞는건가요? (5) 뭐꼬이떡밥 07-13 1330
1967 [기타] 중국 사료에 보이는 한사군 존재에 대한 의문점 (22) NordicBerry 07-13 3860
1966 [기타] 이게 사실인가요? (5) 대은하제국 07-13 1607
1965 [기타] 우리 민족에 대한 나의 이해 (1) 덤벨스윙 07-13 1338
1964 [기타] 우리는 정말 단군의 자손일까요? (7) 대은하제국 07-13 2387
1963 [기타] 한사군 이야기... (9) 옥토29 07-12 2040
1962 [기타] [만화]대첩 호랭이해 07-12 1546
1961 [기타] 우리나라 철기시대와 국정교과서 관련해서 (5) 엔타 07-11 3837
1960 [기타] 낙랑국? 낙랑군? (7) 뭐꼬이떡밥 07-10 1985
1959 [기타] 할말을 잃었습니다.. (22) 바토 07-10 2592
1958 [기타] 한반도 철기문화(국정교과서) (8) 바토 07-10 3992
1957 [기타] 고구려광개토태왕 정복루트 (1) 전쟁망치 07-10 2072
1956 [기타] 한반도의 자동차 대중화는 언제인가요? (4) 바토 07-10 1281
1955 [기타] 낙랑군 위치는 어디인가? (2) 바토 07-10 1924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