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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6-30 12:17
[기타] 사대주의와 오리엔탈리즘
 글쓴이 : 덤벨스윙
조회 : 3,129  

우리나라가 중국에 대해 사대주의를 갖게 된 것이 조선때부터였죠.
그런데 오늘 문득 그렇게 될만한 여건이 이미 신라의 삼국통일때부터 갖춰진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조선때나 고구려때를 보자면 계속 중국과 갈등관계였죠.
만주에 주세력이 있을때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에 발해가 북방을 차지하긴했지만 뒤에 어찌된건지 흩어져버리고 
고려,조선 등으로 맥을 이어온건 역시 신라가 되어버렸죠.
그런면에서 전통이랄까 정신? 기풍?? 뭐라 표현해야될지 모르겠는데
그런 북방지역에서 전승되던 문화적인 맥이 단절된것같습니다.
중국과도 주로 해로로 이어지면서 멀어진감이 있구요.

우리 민족의 주세력이 남하하게 된것이 중국과 멀어지게하였고 그것이 중국에 대한 묘한 환상을 불러일으킨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 그렇잖습니까? 그리스라던가 고대시대만해도 별로 그런게 없었는데 비잔틴이 떡하니 출구를 막아버리고 흑해나 스페인을 통해서 조금씩 들어오던 중동문물을 접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이 시작된거잖습니까?

유교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중요 학문이 중국을 통해 온건 사실이죠. 그런데 그런 중국이 멀어지니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것같습니다.
비슷한 상황은 유럽도 마찬가지같구요. 기독교,과학등 중요 학문은 중동에서 건너온 것들이죠. 그런데 그런 중동을 직접 접할 기회가 상실되니 더 간절하게 상상한 것같습니다.

유럽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환상이 정작 유럽에는 없고 중동에 기인하고
한국의 요순시절에 대한 환상이 정작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 기인하는건 또한 묘한 일치점이구요.

이런저런 여러가지 일치점이 보면 실질적인 대국과 소국의 역학관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필요이상으로 중국을 (감정적으로 나마)사대하게 된것은 오리엔탈리즘과 같이
 비합리적인 감정에 가까워 보이고 
그 원인은 북방영토를 잃어버리면서 중국과 멀어지게 된 것이 환상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생각에 대해서 다른분들의 의견이 궁금하군요.

추신1.
그런면에서 보면 별 엄밀한 근거도 없이 정황만 갖고 상상에 가까운 추측을 해보자면
고대 중국문헌에서 동방에 대해 군자나라,문명국 이런 이미지들을 갖고 있었던것은 동방에서 중국측으로 문명의 소스가 전해진건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봅니다.
그리스의 문명이 중동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듯
고조선 이전 해동의 문물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걸지도 모르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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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사미 14-06-30 13:20
   
전체적으로 님의 의견은 편견과 착각이 가득한 역사인식이라 답변드리기 황당하군요.

먼저 사대주의는 조선시대에 생긴 사상이 아니고 고구려조차도 취해야 했던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외교관례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주세력은 만주가 아닙니다. 고구려는 압록강 이남이 주세력권입니다. 사대주의는 원래 민족주의와 공존할수 없는 문화권적 개념에서 태동한 것입니다. 지금의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착각이 생깁니다.

북방지역에서 전승되던 우리의 민족적 맥... 그런거 없습니다. 우리의 혈통적 뿌리는 삼한을 모태로 하는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많은 타민족이 섞이지만요.

중국과의 외교과 해로로 막혀요? 해로로 "막힌다"라니 부적절하네요. 한성을 기준으로 중국과의 무역은 해로가 더 빠릅니다. 해로로 막혀서 중국에 대한 묘한 환상이 생겨요? 그런 환상없습니다. 굳이 중국을 숭상했다면 유교나 불교같은 종교, 문화, 철학적 니드였겠지요. 그외 조선이 중국앞에서 얌전했던건 한마디로 조선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비잔틴이 막아서 스페인을 통해서 들어온 문물탓에 오리엔탈리즘이 생겨요? 뭘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오리엔탈리즘은 동방을 바라보던 유럽 문명의 시각이지 사대주의와 비교할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환상이 정작 유럽에는 없고 중동에 기인하고
한국의 요순시절에 대한 환상이 정작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 기인하는건 또한 묘한 일치점이구요."
그런 일치점 없습니다. 그리스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환상은 로마시대 부터 기인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일고의 여지가 없는 님의 생각이라 답변은 패스합니다.

역사는 근거를 통한 추정을 해야지 망상이나 희망사항이 되면 판타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같은 잠꼬대 말이죠.
     
굿잡스 14-06-30 13:36
   
그리고 고구려의 주세력은 만주가 아닙니다. 고구려는 압록강 이남이 주세력권입니다>??

근데 이건 뭔 소리죠?ㅋ 엄연히 5세기(427년) 장수태왕 시절에 현 북한 평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압록강 넘어 길림성 집안시 일대의 국내성이 400여년 고구려의 수도였습니다만.

(그 일대 고구려의 대표적 묘제인 적석총 양식만 해도 1만2천여개가 있는 상황이고)

그리고 앞선 고조선의 초기 위치도 요서 일대 어쩌고 이야기하는 마당에 만주가 우리의 주

세력권이 아니면 어디인가요?? (부여에서 나온 부여성의 위치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아십니까??)



북방지역에서 전승되던 우리의 민족적 맥... 그런거 없습니다. 우리의 혈통적 뿌리는 삼한을 모태로 하는것이 타당합니다.>?? ㅋㅋ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짱개 동북공정식 역사관이군요 ㅋ


조선 이후 대한제국 오늘날 대한의 대한이 무슨 남부의 삼한을 이야기 하는줄

아심???(그래서 대자를 적어 놓았다고 보십니까?? 어이없는.)

엄연히 고조선 말기 열국시대의 위만조선으로 정권이 교체될때 남부로 고조선 준왕이

내려오면서 남부지역이 촉진되긴 했지만 무슨 짱개식 삼한이 우리 뿌리 이런 허접소리는

울나라 중,고딩 국사만 공부해도 안나올 소리 아님? ㅋ
          
도밍구 14-06-30 15:33
   
굿잡스님 댓글처럼 삼한의 '한'이 기원한 곳은 그 '한'인대 대한민국의 '한'은 그 '한'이 아니라 삼한 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굿잡스 14-06-30 20:23
   
저 사람글의 문맥을 보면 삼한이란 소위 말하는 열국시대에 남부일대의 마한,진한,

변한을 의미하지만(뭐 이것도 앞선 고조선의 계승국들 중 하나였고)

대한제국이나 오늘날 이 국호를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대한은

남부일대의 삼한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만약 조선이 이런 식의 삼한을 의미했다면

기본적으로 조선 팔도의 2분의 1은 의미를 두지않고 날려버리고 역사계승을 부르

짖었다는 것인데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소리죠.


이때의 삼한이란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강역과 역사성 그리고 그 앞선 선대의

고조선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의미의 삼한이고 그래서 대한 즉 큰 삼한의 의미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건 금석문이나, 사료상에서도 삼한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 강역과 역사성을 함께 이야기함을 여러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고구려 유민인 '고현 묘지명' 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

 "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이다. ....(중략)... 할아버지는... 아버지는... 모두 삼한(三韓)의 귀족으로 누대에 걸쳐 현달하였고"

고구려인 역시도 삼한인으로 표현하고 있죠. 이외에



삼국사기 권 제 28 백제본기 의자왕편

百濟本紀第六.<義慈王>.

 

[원문]: ○十一年, 遣使入<唐>朝貢. 使還, <高宗>降璽書, 諭王曰: "海東三國, 開基日久,  

列疆界,

地實犬牙.

近代已來, 遂構嫌隙, 戰爭交起, 略無寧歲. 遂令<三韓>之氓,

命懸刀 俎 , 築戈肆憤, 朝夕相仍.

朕代天理物, 載深矜憫. 去歲, <高句麗>·<新羅>等使, 來入朝, 朕命釋玆 怨, 更敦款睦.

<新羅>使<金法敏>奏言: '<高句麗>·<百濟>, 脣齒相依,

竟擧干戈, 侵逼交至, 大城重鎭,  爲<百濟>所倂, 疆宇日蹙, 威力 謝, 乞詔<百濟>,

令歸所侵之城.

11년,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사신이 돌아올 때 고종이 조서를 보내 왕에게 타일러 말했다.

"해동의 세 나라는 개국의 역사가 오래되고 국토가 나란히 붙어 있으니, 국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이다.

근대 이래로 마침내 사이가 벌어져 전쟁이 계속 일어나니 거의 편안한 해가 없었다.

이에 따라 삼한 백성들은 목숨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상황이 되었으며,

무기를 쌓아 놓고 분노하는 일이 아침 저녁으로 이어졌다.

나는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입장이니 이를 매우 가엾게 여기는 바이다.

지난해에 고구려와 신라의 사신들이 함께 와서 입조하였을 때,

나는 이와 같은 원한을 풀고 다시 화목하게 지내기를 명하였었다.

신라 사신 김 법민이 말하기를 '고구려와 백제는 긴밀히 의지하면서 군사를 일으켜 번갈아 우리를 침략하니,

우리의 큰 성과 중요한 진은 모두 백제에게 빼앗겨서, 국토는 날로 줄어들고 나라의 위엄조차 사라져 갑니다.

원컨대 백제에 조칙을 내려 빼앗아 간 성을 돌려 주게 하소서.

 

일본서기 권 25  天萬豊日天皇 孝德天皇

日本書紀 卷二五

 

[원문]: 大化四年(六四八)二月壬子朔◆二月壬子朔。於 三韓〈三韓、謂高麗,百濟,新羅〉遣學問僧。

[해석]: 大化 4년(648) 2월 壬子 초하루  三韓[삼한은 고(구)려·백제·신라 를 이른다]에 學問僧을 보냈다. 

이 해  新羅가 사신을 보내 調를 바쳤다.

 

금석비문중 (통일 신라시대)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   

 

[원문]:         

  皇龍寺 刹柱 本紀」※

侍讀 右軍大監兼省公 臣 朴居勿 奉敎撰」

詳夫 皇龍寺九層塔者」

善德大王代之所建也 昔有善宗郞眞」

骨貴人也 少好殺生放鷹摯雉雉出淚」

而泣感此發心請出家入道法號慈藏」

大王卽位七年 大唐貞觀十二年我國」

仁平五年 戊戌歲隨我使神通入於西」

國王之十二年 癸卯歲欲歸本」

國頂辭南山圓香禪師禪師謂曰吾以」

觀心觀公之國皇龍寺建九層窣堵波」

海東諸國渾降汝國 慈藏持語而還以」

聞 乃命 監君 伊干龍樹大匠 [百]濟阿」

[非]等率小匠二百人造斯塔焉」

(鐫字僧聰惠)」

其十四年歲次乙巳始構建四月▨▨」

立刹柱明年乃畢功 鐵盤已上 高[七][步]」

已下高卅步三尺 果合三韓以爲▨▨」

君臣安樂至今賴之」

 

[해석]:

황룡사 구층탑은 선덕대왕 때에 세운 것이다. 전에 선종랑(善宗郞)이라는 진골 귀인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 살생을 좋아하여 매를 놓아 꿩을 잡았는데, 그 꿩이 눈물을 흘리며 울자 이에 감동하여 마음을 일으켜 출가하여

도에 들어갈 것을 청하고 법호를 자장(慈藏)이라 하였다.

선덕대왕이 즉위한 지 7년째 되는 당나라 정관(貞觀) 12년 우리나라 인평(仁平) 5년 무술년(638)에

우리나라 사신 신통(神通)을 따라 당나라에 들어갔다.

선덕왕 12년 계묘년(643)에 신라에 돌아오고자 하여 종남산(終南山)의 원향선사(圓香禪師)에게 머리 조아려 사직하니

선사가 “내가 관심(觀心)으로 그대의 나라를 보매, 황룡사에 9층의 탑을 세우면 해동(海東)의 여러 나라가 모두 그대의 나라에 항복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자장이 이 말을 듣고 (신라에) 돌아와 나라에 알렸다.

이에 (왕은) 이간(伊干) 용수(龍樹)를 감군(監君)으로 하여 대장(大匠)인 백제의 아비(阿非) 등과 소장(小匠) 이백여인을 데리고

이 탑을 만들도록 하였다. 선덕왕 14년 을사년(645)에 처음 건립하기 시작하여 4월……에 찰주(刹柱)를 세우고 이듬해에 모두 마치었다.

(탑의) 철반(鐵盤) 이상은 높이가 7보이고 그 이하는 높이가 30보 3자이다. 과연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군신이 안락한 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에 힘입은 것이다.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月光寺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

[원문]:

曉慈忍禪師致書云月光寺者神僧道證所刱也昔我太宗大王痛黔黎之塗▨▨▨海之▨▨止戈三韓之年垂衣一統之日被」

▨▨▨之▨永除▨▨之災別封此山表元勲也曾授錄於金剛又傳名於仙記淸冷泉澗靉靆煙霞廣孕珠靈備存

▨傳師其居焉師如響應聲振衣卽▨▨▨▨夕夢前神侍衛」

 

[해석]:

자인선사가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월광사(月光寺) 신승(神僧) 도증(道證)이 세운 곳으로

과거에 우리 태종대왕(太宗大王)(무열왕(武烈王)을 말함)께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해(四海)가 괴로워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 삼한(三韓)에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통일을 달성하신 때에

▨▨▨ (부처?)의 ▨을 입어 ▨▨의 재앙을 영원히 없앴다고 하여 특별히 이 산을 표창하여 으뜸되는 공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도밍구 14-06-30 14:53
   
아래 링크에 고구려와 서토의 연대 비교표가 있습니다.
왼쪽이 서토, 오른쪽이 고구려 입니다.
개명사미님의 사대의 정의를 기준으로 하였을때
고구려가 사대했다는 곳을 왼쪽에서 골라 주실 수 있으신지요.

http://blog.daum.net/firechariot/6640569
     
덤벨스윙 14-06-30 15:54
   
또한 역사라는 것은 실험과학이 아니기에 이미 벌어진 사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설명을 덧붙여보고 가능 개연성 있는 설명을 채택하는 것이 그 방법론입니다.
실험이 불가능하기때문에 함부로 과학이란 말이 못붙는겁니다.
따라서 그저 다른 시각을 제시해보는 정성적인 글에 엄밀한 잣대를 붙여서 본래 받아야할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는것이 부당해 보이는군요.
제가 쓴 글이 그렇게 엄밀하다면 제가 미쳤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겠습니까?
다만 보편적으로 확인이 덜되고 상상으로 살을 붙이는 것이 왜곡을 일으키는 현상이 있으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대주의를 좀더 보편적인 문화적 시각으로 해석해서 그 생겨난 연유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다른 시각을 제시해본겁니다.
     
덤벨스윙 14-06-30 16:19
   
하나하나 반박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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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대주의는 조선시대에 생긴 사상이 아니고 고구려조차도 취해야 했던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외교관례입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주세력은 만주가 아닙니다. 고구려는 압록강 이남이 주세력권입니다. 사대주의는 원래 민족주의와 공존할수 없는 문화권적 개념에서 태동한 것입니다. 지금의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착각이 생깁니다.
>>>어디가 권력중심이었는가와 한반도 전체에서 보는것과 혼동하시는군요. 반도내에 세력이 고착된 것과 대륙에 한다리 걸친것은 분명 다르지요. 대륙에 영토를 갖고 있던때가 고조선,고구려이고 그때는 중국과 국경을 접했다는겁니다.

북방지역에서 전승되던 우리의 민족적 맥... 그런거 없습니다. 우리의 혈통적 뿌리는 삼한을 모태로 하는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많은 타민족이 섞이지만요.
>>제가 한 말을 반복하면서 반대되는 주장이라고 하시니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군요.
북방지역의 맥이 끊겼으니 신라쪽 문화가 강세죠.아니 당신 말은 고구려가 있던 시대에 고구려에도 고구려의 맥은 없었다는겁니까? 제정신인가??
된장은 콩으로 만든다고 하니까 "된장은 콩으로 만들기때문에 당신은 틀렸어요"라고 하는꼴이니 난독증있으세요??

중국과의 외교과 해로로 막혀요? 해로로 "막힌다"라니 부적절하네요. 한성을 기준으로 중국과의 무역은 해로가 더 빠릅니다. 해로로 막혀서 중국에 대한 묘한 환상이 생겨요? 그런 환상없습니다. 굳이 중국을 숭상했다면 유교나 불교같은 종교, 문화, 철학적 니드였겠지요. 그외 조선이 중국앞에서 얌전했던건 한마디로 조선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해로를 통하는건 상인이나 관리등 특수한 계층입니다. 일반 서민의 교류는 제한될수 밖에 없습니다. 옆동네에 중국인이 사는 것과 바다건너 다른나라라는 것은 너무 명백히 다르군요.
빠른것과 용이 것을 혼동하지마세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가 자가용보다 더 빠르지만 자기짐을 챙긴다던지 가족이동을 챙기기 쉽다던지 여러가지면에서 자가용이 더 용이합니다.
또한 막혔다는걸 역사적 의미로 썼건만 절대적 의미로 왜곡해서 그 왜곡된 개념을 공격하시는데세계사 들어보면 보통 중세에 들어 비잔틴이 들어서기때문에 이슬람문명의 유입이 막혔다고 배웁니다.그런데 그런다고 막히나요? 그렇다면 그리스학문의 역수입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교수님께 물어보니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막힌다고 완전히 막히는 것이 아니다. 흑해를 통해서 북부로 유입되기도하고 스페인을 거쳐서 서적이 유입되기도한다 문화란 완전히 막을 수 있는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막혔다고 한다고 그걸 완전 막혔다고 해석하시다니 역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결여되어있으시군요.

비잔틴이 막아서 스페인을 통해서 들어온 문물탓에 오리엔탈리즘이 생겨요? 뭘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오리엔탈리즘은 동방을 바라보던 유럽 문명의 시각이지 사대주의와 비교할 것은 아닙니다.
>>"오리엔탈리즘이 접촉이 제한되어 상상하던 것이 실제를 왜곡시켜서 생겨난것같다. 사대주의도 그와같이 접촉이 제한되어 실제를 왜곡시킨감이 있다"라는 것이 제 주장의 골자입니다. 즉 왜 오리엔탈리즘이 생겨났는가를 말하는데 당신은 오리엔탈리즘이 무엇인지 설명을 하고는 그것이 제 주장과 다르다고 하니 뭐라해야할지 모르겠군요. 헛다리 짚지말고 제 주장을 두고 말을 하세요. 거짓허수아비의 오류 모릅니까?
오리엔탈리즘이 동방을 바라보던 유럽문명의 시각이라면
사대주의는 중국을 바라보던 조선의 시각입니다.

"유럽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환상이 정작 유럽에는 없고 중동에 기인하고
한국의 요순시절에 대한 환상이 정작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 기인하는건 또한 묘한 일치점이구요."
그런 일치점 없습니다. 그리스의 아르카디아에 대한 환상은 로마시대 부터 기인합니다.
>>언제부터 기인한 것이냐와 언제 개념이 확장했느냐는 별개의 것입니다. 요순시절은 중국에서나 나돌던말이지 한국과 상관없습니다. 조선시대때 들어오고 성리학이 흥하면서 요순시절에 대한 환상이 확장된겁니다. 로마시대 아르카디아에 대한 환상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확장한 것은 서유럽에서입니다. 자신들의 문명의 근원을 그리스로 생각하면서 향수와 더불어 확장한 것이죠.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근원을 아리아인이라고하면서 향수를 가진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북방에서 온 기마민족이라고하면서 바이칼등지에 대해서 막연한 향수를 갖고 있는것과 마찬가지죠. 아르카디아는 향수와 더불어 확장되었습니다.
     
투기꾼 14-06-30 18:03
   
"먼저 사대주의는 조선시대에 생긴 사상이 아니고 고구려조차도 취해야 했던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외교관례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설교를 하고 싶어지는게

사대주의 =/= 조공관계가 아닙니다만.

사대주의는 조선중기의 몇몇 성리학자들이 대륙에 가졌던 일종의 친근감을 뜻하는 말이고, 조공관게는 그 당시의 국제관계를 정의하는 기본 틀입니다. 조공을 했다고 해서 사대주의라는건 아닙니다만. 예를 들어서, 송이 요한테 조공을 한건 요에 대한 모화관념이 싹터서 인가요?

"역사는 근거를 통한 추정을 해야지 망상이나 희망사항이 되면 판타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이 말을 님한테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군요.
     
나와나 14-06-30 22:05
   
조선이 얌전했던 이유가 조선이 약해서다??
님은 조선 전성기 군사력이 얼마나 되었고 휘하의 복속된 여진족 세력과 함께 얼마나 명에 위협이 됬는 지 알아보시고 나서 오셔야 할 듯 하네요
     
Gretchen 14-07-01 11:32
   
"한성을 기준으로 중국과의 무역은 해로가 더 빠릅니다."
---------
한성이라고 표현한것만 봐도 어디 사람인지 대충 짐작이 가네요...
굿잡스 14-06-30 13:51
   
삼국시대 고구려는 서토문명보다는 도리어 초원길을 따라 유라시아 문명등

북방지역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흉노제국의 대선우격으

로 6대 태조대왕시기에는 이미 대국에 오르고 5세기에는 실질적 북방지역에서 왕중의 왕인

태왕으로 스스로의 천하관으로 동북아에서 군림한 성세를 보였던 나라이고.

이후 고려시대로 오면서 점차 과거제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중앙집권화가 촉진되었고

이런 지방 신진사대부들이 이후 조선의 건국 주도세력이 되면서 과거제가 고착화되고

출세가 하나의 덕목이고 효마냥 자리잡다보니 과거제의 필수 과목들이 서토에서 나오는 사

서나 경전들이 위주가 되어 점차 쭝뽕스러운 면이 심화되기도 한게 사실임. 그래도 이이나 이황처럼

조선만의 유교를 정립하면서 소화해 낸 측면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서토의 유학과

조선의 유교는 내용을 파고 들면 성격이 다릅니다.) 이후 명청교체기로 가면서 명이

망하고 조선내에서는 도리어 세계에서 유일한 유교문명국으로서 조선만을 가장 높게 보았죠.(완전

쭝뿡스러운 건 아니였음. 그기에 특히나 조선 초기 훈구파들은 상당히

실리적이였고 유교학자라도 고수전쟁이나 만주일대에

대한 영토 지리 인식이 상당히 강하게 이어져 왔기에 이미 초기부터 조선은 고려시대 윤관이 17만

대군을 이끌고 두만강 700리 넘어 공험진에 대한 역사적 지리 영역에 대해 명에게 당당히 관철 시켰고

그기에 고려시대 고려왕이 심양왕을 겸하면서 이후 조선 건국자인 이성계가 요동정벌의 주도 세력이였기에

8참로의 병영기지를 만들어 두어 이후 서간도 격으로 인식되는 봉성 이남이 조선의 내지격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든 주전파들의 재차 요동정벌론도 우리가 알듯

마냥 쭝뽕스러운 유학자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음)
굿잡스 14-06-30 14:05
   
고대 중국문헌에서 동방에 대해 군자나라,문명국 이런 이미지들을 갖고 있었던것은 동방에서 중국측으로 문명의 소스가 전해진건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봅니다>

이건 아직까지는 체계적 정립은 되지 않았지만 마냥 무시할 부분은 아닙니다. 엄연히 서토에서는

동이족 문명에 대한 지대한 영향력을 이야기 하고 있고 서토 최초의 왕조로 보는 상나라 역시 황하문명의

화한족 세력이 아니라 동북방에서 내려온 이민족 선진 정복 세력으로 이들의 갑골 풍습이나 점치는 방식 및

제례나 매장풍습이고 우리의 고조선이나 부여등과의 유사성이 마냥 무시될 부분은 아니라는 점도 기

인합니다.(만주와 남북한 일대에서 특히나 유행하는 것들임)

그기에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 본기를 보면 진시황이 불사를 위해 우사 즉 산둥의 도사를 찾아가는데

이 우사의 말이 이 술법이 발해만 일대에서 흘러 왔다는 기록들이 나옵니다. 이당시와 유사한 연대의

산해경등이고 보면 발해만 일대 조선의 대한 명확한 명칭과 위치 그리고 음양오행등을 상징하는 봉황이나

우리에 대한 여러 기록들도 함께 확인되고 있어 마냥 무시할 부분은 아니라고 보이군요.(즉 서토내에서

불교보다 더 기복적이고 민간인에게 가장 널리 펴진 도교의 뿌리도 이 발해만 일대 우리 고조선일대의

신선 사상에서 흘러 들어온 문화일 가능성도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때문에 신라 최치원의 낙랑비

서문에 일찍히 우리나라에 유,불,선을 아우러는 현묘지도에 대한 기록도 나오고 있고.)

그리고 불교의 뿌리는 서역 즉 인도죠 ㅋ.(서토 입장에서도 역시나 수입한 종교임 ㅋ

신라의 경우는 아예 남산이 과거 부처가 나온 발원지로 신국이였던 신라의 통치자는

부처와 동격의 인물로 까지 확대됩니다. 물론 고려의 왕건 역시도 후삼국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뚫고 안정시킨 미륵불의 화신 같은 존재로 인식을 고양시켰고)
     
덤벨스윙 14-06-30 15:46
   
이 부분에 대해서 저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종교학 강의를 들어보면 불교용어인 사문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동북아시아 선(仙)에 대해서도 설명하더군요.
사문,슈라마나,샤먼,선 전부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입니다. 궁극적 진리를 탐색하기위해서 수양을 할 목적으로 산 혹은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이죠.
선도라는 것도 그러한 수행자 집단에서 생겨난 것이랍니다.
인도에서도 많이 그러했지만 대다수의 수행자들의 결과물들은 서적으로 남겨지지 않고 사장됩니다. 우리 선도에 그런 일이 벌어진것같구요.
사실 세계사적으로 볼때 샤먼의 수행성과가 문자로 남겨지는 경우가 오히려 극히 드물어보입니다. 기껏해야 석가모니,모세, 노자, 그리고 몇몇 인도의 마이너 종교들이겠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고 분명하게 알기도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희미한 흔적을 통해서 한국의 선도를 짚어보는 것은 고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정일치사회였던 그때였고 선도는 그런 종교의 큰 부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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