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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6-19 06:53
[기타] 1800년전후해서 왕조국가+근대화성공사례????
 글쓴이 : 시간여행
조회 : 4,635  

원래는 조선의 근대화 한계에 대해서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조선같은 경우는 프랑스혁명처럼 나라자체가 확 뒤집어져야 자본주의 산업화 민주주의 이런게

먹히고 선진국급으로 클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는지라~ 조선은 프랑스처럼 자본자계급이

성장해서 프랑서혁명에 큰영향을 준 그룹이 만들어 질수가 없었는데 그이유가 사농공상이나 유교

사대주의 이런 정신적 철학적유산 때문이라 이런 겁니다.....

장사치라 하여 천대했고 어느정도 커도 양반아래 권력가들의 수탈대상일뿐...

문화 정치적으로 나서고 자기주장을 펼수가 없었읍니다..조선후기에 돈으로 양반첩을 사서

쓸데없이 양반만 늘어났으며 ...거대자본이 형성되지 않으니 자본주의나 산업혁명은 언감생신..

영정조이후 부국강병 하려해도 몇년 가뭄들면 수십만명의 아사자가 생기는 상황에서

해양무역이나 그런 해외랑 교류해서 경제나 부의 축척도 없었고... 겨우 자급자족 경제 상태였고

그나마 왜와 청나라 중계무역으로 꽤 챙기다가 두나라간 직교역으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받고

조선이 중세이후 부국강병이 되는길도 바늘귀 통과하는것처럼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고

그럼 질문으로 들어가서...

1800-1900년대경 조선정도 나라가 왕조와 신분제도 그런걸 유지하면서도 근대화 성공하고

중진국이상으로 진입한 나라가 있을까요....자력으로 커서 식민지배같은거 안받고요..일단 일본제외

그리고 근대화성공의 기준이...자국을 지킬 20-30만의 근대식군대 ...외국함선에 대항할 해군도

있어야 하고 경,중공업도 어느정도 수준에 오르고 도시인프라도 잘정비되고...정치도

인권문제 거론안될 정도로 안정되고....

이런나라들를로 모델삼아 조선근대화 성공가능성이 타진될수도 있을것 같네요....

일단 아시아쪽으로 베트남 싱가포르 대만 홍콩 인도 ....다 기준미달 ..유럽이나 아메리카등에서

이런 나라 찾을수 있을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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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06-19 09:44
   
조선같은 경우는 프랑스혁명처럼 나라자체가 확 뒤집어져야 자본주의 산업화 민주주의 이런게

먹히고 선진국급으로 클가능성이 있었다고 보는지라~
>>>??  에구..

님이 그리 아래에서 변론하던 잽은 뭔 프랑스 대혁명같은 게 있었남요?? 아니 우리 동학혁명 같은 밑으로

부터의 대규모 사회 개혁요구운동이라도 역사상 제대로 한번이라도 있었나요?? ㅋ

아래부터 신분제 어쩌고로 자꾸 조선의 한계 어쩌고 계속해서 말하시는데

<도대체 대한제국의 광무개혁등이고 이전부터 신분제 철폐에 대한

끊임없는 개혁 요구와 시행들에 대해 한줄이라도 제대로 공부는 하시고 이런 글 적습니까??

대한제국이 무슨 잽 강점기 이후에 나온 잽이 지어준 국호임??>

이건 뭔..(지금도 왜왕제에 울나라 신라시대에 있을 법한  향소부곡마냥 천민부락 마들들이 전국에 존재하

는 나라보고는 퍽 신분제 어쩌고 뭐 어쩌고 한계는 말안하시는 ㅋ)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했다고 바로 프랑스의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제가 철폐되었던가요???

그기에 잽처럼 바로 옆에서 식민 강점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있어 정치적 혼란기에

실제 프랑스내까지 침투해서 어쩌고 했던가요??

프랑스고 영국이고 지금의 잽도 후쿠시마 사태같은 지들 국내 내부적 혼란기에 당시처럼 열강시기면

이미 대한민국에 쳐 먹히고 착취경제로 돌아섰을 것임. 그럼 퍽이나 잽의 경제고 ~~ 정치고 사회상이

잘 돌아갈것 같습니까??
굿잡스 14-06-19 09:47
   
그리고 무슨 조선은 백성을 그리 수탈 박해 쳐하고 500여년을 어떻게 버텼데요??

잽은 지들 백성들 착취와 수탈이 조선보다 얼마나 더 가혹한지나 역사는 알고 어쩌고 하심?
굿잡스 14-06-19 10:00
   
영정조이후 부국강병 하려해도 몇년 가뭄들면 수십만명의 아사자가 생기는 상황에서

해양무역이나 그런 해외랑 교류해서 경제나 부의 축척도 없었고... 겨우 자급자족 경제 상태였고

그나마 왜와 청나라 중계무역으로 꽤 챙기다가 두나라간 직교역으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받고

조선이 중세이후 부국강병이 되는길도 바늘귀 통과하는것처럼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고


>??? 무슨 서구는 가뭄들고 대규모 농작물 피해 입어도 근대시기조차도 퍽~ 잘먹고 살았나

봅니다?? ㅋ(근대화의 선두 영국의 영광의 빅토리아 어쩌고 할때 대다수 자국민들 어떤 생활했는지나

함 보시길)

글구  농업혁명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나온 거죠??(화학비료부터 기계화 농법과 선진 유통망이고)

오늘날 세계의 곡창지대를 메이저 회사들이 장악하고 적절한

수요와 공급을 통해서 제대 제대 충당해주는 마냥 20세기 이전에도 이게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였나

봄? 조선만 까게요??  (에도시대 백성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제대로 못먹고 온갖 전염병과 밀집 가옥에

수시로 대화재에 시달렸는지나 좀 공부해 보시길 바람 에휴. 에도시기가 고대 야요이나 나라 헤이안시대

보다 성장점이 최저시기임 잽빠돌이들나 극우들이 찬란한 에도시대의 실상이 이런건

아십니까?)



그리고 뭔 잽이고 퍽 세계를 누비면서 엄청난 무역량을 보였는줄 대단히 착각하십니다 ㅋㅋ

몽골이 무슨 태풍으로 열도 정벌 실패한 이유를 보고도 모르심? 무슨 잽의 함선이 조선보다 튼튼하더이까?

제대로된 조선술도 항해술도 없는 왜구들이 언제 퍽 세계를 누비면서 무역을 했답니까?(어디서 잽뽕들이

구라치는 동남아 어쩌고 ㅋㅋ)  기본적으로 아시아권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은 어디임??

20세기 조차도 잽은 1차대전때 독일이 본국에서 쳐맞고 있는 틈을 타서 영국과 동맹 어쩌고 한다리

걸쳐 승전국마냥 행사해서 청이고 이곳 소비시장을 지들 입맛에 따라 이권을 확대하면서 수출이

급격히 늘고 공업화에 탄력을 받은 건 아십니까?(괜히 대항해시대의 선두 주자인 영국이고

미국조차 극동에서 러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자기가 직접적 이득을 챙기지 안고 부득불

잽을 앞세워 자본, 군수 지원을 한 줄 아심?)
굿잡스 14-06-19 10:21
   
글구 님이 참 모르시는데 한가지 덧붙이면 대한제국군도 이미 중앙군 6000명에 지방군 2만명을 보유하

며 당시 러시아의 베르당나 마우저등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음(잽의 경기관총은 1차대전 이

후 1922년에 11년식 경기관총이 최초 등장했음. 이것도 실전에서는 잦은 고장투성)

그리고 이런 대한제국의 군대는 연대급에서 사단급, 군단급으로 계속해서 확장을 시도하려는

상황이였지만 다들 알듯 이를 좌시할 잽이 아니였으니 대한제국의 무기고를 급습하고 강제 해산을

당했던 것임.(한마디로 대한제국이 잽처럼 미국의 강제개항 이후 미 국내 문제나 유럽이 혼란기로

서구 열강의 직접적 간섭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대한제국에도 최소 10여년의 시간만

잽의 집요한 방해 없이 주어졌다면 자체 군사적 부분에서도 상당한 군동원력을 갖춘

만만찮은 신식군대를 보유했을 나라임)
     
꽃들의희망 14-06-19 12:30
   
대한제국 1899년 6월 22일 원수부 관제 제정
1900년 3월 원수부 관제 개정 황제 통수권 강화
1900년 6월 육군 헌병대 설치
1900년 9월 군부관제 개정 - 중앙군으로 시위군 친위대, 지방군 - 지방대, 진위군
중앙군은 황실호위 전담 / 지방군은 국방보다 지방치안 담당
지방대를 진위대로 통합하여 전국 진위대를 6개 연대로 편성, 6월에 친러 정부에 저항하는
활빈당, 영학당의 활동강화로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에 총 4000명의 진위대 설치
7월에 진위대 총 병력수가 1만 7000명으로 늘림.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1902년 절반으로 병력 삭감
1903년 8월 상병편제 발표 전국 보부상 8000여명을 모집, 8개 대대로 편성
지방군 삭감부분을 대체하려 함

대한제국의 군제 개편의 특징은 중앙군과 지방군의 모든 군대를 원수부의 직접 지휘 아래
편입하여 광무황제가 직접 지위하는 군국 전제군제 체제를 강화했다는 것
하지만 군사를 황제권 강화와 지방군을 단순히 지방치안 유지,경찰업무에 투입시킨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음.
          
굿잡스 14-06-19 14:59
   
음.. 역사 기록 관련은 좀 소스를 링크 해서 올려주시면 좋겠군요.(저도 대략적 설명을

위해 적어 놓았지만 대한제국 병력수도 정확히는 모르는 걸로 압니다만)

그리고 <기본 잽도 무슨 병력동원이 오늘날 자위대같은 직업군인들이 아닙니다.

1873년에 징병령을 실시하면서 만 20세 이상의 남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고

초기 반발도 있었지만 1889년에 이르면 어느 정도 정착되어 국민군으로 잽 군대의

상당수가 이 기반임.(실제 오늘날 우리 징병제 역시도 대다수 육군의 실질적

인건비나 기타 보급관련 규모는 그렇게 큰 금액을 차지 않고 있음)>

 윗글의 요지를 다시 이해하셨으면 하군요. 요는 대한제국도 근거리에서 1876년에 운요

호 사건을 계기로 한 강화도 조약 이후 잽의 본격적 조선의 침탈 과정과 실질적 군이

주둔을 노골화하면서 그에 따라 대한제국이 (1897년 10월부터 1910년 8월 22일까지 존

속)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기 잽은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에 직간접 간섭과 방해

공작을 노골화했고 주변 친잽매국파들을 포섭하고 있으면서 이런 군대해산까지도 정치적

으로 손쉽게 관여하는등 우리입장에서는 상당히 촉박한 여건이였다는 점임.


 이에 비해 잽은 미 페리 제독이 이끈 단 4척의 흑선에 의해 가나가와 조약서(1854)이

에도 막부 후반기부터 실시되고 그 가운데 미국이 남북전쟁의 내전으로 먼거리와 잽의

간섭을 노골화 할 수 없던 틈을 타서 서구에 근대무기를 열심히 수입하고 있었음.

그렇다고 무슨 잽이 당시 선진 공업기반을 바탕으로 공업제품을 통해서 자본을 축적

한 상황도 전혀~ 아니였고 에도시대부터 칼차고 싸움질 하다 할리 없는 사무라이들이

소작농까지 탈탈 털던 잽 정부의 농업 잉여생산물을 바탕으로 한 재원이란 말이죠.

(한마디로 잽 정부는 돈은 좀 가지고 있어도 대다수 백성들은 상당힌 열악한 환경이였음)

그런가운데 국민 징병제 실시도 우리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시간속에서 점차 정착되는

등의 여건이 존재했던 반면에 우리는 이미 잽이나 서구열강이 대한제국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정치에 직간접적 방해를 받고 있던 시기였음을 인식했으면 하군요.
               
꽃들의희망 14-06-19 15:14
   
대한제국군의 병력수는 기록에 남아 있어요

대한제국 병력수도 정확히는 모르는 걸로 압니다만
-----------------------------------------------------------------------------------------------
병력수도 제대로 모르는데 대한제국이 강한지 약한지 말하는게 모순되죠?
하지만 대한제국의 병력규모는 분명히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지적하는 것은 사단이나 군단급으로 더 늘리려는 시도는 없었다.
연대급 군대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해마다 병력수는 줄었다.
군대라고 하는 하지만 국경방위이나 외세 침략에 대항하는 영토방위 성격의 군대는 아니였다.
는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은 올리지 않아요
책, 논문을 보내 줄수는 없네요
참고 문헌은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 개화사상과 개화운도의 지성사
일본외교문서
개화파와 개화사상연구
한국정치외교사학회 갑신정변연구 별책5 대한제국 군제개편
국방부 군사5편
민족운동총서 의병들의 항쟁
한말근대법령자료집

유일하게 링크 걸어줄 것은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뿐이네요
                    
굿잡스 14-06-19 15:33
   
아네 님이 말 꺼내셨으니 이참에 직접 원문 올려 주시죠. ㅋ(저도 즐겨

보는 곳인데)

대한제국도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셥여년은 지속되었는데 시기별로

어떻게 나와 있는지 님 덕분에 공부좀 하죠.^^
                         
굿잡스 14-06-19 21:20
   
원문이 안올라 오네요 ㅋ

연대급 군대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해마다 병력수는 줄었다.
군대라고 하는 하지만 국경방위이나 외세 침략에 대항하는 영토방위 성격의 군대는 아니였다.
는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

팩트는 정확히 합시다.

대한제국은 1900년에 이르면 중앙군의 시위대, 지방군의 진위대로

이원적 체계가 완성됨.  이에 따라 지방에 설치되었던 포대를 정비하고 확대

및 포군을 증설하는 작업에도 착수하면서 영국등에도 각종 포들을 설치하고

보호포수라는 포군조직도 강화함. 그러나 이러한 고종의 계획은  1904년을 기

점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왜 급격히 꺾였는가?

러일전쟁이 후 <1905년에 들어 잽의 재정고문관이 취임

하게 된단 말이죠 뭔소리인줄 아시겠습니까? >

당연히 잽은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우리의 국방 예산을 점차 줄여 나

가고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시키는 명분도 이런 캐소리

쳐하면서 나온건 기본으로 알지 못합니까???

(역사라는게 왜 어떻게 이런 기본 의문과 흐름은 보고 말해야지 단순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제대로 군대를 증설할 여력이 없었다???)

제가 도리어 가정 하나를 세우죠.  어자피 저 본문의 주제는

조선 나아가 대한제국이 군이든 나름의 근대화 역량이 있었느냐의 문제이

고 잽역시도 에도시대부터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번을 현으로 더욱

옥좨는 세금 부과를 통해 국가 재정을 농업 잉여생산물을 통해 확충

서구의 각종 근대 무기 도입에 열을 가했듯 최소 이런 강제 해산등 잽의

노골적 방해만 없었다면 아래에서도 지적한 대한제국의 더욱 정밀

호구 조사를 통해 거의 3배 이상으로 그동안 감추어진 인구수에 따른

더욱 늘어난 세수 부과와 그동안의 근대화 과정을 통한 기업등

재정 세수 확보 그리고 잽처럼 징병제를 통한 저렴한 국민군까지

그과정에서 나름의 시행착오나 문제점도 도출되겠지만

병력수를 늘려 나갈 것은 결코 과장이나 현실성이 마냥 낮다고 보이지

않군요.(물론  우리 대한제국이 바로 공업화로 본격적 진입을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조선의 농업 경제 기반이나 농법이고 나름

먹고 살만한 부분에서는 인정되는 부분이기에 더욱 그럴 것임.)

전 이만.
     
꽃들의희망 14-06-19 12:39
   
그리고 이런 대한제국의 군대는 연대급에서 사단급, 군단급으로 계속해서 확장을 시도하려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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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사료에 대한제국의 군대가 연대급을 넘어 사단급 군단급으로
계속 확장하려 했다는 시도가 기록되어 있나요?
황성신문, 대한제국 원수부 개편안, 한일외교문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어디를 어떤 자료와 사료를 찾아봐도 대한제국이 사단 군단급으로 확대하려 했다는
있나요?
단순히 병력만 봐도 진위대의 총 병력수는 1900년에 1만 7000명이 최대점인데..도저히 이해가 안되네요
전국의 진위대를 다 합쳐야 1만 7천이란 소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군단..아니 사단급으로 만듭니까?

대한제국전 훈련대가 1/2대대 4중대로 연대급이였고 그 후 대한제국도 2개정도의 대대를
묶어 연대급으로 구색은 갖췄지만 해산 되었고
대한제국 이후는 예산 문제로 병력유지가 힘들었으며
계속해서 병력을 줄였습니다.
사단 / 군단에 대한, 아니 그런 시도에 대한 기록이 없지 않습니까?
          
굿잡스 14-06-19 15:08
   
대한제국의 군병력 정점은 러일 전쟁 이후 잽의 노골화로 점차 위축되는 것으로 압니다.

좀더 구체적 대한제국군의 편제와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http://blog.naver.com/make3000?Redirect=Log&logNo=7771249

그리고 대한제국이 본격적 인구 조사를 한 시기는 1905년입니다. 당연히 이를

제대로 해야 조세 정책부터 군이고 기타 여러 부분에 대한 좀더 정확한 운용이 되겠죠

근데 이때도 정밀하지는 않아서 570만이였던 인구가 1910에는 재실시에 1300여만으로

다시금 보이지 않는 인구가 나타났고 학계에서는 이것보다 더 많은 이미 1700만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즉 대한제국이 잽의 노골적 간섭 방해 공작엾이 자체에서

좀더 근대화할 시간만 주어졌다면 단순히 이런 인구조사만으로 국가 세수를 늘리는

부분은 이전보다 더욱 크게 높아졌을 것임. 그기에 이미 대한제국 초기 5개의 기업이

짧은 기간임에도 후기에 가서 222개로 40배로 폭증하는 등 고종의 근대화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 그리고 성장의 열매들이 하나씩 보였다는 것이죠.


좀더 자세한 대한제국 인구 내용은 아래 참조.


<1905년, 대한 제국 내무부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조선의 인구는
 
5,793,976명이었다. 그러나 대한 제국의 인구 조사는 부정확했다. 1905년에
 
체결된 제2차 한일 협약에 의해 그 이후부터 조선의 인구 조사는 일본이 실
 
행하였다. 일본 통치가 시작된 1910년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의 인구는
 
13,128,780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이것도 상당수가 누락된 숫자로 보고 있
 
다. 학계에서는 1910년 무렵에는 1,742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3]
 
일본 통치가 끝나기 전의 해(1944년)에는 25,120,174명이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202&docId=141990049&qb=7J287KCc7Iuc64yAIOyduOq1rOyhsOyCrA==&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RSBGuc5Y7u8ssb5%2BEWCsssssssh-390479&sid=UVj4CHJvLC8AAGJ@cfo
               
꽃들의희망 14-06-19 15:17
   
보아하지 기어코 대한제국 군제에 대한 환상을 놓치 않을 생각인 모양인데
그만 하겠습니다.

그 의미를 평가하는 것과
당신같이 부풀려 과대 포장하는 것은 다른 겁니다.
올바른 평가는 필요하지만
판타지에는 동의할 생각 추어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걸어놓은 링크를 봐도
연대급에서 그치지
사단 군단 급으로 발전되지 않아요
알겠습니까?

어떠한 자료 사료 책에도 없는 내용이며
사단 군단급으로 발전했을꺼라는 것은 당신의 희망사항이고 당신의 소설입니다.
그랬었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바램을 마치 사실처럼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굿잡스 14-06-19 15:32
   
보아하지 기어코 대한제국 군제에 대한 환상을 놓치 않을 생각인 모양인데
그만 하겠습니다. >??

님이야 말로 문맥을 이해 못하심??

지금 아래에서부터 계속해서 왜곡 지적하는게 마치 잽은 대한제국보다 모든

부분에서 초기부터 제대로된 공업화로 압도적 근대화의 위치에 있었던 것

마냥 역사 왜곡을 하는 것임. 이와 마찬가지로 왜 내가 대한제국의 기간까지

열심히 올려 줬던가요?? 이해 안되십니까??

대한제국의 해산시기에도 잽에 대한 일부의 저향을 봤을때 마냥 대한제국군이

허접했다고 단언할 수 있으심? 그리고 대한제국군이 친잽매국파등 정치적

그리고 기타 국내 이미 주둔하면서 기습전에 의해 그리 쉽게 와해되지 않고

잽처럼 내부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자체 군대을 완비하고 징병제까지

실시가능했다면 초기부터 잽의 군대가 함부로 주둔해서

잽이 뭐 그리 호락호락하게 대한제국을 삼기고 마냥 대한제국도 군편제가

저 수준에서 마냥 그쳤을 것 마냥 단언하실수 있습니까?

그나라의 국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력화 시켜야 하는게 기본

상식적으로 군대입니다. 하물며 이런 잽 강점기를 앞둔 상황에서 마냥

대한제국의 군대를 특정 결과물만으로 재단하는 건 전혀 아니올시다군요.
          
굿잡스 14-06-20 09:40
   
덧붙이자면 님은 무슨 사단급 언급을 해야 확장 어쩌고 생각하시나 보시는데

님이 링크한 조선왕조 실록이고 원문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연대급 즉 혼성여단급

규모의 편제가 완료되고 난 다음에 1903년 3월 15일 기존 우리나라에 이어져 왔던

조선의 5위(五衛) 제도와 서양방식을 차용한 징병제에 대한 군제개혁안에 대해 협력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이게 뭘 말하는 것임. 기존에서 점차 국민군을 포함해서 당연히

숫자를 증가시켜 연대급에서 사단 이후 군단급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염두해

두었다는 기록일 것임)

다만 이 과정에서 징병제의 필요성을 느끼나 이게 1907년 잽이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이런 징병제로의 전환이라는 구실과 재정 어쩌고 내세워 고종의 직접적 무력을

상실시켜 강제 병합하려는 수술의 의도를 고종도 이전부터 눈치 까고

간파하고 있었기에 이미 삼국시대부터 경당등 백성들이 전시에도 빠르게 동원되어 무

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개병제같은

문무겸비의 서민 교육 군사기관이 있었던 것처럼 이후 이어져 오든 조선에서 좀더

새롭게 발전된 절충형은 고심하고는 있었지만 잽의 의도와 지독한 방해 공작으로

단기간 내에 적극적 추진이 어려웠던 부분을 인식했으면 하군요.
     
꽃들의희망 14-06-19 12:58
   
당시 러시아의 베르당나 마우저등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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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

러시아제 베르당 소총
러시아제 모신나강 1928 모델 소총
독일제 마우저 1871 모델 소총
미국제 레밍턴 롤링 블렉 소총
영국제 엔필드 스나이더 소총
독일제 마우저 1896모델 권총
일제 아리사카 38식 소총


미국 개틀링 기관포
러시아제 맥심 기관총
독일제 크룹 75mm 속사포
영국제 암스트롱 포

맞습니다.
1907년 8월 1일 강제해산 당하기 직전의 대한제국군의 군사력은 병력자체가 소규모여서 약했지만
보유한 무기만큼은 결코 허접하지 않았습니다.
열악한 재정의 25~40%에 고종의 내탕금까지 지원받은 대한제국은 병력이 적었어도
장비는 열강에 버금갔습니다.
위에 대강의 무기 목록만 보더라도 보유 무기는 그리 쉽게 볼만한 수준이 아니였습니다.
문제는 구성이 잡다했다는 점입니다.
소총만 해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심지어 일본제까지....좋다는 소총은 다 모았지만
사실 무기 체제가 통일되지 못하니 탄약보급에서 부품의 호환까지, 통일되고 체계적인
관리 유지가 안될뿐더러 무기가 통일되지 못하니 전술전략의 군사 훈련에까지 통일되지 못하고
중구난방이였습니다.

좋은 무기가 있었다는 것과
그 무기가 있다고 해서 그 군대가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난잡한 무기체계를 대한제국 군대의 장점으로 미화 왜곡 하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적당히 합시다.

대한제국이 무리를 했어라도 나름의 군제 개편을 통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노력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근거도 없는 사단 군단 급, 대한제국의 예산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턱없이 부풀리거나 군사체계상으로 불합리한 무기체계를 장점 미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굿잡스 14-06-19 15:14
   
대한제국의 무기가 나름 난잡했던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슨 잽의 근대 군사력이나 편제는 마냥 딱딱 초기부터 세련되었나요???

어느 국가나 시작은 어느 정도 과도기와 문제들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게 봐야 합니다.

윗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잽도 미페리 제독에게 몇방 두들겨 맞고 상당한 시간동안

대다수 자국 농민들을 거의 착취에 가깝게 쥐어짜면서 농산잉여재원을 바탕으로 서양의

무기를 수입하는데 열을 올렸고 20세 이상 징병제의 정착도 10여년이 훨씬 지나서야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돌아갸기 시작했음. 하물며 근거리에서 이미 대한제국이 들어서기 전부터

잽의 군대가 조선내에 들어와서 정치적으로 분탕질에 잽매국파들을 공작 포섭해서 대한

제국의 조정을 휘둘고 있던 양상에서 단기간 내에 대한제국이 저정도 까지 했다는 건

<위 본문에서 마치 대한제국은 자체 역량이 없어 도저히 못할거라는 식으로 보는 것과는

정반대로 봐야 하지 않나 싶군요.>
               
꽃들의희망 14-06-19 15:22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짧은 기간의 제국
모든 것이 부족했던 제국
모든 것을 짜내고 짜내서 만들었던 제국의 군대는
자주성의 발로라는 역사적 의미까지는 내가 받아들일수 있는 범위이지만
이외에 약했던 제국군에 대한 환상과 과장부터는 당신의 몫입니다.
판타지 소설을 설파를 계속 하겠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인터넷으로 역사를 좀 배우지 마세요.
제발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를 인터넷에서 뒤지고 다니지 말고
인터넷으로 역사를 배울 생각 좀 하지 마세요.
무슨 짓인지...
                    
굿잡스 14-06-19 15:36
   
저기요 저기에 과장이 어디있던가요??

도리어 식민 사학에 뒤틀려

마치 잽은 수백년 중상주의로 대항해 시대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서

겨우 근대 공업화에도 수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면서 커온 영국도

못한 부분을 분명히 그렇게

조선과 다르지 않게 잽도 여전히 기본 농업잉여생산물을 바탕으로 서양

무기에 열을 올렸던 기형적 관치 주도의 군대육성만을 보고

마치 모든 사회 정치 문화 사상에서 잽이 19세기에 이미 조선보다 압도적 우

위마냥 왜곡 캐소리하는 게 팩트를 무시한 과장과 왜곡임을 이야기 한다는 논

지이지 님의 자의적 도출은 삼가하시길 바람.

(잽의 본격적 공업화는 바로 이런 러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미영의

자본 기술 지원과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고 대대적 인적 물적 자원 수탈을

통하고 1차대전의 호황기를 틈타 발전했다는 게 주 핵심인데 이게 이해

안되심?? 그렇다고 이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물질적 부분의 발전상에 비해

정치, 문화, 사회 사상적으로 여전히 일방 통행으로 민의가 제대

로 소통되지도 자리 잡지도 못한 채 인명경시등 도리어 군국주의로 인해 전근

대적 사회상이 더욱 노골화 폭주 되었던게 패망직전까지 잽의 실체 아님?1923

년 잽에 의해 민간인까지 가담해서 자행된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한인대학살

만봐도 퍽이나 잽사회가 당시 근대적 발전한 사회와 퍽 높은

소양을 가진 앞선 국민이였군요???

군 주도의 중범죄도 학을 떼는 상황인데 민간인까지 대대적으로

가세에서 이런 대학살을 했던게 역사적으로 당시 나치를 만든 독일에서 조차

도 민간인이 가담해서 자행된 적이 있기나 하던가요???  )
뭐꼬이떡밥 14-06-19 11:31
   
일본은 해당 안되죠. 왕이 권력을 가진게 아니고 장식품이였으니까요
     
하얀지옥 14-06-19 11:57
   
?? 일왕이 권력을 잡고 시작한게 메이지유신이고 2차대전 패망때까지 일왕은 절대권력자였습니다. 물론 메이저유신전에는 막부가 정권을 잡고 있었지만, 일본의 근대화는 일왕의 권력하에서 이루어진겁니다.
          
뭐꼬이떡밥 14-06-19 12:14
   
그 전까지는 장식품이였습니다. 일단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였단 말이죠.
일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왜 무너졌습니까?
왕이 없어서요? 왕이 무능해서요?
천만해요 기독교 카톨릭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질서체계를 무너트려서 왕조가 망해간거죠.
그에 반하면 일본의 개항으로 무너진게 왕조가 아니라 정치를 담당하던 막부가 무너졌죠.
그러니 정상적인 왕조로 보면 안되죠
냐옵니 14-06-19 12:09
   
대한제국군대는 오합지졸입니다. 역사가 말해줘요.
일본은 제식무기와 제식전술 포병을 미국인에게 확실하게 배웠고요. 그래서 같은 무기라도 일본군대가 확실하게 청나라보다 강했고.
한국은 그냥 청나라 일본이 하니 땡빚을 들여 근대무기를 들여왔으나 개념없이 서양상인에게 주문하지 않고 그냥 사서 수십가지의 총으로 단일화되지 않아 총은 있으나 탄약이 없는 상태.. 거기다 전술은 그냥 조선군전술 그대로 사용했고요.
그러다가 제국선포후 대한제국의 군대는 일본공사의 건의로 일본국과 비슷한체제로 만들었으나. 그때가 이미 190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 이미 일본은 야욕을 드러내던때라 이미 늦었었음.
     
굿잡스 14-06-21 11:09
   
비록 짧은 기간에 이룩한 성과지만 신식무기와 훈련을 받은 대한제국군과

앞선 구식 조선군은 구분해서 이해했으면 하군요. 러일전쟁이후 대한제국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1907년 비록 대한제국군이 잽의 정치적 술수에 의해 강제해산 되지만 일부의 저항을

보면 잽과의 결전에서 만만찮았습니다.(결코 오합지졸이 아니였다는 말임) 그리고 이들 중

에서 나중에 본격적 독립 의병 활동이 나오는 기반이 되었고.


그리고 대한제국군의 신식무기도입이나 실탄구입등을 내내 지독히 방해공작을 쳐했던게

바로 잽이였음.
냐옵니 14-06-19 12:12
   
숫자로 판단하지 말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왜 동학농민운동도 자국군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일본군을 동원했는지 나오죠.
 같은 숫자의 일본군은 동학군을 학살할정도의 레벨이지만
같은 숫자의 대한제국군은 동학군에게도 패할정도의 레벨입니다.
이 차이를 그냥 같은 신식총들었다고 같은 레벨로 말하면 안돼죠
     
꽃들의희망 14-06-19 13:07
   
역사를 도대체 어디서 배웠나요?
동학운동 후 훨씬 뒤에 대한제국 선포됐는데.....기본적인 것도 안되어 있으니..
豊田大中 14-06-19 12:51
   
무능한 고종, 민비, 양반들 모가지 따고 경복궁 밀어버리지않는이상 근대화는 불가능
     
꽃들의희망 14-06-19 13:09
   
아직도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덜떨어진 인간님들이 있다는 것에 경악스럽습니다.
          
豊田大中 14-06-19 13:43
   
무능한걸 무능하다고 하지 뭐라그러나???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왕비판하면 식민사관?ㅋㅋㅋ
               
꽃들의희망 14-06-19 13:53
   
정말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무능했다면
대한 제국이 선포 됐을꺼라 생각합니까?
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고종이 뛰어난 군주나 황제는 아니였어요
그런데 무능한 군주였나..라고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우리 역사에서 고종이 투명인간이였나 말이죠.
즉위 1863년~1872년 친정 시작 때까지는 아버지 대원군에 의해 그 존재감이 파묻혀버리고,
1872년~1895년까지는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반목,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동학운동,
을미사변 등으로 거의 언급되질 않아요
1895년~1907년 강제 퇴위까지는 독립협회만 유별나게 강조될 뿐 고종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1990년대 재평가 이전, 고종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곳은 크게 세 번 있어요
첫째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둘째는 대한제국 선포와 광무개혁,
셋째는 헤이그 특사 사건

이게 끝이예요. 그런데 이마저도 고종이 중심이 되지 않고 사건의 자체가 주인공이 되거나
고종의 주변인이 더 많이 부각되고 있어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러한 평가들이 일관되고 집요하게 한일합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짜놓은 규격화된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고
일제 시대는 식민사학자들
해방후에는 그 밑에서 배운  우리 사학자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꽃들의희망 14-06-19 14:00
   
당신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봐요
일제의 온갖 방해를 무릎쓰고 정말 한심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무능한 왕이 제국을 만들 수 있었겠요?
무능한 사람이 자국의 힘든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노력을 하겠냐는 말이죠?
어떻하든 심지어 없는 예산 무리를 해서라도
군대를 만들려 했겠냐 말이죠.

그리고 당신은 기본이 안됐어요
명성황후가 맘에 들지 않는다. 혹은 다른 게 평가한다 할지라도
성과 왕비라는 직책을 조합해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할지라도
조선실록에 보면 왕비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더 많고
단순히 "비"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불미스러운 사건과 결합된 경우가 많으며
고종과 순종실록은 일제가 편찬한 것이므로 다분히 조선왕조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서 민비라 하지 말라고 명성황후라고 하자라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있었으면 그렇게 불러야지
무슨 욕을 안 쳐들어 먹을꺼라고 여전히 민비라고 합니까?

물론 이것저것 다 따져봐도 난 그래도 고종은 광무황제는 무능하다..그럴수 있어요
그런데 민비는 아니란 말이지요
어디서 대도 안한 소리를 합니까?
                    
豊田大中 14-06-19 19:37
   
흥선대원군이 세도정치를 끝내고 조선을 살리려했지만
 
민비의 세도정치로 조선의 헬게이트가 열리고

구식군대한테 쌀이랑 모래랑 반반씩 섞어서 주고 ㅋㅋ

임오군란때 구식군대한테 줄쌀 찾아보니까 ㅋㅋ 민비의 세도가문 창고에 다 쌓여있었고

이걸로 청나라,일본 한데 헬프치다가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개입을 확대 ㅋㅋ

조선백성이 힘들게 살던 말던 신경하나도 안쓰고 ㅋㅋ

깨어있는 급진개혁파 숙청 ㅋㅋㅋ

자기 기득권 유지할려고 청나라한테붙었다가  러시아한데 붙었다가

결국 쪽빠리들한테 죽음 ㅋㅋ

한마디로 나라말아먹은 x년

"대원군이 10년간 쌓은 국부를 순식간에 탕진한 여자"

"중앙의 요직은 물론, 지방의 방백, 수령까지도 좋은 자리는 모두 민씨들이 차지하였다"
황현 -매천야록中

"민형식이 민씨를 등에업고 부정부패로 해먹은돈만 70만냥 국가예산의 14%"
(마리 앙투아네트는 3%정도 쳐먹음)

"각종 사치품 사들이고 굿판벌여서 국고 탕진"

"조선의 군사력,근대화에는 전혀 관심없음"

"동학진압한다고 청나라불러들이고 텐진조약에의해서 일본도 자동으로 들어옴

외국군대 불러들여서 자국 국민들 학살 20만명이상 사망"

나라말아먹고도 한일병합조약에 조선왕실유지 조약으로 왕족지위유지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매년 120만엔씩 돈받아먹으며 호의호식한 이씨왕조
(천황가 다음으로 많은금액 당시 총리연봉이 1만엔)

이러고도 식민지배당한게 일본탓? 가쓰라테프트에 서명한 미국탓?

웃기는소리 ㅋㅋ
                         
나와나 14-06-19 22:34
   
으이구..ㅋ
그래서 원하는 답이 뭡니까?
조선 탓이라는 겁니까?
조선은 못났으니 지배당하는 게 당연하다??ㅋㅋㅋㅋ
                         
나와나 14-06-19 22:36
   
그리고 애초에 조선 시대에는 근대화가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죠 ㅋ
실질적인 근대화는 대한 제국시절입니다
대한 제국 1897~190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와 개혁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었는 지 알아보시길 ㅋ
豊田大中 14-06-19 12:56
   
표트르 대제
[ Pyotr Ⅰ ]
직업
황제
재위기간
1682~1725
국적
러시아

러시아 황제(재위 1682~1725). 1697년에는 사절단과 함께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지를 순회하면서, 조선술, 포술을 배우는 한편, 각국의 풍속, 제도를 연구하고 귀국한 뒤 귀족에게 서유럽 식의 풍속 관습을 강요하였으며, 율리우스력을 채용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다. 1700년 발트 해 진출을 기도하여 북방 전쟁을 벌였고, 1711년 투르크와의 싸움에 패하였다. 그러나 1721년 뉘스타트 조약에서 발트 해 연안을 획득하여 숙원을 풀었다. 1722, 1723년 페르시아에 원정하여 카스피 해 서안을 병합하였다. 이러한 전쟁은 농민에게 군사, 운수 등 계속적으로 무거운 부담을 지워 초기에는 농민의 반란을 야기하였으므로 그는 내외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강력한 행정 조직의 확립을 목표로 절대주의 국가를 확립하였으며, 교육 문화에도 힘을 기울여 러시아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17세기의 러시아는 ‘은둔의 왕국’이었다. 서구에 비해 크게 뒤져 있었을 뿐 아니라 뒤졌다는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국교인 러시아정교는 가톨릭 또는 개신교인 서유럽의 문화적 영향을 못마땅해했고, 아직도 중세적 특권을 누리고 살던 귀족들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쩌다 외국인이 다녀가면 그가 접촉했던 사람들이 일제히 심문을 당하고, 그가 손댄 것은 부정을 탔다고 불태워 버리는 등, 19세기 말 조선의 쇄국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꽉꽉 막혀 있던 사회가 당시의 러시아 사회였다.

표트르는 이런 뿌리 깊은 사회관습에 그야말로 ‘가위를 들이대고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그는 귀족들을 만찬에 초대해 다가가서는 긴 수염을 붙잡고 가차없이 가위질을 해댔다. 땅에 엎드려 눈물로 호소해도 아랑곳없었다. 그래도 굳이 수염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수염세’를 물렸으며, 1년이 지나자 그 세액은 새로운 함대를 건설할 만한 돈이 되었다. 또한 동양식의 풍성한 옷을 없애고 서양식 양복을 입게 했으며, 역법 역시 유럽이 쓰던 것과 같게 바꾸었다. 문자도 간소화하여 쓰기 편하게 바꾸었다. 서구문물을 거부하던 교육과는 정반대로, 귀족의 경우 외국어를 익히지 못하면 귀족 신분을 박탈당하게 했다. 교회도 개혁하여 황제가 정점에 서는 위계적 조직으로 재편성했다. 이런 급진적 개혁이 저항을 가져오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표트르 만의 카리스마로, 그리고 잔인할 정도의 가혹하고 철저한 형벌 제도로 거침없이 러시아를 뜯어고쳐 갔다.

표트르 대제는 1722년에 14관등제도를 마련하여 종전에는 신라의 골품제도처럼 태생의 차이에 따라 정해지던 관료제도를 실적에 따라 정해지는 근대적 관료제도로 개편했다. 또 러시아 최초로 인구 조사를 실시하고, 기존의 토지세와 호구세 대신 인두세를 도입했다. 이 밖에도 행정, 군사,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등에서 전방위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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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비교되는 마더러시아의 클라스...
     
굿잡스 14-06-19 14:30
   
이 양반은 특정 시기로 부각하면 우리도 각 왕조별 리즈 시기 이야기해주고

러샤는 몽골원정에도 개털린 이야기 해줘야 하남요? ㅋ(뭔 뜬금없이

러샤까지 쳐들고 와서 혼자 자위질 ㅋ  정작 당신이 빠는

잽 관동군의 주력 전차들이  러샤에 쿠킹호일 종이 박스마냥 개털린 사건들

다시 상기시켜드리리)


그리고 현재 1억 5천만 되는 인구가 분단으로 그것도 5천만 되는 인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수준이 퍽 자랑임? 뭐 이것도 지하자원 뺴면 산업공업력에서는

대한민국에 제대로 따라올 수준도 안되는 나라를 가지고(아 추운땅 넓다고라? ㅋ 이걸로 또 허접소리 하실랑가?)
          
강건성세 14-06-19 17:13
   
러시아를 무시하다니.. 대단합니다. 폼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엄연히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던 나라입니다. 나치 독일을 어찌보면 러시아가 막았다고 봐도 무방할정도입니다.
단순 경제규모가지고 무시할 위치가 아닌것같습니다. 한국은...
          
豊田大中 14-06-19 18:25
   
왕조국가에서 근대화성공한 예를든건데 뭔소리?

러시아가 몽골에 털리던 뭐던간에 러시아대사관에 왕이 도망간게 조선이고

전차가 쿠킹호일이건 뭐건간에 그런놈들한테 망한나라가 조선이고

적어도 러시아는 스스로 몽골로부터 독립하고 근대화이뤄서 슈퍼파워라도됐지

조선은???
               
굿잡스 14-06-19 19:27
   
ㅋㅋ 그 조선 언제적 시절?? ㅋㅋ

러샤에 캐털린 당신이 빠는 잽 관동군 수준은 ㅋㅋ

(러샤의 위치나 쳐보고 어쩌고 하길 바람. 그리고 러샤 이야기 하지

뭔 조선까지 쳐 비교하시남요?)
                    
豊田大中 14-06-19 19:31
   
네네 킹왕짱 조선대제국 만세입니다 ㅋㅋ
                         
굿잡스 14-06-19 19:36
   
?? 하여튼 2초이도 뭐 잘되면 지들 잘난맛

못되면 남의 나라 끌고 와서 비교질 쳐하더먄 ㅋㅋ

그냥 당신은 당신 아이디처럼 저기 2초이가서 노세요.

뭐하려 되지도 않는 수준으로 망질 양산 하심 ㅋ
냐옵니 14-06-19 16:37
   
국뽕 제대로 빠네요.
그렇게 대단한 대한제국이 왜 일본에게 총질 한번 못해봤을까요?
고종은 왜 마흔이 넘도록 마누라앞에서 큰소리 한번 못내봤을까요?
     
굿잡스 14-06-19 17:02
   
ㅋㅋ 한글이나 정독 좀 하시죠 ㅋ

마냥 결과론 나열이면 잽은 핵쳐맞고 전범국이 되었고(그리 잘난 잽은 왜 핵쳐맞고 패망

했데요?ㅋ)

지금 울 대한민국 경제력이나 공업수준이고 민주주의 정치 제도고

그냥 나열 하면 됩니다.

저 본문의 주제가 잽 강점기 단순 결과론 이야기임? 에휴..
          
강건성세 14-06-19 17:15
   
핵쳐맞고 패망한 나라에 지배당한 한국은 뭐가 되는겁니까.
               
굿잡스 14-06-19 19:13
   
아네~ 왜국은 본래 우리 고조선부터 가야 백제가 지배하고

고려에 신속했죠 ㅋㅋ 조선시대에도 조선국왕을 황제 황상으로 부르고 ㅋㅋ

그렇게 수쳔년간 ㅋ(뭔 19세기에 무식한 백정 애가 제법 괜찮은 서구 무기 들고와

서 백정짓 쳐해서 35년 강점한 걸로 퍽 뻐기는 ㅋ)

조만간 다시 역전 될 것 같은데 ㅋ
                    
豊田大中 14-06-19 19:32
   
지금 근대화이야기 하고있는중인데 혼자서 고조선,삼국시대로 타임머신 ㅋㅋ
                         
굿잡스 14-06-19 19:37
   
근대화란 뜻은 제대로 알고

댓글 달고 계심??(지금까지 글 보니 퍽 기대도 않지만 ㅋ)
豊田大中 14-06-19 19:44
   
동의보감이니 의약분업이니 붕당정치를 근현대적 선진 정치 모델로 포장해서 근대화라고 딸딸이 치는건 제정신이 아니라는거죠 ㅋㅋ

어디 외국애들이랑 토론할때 그렇게 주장하지마세요 쪽팔리니까 ㅋㅋ
     
굿잡스 14-06-20 09:10
   
참 이정도면 진짜 무식한..

서구의 14세기부터 나타난 르네상스 운동은 퍽 어디 외계에서 나온 산물임?? 이미 그리스

로마 문학의 재생에서 나와 다시 종교적 신앙중심에서 본연의 인간 개성과 자유로움을

부여하자는 운동이고 이게 다시 종교개혁으로 나타나는 등 사회적 운동화 되었고

최초로 입헌군주제를 실시한 영국도 19세기에 가면 의회민주주의가 점차 꽃피기 시작하는

것도 유럽이 이전부터 어느 정도의 풍토에서 나온 다 바탕에서 나오는 것들이지 쯧.


왜국처럼 어디 외부에서 가져와서 내내 이식쳐해야 그게 무슨 선진 모델이고 발전인

것임?? 애초에 기독교도 구약성서마냥 고집하고 전근대성을 탈피하지 않고 현 교황이

과거처럼 뭔 캐소리했다면 현대에 살아 남았겠음?? 그렇다고 어디 기독교가 다른 외계에서

뚝 하고 떨어진 산물인가???

최소한 근세조선당시의 조선의 왕권를 견제한 신권 균형정치는 상당히 앞선 이상적 모델

중 하나였고 왜구처럼 일방동행길에 젖은 전근대적 지독한 봉건제에 비해서는 훨씬

앞선건 상식아님? 그리고 뭔 왜구들 기본 메이지유신 어쩌고 메이지 헌법 쳐 만들어도

지들 과거 관습이고 이어온 전통이고 보아오고 맛본게 일방통행이니 근대화 어쩌고 물질만

어느 정도 공업화를 시켜도 그때나 현대에도 정치보면 울나라도 아직 문제가 많지만

캐웃긴.(우리야 잽의 식민 강점과 해방이후 잽의 강점 이후 정치적 공백기에 이념적

대립이 더욱 격화된 강점기 후유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정치에도 구태의연한 모습이

남아 있다고는 이해 하지만 뭔 잽은 지들이 내부적으로 어쩌고 스스로 그나마 주도한

시기면서도 이정도 역량밖에 못보이고 현대까지 이어져 온것 보면 과거의 문화 사회상이

마냥 무시할게 못되는 것 아님 ㅋ)
태양소년 14-06-19 20:59
   
굿잡스 개털리네 ㅋㅋ
지입맛대로 고무줄 엿가락처럼 맞춰 얘기하다 조금 배운사람이 태클걸면 말꼬투리나 잡고 질질 늘어지는게
졸렬하다못해 안쓰럽다 ㅋㅋㅋ
태양소년 14-06-19 21:08
   
굿잡스 레퍼토리

1.역사적 지식이 많은듯 하지만 어디서 대충보고 자신만의 판타지를 결합하여 장황하게 얘기한다.
2.자신의 추종자들의 응원댓글로 더욱 고무되어 뭐가 진실이고 뭐가 자신만의 판타지인지 이미 경계가 모호해진다.
문제는 그 추종자들도 환빠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겠고 국수주의적이니 일단 편승하고 보자는 저질부류.
3.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근거로 반박하는 자에게 감정적 댓글로 응수한다.
4.안되겠다 싶으면 주제의 논점을 한참 벗어나 장황하게 글을쓴다.(예를들어 대한제국의 얘기를 하다 안되겠다 싶으면 고대사까지 올라가 장황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문제는 그것도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것.게다가 장황하게 글을 써봤자 결국 논점을 벗어난 개소리에 불과하다는것을 본인이 모른다.

ex:소스등을 요구하면서 정작 지가 들고오는 소스는 인터넷에 떠도는 개인이 별다른 지식과 근거없이 추측에 불과한 블로그 글이나 일부 매우 편향된 '재야사학'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글

ㅋㅋㅋㅋ
이딴놈을 대단한놈 취급해주는것에서 이미 가생이 역사의식은 땅바닥보다 낮다는걸 잘 보여주지
     
굿잡스 14-06-19 21:21
   
어구 네 ㅋㅋ


님이 저기에 저도 원문 자주 인용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대한제국 시기별 병력수도 함

찾아셔 올려 주시든가요? ㅋㅋ 제가 잘 모르니 님이라도 이참에 무식한 사람 퍽 가르쳐

주시든지??(말장난은 그만 쳐하시고)


그리고 여기 주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조선이 신분제 어쩌고 쳐하면서 제대로 근대화의 역량을 자체 내재하고 있었는가임.

최소 잽의 악랄한 방해 공작만 없다면 어찌 되었곘는가 아님?(토론에서

주제 파악은 좀 하고 덤비길 바람)
     
굿잡스 14-06-19 21:29
   
그리고 유동 저급 아이디로 당신처럼 말장난 쳐하면서

제대로 주제 파악도 없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냥 썰 푸는 사람은

저도 장난질 치는 건 좋아합니다 ㅋ(뭐 이런것 까지 당신 수준에 고퀼로 대응할까요? ㅋ)
시간여행 14-06-19 21:27
   
굿잡스님 전 잽을 변론한적이 없습니다..ㅋㅋ
잘한다 대단하다 찬양한적도 없구요...
종전후 잽의 군사력이 800만정도 된다고 지적한건 미국이
굳이 원폭을 쓴 이유중하나로 생각되서 언급한 것이고 .....백병전하기엔 벅찬 병력이잖아요.
근대화 한계론이 왜 잽을 찬양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우리자체의 모순을 지적한 것일뿐이고
순간의 선택과 생각의 변화가 미래에 어떤영향을 미치는가가 제 주된 관심사거든요
그리고 근대사과정에서 제가 관심있게 탐구하는 분야도 있어서 ..
저것은 어찌어찌해서 일강점기시절에 저런모습으로 나타났나?...이런 호기심류에 불과하지
좀 지나친 공격은 자제해주시길 바래요....
     
굿잡스 14-06-19 21:36
   
좀 지나친 공격은 자제해주시길 바래요> 근데 이런 신분제니 어쩌고는

아래에서 님에게 몇번으고 조선후기 우리의 신분와해 상황이나 개혁진행에서 이미 제대로

신분 철폐들이 계속해서 요구 진행되고 있었다고 몇번을 말했는데도 님은 전혀

무시하고 계속해서 다시 이런 글을 올리니 솔직히 님은 왜 토론을 하시는건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니 좀 공격적 글이 올라 왔군요.(최소 상대가 이런 저런

글을 올리면 아 이런게 진짜 역사적 사건이였던가? 진행이 되고 있던가? 그 시대

우리가 이랬는데 잽이나 세계사는 어떤 흐름과 수준이였을까? 이정도는 나름

의문과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똑같은 소리 계속해서 하는 이유가 더 궁금하군요.

이런 저런 부분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나머지 진행이 되는 거지 초기부터 무슨 계속해서

딱 막힌 부분으로 고착화 시키고 상대방이 몇번이고 지적한 부분은 모르쇠라면

님은 어떻게 느껴질것 같습니다. 아님 저는 그냥 님 글 앞으로 생까고 완전 무시할까요?

ㅋ 뭐 저도 좋습니다만)
          
시간여행 14-06-19 21:58
   
조선말 신분철폐요구는 초딩때 배우는거 아닙니까.....
대한제국 개혁시도도 다아는것이고...단지 그런것들이 찻잔속에 태풍정도로 미미햇다는
의미이고 기독교나 동학등에서 평등이나 민본등 사상적 기초가 되었고 그런스토리고
그걸 지지해줄수잇는 자본가계급이 없어서 실패햇다는 의미이고...
농민들이 정권잡을수도 없거니와 ....어떤 방법으로 산업혁명을 하거나 경제를 부흥시킬
건데요....조선에 임꺽정등이 나와서 민주주의 사회로 들어갔다고 보면 됩니까?
제글은 이미 교과서 안보세여..이런식으로 까고 무시햇읍니다만...
               
굿잡스 14-06-19 22:02
   
조선말 신분철폐요구는 초딩때 배우는거 아닙니까.....
대한제국 개혁시도도 다아는것이고...단지 그런것들이 찻잔속에 태풍정도로 미미햇다는
의미이고 기독교나 동학등에서 평등이나 민본등 사상적 기초가 되었고 그런스토리고
그걸 지지해줄수잇는 자본가계급이 없어서 실패햇다는 의미이고>??

똑같은 말만 계속해서 반복하시군요 ㅋ

그에 대한 건 윗댓글에 올려 놓았으니 다시금 보시길. 님글에는 더이상 댓글 안답니

다.(그리고 바로 위에 21세기에도 잽의 사회 저변에 뿌리 깊은

신분제 차별의 천민부라쿠에 대한 실상에 대해 올려 놓았음에도

신분제 어쩌고로 조선만 유독 어쩌고 하는 모양을 보니 솔직히 님의 성향이

느껴지군요) 전 이만.
                    
시간여행 14-06-19 22:21
   
님 맘대로 성향판단하고...
 댓글달고 말고 신경 안씁니다...
어차피 왕조상태 유지한채 근대화성공한 사례에 대한 쓸만한 댓글도 하나도 없고
봉건왕조에서 단순히 민중봉기로 민주국가 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뚜렷한 국가관이나 정치이념을 탑재한 경제적실세가 부상해야 되요...
프랑스대혁명에서 조선의 이런저런 개혁이 실패한 원인을 찾은것 뿐이고
잽에 천민부락은 왜 자꾸 언급하시나요...
근대화과정에서 폐단이나 헛점으로 인식하면 되지...
일본이 정치적으론 왜곡되고 편향적이고 그런데서 나타난 현상...
                         
굿잡스 14-06-20 09:16
   
잽에 천민부락은 왜 자꾸 언급하시나요...
근대화과정에서 폐단이나 헛점으로 인식하면 되지...
일본이 정치적으론 왜곡되고 편향적이고 그런데서 나타난 현상>??

하... 웬만하면 님글에 더이상 댓글 안달려고 했지만 그래도 앞서 달아서니

이왕하는 것 한마디만 더 남기죠.

이걸 근대화 과정의 폐단으로 보시나요??? 그럼 이런게 이전 잽에는 없다가

나타난 것입니까?? 폐단이란 뭔가 하나를 이루다 보니 뭔가 새로운

변수가 나와서 막히는 것들이 아닌가요? 도대체 소위 지들이 주도하고 어쩌고

한 나라가 왜 지들이 제대로 전근대적 사회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대에 까지

황당한 사회상이 이어져 온거죠? 이건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난 폐단이

아니라 이전 막부시대고 앞선 나라헤이안 시대부터 지독히 잡혀 있던 봉건

적 전근대적 역사의 잔재가 그만큼 뿌리깊고 그래서 사회적 관념도 전근대

성을 스스로 탈피못한채 여전히 이어져 오고있다는

생생한 반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근대화란 단순히 공업화 이런 생

산방식만을 의미하는게 아님)
여의도야왕 14-06-20 00:14
   
바로 제정 러시아이지요.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전의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이 사회 깊숙히 남아있는 후진적 지역입니다.
그에 표트르 대제가등극해서  귀족들에게  전부 수염을 유럽식으로 깍게 명령을 내렸을 때 옛날 구한말 단발령 때처럼 차라리 목을 자르겠다며 반발하자 진짜로 목을 날려버린 적도 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후진적인 농노제도 및 사회제도는 크게 손대지 않으면서 잔인한 독재 철권통치로 군대의 유럽화와 상페테르스부르크 건설에 매진합니다.
늪지였던 상페테르스부르크를 새로운 러시아의 항구이자 수도로 탈바꿈시키는데 수십만의 인부들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군비 근대화에 대한 표트르 대제의 열망을 잘 알 수 있는 일화로 조선기술을 익히려고 네델란드에 기술자들을 파견했을 때 표트르 대제가 직접 신분을 숨기고 기술자로서 직접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 유명합니다.
어쨌든 유럽식으로 군대와 장비를 정비한 후 스웨덴 및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러시아는 여전히 후진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하게 되지요.
그런데 시기가 1800년대보다는 약간 빠르네요~1700년대 초반 때니까요.
러시아의 농노제는 중세가 끝나고도 무려 19세기 말 불과 1차 세계대전 발발하기 몇십년 전까지 공식적으로 유지되었고 제정 러시아가 붕괴될 때까지도 사실상 존재했습니다.
김익유 14-06-20 14:55
   
와~ 언제 다보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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