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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6-01 05:36
[기타] 집강소의 설치지역과 동학도의 빈번한 활동지역에 대한 근거물
 글쓴이 : 닭아놀자
조회 :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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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사학회가 거짓말쟁이는 아니겟지요.

저는 그래서 처음부터 밖에선 주류편승해서 남들처럼 말하라고 그랬구요.

삼례취회 성과를얻어 동학과 일반농민이 결집하는 대오,계기가 마련되며
동학도들은 집회직후 11월부터 서울에 올라가 국왕에게 집단호소를 계획,추진함.
이과정에서 외국인을 배척할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여 외국인들이 위기감을 불러일으킴.
[아직까진 밝혀지지 않은 소문 ]

1893년 2월 9일 해를바꿔 동학공인과 ,최제우에대한  교조신원을 3일밤낮 호소함.
이후 14일부터 외국인을 배척하자는 괘서가 외국공사,외국인의 교회 집, 담 등에서 나붙기시작
 
이른바 복소,괘서사건이라고 하며 이 괘서사건에대한 견해는 여러가지임.
최근자료에선 전봉준을 필두로한 일부 전라도출신 동학교도들의 상경주도했을뿐
타지역 동학도들과 관련해서 사료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음.
여하튼 북소한인물들은 수배령이 내리고 체포됨.
이후  보은취회에서 척왜양창의 하겠다고 일어나는듯했으나
양호선무사 어윤중의 설득회유+조정 강경책으로 흐지부지되어
표면상으론 와해되어 막을내림.

-이부분까지가 1차 동학농민전쟁 전단계 투쟁으로 이해하면됨.
이시기는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결집과 ,이해관계가 확립되는시기라고 볼수있으며
그들 역사적 의의는 이렇게 평가됨.


A.전쟁의 전단계 투쟁으로서 장차 전쟁을 주도할 지도부의 형성
B.대내 대외적 무손심화에 따른 민중 동향이 폭발직전의 혁명정세에 도달
C.교조신원운동단계에서 사상과 교단이 합쳐진 조직화한 민중봉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줌.

동학과 일반민중의 결합은 황현이 오하기문에서
지적하기도했는데 고부민란단계가 아니라 그이전 1892년 11월 삼례취회 전후부터였음.

그러나 이 민중결합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도 동학농민운동은
국가에 대항하는 혁명세력으로 결집하지도 못하였으며
교주의 신원복권만 바라는 종교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음.

+동학농민전쟁과 관련하여  농민군의 이동루트 , 포교지역 , 활동루트를 지도로 표기해보면
고을별 집강소통치기와 비교했을때 드러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눈에 극명하게 보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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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아놀자 14-06-01 05:40
   
이전글에 이어서 본인은 계속 개인적 의견임을 밝힙니다.
시기별 동학농민운동,의병운동,독립운동도 중요하지만 지역적
행정구역상 분리자세를 가지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 행정구역별로 동학 지도부들의 의견에따라 컨트롤되지 않는 동학도의 숫자가 많았다고보며 , 이는 척왜양의 기지보단 민란적성격이 강했다고 보는 본인이 생각하는 이유이기도함.
     
꽃들의희망 14-06-01 08:09
   
이제보니 가르친 사람은 똑바로 가르쳤는데 글을 읽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군요.
위에 가져다 붙인 글을 읽어 보세요.

동학도의 봉기는 반봉건운동보단 최제우의 교조신원운동때문에  촉발되었으며 경국대전에 보장된 신소제도를통해 억울한사정을 헤아려달라고 한게 요지라고보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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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당신이 했던 말이예요
교조신원운동이 동학운동의 전조 혹은 예비단계로 볼 수 있다..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동학이 교조신원운동때문에 촉발되었다?
이 무슨 헛소리냐구요
이게 잘못됐다는 말이예요
동학운동이 교조신원 하려고 일으킨 난이 아니였다고 말하는 거예요
민란적 성격이 강했다? 1차 동학농민운동은 민란이예요. 봉기예요.
아니래요?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동학운동은 반드시 1차 2차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고, 왜냐면 그 성격이 다른 운동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음에도 ...

그러니까
정확하게 진단을 하자면
님은 동학운동의 본질을 몰라요
님은 동학운동의 전개과정을 몰라요
님은 동학운동과 함께 역사가 어떻게 어떻게 흘러간지 몰라요
님은 똑바로 쓰여 있는 걸 제대로 읽지를 못해요.

1차와 2차로 나눠어서 말해야 하는 동학운동을 하나로 똘똘뭉쳐서 말을 하고 있으니
동학이 왜 민중운동이였는지를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지요.
닭아놀자 14-06-01 05:47
   
포교활동,전쟁활동,집강소 설치활동등을 봤을때도  의병,독립운동가가 가장많이 배출된 경상도 북부지역의 경우 반대양상을 보이는건 역사적 사실. 보수세력의 집강소가 설치되어 동학도 때려잡은것도 사실.
즉 인구수대비 가장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한 경북북부지역 인구들은 동학도때려잡고 다녔음.
의병활동 참여한 경북북부지역 인사들존재 + 동학도 때려잡은 경북북부지역 인사들 존재
이건 우리 사학계가  재조명해야할  숨겨진 진실이라고봄
     
꽃들의희망 14-06-01 08:36
   
밑에 댓글에서 길게 쓰기 싫어서 짧게만 쓴게 이 사단을 냈군요
닭아놀자 14-06-01 05:49
   
왜놈때려잡던 경북 북부인들이 동학도를 때려잡은 이유는 왜일까?
어떻게 배워쳐먹어서 이딴식으로 말할수 있냐던 분은 이 사실에대해 어떻게 답변하실수 있을까.
     
꽃들의희망 14-06-01 08:38
   
경북 북부인이? 님이 말대로라면
경북 북부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동학도를 때려 잡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배워쳐먹어서 이딴식으로 말할 수 있냐고
다시 한번 말해야 겠군요.
닭아놀자 14-06-01 05:52
   
해주출신 안중근의사가 동학을 혐오했던것은 무슨 이유이며 ,  그의 본관이  경북북부지방 [영주]  부석사 인근의  순흥안씨인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꽃들의희망 14-06-01 08:43
   
동학운동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못하고 있으니
그 예를 찾은 것이 안중근이겠지요? 안중근 본관이 순흥(順興: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맞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북부사람들은 전부 동학도를 토벌하러 나섰다?
하는 수 없이 길게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네요
꽃들의희망 14-06-01 09:15
   
동학운동의 토벌군에 본관이 순흥,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인 안중근도 끼어 있으니
경북지역 전체에서는 독립군이 많이 배출된 경상도 북부 사람들은 전부 동학운동을 배척했다는 것이 진심이냐구요?
보수세력, 즉 집권층 기득권층 특권층은
동학운동에 반대했다는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왜왜왜~~~~~~~~~~~ㅇ ㅗ ㅐ!!!!!!!!!!!!!!!!!!!!!!!!!!
경북북부인으로 지역전체를 매도하는 건데요?
스스로가 계층간의 갈등이라고 쓰고 지역갈등으로 몰아가는데요?

독립군투사들이 가장많은 경상도지역의 경우 보수세력이 동학도를 때려잡고 다녔다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실체가 드러나기도함. 
주류에 편승해서 남의눈에 이상한 눈초리로 안보일려면 밖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됨.
하지만  실제 역사를 공부해보면 뭐 이런 병크가 다있나싶기도한게 동학농민운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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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사학회니, 교수니,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니.. 하며
님이 가지지 못한 권위를 빌려오면 님의 환상이 정당화 되는 겁니까?

동학운동을 왜 민중운동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동학혁명이라고 까지 부르는지 그 본질을 모르는
반푼이를 위해서 귀찮아서 생략한 댓글을 씁니다.

동학도가 왜 외세를 배척했냐라는 배경과 동학운동의 본질적인 문제를 적어야 겠군요
보은 취회에서 "척왜양창의"의 슬로건, 즉 "두려워 할 바의 극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하정이 상달하지 못하니 우리들의 이번 거사는 격왜양하여 진충 부국함을 주로 삼을 따름이다"라고
하는 외세 배격의 지향은 반봉건의 지향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선무사 어윤중의 장계에서
"그 무리 중에는 사족(선비 사, 양반이라는 말)으로 투입한 두령도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또 말하기를 탐묵의 횡행은 오교 이래로 부터 더욱 거리낌이 없어 뭇 사특한 자들이 제각기
날뛰어 가렴주구로서 일로 삼고 있는데, 이를 삼가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제를 가하겠다는 왕명이 있었지만
아무런 실효가 없으니 우리가 조정에 고하여 탐관오리를 척출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위의 장계를 다시 알아듣기 쉽게 풀이해준다면, 한글을 풀어서 설명해줘야하는 수준인 것 같아서
정확하고 쉽고 간단하게 써주지 않으면 또 혼자 소설을 쓸까봐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자면
보은 취회에 모인 사람들은 봉건적 수탈이 "외교" 즉, 개항이래로 더욱 꺼리낌 없어진 것으로 파악하였고
조선말기의 사회적 모순과 개항으로 인한 대외적 모순에서 빚어진 최대 피해자 최하층 농민집단이
동학도의 가장 중요한 집단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장계에는 또
"그들은 또 말하기를, 우리들의 이번 취회는 조그마한 무기도 갖지 않았으니 이는 곧 민회이다
일찌기 듣건데, 각 국에도 또한 민회가 있어 조정의 정령이 민과 나라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회의하여 대책을 강국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
어찌 우리를 비류(무기를 가지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빼앗는 무리)로 취급해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민권의식, 즉 백성들에게도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민권인식에 까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밥먹으리고 난리입니다.
그동안 혹시라도 이 글을 보면 도대체 님이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꽃들의희망 14-06-01 10:25
   
조선말기 이 시기 조선의 지배층, 특권층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상은
개화, 즉 개방과 개항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겁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등을 거치면서 외국의 선진 기술을 눈으로 몸으로 값비싼 댓가를 치뤄가며
뼈저리게 느꼈던 조선사회였습니다.
친청파던, 친일파던, 급진개화파던, 온건개화파던, 왕권강화파던, 신권강화파던 동도서기던 뭐든....
합의점을 찾기 힘든 각자의 이해집단에 따라 분열되었던 특권층 내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통일된 의견으로
공유하고 있던 개화이고 개화사상입니다.
당시 조선 특권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개화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동학도는 척왜양을 주장합니다.
개항 초기 조선정부가 통제를 하지 않자 일본상인들은 갖은 방법으로 쌀,콩등을 매점해서 일본으로 반출합니다.
자연스럽게 곡물의 비축량이 부족하게 되고, 인플레이션으로 곡물의 가격은 급등하게 되었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급증했습니다.
결국 방곡령까지 내려 곡물의 유출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조선의 농민들 사이에서는 개항때문에
자신들이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자식들이 굶어죽었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개항으로 인한 수탈만이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전세, 대동법, 결작, 삼수미, 가승미, 곡상미, 창역가미, 이가미, 창작지미, 호조작지미, 공인역가미등등
온갖 구실로 세금을 걷어 가니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쌀이 제대로 있을리가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폐정 개혁 문제가 확대되고 삼남지방에 특히 집중되었던 폐정이 전라도라는 지역성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지역의 고립, 분산성을 완전히 뛰어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매개체가 동학 조직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안중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애국지사로 추앙받습니다.
안중근의 역사적 평가에 어떠한 흠집을 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현감 출신의 자선사업가였고 아버지는 진사였던, 안중근 집안은 경제력과 명예를 함께 가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3년전에, 평안도에 양옥 한 채를 매입하고 사립학교를 두 개나 세웠습니다.
경제력을 가진 특권층인 양반가문이었다는 것은 이견이 있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학도들은 개화를 반대하고 노골적으로 척왜양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으며
폐정개혁을 넘어 국정에 참여하는 민권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반봉건적 사상은
당시 지배계층으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였습니다.

안중근 같은 훌륭한 인격자마저도 척왜양을 주장하는 동학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였습니다.
안중근은 개화파 지식인으로써 척왜양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주장이였습니다.
동학의 가치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안중근이 동학이라는 명분으로
지방관리들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는, 동학 지도부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벌어진
일탈 행위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동학운동은 반봉건운동으로써
당시 지배계층에게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사상들이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인 적폐와 폐정들로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알고 개선하자는 것과
조선사회질서를 뒤집고 혁신하자는 주장은 차원 다른 문제로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배계층 특권계층, 즉 양반들이 동학도들을 잡으러 나서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겁니다.

다시 말해
농민과 지배계층, 특권층간의 계층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적날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꽃들의희망 14-06-01 10:43
   
다시 한번 씨도 안 먹히, 헛소리를, 또 쳐다봐야 하는 것이 개 짜증나지만, 한번 봅시다.

왜놈때려잡던 경북 북부인들이 동학도를 때려잡은 이유는 왜일까?
어떻게 배워쳐먹어서 이딴식으로 말할수 있냐던 분은 이 사실에대해 어떻게 답변하실수 있을까.
해주출신 안중근의사가 동학을 혐오했던것은 무슨 이유이며 ,  그의 본관이  경북북부지방 [영주]  부석사 인근의  순흥안씨인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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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 때려잡던, 다시 말해 독립운동을 하던
경북 북부인, 쓰면서도 한심하고 짜증나는...,이 아니라 눈이 있으면 똑바로 볼 것이며
제대로 사고를 못할 지경이면 쓰지를 말지,
경북 북부인이 아니라 경북에 모여 있었던 유생들과 양반, 특권, 지배계층이였겠지요.
경북에 사는 사는 사람들 전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찾아볼 것도 없이 조선 시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추정할 수 있고, 추적할 수 있는 인물은
실록이나 그에 준하는 기록에 이름과 대략의 가계가 언급되거나, 족보가 있는 사람들...
양반, 지배계층, 특권층이 대부분이지 일반 농민 백성이였습니까?

 왜놈때려잡던 경북 북부인들이 동학도를 때려잡은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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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덜떨어진 인간님아..눈이 있으면 제대로 좀 보세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기가차네요
동학에 반감을 가지고 토벌대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눈이 좀 쳐다보세요 이 인간님아.

계층간의 갈등
농민과 지배층, 농민과 특권층간의 갈등으로 봐야지
동학이 주장하는 내용은 당시 지배계층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농민의 집단과 지배계층간의 갈등으로 봐야지
조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안중근 역시 개화사상을 지지하고 경제력을 갖춘 특권층으로써
동학운동이 재평가 받을지 몰랐던 당시 조선의 지배계층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인식을 가진 사람이
동학운동에 대한 인식을 먼저 살펴봐야지
이것이 어느 한 지역의 문제, 전라도, 경상도 북부 같은
지역적 문제로 보는 개 같은 짓을 어떻게 할 수 있냐고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을 못 알아듣습니까?

글을 쓰면 쓸수록 열받네요
만약 누군가가 님에게 전라도 경상도북부인 같은 개 씨도 안먹힐 소리로 가르치는 사람, 교수, 학회가 있으면
닥치라고 하세요
그리고 님의 대도 안한 헛소리에 이만한 댓글을 달아줬으면 난 할 일 다했습니다.
여전히 멍청한 짓을 한다고 내가 님을 끝까지 바로 잡아줘야 할 의무는 없어요.

동학운동을 왜 민중봉기라고 하는지 그 기본, 그 근본조차 머리속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
이 정도 시간과 글을 남겼으면 과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이후의 정신승리는 맘대로 하세요

ps)1.  황현의 매천야록, 오하기문등...감히 말하는데 골방에 쳐박혀 삐뚫어져 요즘의 인터넷 폐인같은 짓을 한
황현의 책들은 왠만하면 인용하지 않는 것이...
황현이라는 사람이 옳곧다는 것과 시대정신이 똑바로 박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2. 그 어디서 많이 보던 작태인데....
그러니까 책 따위는 자신이 직접 읽은 것은 없고
어디서 굴러다니는 이리저리 누군가 올려놓은 책 사진만 본 것 같고
그런 사진을 올려놓은 것 보니
공부는 커녕 어디서 똑같이 넋나간 인간이 써놓은 글 퍼다 나르는 것 뿐...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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