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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1 14:33
[일본] 일본 위키에 따르면 한반도인의 열도 진출 사실이 중국 정사에 기록이 없다구요 ?
 글쓴이 : 풍림화산투
조회 : 8,844  


혹시 사진이 짤릴 경우 위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並敬仰之、恒通使往來
 
신라 백제인이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 ( 왜를 큰 나라로 만든 신라 백제인은 ) 진기한
물건이 많았으며 그 진기한 물건을 숭배하였다. 항상 사신이 왕래했다
 
         -  北史 -
 
 
대륙의 요서지역 라마동 고분부터 출발해보지요..
 
 
061a81c865114054c3a382d29bf24d52.jpg
 
 
 
lamadong2.jpg
 
lamadong3.jpg
lamadong4.jpg
 
이것이 라마동 고분의 형태와 그 제작과정.. 최근 중국 학자들이 김해 대성동 고분을 방문.. 선비족의 유적에서 부여인의
유적으로 의견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아래 링크를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http://fmkorea.net/knowledge/40158778 <-- 여기에서 인용..
 
 
그리고 이것은 김해 대성동 고분 발굴 현장...
 
 
 
관련 유물입니다. 
 
똑같다고 헥갈리시면 안되는데 이제부터는 열도의 유물입니다..
 
 
 
 
이것은 열도 효고현 行者塚 고분에서 출토된 것..
 
 
 
이 사진은 오사까의  高井田 고분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고분의 형태와 죽은 자의 머리맡에 그릇을 놓는 형태가
라마동 고분과 같습니다. 유물은 무녕왕릉 유물과 비슷..
 
 
百濟國,本亦扶餘之別種,嘗;馬韓故地,在京師東六千二百里,處大海之北,小海之南。東北至新羅,西渡海至越州,南渡海至倭國,北渡海至高麗。其王所居有東西兩城。
 
 
구당서(舊唐書) 권199 동이열전(東夷列傳) 백제(百濟)
 
1) ○백제국(百濟國)도 본래는 부여(扶餘)의 별종(別種)이다.[註@002]
일찍이 마한(馬韓)의 옛 땅[註@003]으로서 경사(京師)[註@004]에서 동으로 6,200리 밖에 있으며, 대해(大海)의 북쪽, 소해(小海)의 남쪽에 위치한다.[註@005]
동북으로는 신라(新羅)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註@006]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국(倭國)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려(高[구,句]麗)에 이른다.
또 왕(王)이 사는 곳에는 동; 서로 두 성(城)이 있다. [註@007]
 
 
 
한반도 북부의 백제와 고구려 경계는 바다를 건너 접할 이유가 없고 바다를 건너서 고구려와 접하는 지역은 요하 지역이겠지요.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왜국을 접한다는 것도 알기 쉽습니다
 
 
글이 삭제 되면 http://blog.naver.com/ibm1082에서 읽으시기를
 
 
203.jpg
 
P.S 아래 알럽 케리어님 댓글의 질문에 약간 보완을 합니다
 
 
A 지역이 맨 처음에 있는 라마동 고분군이 위치하는 지역이고 B  는 라마동 고분과 형태가 같은 高井田 고분이 있는 오사까입니다.
이것은 구당서에서 기록한 북쪽으로 ' 바다를 건너서 ' 고구려에 접하는 지역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왜에 접하는 지역인 것입니다
같은 유적... 같은 종교관을 가진 세력이 같은 시기에 존재했다는 것은 구당서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이라 봅니다.
 
김해 대성동 고분은 부여가 아닌.. 백제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풍림화산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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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림화산투 14-05-21 14:36
   
중국 문헌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과도 일치하네요...    일본 위키.. 쓰레기 맞죠 ? ^^
독산 14-05-21 16:01
   
풍림환투님/ 위에 인용한 문장은 백제와 신라가 왜국을 대국으로 여겼다로 해석되는 문장입니다.
     
Misue 14-05-21 16:45
   
뭐라고요? 하긴 어떻게 보면 독산님이 말한대로 백제와 신라가 왜국을 대국으로 여겼다로 해석도 될수 있는 문장이긴 하군요.

근데 그건 10명의 사람중 한두명이 그렇게 알아들을수 있는 문장이고 대게 보통은
신라 백제에서 왜라는 큰나라를 만들었다. 이뜻이 더 맞겠군요.

這是一個大國 - 큰 나라로 여겼다 이런 표현도 쓸수 있겠네요.

실제로
"백제와 신라가 왜국을 대국으로 여겼다" 라고 번역하는건 말도 안되죠.
이 문장을 표현하기에는 저 표현보다 좋은 한자표현 많습니다.
     
풍림화산투 14-05-22 09:14
   
일본 사학계 그리고 강단 사학계가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만,  북사의 이연수가 쓴 그 당시의 以 ~ 爲 용법을 찾아보면 신라 백제인들이 왜를 가지고 큰 나라를 만들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문 전공자 불러와서 아래 북사의 저자 이연수가 사용한 어법 해석시키시든가. 표준어가 있던 시대도 아니고 결국 당사자의 以 爲 사용 용례에 따라 해석할 수 밖에 없지. 그것참.. 신라 백제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네

아래의 내용은 이 문장 해석에 대해서 토론했던 내용과 링크입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0478&s_no=10478&kind=search&search_table_name=history&page=1&keyfield=name&keyword=%ED%92%8D%EB%A6%BC%ED%99%94%EC%82%B02


<漢><武帝><元封>四年, 滅<朝鮮>, 置<玄도郡>, 以<高句麗>爲縣以屬之
<靈太后>以其俗嫁娶之際以靑爲上服人給靑兩匹
 或有以皮爲舟者
 婦人以羅紋白布爲帽
 以木槽中暴海水爲鹽


주류 사학계는 위의 문장을 only

고구려를 현으로 여겼다
 청색을 옷감으로 여겼다
 가죽을 배로 여겼다
 나문백포를 모자로 여겻다.
바닷물을 소금으로 여겼다

이렇게 해석하겟군요


 어떻게 보아도

고구려를 가지고 현을 만들었다
 청색으로 옷감을 만들었다
 가죽으로 배를 만들었다
 나문백포로 모자를 만들었다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가 맞는거 같은데

주류 사학계 해석이 좋다면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 이 문장을

신라 백제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 로 하시기를 그건 기호니까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신라 백제인이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가 맞습니다
설설설설설 14-05-21 17:51
   
중국 북송의 곽약허가 지은 도화견문지 국역 단행본을 찾아서 읽은 적이 있는데 이런 구절이 있죠. "왜국은 즉,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이 왜이지만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또 스스로 동쪽 끝에 있다하여 일본이라 칭했다. 지금은 고려를 신하로서 섬긴다" 라는 구절이 있죠. 그리고 그 당시 고려와 일본은 국력차이가 비교 조차도 안되는 수준이였죠. 송의 입장에서 고려는 주요 외교 대상이지만 왜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고려를 설명하면서 그냥 곁들이 것으로 족하니 왜가 고려에 조공하는건 당연하다고 봐야겠지요. 헤이안 시대 일본의 수도인 교토도 고려 중소도시 규모의 수준밖에 안되었구요. 아마 그 이전 고려시대 이전 왜국의 국력은 딱히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되네요.
설설설설설 14-05-21 17:59
   
그리고 하플로그룹 D는 아이누 계열로 생각되고 O 계열 도래인이 일본열도 서남부에 상륙해서 D 그룹을 동북방향으로 밀어낸 건 고고학적, 유전학적 근거가 명확한 과학적인 사실 이건 펙트임 일본은 우리 즉 한반도에 가까울수록 그 평균신장이 올라가죠.
햄돌 14-05-22 08:12
   
사진이 모두 엑박이네요 ㅠ
     
풍림화산투 14-05-22 09:11
   
글 맨 위에 있는 링크로 들어가시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독산 14-05-22 12:01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並敬仰之、恒通使往來
풍림화산투/신라 백제인이 왜를 큰 나라로 만들었다 ( 왜를 큰 나라로 만든 신라 백제인은 ) 진기한
물건이 많았으며 그 진기한 물건을 숭배하였다. 항상 사신이 왕래했다
 -신라 백제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네-
제가 드리는 얘기는  집착이 아닌 30년 고대사를 전공해 온 연구자로서 정해를 말한 것입니다.
위 인용 원문은 왜국전에 나오는 것이고 多珍物이란 왜국에 진귀한 물건이 많다는 것이고 특히 並敬仰之의 並은 복수(즉 신라와 백제)를 지칭하는 것이기에 왜국이 백제와 신라를 敬仰하였다고는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풍림화산투 14-05-22 19:51
   
왜국에 진귀한 물건이 많았다 라고 하면 多珍物 ( 많을 다 진귀할 진 물건 물 ) 의 주어 자리에 왜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왜는 주어자리에 있지 않고,  전치사 以의 목적어로 쓰였네요.. 초등학교 수준의 문법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만

어쨋든 독산님은 ..

 或有以皮爲舟者  이것을 혹은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가 아니라..
혹은 가죽을 배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해석하신다는거죠?

30년 고대사를 공부를 하시게 되면 이 단순한 문법도 초월하시는건지

어쨋든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ㅋ
독산 14-05-23 04:53
   
풍림화산투님/고구려를 가지고 현을 만들었다(고구려를 현으로 하였다)
 
 가죽으로 배를 만들었다(혹여나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자가 있다면)
 나문백포로 모자를 만들었다(나문백포를 〔머리에 둘러〕 모자로 삼았다.)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구유 중의 해수를 햇볕에 쪼여 소금을 만들었다)

*周公曰.,「嗚呼! 以人惡爲美德乎!」(주공이 ‘아아! 사람의 악함을 미덕으로 삼는구나’라고 하였다)《순자·요문》
‘以刑爲體, 以禮爲翼, 以知爲時, 以德爲循’(형벌을 몸으로 삼고, 예의를 날개로 삼으며, 지혜를 때로 삼으며, 덕성을 자연에 따르는 것으로 삼는다)《장자·대종사》
‘必以長安君爲質,兵乃出’(반드시 장안군을 인질로 삼아야 군대가 비로소 움직일 것이다)《전국책·조책4》
이는 모두 ‘…를 …로 삼다’ 혹은 ‘…를 …라고 생각하다’로 해석되는 古文이다.
*금문(今文)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以…爲’ (…을 …여기다)《동아 중한사전 2401쪽》

도대체가 본인이 언급하지도 않은 「或有以皮爲舟者  이것을 혹은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가 아니라..
혹은 가죽을 배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해석하신다는거죠? …」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하는 것인지?
혹여 모든 한문이 획일적으로 해석된다〔귀하의 예를 들자면, ‘以…爲…’는 무조건 ‘…을 …으로 만들다’라고 하는 식〕고 하는 자신만의 아집을 본인에게도 적용시켜 본인도 귀하와 같이 모든 ‘以 …爲 …’ 문장을 ‘…을 …으로 여기다’로 해석하리라 믿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 사고방식이군요.

더구나 「왜국에 진귀한 물건이 많았다 라고 하면 多珍物 ( 많을 다 진귀할 진 물건 물 ) 의 주어 자리에 왜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왜는 주어자리에 있지 않고,  전치사 以의 목적어로 쓰였네요.. 초등학교 수준의 문법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만」라고 하는 모욕적인 언사까지 서슴치 않는군요!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하고, 그것이 언행으로 표출된다고 합니다.

분명히 앞선 덧글에서 「위 인용 원문은 왜국전에 나오는 것이고 多珍物이란 왜국에 진귀한 물건이 많다는 것이고 특히 並敬仰之의 並은 복수(즉 신라와 백제)를 지칭하는 것이기에 왜국이 백제와 신라를 敬仰하였다고는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만, 「초등학교 수준의 문법」 운운하기에 좀 더 설명하고자 합니다.
앞의 ‘以 …爲 …’ 문장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귀하의 해석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가 왜국을 대국으로 만들었는데, 〔백제와 신라에는〕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모두 그들을 경앙하였다」고 의미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경앙받는자(之)’와 ‘경앙하는 자(並)’의 구분이 모호하게 된다.
요컨대 ‘並’이란 복수의 경앙하는 자는 백제와 신라이고 ‘之’란 대명사는 왜국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양자의 관계를 바꾸려면 ‘並’으로 표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백제와 신라는 왜국을 대국으로 여겼는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백제와 신라〕 모두 ‘之’〔왜국〕을 경앙하여 늘 사신이 왕래하였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귀하의 해석에 의한다면 「(왜를 큰 나라로 만든 신라 백제인은) 진기한 물건이 많았으며 그 진기한 물건을 숭배하였다. 항상 사신이 왕래했다」고 하여 백제와 신라가 ‘之’라고 하는 珍寶를 경앙하였다는 의미로 된다.
‘敬仰’이란 ‘공경하여 우러러 봄, 타동사로 우러름을 받다’의 의미를 지니다.

《삼국지·진한전》에 「마한이 그 동계의 땅을 그들〔‘之’, 즉 진한〕에게 주었다. 〔진한에는〕 성책(城柵)이 있다.」
역시 진한전이기에 가능한 문장이다.

《수서·왜국전》은 이어지는 대업3년에 보낸 국서(國書)에서 “「일출처의 천자가 서를 보낸다, 일몰처의 천자는 무양(無恙)하신고?」운운 하니 그 국서를 읽고 수나라의 제(帝)가 좋아하지 않았다. 홍로경에게 일러 「만이(蠻夷)들이 올린 상서 중에 무례한 것은 다시는 내밀지마라」고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말로하면 ‘뻥’이요, ‘自存外滅’이다.
고금에 있어 역사 변조는 왜국의 본질이다.
다만 백제가 건국한 왜가 이 시기에 들어 곤궁에 처해 있던 백제에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백제·왜의 관계는 아직 미공개한 부분이 많아 자세히 설명치는 못하고 미진한 부분은 동료 연구자에게 확인하기 바란다.
이 부분에 대한 더 이상 시비는 사양하며, 끝으로 풍국신사 문전에 세워진 ‘耳塚(혹 鼻塚)’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해 두고자 한다.
위안부·독도 문제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운 지금, 정작 정유재란 당시 셀 수 없는 많은 조상의 코를 베어 전리품 확인을 목적으로 가져간 ‘조상들의 코’는 풍국신사 문전에 방치되어 합장되어 자신들의 위세를 세외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록 풍신가의 몰락으로 원래의 피폐해지던 중, 풍신수길 300년 기를 맞이하여 새롭게 건설된 것이다.

원래 이름은 ‘코무덤’이지만 너무 잔악한 면이 있어서 살그머니 ‘귀무덤’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는 고려의 대상에 들지 않았지만, 풍신수길과 緣으로 얽혀 있어, 함께 개축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찬양하여 적십자정신을 300년이나 앞선 풍공의 공덕이라 自讚하지만, 우위선이며 철면피이다.
과연 임진란과 정유재란에 걸친 조상들의 시신 훼손 사례가 얼마인지는 집계할 수 없다.
1 세대 30년을 잡고 10 세대를 훌쩍 넘는다.
지근거리에 있는 누군가의 조상은 코가 베어진 시체로 매장되었을 것이며, 그 통분함은 위안부·독도 문제에 못하지 않다.
더구나 재건립 시기인 ‘금년〔명치(明治) 31년, 즉 1898년〕’은 청일전쟁이 종료(1895년)된 후 3년이 지난 시기이며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깃발을 치켜들던 시기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征韓의 2차 전쟁〔1597년, 정유재란〕에서 아군은 잇달아 승리하여 제장(諸將)은 적을 참하고 코를 잘라 공(功)을 바치니 그 수가 몇 만이었다. 공(公)〔풍신수길〕이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여 상을 내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적국의〕 병사들을 불쌍히 여겨, 그 코를 경도(京都)의 대불(大佛) 앞에 묻고 분묘를 만들어 비총(鼻塚)이라 하고 크게 공양(供養)을 하였다.
당시는 1597년 9월 28일이었다.
상국사(相國寺) 승태(承兌)가 찬(撰)한 문(文)에 은수(恩讎)를 구분하지 않고 피아(彼我)를 논하지 않고 깊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등하게 공양하는 저 아름다운 공(公)〔풍신수길〕의 은덕이 해외에까지 미침이 넓도다. 하물며 교전한 적국에 있어서랴? 공(公)〔풍신수길〕의 이런 마음은 금일의 적십자사의 뜻을 300년 전에 발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 이 이총(耳塚)은 아국(我國)의 위세 확장의 상징이며, 풍공(豊公)의 성덕(盛德)의 유물(遺物)이다.
조선과 아국(我國)과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이다.
근년(近年)에는 타국(他國)에 앞서 위기에 빠진 조선의 독립을 도와 대전(大戰)을 치루면서 인국(隣國)과의 교의(交誼)를 완수하였은 즉 그 옛날에 풍공(豊公)이 이미 행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없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방(友邦)이 되어 어찌 한층 그 길에 애쓰지 않겠는가?
…(하략).”라고 쓰이어 있다.
이 얼마나 뻔뻔한 수작인가?
일제 침략시대는 19911년에 시작되지만 사실상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 세력들에 의하여 이미 이 ‘코무덤’이 개축되자마자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코무덤’의 합리적 처리 없이는 한일 간의 隣交는 먼 나라 얘기이다.

 
碑 文 
 [北]
 與隣敵交兵欲宣国威而已矣非悪其人而戮之也春秋*之役楚人請築京観楚王」
 不可曰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有京観今罪無所而民皆」
 尽忠以死君命又可以為京観乎論者以為盛徳然未若我豊太閤之仁及枯骨其徳」
 為更深也按史征韓後役我軍連捷諸将有所斬獲截敵鼻献功其数幾万公喜其勝」
 賞其功而愍彼士為国致命埋其獲於京都大仏之前為築墳塋立大卒塔婆名曰鼻」
 塚請五山僧呂四百人大修供養資其冥福時慶長二年九月廿八日也相国寺承兌」
 撰其文美公之不分恩讎不論彼我深垂慈仁以設平等供養夫恩及海外可謂広矣」
 况於交戦之敵国乎推公此心謂之行今日赤十字社之旨於三百年前豈其不可哉」
 世徒謂公豪雄英武誇大自喜因以此塚比京観而誰知其慈仁博愛而有礼如此之」
 深哉塚後訛称曰耳塚物換星移豊氏絶祠而塚独儼存巍然為平安之偉観四方観」
 光之客弔古之士無不徘徊顧望于其下欽当年之偉業感豊公之慈仁者此地旧属」
 妙法院故以時修仏事而世変多故久委荒残矣今茲豊公功臣愛将之裔与同志者」
 #謀将修公墓以行三百年祭而未及此塚心竊恨焉方広寺原董権大僧正泰良以」
 此塚與大仏関係尤深欲修営建碑期豊公祭大修追弔供養之式予亦以妙門嘗掌」
 豊国廟尤喜其事有所斡旋既得官準京都市給金若干円以助之其旧部内亦附以」
 其前地於是広募資用以起其役乃築乃修材良工励以一月三日経始以三月廿日」
 竣功宏荘完堅比旧時有加焉陸軍大将大勲位功二級彰仁親王聞而嘉之賜以題」
 字可謂栄矣夫此塚者邦威拡張之符表豊公盛徳之遺物而朝鮮者与我輔車相依」
 唇歯相保迩年我国率先万国扶其危匡其傾明其独立為之大戦以完隣邦之交誼」
 則於其旧時亦能無感乎豊公既行之乎交戦之日今日則為友邦豈可不益尽其道」
 哉嗚呼十方衆生一視同仁三界万霊平等利益希以此修営保其物以此供養資其」
 福奮武之跡慈仁之挙大顕於世且両国隣交益加厚東洋平和永莫渝乃記其事勒」
 貞珉以垂不朽
          明治三十一年(1898년, 高宗 2년)三月廿日
                                                    陸軍大将大勲位功二級彰仁親王篆額
                                          前天台座主大僧正妙法院門跡村田寂順撰文
〔가까운 적과 전쟁하는 것은 국위를 선양하고자 할 뿐이지 그 사람들을 증오하여 죽인 것이 아니다.
옛 춘추시대 전쟁 때 초(楚)나라 사람이 주청하여 적의 시체를 묻고 승리를 과시하는 경관(京觀)으로 하는 총(塚)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초나라 왕은 …전사자는 자국(自國)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이 행위는 훌륭한 행위이지만 豊太閤〔풍신수길〕의 자비로운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征韓의 2차 전쟁〔1597년, 정유재란〕에서 아군은 잇달아 승리하여 제장(諸將)은 적을 참하고 코를 잘라 공(功)을 바치니 그 수가 몇 만이었다. 공(公)〔풍신수길〕이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여 상을 내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적국의〕 병사들을 불쌍히 여겨, 그 코를 경도(京都)의 대불(大佛) 앞에 묻고 분묘를 만들어 비총(鼻塚)이라 하고 크게 공양(供養)을 하였다.
당시는 1597년 9월 28일이었다.
상국사(相國寺) 승태(承兌)가 찬(撰)한 문(文)에 은수(恩讎)를 구분하지 않고 피아(彼我)를 논하지 않고 깊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등하게 공양하는 저 아름다운 공(公)〔풍신수길〕의 은덕이 해외에까지 미침이 넓도다. 하물며 교전한 적국에 있어서랴? 공(公)〔풍신수길〕의 이런 마음은 금일의 적십자사의 뜻을 300년 전에 발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비총(鼻塚)은 후에 잘못 전해져 이총(耳塚)이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풍신가(豊臣家)는 망했지만 비총(鼻塚)만이 홀로 엄존(儼存)하여 우뚝 솟아 평안한 위용(偉容)으로 사방을 바라보고 있다.
관광객이 그 아래에서 옛 병사들을 조문하고 배회(徘徊)하며 그 뜻을 새기고 당년(當年)의 위대한 업적과 풍공(豊公)의 자비스런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비총(鼻塚)의 땅은 원래 묘법원(妙法院)에 속해 있었던지라 동사(同寺)가 불사(佛事)를 집행하고 있었지만, 세상이 변하고 오래되어 황폐하게 되었다.
금년〔명치(明治) 31년, 즉 1898년〕은 풍공(豊公)의 300년 기(忌)에 해당, 연고(緣故)가 있는 공신(功臣)과 무장(武將)의 자손들이 의논하여 공(公)의 묘를 수리하고 300년 기(忌)를 행하기로 예정되었지만 그 사업에 비총(鼻塚)의 사(事)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방광사(方廣寺)의 泰良権 대승정(大僧正)〔碑文의 찬자(撰者)인 村田寂順의 동생〕은 方広寺大仏殿과 이총(耳塚)은 같이 풍공(豊公)의 연(縁)으로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이총(耳塚)을 수리하고 법사(法事)를 운영하길 희망한다고 하였다. 본인〔碑文의 撰者인 村田寂順〕도 妙法院이 예전부터 豊国廟를 管理하고 있었던 연(緣)으로 그렇게 하길 희망하고 함께 노력하였다. 이에 널리 자재(資財)를 모아 明治31年〔1898년〕 1월 3일에 이총(耳塚)의 수리를 기공하고, 3월20일에 준공하였다.
 
이 이총(耳塚)은 아국(我國)의 위세 확장의 상징이며, 풍공(豊公)의 성덕(盛德)의 유물(遺物)이다.
조선과 아국(我國)과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이다.
근년(近年)에는 타국(他國)에 앞서 위기에 빠진 조선의 독립을 도와 대전(大戰)을 치루면서 인국(隣國)과의 교의(交誼)를 완수하였은 즉 그 옛날에 풍공(豊公)이 이미 행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없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방(友邦)이 되어 어찌 한층 그 길에 애쓰지 않겠는가?
…(하략).
          明治31년〔1898년, 즉 高宗 2년〕 3월 20일
                                                    陸軍大将大勲位功二級彰仁親王篆額
                                          前天台座主大僧正妙法院門跡村田寂順撰文 〕
파스포트 14-05-27 09:35
   
할일 앵가히 없는 짱족 같어 ㅉㅉㅉㅉㅉㅈ
지나가던이 14-09-19 11:19
   
위키는 아무나 그때그때 수정할수 있다고합니다....
한마디로 신빙성없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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