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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0 12:43
[일본] 왜왕의 미스테리
 글쓴이 : 뿡뿡
조회 : 8,023  


히로히토, 아키히토...

얘들은 성씨가 없다...

숨기는걸까 원래 족보도 근본도 없는 호로xx일까?

족보없는 왕이 무슨 근거로 순수 일본 7천년의 순수혈통일까?...ㅋㅋㅋ김아키히토 혹은 박아키히토...이아키히토.
.?

일본애들말로는 왜왕은 인간이 아닌 신이기 때문이라는데...천손은 한국만의 독특한 사상인데 그렇다면 천손인 아키히토의 비밀이 어느정도 풀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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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더쿠 14-05-20 13:46
   
7천년 순수혈통의 왕은 없지 않나요?
보통 조선이나 신라 고려의 단일 왕조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간 단일 왕조라고 봣는데
     
모름 14-05-23 16:02
   
왠 7천년????
     
박애주의 14-05-29 00:34
   
일왕이라고 하셔도 될 것을 글을 보면 굳이 까내리려는 의도로 왜왕이라고 쓴 느낌이 나네요. 제 기분탓인가요? 지금 일왕인 아키히토는 한국에 대해 항상 미안해하고 좋은 감정 가지고 있는데 일본 헌법상 일왕이 정치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지금 내각에서 악용하는 셈인거죠 아키히토 일왕은 항상 한국에 와서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게 불가능해서 그렇지
풍림화산투 14-05-20 14:03
   
비미호와 송서의 왜 5왕은 혈연 관계가 언급되어 있지 않구요. 송서의 왜 5왕은 성씨가 왜씨로 기록이 되어 있고.. 수서에 나오는 왜왕은 성이 아메 이름을 다리사북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만세일계를 믿을 정도로 순진하시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행복찾기 14-05-20 14:05
   
왜왕의 성은 왜(倭)입니다.
     
풍림화산투 14-05-20 14:08
   
송서의 경우 그렇고.. 수서의 경우는 성이 아메 이름은 다리 사북고라고.. 후궁을 수백명 거느린 남자 왜왕..이 시기에 왜에서 정권 교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서기는 후궁을 수백명 거느린 남자왕이 아니라 여자 천황이 수나라와 교류 했다고 가짜 역사서를 만듭니다.. 이런 흐름
gaevew 14-05-20 16:12
   
내일을위해 14-05-20 17:56
   
그럼 뭐야? 성도 없는 천민인겁니까? 에잇 천한것들.
binrhee 14-05-20 18:55
   
관심도 없었지만,  야들은 성도 없어요?  쪽바리들이 가만있나. 갸들 궁금해하겠는데요
사랑투 14-05-20 18:59
   
원래 성 이라는 것이  고대에는 제사장이나 왕이나 호족들 같은 권력층만 갖는 특권이었을텐데 었었을리 없겠지요. 그것으로  혈통을 가림하는 척도도 되고요.

왕이 "씨"가 없다는 건 말이 안되죠.
햄돌 14-05-20 20:16
   
성을 지운 이유가 다 있을겁니다.
디노 14-05-20 20:55
   
7천년은 어디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까?
일본 역사는 2천년이에요...자기들의 역사가 이천년밖에 안 되는데, 자신들이 식민지로 삼은 조선이 오천년이라고 하니 기를 써고 우리의 고조선 역사를 말살하려 했던 거에요.
디노 14-05-20 20:56
   
왜왕의 성은 眞(진)씨에요...
일본의 고대문서 가운데 성씨에 관해 적어 놓은 책 신찬성씨록 첫머리에 최고의 성씨는 眞(진)씨라고 나와 있어요.
이건 당시 왜왕이 眞(진)씨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해 놓은 것이죠...
일본 신화에 보면 일본 최고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와 그의 남동생 스사노오 미코토 두 사람이
眞名井(진명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어요....이 말은 그들이 眞(진)씨 가문에서 태어난 것을 말하고 있어요...
당시 유력한 眞(진)씨 가문은 백제의 왕비 집안 뿐입니다. 근초고왕의 왕비가 眞(진)씨였어요...
나와나 14-05-20 21:51
   
은나라가 지금으로부터 3600년 전이고 고조선이 4400년 전이고 고대 이집트 왕조도 겨우 5000년 전인데 일본 역사가 7000년..? ㅋㅋㅋㅋ
일본이 세계 최초의 국가이자 인류문명의 시초였군요..ㅋㅋㅋㅋ
나와나 14-05-20 22:22
   
일본의 신화의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을 다스리고 나라를 세운다는 점이 단군신화와 매우 비슷하고 아마테라스에게 하사받았다고 전해지는 일왕의 상징인 삼종신기가 한반도,만주 등에 매우 흔한 유물들이며 (고)조선의 천부삼인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일본 역사의 시작이 (고)조선 또는 한반도 도래인의 정복이나 개화로 인해 시작됬거나 또는 그 주체가 한민족 세력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열등왜구 14-05-21 00:07
   
한반도에서 파생된 변종 사생아 왜족장이라 그렇죠. 왜노인들은 근본도 없는 놈들이거든요
하늘나비야 14-05-22 11:44
   
일본왕족은 도래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부여에 가다 보면  능이 있는데요 거기 가면 몇 년 전인 와서 감사 인사 하고 갔지요  자신들의 조상 묘를 잘 보존해 줘서 감사하고 .. 나무도 기증했던 것 같은데 가서 보니 나무에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
오마이갓 14-05-22 22:58
   
우리나라도 성이 없는 왕들이 있었어요.  혁거세, 알지같은 왕들이 이름만 있다가 수백년후 후손들이 성을 붙여주어서 박혁거세, 김알지가 된거죠.
독산 14-05-23 03:27
   
풍림화산투/고구려를 가지고 현을 만들었다(고구려를 현으로 하였다)
 
 가죽으로 배를 만들었다(혹여나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자가 있다면)
 나문백포로 모자를 만들었다(나문백포를 〔머리에 둘러〕 모자로 삼았다.)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구유 중의 해수를 햇볕에 쪼여 소금을 만들었다)



*周公曰.,「嗚呼! 以人惡爲美德乎!」(주공이 ‘아아! 사람의 악함을 미덕으로 삼는구나’라고 하였다)《순자·요문》
‘以刑爲體, 以禮爲翼, 以知爲時, 以德爲循’(형벌을 몸으로 삼고, 예의를 날개로 삼으며, 지혜를 때로 삼으며, 덕성을 자연에 따르는 것으로 삼는다)《장자·대종사》
‘必以長安君爲質,兵乃出’(반드시 장안군을 인질로 삼아야 군대가 비로소 움직일 것이다)《전국책·조책4》
이는 모두 ‘…를 …로 삼다’ 혹은 ‘…를 …라고 생각하다’로 해석되는 古文이다.
*금문(今文)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以…爲’ (…을 …여기다)《동아 중한사전 2401쪽》

도대체가 본인이 언급하지도 않은 「或有以皮爲舟者  이것을 혹은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가 아니라..
혹은 가죽을 배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해석하신다는거죠? …」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하는 것인지?
혹여 모든 한문이 획일적으로 해석된다〔귀하의 예를 들자면, ‘以…爲…’는 무조건 ‘…을 …으로 만들다’라고 하는 식〕고 하는 자신만의 아집을 본인에게도 적용시켜 본인도 귀하와 같이 모든 ‘以 …爲 …’ 문장을 ‘…을 …으로 여기다’로 해석하리라 믿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 사고방식이군요.

더구나 「왜국에 진귀한 물건이 많았다 라고 하면 多珍物 ( 많을 다 진귀할 진 물건 물 ) 의 주어 자리에 왜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왜는 주어자리에 있지 않고,  전치사 以의 목적어로 쓰였네요.. 초등학교 수준의 문법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만」라고 하는 모욕적인 언사까지 서슴치 않는군요!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하고, 그것이 언행으로 표출된다고 합니다.

분명히 앞선 덧글에서 「위 인용 원문은 왜국전에 나오는 것이고 多珍物이란 왜국에 진귀한 물건이 많다는 것이고 특히 並敬仰之의 並은 복수(즉 신라와 백제)를 지칭하는 것이기에 왜국이 백제와 신라를 敬仰하였다고는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만, 「초등학교 수준의 문법」 운운하기에 좀 더 설명하고자 합니다.
앞의 ‘以 …爲 …’ 문장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귀하의 해석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가 왜국을 대국으로 만들었는데, 〔백제와 신라에는〕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모두 그들을 경앙하였다」고 의미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경앙받는자(之)’와 ‘경앙하는 자(並)’의 구분이 모호하게 된다.
요컨대 ‘並’이란 복수의 경앙하는 자는 백제와 신라이고 ‘之’란 대명사는 왜국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양자의 관계를 바꾸려면 ‘並’으로 표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백제와 신라는 왜국을 대국으로 여겼는데,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백제와 신라〕 모두 ‘之’〔왜국〕을 경앙하여 늘 사신이 왕래하였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귀하의 해석에 의한다면 「(왜를 큰 나라로 만든 신라 백제인은) 진기한 물건이 많았으며 그 진기한 물건을 숭배하였다. 항상 사신이 왕래했다」고 하여 백제와 신라가 ‘之’라고 하는 珍寶를 경앙하였다는 의미로 된다.
‘敬仰’이란 ‘공경하여 우러러 봄, 타동사로 우러름을 받다’의 의미를 지니다.

《삼국지·진한전》에 「마한이 그 동계의 땅을 그들〔‘之’, 즉 진한〕에게 주었다. 〔진한에는〕 성책(城柵)이 있다.」
역시 진한전이기에 가능한 문장이다.

《수서·왜국전》은 이어지는 대업3년에 보낸 국서(國書)에서 “「일출처의 천자가 서를 보낸다, 일몰처의 천자는 무양(無恙)하신고?」운운 하니 그 국서를 읽고 수나라의 제(帝)가 좋아하지 않았다. 홍로경에게 일러 「만이(蠻夷)들이 올린 상서 중에 무례한 것은 다시는 내밀지마라」고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말로하면 ‘뻥’이요, ‘自存外滅’이다.
고금에 있어 역사 변조는 왜국의 본질이다.
다만 백제가 건국한 왜가 이 시기에 들어 곤궁에 처해 있던 백제에 도움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백제·왜의 관계는 아직 미공개한 부분이 많아 자세히 설명치는 못하고 미진한 부분은 동료 연구자에게 확인하기 바란다.
이 부분에 대한 더 이상 시비는 사양하며, 끝으로 풍국신사 문전에 세워진 ‘耳塚(혹 鼻塚)’의 문제에 대하여 언급해 두고자 한다.
위안부·독도 문제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운 지금, 정작 정유재란 당시 셀 수 없는 많은 조상의 코를 베어 전리품 확인을 목적으로 가져간 ‘조상들의 코’는 풍국신사 문전에 방치되어 합장되어 자신들의 위세를 세외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록 풍신가의 몰락으로 원래의 피폐해지던 중, 풍신수길 300년 기를 맞이하여 새롭게 건설된 것이다.

원래 이름은 ‘코무덤’이지만 너무 잔악한 면이 있어서 살그머니 ‘귀무덤’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는 고려의 대상에 들지 않았지만, 풍신수길과 緣으로 얽혀 있어, 함께 개축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찬양하여 적십자정신을 300년이나 앞선 풍공의 공덕이라 自讚하지만, 우위선이며 철면피이다.
과연 임진란과 정유재란에 걸친 조상들의 시신 훼손 사례가 얼마인지는 집계할 수 없다.
1 세대 30년을 잡고 10 세대를 훌쩍 넘는다.
지근거리에 있는 누군가의 조상은 코가 베어진 시체로 매장되었을 것이며, 그 통분함은 위안부·독도 문제에 못하지 않다.
더구나 재건립 시기인 ‘금년〔명치(明治) 31년, 즉 1898년〕’은 청일전쟁이 종료(1895년)된 후 3년이 지난 시기이며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깃발을 치켜들던 시기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征韓의 2차 전쟁〔1597년, 정유재란〕에서 아군은 잇달아 승리하여 제장(諸將)은 적을 참하고 코를 잘라 공(功)을 바치니 그 수가 몇 만이었다. 공(公)〔풍신수길〕이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여 상을 내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적국의〕 병사들을 불쌍히 여겨, 그 코를 경도(京都)의 대불(大佛) 앞에 묻고 분묘를 만들어 비총(鼻塚)이라 하고 크게 공양(供養)을 하였다.
당시는 1597년 9월 28일이었다.
상국사(相國寺) 승태(承兌)가 찬(撰)한 문(文)에 은수(恩讎)를 구분하지 않고 피아(彼我)를 논하지 않고 깊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등하게 공양하는 저 아름다운 공(公)〔풍신수길〕의 은덕이 해외에까지 미침이 넓도다. 하물며 교전한 적국에 있어서랴? 공(公)〔풍신수길〕의 이런 마음은 금일의 적십자사의 뜻을 300년 전에 발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 이 이총(耳塚)은 아국(我國)의 위세 확장의 상징이며, 풍공(豊公)의 성덕(盛德)의 유물(遺物)이다.
조선과 아국(我國)과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이다.
근년(近年)에는 타국(他國)에 앞서 위기에 빠진 조선의 독립을 도와 대전(大戰)을 치루면서 인국(隣國)과의 교의(交誼)를 완수하였은 즉 그 옛날에 풍공(豊公)이 이미 행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없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방(友邦)이 되어 어찌 한층 그 길에 애쓰지 않겠는가?
…(하략).”라고 쓰이어 있다.
이 얼마나 뻔뻔한 수작인가?
일제 침략시대는 19911년에 시작되지만 사실상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 세력들에 의하여 이미 이 ‘코무덤’이 개축되자마자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코무덤’의 합리적 처리 없이는 한일 간의 隣交는 먼 나라 얘기이다.

 
碑 文 
 [北]
 與隣敵交兵欲宣国威而已矣非悪其人而戮之也春秋*之役楚人請築京観楚王」
 不可曰古者明王伐不敬取其鯨鯢而封之以為大戮於是有京観今罪無所而民皆」
 尽忠以死君命又可以為京観乎論者以為盛徳然未若我豊太閤之仁及枯骨其徳」
 為更深也按史征韓後役我軍連捷諸将有所斬獲截敵鼻献功其数幾万公喜其勝」
 賞其功而愍彼士為国致命埋其獲於京都大仏之前為築墳塋立大卒塔婆名曰鼻」
 塚請五山僧呂四百人大修供養資其冥福時慶長二年九月廿八日也相国寺承兌」
 撰其文美公之不分恩讎不論彼我深垂慈仁以設平等供養夫恩及海外可謂広矣」
 况於交戦之敵国乎推公此心謂之行今日赤十字社之旨於三百年前豈其不可哉」
 世徒謂公豪雄英武誇大自喜因以此塚比京観而誰知其慈仁博愛而有礼如此之」
 深哉塚後訛称曰耳塚物換星移豊氏絶祠而塚独儼存巍然為平安之偉観四方観」
 光之客弔古之士無不徘徊顧望于其下欽当年之偉業感豊公之慈仁者此地旧属」
 妙法院故以時修仏事而世変多故久委荒残矣今茲豊公功臣愛将之裔与同志者」
 #謀将修公墓以行三百年祭而未及此塚心竊恨焉方広寺原董権大僧正泰良以」
 此塚與大仏関係尤深欲修営建碑期豊公祭大修追弔供養之式予亦以妙門嘗掌」
 豊国廟尤喜其事有所斡旋既得官準京都市給金若干円以助之其旧部内亦附以」
 其前地於是広募資用以起其役乃築乃修材良工励以一月三日経始以三月廿日」
 竣功宏荘完堅比旧時有加焉陸軍大将大勲位功二級彰仁親王聞而嘉之賜以題」
 字可謂栄矣夫此塚者邦威拡張之符表豊公盛徳之遺物而朝鮮者与我輔車相依」
 唇歯相保迩年我国率先万国扶其危匡其傾明其独立為之大戦以完隣邦之交誼」
 則於其旧時亦能無感乎豊公既行之乎交戦之日今日則為友邦豈可不益尽其道」
 哉嗚呼十方衆生一視同仁三界万霊平等利益希以此修営保其物以此供養資其」
 福奮武之跡慈仁之挙大顕於世且両国隣交益加厚東洋平和永莫渝乃記其事勒」
 貞珉以垂不朽
          明治三十一年(1898년, 高宗 2년)三月廿日
                                                    陸軍大将大勲位功二級彰仁親王篆額
                                          前天台座主大僧正妙法院門跡村田寂順撰文
〔가까운 적과 전쟁하는 것은 국위를 선양하고자 할 뿐이지 그 사람들을 증오하여 죽인 것이 아니다.
옛 춘추시대 전쟁 때 초(楚)나라 사람이 주청하여 적의 시체를 묻고 승리를 과시하는 경관(京觀)으로 하는 총(塚)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초나라 왕은 …전사자는 자국(自國)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이 행위는 훌륭한 행위이지만 豊太閤〔풍신수길〕의 자비로운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征韓의 2차 전쟁〔1597년, 정유재란〕에서 아군은 잇달아 승리하여 제장(諸將)은 적을 참하고 코를 잘라 공(功)을 바치니 그 수가 몇 만이었다. 공(公)〔풍신수길〕이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여 상을 내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적국의〕 병사들을 불쌍히 여겨, 그 코를 경도(京都)의 대불(大佛) 앞에 묻고 분묘를 만들어 비총(鼻塚)이라 하고 크게 공양(供養)을 하였다.
당시는 1597년 9월 28일이었다.
상국사(相國寺) 승태(承兌)가 찬(撰)한 문(文)에 은수(恩讎)를 구분하지 않고 피아(彼我)를 논하지 않고 깊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등하게 공양하는 저 아름다운 공(公)〔풍신수길〕의 은덕이 해외에까지 미침이 넓도다. 하물며 교전한 적국에 있어서랴? 공(公)〔풍신수길〕의 이런 마음은 금일의 적십자사의 뜻을 300년 전에 발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비총(鼻塚)은 후에 잘못 전해져 이총(耳塚)이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풍신가(豊臣家)는 망했지만 비총(鼻塚)만이 홀로 엄존(儼存)하여 우뚝 솟아 평안한 위용(偉容)으로 사방을 바라보고 있다.
관광객이 그 아래에서 옛 병사들을 조문하고 배회(徘徊)하며 그 뜻을 새기고 당년(當年)의 위대한 업적과 풍공(豊公)의 자비스런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비총(鼻塚)의 땅은 원래 묘법원(妙法院)에 속해 있었던지라 동사(同寺)가 불사(佛事)를 집행하고 있었지만, 세상이 변하고 오래되어 황폐하게 되었다.
금년〔명치(明治) 31년, 즉 1898년〕은 풍공(豊公)의 300년 기(忌)에 해당, 연고(緣故)가 있는 공신(功臣)과 무장(武將)의 자손들이 의논하여 공(公)의 묘를 수리하고 300년 기(忌)를 행하기로 예정되었지만 그 사업에 비총(鼻塚)의 사(事)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방광사(方廣寺)의 泰良権 대승정(大僧正)〔碑文의 찬자(撰者)인 村田寂順의 동생〕은 方広寺大仏殿과 이총(耳塚)은 같이 풍공(豊公)의 연(縁)으로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이총(耳塚)을 수리하고 법사(法事)를 운영하길 희망한다고 하였다. 본인〔碑文의 撰者인 村田寂順〕도 妙法院이 예전부터 豊国廟를 管理하고 있었던 연(緣)으로 그렇게 하길 희망하고 함께 노력하였다. 이에 널리 자재(資財)를 모아 明治31年〔1898년〕 1월 3일에 이총(耳塚)의 수리를 기공하고, 3월20일에 준공하였다.
 
이 이총(耳塚)은 아국(我國)의 위세 확장의 상징이며, 풍공(豊公)의 성덕(盛德)의 유물(遺物)이다.
조선과 아국(我國)과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이다.
근년(近年)에는 타국(他國)에 앞서 위기에 빠진 조선의 독립을 도와 대전(大戰)을 치루면서 인국(隣國)과의 교의(交誼)를 완수하였은 즉 그 옛날에 풍공(豊公)이 이미 행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없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방(友邦)이 되어 어찌 한층 그 길에 애쓰지 않겠는가?
…(하략).
          明治31년〔1898년, 즉 高宗 2년〕 3월 20일
                                                    陸軍大将大勲位功二級彰仁親王篆額
                                          前天台座主大僧正妙法院門跡村田寂順撰文 〕
데구르르 14-05-24 18:59
   
뭘 어찌 왜곡하건 어떤 이유로 거짓왜곡을 했건 딱 하나입니다 한국은 부모고 일본은 자식 이라는 거죠
일본인들에게 한국 한국인은 신과 같은 존재죠 지들한테 모든걸 줬으니 .. 일본은 패륜아 라는건 세월이 또 얼마나
흘러도 변할수 없죠.. 지들의 왜곡과 거짓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진실은 숨길수 없다는걸 일본 스스로도
얼른 깨달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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