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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04 01:57
[기타] 환단고기 위키백과 링크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6,691  

 
 
 

진위 논란[편집]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주장이나 위서라는 주장이 병존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주장을 먼저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이하 내용은 고준환의 《신명나는 한국사》의 진서론과 문영의 《만들어진 한국사》의 반론을 정리한 것이다.[17]
진서론 위서론(반론)
발해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정효공주 묘지문에서 확인되었다. 해당 연호는 《신당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며 발해와 관련된 대표적인 저작인 《발해고》에도 이미 실려 있는 사실이므로 《환단고기》가 최초가 아니다.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중국 본토에서 세운 대제(大齊)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신당서》에 이정기 및 그의 후손에 대한 열전이 존재한다.
장수왕의 연호 건흥(建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1915년 출토된 고구려 불상에서 확인되었다.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1915년의 발굴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이 진서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1923년 출토된 천남생 묘지명에서 확인되었다.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1923년의 발굴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이 진서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상나라의 왕 무정(武丁)이 귀방(鬼方)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갑골문을 통해 확인되었다. 무정의 귀방 공격 기록은 《주역》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북경 일대를 다스린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북성 중산묘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있어 이를 증명해준다. 중국이 최초로 천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 때이다. 진시황이 최초로 사용한 것은 황제라는 호칭이며, 천자라는 호칭은 주나라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진서론[편집]

  • 근대 용어 등 후세에 일부 가필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했다면 보다 완벽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는 의견[18]이다.
  • 이덕일은 위와 같은 견해를 가지면서 "이상룡의 〈서사록〉과 박은식의 〈동명성왕실기〉가 1911년에 저술되었다고 해서 ‘후세의 위작’이라고 비판받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면 《환단고기》가 위서(僞書)라고 받은 비판은 부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상룡 · 박은식 · 신채호가 그랬던 것처럼 계연수도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독립운동, 애국사상을 고취시킬 목적의 하나로 선교 계열의 고서류를 참고해 《환단고기》를 편저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애국심에 의한 민족주의적 고찰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의견[19]이다.
  •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단기고사》(檀紀古事)와 《단군세기》(檀君世紀)의 '오성취루'의 천문현상 기록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결과 기록보다 1년 전인 기원전 1734년에 기록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 '오성취루'의 천문기록은 당시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측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대에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했을 경우 정답이 될 확률은 0.007퍼센트로 가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이고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신빙성도 함께 증명되었다는 의견[20][21]이다. 전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22]

위서론[편집]

《환단고기》가 후대에 위조된 기록이며, 사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3]
  • 현전하는 여러 역사서 및 위서를 베껴 쓴 흔적이 많이 존재한다.[23]
    • 규원사화》 및 《단기고사》와 문장구조.까지 일치하는 문장이 많이 발견된다.
    • 규원사화》 및 《단기고사》에 등장하는 잘못된 인용이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 신채호가 주장한 연개소문 사망 연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연도는 잘못된 연도이다.
  • 용어 사용이 적절하지 않다.
    • 사백력(시베리아), 파나류산(파미르고원), 수밀이(수메르), 우루, 지백특(티베트), 남녀평권, 부권, 상춘, 세계만방(世界萬邦), 산업, 문화 등 근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가 사용되었다.
    • 고려(高麗), 몽고(蒙古), 흑수(흑룡강), 영고탑, 산동(山東) 등 실제 사용 시기가 상이한 용어가 사용되었다. 각 명칭의 실제 사용 시기는 다음과 같다.
      • 몽고(蒙古): 징기스칸이 등장할 무렵에 등장한다.
      • 영고탑: 청나라 시조 설화와 관련지어 청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이다.
      • 산동(山東): 중국 사서 《한서(漢書)》를 인용하면서 실제 사서에 없는 산동(山東)이라는 말을 가필하였는데, 실제 산동이라는 용어가 해당 지역을 가리키게 된 것은 명나라 때 이후이다.
  • 저술 연대
    • 1911년 출간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출간 연도인 1979년보다 전에 《환단고기》 또는 그 저본이 되는 5권의 저서가 존재했다는 근거가 없으며, 이유립 본인이 《환단고기》를 고쳐가며 창작하였던 흔적이 발견된다.
    • 1911년에 편집된 책이 1979년에 출간되기까지 60년이 넘게 소요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 기존 사서와 부합하지 않는다.
  • 후대의 글을 인용하는 등 내용상의 모순이 있다.
    • 1909년에 사망한 이기가 1911년에 완성된 《환단고기》를 감수하였다고 설명되었다.
    • 신채호가 《사기집해》의 주석을 잘못 해석하고 주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삼한, 후삼한설"이 반영되어 있다.[24]
    • 이화사의 《언행록》에 수록된 시가 《단기고사》와 《환단고기》에 인용되었다.
    • 《환단고기》의 내용에 따르면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사람이 저술했다는 《삼성기》에 18세기 청나라 시기에 저술된 책이 인용되어 있다.
  •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 설명된 수메르(수밀이)와 티베트(지백특)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으로서의 고조선의 유적(거주지나 무덤)이 전혀 없다.
  •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의 동아시아 신석기 시대 국가가 존재할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문명이 등장하는 시기도 그 이후이다.
  • 《환단고기》는 발해의 왕계보를 14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13대 대현석과 14대 대인선의 시호를 각기 경제와 애제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 김육불에 의해 발해의 14대 왕인 대위해가 발견되면서 발해의 군주는 모두 15명임이 확인되었으며, 대현석 및 대인선의 시호 역시 당시 신라의 왕 경애왕을 오독하여 나타난 것임이 밝혀졌다.[25] 이는 《환단고기》가 발해의 왕에 대한 정확한 옛 기록을 참고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 《환단고기》의 천문 기록을 통한 증명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었다. 전용훈 박사는 오성취합이 5세기 경 중국의 천문 서적에서 계산 방법이 밝혀진 것임을 지적하며 후대에 하나라 상나라로 교체되는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계산하여 기록한 것을 《환단고기》에서 사용한 것임을 지적하였다.[26] 실제로 《죽서기년》에는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 때의 오성착행(五星錯行)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시기도 《환단고기》와 근사하다.

중도론[편집]

《환단고기》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가필되었음은 인정하지만 현존하지 않는 모본(母本)이 있을 수 있고, 그 내용에 포함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대한제국이나일제 강점기 초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환단고기》에는 전래되는 선가 계통의 흐름이 표출되었으리라는 의견이다.[27]
이러한 견해는 변용된 정도를 잘 알 수 없으므로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28]과, 직접적인 인용은 피하면서 대체적인 흐름만은 참조할 수 있다는 주장[29]이 있다. 다만 후자에서 천문학을 동원해 역사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박[30]도 있다.

조작설[편집]

《환단고기》는 출간 경위 자체에 모순이 많다. 이러한 모순을 추적하여 《환단고기》 자체가 이유립에 의해 조작된 창작물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 저자인 계연수는 과연 실존인물인지도 의심되고 있으며, 《환단고기》의 전래 내력에서 전하는 행적과 단군교에서 전하는 행적이 완전히 모순된다. 1917년에 단군교에 의해서 공개된 〈천부경〉의 전래 내력에 따르면 계연수는 1916년 이전까지 〈천부경〉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31] 그런데 계연수가 1911년에 썼다는 《환단고기》에는 〈천부경〉이 실려 있어 1920년대 계연수의 행적과 전혀 다르다.
  • 《환단고기》에 수록된 오형기의 발문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1949년에 강화도 대시전에서 정서되었다고 하나, 실제 강화도 대시전 이유립이 교주로 있는 소수종교인 태백교의 교당으로 건립된 연도가 1969년이다.[32] 즉, 아직 건립되지도 않은 건물에서 정서하였다는 것이다.[33]
  • 이유립은 1970년대 초반부터 《환단고기》의 일부 편목이나 구절을 자신의 저서 《참된 조국의 상:세계문명동원론》이나 정훈잡지 《자유》에 공개하고 있다.[34] 이렇게 공개된 부분은 1979년에 공개된 《환단고기》 및 1983년에 다시 출간한 《환단고기》와 다른 부분이 많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를 바로잡거나 교열하여 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환단고기》의 내용 가운데 상당부분은 《단기고사》 및 《규원사화》와 문장 구조.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일치하는 부분을 분석해 보면 《환단고기》가 다른 두 책을 결합하여 베껴 썼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35] 이와 같은 근거를 토대로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1970년대부터 창작 및 조작하여 1979년에 완성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즉,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고대 역사서를 위장하여 만든 창작물이라는 것이다.[36]

민족주의 성격에 대한 의문[편집]

《환단고기》가 민족주의 역사책이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37] 민족주의, 특히 피식민지 상태의 민족에게서 두드러진다고 평가되는 저항적 민족주의의 특징은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배타적인 민족 구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이러한 배타성보다는 일본 제국이나 나치 독일 등에서 유행한 확장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일본 대동아공영권과 유사한 점을 보인다.[38]

동북공정[편집]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환단고기》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동북공정을 주도한 학자 가운데 하나인 유자민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고조선에 대한 주장이 비학술적이라 비판하였는데, 그 논거로 《환단고기》를 들고 있다. 실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판단하여 사료로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유자민은 《환단고기》에 입각한 비주류의 견해만을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을 통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신뢰성을 낮추려는 의도를 의심할 수 있다.[39]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일부에서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기록이라 주장하기도 하는 《환단고기》가 오히려 동북공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아이러니가 지적되기도 한다.[40
 

역대 환인[편집]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의 존속기간은 3,301년, 혹은 63,182년 동안 왕이 7대라고 한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환인은 다음과 같다.
  • 1대 환인: 안파견(安巴堅) 환인
  • 2대 환인: 혁서(赫胥) 환인
  • 3대 환인: 고시리(古是利) 환인
  • 4대 환인: 주우양(朱于襄) 환인
  • 5대 환인: 석제임(釋提壬) 환인
  • 6대 환인: 구을리(邱乙利) 환인
  • 7대 환인: 지위리(智爲利) 환인 또는 단인(檀仁)[12]
 
7명의 환인
1인당 평균 수명  471년 혹은  9026년
 
환단고기에서는 환웅이 1,500여년 동안 배달국을 다스렸다고 주장하며 그 역년을 기록하고 있다.
  1. (기원전 3898년): 거발한(居發桓)환웅, 재위 94년, 120세
  2. (기원전 3804년): 거불리(居佛理)환웅, 재위 86년, 102세
  3. (기원전 3718년): 우야고(右耶古)환웅, 재위 99년, 135세
  4. (기원전 3619년): 모사라(慕士羅)환웅, 재위 107년, 129세
  5. (기원전 3512년): 태우의(太虞儀)환웅, 재위 93년, 115세
  6. (기원전 3419년): 다의발(多儀發)환웅, 재위 98년, 110세
  7. (기원전 3321년): 거련(居連)환웅, 재위 81년, 140세
  8. (기원전 3240년): 안부련(安夫連)환웅, 재위 73년, 94세
  9. (기원전 3167년): 양운(養雲)환웅, 재위 93년, 139세
  10. (기원전 3071년): 갈고(葛古)환웅 또는 독로한환웅 재위 100년, 125세
  11. (기원전 2971년): 거야발(居耶發)환웅, 재위 92년, 149세
  12. (기원전 2897년): 주무신(州武愼)환웅, 재위 105년, 123세
  13. (기원전 2774년): 사와라(斯瓦羅)환웅, 재위 67년, 100세
  14. (기원전 2707년): 자오지(慈烏支)환웅, 치우천왕이라고도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 15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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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urion 14-05-04 02:22
   
역대 환인[편집]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의 존속기간은 3,301년, 혹은 63,182년 동안 왕이 7대라고 한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환인은 다음과 같다.
 •1대 환인: 안파견(安巴堅) 환인
 •2대 환인: 혁서(赫胥) 환인
 •3대 환인: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환인: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환인: 석제임(釋提壬) 환인
 •6대 환인: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환인: 지위리(智爲利) 환인 또는 단인(檀仁)[12]
 
7명의 환인

1인당 평균 수명  471년 혹은  9026년

환단고기에서는 환웅이 1,500여년 동안 배달국을 다스렸다고 주장하며 그 역년을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3898년): 거발한(居發桓)환웅, 재위 94년, 120세
(기원전 3804년): 거불리(居佛理)환웅, 재위 86년, 102세
(기원전 3718년): 우야고(右耶古)환웅, 재위 99년, 135세
(기원전 3619년): 모사라(慕士羅)환웅, 재위 107년, 129세
(기원전 3512년): 태우의(太虞儀)환웅, 재위 93년, 115세
(기원전 3419년): 다의발(多儀發)환웅, 재위 98년, 110세
(기원전 3321년): 거련(居連)환웅, 재위 81년, 140세
(기원전 3240년): 안부련(安夫連)환웅, 재위 73년, 94세
(기원전 3167년): 양운(養雲)환웅, 재위 93년, 139세
(기원전 3071년): 갈고(葛古)환웅 또는 독로한환웅 재위 100년, 125세
(기원전 2971년): 거야발(居耶發)환웅, 재위 92년, 149세
(기원전 2897년): 주무신(州武愼)환웅, 재위 105년, 123세
(기원전 2774년): 사와라(斯瓦羅)환웅, 재위 67년, 100세
(기원전 2707년): 자오지(慈烏支)환웅, 치우천왕이라고도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 151세
(기원전 2598년): 치액특(蚩額特)환웅, 재위 89년, 118세
(기원전 2509년): 축다리(祝多利)환웅, 재위 56년, 99세
(기원전 2453년): 혁다세(赫多世)환웅, 재위 72년, 97세
(기원전 2381년): 거불단(居弗壇)환웅 혹은 단웅(壇雄), 재위 48년, 82세

환단고기에서는 환웅이 1,500여년 동안 배달국을 다스렸다고 주장하며 그 역년을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3898년): 거발한(居發桓)환웅, 재위 94년, 120세
(기원전 3804년): 거불리(居佛理)환웅, 재위 86년, 102세
(기원전 3718년): 우야고(右耶古)환웅, 재위 99년, 135세
(기원전 3619년): 모사라(慕士羅)환웅, 재위 107년, 129세
(기원전 3512년): 태우의(太虞儀)환웅, 재위 93년, 115세
(기원전 3419년): 다의발(多儀發)환웅, 재위 98년, 110세
(기원전 3321년): 거련(居連)환웅, 재위 81년, 140세
(기원전 3240년): 안부련(安夫連)환웅, 재위 73년, 94세
(기원전 3167년): 양운(養雲)환웅, 재위 93년, 139세
(기원전 3071년): 갈고(葛古)환웅 또는 독로한환웅 재위 100년, 125세
(기원전 2971년): 거야발(居耶發)환웅, 재위 92년, 149세
(기원전 2897년): 주무신(州武愼)환웅, 재위 105년, 123세
(기원전 2774년): 사와라(斯瓦羅)환웅, 재위 67년, 100세
(기원전 2707년): 자오지(慈烏支)환웅, 치우천왕이라고도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 151세
(기원전 2598년): 치액특(蚩額特)환웅, 재위 89년, 118세
(기원전 2509년): 축다리(祝多利)환웅, 재위 56년, 99세
(기원전 2453년): 혁다세(赫多世)환웅, 재위 72년, 97세
(기원전 2381년): 거불단(居弗壇)환웅 혹은 단웅(壇雄), 재위 48년, 82세

고조선[편집]
《환단고기》〈단군세기〉는 단군의 치세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그 역년은 다음과 같다.
왕검(王儉)단군: 재위 93년
부루(扶婁)단군: 재위 58년
가륵(嘉勒)단군: 재위 45년
오사구(烏斯丘)단군: 재위 38년
구을(丘乙)단군: 재위 16년
달문(達文)단군: 재위 36년
한율(翰栗)단군: 재위 54년
우서한(于西翰) 혹은 오사함(烏舍咸)단군: 재위 8년
아술(阿述)단군: 재위 35년
노을(魯乙)단군: 재위 59년
도해(道奚)단군: 재위 57년
아한(阿漢)단군: 재위 52년
흘달(屹達) 혹은 대음달(代音達)단군: 재위 61년
고불(古弗)단군: 재위 60년
대음(代音) 혹은 후흘달(後屹達)단군: 재위 51년
위나(尉那)단군: 재위 58년
여을(余乙)단군: 재위 68년
동엄(冬奄)단군: 재위 49년
구모소(緱牟蘇)단군: 재위 55년
고홀(固忽)단군: 재위 43년
소태(蘇台)단군: 재위 52년
색불루(索弗婁)단군: 재위 48년
아홀(阿忽)단군: 재위 76년
연나(延那)단군: 재위 11년
솔나(率那)단군: 재위 88년
추로(鄒盧)단군: 재위 65년
두밀(豆密)단군: 재위 26년
해모(奚牟)단군: 재위 28년
마휴(摩休)단군: 재위 34년
나휴(奈休)단군: 재위 35년
등올(登兀)단군: 재위 25년
추밀(鄒密)단군: 재위 30년
감물(甘勿)단군: 재위 24년
오루문(奧婁門)단군: 재위 23년
사벌(沙伐)단군: 재위 68년
매륵(買勒)단군: 재위 58년
마물(麻勿)단군: 재위 56년
다물(多勿)단군: 재위 45년
두홀(豆忽)단군: 재위 36년
달음(達音)단군: 재위 18년
음차(音次)단군: 재위 20년
을우지(乙于支)단군: 재위 10년
물리(勿理)단군: 재위 36년
구물(丘勿)단군: 재위 29년
여루(余婁)단군: 재위 55년
보을(普乙)단군: 재위 46년
고열가(古列加)단군: 재위 58년

조선시대에서 제일 오랫동안 왕노릇한 건강체질 영조가 재위기간 52년

후대로 갈수록 점점 짧아지는 수명....

과연 장수의 비결이 뭔지 참 궁금해지죠
저것만 제대로 전수됐으면 ㅎㄷㄷ했을텐데...
Centurion 14-05-04 02:29
   
진시황이 어리석게 도사들 불러다 이상한 거 먹어대며 오래살 궁리할 시간에
그냥 옆동네 고조선에 사신보내서 환인,환웅 조상님들 장수비결을 캐물어 봤으면 끝났을텐데...
참 진시황도 멍청한 것 같습니다 ㅋㅋ
     
어모장군 14-05-04 06:28
   
진시황이 황제에 즉위하던 시대가 BC 221년 입니다.
환단고기로 치면 47대 고열가 단군이 BC 238년에 자리에서 하야하고,
6년 후인 BC 232년에 오가 공화정을 끝으로 조선은 폐하고,
조선 오가 중 한명이었던 북부여(BC 232~) 해모수 시절로
기준이 기자조선에 왕으로 오른 때 입니다.
위에 단군재위 기간을 보면 환웅 재위 기간에 비해 턱없이 줄어 듭니다.
재위 이전 나이까지 추정한다 하더라도 환웅에 비해 나이가 짧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41대 음차단군 이후로 재위 기간이 가장 긴게 47대 고열가 단군으로 재위 58년 입니다.
46대 보을단군의 아들이 아니니 20세에 단군에 올랐다고 가정하고 78세 입니다.
수명이 환웅시대에 비해 확 줄었다는걸 알 수 있죠.
불노불사를 원하는 진시황이 해모수(북부여)께 불사는 어쩔 수 없더라도
장수비법을 배우기에는 단군이나 해모수나 수명이 확 줄어 버린 시대 입니다.
그러니 진시황이 멍청한게 아니라는걸 아시겠죠.
어모장군 14-05-04 03:57
   
황제 공손헌원 : 신시배달 13대 기원전 2774년 경 사와라 환웅(재위 67년, 100세)과 14대 기원전 2707년 자오지 환웅(재위 109년, 151세) 때 사람으로 청동기 시대인.
황제내경이 최초로 기록된 춘추전국시대 말기(BC 722~BC 221) : 조선 34대 사벌 단군 말 때 부터 북부여 해모수에 의해 기준이 기자조선 왕(준왕)이 된 때

요즘에 의서라기 보다는 한의학서로 보는 황제내경 소문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황제가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늙지 않고 100세 이상을 살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일찍 늙어 50세 밖에 살지 못한다. 이것이 환경의 변화 때문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올바로 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냐?]

기백이 대답하기를 [예전 사람들은 도를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주 에너지의 변환을 나타내는 음양의 균형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에너지의 흐름을 증진하기 위하여 도인체조를 했습니다. 또한 명상을 통하여 우주와 그들 스스로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조화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균형 잡힌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었으며, 자고 깨는 것을 시간 맞추어 규칙적으로 했으며, 몸과 마음에 지나친 화를 피했으며, 모든 일에 지나치게 탐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유지했으므로 100세 넘게 사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황제내경은 공손헌원이 전했다고 하나 최초 기록 된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말기 입니다.
성생활로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분들은 소녀경 내편(흔히 소녀경이라 불림; 선비족의 수/당 때에 첨부 되었음. 성으로 장수와 병을 고치는 성의학서)이라 하면 바로 아시더군요. 황제내경은 도가적 성격의 의서로 후세에 사람들이 고치고 첨부하면서 옛날 중국 사람들에게 의서+도교 수행서의 성격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도교 수행서 보다는 의서로서 보았다고 합니다.

환단고기가 진실이고 공손헌원과 기백의 문답이 거짓이라면
1. 황제내경의 공손헌원과 기백의 문답은 후대에 작성 및 개작되었다.
2. 100세 까지 살던 시대라고 다 장수하던 시대는 아니다.

황제내경의 공손헌원과 기백의 문답이 진실이라면
1. 공손헌원이 살던 시대는 50이면 장수였던 시대로 이전에는 사람이 100세를 넘기고 장수했다.
2. 청동기 공손헌원 때에 50이면 장수하던 시대로 자오지 환웅(151세) 이후로 118세, 90세, 80세 까지 살았다건 환단고기가 거짓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증거다.
어모장군 14-05-04 06:50
   
위서론자의 주장 중에 2가지는 폐기, 1가지는 약해진 근거인데 폐기 한가지가 기억이 안나네요.
1.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의 동아시아는 신석기 시대로 국가가 존재할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문명이 등장하는 시기도 그 이후이다.
→ 홍산문명이 발견됨으로 해서 폐기된 근거 입니다.
신석기 시대에 어떠한 나라가 존재했었다는 중국 고고학계의 주장도 있습니다.

2. 용어사용
→ 근대에 만들어져 사용되었다는 한자 다수를 춘추전국시대 고서에서 부터 찾아 내었습니다.
중국고서를 뒤져 찾아내었는데 이거 찾아낸 학자 대단하네요. 완전 노가다 한건데...
그러나 근대에 만들어진 한자어가 아직도 있는건 사실입니다.
해서 일부 진서론자는 이유립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에 오탈자가 있어 감수하면서
익숙한 적당한 단어를 넣지 않았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3. 이게 기억이 안나서 패스
뭐꼬이떡밥 14-05-05 01:29
   
믿을수가 없어..
역사는 증거물로 입증하는건데.
     
어모장군 14-05-05 04:13
   
역사를 증거물로만 입증하면 세상에 역사인게 몇가지 없습니다.
사서에만 있고 고고학적 증거물이 안나오면 역사가 아니라는 건가요?
그럼 고고학적 유물이 나와도 우리와 관계없다고 연구자체를 안하는 사람들은 역사학자일까요?
          
진실게임 14-05-05 09:42
   
모든 역사는 증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모장군 14-05-05 17:29
   
모든 역사는 증거로 구성되면 뭐 합니까?
우리 고대사에 유물이 나와도 기존에 주장되던 학설에 반대되면 연구를 안하는데 말이죠.
또, 모든 역사가 다 증거로만 입증이 된다면, 고고학적으로 발견이 안된 사서의 기록은 전부 역사가 아니니 이성계의 위화되 회군은 역사가 아니겠네요. 이성계가 위화되 회군했다는건 사서의 기록이지 유물이 나온게 아니죠. 직접적인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지금의 역사는 사서와 고고학과 그외 생명과학, 지구과학, 경제학 등이 모두 동원되어 연구되는 실정입니다. 모든 역사는 고고학적인 증거로만 따진다면 사서에 기록된 대부분이 역사가 아닌게 됩니다.
고고학도 사서를 기반으로 해서 유물을 찾아 연구하고 입증 및 사서와 반대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지 무조건 증거로만 역사를 구성하는게 아닙니다. 해서 모든 역사는 증거로만 구성되었다고 하는건 잘못된 말 입니다.
                    
진실게임 14-05-05 17:42
   
그게 우리 고대사 물건인지 UFO 외계인이 와서 흘린 물건인지 어캐 압니까?

중국 동전이 나오면 중국인들이 왔구나, 아니면 중국인과 교역했구나 하는 거고 딴데 없는 빗살 문양이 나오면 빗살 문양 나온 쪽끼리 서로 교류가 있었겠구나 하고 아는 거죠.

그냥 나오면 다 고조선이라는 식으로 할 순 없죠.
유물의 유래가 고조선이라는 증거가 필요하고 없으면 그냥 모르는 겁니다.
역사는 지식이고 학문이지 때려맞춰보기 소설써보고 안되면 말기가 아니죠.

증거없는 역사는 없습니다.
                         
어모장군 14-05-05 20:04
   
그러니까 연구를 하자는 거죠. 연구도 안해보고 우리하고 관계없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홍산문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유물은 중국보다 우리와 친연성을 가지고 있죠. 우리와 유물적으로 친연성을 보이는 그들이 누구였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사서라고는 진서인지 위서인지 결정도 안난 한단고기에만 기록되어 있는 시기의 유물을 남긴 그들이 누구였을까요?
연구를 해보고 가야의 영토가 전에는 경상남도 지역에 한정했던 것을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가야 후기에는 충청도, 전라도 일부가 가야 땅이었다는게 밝혀졌듯이 우리와 관계가 있다? 없다?, 없다면 그들이 우리 조상에게 영향을 준 어떤이였다는 연구결과를 밝히면 되는 겁니다.

위에 중국동전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죠. 그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증거위주로 따지면 추정이지 역사가 아니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국동전이 나왔으면 교역만 했겠느냐 의문이 들죠. 중국이 동전이 나온 지역을 지배를 했을까? 아니면 중국쪽 난을 피해 이주민이 들어온 것은 아닐까?  등의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사서를 찾아보는 겁니다. 하지만 증거위주의 역사는 동전만 나왔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어요.

소설을 써보고 안되면 말기라 했는데 한사군 한반도설을 예로 들어볼까요.
중국쪽 고서에 한무제 시절에 한사군은 없었어요. 빨라도 후한 이후에나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나라 때 한서를 필사하면서 가필했을 것으로 고령의 비주류 학자들은 말합니다. 또한 기록된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지도 않습니다. 금석문학자들은 사진상으로 유물에 새겨진 한자를 보고서 한나라 당시의 필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묘제전문가도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태수의 무덥을 3D로 복원(천장부분 사진이 없어 완전복원은 못했어요.)하여 보고서 천장이 내려 앉은 고구려 무덤이다고 말하는 실정입니다.
사서에는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고 하고, 나온 유물들에 쓰여진 필체를 사진상으로 살펴본 금석문 전문가들은 한나라 때 글씨체가 아니다, 묘제 전문가는 3D로 복원하여 고구려 무덥이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의 우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낙랑봉니가 증거라고 제시하니 비웃을 정도 입니다. 한사군 봉니가 지금 중국쪽에서 나오는 실정인데 그럼 한사군은 북경 근처에서 부터 한반도까지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한사군은 한반도에만 있는게 아니었네요. 이런데도 아직도 한사군 한반도설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헌데 지금의 주류학계는 일본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지 실제로 자신들이 제대로 연구해보지도 않고 한사군 한반도설에 짜맞추어 주장합니다. 평양에서 한나라때 연호가 쓰인 그릇이 무덤에서 나왔다고 한사군이 맞다고 하네요. 금석문상 한나라 때 필체가 아니라는데도 말입니다. 이러면 누가 짜맞추고 있는 걸까요? 일본인의 유물조작을 의심해 볼 수 있는거 아닙니까?

1981년 문교부 국사교과서시정요구공청회에서 주류사학계는 문교부로 부터 아래와 같은 지시를 받습니다.
1. 단군왕검의 고조선 개국사실을 수록한다.
2. 백제의 대륙진출을 수록한다.
3. 한반도의 한사군 위치설을 삭제한다.
단군왕검 개국사실은 서술어만 고쳤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죠.
이런 주류사학계가 대학에서 고조선을 제대로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유물이 나와도 사서 무시하면 이렇게 역사조작을 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사서가 있어도 무조건 고고학적 증거위주로 해야  한다고요. 역사연구는 사서와 유물의 상호보완 입니다.
유물상 시대가 적혀서 나오거나 시대를 알수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문 경우입니다. 대부분 사서가 신라이니 이 유물은 신라시대 유물이다. 하는 겁니다. 세계에 모든 역사가 유물마다 나라이름이 쓰여져 있어서 역사를 알게 된게 아니라 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어서 이 유물이 어느 나라 때 알 수 있어요. 그냥 나오면 고조선 식이라 할 수 없다고요. 유물의 유래가 고조선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연구를 하자는 겁니다. 그런 연구도 안하면서 무슨 고조선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하는 겁니까?

예전에 어느분이 동게에 이런 글을 올리신 적 있어요.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거라는 증거가 어디있냐고? 이건 어거지를 부리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한나라 유물은 어떻게 알고 한나라거라고 말한 답니까? 그시기가 우리사서에 고조선이라 되어 있기에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 유물이라 하고 한나라라고 사서에 적혀 있기에 한나라 유물이라는 겁니다.

고조선 유물인 비파형 동검에 홍산문명에서는 비파형 옥검이 나왔습니다. 그럼 친연성이 있는거 아닙니까?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거죠. 그런데 이것도 우리 것인지 아닌지 연구도 안해보고 우리거 아니랍니다. 빗살무늬토기도 나왔어요. 그래도 아니랍니다. 연구도 안하고 말입니다. 위 댓글에 빗살문양토기를 쓰는 이들기리 교류가 있었구나하고 추정만 한답니다. 그래놓고 역사는 증거위주 랍니다. 추정이 역사입니까?

이처럼 연구도 안하면서 역사는 증거위주 랍니다. 유물로 증거만 따지면 뭘보고 세계의 역사를 알 수 있나요? 유물로만 보면 어느나라 때 유물인지, 과거에 어떤 나라가 있었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알 수 도 없는데 말입니다.
                         
진실게임 14-05-06 00:20
   
억지를 부리시네요.
한나라 시대 물건을 어찌 알긴요. 기록이 남아있으니 알지요.

고조선도 기록이 똑같이 그렇게 남아있으면 알 수 있는 거구요. 여러 기록을 교차해서 일치하고 출토 물품들도 대조해서 사서나 기타 기록들, 물건에 적힌 명문 등의 설명과 일맥상통하면 분명한 증거가 되는 거죠.

온 세계 사람 누가 봐도 명백한 것이 증거죠. 중국이든 아프리카든 중요한 역사 발굴에는 온세계 기자들이 다 달려들고 국제적인 협력으로 학자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고조선 유물이 분명한게 나와도 똑같이 목숨걸고 기자들은 취재경쟁할 거고 외국학자들도 달려들겠죠. 발견자도 물론이지만 참여한 그들도 일생을 바꿀 일인데요. 21세기 최대의 발견으로 기록될 거구요.

그런 날이 오길 바랍니다...
                         
신명 14-05-06 20:10
   
중국땅에 있는 홍산문명이니 하는 유적은 외국학자가 달려들지 못하지 않나요?
전에 부여 황궁을 재건하면서 중국식으로 고쳤다는 얘기도 듣긴 했는데...
국가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걸로 압니다.

세계가 놀랄 유물이 중국 땅에 나와도 과연 외국 학자들이 달려 들 수 있을지는 좀 의문이네요
                         
햄돌 14-05-07 17:08
   
진실게임 이 인간은

일본서기 임나일본부 신뢰하는 인간입니다.

실증사학에 빠진 인간으로 아직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반도 남쪽을 왜구들이 지배했다는거 믿는 인간인거 같은데요? ㅋㅋ

임나일본부 같은건 혼자서 빨면되지 무슨 이런데서

임나일본 운운하는지 모르겠네

그냥 비키세요
                         
어모장군 14-05-07 23:17
   
진실게임// 홍산문명에 대한 중국 쪽 태도를 모르시네요.
중국은 홍산문명 유물 나왔다고 외국학자들 불러와 같이 연구 안했어요. 지금은 홍산문명지에 우리나라 학자들 접근 금지 시키고 있어요. 그나마 지금 우리나라에 알려진 홍산문명 유물도 중국에서 한국학자들 접근금지 시키기 전에 조사하고 사진 및 동영상 찍어가지고 온 거에요. 그리고서 중국에서 발간한 유물사진집인 도감을 볼 뿐이죠.

별도에 이야기로 -
그동안 왜 학계에서 가야가 선비족이라 한줄 아십니까? 중국에서 발간한 선비족 유물 사진도감만을 보고 비슷하게 보이니 가야는 선비족이라 했던 거예요. 그게 부여유물을 직접 보고 연구한 중국학자들이 가야유물은 부여계다고 하니 직접 중국에 찾아가 부여유물을 보고 의견을 듣고 해서 가야는 부여계로 바뀐 겁니다. 국내 고대사 유물 연구가 한반도에 신라를 제외한 고대 유물이 별로 없다보니 중국에서 발간한 유물/유적 사진도감에만 의존해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보통 중국은 조용히 파보고 연구할거 다하고 자신들의 역사에 유리하게 결론을 내리고서 공개한다더군요.(기자조선, 철기국가 부여 유적 등이 모두 그렇고, 홍산문명이 나온 이후로 이 유적지도 한국학자 접근금지, 한국관광객 사진금지라고 합니다.) 그러고서 공개를 했는데 이 공개한 유물/유적이 우리나라 유물/유적과 친연성이 엄청난 겁니다. 상투 틀 때 쓰는 동곳(주나라 전까지는 동이족이 지배를 했으니 그때 전해졌으리라 보이고, 사기에 만이 복장을 이족 복장과 상투를 하고 갔다는 기록에 나오듯이 만은 원래 상투를 틀었던 사람이 아닌데 기자조선에 들어오면서 상투를 했다는 게 동곳이 발견됨으로 해서 원래 상투가 최소 신석기 시대부터 동이족 머리였다는 증거)에, 고구려성과 같은 치에, 한반도에서 1만년 전 부터 나오는 옥귀걸이에, 우리나라 한학자(당시에 남들은 미쳤다고 했었음.)가 주장한 한자는 우리 조상인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설을 증명하듯 한자가 적힌 신석기 토기 파편(이게 나오므로 해서 중국도 2천년도 부터 공식적으로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인정함.) 등이 나왔죠. 이게 한국 비주류 사학계에 한나라에서 부여왕이 죽으면 바쳤다는 옥갑의 경우와 같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중국도 당황해 지금은 한국학자들 접근금지 시키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해외기자들이 취재 경쟁 한다고요?
천만에요. 중국정부에서 철저히 차단합니다.
중국학자들 자기들 끼리 조용히 연구하고, 세계사학계에 중화유물로 발표하고, 유물복원은 중국정부에서 한/당식으로 했으며, 기사도 해외기자에게 넌지시 제보해 절대 대대적으로 홍보한적 없어요. 세계에서 오래된 문자가 나왔다는 뉴스도 조용히 보도했답니다. 그러고서 지금은 동이와 한국은 관계없다 입니다. 그걸 또 주류학계는 잘 따라요. 우리는 신석기부터 철기 초기 까지 동이가 아니었으니 홍산문명 우리거 아니랍니다. 중국에서 부여는 철기국가였다고 하는데 우리 주류학계에서는 그동안 철기는 기원전 2세기인가 기원후 2세기인가 부터 시작됐다고 했죠. 이건 또 중국 안 따라 갔다가 몇 년 전 부터 부여도 철기국가였다고 고쳤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이에요.
이러한데도 고조선 유물이 나오면 기자들이 목숨걸고 달려든다고요. 참여자들의 일생이 바뀐다고요. 고조선이 있던 만주/발해만/산동반도 지역을 우리가 다시 찾았를 때나 가능한 얘기지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홍산문명은 유물은 있는데 자세한 기록이 없어요.
우리나 중국이나 요서 지역에 조선이 있었다는 나라이름만 나온 기록이 다 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진위논란이 있는 환단고기가 있죠. 그럼 일단 기록은 공통으로 조선이 나오니 조선유물로 가정하고 유물적 친연성 때문에라도 연구해 볼만 하지 않나요?
가야 후기 같이 사서에 지명만 나왔지 어디인지 몰랐던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가 가야 땅이었다는 걸 알았듯이 유물을 연구해서 신석기~청동기 초기였던 신시 환웅시대(?)와 신석기 말기~청동기였던 단군조선(?), 청동기 말기~ 북부여(?)의 역사가 밝혀질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니 우리와 관계가 없는 문명지이고, 환단고기가 거짓이었다 할지라도 우리 조상에게 영향을 준 그들이 어떤이들 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큰 수확이 아닐까요?

제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역사는 사서와 유물/유적의 상호보완 입니다.
유물과 유적이 나와도 사서가 없으면 알지 못하고, 유물과 유적이 나옴으로 해서 사서에 기록된 나라와 그 유물과 유적이 유행하고 이용되던 시점의 사건을 증명해 주는 겁니다. 유물이 어떠한 나라의 모든 시간을 증명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증거가 있어야 역사다는 말은 잘못된 겁니다.
조선을 예로 들어 조선시대 유물과 유적이 나왔다고 해서 조선시대 500년 전부를 증명하는게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과 조선에서 유물이 유행하던 시기와 그 때의 사건만을 증명할 뿐이에요. 또한 유적은 조선에서 파궤되지 않고 이용되던 시점만 증명할 뿐이죠.

위에 한사군 한반도설에 금석문상에 오류를 예로 들었죠. 한자는 왕희지체 같이 유행하던 필체가 있습니다. 왕희지체 같이 크게 알려진 필체가 아니더라도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필체를 따라 쓰죠. 해서 금석문에서는 필체가 하나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헌데 한사군 유물에 쓰여진 한자들이 한나라 때 유행하던 필체가 아니라는 금석문 전문가의 의견이 나온 겁니다. 이런 경우가 유물로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사서를 부정해 버린 것을 금석문이 유물을 부정하므로 해서 사서를 증명 한 것이에요.

사서에 유물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물이 사서를 모두 증명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상호보완을 해주는 겁니다. 해서 역사 속에 증거(유물/유적이 파괴되어 없는, 또는 유물/유적이 아직까지 발견이 안된) 없는 역사(사건)도 있는 거에요. 또한 홍산문명 같이 유물은 있는데 기록이 없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한중 공통으로 기록에 조선은 나오고 시기적으로 유물이 그때쯤이니 홍산문명을 연구해 볼만 하잖아요.
G100s 14-05-06 01:57
   
아직도 환단고기를 믿는사람이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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