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서의 임나일본부나 중국 사서의 왜가 한반도를 다스린다는 기사는 "파봤더니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한국의 사서인 사기와 유사에 임나일본부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만?
중국쪽 기록은 왜가 한반도를 다스리지 않았다는 반대되는 기록도 많고, 책봉기사에 나오는 지명들이야 실질적인 통치의 증거가 아닌 이름 뿐인 거라 아무 의미 없는 거고. 이런 거 다 인정하면 동성왕이 중국 대륙 다스린 것도 다 인정받아야 하는 거고.
고조선 수도의 위치를 님 말대로 특정할 수는 없어도 그게 곧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었다거나 수도가 없었다는 얘기가 성립됩니까?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 한반도 내에 위치했던 한4군의 위치를 트레이싱지에 그리고 색깔까지 칠해가는 숙제를 한 덕분에 아직도 한4군의 이름과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한4군 중 낙랑군 하나를 뺀 나머지 3개의 존재는 실존 자체도 의문시되고 있고 위치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더군요.
고조선은 수도 위치 몰라서 안 가르친다면서 위치도 틀리고 존재도 불확실한 한4군 따위는 왜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나요? 국정교과서로 공부한 학생 머릿 속에 고조선에 대한 지식보다 한4군의 지식이 더 많은 건 왜 그런건가요?
아무리 조선시대 역사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로서니, 내가 배우던 때 고등학교 국사 국정교과서의 상하권 중에서 하권이 통째로 조선시대 역사고(근현대사 맨 뒤에 몇 장 붙은 거 빼곤), 고조선은 상권 맨 앞 열몇 장에 불과했고 삼국시대도 대충 넘어가고(5세기 이전 삼국 역사는 거의 안 가르침. 왜 그랬을까? 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죠), 통일신라와 고려사가 2/3였는데 이러면서 반만년 역사에 대해 어떻게 자부심을 갖죠?
땅 파서 나와야만 믿겠다라는 자세가 틀려먹은 겁니다.
최소한 이런 설과 이런 설이 있다 정도로 가르치는게 3세기 이전 역사(네~ 4-5세기 이전 삼국사기 기록을 못믿겠다고 하던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와는 다르게 대한민국 강단사학계는 삼국사기를 불신하는 연대를 일본보다 100-200년 위로 올렸습니다 박수)는 아예 없는 취급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나쁠 게 뭐가 있죠?
근데 땅 파서 나와야만 믿는 건 맞나요?
서울대 사학과에서 80년대부터 몽촌토성 파봤는데 왕성을 입증하는 증거 하나도 안 나왔죠?
근데도 10년 넘게 몽촌토성이 하남 위례성이라고 했죠? 논문도 많이 썼죠?
왜 그랬대요?
재밌는 분이시네요.
님이 한국 고대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건 윗 댓글 하나로 잘 알겠습니다.
몽촌토성에서 불과 2.5km 떨어진 풍납토성이 몽촌토성보다 훨씬 더 크고(몽촌토성 내부면적 21만 제곱미터, 풍납토성 내부면적 64만 제곱미터) 성벽의 높이와 규모도 비교가 안되게 큽니다.(몽촌토성 6.5미터, 풍납토성 9-11미터 이상)
게다가 일찌기 풍납토성에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청동초두와 금귀걸이, 유리구슬 같은 중요 유물이 발굴된 바 있고 60년대에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의 김원룡 교수가 학부생들 데리고 구덩이 몇 개 파는 수준의 원시적인 시굴을 했을 때도 초기 백제시대의 와편과 그릇 파편이 대량 출토된 곳입니다.
님이 말한대로 "주변에서 그보다 거대한 규모들이 막나와줘야 왕성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거죠"에 딱 들어 맞는 상황 아닌가요? 몽촌토성보다 더 거대한 토성이 주변에 있는데도 한국 사학계는, 서울대 사학과는 수십 년 동안 쌩깐 겁니다. 이게 강단사학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실증사학의 진면목입니다.
진짜 우리나라 강단사학계가 실증적인 사학을 추구한다면 몽촌이 아니라 풍납을 위례성으로 보고 발굴을 시작했어야 정상입니다. 시간 나면 여기에 얽힌 온갖 비하인드 스토리 한 번 찾아보세요. 다 알고 나면 한국 사학계를 신뢰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게 정상입니다.
에구.. ㅋ 고조선의 주무대 요하-만주-한반도에 걸쳐 넓은 규모에서 동일하게 발굴되는 유물들인데 이게 고조선 껀지 중국 껀 지 모른다?? ㅋㅋㅋ 밝혀져야 안다??ㅋㅋ
그럼 유물들마다 고조선이라는 단어가 써 있어야 됩니까? ㅋㅋ
당시 시대상과 유적의 분포,그 나라의 강역이 일치하고 그 이후 부여,고구려 등 국가들에게도 유사한 문화가 나타나는 데 이게 고조선의 유물인 증거가 없다니...ㅋㅋ
진짜 이런 무식한 어그로는 오랜만이네요 ㅋㅋ
남의 집에 도둑질하다 머리카락 흘려서 DNA분석을 증거로 잡혔는 데, 도둑이 DNA가 실제 존재하는 물질인지 증거가 있냐고 우기는 격이네요 ㅋㅋ
그런 식이면 황허 문명의 유적이 화하족의 것인지 흉노의 것인지 고조선의 것인지 외계인의 것인지도 밝혀내야 겠네요 ㅋㅋ
"고대 한반도에 그런 규모의 성이 있는데 왕성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게 말이 안되니까요.
그럴러면 주변에서 그보다 거대한 규모들이 막나와줘야 왕성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거죠." <== 이게 님이 직접 쓴 글입니다. 거대한 성이 있으면 왕성이 아닐거라고 생각하는 게 말이 안된다고 하셨죠?
그래서 내가 몽촌토성 바로 옆에 3배나 더 큰 풍납토성이 있는데 왜 서울대 사학과를 위시한 한국 사학계는 더 거대한 풍납토성을 외면하고 몽촌토성을 백제의 왕성이라고 주장했냐고 반문한 겁니다. 왜 음모론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지 모르겠는데 여기에 무슨 음모론이 끼어들 여지가 있습니까? 주제와 동떨어진 얘기로 말 돌리지 마시고 질문에나 대답해주세요. 왜 입만 열면 실증사학을 찾는 한국 사학계는 거대한 풍납토성의 존재를 수십 년 간 외면하고 방치했던 건가요?
서울대 박물관에서 10여 년 간 몽촌토성을 발굴했지만 왕성임을 입증하는 유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방어용 군사시설이나 저장시설들만 확인됐습니다. 몽촌토성에서는 변변한 기와집조차 제대로 안 나온 반면 풍납토성에서는 청동 초두와 금 귀걸이, 유리구슬 등 중요 유물들이 1925년에 이미 나왔고 최근 발굴에서도 전체 면적의 극히 일부만을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동과 금동 유물, 어마어마한 양의 기와와 항아리 등이 출토됐으며 대형 건물터도 여러 곳 나왔고 도로 유적까지 나왔지요. 비전문가가 봐도 몽촌보다는 풍납이 더 백제 왕성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왜 한국 사학계는 최근까지도 풍납토성을 백제의 초기 도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이게 실증인가요? 대답해보세요.
1925년 을축대홍수 때 청동유물, 금장신구, 유리구슬 등이 수습됐고 60년대에 김원룡 교수가 구덩이 몇 개만 팠는데도 초기 백제 기와가 다량 출토됐습니다. 규모도 3배 이상 크고 성벽은 2배 이상 높습니다. 축성에 동원된 인력은 1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런데도 서울대 박물관은 풍납토성을 내버려두고 몽촌토성을 위례성으로 보고 발굴을 했고 한양대 박물관은 이성산성을 팠습니다. 이게 첫번째 비실증적인 태도입니다.
두번째, 몽촌토성 발굴결과 왕성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주춧돌과 기와를 사용하는 대규모 궁궐지나 관청터, 목탑터, 절터, 남북 직교 도로, 귀금속 유물, 명문 기와나 그릇조각, 뭐 하나 나온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최근까지 몽촌토성은 백제 왕성이라고 주장되어졌습니다. 이게 두번째 비실증적인 태도입니다.
세번째, 풍납토성은 정상적인 학계의 연구 과정을 따라 우리에게 알려진 게 아닙니다. 홍익대 출신 선문대 이형구 교수가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주류 사학계에서 들은 척도 안하니까 할 수 없이 1997년 설 연휴에 경당연립 재건축 공사 현장에 몰래 들어가서 백제 유적지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는 현장을 확인하고 나와서 이슈화 시킨 겁니다.
몽촌토성만 붙잡고 있었던 잘 나신 주류 강단사학계에 맡겨 놨으면 지금쯤 풍납토성의 백제유적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짓느라 다 파괴되어 소멸됐습니다.
그 후 약 10년 넘게 풍납토성을 발굴해 몽촌토성에 비해 엄청난 유물과 유적이 확인됐는데도 불구하고 풍납토성은 백제 왕성으로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15년 넘게 질질 끌다가 겨우 마지못해 백제 왕성으로 인정받게 됐는데 이게 증거를 따라서 제대로 일이 되어간 거라고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구요? ㅋ
나한테 힐문할 이유는 없어요. 나는 모든 비실증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거니까 그 사람들이 비실증적이라면 그 사람들도 비난하는 셈이죠.
나는 강단 사학을 비호하는 입장이 아니라 뭐가 됐든 불합리한 걸 주장하려는 사람이 짜증나는 거 뿐이니... 강단 사학이 불합리한 거라면 그 넘들도 돌 맞아 쌉니다. 됐죠?
그래도 그냥 관두면 섭섭하니 슬쩍 비호하는 입장이 되어 보자면
당장 드러난 유물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상황도 있겠죠.
땅 파서 유물 나왔는데, 앞으로 더 파도 나올 게 없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으면 그걸로 판단내리고 끝낼 수 밖에 없겠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는 확신을 갖기는 언제나 어렵죠.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고고학 유물을 확보한 지금이라 해도...
실증적 태도를 견지한 다고 해서 앞으로 다른 증거가 더 나타나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죠. 그것도 불합리한 거니까요.
이미 파볼만한데 다 파봤습니다.
왕궁터가 어디 성벽 한쪽 귀퉁이에 짱박혀 있을 것 같습니까? ㅋ
몽촌이 왕성이었다면 왜 6년 간 있을만한 곳은 다 파봤는데 왕성을 입증할 유물이 안나왔습니까?
이런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에조차 답을 못하면서 초딩처럼 우기고 떼쓴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ㅋ
결과 다 나왔는데도 님처럼 억지 쓰면서 "어찌 아나요?"라고 땡깡부리는 게 실증인 줄 압니까?
생땅이 나올 때까지 파봤는데도 안나왔으면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실증입니다.
강단의 정설 혹은 이론이라는 것이 단 몇 백년 동안일 지라도 항상 같은 것이 아닌데 강단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고조선이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말은 "고조선은 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라는 말인데 이처럼 이상한 말이 있을수가 없기에 "고조선이 ㅇㅇㅇ 였었는지 확실치 않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강단사학이 매국노라고 말하긴 그렇지요~~
강단사학이 매국노라고 한적은 없구요 다만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강단사학계에서 더 연구하고 강단사학계가 아닌 많은 학설도 인정하고 추론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하는게 문제인거죠..
그리고 식민지 사관에 조금은 부합하는 내용들을 지금까지 고집한것도 있구요.
사실 해방후 일본학자들이 연구한걸 따르려고만 했지. 거기에 대한 재연구나.재조사를 하지않은건 사실잊잖아요. 역사의 주류로써 그런점이 잘못됐다고 보는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환단고기. 아시아의 이상주의 (이홍법교수 오바마 정부의 명예장관) 이런책들도 강단사학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연구 하고 발표한겁니다. 그런데 이런책들을 한국역사학의 주류인 강단사학들이 한게 아니라는게 유감인거죠.
연구 안했으면 그 책들을 인정하고 수정해야 하는데~~ 소극적인겁니다. 아직도 식민지 사관에 부합되는 교과서를 지향하는것이 문제인 겁니다. 그래서 강단사학을 매국노라고 비판하는거지요..
애초에 일본서기라는 게 한단고기보다도 못한 위서인 데다, 이미 일본에서도 매장된 임나일본부설을 빠니 웃겨죽겠죠 ㅋㅋ
또 그 말도 안되는 지나사서를 갖어와서 증거를 제시하면 또 모르겠는데, 인용문은 커녕 책명도 안 밝히니 뇌내망상임을 알 수 있죠 ㅋㅋ
제가 아는 지나사서에는 정반대의 내용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ㅋㅋㅋ
저는 역사학도는 아닌 평법한 사람입니다만.....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한국사가 우리가 연구한게 아니구 일본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겁니다. 그당시의 시대상을 반영 하면 그럴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중앙아시아. 인도남부. 파키스탄 북부 에 가보니. 거기 사람들이 우리말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다는 아니지만 그런건 학자가 아니 더라도 의문점드는데 역사 학자들은 더 의문점을 가져야 아닌가요?
우리가 그런나라들을 식민지를 해서 그들이 우리 말을 쓸까요? 어떻게 그사람들이 우리말을 쓸까요?
결론은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굴절된겁니다. 식민지 사관에 의해서요.
그런데 더 웃기는것은 많은 학자들이 우리한국의 뿌리를 찾아서 연구한걸 책이던 뭐든 주장하면
연구도 안한사람들이 인정을 안한다는거지요....... 그런 학설들을가지고 더연구해서 나아가 한국의 바른 역사를 세우는게 학자들 몫이 아닌가 싶어요.. 일본이나 중국처럼 역사 왜곡을 하자는건 아니잖아요.
"아시아의 이상주의" 저자 이홍법 박사 인터뷰를 보니.. 이런말을 하더군요.
저도 이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내용이라고 합니다.
" 한국인이 고대중국의 뿌리이고 나아가 고대 왕국을 세웠다. 중국보다 더 찬란한 문화를 가졌다"라는 책인가 봅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비리그 역사학자들은 이런 한국인을 인정한다는겁니다. 그런데 학국 강단사학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_ 참 슬픈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