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백제가 패망하고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당나라에서 죽고 그들이 당나라 땅에 남긴 묘지명에 그들이 단군조선을 어떻게 생각했고 그들 스스로의 동족의식 즉 민족의식과 같은 말이죠...겨레라는 말과도 같고..그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수있는 증거..
(고구려)고질(高質)의 묘지명-공은 이름이 질(質)이오, 자(字)는 성문(性文)이니 요동(遼東) 조선(朝鮮) 사람이다.
(백제)부여융 묘지명(扶餘隆墓誌銘)-공(公)은 이름이 융(隆)이고 자(字)도 융(隆)으로, 백제 진조인(辰朝人)이다.
(고구려)천남산묘지명(泉男産墓誌銘)-군(君)의 휘(諱)는 남산(男産)이니 요동(遼東) 조선인이다.
(고구려)고진묘지명(高震墓誌銘)-공의 휘는 진(震)이며 자는 모(某)이며 발해인이다. 공은 곧 부여의 귀종(貴種)이며, 진한(辰韓)의 영족(令族)이다.
(고구려)고현묘지명(高玄墓誌銘)-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이다.
(백제)흑치상지묘지명(黑齒常之墓誌銘)-부군(府君)은 이름이 상지(常之)이고 자(字)는 항원(恒元)으로 백제인(百濟人)이다. 그 조상은 부여씨(扶餘氏)로부터 나왔는데 흑치(黑齒)에 봉해졌기 때문에 자손들이 이를 씨(氏)로 삼았다.
출처;譯註 韓國古代金石文
위의 자료는 지나대륙에서 발견된 고고학적인 유물로 고구려,백제인의 묘지명 입니다.
위의 기록을 보면 고질(高質)은 조선인이라 기록하고 있고,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은 백제 진조인(辰朝人) 즉 백제 진한조선인 이라 기록하고 있고,연개소문의 아들인 천남산은 요동(遼東) 조선인이라 기록하고 있고, 고구려 보장왕의 손자인 고진은 발해인이며,부여의 귀족이며,진한(辰韓)의 영족(令族)이라 기록하고 있고,역사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고현은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이라 기록하고 있고,흑치상지는백제인으로서 조상은 백제의 부여씨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의 묘지명에 기록된 사람들인 고구려,백제인은 한결같이 조선인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고구려인,백제인 인데 그들이 스스로를 조선인이라 기록한 것을 보면, 그들의 조상은 역사에서 상식적으로 대변되는 "조선"임을 능히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삼국시대 그 당대에만 해도 이들 삼국의 사람들은 나라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동류의식이 있었고,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된 조상은 "조선"이었으므로 후대의 묘지명에서도 스스로를 조선인이라 기록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고고학적인 유물로 보면 삼국이 "조선"을 국조로 생각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생겨난 개념이 맞지만 민족이라는 용어 전에 "겨레"라는 말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