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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2 16:36
[기타] 치우 관련한 중국학계의 짜맞추기 내용인데..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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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6) - 중국인의 조상 ‘황제’는 동이족었나
 
(앞부분 생략)
 
-황제는 훙산 고국의 초대왕?-
중국의 용 사상이 잉태한 곳이 바로 이곳(차하이·査海·BC 6000년전)이었다.
제단과 신전, 무덤(적석총) 등 3위 일체의 제사유적을 핵심으로 하는 훙산문화가 창조된 곳(뉴허량)도 바로 이곳이다. 즉 제정일치 사회의 왕이 존재한 고국(古國)이 탄생한 곳이다.
 
그러니 중국인의 입장에서 황제는 ‘훙산 고국’의 초대 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엔 크게 당황했던 중국학계는 정신을 차린다. 바로 전설과 고고학 자료들을 교묘하게 끼워 맞춘다.
우선 뉴허량 출토 곰의 뼈를 두고는 “사마천의 사기에 ‘황제는 유웅씨(有熊氏)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곰과 황제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1970년대 말 허베이성(河北省) 장자커우(張家口) 지구 쌍간허(상건하·桑乾河) 유역인
위센(蔚縣) 싼관(三關) 유적에서 함께 발견된 유물 2점에 주목한다.
 
동북 훙산문화의 대표 문양인 용무늬 채도관(항아리)과
중원의 양사오 문화를 대표하는 꽃무늬 채도가 한 곳에서 나온 바로 그 곳.
 
이는 훙산문화와 양사오 문화가 접변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중국학계는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역사기록을 떠올린다.
 
“이 장자커우 인근에 황제와 염제,
황제와 치우가 싸웠다는 반취안(판천·阪泉)과 줘루(탁록·탁鹿)란 곳이 있어요.
 
중국학계는 바로 이 인근에서 동북 훙산문화 유형과
중원 양사오 문화가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해석하기에 이르렀지요.”(이형구 선문대 교수)
 
-“피가 백리나 흘렀다”-
 
사서에 따르면 훙산문화 시기에 즈음해서 문명의 충돌이 두 번 있었다.
‘염제(신농씨) vs 황제’의 ‘반취안(판천) 전쟁’과 ‘황제 vs 치우’의 ‘줘루(탁록) 전쟁’이었다.
 
“염제(신농씨)가 제후들을 침범하려 했다.
 
헌원(황제)은 곰과 범, 살쾡이 같은 사나운 짐승들을 훈련시켜
판천(阪泉)의 들에서 여러 번 싸운 뒤에야 뜻을 이루었다.
 
치우가 또다시 난을 일으켰다.
헌원은 제후들과 함께 나서 탁록(탁鹿)의 들에서 싸워 결국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천자로 삼았으니 그가 바로 황제다.”(사기 오제본기)
 
‘장자(莊子)’에는 “들판에 피가 백리나 흘렀다”고 했다.
병장기가 핏물에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
 
고대 동양문명의 맹주를 놓고 벌인 ‘1·2차 대전’의 치열함과 처절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인들에게 황제(헌원)는 이민족의 도전을 뿌리치고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한,
동양문명의 창시자였다.
 
그야말로 "황제는 중국인의 자존심이자 정체성 그 자체“ (정재서 교수의 ‘동양신화’·황금부엉이)였던 것이다.
-염제 vs 황제의 1차대전-
 
그러나 훙산문화 발견 이후 중국학계는 황제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한다.
 
쑤빙치는 ‘통고(痛苦)의 연구’ 끝에 황제의 고향을 중국 동북방,
즉 훙산문화의 본거지인 발해연안에서 찾은 것이다. ‘훙산시대=황제시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고고학 성과와 역사서의 오제전설 기록을 토대로
지금부터 5000년 전후의 문화구를 3대 고고문화구로 나누었다.
 
즉 훙산문화의 동북문화구,
양사오 문화의 중원문화구,
그리고 다원커우(대문구·大汶口) 문화의 동남연해문화구 등이다.
 
그리고 고대 전설상의 오제시대를 다시 전·후기로 나누었다.
BC 3500~BC 3000년전 시기를 전기,
BC 3000년전~하나라 건국(BC 2070년) 이전을 후기로 각각 구분했다.
 
훙산문화는 바로 오제시대 전기, 즉 양사오 문화와 상응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훙산문화는 중국문명 기원 과정에서 한걸음 먼저 나갔으며(先走一步)
양사오 문화와 기북(冀北·허베이성 서북부)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바로 제1차 대전인 ‘황제 vs 염제 전쟁’이며,
시대는 오제시대 전기(BC 3500~BC 3000년)에 일어난 일로 보았다.
 
즉 훙산문화의 용무늬 토기와 양사오 문화의 꽃무늬 채도가
싼간허 유역 싼관 유적에서 공반되어 나온 것은 바로 이 ‘황제 vs 염제 전쟁’을 의미한다.
 
이것은 쉬즈펑(徐子峰) 츠펑대교수의 말처럼
“두 문화가 충돌한 동시에 교류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쑤빙치는
“이렇게 충돌·교류한 문화는 다시 발해연안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훙산문화의 단(제단)·묘(신전)·무덤(총·적석총)으로 발전하여 전성기를 이뤘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국학계는 동북방과 중원문화의 충돌·교류 이후 훙산 고국(古國)이 탄생했다고 보았지.
훙산 고국의 초대 왕은 ‘황제’라는 것이고….”(이형구 교수)
 
쑤빙치 등은 황제의 고향을 동북방으로 연결했다.
황제가 염제와 싸울 때 함께 전쟁터에 나선 곰과 범, 살쾡이 등은
이런 짐승들을 토템으로 삼은 부족들의 명칭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또한 사기 오제본기는 “황제는 일정한 거처없이 옮겨 다녔다”고 했다.
중국학계는 이를 ‘황제족’의 성향을 일컫는 것으로 동북방 민족과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보았다.
 
-황제 vs 치우의 2차대전-
 
그렇다면 동이족의 신으로 알려진 치우는 무엇인가.
중국학계는 바로 ‘황제 vs 치우 대전’ 역시 오제전설과 역사서를 고고학 성과와 끼워맞춘다.
 
즉 ‘황제 vs 치우’전을 오제시대 후기(BC 3000~BC 2070년)에 일어난 ‘사실’로 본 것이다.
훙산문화의 전통을 이은 황제족과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치우족의 문화,
즉 다원커우 문화가 역시 충돌·교류한 증거라는 것이다.
 
BC 3000년 무렵 다링허(大凌河)와 시랴오허(西遼河)에서는
훙산문화의 전통을 이은 이른바 훙산후(紅山後) 문화라 하는 샤오옌(소하연·小河沿) 문화가 꽃을 피웠다.
이는 다시 조기 청동기-샤자뎬(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누공두(鏤孔豆·구멍뚫은 굽달린 접시)와 주전자(壺), 고족배(高足杯·다리가 높은 그릇) 등 다원커우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유물들이 속출한다.
 
바로 이것이 동북방(훙산문화 계열)과 동방(산둥반도)의 충돌 및 교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궈다순(郭大順)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사기 오제본기는 황제·염제 싸움을 먼저, 황제·치우 싸움을 나중에 기록했다”면서
“고고학 성과를 검토하면 역사서가 딱 들어맞는다”고 자화자찬한다.
 
-치우는? 단군은?-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하나.
이 해석대로라면 훙산문화의 창조자와 치우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훙산문화의 주인공은 황제이고,
산둥반도 다원커우 문화의 주인공이 치우라는 이야기이니….
어찌된 일인가. 그리고 또 하나.
중국학계는 황제를 비롯한 오제전설(황제·전욱·제곡·요·순) 주인공들의 고향을
대체로 동북방으로 본다는 것이다. 훙산문화를 꽃피운 것은 바로 황제라는 것이다.
 
후계자 전욱(전頊)도 “북방의 대제(大帝)”라는 칭호를 얻는다.
뉴허량 신전에서 끊어진 하늘과 땅의 관계를 혼자 독점하며 제정일치 시대를 이끈 이가 전욱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곡(帝곡·3대왕)은 훗날 상나라의 선조라고 했다.
모골이 송연하다. 이미 ‘하상주 단대(斷代)공정’을 단행,
전설상의 하나라 건국연대를 BC 2070년이라 확정한 중국이다.
 
그렇게 올려놓은 중국역사가 4000년이다.
그런 중국학계가 이젠 더 나아가 발해문명,
 즉 훙산문화를 창조한 이가 바로 황제이며, 그 황제가 중국인의 조상이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다시 전설의 1000년 역사가 ‘사실(史實)’로 회복된다.
이른바 중국문명 5000년이 확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문명 탐원공정’의 핵심이다.
 
우리 학계는 중국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은 망령과,
 ‘실증할 수 없다’는 지나친 결벽증(?) 탓에 제대로 된 연구조차 ‘재야사학’이라며 무시하고 있다.
그런 사이 중국학계는 이미 ‘중국문명 5000년’의 틀을 짜놓고 있는 것이다.
 
발해연안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적석총과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곰 숭배의 원형들….
중국학계의 견강부회로 그 역사가 황제의 역사라면,
치우와 단군, 그리고 웅녀 등 우리 민족의 흔적은 깡그리 무시되는 셈이다.
 
전설과 고고학 성과를 완벽하게 끼워 맞추는 중국학계의 움직임과
우리 학계의 무력함에 기자는 가슴이 탁 막혔다.
 
〈뉴허량·선양|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경향닷컴|이다일 기자 crodail@khan.co.kr〉 2008년 01월 18일 17:30:35
 
 

7. * 결론 요약:


1. 기원전 3500년경 홍산문화의 주 종족은 황제헌원(환웅)으로 곰 토템족이다. 

2. 여러 사서,한나라 때 화상석을 통해 볼 때 홍산문명의 황제헌원은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을
이끌고 홍산문화를 원시 국가 단계로 끌어올렷다.
이런 전체적 정황을 담아낸 것이 삼국유사의 환웅 신화(단군신화)이며 황제헌원 신화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곰 토템족,호랑이 토템족은 모두 북방 시베리아 퉁구스 계열이나 혹은 그 혈연 비슷한 종족으로
빗살무늬토기를 쓰며 홍산문화의 형성에 주된 역할을 하였다.

3. 한나라 때 산동 무씨사 화상석에서 황제헌원(환웅)의 신화가 그려져있는데. 호랑이 토템족이
헌원의 곰토템족에 패하고 서쪽으로 이동하는 그림이 있으며 
이 내용은 호랑이 토템족인 치우가 곰 토템족인 황제헌원에게 부족 경쟁에서 밀려 서남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4. 고고학적으로 양자강 일대의 링쟈탄 문화의 홍산문화 성향을 강하게 띄는 옥기 문화와 
호랑이 옥룡의 존재는 홍산문화의 호랑이 토템족이 홍산문화를 떠나 링쟈탄 일대에 정착했다는 증거로
링쟈탄 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사이다.
링쟈탄 단계에서 이미 초기 도철(치우) 신의 숭배가 출현했다.

5. 링쟈탄 문화가 양자강 이남으로 이동하여 량주 문화를 세우며 수준 높은 옥기문명 '량주 문명'을
세우는데. 이 량주 문명에서 도철 신앙(치우 신앙)이 번성하였으며 중국 사서에 치우의 '구려국' 혹은 '삼묘'로 나온다.

량주 문화는 기원전 3천년 북진하여 산동의 다원커우 문화(소호국)를 정복하고 다원커우인들과 융합한 후 
룽산 문화(용산 문화)를 일으켜 북경 근처 탁록으로 진격하여 홍산문명과 충돌한다.
기원전 3천년 이때 당시 홍산문명은 기후대재앙으로 이미 멸망 상태로 들어가고 있었다.

6. 도철 숭배(치우)는 룽산 문화->하나라->상나라->주나라->한나라->고구려로 이어져 한국의 붉은 악마 치우천황
문양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게 책사풍후 책풍이 블로그 내용이긴 한데..
거의 중국 학계의 탐원공정과 거의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국학계와 책풍이의 의견을 쉽게 요약하자면..
 
 
환웅=황제헌원
 
자음이 ㅎㅇ로 일치, 발음도 비슷
 
황제헌원이 염제 신농씨를 격파할 때, *판천대전*
호랑이, 곰을 데리고 갔고, 헌원의 성씨가 유웅씨라는 것에 주목해서..
곰 토템부족의 수장이 황제헌원이라고 주장함

치우는 갈라져 나간 호랑이 토템 부족의 수장
서남쪽으로 남하해 량주 문화를 형성한 후
다시 북상하며 대문구 문화를 격파하고 다시 홍산문명의 황제헌원(=환웅)과 대결, *탁록대전*
 
치우나 황제헌원(환웅)이나 둘다 북방 퉁구스계열 민족이긴 하지만,
황제헌원은 홍산에 머무른 반면, 치우는 남하해서 다시 북상해 묘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런 내용인듯..
 
결국 단군신화랑 삼황오제 신화를 짜집기한 내용이다는거죠
중국학계와 환빠의 오묘한 동침이랄까.. 동상이몽이랄까..
 
짱개놈들은 자기네 역사를 아주 쭉쭉 끌어올려서 기분이 째지고,
책풍이 같은 환빠들은 스케일을 확장해서 살을 붙이니 재밌고
 
그런데, 무씨사당벽화 내용에 대한 해석 같은건 일부 그럴듯합니다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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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당이고선 14-03-02 16:52
   
책사풍후는;;
gagengi 14-03-02 17:08
   
일본민족의 기원은 한반도남부 삼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야요이문화를 일군 도래인이라는 것이 역사학의 상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기원인 최초의 중국황제는 홍산문화사람이 남하해서 중국에 식민지를 건설한 고조선직계 조상이라는 것은 이제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즉 한민족이 중국과 일본의 문명을 시작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홍산인의 식민지배로 문명이 시작됐고, 일본의 경우에는 삼한인의 야요이문화전파로 문명이 시작됐습니다.

중국시조 황제(黃帝)는 홍산인 :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3697
중국‘황제’는 동이족 (경향신문기사):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73623
gagengi 14-03-02 17:31
   
중국시조 황제가 홍산인이고 그 자손들이 모조리 동이족이라는 것을 중국역사학이 발표했다는 이유로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한민족에 의해서 식민지배당하고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자백하는 꼴인데 우리는 도무지 관심도 없고 연구도 안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요하문명-홍산문화를 마치 중국역사인냥 날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땅의 역사 고조선-고구려까지 모조리 중국사라고 날조하고 있는데 가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역사를 찾고 지켜야합니다.  홍산문화를 뺏기면 고조선-고구려까지 다 뺏기는 것입니다.

홍산문화가 바로 한민족의 기원과 중국문명이 어떻게 한민족에 의해서 시작되었나를 밝히는 핵심입니다.  홍산문화를 우리역사로 빨리 편입해야합니다.
gagengi 14-03-02 17:38
   
과거에 일본민족이 한민족에서 갈라졌다는 사실에 대해 알레르기반응 일으키며 부정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연구가 일제때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악용되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은 사실입니다.  한민족이 일본섬을 식민지배하며 문명을 개화시켰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사이기 때문에 세계에 홍보할 일이지 거부할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중국문명이 한민족의 지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무조건 거부하며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한민족의 역사를 다 중국사라고 날조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우리가 싸워서 지켜내야할 문제이지 고고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홍산문화를 우리역사로 편입하고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홍산인들이 중국 시조 황제가 되어서 중국에 문명을 전파했는지 연구해야할 문제입니다.
어모장군 14-03-02 18:51
   
논란이 있는 한단고기를 따른다면 자오지 환웅에 역적질을 한게 공손헌원인데 중국학계에서는 반대로 공선헌원을 환웅으로 만들고 자오지 환웅을 량주문화권에다 감금시켜버리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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